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EE칼럼]미국의 민감국가 지정 원전수출에 영향없다.

지난 10일 모 일간지는 “미, 한국 '민감국가' 첫 분류 ... AI 등 협력 제한하나"라는 제하의 단독보도를 하였다. 미국 에너지부가 우리나라를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하여 규제 조치에 착수하였고 그렇게 되면 인공지능(AI) 등 미국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이 제한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20여 언론사에서 이 소식을 보도하였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동일한 기사가 매체만 달리하여 줄줄이 나왔다. 바이든 정부에서 한 일인데 트럼프 정부로 바뀌고 2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뉴스인 것이 이상했다. 미국 에너지부의 홈페이지에서 관련된 사실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외신을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다. 이윽고 여러 매체의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 기자들 누구에게 물어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를 쓴 것이 아니었다. 연합뉴스에서 미국 에너지부에 이메일로 문의하여 확인하였다고 하니 받아서 쓴 것이라고 하였다. 그 부분도 믿기가 어렵다. 아무튼 언론은 SNS에서 흥밋거리를 퍼 나르는 수준이었다. 매체가 많아도 깊이와 다양성은 없었다. 이미 많은 언론이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였다. 보도가 사실인지, 왜 미국 정부가 그런 결정을 하였는지에 대한 확인 보다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향후 벌어질 영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근거를 찾는 대신에 이 사람 저 사람 전문가에게 물어서 의견으로 뉴스를 채우고 있다. 취재 대상이었던 대부분의 전문가도 사실확인이 되지 않으니 딱히 해줄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상상의 날개를 펴서 기사를 쓰기로 작정한 듯하다. '체코 원전수출에 영향을 초래한다',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관련 연구개발에 영향이 초래된다.' '원전업계의 영향은?' 이런 식 제목을 단 기사가 하루만에 여럿 나왔다. 사실확인부터 하자고 해도 그것은 언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기자들은 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듯하다. 또 아무도 민감국가 지정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다. 검색도 하지 않고 일단 전화통부터 잡는 듯하다. 민감국가는 미국 국무부가 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에너지성이 지난 1월 15일 국무부에 우리나라를 민감국가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정되면 4월 15일에 민감국가가 되는 것이다. 민감국가라는 것도 핵무기를 만들려는 나라만 민감국가로 지정되는 것도 아니다. 국가안보, 지역불안정, 국가 경제안보 위협 또는 테러지원 등의 이유로도 민감국가로 지정된다. 핵안보의 문제로만 몰아갈 일도 아니었다.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우리나라에 어떤 제제조치가 가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공무원이나 정부출연 연구소의 연구원이 민감국가를 방문하거나 접촉할 때 사전 정보 브리핑, 사후보고, 방첩활동 등의 내부적 제약이 따르는 것이다. 즉 적용대상이 민감국가 자체가 아니라 민감국가와 접촉하는 자국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알아도 체코원전 수출에는 영향을 미칠 요소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관료와 연구원이 미국의 정보와 자료가 유출될 것을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우리가 체코에 수출하는 것에는 관련이 있을 수 없다. 소형모듈형원자로(SMR)과 관련된 활동도 미국 정부와 출연연구소와 관련이 없는 산업적 영역의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없다. 물론 인공지능(AI) 산업과도 관련이 없다. 원전 관련주가가 하락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런 언론의 보도태도가 사회적 불안을 조장했다. 사실확인도 안했고 민감국가가 무엇인지도 관심이 없었다. 어제 밤 늦게 외교부는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 최하위 단계에 포함시킨 것도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니 정치인들의 핵무장론 때문에 발생했다는 기사들도 오보가 되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의견들을 모아서 퍼나르기고 그것이 사실일 경우에 발생될 일의 여파를 먼저 터뜨리려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어느 정도 내용이 파악된 지금도 여전히 더 뭘 꾸며댈까 하고 주무르고 있을 듯하다. 정범진

[EE칼럼] 한 끗 차이의 나비효과

한 끗. 근소한 차이나 간격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한 끗 차이로 중요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한 파장이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경험하곤 한다. 지난 2월 2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확정되었다. 작년 5월 발표된 전기본 실무안에는 신규원전 4기가 포함됐었지만, 국회 보고 과정 중 정치적 타협에 따라 3기로 축소됐다. 1기 차이지만, 여기에 숨겨진 의미와 파장은 가볍지 않다. 첫째, 국민 부담이 큰 폭으로 뛴다. 전기본 최종안은 실무안 대비 신규원전 1기를 줄이는 대신 태양광 발전설비 2.4GW를 추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원전 1기 대체를 위해서는 7GW의 태양광 발전설비와 92GWh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기본 최종안대로 태양광 발전설비 2.4GW만 반영해도 32GWh의 ESS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 설비 건설비용은 원전 1기 건설비용의 약 2배인 12조 원가량일 것으로 추산됐다. 신규원전은 60년을 가동하지만, 태양광과 ESS 가동 기간은 각각 20년, 15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설비의 추가 교체가 필요해 총비용은 33.6조 원까지 급증한다고 한다. 이런 건설비용뿐만 아니라 국민이 내야 할 전기요금도 매년 3,800억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숫자 하나 줄였을 뿐인데, 국민이 떠안을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둘째, 원전 건설 물량이 줄어든다. 원전 1기 건설비용은 6조 원 내외다. 