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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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제정 늦어지는 AI 기본법, ‘망양보뢰’라도 해라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을 악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피해자 중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교생, 교사, 여군, 초등학생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내 사진도 이용된 건 아닌지'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연일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 기본법이 제정됐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까?'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AI 기본법)은 지난해 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2소위를 통과하면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상임위를 넘지 못한 채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해당 법안은 AI에 대한 개념과 산업 육성, 안전성 확보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특히 여야 간 이견이 거의 없었음에도 무의미한 정쟁만 반복하다가 폐기돼 아쉬움을 낳았다. 22대 국회 들어 경쟁적으로 법안 발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꽤 고무적이다. 이달 기준 국회에 발의된 AI 관련 법안은 10건, 딥페이크 관련 법안은 30여 건에 달한다. 여당은 AI 산업 육성과 기술 개발 지원, 야당은 신뢰성 및 윤리원칙 확립, 구체적인 관리체계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현재까지 발의된 주요 법안들의 목표와 실행 계획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공통적으로 산업 진흥과 신뢰성·윤리 원칙 확립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위험영역 AI의 개념과 범위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딥페이크와 같이 AI 기술을 악용해 허위 정보를 만드는 범죄는 포함되지 않아서다. 심지어 딥페이크에 대한 정의와 통제 영역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으로 쏟아져 나온 검은 시위자들이 가해자 처벌 강화를 요구했으나, 기준과 수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되는 건 이 때문이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발의된 AI 관련 법안들은 최근 과방위 법안소위 심사대에 올랐지만, 여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합의 처리는 불발됐다. 이후 2차례에 걸친 공청회를 통해 공감대 형성에 나섰으나, 국정감사 등 남은 일정을 고려하면 연내 제정은 어려울 전망이다. 결국 여야의 미적거림으로 인한 제도 공백이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사고, 파는 '괴물'을 키운 셈이다. 일찌감치 이 같은 기술 악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가 적잖았음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여야 법안 중 장점을 추출한 '엑기스 법안' 제정과 적절한 규제 방안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비판은 피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그거라도 해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선.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전기차 차주 눈총 받지 않는 사회 만들어야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되면서 일부 전기차 차주들이 억울한 차별을 겪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일부 업계 전문가들이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시 충전량 제한이 필요하다"는 낭설을 퍼뜨리면서 실제 차주들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비아는 지난달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QE 모델에 불이 붙으면서 시작됐다. 이 화재는 주차장에 있던 140여대의 자동차와 아파트의 배관을 모두 불태우며 수백명의 피해자를 남긴 사고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이후 업계에선 전기차는 100% 충전하면 화재 위험이 높아진다는 근거 없는 루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선 전기차는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고 화재 진압도 어려운 '시한폭탄'이고 전기차 차주는 '잠재적 방화범'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정도였다. 이를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이다. 특별한 기술적 근거도 없이 '전기차는 위험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며 소비자들에 공포심을 더욱 불어넣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선 전기차 100% 충전 제한 권고 등 어이없는 정책이 나왔고, 이에 영향을 받은 일부 아파트에선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기도 했다. 근본적인 예방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주들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완성차 제조사들이 나섰다. 과충전과 화재는 연관이 없다는 주장을 '기술적 근거'를 통해 소비자들을 이해시키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제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에게 보이는 '100%'라는 충전량은 일부 여유 용량을 제외한 수치다. 즉 100% 충전이 되도 제조사가 안전을 위해 남겨놓은 충전량이 충분히 남아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터리관리시스템(BMS)를 통해 충전량을 제어할 수 있으며 충전기를 꽂아두더라도 과충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행히 정부도 정책을 급히 수정했다. 지하주차장 주차 제한 권고를 풀고 스프링클러 등 화재 진압 장치 개선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작에 나왔어야 할 대책이 수만명의 전기차주들의 억울함을 거쳐 나오게 된 것이다. 정부와 관계자들의 무지한 발언으로 전기차 차주들은 이미 정신적 피해를 겪었다. 내 집에 내 차를 제대로 댈 수도 없었으며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사는 처지가 돼버렸다. 전기차 차주는 죄가 없다. 