전체기사

[기자의 눈] 부동산대책, 실수요자 배려해야 효과 본다

“지금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하기 딱이야."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보름 후 수원에 사는 지인의 말이다. 그는 “우리 동네는 규제에서 빠졌잖아"라며 차익을 노리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놀라운 건 이런 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동산 업체 통계를 보면 10·15 이후 규제지역 거래는 76% 급감한 반면 비규제지역은 22% 증가했다. 그중 그가 사는 수원 권선구는 73%나 폭증했다. 규제를 피해 수요가 이동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반복됐던 풍선효과와 유사하다. 당시에도 규제를 강화했지만 인접 지역 가격이 급등하며 정책이 오히려 과열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재명 정부는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일괄 묶는 초강수를 꺼냈다. 그러나 6·7 대책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6억원 제한에 이어 규제가 연달아 나오자 서울 상급지 시장에서는 “현금 부자만 웃는다"는 냉소가 커졌다. 특히 수요 억제 일변도의 정책은 무주택 청년·신혼부부에게 가장 먼저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10·15 대책 이후 전세 매물은 줄고 월세 전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기 지역의 아파트 월세는 100만원대를 훌쩍 넘나든다. 소득이 넉넉지 않은 청년·신혼부부가 주거비 압박을 가장 먼저 체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의지할 정책 대출의 문턱은 좁아졌다. 대표적 정책대출인 생애최초 디딤돌 대출은 부부합산 8500만 원 이하(일반 7000만 원 이하)만 가능하지만, 맞벌이 신혼부부 소득이 그 이상인 경우가 흔하다. 신생아특례대출도 올해 6월부터 한도가 5억 원에서 4억 원으로 줄었고,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 총량도 25% 축소됐다. 전세는 불안해지고, 매매는 규제로 막힌 가운데 정책대출까지 줄어드니 무주택 실수요자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진 셈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다. 취지는 '과열 억제'지만, 정작 보호가 필요한 무주택 청년·신혼부부가 정책 설계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수요 억제와 함께 실수요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정책대출 소득 기준을 현실에 맞게 완화하자. 생애최초·신혼부부 대상 금리 우대 확대, 축소된 대출 한도·총량 조정, 예외적 대출·거주 요건 적용, 임대 공급 확대와 임차인 보호 대책 등도 필요하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이슈&인사이트] 건설안전을 뒤틀리게 할 건설안전특별법안 재고해야

최근 행정부는 국회의 힘을 빌려 엉성한 안전법을 손쉽게 통과시키기 위해 청부입법을 남발하고 있다. 지난 9월 재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도 국토교통부의 청부입법이라는 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심각한 건 함량 미달의 법이 걸러지지 않고 졸속으로 통과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특별법의 왕국이라 할 만큼 형사특별법이 기형적으로 많이 제정돼 있어 법체계가 뒤틀려져 있다. 건설안전특별법도 가뜩이나 난마처럼 꼬여 있는 건설안전관계법을 더욱 착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혼란이 극심한 마당에 건설안전특별법까지 제정된다면 건설현장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태에 빠질 것 같다. 대형건설사는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재해 예방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중소건설사는 안전조치에 아예 체념하는 방향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싶다. 건설안전특별법안은 겉으로는 건설공사 참여자별로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업계를 살리기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조악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첫째,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과 중복되거나 상충되는 내용이 상당수 규정돼 있다. 안전관리조직, 안전관리, 안전교육 등에 있어 내용적으로 중복되는 것도 문제일 뿐만 아니라, 법 간에 의무주체가 상이하게 규정돼 있어 충돌이 심한 상태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길이 없다.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복점검, 자의적 법집행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둘째, 강한 형벌이 수반되는데도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 규정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안전관리", “적정한 기간과 비용", “안전관리 역량"과 같이 전문가조차도 애매하고 모호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개념이 다수 있다. 이런 법이 수범자에게 행위규범으로 기능할 리 없는 만큼 재해 예방은 기대난망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불명확한 형벌규정을 통해 무너진다는 점에서 이런 규정들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셋째, 안전원리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하청 근로자의 재해 예방을 위해 원청에게만 안전관리조직의 구축, 안전교육 등의 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하청 근로자의 재해 예방을 위한 기본적 안전조치 의무를 하청 근로자와 근로관계에 있는 하청에겐 부과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재해 예방에 실효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넷째, 발주자의 책임을 실현할 수단과 구조가 턱없이 부족하다. 안전자문사, 감리자와의 책임관계가 모호해 발주자는 사실상 책임에서 비켜나 있고 감리자가 책임을 떠안는 폐습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안전자문사와 감리자의 역할이 중복되기도 한다. 공사규모, 사업자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발주자에게 의무를 부과하여 이행의 현실성에도 문제가 있다. 법안이 졸속으로 입안되었다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섯째, 처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동일한 사항에 대하여 형벌,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과태료를 이중적으로 제재하는 규정조차 발견된다. 가히 '기승전-처벌'이라 할 만한다. 실효적인 예방기준을 만드는 일은 등한시하고 안이하게 처벌을 최우선으로 삼는 제재만능주의에 함몰돼 있다. 재해를 줄이려면 '묻지마' 규제를 쏟아내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안전원리를 훼손하고 실효성을 무너뜨리는 입법은 금물이다. 아무리 규제와 제재를 강화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으면 재해를 줄이기는커녕 되레 조장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일명 '김용균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를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안전을 얼마나 더 망가뜨려야 깨달을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우를 재차 범하는 일이 없기를 간곡히 바란다. 정진우