신규원전 1기 축소는 이 정도의 건설 물량이 국내 산업계에 풀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원전 1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원전 설계부터 기자재 제작 및 건설 분야까지 망라한 업체가 참여한다. 이들 업체의 인력과 조직은 우리 원전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들 업체의 인력과 조직은 물량이 지속 확보돼야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단기간에 많은 물량이 몰렸다가 사라지는 것보다 조금씩이나마 물량이 공백기 없이 공급되는 것이 경쟁력 유지에 효과적이다. 이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신규원전 1기가 타당한 이유 없이 사라진 것이다. 셋째, 전기본의 공신력이 훼손됐다.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90여 명의 전문가가 2023년 7월부터 2024년 5월까지 87회의 논의를 거쳐 전기본 실무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회 보고 과정 중 전문가 평가나 검증 없이 신규원전 1기를 줄인 것은,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시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처럼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 된 전기본은 그 신뢰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비효과 예로는 지난 2월 27일 국회를 통과한「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오랜 난제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한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중 특별법안 제36조제6항의 단서 조항인 “여건 변화가 있을 경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 심의‧의결로 저장 용량을 달리할 수 있다"는 문장이 삭제됐다. 이것이 우리나라 계속운전 제도를 뒤흔들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운전 허가가 만료된 원전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10년간 계속운전할 수 있으며, 그 횟수는 제한이 없다. 계속운전은 가장 경제적인 탄소중립 수단이다. 세계적으로 최초 운전 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의 대부분은 계속운전되고 있다. 발전사업자는 계속운전 기간 중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공간을 확보해 놔야 계속운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단서 조항 삭제로 원전 부지 안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최대 저장 용량이 제한되면서, 저장공간 부족으로 계속운전 허가를 받기 어렵거나 계속운전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꼴이 됐다. 계속운전을 하지 못하면, 대체 발전설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비용은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대체 발전설비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대규모 전력 공급부족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정책이나 법률의 수치나 문구의 미세한 변경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기본과 특별법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실수를 인지한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그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신규원전 계획과 특별법 해당 조항의 조속한 원상복구가 필요한 이유다. 문주현

[EE칼럼] 자원이자 연료인 나무, 산불 문제 해결책 있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전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장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 미국 교육심리학자 웨인 다이머의 이야기를 자주 되새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부터 5월 23일까지 전국적으로 50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과거 10년간 매년 평균적으로 403건의 발생한 것에 비하면 산불이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 산림청 재직 당시 산불 대응 업무를 여러 차례 담당한 적이 있다. 최근 산불을 보면 대형화, 전국화, 그리고 연중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22년 3월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의 기억이 생생한데 2023년 4월에도 강릉에서 국민관광지 경포호 북쪽을 검게 그을린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주요 산불은 과거에는 강원과 경북의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했으나, 최근에는 양구, 영월, 홍성, 합천, 고령 등 내륙과 서해안 지역에서도 큰 산불이 빈발하고 있다. 예전에는 봄철과 짧은 가을철에 발생하던 산불이 여름 장마철을 제외한 연중 발생한다. 산불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충분한 방안을 고려할 시점이다. 향후 산불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연료이다.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진화 임무를 맡은 조종사의 말을 인용한다. 2023년 4월 충남 홍성 산불 때 지휘를 맡았던 영암산림항공관리소의 기장은 진화 임무를 마치고 일몰 후 착륙하면서 “연료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헬기로 물을 뿌려도 진화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연료가 축적되는 정도는 산림청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산림의 평균 임목 축적량은 168.7㎥이다. 이는 1ha 면적에 있는 나무의 양으로, 2011년의 130.4㎥에서 10년 만에 30% 증가한 것이다. 전체 산림 면적을 기준으로 보면 10년 사이에 2억 3천만㎥, 연간 2300만㎥의 목재가 숲속에 추가로 비축된 것이다. 2022년에 국내에서 수확한 목재량은 430만㎥으로, 늘어나는 양의 81%는 숲에 쌓이고 있다. 사실 산불 대응에 있어 인위적으로 조절이 가능한 것은 연료다. 산불 연구 전문가인 강원대 이시영 교수에 따르면, 연료는 산불 발생의 3요소 중 하나인 동시에 산불 확산에도 기여한다. 반면, 산소, 기상, 지형 같은 다른 요소들은 자연현상으로 사람이 조절하기 어렵다.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숲에 쌓여만 가는 연료, 즉 나무의 밀도를 관리해야 한다. 나무는 연료이면서 목재 자원이다. 늘어나는 산불 피해 추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안으로 국산 목재의 산업화를 제안한다. 