보조금을 퍼주며 전기차를 사도록 유도한 곳은 정부다. 돈 보태주면서 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사고가 터지니 소비자의 과충전 때문이며 위험하니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슬쩍 정책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더 나서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고 전기차 차주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인텔의 몰락, 삼성전자는 안녕하십니까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콜드 플레이'의 명곡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의 가사는 몰락한 왕이 화려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이는 과거 '외계인을 고문해서 신제품을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던 미국 종합 반도체 기업(IDC) 인텔의 모습과 판박이다. 인텔은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코어 시리즈를 출시하며 AMD를 압도하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당시 인텔은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설계 기술력을 자랑했다. 인텔은 PC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훨씬 많은 칩을 꾸준히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최신 제조 공정 경쟁에서 경쟁 우위를 다져나갈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고, '내 손 안의 PC'인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 시장이 급성장하는 동안 PC 시장은 정체기를 맞았고, 이와 동시에 인텔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텔에는 과거의 찬란했던 유산들이 있어 타사 칩을 위탁 생산할 기회가 있었다. ARM 명령어 셋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칩을 설계해 판매했더라면 여전히 시장 내 인텔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텔은 자체 설계한 x86 아키텍처 칩으로 모바일 시장에 뛰어드는 최악의 수를 뒀고, ARM 아키텍처 대비 성능과 전성비 면에서 모두 처참히 깨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인텔 제국을 확실히 나락으로 보내버린 6대 최고 경영자(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6년의 재임 기간 중 원가 절감을 통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며 2016년에는 전체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해고했다. 해고 인력 대부분은 연구·개발(R&D) 부서원이었고, 이들은 경쟁사로 이직해 인텔은 기술력 격차·규모의 경제 2개의 해자를 모두 상실했다. TSMC와 AMD는 엄청난 반사 이익을 보며 인텔을 제쳤다. 앞으로도 인텔의 미래는 밝지 않다. ARM 아키텍처가 PC 시장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퀄컴도 이를 기반으로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또 서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고,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AI 서버 영역에서도 인텔이 잘 만드는 중앙 처리 장치(CPU)가 아니라 그래픽 처리 장치(GPU)에 집중돼있다는 점도 악재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타사 칩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규모의 경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TSMC도 채택한 전략이어서 이제는 오히려 인텔이 넘어야 할 벽이 돼버렸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1.8나노(18A) 공정은 브로드컴의 반도체 제조 테스트에서 실패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인텔의 몰락이 삼성전자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첨단 기술 패권 다툼으로 번졌고, 삼성전자는 '칩4 동맹'의 질서 속에서도 줄타기를 하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 가운데 인공 지능(AI)·그래픽 처리·데이터 센터 등의 필수 요소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졌고, D램과 낸드 플래시 분야에서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과거의 삼성전자가 아니라는 비평도 쏟아진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해체한 HBM 전담 부서는 전영현 부회장이 부랴부랴 부활시키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격차'에서 '추격자'가 됐다는 말이 뼈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생존을 위해 혁신 기술 개발과 투자 확대에 있고, 무엇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변화 속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추진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로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 업계 최초로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기술을 도입했고, 3나노 공정에서 시장을 선도할 경쟁 우위를 확보해 TSMC에 열세인 상황 역전극을 모색하고 있다. 파운드리가 걸음마 단계라서 TSMC에 밀리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당연시 해서는 안 된다.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관료제에 가까운 인텔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려는 노력 조차 기울이지 않아 혁신과 멀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인텔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수첩] 플랫폼 1등에 따라붙는 ‘갑질 논란’

