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1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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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트럼프 에너지정책2.0 예측

미국 대통령에 재당선된 트럼프의 통치 철학은 의심할 바 없이 미국 우선주의다. 초강대국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기후변화와 같은 세계적 의제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트럼프에게는 중국, 인도 등이 협조하지 않는 기후변화 대응은 손해 보는 장사로 그의 목표인 위대한 미국 재건(MAGA) 달성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다. 트럼프 머릿속에 기후변화는 아예 없어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는 기후변화 논의를“녹색 신종 사기", “중국의 사기극"이라고 거칠게 비난하며,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에 전격적으로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결정하기도 했다. 최근 에너지정책은 기후 정책의 하위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후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각종 규제와 보조금이 에너지정책의 근간이다. 예를 들어,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 이슈의 정책 순위를 최고로 높이고, 국내 석유, 가스개발을 억제하는 각종 규제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을 제정하고 다양한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당연히 바이든 행정부와 정반대의 에너지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석유 생산 업체인 리버티 에너지의 최고경영자 크리스 라이트를 에너지장관으로 지명함으로써 정책 의지를 분명히 했다. 라이트는 민주당 쪽의 기후변화 대응을 공산주의적 정책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강경한 기후위기 부정론자다. 미국의 에너지정책의 일대 파란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에너지정책은 화석연료 생산 확대,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파리기후협약 탈퇴, 원자력 발전 활성화 등으로 요약된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내내 바이든 행정부가 화석에너지를 억지로 규제하는 바람에 에너지비용만 높여 미국 경쟁력을 훼손시켰다고 비난하며,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는 구호 아래 국내 석유와 셰일가스 생산 확대를 약속했다. 또한 AI 시대에 필요한 충분한 전력을 얻기 위해 SMR을 중심으로 원전 부활에 나서고, 송전망 등 전력인프라 증대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사실, 기후변화를 부정하면 간헐성 등 태생적 약점이 많은 재생에너지를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트럼프에게는 태양광 및 풍력에 대한 세금 감면과 보조금은 낭비일 뿐이다. 재생에너지 지원의 법적 근거였던 IRA의 폐지가 점쳐지는 이유다. IRA를 믿고 투자했던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동안 IRA에 공격적으로 대응해 왔던 K-배터리가 대표적 예다. 트럼프는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선언한 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20%로 곤두박질하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도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K-배터리가 또 하나의 리스크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IRA 폐지에는 정치적 허들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공화당이 상원 의석수 100석에서 53석을 차지했지만, 압도적으로 과반수를 넘겼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IRA의 완전한 폐지는 의회의 벽을 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미 IRA 보조금에 힘입어 청정에너지 투자에 의한 경제적 이익을 크게 누리는 공화당 우세 지역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네바다주는 유틸리티 규모의 태양광 설치, 와이오밍주는 풍력 발전소와 탄소 포집 및 저장(CCS) 프로젝트 투자를 유치했으며, 조지아주와 테네시주는 IRA 인센티브의 지원을 받아 탄소중립 산업의 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공교롭게 이들 중 상당수는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지역이다. IRA 폐지는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결코 특정 에너지산업을 편애하지 않는다. 그에게 에너지정책은 오로지 위대한 미국 재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미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저비용 에너지와 전력 생산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미국 내에 풍부히 매장되어 있는 화석에너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에너지라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이와 같은 트럼프의 실용적인 접근 방식은, 기후변화 이슈를 후순위로 격하시켜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탄소중립 산업이 다소 위축되겠지만, 보조금이나 인위적 규제에 기대지 않는 공정한 에너지 간 진검승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박주헌

[EE칼럼]송전망 신뢰도 기준과 위험관리 시스템 제대로 검토해 보자

십수년 전 잘 아는 선배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낡은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안쪽에 “1935년부터 자랑스럽게 운행 중(Proudly serving since 1935)"이라는 라벨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한다.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라서 불안했는데 이에 더하여 1935년부터 운항한 낡은 기종이라는 것을 알고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걱정을 눈치챘는지 같이 갔던 일행 중 한 분이 이 비행기가 가장 안전한 기종이라고 알려 줬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1935년에는 비행기의 제작과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세부적인 설계 및 과학적 원리가 정밀하지 않아 무조건 최고의 안전도 기준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거의 사고가 나지 않는 기종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고 무거워 기름도 많이 드는 비행기라는 설명도 함께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전력망을 운용하는 신뢰도 기준이 이러하지 않나 생각한다. 