우리나라 목재 자급률은 2022년 기준으로 15%로 대부분 목재 수요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토 대비 산림면적이 64%로 OECD 회원국 중 세계 4위의 산림국가에 어울리지 않은 실정이다. 1970년대 치산녹화 이후 나무 수령이 50년을 넘어가고 있으며, 매년 목재 수입으로 6조원 이상의 외화를 지출하고 있다. 한편, 산불로 인해 귀중한 나무들이 손실되고 있다. 심고, 가꾸어서 커진 나무는 벌채해 이용하고, 대신 좋은 묘목으로 다시 키우고 가꾸는 것이 지속가능한 산림관리의 원칙이다. 순환적 임업을 실행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향후 산불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목재자원화를 앞당기는 일이다.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는 숲 경영이다. 벌채에 부정적인 시민들도 있고, 지속가능한 산림관리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일부 시민단체가 있을 수 있다. 현재나 미래에 산불로 인해 입을 산림과 지역의 피해를 감안할 때 산불당국은 적극적인 소통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또한 순환임업을 이행하는 데 있어 임업 노동력과 임도의 부족, 임업 기계화 미흡 등 장애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부터 거론된 문제로 국산재 산업화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항이다. 중요한 것은 주요 이슈로 부상한 대형 산불 위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산불 위험이 가장 높은 봄철이다. 3월 중순이면 통상적으로 대형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 효과적으로 대응해 이번 시즌을 무사히 넘긴다고 해도 산불 시즌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산불로 인한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 산불 대응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선제적으로 고려하고, 산림 재난 위험을 현실적으로 경감하는 노력이 필요한 단계이다. 그 노력의 출발점은 연료이면서 자원인 나무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고기연

[EE칼럼] 대왕고래를 더 이상 산으로 가게 하지 말자

지난해 6월 대통령의 발표로 시작된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사업은 한 편의 코미디처럼 흘러왔다.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자원탐사사업이 불행하게도 정치의 영역으로 엮이면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종료된 1차 탐사시추인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상업적 가스전 발견에 실패했다는 산업부 발표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돈만 날렸다느니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등 책임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기대를 많이 한 사람은 기대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고 기대를 안한 사람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비난할 수도 있다. 시추 전에 다른 기고문을 통해 이번에 계획된 첫 시추인 대왕고래 구조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즉, 탐사에 성공하면 남아있는 유망구조의 탐사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고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귀중한 평가자료를 제공하여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20%의 탐사 성공 확률의 의미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꾸준히 탐사와 시추를 통해서 동해지역에서 석유 가스의 부존 가눙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중요하다. 이번 시추 결과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또한 시추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많은 지질 및 암석 정보를 정밀 분석해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동해 심해광구 내에 존재하는 다른 유망구조에 대한 탐사 유망성을 재평가하고 향후 탐사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에너지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93% 이상이고 석유가스는 전량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에게는 안정적인 에너지자원 공급망이 국가생존에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국내 석유가스개발은 산유국이라는 에너지안보 측면 뿐만 아니라 동쪽의 일본, 서쪽의 중국과의 해양영토 분쟁에 대비한 자료 확보와 축적, 그리고 탄소중립을 위한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소 확보 등 다양한 장점이 존재한다. 즉, 잘 추진하면 1석 3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계획한 것이 한국석유공사의 “광개토" 프로젝트라 불리는 장기적 탐사 계획이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겉으로 드러난 목적과 숨은 목적이 다를 수 있다. 이것을 만천하에 자랑하며 드러낼 필요는 없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을 주변국에 알려줄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자원개발의 기본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다. 광개토 프로젝트는 단기적으로는 제2의 동해 가스전을 찾아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고 CCS 저장소도 확보하여 국가 탄소중립에 기여하고자 2031년까지 24개 공을 시추한다는 장기적인 계획이다. 이번에 시추 종료된 심해 대왕고래 유망구조 시추는 그 첫 번째 시추공에 해당한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운동화 끈 조여 매고 막 출발 한 것과 같고 1년 으로 따지자면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이 지난 것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국가 에너지자원 문제가 정치적으로 다루어지면 한국의 에너지안보 분야는 희망이 없다. 대왕고래가 산으로 가게 두어서는 안된다. 국가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한 국내 해양 자원 탐사사업은 국가의 역할이며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를 대신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석유공사는 앞으로 국민의 믿음과 공감대를 얻어 장기적인 광개토 프로젝트가 좌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되길 기대한다. 신현돈

