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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제4인뱅 예비인가 실패…끝이 아닌 시작

제4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장을 낸 4개 컨소시엄이 예비인가에서 모두 탈락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17일 정례회의를 열고 소호은행, 소소은행, 포도뱅크, AMZ뱅크 컨소시엄의 예비인가를 불허했다. 자금조달과 사업계획 실현가능성 등이 미흡하다고 판단해서다. 제4인터넷은행을 준비하던 컨소시엄들은 실패의 좌절을 겪어야 했지만, 이번 결과가 제4인터넷은행의 필요성마저 부정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컨소시엄들이 내걸었던 소상공인 특화 은행이나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중금리대출 전문 인터넷은행 등 금융소외층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여전하다. 소상공인이나 중저신용자들은 높은 대출 심사 문턱에 자금 조달이 쉽지 않고,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기존 은행들은 이들의 현실을 세밀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제4인터넷은행 컨소시엄들이 구상한 소상공인·취약층 전문은행은 은행 서비스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포용한다는 취지에서 의미 있는 시도인 점은 분명하다. 다만 업계에서는 새로운 인터넷은행 탄생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실패 가능성을 높게 예상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사업의 실현가능성과 리스크 관리 어려움 등에 컨소시엄들이 표방하는 은행이 성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처음 인터넷은행이 출범할 때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영업점이 없는 100% 비대면 은행을 소비자들이 과연 믿고 찾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했다. 지금 인터넷은행은 은행권의 메기로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신, 여신,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통 시중은행이 하지 못한 서비스를 도입하며 현재는 시중은행을 앞설 정도로 혁신성을 인정받고 있다. 당초 시중은행 과점을 깨기 위해 출발한 제4인터넷은행이지만, 새 정부에서는 금융소외층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포용금융'을 위한 새로운 은행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예비인가 불발은 실패의 끝이 아닌 도전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 컨소시엄들은 금융당국이 지적한 자금조달과 사업계획 실현가능성 등을 다시 정비하고 미비한 점은 보완해 은행 설립을 위한 안정성과 탄탄한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당국도 더 많은 도전자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시장을 독려하며, 새로운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시장에서도 회의보다는 기대감을, 비판보다는 응원을 보내며 금융의 변화 과정에 함께 하길 바란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EE칼럼] 두산에너빌리티, 380MW급 가스터빈 美 수출…기계공업 새 역사 썼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발전용 가스터빈 380MW급 2기를 미국에 수출하게 되었다. 가스터빈은 기계공업의 꽃이다. 가스터빈은 전 세계에서 미국, 독일, 일본, 이태리만 생산한다. 사실상 미국의 GE버노바, 독일의 지멘스에너지,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이 세계 가스터빈 시장을 분점하고 있다. 가스터빈 기술의 종주국인 미국에 역수출하게 된 것은 한국 기계공업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발전용 가스터빈은 제트엔진을 더 크게 만들어서 발전용으로 사용하는 기계라고 보면 된다. 가스라는 말이 앞에 붙지만 경유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제트엔진은 높은 고도에서 연료가 동결되므로 항공유(jet fuel)를 사용한다. 화력발전에 사용되는 터빈은 크게 스팀터빈과 가스터빈으로 나뉘는데 원자력발전소와 석탄발전소에서는 증기의 압력을 사용하는 스팀터빈을 사용하고 천연가스 발전소에서는 가스터빈을 사용한다. 가스터빈은 기계공업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개발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스팀터빈은 증기의 온도가 550~600℃ 수준이어서 금속재료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가스터빈은 압축된 공기와 천연가스가 폭발적으로 연소하면서 고온·고압의 배기가스로 터빈과 발전기를 돌리는데 그 온도가 무려 1,600℃ 이상 올라간다. 문제는 이 정도의 고열을 금속 소재가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고온을 견디는 가스터빈 블레이드의 소재와 블레이드 내부에 고온을 견딜 수 있도록 냉각장치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작한 가스터빈은 이와 같은 기술적 난관을 모두 돌파하고 여러 시험을 통과하여 검증된 결과이다. 기계공업의 최첨단 제품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였음을 이번의 수출계약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스터빈 제작은 한국 특유의 산학연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함께 이룬 결실이다. 정부는 2013년에 '발전용 고효율 대형가스터빈 개발'이라는 국책과제를 시작하였다. 이에는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한 발전 기자재 업체들 그리고 서부발전이 참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발전 기자재 업체들과 협력하여 고유 기술 확보에 성공했고 이를 토대로 만든 270MW급 한국형 가스터빈인 K-가스터빈을 서부발전의 김포열병합발전소에 2022년 4월에 설치했다. K-가스터빈은 무수한 정밀 시공과 여러 시험을 거쳐 2023년 3월 최초 점화에 성공했고 이후 연소조정시험과 출력변동시험, 비상정지시험 등 필수적인 운전시험과 법정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시운전 최종 관문인 240시간 연속 자동운전시험을 통과해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기자재 업체들의 눈부신 노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발전사업의 명운이 걸려있는 핵심 터빈과 발전기를 K-가스터빈으로 결정한 서부발전의 도움과 그 뒤에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정부의 노력은 한국의 산업발전사에 의미 있는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70MW에 이어 380MW급 가스터빈의 정격부하 성능시험을 마치고 출력과 효율은 물론 진동, 온도, 배기가스 등 각종 운전지표를 모두 만족하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급속 가동시험도 병행해서 이를 충족시켰다고 전해진다. 