필자는 전기공학자가 아닌 경제학자여서 기술적인 내용까지 잘 이해할 수는 없으나 전기공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서로 나뉘고 있다는 점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현재 전력 당국은 전력망 운용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전력망에 비상사태가 생겼을 경우를 가정한 이른바 'N-2'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N-2 기준은 폭풍과 산불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시에도, 2회선이 고장났을 때에도 전력망 운용이 가능할 정도로 신뢰도를 적용한 경우이다. 낙뢰나 산불이 났을 때 2회선 고장이 발생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 전문지의 조사에 따르면 낙뢰나 산불 등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에 의한 고장도 2005s년-2023년간 국내 765kV 송전선로 누적 고장건수 71건 가운데 61건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N-2라는 보수적인 기준이 필요한 이유도 수긍이 된다. 신뢰도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공짜는 아니다. 전력을 더 보낼 수 있지만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느는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비용을 줄이자면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제도적인 문제점도 따른다. 기술적 조작도 시간이 걸리고, 특정 지역이나 선로에만 기준을 달리한다면 형평성 문제와 이해관계자의 항의와 민원이 빗발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신뢰도 기준에 대해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담 컨트롤 타워나 전문역량이 없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다고 넋 놓고 송전망 새로 지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태도이다. 신뢰도 문제도 때와 상황에 따라 상세하게 구분해서 각각의 리스크와 대처 방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 낙뢰와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를 우려해야겠지만 일년 내내 낙뢰 가능성이 있거나 산불이 나는 것은 아니다. 어렵다면 미리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전력수요도 항상 일정하게 부하가 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말과 주중으로 나누고, 피크 때와 저부하시를 나누어서 상황별로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세부적으로 검토도 해봐야 한다.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도 시간대별로 적용하는데 송전선도 그런 세부적인 검토를 왜 못하는가? 기술과 과학이 발전하는 것은 이런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이를 구체적으로 세분화해서 분석해보고,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하며, 이를 규정과 법과 필요시 경제적 인센티브로 뒷받침할 수 있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송전망에 대한 신뢰도 기준과 위험관리 시스템을 검토하기 어렵다고 포기하며 수조 원씩 들어가는 전력망 공사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있는 자원을 가지고도 지혜롭게 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연구해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조성봉

[김한성 칼럼] 생성형 AI 시대, 정부가 중심에 서야 할 이유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인공지능(AI)은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을 혁신하며 미래를 재정의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는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비어스(Obvious)'라는 AI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2,500달러에 낙찰되어 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딥마인드의 AI '알파폴드(AlphaFold)'는 단백질 구조를 단 몇 시간 만에 예측하여 신약 개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핀테크 기업들은 AI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금융 서비스로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테슬라의 자율주행 차량은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교통 안전을 향상시킨다. 나아가 스마트 시티에서는 AI가 교통 신호를 최적화하고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도시 생활의 질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의 이면에는 윤리적 문제와 법적 과제가 산재하다. 지난해 연말 뉴욕타임스가 Open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최근 캐나다에서도 유력 일간지 두 군데에서 OenAI를 상대로 똑같은 소송이 반복되고 있다. AI 모델이 저작권으로 보호된 기사를 무단으로 학습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AI의 데이터 활용에 대한 새로운 기준 설정을 요구하며, 지적 재산권 보호와 기술 발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맥킨지는 AI로 인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15%에 해당하는 4억명의 근로자가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측하지만, 세계경제포럼(WEF)은 2022년 보고서에서 AI와 기술혁신이 2025년까지 9,7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는 AI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가져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AI가 만들어가는 변화가 단지 긍정적인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AI 기술은 우리의 미래를 혁신할 거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잠재력이 긍정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정부의 중심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단순히 기술 혁신에 집중하기보다 부정적인 영향에 대비하고,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다른 국가에 앞서서 AI 시스템을 위험 수준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해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며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려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율 규제를 중심으로 기술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AI 기본법을 최근에야 제정하며 윤리적 AI와 안전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규제 체계로는 아직 미비한 상황이다. 