[EE칼럼] 지금은 NDC보다 AI가 먼저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전기와 같은 획기적인 기술개발과 이를 뒷받침하는 화석에너지에 의해 탄생한 산업혁명은 각종 기계의 발명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했다.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혁명의 문 앞에 서게 됐다. 바로 인공지능(AI) 혁명이다. 이번에는 인간의 또 다른 한계인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계산을 넘어 패턴을 학습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돕는다. 인간의 분석 능력 범위를 넘는 방대한 데이터를 가뿐히 처리하며, 의료·과학·예술 등 지금까지 고유한 지적 영역으로 인식되던 분야까지 인간을 대체할 태세다. 산업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AI 혁명에도 에너지 소비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된다. 인간의 몸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중 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 정도다. 이는 몸 전체 근육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과 거의 맘먹는 수준이다. 조금은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인간의 뇌 활동을 대체하는 기술혁명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AI 혁명에는 엄청난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 산하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8년까지 최대 132GW에 이를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작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전력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신청 건수가 732개이고 여기에 필요한 전력은 49.4GW에 이른다. 여기에 AI 혁명을 뒷받침할 반도체를 생산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필요한 전력 10GW는 별도다. 작년 최대전력수요 93.2GW와 비교하면 엄청난 크기다. AI 혁명에 성공하려면, 새로운 차원의 전력 공급 체계를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 추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AI 혁명 전과 후의 경제체제는 완전히 다른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경로 파괴적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비상사태 선언이 상징적 사건이다. 에너지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미국이 에너지 부족으로 AI 혁명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우리나라는 더욱 절박하다. AI 관련 산업 비중이 높은 가운데 국가 경제의 해외 의존도도 높아, AI 혁명에 실패하여 경쟁력을 상실하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구조다. 미국보다도 비상한 자세로 에너지 확보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한가롭기 그지없다. 최상위 에너지계획으로 볼 수 있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1년 8개월이나 지연된 지난달 21일에 늦장 확정될 정도로 긴장감이 없다. 내용도 현실과 딴판이다. 2038년까지 데이터센터에 의한 추가 수요 전망이 4.4GW이다. 앞서 소개한 입법조사처 2029년 전망치 49.4GW와 비교해 10배 이상 낮다. 물론, 부지 선점을 노린 데이터센터 신청에 근거한 입법조사처 전망에는 허수가 많다지만. 10배 이상 차이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기에 올해 유엔에 제출할 2차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정하고 있는 탄녹위는 한술 더 뜬다. 발전 부문에서만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65% 감축을 목표로 검토하고 있다. 현재 계획된 신규 원전이 고작 2기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재생에너지 올인을 의미한다. 2030년까지 44% 감축하는 1차 NDC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21.6%로 올려야 달성된다. 그러나 2023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9.6%에 지나지 않으므로, 매년 거의 7GW씩 늘려야 한다. 물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해 보인다. 더욱이 고작 이용률이 20% 내외일 정도로 간헐성이 극심한 태양광, 풍력으로 24시간 중단 없이 가동되어야 하는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등 보완 설비가 꼭 필요하지만 이에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에너지계획을 고집하면, AI 혁명에서 필패한다. NDC도 중요하지만, AI 경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경쟁에서 중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가려가며 사용할 여유가 없다고 선언한 이유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잠시 시간을 벌었다. NDC를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고, 재생에너지 올인 정책에서 벗어나 AI 혁명에 필요한 충분한 전력 공급에 나서야 한다. 어쩌면 AI가 기후변화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 AI의 도움으로 꿈의 에너지 기술인 핵융합이나 초전도체 개발을 앞당겨 기후변화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에는 NDC보다 AI가 먼저로 보인다. 박주헌