성공적인 380MW 가스터빈의 시험성적으로 서부발전을 비롯해 중부발전, 남부발전, 남동발전 등과 이미 주기기계약을 맺었다. 향후 두산에너빌리티는 415MW급 가스터빈 그리고 90MW급 소형 모델 나아가서 제트엔진까지 개발하여 굴지의 가스터빈 제작사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성공적인 가스터빈 수출은 AI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력수요의 급증과 이를 위한 대형 발전기 주문 러쉬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주요 가스터빈 제작사들에 대한 주문 물량은 4년 이후까지 밀려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때를 위해 그동안 노력해온 정부와 산학연의 협력이 없었으면 이와 같은 결실은 없었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조성봉

[이슈&인사이트] ICAO 이사국 선출, 항공 선도국 도약의 기회로

우리나라는 지난 9월 30일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42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총회에서 2026~2028년 임기의 이사국(파트 3)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이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우리 항공 위상의 반영이자, 192개 회원국을 상대로 치밀하게 선거 외교를 펼쳐온 정부의 성과다. ICAO 이사회는 급변하는 국제 항공 질서를 조정하고 기술표준을 제정하는, 말 그대로 '항공 외교의 중심 무대'다. 우리나라는 1952년 ICAO 가입 이후 기술협력을 발판으로 항공산업을 키워 왔다. 지금은 ICAO 정규예산 분담금 7위, 항공운송량 8위, 인천공항 국제승객 처리능력 3위라는 성과를 기록하며 항공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23년 우리 항공산업(연관 산업 포함) 규모는 780억 달러로 GDP의 4.6%를 차지하며, 약 12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팬데믹 이후 세계 항공수요는 빠르게 회복해 지난해 승객 수가 46억 명에 달했으며, 2050년에는 124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안전, 효율성,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국제항공의 과제는 한층 무거워지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항공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기여와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ICAO 이사국 파트 승격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의 파트 3 지위는 지역 대표성에 머무르고 있어 우리의 항공 능력과 기여도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3년마다 치열한 선거운동을 반복하며 외교적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다행히 시카고협약 개정안(2016년) 발효로 조만간 이사국 정원이 확대되어 파트 조정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의 상임이사국인 파트 1 또는 파트 2로 승격하기 위한 전략을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둘째, 정부 내 ICAO 전담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ICAO가 채택한 19개 부속서와 1만 2천 개이상의 기술표준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다. 그러나 이를 분석·시행할 전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 4월 '항공안전혁신방안'을 발표하며 항공 거버넌스 개편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제는 항공 안전과 행정 역량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ICAO 활동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개발도상국과의 항공 협력사업을 'K-항공' 브랜드로 발전시켜야 한다. 정부는 2001년 이후 140개국 3,500여 명의 항공청 공무원에게 교육·훈련을 제공해 왔다. 이는 ICAO의 핵심 가치인 “No Country Left Behind(모두를 위한 항공발전)"를 구현한 대표적 모범 사례다. 향후 급증하는 항공 인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 사업을 체계화하고, 지역·분야별 맞춤형 지원을 결합해 'K-항공'이라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넷째, ICAO 사무국 고위직 진출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인재의 고위직 진출은 전무하다. 항공 전문가 풀을 체계적으로 육성·관리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번 ICAO 이사국 선출은 단순한 지위 유지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다. 2050년 항공 탄소중립 실현, 선진항공모빌리티(AAM) 도입, 인공지능(AI) 활용 등 미래 항공의 거대한 도전을 슬기롭게 대처하며, 책임 있는 항공 선도국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국정감사와 권력분립의 충돌··· 헌정의 선을 그을 때