기술의 발전과 윤리적 사용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중심을 잡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에, 한국의 준비 상태는 여전히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AI가 가져올 기회와 도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성과 평가 체계 마련, 균형 발전 지원, 유연한 규제 도입을 통해 기술 혁신과 윤리적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책은 '산업 육성', '윤리적 사용 보장', '기술 신뢰성 강화'라는 방향성 만을 제시하고 있으며, 실행과 세부적 실효성이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윤리적 AI 개발을 위한 산학연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윤리적 AI 개발은 데이터 출처를 명확히 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과제이다. 이를 위해 학계, 산업계, 연구기관 간의 협력을 통해 윤리적 AI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카이스트와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주요 기관과 기업은 AI 윤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각각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인 노력을 더욱 확대하고 통합된 접근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독립적인 'AI 윤리위원회'의 설립이 필요하다. 둘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AI 기술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게도 혁신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들이 AI 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는 재정적 지원과 실무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AI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AI 기술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해외 유망 기업과의 파트너십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각국의 요구에 부합하는 현지화 전략수립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국내 AI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국제 전시회와 컨퍼런스에서 한국의 AI 기술력과 혁신 사례를 홍보해야 한다. 아울러, 글로벌 AI 표준 설정과 기술 오용 방지 논의에도 적극 참여하여 국제 사회에서 신뢰받는 AI 기술 리더십을 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역할을 통해 한국 AI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혁신을 이루도록 지원해야 한다 결국, AI 기술의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기술 혁신과 윤리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은 정부가 주도해야 할 과제이다. 이제 AI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단계를 넘어, 그 가능성을 사회와 연결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AI와 함께 만들어갈 미래는 바로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 김한성

[EE칼럼] 유상할당, 그 한계와 오해: 배출권거래제의 진정한 목적은?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둘러싸고 특히 4차 기본계획 발표 이후 다가오는 할당계획 발표를 앞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유상할당(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배분하는 대신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도록 하여, 배출권의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정부 재정을 확보하는 제도)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를 놓고 말들이 많은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유상할당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원리를 간과한 채 이뤄진 오해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상할당 자체는 배출권거래제 하 온실가스 감축과는 아무런 관계 없다. 예컨데, 발전전환 부문에 유상할당 비율을 100%로 늘리면 분명 전환부문은 생산에 따른 평균가격 상승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렇게 감축된 배출권의 수요는 시장 전체의 수요감소로 반영되어 배출권의 가격하락에 반영되고, 따라서 정확하게 감축된 양 만큼 산업 등 기타부문에서 오히려 배출량이 늘어나게 된다. 제로섬인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원리 자체가 그러하다. 누가 얼마를 배출하든 상관없이 전체의 총량만을 통제할 뿐이다. 예컨데 전환부문이 유상할당 때문에 전력생산 비용이 상승해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등 감축에 나선다 하더라도, 어차피 사전에 결정된 전체 배출허용총량은 어디 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줄이면 누군가는 늘린다. 그래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유상할당 비율을 늘려야한다는 명제는 틀렸고 오해라는 것이다. 대신 “석탄화력을 폐쇄하고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로의 발전으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유상할당을 늘린다든가, 즉 유상할당을 늘리는 부문에 왜 이 부문을 문닫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 명분이 필요하다. 두개는 완전히 다르다. 유상할당 자체는 전체 배출권거래제 하 온실가스 감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즉 전체적인 감축에는 역할이 없고, 부문 간에 상대적인 감축 부담의 차별화만 줄 뿐이다. 사실 이것은 기존 무상할당 하에서의 조정계수 조정만으로도 간단히 해결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상할당을 논의하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유상할당의 진정한 목적은 온실가스 감축이 아니라, 정부 재원의 확충에 있다. 이는 특정 부문에 더 많은 감축 책임을 부여하려는 정치적 명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예컨대, 유상할당을 통해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줄이고, LNG 발전이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려는 정책적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와 유상할당의 비율 증가는 명확히 분리되어 논의돼야 한다. 