[EE칼럼] 에너지 위기에서 배워야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에 세계 경제와 정치가 안정화되면서 에너지 위기라는 단어를 못 들어본지 한참인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매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이미 위기의 모든 조건은 갖추어져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교훈을 찾아야 한다. 집에 불이 나기 전에 가연성 재료를 잘 치워둬야 하듯이, 이런 에너지 위기도 미리 그 조건을 해소할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의 폐해에 놀란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가스 보급선을 확충하였다. 특히 부유한 유럽 국가들과 일본이 그 중심에 있었다. 유럽의 경우 전체 수입량의 40%를 러시아로부터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우크라이나가 그 파이프라인을 폭파했을 때 에너지 비용이 몇 배로 치솟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풍력과 태양력 등의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 같은 탄소중립 에너지원은 공급망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아서 에너지 자급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나았는데, 재생에너지의 경우 어쩔 수 없는 간헐성 때문에 전력망 안정성을 고려할 때 현재 수준 이상으로 비중을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럽 국가들이 지금의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자급 가능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압도적으로 높였을 것이다. 이러한 유럽의 에너지 위기로부터 우리가 배워할 것은 무엇일까? 영국은 북해 유전 등을 소유한 에너지 부국이라 한국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니, 한국과 비슷한 에너지 빈국인 프랑스를 보자. 1970년대에 프랑스의 에너지 자급률은 26%에 불과했으나 적극적인 원자력발전의 도입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50%대의 에너지 자급률을 안정적으로 달성하였다. 이번 에너지 위기에서 프랑스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 했던 이유이다. 한편, 독일에서는 오일 쇼크 이후 자국 내의 풍부한 석탄을 이용해 자급률을 유지하였는데, 여러 번 국내 언론에서도 보도된 것과 같이 이것이 EU의 환경 규제 등과 많은 문제를 발생시킴에 따라 점차로 석탄 이용을 억제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원자력 발전을 폐지하는 정책추진을 하였고, 그 통에 대체 전원 확보를 위한 에너지 자원 수입이 증가하는 상황을 맞게 되어, 재생 에너지 활용을 높여서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려 하였으나,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수입에너지 가격 폭등과 신재생의 높은 경비가 동시에 닥쳐서 국가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2024년 독일의 전기 요금은 MWh당 69유로로 프랑스의 46유로와 큰 차이가 있다. 단순히 경쟁력이 없을 뿐 아니라 에너지 공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아 에너지 안보 수준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보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지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상황은 정리해 보면, 고도로 발달된 중화학공업위주의 산업구조로 인해 세계 8위의 에너지 소비 국가이면서도 전체 에너지의 96%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단순히 에너지의 원활한 공급이 에너지 안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안보를 좌우할 상황이다. 그러면 어떻게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어떤 에너지 문제도 없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고 지금의 공업 강대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자유무역과 에너지공급을 보장했던 안정된 국제 체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전 세계의 보안관 역할을 해 주었던 미국 주도의 안보 체제 하에서 큰 위험부담 없이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입해서 사용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공업생산품을 수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로 이런 모든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실익이 없는 보안관 노릇을 거부하고 있고, 해당 국가가 개별적으로 그 부담을 져야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수입해 오는 화석에너지원에는 위험부담이 추가될 것이고, 이런 상황이 지금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주요 에너지 수입국에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선박수송로가 얼마나 위험한 지역을 통과하는 지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한전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제철,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S-OIL, LG화학 순서로 전기를 많이 소비한다. 에너지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안보는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큰 일이다. 재생에너지는 국내 자급 에너지이다. 에너지 안정성에서는 미흡하지만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는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안정성과 안보 이 두 가지 모두에서 가장 이상적인 자원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를 강화함으로서만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원자력 이용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의 근본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걸 상기해야 한다.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전형적인 경우이지만, 최근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정 과정도 걱정스럽게 보인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어렵지만 시급한 시멘트산업의 탄소감축