정치는 언제나 권력의 경계 위를 걷는다. 국정감사도 그중 하나다. 감사라는 이름 아래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필수 장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개입'과 '간섭'의 경계로 흐려진다. 13일 시작된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대법원장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놓고 충돌 논란을 빚는게 그 예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사법부를 감시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법원은 사법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다고 반발한다. 어느 쪽도 완전히 틀리지 않지만, 헌법이 말하는 삼권분립의 정신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완결되지 않는다. 국정감사는 헌법 제61조가 규정한 국회의 권한이다. 국정 전반에 대한 감사와 조사, 국민을 대신한 통제의 기능을 수행한다. 여당은 이를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권력을 감시한다"고 말하고, 야당은 “행정부뿐 아니라 사법부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에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법원 내 인사 문제나 특정 판결의 배경이 정치적 이해와 얽혀 있다는 의혹이 불거질 때, 국회의 '확인권'은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사법부라고 해서 성역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헌법이 규정한 권력분립은 단순히 권한의 분배가 아니라, 상호 간섭을 금지하는 질서의 합의다. 법원은 법률의 해석과 판결을 통해 최종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다. 입법부가 그 내부 판단 구조를 증인석에서 따지기 시작하면, 그 순간 사법부의 독립은 흔들린다. 비슷한 논쟁은 해외에서도 있었다. 1950년대 미국 의회는 연방대법관 몇 명을 증인으로 소환하려 했다. 특정 판결이 의회의 입장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법무부와 법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반대했다. 결국 대법관들은 의회 출석을 거부했고, 이후 미국에서는 사법부 수장을 청문회나 감사 자리에 세운 전례가 사라졌다. 대신, 연방대법원은 '윤리 보고서'와 '행정 투명성 문건'을 매년 의회에 제출하면서, 제도적으로 설명 책임을 다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접 심문 대신 제도적 투명성으로 신뢰를 회복한 것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연방헌법재판소의 소장이나 판사들은 국회 청문회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사법평의회와 헌법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법원 행정이 통제된다. 프랑스에서는 아예 사법부에 대한 국정감사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는 모두 '견제는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통해 권력분립을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만든다. 우리의 경우, 국회가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부르려는 시도는 헌법상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헌정의 역사에서 “할 수 있다"가 곧 “해야 한다"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절제가 있어야 지속된다. 여당은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국민 여론을 배경으로, 사법권을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반면 야당은 “정권이 사법부를 길들이려 한다"고 반발하며, 대법원장의 출석은 '정치적 압박'으로 본다. 결국 한쪽은 투명성을, 다른 한쪽은 독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문제는 이 논쟁의 밑바닥에 '사법 불신'이라는 공통된 뿌리가 있다는 대목이다. 정치가 법원을 신뢰하지 못하고, 국민이 판결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견제와 개입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진다. 국회가 대법원장을 불러 세워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신뢰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법부가 정치의 무대에 서는 순간, 재판의 권위는 정치적 해석에 잠식된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88년, 제5공화국 청문회 당시 사법부의 일부 인사들이 정치적 책임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대법원장 출석 요구를 끝내 철회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사법부를 국회의 증인석에 세우는 순간, 권력분립의 마지막 선이 무너진다."그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한국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헌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재판의 투명성,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 판사 인사제도의 폐쇄성 등은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을 고치기 위한 방식이 '정치적 청문회'가 되어선 안 된다. 미국처럼, 사법부가 스스로 국민 앞에 행정 보고를 제출하고, 윤리 감시 제도를 강화하는 방식이 보다 지속 가능하다. 국정감사와 권력분립의 충돌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국회가 사법부를 감시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사법부도 정치로부터 독립할 권리가 있다. 양쪽 모두 헌법의 일부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이 요구하는 것은 '모두의 권리'보다 '각자의 절제'다. 견제는 필요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개입은 유혹적이지만, 헌정의 질서는 그것을 금한다. 민주주의의 품격은 힘을 어떻게 쓰느냐보다, 어디서 멈추느냐로 판가름난다. 국정감사는 감시의 눈이지만, 그 눈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헌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사법부가 독립을 잃는 순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도 함께 흔들린다. 오늘의 논란은 단지 대법원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헌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다. 견제의 힘과 절제의 미학, 그 중용의 지점이 지금은 어딘지 정확히 알 수없지만 모두의 노력과 연구,시행착오를 통하면 적절한 지점은 반드시 나올것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민주주의는 자란다.