[EE칼럼] 다시 생각해 보는 지속가능발전

우리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급변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2018년 대비 2035년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53~61% 범위로 정했다. COP30에서 한국은 탈탄소 클럽에 가입했다. 2040년까지 탈석탄을 마쳐야 한다. 세계 5대 석탄 수입국 중 처음이며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가동 중인 61기 석탄발전소 중 40기를 2038년까지 폐지하려고 한다. 이제 나머지 21기도 2040년까지 조기 폐쇄한다는 것이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이러한 석탄발전소 폐지 계획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초반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지속가능발전은 유엔 산하 국제기구 '환경과 개발에 대한 세계위원회(일명 브룬트란트 위원회)'가 1987년 유엔 총회에서 발표한 '우리 모두의 미래'라는 보고서 제2장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지속가능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당면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해결해 나가는 발전방식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보고서는 '필요'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가난의 극복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과 사회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이란 단어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는 가장 핵심적인 표어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전문가가 이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를 제기하였다. 20년 전인 2005년에 학술지 '환경(Environment)'에 “지속가능발전이란 무엇인가?"란 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논문은 1987년 이후 그때까지 여러 분야에서 인용된 이 단어의 의미와 활용 그리고 구체적 논의에 대해 방대한 문헌을 조사하였다. 이 논문은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은 환경 잡지, 872만 개 웹페이지의 대표적인 타이틀 개념으로 인용되었고 수많은 프로그램, 장소, 기관의 목표로 쓰였으며, 문장을 아름답게 끝맺는 용어로 손쉽게 사용되었으나 그 정의는 '창의적'으로 모호하다."고 평하고 있다. 그만큼 지속가능발전이란 말은 인용하기에 가장 그럴싸한 단어이지만 그 내용은 구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에너지전환 논의가 이루어져 국가적 목표를 제시하기로 2015년 파리협정이 타결되었다. 여기에 2018년 IPCC 보고서가 경각심을 제기한 이래로 1.5℃로 기온상승을 제한하자는 새로운 목표가 제시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가 NDC를 공격적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COVID-19가 불러온 세계적인 불경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타난 유럽과 전 세계의 에너지 가격 상승은 '환경'보다 '성장'에 대한 관심을 불러들였다. 여기에 두 번째 등장한 트럼프는 취임 후 즉시 파리협정에서 탈퇴하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공조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시장 미국이 사실상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전쟁을 불붙이는 바람에 각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해가 더 시급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환경론자, 경제학자, 정치가, 사업가들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이론과 정치적 슬로건과 상품을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으로 장식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이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어려운 목표를 쉽게 포장한 말이다.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을 지키자는 말이면서 현실성과 당위성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의미이다.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당장 놓지 말아야 할 운전대에 집중하면서도 내일까지 가야 할 목적지를 내비에 잘 찍어놔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찍어 놓은 목적지가 지도상에 존재하는지, 거기에까지 이르는 길이 있는지, 우리가 운전하는 차량으로 갈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지속가능발전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우리 인류에 대한 그리고 이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아주 제한된 정보와 불확실성 위에 얹혀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처음 가보는 길이다. 아직 가본 나라가 없다. 조성봉

[기자의 눈] 소상공인 정책 엇박자 줄이려면

“중소기업 정책은 그나마 규모별, 업종별로 세분화가 돼 있어요. 가령 스마트공장 지원사업만 봐도 고도화 수준에 따라 지원 수준을 달리하고 있고, 업종별로도 카테고리가 나뉘어져 있죠. 그런데 소상공인은 그냥 소상공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정책의 디테일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소상공인 성장정책 토론회'에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정책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업종과 규모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보편적 지원'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책의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는 업계 주문은 결국은 새로 신설된 소상공인 전담 차관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소상공인 790만. 이 안에는 식당을 하는 소상공인도 있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도 있으며, 도매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도 있다. 소상공인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여있지만, 각 업종이 처한 특수성과 애로사항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음식점업은 원재료 가격 변동에 민감하고, 배달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들에게는 배달 수수료 부담완화, 원자재 공동구매 플랫폼 지원 등이 시급하다. 반면 도소매업은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심화와 재고관리 문제, 오프라인 고객 유치 감소 등이 당면과제다. 온라인 판로 지원, 스마트 재고관리 시스템 보급, 지역 기반의 상권 공동 마케팅 활성화와 같은 정책이 절실하다. 업종별 지원에 있어서도 '성장'이냐 '보호'냐를 따져야 한다. 일부 음식점업 종사자는 성장을 곧 '프랜차이즈화(化)'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맹점 관리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확대한다면 결국 또 다른 소상공인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유통사의 PB 브랜드는 소비자의 편익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제품을 개발한 기업들이 자기 브랜드를 가질 수 없고 독자적인 판로개척도 어렵게 된다. 정책의 디테일을 살릴 묘책은 딱 두 곳에 있다. 현장과 데이터다. 아직까지 소상공인 관련 데이터는 매우 제한적인 실정지만 그나마 중소기업중앙회가 노란우산 데이터를 활용한 소기업소상공인 정책지표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새로 신설된 소상공인 컨트롤타워가 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해 소상공인 성장과 생존을 위한 전문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단독인터뷰] 정원오 “차기 서울시장은 행정가가…오세훈, 너무 한가해”