CJ올리브영과 무신사 두 기업은 각각 주력 분야인 화장품과 패션 플랫폼업계 1위로 평가받으며 압도적 시장영향력을 가졌다는 긍정적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에, 둘 다 '갑질 논란'이라는 부정적 교집합도 공유하고 있다. 입점업체에 갑질 혐의로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두 기업이 최근 나란히 뷰티 카테고리를 강화하면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6~8일 무신사가 운영한 '뷰티 페스타 인 성수'에 입점 예정이던 화장품 업체 40여 곳 중 10%가량이 돌연 참여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일각에선 올리브영이 해당 납품 브랜드 업체에 불참을 종용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공정위도 최근 국민신문고를 통해 올리브영이 여러 납품업체에 경쟁사 판촉 행사 불참을 압박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 때문에 올리브영은 지난 10일 공정위로부터 현장 조사를 받았다. 무신사도 올리브영과 유사한 혐의로 공정위의 칼날에 서 있다. 무신사가 서면 합의 없이 입점 브랜드 대상으로 경쟁 플랫폼으로 진출을 금지하고, 자사에 가격·재고를 관리받도록 한 행위로 지난달 26일 공정위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일단 두 회사 모두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올리브영·무신사의 불공정행위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회사가 가장 강조해 온 '상생 경영'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올리브영은 신진·중소기업 브랜드의 인큐베이터를 자처하는 만큼 입점을 통한 후광효과를 노리는 기업들의 기대감도 유독 높다. 무신사도 2016년 2000개에서 올해 8000여개까지 패션·뷰티 등 신진·중소 브랜드 위주로 빠르게 규모를 늘린 만큼 시장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불공정거래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국내 플랫폼업계 문화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일부 인디(독립) 브랜드들의 약진으로 해외 소비자들의 K-뷰티 진입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 이같은 불공정 시비는 K-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를 깎아먹는 요인이다. 서로 건전한 견제와 함께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 플랫폼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도(正道)'이다. 올리브영과 무신사가 리딩기업답게 중소 브랜드업체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보장하고, 신규시장 진입을 지원해 '상생과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눈] 상장사 합병과 분할, 당국 권한 강화 필요하다

국가는 조세채권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상 거래를 제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법상 부당행위 부인의 규정이다. 특수관계자가 낀 거래는 비정상 거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거래와 달리 특수관계자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일치할 가능성이 있다. 정상적으로 보기 힘든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합병, 분할, 감자 등의 자본거래도 제재하는 범위에 포함된다. 특수관계인 간 이해관계만 맞다면 합병 비율을 달리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에서는 국가는 국가의 조세채권뿐만 아니라 국민의 재산도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상장사일 때 특히 그렇다. 상장사에는 대주주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국내 기업은 대부분 대주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사의 충실 의무의 범위에 소액주주는 포함되지 않는다. 당연히 소액주주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의사 결정에서 배제될 개연성이 높다. 이는 합병, 분할 등 자본거래에서 구조적으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합병, 분할, 감자 등은 주주간 거래이기에 주주 사이의 이익과 손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방식은 이 같은 우려를 심화시켰다. 우리나라는 그간 시장 자율성을 인정했고, 기계적인 법정화된 평가방식만 지키면 됐다. 투자은행(IB)에서는 고객사인 대주주의 이익극대화를 모색한다. 위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또 대주주 측은 “오늘은 손해이지만, 내일은 이득이 될 것", “어떤 관점으로 본다면 오늘도 이득"과 같은 선전 문구도 활용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액주주들이 '온전히' 보호받을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주식매수청구권 제도는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시장실패'로 볼 수 있다. 대주주만의 정책으로 인해 소액주주들에게는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상태다. 시장 메커니즘은 IB, 커뮤니케이션 등과 같은 이유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 정부 실패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가 너무 장기화됐고, 구조적이다. 당국의 현재 한계를 고려하고 당국의 정성적인 평가를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잘못된 개입이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실패는 그만큼 심각해 보인다. 이대로 방치하면 매우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 지속가능항공유, 불붙은 인플레이션에 부어지는 기름

항공 운송 분야에서도 탄소중립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미국·유럽·일본 등에 이어 국내에서도 관련 정책이 수립되고 있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지속가능항공유(SAF) 확산 전략을 발표했다. 2027년부터 국내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편에 1% 가량의 SAF를 혼합하겠다는 것이다. SAF는 기존 항공유를 대체할 수 있는 액체 연료로, 유기물과 비식용 식물 등을 원료로 사용한다.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현실적인 솔루션으로도 꼽힌다. 대형 항공기 전동화는 배터리 무게가 부담되고, 수소 추진 방식은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SAF 사용시 최대 80%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 일반 항공유의 2~5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지난해 기준 대체율이 0.2%에 그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고가의 장비 등이 필요한 탓에 생산 비용도 높다. 정부는 SAF 1% 혼유시 국제선 노선 항공료가 1만원 이하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실제 항공권 가격을 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이미 일반적인 항공편 보다 이산화탄소 환산량이 10% 가량 적은 항공권의 가격이 몇 만원 가까이 높은 탓이다. 내년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루프트한자를 필두로 유럽 항공사들도 가격 인상에 나선다. 