문제는 유상할당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정치적 명분 아래 남용될 가능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명분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유상할당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감축 가능한 경로, 예컨대 에너지 전환을 유도하거나 기존 무상할당 체계에서의 조정계수를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는 것은 단지 재원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봐야 하며, 이를 통해 거둬들인 자금을 사회적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재투자하는 청사진이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상할당은 어디에 쓰일 수 있는가? 온실가스 감축을 그냥 민간에 맡겨 두기 보다 정부가 예산 사업으로서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면 그제서야 이는 당연히 인정받을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규제 정책이 민간 영역의 자율적 감축 활동을 대신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보조금 사업이나 예산 사업을 통해 직접적인 감축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데 재원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사업체가 주로 참여하는 ETS 외에도 소규모 기업이나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은 추가적인 정부 재원이 요구될 수 있다. 따라서 전반적인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려면 별도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앞서 발전부문의 에너지 전환과 같은 특정 부문에 대한 명분과는 별도이다. 즉, 정부가 재원을 걷어 사회 전체적으로 차별적으로 어떤 생산성 있는 일을 하겠는가이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제발 온실가스 감축을 유상할당 비율을 늘리는 명분으로 활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명제 자체가 틀렸음에도 많은 정책 결정자들과 정치권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반복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정책이 이러한 잘못된 이해에서 결정되면, 당연히 불필요한 정책의 부작용만 양산시키며 제도에 대한 저항만 불러올 뿐, 실질적인 기후변화 억제 실적 측면에서는 전혀 도움도 안된다. 왜 특정 부문이 유상할당을 통해 추가적인 세금을 내야 하며, 이렇게 걷힌 정부 예산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부문이 존재한다는 것이 먼저 청사진으로 국민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유종민

[EE칼럼] 4차산업혁명과 기후변화협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에너지 신기술은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1980년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인류가 1차산업혁명 이후 지금의 문명을 이루었으며 앞으로 정보혁명과 정보사회, 즉 4차산업혁명이 도래할 것임을 예측한 바 있다. 기후변화협약이나 탄소중립선언에 대한 논의에서도 정보혁명과 정보사회는 필연적인 미래의 모습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미래에는 전기가 중심이 되는 에너지시스템이 필요함은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지금의 전기 공급 및 소비 시스템과는 확연히 다른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신기술은 어떤 것일까? 1차산업혁명은 1760년경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명과 면(cotton) 제조업의 발전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석탄이 주요 에너지원으로 등극하였다. 2차산업혁명은 에디슨과 테슬라로 대표되는 전기의 대량생산 및 석유를 주요 에너지원의 위치로 끌어올린 자동차산업의 발달로 대표되며 3차산업혁명은 전자, 통신산업의 발달로 대표된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과 함께 새로 출현한 에너지원은 재생에너지 정도로 1, 2차 산업혁명과 함께 나타난 전기나 석유, 석탄 등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24년이 저물고 있는 지금, 우리는 모두 4차산업혁명이 어떠한 키워드로 설명되는지 알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이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이를 포럼의 주요 아젠다로 채택하고 논의하였는데, 4차산업혁명이 성공하는데 주요 장애요인으로 등장한 이슈가 새로운 기술들이 에너지를 엄청나게 더 많이 소비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후변화협약 쪽 역시 역시 비슷한 전개로 가고 있다. 세계 최대 컨설팅회사인 매켄지(McKinsey & Co.)는 2020년 『Net-Zero Europe』라는 보고서를 통하여 유럽이 탄소중립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약 44%를 탄소중립발전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유럽에서 전기의 사용량이 현재 대비 약 2.5배 이상으로 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전체 에너지사용량 중 전기의 비율이 20~22% 수준이며 나머지 80%는 열이나 동력이다.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이들 80% 중 상당 부분이 전기로 변환되어야 하는데, 절반만 변환한다고 한다면 현재의 전기사용 비율을 60%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발전소가 지금의 3배, 전력망도 3배가 필요하게 됨을 말한다. 여기에 4차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인하여 인공지능 사용 및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는 상황을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발전시설이 지금보다 수배 이상 늘어나야 할 것이다. 님비(NIMBY)를 고민할 여유도 없이 마을마다, 아파트단지마다 발전소가 하나씩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올해 5월 말에 실무안이 만들어진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실제로 2038년 국내 최대 전력 수요가 129.3GW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들 중 70% 이상을 무탄소 전기로 생산한다는 목표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많은 전기를 제대로 공급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인류는 3차산업혁명 이후 지난 수십 년간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는 데 실패하고 있다. 탄소중립과 4차산업혁명이라는 목표가 눈앞에 있지만 우리 손에 있는 것은 1, 2, 3차 산업혁명 때 찾았거나 만들어 사용해 오던 에너지원들 뿐이다. 그 반면 전력 소비에서의 기술혁명은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다. 