[기자의 눈] 카카오 업데이트 대란, 금융사에 주는 교훈

카카오가 15년 만에 야심차게 카카오톡 개편을 단행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업데이트 이후 친구목록에는 별로 친하지 않은 지인들의 프로필 변동 내역이 크게 표시됐고, 화면에 광고가 표시되는 비중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이용자들의 주된 반응이다. 카카오톡을 두고 이용자들의 비판과 원성이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자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최근 주주서한에서 친구 목록을 재노출하고, 피드 형태는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4분기 중 별도 메뉴로 선보이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정 대표는 “사용자의 피드백을 더 면밀히 듣고 소통하며, 개선이 필요한 영역은 적극 대응하겠다"는 식의 반성문도 내놨다. 그러나 정 대표가 주주서한을 내놓는 현 시기에도 카카오톡 이용자들의 불편은 현재진행형이다. 홍민택 카카오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소셜 확장과 메신저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이용자들의 실제 니즈와 괴리가 상당하다. 카카오가 처음부터 소비자의 목소리를 들을 의지조차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주주들도 카톡 업데이트로 된서리를 맞았다. 카카오가 지난달 23일 카카오톡 개편안을 공개하기 직전 6만6400원이었던 주가는 이달 12일 6만100원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정 대표가 주주서한을 발표한 13일에도 카카오 주가는 3% 넘게 하락했다. 한때(2021년 7월 9일) 카카오 주가가 16만500원까지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주가는 가히 처참한 수준이다. 카카오는 카톡에 따라붙던 '국민 메신저'라는 타이틀을 자만했고, 결국 이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카카오가 이번 업데이트를 이전 상태로 되돌린다고 해도, 고객과 주주들에게 남긴 상처는 결코 치유될 수 없다. 카카오톡 업데이트 발표 직전에는 롯데카드에 대규모 해킹 사고가 있었다. 롯데카드는 해킹사고로 무려 297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했다. 롯데카드는 조좌진 대표가 지난달 18일 대국민 사과를 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카드 재발급, 비밀번호 변경, 카드 정지 및 해지 등 뒷수습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두 회사의 흑역사는 금융사에도 큰 교훈을 남긴다. 금융소비자, 고객 보호가 곧 실적, 주주가치 제고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고객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감에 따라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강행한다면, 금융사가 쌓아올린 주주가치가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이후 연일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금융사는 이 원장의 메시지를 흔한 '잔소리'로 흘리지 말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객 불편사항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고객 목소리에 대한 피드백 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해킹이나 보안 시스템도 계속해서 보완해야 한다. 국내 금융권에, 카카오의 흑역사는 부디 남의 일이어야만 한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이슈&인사이트] 한미 관세협약은 트럼프 치적 과시용, 경제 을사늑약으로 귀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 달러와 관련해 '선불'이라고 발언함으로써 양국 간 관세 협상 전망은 한층 어두워졌다. 특히, 미국측이 한국측 요구조건인 통화스와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사실상 타결하기가 어려워졌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타결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측 요구에 대해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라고 선을 그었다. 3500억달러는 한국의 최근 5년 치 전 세계 해외직접투자(FDI) 금액보다 클 뿐만 아니라 한국 외화보유고의 84%가 넘는 금액이다. 이 정도로 막대한 금액을 보증, 대출 등을 거의 동원하지 않으면서 단기에 현금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트럼프는 한국은 부자 나라라고 하면서 일본처럼 빨리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5,500억 달러 투자에 합의한 일본은 기축통화국이고 외환보유고가 한국 보다 훨씬 많을 뿐더러 해외에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트럼프는 당초 중국에 대한 관세전쟁을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강력 대응하자 관세부과 유예 조치를 취하면서 원래 공언했던 싸움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대신 EU, 일본, 한국 등 동맹국을 상대로 팔을 비틀고 소위 '삥땅'을 뜯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사실 트럼프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관세부과로 소비자물가는 오르고 있어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그러자 관세 수입을 재원으로 활용해서 이른바 '배당금(Dividend)' 형태로 국민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사상 최대로서 37조 달러를 넘어선 상황이다.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지속되고 있고, 이민자 단속을 강행하면서 시위대와의 충돌도 격화되고 있다. 