시멘트에 모래, 자갈, 물을 섞어 만드는 콘크리트는 현대 물질문명의 토대이다. 콘크리트는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자재의 80%를 차지한다. 전 세계에 1인당 80톤이 넘는 콘크리트가 존재하는데, 이를 전부 합하면 총 650기가톤에 달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무게가 나간다. 건축의 세계에서 시멘트는 콘크리트가 서로 단단히 달라붙도록 돕는 마법의 성분이다. 인류는 수천 년간 석회를 구워서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다. 튀르키예에서 발견된 1만 년 전 신석기 유적의 바닥과 기둥에 시멘트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다. 로마인들이 콜로세움의 기초를 만들 때 사용한 것도 콘크리트의 일종이다. 현대의 시멘트 제조법은 1824년 영국의 조셉 애스프딘이 특허를 낸 방법이다. 애스프딘은 '포틀랜드시멘트'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시멘트의 색이 영국 포틀랜드섬에서 산출되는 천연석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포틀랜드시멘트는 전체 시멘트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토마스 에디슨은 시멘트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디슨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시멘트 소성로(kiln)를 만들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정부는 우리나라의 근간이 될 기간산업을 시멘트, 비료, 화학섬유 등으로 정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우리나라에 그나마 많이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이 석회석이라, 1960년대부터 국가산업으로 육성했다. 시멘트는 한자로 양회(洋灰)라고도 하는데, 이 무렵부터 여러 시멘트 기업이 탄생했다. 2023년 한국은 연간 5천만톤이 넘는 시멘트를 생산하는 세계 11위의 시멘트 대국이 되었다. 소비량으로는 세계 10위이다. 국내 석회석 매장량은 118억톤이며, 향후 약 200년간 시멘트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시멘트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주원료인 석회석과 부원료인 진흙, 모래, 산화철 등을 원료 분쇄기에 투입하여 분쇄한 후 소성로에서 최고 2,000℃의 고열로 가열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 시멘트 반제품인 클링커가 생성된다. 클링커에 석고와 같은 첨가제를 혼합한 후 분쇄기에서 아주 잘게 분쇄하여 시멘트를 만든다. 시멘트산업은 철강, 석유화학과 함께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8%를 차지한다. 석회석(CaCO3)을 가열하면 탈탄산과정에 따라 클링커(CaO)가 생성되면서 이산화탄소(CO2)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이 외에도 소성로 가열을 위해 유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약 33%, 원료 분쇄기, 냉각기 등 각종 설비에서 전기를 소모하면서 약 7%가 발생한다. 2023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30위 기업 중에는 시멘트 회사가 5개나 있다. 이들 기업의 배출량은 3천만톤이 넘는다. 국내 배출량의 약 4.7%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시멘트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은 제품 생산 단위당 평균 0.83tCO2로 글로벌 평균(0.62tCO2)보다 높다. 영업이익이 많지 않은 시멘트 회사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멘트산업은 전형적인 온실가스 난감축(hard to abate) 분야이다. 에너지 연소 때문이 아닌 공정 배출량이 많기 때문이다. 시멘트산업에서 발생하는 공정배출 감축을 위한 대표적인 수단에는 원료전환이 있다. 석회석을 슬래그, 애시류 같은 비탄산염 원료로 대체하거나, 클링커 비중을 줄이고 석고와 같은 혼합재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또 다른 주요 수단은 연료전환으로, 유연탄 대신 폐플라스틱, 폐타이어, 폐목재, 폐유 등의 순환자원이나 수소, 바이오매스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열기, 냉각기 등의 효율 향상을 통해서도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 이러한 감축기술 도입 이후에도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결국 CCUS 기술을 이용해서 처리해야 한다.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이지만, 아직은 너무 비싸서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다. 양은 많고 마진은 박한 시멘트산업은 더욱 그렇다.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투자가 시급하다. 시멘트산업은 전형적인 원료 지향성 제조업이다. 운송비 부담이 커서 원료인 석회석을 채굴하는 광산 인근에 생산 공장을 짓는 편이다. 공장을 해외로 옮길 수도 없고, 해외 수입에 의존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는 비바람을 막아줄 튼튼한 지붕과 벽이 있고, 발밑에 단단한 바닥이 있으면 건축의 중요성을 잊곤 한다. 그러나 주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의식주 중의 하나이다. 없어선 안 될 시멘트산업이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도 제대로 된 평가를 계속 받으려면 탄소배출 문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 박성우

[EE칼럼]행정명령을 통해서 본 트럼프의 에너지정책 방향

취임한지 두 달여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기세가 무섭다. 관세 폭탄, 불법 이민자 추방, 이스라엘-하마스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개입, 트랜스 젠더의 스포츠계에서 추방 등 여러 쟁점 이슈를 속전속결로 해치우고 있다. 트럼프의 핵심 정책수단은 대통령 행정명령(President Executive Order)이다. 2월 12일 현재까지 총 65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취임 후 열흘 동안 서명한 행정명령 수가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후 100일 안에 서명한 것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트럼프 행정명령 중 에너지 및 환경과 관련된 내용은 6개이다. 제일 먼저 내린 행정명령은 바이든 정부의 행정명령 및 조치 78개를 폐지하는 것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서명한 행정명령 5개와 인플레이션 감축 법(IRA)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행정명령 그리고 인프라 투자와 고용에 관한 법률(IIJA)의 이행에 대한 명령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UNFCCC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기로 하였으며 국제기후재무계획을 즉시 철회하기로 하였다. 돈도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모든 법적 권한을 동원하여 연방정부 토지에서 진행되는 에너지 공급과 개발행위에 편의를 제공하고 인프라, 에너지, 환경, 자연 자원과 관련된 프로젝트의 준공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내용이다. 