내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정원오(55) 서울 성동구청장이 지난 17일 에너지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고민 중"이라며 실제 출마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첫번째 과제인 당내 경선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뚫겠다는 각오까지 밝혔다. 정 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민선 6기부터 내리 3선을 역임했다. 12년간 현장 중심의 세심한 소통 행정과 스마트 버스 쉼터·횡단보도 바닥 신호등 반짝이는 아이디어·기획으로 주민들로부터 90%가 넘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성남시장 출신 '행정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던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도 “일 잘하는 구청장"으로 인정받아 여권 내에서 '리틀 이재명'으로 떠오르고 있을 정도다. 현역 다선 국회의원이나 유명인사가 아닌 사실상 '정치신인'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여당 후보군 중 선호도 1~2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만약 정 구청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김태호·김두관 전 경남지사, 이 대통령에 이어 사상 4번째로 기초단체장 출신이 광역단체장이 된 사례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도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등 지방자치단체 경험이 바탕이 돼 실질적 변화를 이끄는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며 “다음 서울시장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출마 여부 질문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만약 출마한다면 기존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과 출마 관련 소통을 했냐는 질문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인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선 “너무 한가하다. 시민들은 매일매일이 경쟁의 지옥이고 전쟁터 같은 삶을 사는데, 서울시는 서울링이나 한강버스 같은 외형적 성과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주민들의 지지율이 90%가 넘는다. 주민들과의 상시 소통(24시간 문자)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나? ▲ 중요한 건 이걸 민원이 아니라 정책 아이디어의 보고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문자를 통해 현재 주민들의 생각과 요구를 파악할 수 있다. 2018년부터 문자 민원 전용 휴대전화 번호를 모든 주민에게 공개했는데, 하루 평균 30~40건의 문자가 온다. 2024년 한 해 약 2만7700건의 문자를 수신하고 처리했다. 문제를 해결한 후 주민들이 “고맙다"고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얼마 전 구정 여론조사에서 성동구민 10명 중 7명이 “생활 속 불편을 성동구청에 말하면 해결될 것 같다"고 답했다. '써보니 괜찮다', '써보니 다르다'는 경험이 결국 나에게도 큰 효능감이 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왕십리 도선동의 싱크홀 예방 사건이었다. 문자로 제보를 받고 확인했더니 그 아래 정말 큰 동공이 숨어 있었다.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그 제보 덕분에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2022년부터 매년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 장비를 투입해 공동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성동구 내 공동 수가 2022년 54개소에서 2024년 13개소로 크게 감소했다. - 재임 기간 자랑하고 싶은 성과는? ▲ '성수동의 눈부신 성장'을 이끈 정책이 특히 뜻깊다. 2014년 첫 부임 당시 성동구에서도 가장 낙후됐던 성수동은 이제 젊은 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이자 비즈니스 요충지로 거듭났다. 1970년대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신축·증개축 시에도 파격적인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역 정체성을 확립했다. 동시에 2015년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성수동의 경제적 가치는 2024년 기준 총 1조5497억원으로 2014년 대비 10년 만에 1조1133억원이 증가해 총 3.5배로 증가했다. 도시재생사업 예산 100억원으로 100배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 내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의향은? ▲ 연초와 지금의 생각에 차이가 많다. 처음엔 그냥 덕담으로 들었는데, 최근 8~9월쯤부터 그런 얘기가 부쩍 늘고 많아졌다. 최근 (여권 후보군 선호도 1~2위인)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나서는 이게 진짜로 고민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사람이 되겠다 싶었다. 여론조사 선두권인데 고민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는 주민들의 민원도 생겼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만약 출마하게 된다면 기존 방식대로 안 할 것 같다. 조직 동원하는 그런 방식의 선거 운동은 안 할 것이다. 지금 나를 지지하는 분들은 나의 방식을 좋아해서 지지하는 건데, 여기서 더 지지를 얻어가는 것도 내 방식대로 해야 한다. 모든 실패하는 것은 비슷한 이유로 실패하지만, 모든 성공하는 것은 각기 다른 이유로 성공한다. 나도 나만의 방식이 있어야 내 길을 가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 아니겠나. - 여권 내 1위를 달리는 이유는? ▲ 서울시 전체로 보면 나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일 잘하는 행정가 출신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같은 행정가 출신인 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얼마 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구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것을 구청에 얘기하면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70%가 넘었다. 구민들이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직접 경험해보니 쓸만하다고 평가해주시고 입소문 내주신 덕분에 이런 이야기도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치나 자리보다는 '역할'이 늘 더 중요했던 사람이다. 역할이란 내가 풀고자 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그에 맞는 자격을 내가 갖췄는지를 의미한다. 