급기야 국경순찰대가 시위대 여성에게 총격을 가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시카고에 주방위군 병력 배치를 승인했다. 트럼프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엉망진창 속으로 빠뜨리고 미국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폭탄 정책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만 하고 미국의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트럼프가 압박을 가한다 해도 트럼프의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환율이 1400원을 넘고 있는데, 만약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양보하면 막대한 현금이 단기간에 빠져나가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실물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게 된다. IMF 위기 같은 외환위기가 올 것이 뻔하고, 한국 경제는 고꾸라진다. 한미 관세협정에 사인하는 것은 경제적인 을사늑약에 사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이 합의하지 않으면 미국은 계속 압박할 것이나,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관세전쟁으로 미국내 소비자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어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불법이라고 판결하였다. 물론 연방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마구잡이식 관세폭탄 투하 모우멘텀은 상실했다. 중간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트럼프는 궁지에 몰릴 것이다. APEC 계기에 한미관세를 타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나 여기에 연연하면 안 된다. 정부는 치열하게 협상하되 사인하는 것은 가능한 미루고, 사인안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회는 트럼프 요구의 문제점과 부당성을 강하게 제기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가장 성공적인 협상이었다. 합의문을 작성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되었다"고 자화자찬하였는데, 이것은 잘못되었지만, 그 후 태세 전환하여 다행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관세 협상 합의문에 사인했으면, 탄핵 당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야당에서 반미선동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여야가릴 것이 없다. 오로지 국익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행동해야 한다. 이강국

[EE칼럼] 태양광은 ESS로 빛이 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하에서 미국은 세계의 지정학적 안정을 주도했고, 석유는 에너지 시장을 장악했다. 이 시기에 세계 각국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며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제무역이 큰 위협에 처해 있는 가운데,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국가의 에너지안보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각국은 에너지 자립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①태양광과 풍력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②전기차와 히트펌프를 통해 전기를 사용하며, ③배터리와 디지털화를 통해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전기화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전기 기술의 급속한 성장은 이미 세계 에너지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태양광 발전 용량은 3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고, 배터리 저장 용량도 2020년 이후 매년 거의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역사상 가장 저렴한 전기'라고 묘사한 태양광 발전은 10년 만에 가장 작은 발전원에서 가장 큰 발전원으로 성장했다. 2025년 상반기에는 지정학적 혼란, 경제적 불확실성, 기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발전이 전체 전력 수요 증가분의 83%를 충당하며, 점유율이 2021년 3.8%에서 2025년 상반기에 8.8%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태양광과 함께 풍력의 급격한 증가로 2025년 상반기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사상 처음으로 석탄 발전량을 추월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363TWh 증가한 5,072TWh를 기록한 반면, 석탄 발전량은 31TWh 감소한 4,896TWh를 기록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전력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32.7%에서 34.3%로 증가한 반면, 석탄은 34.2%에서 33.1%로 감소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병목 현상 중 하나는 전력망이다.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제로 남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최소 3,000GW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전력망 부족으로 대기 중인 상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수단으로 배터리 ESS가 주목받고 있다. 