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에 재당선된 트럼프의 통치 철학은 의심할 바 없이 미국 우선주의다. 초강대국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기후변화와 같은 세계적 의제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트럼프에게는 중국, 인도 등이 협조하지 않는 기후변화 대응은 손해 보는 장사로 그의 목표인 위대한 미국 재건(MAGA) 달성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다. 트럼프 머릿속에 기후변화는 아예 없어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는 기후변화 논의를“녹색 신종 사기", “중국의 사기극"이라고 거칠게 비난하며,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에 전격적으로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결정하기도 했다. 최근 에너지정책은 기후 정책의 하위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후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각종 규제와 보조금이 에너지정책의 근간이다. 예를 들어,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 이슈의 정책 순위를 최고로 높이고, 국내 석유, 가스개발을 억제하는 각종 규제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을 제정하고 다양한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당연히 바이든 행정부와 정반대의 에너지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석유 생산 업체인 리버티 에너지의 최고경영자 크리스 라이트를 에너지장관으로 지명함으로써 정책 의지를 분명히 했다. 라이트는 민주당 쪽의 기후변화 대응을 공산주의적 정책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강경한 기후위기 부정론자다. 미국의 에너지정책의 일대 파란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에너지정책은 화석연료 생산 확대,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파리기후협약 탈퇴, 원자력 발전 활성화 등으로 요약된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내내 바이든 행정부가 화석에너지를 억지로 규제하는 바람에 에너지비용만 높여 미국 경쟁력을 훼손시켰다고 비난하며,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는 구호 아래 국내 석유와 셰일가스 생산 확대를 약속했다. 또한 AI 시대에 필요한 충분한 전력을 얻기 위해 SMR을 중심으로 원전 부활에 나서고, 송전망 등 전력인프라 증대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사실, 기후변화를 부정하면 간헐성 등 태생적 약점이 많은 재생에너지를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트럼프에게는 태양광 및 풍력에 대한 세금 감면과 보조금은 낭비일 뿐이다. 재생에너지 지원의 법적 근거였던 IRA의 폐지가 점쳐지는 이유다. IRA를 믿고 투자했던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동안 IRA에 공격적으로 대응해 왔던 K-배터리가 대표적 예다. 트럼프는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선언한 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20%로 곤두박질하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도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K-배터리가 또 하나의 리스크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IRA 폐지에는 정치적 허들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공화당이 상원 의석수 100석에서 53석을 차지했지만, 압도적으로 과반수를 넘겼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IRA의 완전한 폐지는 의회의 벽을 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미 IRA 보조금에 힘입어 청정에너지 투자에 의한 경제적 이익을 크게 누리는 공화당 우세 지역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네바다주는 유틸리티 규모의 태양광 설치, 와이오밍주는 풍력 발전소와 탄소 포집 및 저장(CCS) 프로젝트 투자를 유치했으며, 조지아주와 테네시주는 IRA 인센티브의 지원을 받아 탄소중립 산업의 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공교롭게 이들 중 상당수는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지역이다. IRA 폐지는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결코 특정 에너지산업을 편애하지 않는다. 그에게 에너지정책은 오로지 위대한 미국 재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미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저비용 에너지와 전력 생산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미국 내에 풍부히 매장되어 있는 화석에너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에너지라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이와 같은 트럼프의 실용적인 접근 방식은, 기후변화 이슈를 후순위로 격하시켜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탄소중립 산업이 다소 위축되겠지만, 보조금이나 인위적 규제에 기대지 않는 공정한 에너지 간 진검승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박주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