바이오 항공유 할당량 충족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향후 가격이 하락한다는 보장도 없다. 현재는 폐식용유 등을 원료로 SAF를 만드는 HEFA 공정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원료 확보가 어려워 생산량 확대가 쉽지 않은 탓이다. 탄소중립 정책 자체도 경쟁력 향상을 저해한다. 식물의 생장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도 각각의 단점이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로 만든 그린수소와 탄소포집(CCS) 기술로 확보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파워 투 리퀴드(PTL) 공정에서 생산되는 제품값은 화석연료의 8배에 달한다. 글로벌 전기요금이 상승세인 점도 고려해야 한다. 농림 부산물 및 생활폐기물을 비롯한 원료를 가열·분해해 생성한 합성가스 또는 같은 원료를 발효해 나온 알코올을 탄화수소로 바꾸는 솔루션은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다. 이같은 난관이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인위적으로 할당량만 높게 잡는 것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기업이 수익성 유지를 목적으로 판가를 끌어올리면 소비자들이 손해를 입고, 이를 토대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도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차량 전동화 정책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후퇴하는 사례를 교훈 삼아 항공유 분야에서도 지속가능한 해법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눈]HBM 경쟁이 만드는 ‘한국의 초격차’

한때 '초격차'라는 말로 대변되던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선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일시적 방심이 빚어낸 결과지만, 동시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변화다. HBM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미래 반도체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이후 꾸준히 투자를 이어왔고, 현재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9년 HBM 연구개발팀을 축소하는 오판을 내렸고, 이로 인해 기술 개발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위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두 기업의 경쟁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칩워'(Chip War)라 불리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HBM 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 큰 자산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HBM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가 과거의 '초격차' 시대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SK하이닉스도 쉽게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두 기업이 서로를 견제하며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초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결과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초격차'가 SK하이닉스와의 경쟁을 통해 '한국의 초격차'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변화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보조금 지급 등 기존에 없던 특별한 지원책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기다. 두 기업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때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서민 울리는 전셋값 고공행진, 공급 확보가 답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68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3.9% 상승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은 되려 9.96%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전셋값 상승세가 올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모습이다. 전셋값이 급등한 것은 전세사기의 여파가 크다. 속기 쉬운 빌라를 기피하고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반면 아파트 전세 공급은 부족하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년 전 3만1443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현재 2만7812건으로 11.54%나 줄었다. 업계에선 신규 입주물량 감소,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만기 영향 등이 겹치면서 전셋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114 자료를 보면 올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총 1만 8577가구로, 이 중 오는 11월 입주 예정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 2032가구)을 제외한 물량은 6545가구에 그친다. 정부도 치솟는 전셋값을 잡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공공이 주택을 매입한 뒤 전세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든든전세주택으로 2년간 1만6000가구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전세사기 여파로 민간임대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최근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방안도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방안이 효과를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 든든전세주택은 매입 대상이 비아파트에 한정돼 있어 정작 수요자들이 원하는 아파트는 해당이 안 된다. 전 정부에서도 유사한 정책이 낮은 품질로 수요자들로부터 외면을 겪은 적도 있다.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방안의 경우 임대료가 비싸 수요자들의 관심이 끌 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뉴스테이 실패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기업형 임대 '에피소드 용산'은 주거 유형에 따라 월 임대료가 96만원에서 696만원에 이른다. 