전력망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같은 대형 수요처를 짓기가 어렵다. 인근에 가스발전소를 지어 해결할 수도 있지만, 신규 가스발전소 건설 기간이 길어지고 있고, 건설 비용도 미국의 경우 2022년 이후 세 배로 증가하여 kW당 2,400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에 더해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성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같은 나라에 또 다른 위험 요인이다. 반면, 태양광과 배터리 ESS를 결합하면 현지에서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의 소노란 태양광 발전소(260MW)는 구글의 메사 데이터센터의 사용량에 맞춰 1GWh의 ESS 용량을 갖출 예정이다. 호주 리치몬드밸리 태양광 발전소(500MW)는 2.2GWh의 ESS로 아연 생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ESS 없이 태양광을 설치하면 낮 시간대에만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야간에는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배터리가 결합된 시스템은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과 비용 하락으로 이러한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최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업계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LFP 배터리는 2023년 전력망에 연결한 신규 배터리의 80%를 차지했다. 비용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배터리 가격이 40% 하락하여 전체 ESS 시스템(엔지니어링, 조달, 건설 및 전력망 연결 비용은 제외) 기준으로 kWh당 165달러라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우디의 두 차례 경매에서는 72달러까지 떨어졌다. 생산 규모와 효율이 향상되면 가격은 더욱 하락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전력망 연계 ESS 구축은 이제 시작 단계이다. 2024년에 169GWh가 설치되어, 2020년보다 17배 증가한 수치이기는 하지만, 2024년에 설치된 599GW의 태양광 발전에 비하면 매우 적은 규모이다. 우리나라도 2023년말 기준으로 태양광이 28GW 설치되어 있다. 전력수요가 적은 비수도권에 몰려있어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는데, 송전망이 부족해 출력제어(curtailment)가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태양광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을 크게 확대할 계획인데, 태양광 발전소 인근에 ESS를 설치하면 송전망 건설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태양광과 ESS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미래 에너지안보의 전략적 해법이다. 박성우

[김한성의 AI시대] 설명할 수 없는 권력: 트럼프와 AI의 교훈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세상이 복잡해 질수록 우리는 단순한 답을 원한다. 문제가 얽힐수록,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달콤해진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은 이 역설의 완벽한 증명이다. 91건의 형사 기소, 두 차례 탄핵, 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을 선동했던 인물이 2024년 대통령에 재선되어 돌아왔다. 전통적 정치 논리라면 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2025년 1월 취임 후 트럼프의 행보는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남발하며 마치 거짓말 탐지기의 바늘이 요동치듯 쏟아지는 서명으로 민주적 규범과 제도를 악화시키하고, 몇 개의 숫자로 관세를 무기화하면서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 착오인가, 아니면 구조적 문제인가?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200년을 되돌아 본다. 제1시대(1825~1890년: 볼 수 있는 권력)는 증기기관, 철도처럼 복잡했지만 투명했다. 공장장이 기계를 이해했고, 노동자도 그 작동원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권력의 위치도 공장, 의회, 국경 처럼 분명했다. 제2시대(1890~1970년: 믿어야 하는 권력)는 전기 그리드는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원자폭탄은 과학자만 이해했다. 지식이 실험실로 옮겨갔고, 국제연합, 대기업, 정부 부처가 복잡한 세상을 관리할 수 있었다. 제3시대(1970년대~지금: 설명할 수 없는 권력)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뉴스를 선택하고, AI가 대출과 채용을 판단한다. 개발자조차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권력이 어디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국경을 넘나들며 작동한다. 역사의 패턴은 명확하다. 기술이 한 단계씩 도약할 때마다 기존 제도는 뒤쳐진다. 국가, 노동조합, 전통 언론 등 20세기 제도들은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 맥락에서 트럼프 현상은 제3시대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다. 즉, 알고리즘이 복잡한 세상을 관리한다(정립, Thesis). 그러나 시민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낀다(반정립, Antithesis). 모순의 핵심은 효율성이 증가하는데 인간 주체성은 상실된다. 이것이 트럼프를 만들었다. 첫째, 미디어 변화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직접 수천만 명에게 말한다. 알고리즘은 진실보다 “참여"를 우선하며 그의 과격한 발언을 증폭시킨다. 둘째, 경제 변화다. 과거 공장 노동자는 동료들과 노조를 만들었지만, 지금 배달 라이더는 앱 속에서 혼자 일한다. 셋째, 현실의 파편화다. 