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1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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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신뢰 상실의 시대

특별법 전성시대다. 최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특별법'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했더니, 22대 국회에서 특별법 이름을 달고 발의된 법안이 369건 나왔다. 개원한 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말이다. 원자력 관련 특별법안도, 여야에서 5개나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비롯해 '선진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원전수출지원 활성화 특별법', '원전산업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10여 개에 달한다.과거 원자력 분야에서는 '원자력진흥법', '원자력안전법' 등 일반법과 이들 법에 따른 정부의 정책과 계획으로도 원전 산업을 지원하고 규제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특별법은 일반법에 대해 그 범위를 한정하여 특별히 제정된 법이다. 그래서 특별법은 현안 해결 등 특수 목적 달성에 효과적 수단이다. 그러나 특별법 남발은 입법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통일적인 법체계를 훼손하는 단점이 있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특별법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자체 핵무장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통일연구원이 지난 6월 27일 공개한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66%가 찬성했다. 이와 함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재처리 능력을 확보해 잠재 핵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나 대중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북한의 잦은 도발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나, 국익에 실제 도움이 되는지는 냉철하게 따져볼 일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에 기반한 확장억제력을 북핵 대응 수단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이것이 북핵 대응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는 형국이 돼버렸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감축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었다. '신뢰 상실.' 표면상 별개인 듯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의 밑바닥에 깔린 공통 원인이다. 원자력 관련 특별법이 왜 그리 많이 필요할까? 다수의 원자력 현안은 해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단임 정부의 약속과 정책만으로는 완전 해결이 어렵다. 과거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 정부 때 완전히 뒤집어졌다. '공론화위원회'라는 꼼수를 동원해 너무나 쉽게 바꿔버렸다. 이렇다 보니, 원자력 정책의 일관성 보장은 공염불이 되었다. 그래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원자력 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보장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특별법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공무원들의 믿음도 사라졌다. 과거에는 정부 정책이나 상관 지시에 따라 일한 공무원들은 면책 대상이었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했던 공무원 조직에서 상관 지시를 거부하고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 때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소에 인신 구속까지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니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업무에 대해서는 실행에 옮기기 전 확실한 추진 근거를 찾게 됐다. 그것이 바로 특별법이다. 자체 핵무장론은 왜 힘을 얻어가고 있을까? 한·미 확장억제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확장억제에 대해 두 가지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필요할 때 확장억제가 제대로 작동할 것을 보장할 수 있나? 미국 내 정권이 교체돼도, 세대가 바뀌어도 확장억제의 지속성은 보장될까? 한·미 정부는 자체 핵무장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 질문들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도 감정만 앞세운 핵무장론은 자제해야 한다. 안보와 에너지는 우리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들 문제의 해결책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나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들 문제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여‧야와 정부가 합심하여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 상실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멈추는 최고의 해법이다. 문주현

[특별기고] 전기의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 에너지를 설계하다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전기의 시대이다. 에너지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국가 존망의 핵심 문제이다. 한국은 현재 에너지의 93%를 수입하고 있다. 이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적 협력과 기술적 도약을 통해 에너지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우선,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기술 협력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건설 기술을 결합하면, 경제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춘 미래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예컨대,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전력은 국내 전체 전력의 12%를 차지한다. 또한, 용인 반도체 도시가 본격 가동되기 위해서는 대형 원전 6개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반도체 전쟁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한국과 미국과 일본의 도시가스 협력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매년 약 50조 원의 LNG를 수입하고 있으며, 일본은 약 70조 원 규모를 수입하고 있다. 동남아 10개국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많은 도시가스를 사용할 것이다. 향후 30년간은 도시가스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미국은 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알래스카 주지사는 가스를 개발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구매를 하고, 비축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한미일 실질적 경제협력이 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극동 러시아 가스에 투자하는 국제정세가 마련된다면 러시아까지 협력이 일어나게 된다.그렇게 되면 한반도 동해는 에너지 협력이 일어나는 평화의 바다로 재탄생할 수 있다. RE100 목표 달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서해안 해상 풍력 발전은 한국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핵심 프로젝트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RE100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전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이 없고 가격과 품질이 우수한 전기의 생산은 기후 위기 극복 시대를 돌파하는 첫 번째 과제이다. 데이터센터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약 8000여 개의 데이터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향후 4000개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센터는 전기의 거대한 소비처로,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아시아 24억 명의 데이터 허브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한반도 정세가 불안한데 데이터센터를 두는 게 맞냐고 하는 데 세계적인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두는 길이 바로 평화를 정착시키는 인류의 지혜 프로젝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세계적인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한반도 평화와 국제 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에너지와 전기는 단순히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SMR, 도시가스 협력, RE100, 데이터센터와 같은 전략적 과제를 통해, 한국은 전기의 시대를 선도하고 국제적 에너지 협력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과감한 도약과 혁신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이다. 이광재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전 국회의원

[EE칼럼] 다시 보는 ‘조직화된 무책임성’