특히 최근 금융 당국의 가계 대출 관리 강화 방침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자금대출까지 옥죄면서 실수요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요동치면서 서민 주거불안을 키우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전세불안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장 시급한 것은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이다. 정부는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공급 촉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관치'의 구태로 재현되고 있는 획일적인 주택 대출 관련 정책의 유연성과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영끌'족들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되, 서민·실수요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대출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기자의 눈] 집값 잡겠단 당국에 혼란 겪는 실수요자·진땀나는 금융권

은행권의 대출규제 바람이 제2금융권인 보험업권으로 흘러올 수 있단 위기감에 보험사들이 긴장모드다. 당장 대출을 실행해야 하는 실수요자들로부터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기조가 번복되는 모양새에 은행권도 진땀을 빼고 있다. 앞서 은행권이 금리를 올리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험업권에서 가장 먼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하며 조치를 취했다. 이어 은행이 대출 빗장을 더 걸어잠그자 삼성생명도 따라 지난 3일부터 유주택자 대상 주담대를 막았다. 당국이 우려하는 '풍선효과'가 퍼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여전히 대출 수요 쏠림현상을 우려하며 업계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보험사 등 전 금융권이 합심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는 와중 급진적으로 제도 여파를 맞은 실수요자들 일부는 혼비백산하는 사태도 초래됐다. 최근 집을 사서 잔금 대출을 실행 중이거나 직장문제 등 피치못할 이유로 전세계약을 한 이들도 자금 계획이 헝클어지면서 인터넷뱅킹에 오픈런하는 웃지 못할 사태도 나타났다. 은행마다 한도가 상이하게 나타나거나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제한이 촘촘하게 준비되지 못했단 지적도 따른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보험사 등 2금융권 문을 두들겨야 하기에 보험사들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실수요자들 요구에 지난달 말 삼성, 한화, 교보 등 대형 생명보험사 주택 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업계는 이미 삼성생명이 정책을 선도한만큼 이에 대한 동참을 고심 중이다. 일각에선 집값이 파죽지세로 뛰기 전 골든타임을 놓친 건 당국인데, 애꿎은 금융권과 대출 실수요자들이 불똥을 맞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부랴부랴 아파트 값을 잡으려는 강경한 압박이 은행권을 넘어 2금융권과 실제 수요자들 가운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단 지적이다. 당국은 추석 명절 이전까지 은행들과 머리를 맞대고 실수요자들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단 방침이다. 금융권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시기와 형평성이 고려된 정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눈] 이커머스 규제 찬반, ‘역지사지 해법’ 필요

티몬·위메프의 입점판매업자 대금 미정산 사태 이후 정부가 재발을 막기 위해 이커머스 플랫폼 규제 카드를 꺼내들자 IT 기반의 벤처·스타트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7일 기획재정부는 대규모유통업법과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이커머스기업과 전자결재대행사(PG)의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현행 40~60일보다 단축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금 유용을 막기 위한 '판매대금 별도관리 의무'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해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국내 중소 플랫폼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지난달 26일 정부의 규제 도입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벤처기업협회는 이틀 뒤인 28일 정부 부처에 법 개정을 우려하는 의견서까지 추가 전달했다. 벤처·스타트업 단체들은 '티메프 사태'가 이커머스업계 전반의 문제가 아닌 특정 기업(티몬, 위메프, 큐텐)의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경영 실패와 PG업체의 전자금융감독규정 위반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기업이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의 경영지도기준을 준수하도록 정부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등 현행법 테두리에서 제재수단을 마련하는 게 적절한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단체들은 강력한 규제를 도입할 경우 오히려 플랫폼 운영 벤처·스타트업의 현금 유동성 약화에 따른 경쟁력 상실을 우려한다. 또한, 국내법 규제안을 적용하기 어려운 국내진출 해외 플랫폼과 비교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단체의 주장에는 입점 판매업자 입장이 배려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에 티메프 사태 이전인 지난 6월 문구 플랫폼 바보사랑이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폐업하는 바람에 입점업체들이 고스란히 손실을 입었다. 이어 전자제품 플랫폼 알렛츠는 아예 '도주 폐업'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태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물론 플랫폼 입점업체가 네이버·쿠팡 등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을 더욱 선호하게 만들어 이커머스 생태계가 대형사 위주로 개편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플랫폼 벤처·스타트업의 규제 반대 입장도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 규제'가 이번 기회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 2의 티메프 발생, 대형 이커머스의 독과점 구조에 따른 중소 이커머스기업의 존폐 위기에 불안을 떨어야 하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입장도 살펴야 할 것이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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