그동안도 구민들께 정성을 다하는 행정으로 임했듯이, 앞으로도 한결같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내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만약 더 넓은 곳에서 행정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재까지 다져온 역량과 실행력을 토대로 지금처럼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 구청장 경력만으로 광역단체장을 할 수 있겠나? ▲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이 내 출마 과정이 될 것이다. 출마를 하게 된다면 그런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할 것이고, 해소가 안 되면 당선이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구청장을 못한 사람이 시장을 잘할 수는 없다. 구청장을 잘한 사람이 시장을 잘할 가능성이 높다. 금붕어가 수족관에 있으면 아무리 커봐야 10cm지만, 강이나 큰 호수로 가면 30cm까지 자란다. 환경이 변화하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서울시장을 해본 사람만 계속 시장 해야 되냐,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잘했다고 시장 잘할 거냐, 똑같은 문제다. - 내년 서울시장 선거의 시대정신은? ▲ 일하는 서울시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서울시는 일을 안 했다. 주어진 일만 했지 시민의 삶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치열하게 하고 있는데 서울시만 안 하고 있다. 시민으로서 봤을 때 서울시는 굉장히 한가하다. 시민들은 매일매일이 경쟁의 지옥인데,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어떻게 하니, 서울링을 만드니, 광화문에 6.25 참전국 뭘 만드니 하면서 되게 한가해 보인다.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질 않는다. 교통은 20년 전 이명박 시장 때 해놓은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20년 동안 축적되고 누적된 어려움이 다 드러나고 있다. 마을버스, 시내버스, 지하철이 다 문제고 적자 투성이다. 올여름 지하철이 얼마나 더웠나. 혼잡한 지하철 출입구를 지날 때마다 위험을 느낀다. 시민들은 치열하게 사는데 서울시는 한가하다. 일하는 서울시, 정말 치열하게 일하고 시민의 삶과 함께하는 서울시가 필요하다. 단순히 외형적으로 보이는 성과보다 주민들의 일상에서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책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시민들이 직접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서울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 오세훈 현 시장이 유력한 대항마인데. 생각보다 비판의 강도가 약하다. ▲ 아직 출마하지 않았잖냐(웃음). 출마를 하게 되면 세게 하겠다. 근데 지금은 출마도 하지 않고 현재 구청장인데, 정치적으로 세게 얘기하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된다. 무능하다, 사익 추구만 한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는 그렇게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비판을 하고 싶지 않다. 정확한 팩트를 갖고 얘기를 나누고 대안을 갖고 얘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 방식대로 할 것이다. - 이 대통령도 일 잘하는 구청장이라고 칭찬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 70%가 동의하고 30%가 반대하더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 과정에 최대한의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게 내 행정철학이다. 반대를 최소화하고 만장일치에 가깝도록 최대한의 동의를 얻고자 노력했다. 30년간 주민 숙원이었던 '금호동 장터길 확장'도 처음엔 '설마 되겠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전문가들을 계속 만나고 시청 공무원들에게 물어보며 예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냈다. 건물주분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시간을 거쳐 장터길 확장의 꿈을 이뤘다. 그 밖에도 1977년 공장 가동 이래 소음, 먼지, 교통체증 등으로 주민 생활에 큰 불편을 안겼던 '삼표레미콘 공장을 약 45년 만에 철거'하고,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던 'GTX-C노선의 왕십리역 신설'도 주민과의 약속을 지킨 대표적인 사업이다. 함께 힘을 모아준 주민들에게 감사한다. 성수동 도시재생은 낙후된 공장지대를 창의와 혁신의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해관계 조율이 필요했지만, 결국 주민·기업·전문가가 함께하는 상생 모델로 완성했다. '성공버스' 역시 마을버스 업계와 수차례 협의를 거치면서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현재 교통 사각지대를 메우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며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마을버스 승차 인원도 7% 증가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결국 '행정가형 리더십'은 단순히 정책을 집행하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고 갈등을 조율하며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 다음 서울시장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가 되어야 한다고 보나? ▲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광역이든 기초이든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은 도시 구성원의 행복, 안전, 삶의 질 향상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정책들이 펼쳐져야 한다. 정치적인 자리 다툼보다는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도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국회의원을 거쳐 지금은 국가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가 되셨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의 행정 경험들이 바탕이 되었기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적 비교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과 주민을 위해 얼마나 성실히, 또 책임 있게 일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 '서울의 맘다니'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정원오식 진보'는 어떤 형태인가? ▲뉴욕 맘다니 시장과는 비슷한 부분도 있겠지만 차이점이 더 커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시민들의 삶의 현장, 시민들의 의견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비슷한 점이 있다. 나 또한 주민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12년간 일해온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고, 소통이 정책의 보고라는 생각으로 구민들의 의견을 가장 가깝게 경청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현장'과 '소통'이다. 현장에서 주민의 삶을 직접 보고 듣고, 그들의 불편과 요구를 가장 먼저 정책의 언어로 옮겨내는 것. 그리고 소통을 통해 정책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며, 잘못된 부분은 바로 고치는 유연함을 갖는 것이 진정한 진보라고 믿는다. 