알고리즘이 각자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며 공통의 사실 기반이 사라졌다. 트럼프의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이 모순을 제1시대로 돌아가 해결하려는 허구이다. 물론 19세기 방식으로 21세기 문제를 풀 수는 없다. 하지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할 때, 사람들은 과거의 단순함을 그리워하며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종합(Synthesis)은 다른 곳에 있다. 일고리즘의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이해 가능성을 회복하는 것,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이 상황에 빠뜨린 AI가 그 해법의 단서를 준다. AI 개발자들도 같은 문제와 씨름한다. AI가 너무 복잡해서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른다. 이것이 AI 정렬 문제(Alignment Problem)다. 똑똑한 AI가 엉뚱한 목표를 추구하면 재앙이다. 사회도 똑같다. 알고리즘이 똑똑해졌지만 우리와 '정렬'되지 않았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의 목표는 '참여 극대화'지만 우리의 목표는 '진실한 대화'다. 둘이 어긋나서 가짜뉴스가 퍼진다. AI 안전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설명 가능한 AI(XAI)다. AI에게 “왜?"라고 물을 수 있듯이, 유튜브 알고리즘도 “이 영상은 당신의 과거 시청 60%, 인기도 30%, 광고주 비용 10%로 추천됐다"고 설명해야 한다. 식품 회사가 영양 성분표를 붙이듯, 정보에도 '추천 성분표'를 붙이는 것이다. 둘째, 적대적 테스트다. AI 개발자가 일부러 AI를 속여보며 약점을 찾듯이, 정부도 새 정책 발표 전 비판 팀이 허점을 찾도록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인간 피드백 학습이다. AI가 인간 피드백을 받으며 학습하듯이, 무작위 추출된 시민 패널이 알고리즘을 감독하는 '알고리즘 배심원제'를 도입할 수 있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알고리즘 투명성을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소셜미디어나 검색엔진은 자신들의 추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공개해야 한다. 기업 기밀을 다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다. 식품 회사가 정확한 레시피는 숨겨도 영양 성분은 공개하듯, 핵심 원리는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를 공공 자산으로 봐야 한다. 지금은 거대 기업이 우리의 데이터를 독점한다. 대안이 있다. 데이터를 공공 신탁처럼 관리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 결정권을 갖는 방식이다. 셋째, AI 이해 능력을 기본 교육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학교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듯, 알고리즘 읽기도 가르쳐야 한다. 뉴스 피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추천 시스템에 어떤 편향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비판적으로 볼 것인지를 모든 학생이 배워야 한다. 증기기관이 사회계약을 다시 썼듯이,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쓰고 있다. 트럼프는 지나갈 것이다. 대통령 임기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를 가능하게 만든 구조적 문제—복잡한 기술과 낡은 제도 사이의 간극—는 우리가 메우지 않으면 계속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에 더 위험한 누군가가 올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미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는 점점 더 무력해지는 미래다. 다른 하나는 기술을 투명하게 만들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며, 인간의 능력을 진정으로 확장하는 미래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인류는 항상 새로운 도구에 맞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왔다. 증기기관 이후 노동법이 왔다. 원자폭탄 이후 국제연합이 왔다. 지금 인공지능 이후에도 무엇인가 올 것이다. 단, 우리가 그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한다면 말이다. 김한성

[기자의 눈] ‘저탄소 철강’ 연와정초식이 기다려지는 이유

철강사들이 제철소에서 고로를 세우거나 개·보수를 진행할 때 내화벽돌에 문구를 새기는 연와정초식(煉瓦定礎式)을 진행한다고 한다. 연와정초식은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고로 하단에 쌓는 연와(내화벽돌)을 주춧돌 삼아 제위치에 놓는' 행사다. 고로는 철광석과 코크스(석탄)를 녹여 쇳물을 만들기 위해 1500℃ 안팎의 고온 열을 견뎌야 하므로 내화벽돌이 필수다. 연와정초식은 포항제철 시절에도 있었다. 전남 광양의 포스코 광양제철소 홍보관에는 1970년대 포항제철소를 처음 세우는 과정에서 '혼(魂)'이라는 문구를 새긴 고로 내화벽돌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 경제 성장이 절실했던 만큼 사람들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기원하는 진심을 여러 문구로 벽돌에 담았을 것이다. 고로 속 혼이 담긴 내화벽돌은 한국이 제조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주춧돌이었다. 철강업계는 지금 또다른 절실함을 마주하고 있다.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7%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이 '탄소 다배출' 업종의 오명을 떼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국내 철강사들도 빠르면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수소로 철광석 산소를 떼어내는 수소환원제철 공정을 개발 중이고, 내년부터 정부와 포스코·현대제철이 실증에 나선다. 