네 번째는 미국의 에너지 개발을 촉진하는 것인데 미국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활용하여 경제적·군사적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연방정부의 영토, 영해 및 대륙붕에서의 에너지 탐사와 생산을 장려하며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중국 등의 광물자원 무기화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기차에 대한 지원 및 특권을 폐지하고 항만, 액화기지, 파이프라인 등 LNG 수출 인프라를 비롯한 에너지설비에 대해 신속하게 인허가를 내주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다섯 번째는 알래스카의 자원 개발을 촉진하는 것으로서 알래스카 북극권에 있는 풍부한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을 알래스카 남부로 이송하는 파이프라인과 액화기지 및 항만의 건설과 운영에 관련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해상 및 육상 풍력 프로젝트에 대한 연방정부의 영토 임대, 허가, 금융 대출 등을 정지하라는 사실상의 풍력발전 건설정지 명령이다. 이상 여섯 개의 에너지·환경 관련 행정명령은 임기 초반 트럼프 에너지 정책에 대한 색깔과 방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탄소저감, 재생에너지의 확대 등에 반대하며 전통적 화석 에너지의 생산과 개발을 확대해서 미국 국민에게 값싸게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일례로 알래스카의 에너지 자원 개발을 촉진함에 있어서 지난 바이든 및 그 이전의 대통령 때 진행되었던 환경영향평가, 국토관리청(Bureau of Land Management)의 결정사항, 내무부 장관의 공공토지명령(Public Land Order) 등을 비롯한 개발 관련 정부 결정 및 핵심 세부사항에 대한 조처방안을 담고 있다. 이뿐 아니라 각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간의 업무분장 및 협업 사항을 미리 파악하여 에너지 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방해가 되는 핵심 규제와 장애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주도면밀하게 지시하고 있다. 그만큼 트럼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과 구체적인 실행수단에 대해 미리 잘 준비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정부를 비롯한 여러 지방정부 그리고 언론과 환경 및 시민단체의 반발, 법원의 제동 등 트럼프 정부 앞에 놓여 있는 장벽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기후변화와 에너지전환에 민감한 유럽 각국도 최근 우파가 집권한 독일 총선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환경보다는 성장, 에너지 전환보다는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에 역점을 기울이려는 모습이다. 벌써부터 몇몇 국가는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려 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태세를 취하고 있다. 몇 년 전 탈원전과 탈탄소를 향하여 치닫는 모습과는 꽤 다른 낯선 장면이 당분간 지구촌 곳곳에서 연출될 것 같다. 조성봉

[EE칼럼] 드디어 통과된 에너지 3법, 첨단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에 힘써야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및'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등 이른바 '에너지 3법'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3개 법안의 통과는 정치권이 현재 극한 대립 중임에도 에너지 분야를 지원하기 위하여 합의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를 받는다. 또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그리고 전력망이 함께 한 묶음으로 통과한 것은 기존의 소모적인 제로섬게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 미래에 모두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한 첫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관련 학계 역시 모두 찬성과 응원의 메시지를 곧바로 발표하였다. 5월에는 함께 학술대회를 연다고 한다. 3개 법안 모두 모두 특별법으로, 각각 송배전망이 모자라서 생산한 전기를 필요한 지역으로 보내지 못하는 문제를, 저장용량이 이미 한도를 넘어버린 사용 후 핵연료 저장 문제를, 그리고 사업자 난립과 인허가 늦장 등으로 지지부진한 풍력발전의 문제를 해결할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 중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AI 산업의 발전 및 기후변화 대응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전력망 확충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자는 취지의 특별법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행정절차의 신속 처리를 위해 송전선로 설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다. 국가가 기간 전력망 관련 계획을 수립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이 60일 이내 주민 의견을 수렴해 회신하도록 하되 이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협의를 마친 것으로 간주하기로 한 것인데, 이는 상당히 강력한 조항이다. 해당 조항이 사업 시행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임은 확실하나 전력망 설치지역의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임은 충분히 예상된다. 이에 특별법은 송·변전 시설 주변 주민이나 지자체에 관한 보상 조항을 함께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생산된 전력은 생산지에서 우선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이를 잘 활용하여 수도권 전력 사용 집중 문제를 해소하는 유인책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영구적인 처리 시설에 대한 근거를 담은 법으로, 지난 2016년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한 지 9년 만에 동의를 얻었다. 주요 내용으로 2050년까지 중간 저장 시설을, 2060년까지 영구 폐기 시설을 짓도록 규정하고 있다. 1970년대 원자력발전이 시작한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해묵은 숙제를 이번에 여야가 해결의 물꼬를 튼 것이다.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정부 주도의 계획 입지로도 사업 진행이 가능하도록 하고, 예비타당성조사의 면제 등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간 문제가 되어 왔던 입지 선정 소요 기간의 장기화 문제를 해결하여 풍력 사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지난달 21일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역시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지난해 5월에 실무안이 만들어진 지 9개월 만이다. 