정보통신 및 반도체 분야의 기술 발전 덕분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무어의 법칙 못지않게 알려진 법칙에 쿠미의 법칙(Koomey's law)이 있다. 컴퓨터가 한번 연산을 수행할 때마다 사용하는 에너지량이 1.5년마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어 왔다는 법칙이다. 그 덕분에 최근에 개발된 RFID 센서들은 전력소모량이 거의 없으며, 생체모방형(neuromorphic) 반도체를 사용하는 전자제품들은 1백만분의 1 수준으로 전기 소모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장관을 지낸 공학박사인 드레이슨 경(卿)이 대표를 맡고 있는 영국 회사인 Freevolt 회사는 허공 중의 통신 및 Wi-fi 신호 등 각종 라디오주파수(RF)의 미세한 에너지들을 모으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기술과 무선충전기술을 결합하여 전기에너지의 공급 없이도 작동이 가능한 전자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또한 발전원과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줄여 전력망 건설을 줄이거나,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4차산업혁명 기술을 사용하여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프로슈머(prosumer) 기술 역시 크게 발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에너지효율을 극대화한 제품들이다. 정보통신의 기술혁명이 전기를 사용하는 기기들의 에너지 효율 혁신을 이끌고 있다. 허은녕

[김상호 칼럼] “AI시대, 하남 비영리활동가 응원합니다”

다음세대재단과 카카오임팩트가 최근 비영리활동가 교육을 위해 주최-주관한 '2024년 제17회차 체인지온(ChangeON)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ChangeON 컨퍼런스는 비영리활동가들이 공익적 가치와 사회변화 원동력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창의적인 생각과 정보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올해 컨퍼런스에는 전국에서 모인 비영리활동가 387명이 '사랑은 해방의 씨앗'이란 주제로 전문가 강연을 들었습니다. 특히 세션 2, '기술에서 사랑을 배우다'에서 류석영 카이스트 교수의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AI와 SW',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대표의 'AI 기술, 우리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는 인공지능(AI)시대 비영리활동가를 위한 유익한 나침반이 됐습니다. 2022년 챗GPT 출현 후, AI는 산업과 세상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 샘 알트먼 대표는 AI능력 수준을 5단계로 제시했습니다. 1단계(챗봇, Chatbots)는 인간과 대화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수준, 2단계(추론가, Reasoners)는 인간 수준 문제해결능력을 보유한 경우, 3단계(대리인, Agents)는 이용자를 대신해 며칠간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고, 4단계(혁신자, Innovators)는 새 혁신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수준입니다. 최종 단계인 5단계(조직, Organizations)가 조직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할 때, 현재 오픈AI 기술은 인간처럼 추론할 수 있으며, 문제해결능력을 보유하는 2단계에 도달하기 직전 수준으로 평가했습니다. 올해 9월 출범한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염재호 부위원장이 “인류가 물과, 전기 사용으로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처럼, AI는 문명사적 대전환 상징이 되고 있으며 새로운 국가 디자인을 고민해야 한다.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고 기회와 위험을 함께 강조한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PC와 인터넷 시대, 플랫폼(카카오, 네이버 등) 시대에서 대부분 작업을 인간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이 10년 내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 속에서, 공동체를 위한 AI 상용화 시대를 위해 비영리활동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질문했습니다. 류석영 카이스트 교수는 전산학과 학생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만 공부했던 본인이 40대에 인문학을 접하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코칭과 상담사 공부를 했다며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SW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AI기술이 '돕는 사람을 위한 도구'가 되기 위해 과학과 인문, 학계와 산업계가 함께 노력하자고 제언했습니다.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대표는 'AI기술, 우리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발제를 통해 △AI기술로 돌고래(멸종위기 남방 큰돌고래)를 위험한 관광에서 지켜주기 △챗봇기술로 유기동물과 입양 희망자 연결하기 △AI기술로 후원모금 의사결정 돕기 △AI기술로 백내장 진단하기(세계 시각장애인구, 2억 8000여명) △AI기술로 재생에너지 효율 높이기 △AI기술로 느린 학습자와 세상을 연결하기(전체 국민 13.6%가 느린 학습자) △게임기술로 휠체어 사용자 건강하게 만들기 △AI기술로 건강취약계층 복약 상담 돕기 △AI기술로 농-난청인 소통 돕기(40만 농-난청인과 문자통역사 매칭 앱) 등 9개를 착한 사례(Social Good)로 제시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인공지능으로 만든 독립운동가(멈춤 사진 속 독립운동가에게 광복을 알려주고 감격 표현을 생생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 AI영상이 일반인이 하루만에 A 기술로 만들었다고 소개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컨퍼런스에 참여한 387명 비영리활동가는 가장 시급하게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① 사회적 고립 및 정신건강 악화 (24.4%) ② 저출생-고령화 문제(13.2%) ③ 사회적 돌봄 부족(12.2%) ④ 기후위기(11.9%) ⑤ 인권문제, 혐오 및 차별(11.9%) ⑥ 고용 및 노동 불안정(7.4%) ⑦ 빈부격차(6.1%) ⑧ 기술변화로 인한 양극화(5.1%) ⑨ 교육 불평등(2.9%) 및 주거불안(1.6%)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영리활동가가 이런 과제들을 대상으로 하나의 사례가 아닌 지속가능한 AI기술문화(Tech for Impact)를 만들기 위해, AI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상상하고 고민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하남시에도 다양한 비영리활동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활동가, 평생교육활동가, 청소년지도사, 숲해설가, 문화해설사, 사회적기업활동가, 사회복지활동가, 장앤인돌봄활동가, 노인돌봄활동가 등 비영리활동가가 하남 공동체를 가꾸어갑니다. 부족한 인력과 과중한 업무, 낮은 임금과 불완전한 고용형태, 보수적인 조직문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사회에 이바지하고 현장에서 느끼는 보람으로 비영리를 사랑하는 활동가 분들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고 설파한 은유 작가 말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비영리활동가가 위기와 기회가 함께 공존하는 AI시대를 맞이해,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해방의 열매를 맺기를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EE칼럼] 신뢰 상실의 시대