진보는 주민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그 작은 변화를 모아 모두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앞으로도 현장을 가장 먼저 살피고, 주민의 목소리를 가장 깊이 들으며, 모든 정책을 펼쳐나가고자 한다. - 이 대통령과 (출마 문제에 대해) 논의해보셨나? ▲ 노코멘트 하겠다(웃음). -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동산 정책은 가장 핫한 이슈가 될 것이다. ▲ 서울시뿐 아니라 자치구까지 전방위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지난달 국토교통부 장관이 성수1구역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정비사업 인허가 절차 개선을 건의했다. 현재 서울시 내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1054곳 중 1000세대 미만 중소규모 사업이 839곳으로 79.6%를 차지한다. 하지만 공급 세대 수는 22만8591세대로 전체의 27.9%에 불과하다. 반면 1000세대 이상 대규모 사업은 215곳으로 20%에 불과하지만 공급 세대 수는 58만7465세대로 72.1%에 이른다. 정비사업 규모가 다름에도 서울시 단일 창구 체계에서 동일한 절차를 밟아 중소규모 사업이 신속하게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8조 제1항을 개정해 정비구역 지정권자에 자치구 구청장을 포함해야 한다. 1000세대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선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에 위임하면 주택 공급 속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논란은? ▲ 사실 종묘와 세운4구역 문제는 아무런 갈등 없이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었는데, 서울시가 불필요한 갈등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2009년에도 오세훈 시장이었는데, 서울시가 건물 최고 높이를 올리려 했지만 문화재청에서 재차 반려했다. 오랜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2014년 높이 70m로 확정 고시됐다. 이후 이런 합의가 유지되고 사업이 진행돼 이주와 철거까지 완료됐고, 현재는 착공만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돌연 높이와 용적률을 올리겠다고 선포하면서 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지금의 문제가 발생했다. 건물 높이를 두 배로 올려주면 토지 소유자들의 개발이익은 크게 올라가지만, 세계유산 종묘의 문화적·경제적 가치는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재개발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종묘가 가진 세계유산의 가치가 과연 세운4구역에 최대 145m 높이의 고층 빌딩을 짓는 것보다 적은 이익인지 살펴보고,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찾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제시했다. 만약 개발을 밀어붙여서 종묘가 세계유산 지위를 박탈당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현재 상황은 시장 혼자 결정할 것이 아니라 유네스코의 전문적인 평가와 시민들의 합의를 통해 풀어가야 할 문제다. - 명태균 게이트 의혹이 내년 선거에 영향을 줄까? ▲ 명태균 씨를 신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검찰의 기소 여부를 봐야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데, 서로 주장이 팽팽하지 않나. 오세훈을 신뢰하느냐 명태균을 신뢰하느냐는 참 어려운 질문이다. 시민들도 누구를 더 신뢰하느냐 팽팽한 것 같다. 둘만이 아는 일을 어떻게 알겠나. 우리가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태균 씨가 꼭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믿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나. 드러나봐야 알겠지만 기소 여부는 좀 크다. 기소가 되면 기소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걸 보고 판단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재판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보통 정치인들은 기소되면 대략 타격이 있는 게 사실이다. - 기후·에너지 문제에 대한 비전은? ▲ 우리나라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친환경 에너지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을 기본으로 AI로 비롯한 엄청난 전력 수요를 동시에 풀어나가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의 범위를 어디까지 줄 것인가는 굉장히 실용적으로 생각해서 가야 한다. 도시에서는 불필요한 전력 소비를 줄이는 사업을 해야 한다. 도시에서 전력을 생산할 수는 없지 않나. 지금까지 에너지 절약 운동을 주로 해왔고, 건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으니까 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전등도 마찬가지고 태양광도 많이 깔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전력 생산이나 태양광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고 탄소 배출량도 줄여가서 궁극적으로 에너지 전력 생산을 높이는 것에 기여하는 게 필요하다. - 독자, 시민들에게 한마디. ▲ 2014년부터 12년째 성동구청장으로 성동구와 성동구민을 최우선으로 올인해서 일하다 보니 나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동안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구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왔던 노력들을 좋게 평가해주시고 입소문도 많이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구청장이자 그런 사람으로 나 정원오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든 함께할 여정이 있을 테니, 계속해서 따뜻한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1968년 8월 서울 출생으로 여수고, 서울시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한양대 도시대학원에서 도시개발경영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임종석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성동구 도시관리공단 상임이사 등을 지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성동구청장에 당선되며 지방행정가로 입문했다. 이어 2018년 재선, 2022년 3선에 성공했다. 2024년 5~6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자치분권 특보를 역임했다. 최근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거론되며 출마 여부를 고민 중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이슈&인사이트] 케데헌 열풍에 찬물 끼얹는 음주운전,  강력 처벌해야