이번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15년 계획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두가 함께 지난 2월 말에 확정된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번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야 하겠다. 추가적인 제도의 도입도 필요해 보인다. 먼저, 최근 전력 소비가 변동이 심해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보다 입체적인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즉, 발전량이 많은 지역에 소비자를 유치하고나 AI를 적용한 스마트미터 등 첨단 기기의 개발과 적용,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프로슈머(prosumer) 형 재생에너지 생산 및 소비자가 생산하여 사용하는 넷미터링 제도 등을 추가하여 전력망 건설 및 예비율 유지의 필요성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또한 2010년대 이후 재생에너지 보급제도의 근간이 되어온 RPS 제도를 보완하는 입찰제 병렬 적용, 전력 계통에 대한 민간 투자 유인 방안 마련, 전기 요금제의 다양화 및 전력망을 활용한 서비스의 개발 등 정부는 에너지 3법과 기본계획에 더하여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십분 활용하는 미래지향적인 첨단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 계획을 함께 마련하여 조속히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허은녕

[EE칼럼] 동해안권 광역 수소 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자

귀금속 취급점들은 서울 탑골 공원 주변 종로3가, 전자제품은 용산, 한약재는 경동시장 등 특정 상품을 취급하는 상점이나 기업이 한 공간에 모여있는 집적지, 즉 클러스터(cluster)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된다. 함께 모여있으면 상대적으로 고객 유치나 원자재·인력 수급 등에 유리하기에 클러스터는 보통 자연 발생적일 수 있다. 한편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클러스터를 특정 지역에 지리적으로 인접한 기업과 관련 시설이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는 집단으로 정의하면서, 이들이 지역 내 경쟁과 협력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 경제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특정 산업, 특히 제조업 전후방 연관 기업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클러스터'가 주목을 받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들이 유행을 탔던 시기도 있었다. 보다 최근에는 전통적 제조업 대신 첨단 기술 기반 신산업이 경제 성장의 주된 엔진으로 부상하면서, '혁신클러스터'가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혁신클러스터는 연구소, 스타트업, 벤처 캐피털, 대기업, 대학, 정부 기관 등이 특정 지역에 집적, 긴밀하게 연결, 기술혁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클러스터를 말한다. 산업클러스터가 주로 제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에 중점을 두었다면, 혁신클러스터는 연구개발과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혁신'에 무게 중심이 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메타), 테슬라, 인텔, 엔비디아 등 세계적인 최첨단 혁신기업들이 집적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남부, '실리콘밸리'가 바로 이런 혁신클러스터의 표본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이후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제이, 제삼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진행 중인데, 여기에 기술혁신 기반 에너지 신산업인 수소산업도 동참하고 있다. 가령 일본은 2020년 야마나시현에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를 구축했으며, 미국은 2023년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총 17개주에 걸쳐 7개의 수소허브를 지정, 총 70억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독일도 권역별로 재생에너지 발전단지 연계 또는 기존 지역 산업 연계 수소 혁신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수소 혁신클러스터 조성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수소 혁신클러스터 조성 의지를 밝혔다. 그 후속 조치로 지자체 공모를 통해 '강원 동해·삼척 수소 저장·운송 클러스터'와 '경북 포항 수소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를 선정하였다. 또한 2020년 제정된 수소경제법을 통해 '수소특화단지'라는 명칭으로 수소 혁신클러스터의 법적 근거도 마련하였다. 여기서 수소특화단지는 수소기업과 지원시설의 집적화, 또는 집적화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수소차·연료전지 등의 개발·보급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특별히 지정하는 단지를 의미한다. 이미 선정된 두 곳의 클러스터도 여기에 해당하여 2024년 수소특화단지로 재지정되면서 총사업비 5천억 원을 투입, 2028년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흥미롭게도 이 두 곳의 수소특화단지가 모두 태백산맥 넘어 동해안을 낀 강원 영서와 경북 일부 지역을 아우르는 동해안 경제권역에 있다. 또한 두 수소특화단지를 연결한 선의 중앙에는 울진 원자력 수소 국가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작년에 청정수소 발전 입찰 시장에 낙찰된 삼척의 남부발전 빛드림 발전본부 1호기와 그린 암모니아 수입 터미널이 조만간 가동될 예정이다. 나아가 포항에는 수소환원제철용 대규모 수소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포스코가, 연결한 선을 남쪽으로 연장하면 한수원의 월성 원전 지역과 함께 울산 석유화학단지까지 연계가 가능하다. 또한 무엇보다 올해부터는 부산에서 동해·삼척까지 편도 2시간대에 주파가 가능한 KTX 동해선도 개통되어, 혁신 활동에 필수적인 활발한 인적교류가 가능해졌다. 동해안 경제권역과 같이 제한된 지역 내에 수소특화단지를 포함한 다양한 수소 생산·유통·활용 혁신기업과 관련 시설이 지리적으로 인접된 곳은 적어도 국내에는 전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들을 묶어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기술혁신과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역적으로 파편화된 혁신클러스터를 연계, 새로운 광역 수소 혁신클러스터로 창발(創發)시킬 수 있다. 이를 제안한다. 김재경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