특별법 전성시대다. 최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특별법'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했더니, 22대 국회에서 특별법 이름을 달고 발의된 법안이 369건 나왔다. 개원한 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말이다. 원자력 관련 특별법안도, 여야에서 5개나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비롯해 '선진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원전수출지원 활성화 특별법', '원전산업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10여 개에 달한다.과거 원자력 분야에서는 '원자력진흥법', '원자력안전법' 등 일반법과 이들 법에 따른 정부의 정책과 계획으로도 원전 산업을 지원하고 규제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특별법은 일반법에 대해 그 범위를 한정하여 특별히 제정된 법이다. 그래서 특별법은 현안 해결 등 특수 목적 달성에 효과적 수단이다. 그러나 특별법 남발은 입법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통일적인 법체계를 훼손하는 단점이 있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특별법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자체 핵무장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통일연구원이 지난 6월 27일 공개한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66%가 찬성했다. 이와 함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재처리 능력을 확보해 잠재 핵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나 대중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북한의 잦은 도발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나, 국익에 실제 도움이 되는지는 냉철하게 따져볼 일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에 기반한 확장억제력을 북핵 대응 수단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이것이 북핵 대응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는 형국이 돼버렸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감축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었다. '신뢰 상실.' 표면상 별개인 듯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의 밑바닥에 깔린 공통 원인이다. 원자력 관련 특별법이 왜 그리 많이 필요할까? 다수의 원자력 현안은 해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단임 정부의 약속과 정책만으로는 완전 해결이 어렵다. 과거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 정부 때 완전히 뒤집어졌다. '공론화위원회'라는 꼼수를 동원해 너무나 쉽게 바꿔버렸다. 이렇다 보니, 원자력 정책의 일관성 보장은 공염불이 되었다. 그래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원자력 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보장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특별법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공무원들의 믿음도 사라졌다. 과거에는 정부 정책이나 상관 지시에 따라 일한 공무원들은 면책 대상이었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했던 공무원 조직에서 상관 지시를 거부하고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 때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소에 인신 구속까지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니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업무에 대해서는 실행에 옮기기 전 확실한 추진 근거를 찾게 됐다. 그것이 바로 특별법이다. 자체 핵무장론은 왜 힘을 얻어가고 있을까? 한·미 확장억제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확장억제에 대해 두 가지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필요할 때 확장억제가 제대로 작동할 것을 보장할 수 있나? 미국 내 정권이 교체돼도, 세대가 바뀌어도 확장억제의 지속성은 보장될까? 한·미 정부는 자체 핵무장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 질문들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도 감정만 앞세운 핵무장론은 자제해야 한다. 안보와 에너지는 우리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들 문제의 해결책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나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들 문제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여‧야와 정부가 합심하여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 상실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멈추는 최고의 해법이다. 문주현

[특별기고] 전기의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 에너지를 설계하다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전기의 시대이다. 에너지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국가 존망의 핵심 문제이다. 한국은 현재 에너지의 93%를 수입하고 있다. 이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적 협력과 기술적 도약을 통해 에너지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우선,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기술 협력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건설 기술을 결합하면, 경제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춘 미래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예컨대,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전력은 국내 전체 전력의 12%를 차지한다. 또한, 용인 반도체 도시가 본격 가동되기 위해서는 대형 원전 6개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반도체 전쟁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한국과 미국과 일본의 도시가스 협력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매년 약 50조 원의 LNG를 수입하고 있으며, 일본은 약 70조 원 규모를 수입하고 있다. 