필자는 외교관으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세계 곳곳의 유적과 명승지를 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역사가 오래되고 국토가 넓은 중국에서 10년 이상 근무하였기에 많이 볼 수 있었다. 동쪽 관문인 산하이관에서 시작하여 베이징의 빠다링 장성을 거쳐 서쪽 끝 지아위관에까지 연결된 만리장성은 볼 때 마다 그 장중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유튜브를 하면서 한양도성을 돌며 만리장성 못지않게 감탄하고 묘미를 느끼고 있다. 만리장성은 높은 산허리에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한양도성은 우리 생활공간 속에서 자리하고 있어 언제라도 갈 수 있다. 인왕산이나 북악산에 있는 도성 길은 조금 가파른 편이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여기저기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현존하는 왕궁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세계문화유산인 베이징 자금성도 크기에 압도된다. 그러나 경복궁도 규모가 상당하고 궁궐뿐만 아니라 연회를 베푸는 공간인 경회루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자금성보다 볼거리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창덕궁은 궁궐 건축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러져 있는 예술 공간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여러 물줄기가 합류하여 한양을 가로 흘렀던 청계천은 청정 도심하천으로 거듭나, 물고기와 백로, 왜가리, 청둥오리 등 철새들의 향연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서울에 와서 감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K-팝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 열풍으로 남산과 낙산, 북촌 한옥마을은 물론,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과 종묘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 난다. 과거에는 중국인, 청년층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서양인도 많고 노년층도 적지 않다. 외국인들의 감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문화의 원류를 알아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다. 금동 반가사유상 앞이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룰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이를 초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음주운전이다. 최근 서울 도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외국인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 모녀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방문하고 낙산 성곽길로 향하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어머니가 사망하고 딸이 중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효도여행중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강남구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30대 캐나다인 남성을 들이받아 치료 중 숨졌고, 같이 길을 건너던 20대 한국인 여성도 크게 다쳤다. 자국민이 한국을 여행하던 중에 음주운전 차량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언론들은 심각하게 다뤘다. 한국의 음주운전 사고는 일본의 6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일본도 과거에는 음주운전이 많았는데, 처벌 조항을 강화하니 줄어들었다고 한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가해자에게 최고 30년까지 유기징역이 가능하다. 한국도 2018년에 이른바 '윤창호법'이 통과되면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해졌으나, 대법원 양형 기준은 최고 징역 8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처벌 규정에 비해 실제 선고되는 형량이 턱없이 낮고 상당수는 집행유예에 그치고 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음주운전 재범률은 40%가 넘는다. '괜찮아'하면서 음주운전을 무슨 객기부리 듯이 하는 경향이 있다.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이고 집행유예가 아니라 실제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동승자는 물론 음주운전자에게 차량이나 술을 제공한 사람까지도 처벌을 강화하여 공동책임을 확실히 지워야 한다. 특히, 대만처럼 음주운전자 얼굴 공개 조치를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이강국

[기자의 눈] “규제 말고 지원”···산업계 호소가 절박한 이유

“한미 협상으로 25%였던 관세를 15%로 낮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0%였던 게 15%로 올라간 겁니다." 최근 만난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의 목소리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우리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요국이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며 무역 장벽을 쌓는 동시에 자국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물건을 팔아야 할 거점에서 포탄이 오간 지 수년이 지났다. 내수 경기가 여전히 차가운데 환율은 치솟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모래주머니'까지 차는 모양새다. 정부·국회가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거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골자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산업계 의견은 듣지 않고 있다. 화룡점정은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다.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NDC를 권고사항으로 정하는데 한국만 나 홀로 이를 법적 의무로 못 박기로 했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한 2035 NDC의 골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68.8∼75.3%, 산업 24.3∼31.0%, 수송 60.2∼62.8% 등 부문별로 목표치를 차등화했다. 기업들은 이를 '족쇄'로 인식하고 있다. 2035 NDC 48%를 '도전적인 상한선'이라고 호소했지만 정부가 해당 의견을 완전히 묵살해서다. 탄소 감축 기술·설비 투자를 늘리면 수익성 악화→투자여력 감소→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기료 인상에 따른 원자재 부담 증가도 불가피하다. 적자 해소를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철강·석유화학 업계 등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동차 산업은 지형도 자체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2035년까지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 중 무공해차 비중을 30~35%로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내연기관차 단종' 수준의 조치가 필요하다. 부품 산업은 붕괴가 우려된다. 국내 부품 업체의 95% 이상은 중소·중견기업이다. 이들 중 현재 전동화 차량 등 미래차 매출액 비중이 30% 미만인 업체가 86.5%에 달한다. 주요국들은 탄소중립보다는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에 방점을 찍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친환경 정책과 사실상 이별을 고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최근 204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하면서 원안보다 대폭 완화된 타협안을 채택했다. 중국은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무섭게 성장해나가고 있다. 5년 뒤 반도체를 포함한 우리나라 모든 산업·기업 경쟁력이 중국에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NDC 달성을 위해 규제보다 인센티브 중심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달라'는 산업계 호소가 유독 절박하게 들린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대기업 역대급 투자 이행되려면