하지만, 국내 철강업계의 수소환원제철 공정 개발 단계는 첨단 수준이 아니다. 친환경을 무기로 탄소 무역장벽을 세운 유럽은 이미 생산설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이르면 내년 수소환원제철 생산 시설을 가동할 예정이다. 영국과 독일, 스페인 등 주요 국가에서는 조 단위의 지원금으로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자신감을 무기 삼아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근거로 수입 철강제품에 탄소 배출비용을 부과하는 무역 장벽을 세운다. 탄소배출 규제를 강화해 철강사들의 친환경 경쟁력을 일찍이 키워놓은 뒤 보호무역 기조에서 자신들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려는 속셈이다. 한국 철강사들이 이 벽을 넘어야 국내에서도 기간 산업으로서 핵심 공급망을 유지할 수 있다. 철강 불모지에 처음 제철소를 세울 때처럼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기술개발 지원이 절실하다. 친환경 전환은 생존의 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됐다. 이제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보호무역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철강사들이 생존을 위한 기술 개발 사투를 해나가고 있다. 철강산업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서 나아가 실행까지 이뤄져야 한다. 한국에서도 곧 '수소환원제철 연와정초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이슈&인사이트] 홈쇼핑의 답은 ‘신뢰 큐레이션’

유통은 간단한 수학으로 움직인다. 매출 = 고객 수 × 구매량 × 객단가. 문제는 모든 채널이 이 공식을 똑같이 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홈쇼핑의 해법도 기술 모방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대신 골라주는 신뢰'에서 찾아야 한다. 유통의 역사는 기술과 생활양식이 맞물릴 때 도약했다. 철도·전철이 사람을 실어 나르자 백화점은 역세권에서 '고객 수'를 극대화했다. 자동차와 전산 물류가 깔리자 대형마트·창고형 점포는 '구매량'을 키우며 성장했다. 오늘의 온라인은 택배 혁신과 추천 알고리즘으로 '객단가'와 '구매 편의'를 동시에 밀어 올린다. 업태마다 같은 공식을 서로 다른 축으로 풀어온 셈이다. 한때 홈쇼핑은 '집에서 편히, 설명을 들으며 사는' 혁신 채널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응은 단편적 모방에 그쳤다. 디지털 채널만 늘려 '고객 수'를 흉내 내고, 고가·대용량 편성으로 '객단가·구매량'을 억지로 끌어올리지만, 온라인·라이브커머스와의 정면 승부에서 차별성이 옅다. 결국 홈쇼핑이 팔아야 할 것은 배송 속도나 최저가가 아니라, 소비자의 '검증 피로'를 덜어주는 신뢰의 큐레이션이다. 핵심은 쇼호스트의 역할 재정의다. 쇼호스트는 단순 진행자가 아니라 구매 대리인(Proxy)이다. 가격 비교·품질 확인·위험 신호를 대신 봐 주고, 그 과정과 근거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글로벌 아트페어에서 이름난 갤러리 앞에 줄이 길듯, 큐레이터의 브랜드가 작품 가치를 증폭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다. 홈쇼핑도 '쇼호스트 브랜드화'를 통해 신뢰를 자산으로 축적해야 한다. 해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권한과 책임을 묶은 쇼호스트 모델. 상품 발굴·검증 권한을 부여하고, 반품률·재구매율·클레임률 지표를 성과보상과 직결하라. 방송을 잘했다는 주관평가 대신, 신뢰지표를 '현금화'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둘째, 품질·안전 검증 인프라의 전면 업그레이드. 원재료·공정·인증·A/S 체계를 사전에 점검하고, 방송 중에는 근거자료(시험성적서, 리콜 이력, 비교테스트)와 한계를 투명 공개하라. 신뢰는 '노출된 검증'에서 나온다. 셋째, 디지털과 사람의 결합. AI 추천·라이브·숏폼은 보조수단이다. 핵심 메시지는 사람(쇼호스트)의 큐레이션으로 전달하고, 디지털은 그 신뢰를 확산·재방문으로 전환한다. 특히 공영홈쇼핑의 과제는 더 명확하다. 대기업과 가격으로 싸울 이유가 없다. 대신 중소기업·소상공인 상품에 '신뢰의 필터'를 입혀 시장 진입비용을 낮추는 공공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방송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동일 카테고리에서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건강기능식품이라면 유효성 근거 레벨(무작위대조·관찰·기전), 원료 출처, 표시·광고 준수도 등을 카테고리 룰로 고정하고, 쇼호스트가 그 룰을 지키며 추천하는 방식이다. 규칙이 쌓일수록 소비자는 '그 채널은 믿고 본다'고 느낀다. 측정도 바꿔야 한다. 단기 매출 대신 △재구매율 △반품·클레임률 △신규고객 유입 중 추천 기반 비중 △방송 후 검색량·구독 증가 같은 신뢰 KPI를 보조지표가 아니라 주지표로 승격하라. 그래야 편성·소싱·보상 체계가 함께 움직인다. 공급자에게도 같은 신호를 줘야 한다. “과장 광고로 1회 매출을 내는 브랜드"가 아니라 “귀찮은 질문에도 답할 준비가 된 브랜드"가 방송 기회를 얻는 구조로 재설계하라. 결국 유통의 공식은 변하지 않는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어떤 축을, 어떤 무기로 극대화하느냐다. 홈쇼핑이 살 길은 '고객 수·구매량·객단가'의 기계적 확대가 아니다. 소비자가 기꺼이 시간을 맡기고 돈을 예치할 수 있을 만큼 검증을 대신해 주는 신뢰다. 쇼호스트를 큐레이터로, 방송을 '근거가 보이는 추천'으로 바꾸는 순간, 홈쇼핑은 다시 공식을 자기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실행은 복잡하지 않다. 모든 상품에 1페이지짜리 '팩트카드'를 의무화하고, 쇼호스트·제조사가 반품·클레임률에 연동해 리스크를 함께 지는 계약으로 바꾸면 된다. 나아가 분기마다 신뢰 KPI를 외부에 공시해 시장의 감시를 끌어들이면, 과장과 왜곡은 자연히 걸러진다. 그 결과 소비자는 '싸서'가 아니라 '믿어서' 사게 되고, 홈쇼핑은 다시 필요한 채널로 돌아올 수 있다.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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