동남아 10개국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많은 도시가스를 사용할 것이다. 향후 30년간은 도시가스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미국은 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알래스카 주지사는 가스를 개발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구매를 하고, 비축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한미일 실질적 경제협력이 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극동 러시아 가스에 투자하는 국제정세가 마련된다면 러시아까지 협력이 일어나게 된다.그렇게 되면 한반도 동해는 에너지 협력이 일어나는 평화의 바다로 재탄생할 수 있다. RE100 목표 달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서해안 해상 풍력 발전은 한국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핵심 프로젝트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RE100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전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이 없고 가격과 품질이 우수한 전기의 생산은 기후 위기 극복 시대를 돌파하는 첫 번째 과제이다. 데이터센터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약 8000여 개의 데이터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향후 4000개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센터는 전기의 거대한 소비처로,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아시아 24억 명의 데이터 허브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한반도 정세가 불안한데 데이터센터를 두는 게 맞냐고 하는 데 세계적인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두는 길이 바로 평화를 정착시키는 인류의 지혜 프로젝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세계적인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한반도 평화와 국제 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에너지와 전기는 단순히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SMR, 도시가스 협력, RE100, 데이터센터와 같은 전략적 과제를 통해, 한국은 전기의 시대를 선도하고 국제적 에너지 협력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과감한 도약과 혁신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이다. 이광재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전 국회의원

[EE칼럼] 다시 보는 ‘조직화된 무책임성’

지난달 게재된 필자의 졸고 '에너지 정책 기조 강화를 위해...(조직화된 무책임성)부터 벗어나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조직화된 무책임성'이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 새로운 기고 준비과정에서 지난달 졸고 내용을 다시 학습할 필요성이 새롭다. 그 주된 이유는 '아제르바이잔' 수도인 '바쿠'에서 개최된 제2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P 29)의 최종 합의 내용 때문이다. 많은 '조직화된 무책임성'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선-후진국 간의 이해 다툼과 미래 세대로의 책임 미루기 경쟁은 더욱 심화 되고 구조화되었다. 에너지 부문과 지구환경 대응 정책 '프레임'이 급변하고 있다. 이에 유례없이 같은 '이슈'로 두 번째 졸고를 준비하는 데에 이르렀다. COP29에서는 공식 폐막일인 22일(현지시간)까지도 핵심 의제인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 합의도출에 실패하는 진통을 겪었다. 밤샘 협상 끝에 약 200개 국가들은 기후 위기 취약국들을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최소) 3000억 달러(약 421조원)를 제공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머지 재원은 민간 자본의 유치, 국제 금융기관의 기여, 주요 신흥국의 기여를 통해 충당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번 선진국 약속은 구속력 조항이 없다. 따라서 이번 선진국들의 약속은 파리협약의 자발적 공여 규모와 비교해 3배 수준이나 개도국들은 불만이다. 당초 개도국들은 역사적 책임을 생각하면 선진국들이 최소 연간 5000억 달러(약 702조원)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 역시 불만이 크다. 그들은 재원 부담 증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중국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나라와 산유국, 그리고 신흥경제국들도 같이 부담할 것을 요구해왔다. 사실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활동 등을 돕기 위한 신규재원 조성 규모와 방법, 그리고 기여 범위를 놓고 선진국-개도국 그룹 간의 이견과 갈등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왔다. 반면 이번 회의에서 성과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스템에 대한 합의이다. 탄소배출권은 국가나 기업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체가 산림 보호, 재생에너지 전환 등을 통해 절감한 온실가스의 양을 배출권으로 바꿔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2015년 파리협정 제6조를 통해 국가 간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10년 가까이 이를 위한 세부 이행 지침을 확정 짓지 못해 휴면 상태를 유지해 왔다. 크게 알려지지 않으나 중요한 합의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여러 COP 관련 불확실성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글로벌 차원 국가경쟁력과 국익증대를 위해서는 청정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 기술이 얼마나 빨리 경제성 있게 실용화하는냐에 달려 있다는 오래된 에너지 경제학의 해결과제에 천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높은 에너지 수입의존도에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화석연료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이(異)종 에너지 산업간 M&A 전략추진이 필수적이다. 미래 선진 에너지시장의 특징 중 하나가 석유-가스, 가스-전력 등 서로 다른 에너지 산업간 결합과 융합이 다. 어떠한 거대 기업이라도 비용 절감 없이는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자산의 크기보다 재무적 건전성이 기업 미래를 결정한다. 따라서 양적 성장보다 질적 건전성을 중요시해야 한다. 단일 에너지 제품/서비스 제공 시대가 끝나고 종합 에너지산업 시대가 본격화된 셈이다. 한 마디로 영역독점 형태의 에너지산업 시대는 끝나고 있다. 여기에다 필자는 본고 작성과정에서 새로운 우리나라 고유의 '조직화된 무책임성'을 발견하였다. 