“국내에 1000조 원 이상 투자" 대기업 총수들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한미 관세 협상 타결 후속 대책을 논의하며 우리 경제에 통 큰 선물을 선사했다. 천문학적 대미 투자로 국내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씻어내는 발표였다. 기업인들은 한미 관세 협상을 잘 마무리한 정부를 높이 평가했다. 미국의 막무가내 압박 속에서도 나름 선방했고, 그 결과 기업 부담을 줄여줬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외환시장 충격을 차단하기 위해 연간 200억 달러로 현금 투자를 제한했으나 대미 투자 총액인 3500억 달러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만약 협상이 장기화하거나 결렬됐다면 우리 기업들이 받을 타격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불확실성이 제거됐으니 한시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책 회의를 생중계한 동영상을 보면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의 표정이 밝았다. 하지만 기업들이 약속한 투자를 이행할지는 두고 볼 문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같은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본지를 포함해 거의 모든 매체는 '재계, 1000조 원 통 큰 투자'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그러나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적지 않은 사람은 기시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정권 초기 적게는 수조 원, 많게는 수백조 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하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3년 6개월 전에도 똑같은 기사를 봤다. 주연은 그대로이고 조연만 바뀌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 주연은 이재용 삼성 회장, 정의성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다. 투자 명분이 달라지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때는 '민간 주도 성장'에 부응한다는 점이 부각됐고, 지금은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우려되는 국내 투자 위축을 막겠다는 점이 강조됐다.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에 대한 약속을 지켰는지는 이재명 정부 후반이 돼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투자는 총수 의지만으로는 실행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업의 중장기 전략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국내도 해외 못지않은 투자 리스크가 상존한다. 무엇보다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낡은 규제와 비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이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과거 정부는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그렇게 하려는 의지는 빈약했고 그럴 역량은 더 부족했다. 실용과 능력을 내세우는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기업이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을 보면 회의적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기업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재명 정부에서는 기업 하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정부가 투자 여건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 투자는 실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정부에서 있었던 일이 되풀이 될 것이다. 낡은 규제를 걷어내고 구조 개혁을 통해 기업들이 마음껏 사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투자 약속은 빈말이 되고 말 게 뻔하다. 다시 정권이 바뀌고 대기업 총수들이 또 통 큰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도돌이표'는 무한반복될 것이다. 물론 정부 책임만 있는 건 아니다. 대기업들도 정부 눈치를 보며 투자 계획을 급조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전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짝 바꿔 재탕한 부분도 눈에 띈다. 전반적인 투자 내용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일정과 금액은 외부인이 알기 어렵다. 영업 비밀이 포함돼 불가피한 점도 있을 것이다. 결국 기업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확인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이제 '덤앤더머'를 연상하게 만드는 정부와 기업의 '투자 발표 쇼'는 끝나야 한다. 성장률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근간인 대기업의 국내 투자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기업은 투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정부도 수시로 투자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이슈&인사이트] 정치적 상상력을 초월하는 현실 정치

투수이자 홈런 타자인 오타니 쇼헤이가 미국 메이저 리그 포스트시즌 4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탈삼진을 10개 하고 타석에서는 홈런을 무려 3개씩이나 날렸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까지 친 오타니의 활약은 영화라면 오히려 식상한 전개인데 실전이었기 때문에 더 만화 같이 느껴진다. 이날 승리로 다저스는 2025 포스트시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4연승으로 2년 연속 월드시리즈로 진출했다. 정치적 상상력을 초월하는 만화 같은 일이 세계 곳곳의 현실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의 대표 사례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에서는 여론에 밀려 사퇴했던 총리(세바스티엥 르코르뉘)가 나흘 만인 10월 10일 다시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9월 9일 총리로 임명되었는데 27일 만인 10월 6일 사임했었다. 그는 다시 의회에서 불신임 대상으로 전락했다. 2024년 8월 파리 올림픽 직후 총리에 오른 미셸 바르니에도 12월에 의회 불신임안 가결로 사퇴했다. 그 뒤를 이은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도 2025년 2월 예산안 갈등 당시 신임투표에서 기사회생했다가 7개월 만에 또다시 신임 투표로 도전을 받았다. 그 사이 10월 21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이 감옥에 구속되면서 5년 형기를 시작했다. 2025년 3월 프랑스 법원은 사르코지가 리비아 카다피 정권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선거자금에 사용했다고 5년형을 확정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9월 11일 감옥에 들어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은 27년 3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지지자를 선동해 의회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등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다. 2020년대에 쿠데타를 시도한 사례는 더 있다. 2021년 7월에 취임한 노동운동가 출신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전 대통령은 자신을 탄핵하려는 의회에 맞서 쿠데타를 준비하다가 반역죄로 체포되었다. 