이번 주 발간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 기사 내용이다. 'Which countries have the most-educated politicians?'이라는 기사에서, 놀랍게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한국 선출직 정치인의 1/3이 박사학위(PhD) 소지자이란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정운영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가? 대답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명확한 대답을 꺼린다.'라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는 문구로 대신한다. 가장 지적 수준이 높다는(?) 우리 정치인들이 자신들 만의 이익을 위해 일반 국민복지와 국리민복 고양 의무를 어긴 사례는 우리 정치 질곡(桎梏)의 근원이다. 자기들만의 '리그'를 조직하고, 이익 배분 구조를 장기 운영해온 것은 역대 정치 '딜레마'이자 주된 비판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網) 개편에다 새로운 COP 체제와 탄소배출권 거래질서가 도래한 지금도 정치권은 자기 이익보전과 확대에 몰두하여 에너지 시장변화에 소흘 할 것 같다. 70년대 석유파동보다 더욱 구조적이고 오래갈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환경여건에서 엉뚱한 정책으로 국리민복을 저해할까 두렵다. 한 마디로 국민을 배신한 정치권의 '조직화 된 무책임성'이 겁난다. 최기련

[EE칼럼]전력산업에 종속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

오랜만에 연구소 분원에서 개최된 회의에 참석했던 차에 점심시간을 빌어 소화도 시킬 겸 주위를 산책하게 되었다. 걷던 중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크고 웅장한 건물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국내의 한 빅테크 기업에서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였다. 주위에 그만한 규모의 건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건축물이었는데,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수용 및 운용하고 있는 하이퍼스케일(hyper-scale)급의 데이터센터라고 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개인용컴퓨터(PC)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2023년 기준으로 총 150개를 넘어섰다. 그 추이를 살펴보면 2010~2020년에 비해 최근 3년 동안의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커졌는데, 2029년까지 예정된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면 700개가 넘는다. 컴퓨팅 시스템 및 관련 하드웨어 장비들이 집적된 데이터센터의 이러한 증가세는 우리 일상의 디지털화와 함께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소비량의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7월 기준으로 이동전화 가입자당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15GB를 넘어섰으며, 2024년 9월 기준으로는 5세대 이동통신 사용자들이 평균 28GB를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개인이 휴대하고 있는 핸드폰을 통해 이용하는 데이터소비량이 이 정도이니, 데스크탑이나 랩탑, 테블릿 등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데이터의 총량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이슈는 이러한 데이터 사용을 뒷받침해 주는 데이터센터의 운영 및 유지에 있어 많은 전력량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은 학습이나 추론에 필요한 대규모의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의 컴퓨팅, 그리고 냉각 과정 등에 기존의 정보처리 기술보다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적용 범위 확대 및 빠른 기술 발달 속도를 고려하면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6년 기준 최대 1,000TWh를 넘어설 수 있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총 전력 사용량(588TWh)의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미 주요 국가들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증가세를 반영하여 전력수요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그에 맞는 정책 등을 수립하고 있다.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 사용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데이터센터의 증가는 필수 불가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력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어 관련된 전력계통 및 전력수급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공공 데이터센터보다 비중이 높은 민간 데이터센터의 경우 70% 이상이 이미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지만, 관련 사업자들은 광섬유망 등 정보통신 인프라의 사용, 소비자 근접성 확보를 통한 데이터전송 지연 발생의 최소화, 관련 서비스 제공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신속 대처 등을 이유로 여전히 수도권 입지를 선호하고 있다. 작년에 정부에서 발표한 데이터센터 신규 신청 기준 전력수요 전망 자료를 보면, 2029년까지 지리적 분포나 전력수요 양면에서 모두 수도권 비중이 80%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4년 상반기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센터들은 인허가 및 착공이 대부분 지연되었으며, 신규 허가를 득한 사업자는 단 한 군데뿐이다. 전력계통 및 수급상의 부담과 맞물려 데이터센터의 적기 공급이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있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문제를 우려하여 수립된 정책들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자들에게 유인책은 약하고 규제만 많아진 것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데이터센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경제의 둔화나 데이터 외주화로 인한 보안 취약성 증가 등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나 국민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센터의 구축 및 운영은 전력의 원활한 공급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지원을 충분히 해왔던 전력산업이 앞으로의 디지털화와 그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집단지성 등을 통해 혜안을 모을 때이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정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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