페루에서는 7년 동안 대통령을 벌써 5명씩이나 교체했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는 뇌물 수수로 탄핵 하루 전에 사임했고, 그 후임(마르틴 비스카라)은 뇌물수수로 탄핵되었으며, 그 후임(마누엘 메리노)은 격렬한 반정부 시위로 불과 5일 만에 사임했다. 그 후임(페드로 카스티요)의 다음인 디나 블루아르테 전 대통령도 거센 반정부 시위로 중도 퇴진했다. 다저스의 4연승도 아니고 페루에서는 4명의 전직 대통령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감옥에 수감된 기록이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의 바르바디요 교도소에는 2001년부터 5년간 재임한 알레한드로 톨레도, 오얀타 우말라(2011-2016년), 마르탄 비스카라(2018-2020년), 페드로 카스티요(2021-2022년)가 함께 수형 생활을 했다. 친위 쿠데타를 시도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는 카스티요를 제외하고 모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되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중남미에서 아직 사법처리된 대통령 사례가 없는 곳은 우루과이 정도로 꼽힌다. 우루과이는 지난해 영국 언론사(이코노미스트)의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15등을 받았다. 다른 대통령제 중남미 국가와 달리 우루과이에서는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에게 관용 차량이 제공되지 않고 관사 대신 평소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지난 9월에 공개된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기구(IDEA)의 세계 민주주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1년 사이 173개 국가 가운데 94개 국가에서 민주주의 수준이 악화된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도 그렇다. 정치적 불안정성을 기준으로 치면 한국이 프랑스와 비슷해 보이고 대통령의 반복된 탄핵과 감옥에 쿠데타를 비교하면 페루와 겹쳐 보인다. 소설보다 더 한 한국의 현실 정치, 정치적 상상이 더 빈곤해 보인다. 이준한

[EE칼럼] 기후변화협약의 정치와 과학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11월 10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를 이번 총회에서 공표하고 연내에 유엔에 제출할 계획이다.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확정된 2035 NDC는 온실가스를 2018년 7억4230만톤에서 53∼61% 감축하는 안이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8950만∼3억4890만톤이 된다. 지난 9월 유엔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에너지 장관인 크리스 라이트가 COP30이 “근본적으로 사기"라고 말했다. 미 연방정부의 이번 회의 불참과는 별개로 민주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뉴섬은 100명 이상의 대표단을 이끌며, 주정부가 여전히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섬은 미국 기후동맹에 속한 24명의 주지사 중 한 명이다. 미국 기후동맹은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을 대표하는 주들의 모임이다. 뉴섬은 이번 회의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모으며 유력한 2028년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회의에 미국이 불참한 것에 대해 학교 일진이 병가를 낸 것과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는 참석자들도 있다. 파리협정을 이끈 전 사무총장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는 미국의 불참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올해 회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영향과 중국, 인도 등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의 정상들도 불참함으로써 큰 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회의 결과와는 별개로 전세계 연구논문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후위기의 영향과 대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기구가 있다. 기후 회의의 논의를 과학적인 측면에서 지원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그것이다. IPCC가 1990년 발간한 제1차 평가보고서는 1992년 기후변화협약 채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제2차 보고서는 교토의정서 채택에 영향을 미쳤고, 2014년의 제5차 보고서는 2015년 파리협정을 이끌어냈다. 국제사회는 IPCC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감축목표, 적응전략, 재정투자 방향을 조정한다. 우리나라도 제5차 및 제6차 보고서를 반영하여 2050 탄소중립 선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재생에너지 확대 및 에너지효율화 정책 등을 수립했다. IPCC 보고서에서 강조한 에너지부문의 핵심 권고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전력부문의 탈탄소화, 산업․건물․수송 전반의 에너지효율화, 전기차․히트펌프 등을 통한 전기화 등이다. 한국은 전력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해 태양광,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IPCC 제6차 보고서는 태양광, 풍력의 비용은 크게 줄고 보급은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속도감 있는 탈탄소 전환을 추진하여 34GW 규모인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2030년까지 당초 목표인 78GW에서 100GW로 늘릴 계획이다. 에너지효율화 측면에서는 최근 발표한 제7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에 주요 내용이 담겨있다. 산업부문은 에너지 절약시설에 대한 투자 확대, 자발적 에너지효율 협약 확대, EERS 본격 시행을 통해 최종에너지 소비를 감축할 예정이다. 건물부문은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화, 데이터센터 효율화, 기기․설비 효율관리제 개편, 수송부문은 친환경차 보급 가속화, 내연기관차 연비기준 강화 등을 추진한다. 히트펌프를 중심으로 한 열산업의 전기화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였다. IPCC는 현재 제7차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7년에 단기체류 기후변화 원인물질(SLCF) 방법론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SLCF는 대기중에 짧은 기간(몇 시간에서 약 20년) 존재하면서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물질로서 질소산화물(NOx), 일산화탄소(CO), 비메테인휘발성유기화합물(NMVOCs), 이산화황(SO2), 암모니아(NH3), 검댕(BC) 및 유기 탄소(OC), 먼지(PM) 등 7종이 있다. SLCF는 기본적으로 대기오염물질로서 온실가스와 배출원이 동일한 경우가 많다. 질소산화물, 이산화황, 암모니아 등은 냉각효과를, 일산화탄소, 검댕, 유기 탄소 등은 온난화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의 모든 당사국은 IPCC 방법론 보고서를 따라 국가 인벤토리를 작성해야 한다. 2027년 SLCF 방법론 보고서가 승인되면 각국 정부는 이 기준에 따라 SLCF 배출량을 산정해야 하므로, 관련 연구와 IPCC 회의 참석 지원, 제도적 기반 마련, 배출원 파악, 데이터 확보 및 검증 절차 등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박성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