지난달 게재된 필자의 졸고 '에너지 정책 기조 강화를 위해...(조직화된 무책임성)부터 벗어나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조직화된 무책임성'이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 새로운 기고 준비과정에서 지난달 졸고 내용을 다시 학습할 필요성이 새롭다. 그 주된 이유는 '아제르바이잔' 수도인 '바쿠'에서 개최된 제2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P 29)의 최종 합의 내용 때문이다. 많은 '조직화된 무책임성'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선-후진국 간의 이해 다툼과 미래 세대로의 책임 미루기 경쟁은 더욱 심화 되고 구조화되었다. 에너지 부문과 지구환경 대응 정책 '프레임'이 급변하고 있다. 이에 유례없이 같은 '이슈'로 두 번째 졸고를 준비하는 데에 이르렀다. COP29에서는 공식 폐막일인 22일(현지시간)까지도 핵심 의제인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 합의도출에 실패하는 진통을 겪었다. 밤샘 협상 끝에 약 200개 국가들은 기후 위기 취약국들을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최소) 3000억 달러(약 421조원)를 제공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머지 재원은 민간 자본의 유치, 국제 금융기관의 기여, 주요 신흥국의 기여를 통해 충당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번 선진국 약속은 구속력 조항이 없다. 따라서 이번 선진국들의 약속은 파리협약의 자발적 공여 규모와 비교해 3배 수준이나 개도국들은 불만이다. 당초 개도국들은 역사적 책임을 생각하면 선진국들이 최소 연간 5000억 달러(약 702조원)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 역시 불만이 크다. 그들은 재원 부담 증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중국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나라와 산유국, 그리고 신흥경제국들도 같이 부담할 것을 요구해왔다. 사실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활동 등을 돕기 위한 신규재원 조성 규모와 방법, 그리고 기여 범위를 놓고 선진국-개도국 그룹 간의 이견과 갈등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왔다. 반면 이번 회의에서 성과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스템에 대한 합의이다. 탄소배출권은 국가나 기업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체가 산림 보호, 재생에너지 전환 등을 통해 절감한 온실가스의 양을 배출권으로 바꿔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2015년 파리협정 제6조를 통해 국가 간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10년 가까이 이를 위한 세부 이행 지침을 확정 짓지 못해 휴면 상태를 유지해 왔다. 크게 알려지지 않으나 중요한 합의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여러 COP 관련 불확실성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글로벌 차원 국가경쟁력과 국익증대를 위해서는 청정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 기술이 얼마나 빨리 경제성 있게 실용화하는냐에 달려 있다는 오래된 에너지 경제학의 해결과제에 천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높은 에너지 수입의존도에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화석연료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이(異)종 에너지 산업간 M&A 전략추진이 필수적이다. 미래 선진 에너지시장의 특징 중 하나가 석유-가스, 가스-전력 등 서로 다른 에너지 산업간 결합과 융합이 다. 어떠한 거대 기업이라도 비용 절감 없이는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자산의 크기보다 재무적 건전성이 기업 미래를 결정한다. 따라서 양적 성장보다 질적 건전성을 중요시해야 한다. 단일 에너지 제품/서비스 제공 시대가 끝나고 종합 에너지산업 시대가 본격화된 셈이다. 한 마디로 영역독점 형태의 에너지산업 시대는 끝나고 있다. 여기에다 필자는 본고 작성과정에서 새로운 우리나라 고유의 '조직화된 무책임성'을 발견하였다. 이번 주 발간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 기사 내용이다. 'Which countries have the most-educated politicians?'이라는 기사에서, 놀랍게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한국 선출직 정치인의 1/3이 박사학위(PhD) 소지자이란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정운영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가? 대답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명확한 대답을 꺼린다.'라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는 문구로 대신한다. 가장 지적 수준이 높다는(?) 우리 정치인들이 자신들 만의 이익을 위해 일반 국민복지와 국리민복 고양 의무를 어긴 사례는 우리 정치 질곡(桎梏)의 근원이다. 자기들만의 '리그'를 조직하고, 이익 배분 구조를 장기 운영해온 것은 역대 정치 '딜레마'이자 주된 비판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網) 개편에다 새로운 COP 체제와 탄소배출권 거래질서가 도래한 지금도 정치권은 자기 이익보전과 확대에 몰두하여 에너지 시장변화에 소흘 할 것 같다. 70년대 석유파동보다 더욱 구조적이고 오래갈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환경여건에서 엉뚱한 정책으로 국리민복을 저해할까 두렵다. 한 마디로 국민을 배신한 정치권의 '조직화 된 무책임성'이 겁난다. 최기련

[EE칼럼]전력산업에 종속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

오랜만에 연구소 분원에서 개최된 회의에 참석했던 차에 점심시간을 빌어 소화도 시킬 겸 주위를 산책하게 되었다. 걷던 중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크고 웅장한 건물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국내의 한 빅테크 기업에서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였다. 주위에 그만한 규모의 건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건축물이었는데,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수용 및 운용하고 있는 하이퍼스케일(hyper-scale)급의 데이터센터라고 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개인용컴퓨터(PC)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2023년 기준으로 총 150개를 넘어섰다. 그 추이를 살펴보면 2010~2020년에 비해 최근 3년 동안의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커졌는데, 2029년까지 예정된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면 700개가 넘는다. 컴퓨팅 시스템 및 관련 하드웨어 장비들이 집적된 데이터센터의 이러한 증가세는 우리 일상의 디지털화와 함께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소비량의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7월 기준으로 이동전화 가입자당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15GB를 넘어섰으며, 2024년 9월 기준으로는 5세대 이동통신 사용자들이 평균 28GB를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개인이 휴대하고 있는 핸드폰을 통해 이용하는 데이터소비량이 이 정도이니, 데스크탑이나 랩탑, 테블릿 등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데이터의 총량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이슈는 이러한 데이터 사용을 뒷받침해 주는 데이터센터의 운영 및 유지에 있어 많은 전력량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은 학습이나 추론에 필요한 대규모의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의 컴퓨팅, 그리고 냉각 과정 등에 기존의 정보처리 기술보다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적용 범위 확대 및 빠른 기술 발달 속도를 고려하면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6년 기준 최대 1,000TWh를 넘어설 수 있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총 전력 사용량(588TWh)의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미 주요 국가들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증가세를 반영하여 전력수요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그에 맞는 정책 등을 수립하고 있다.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 사용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데이터센터의 증가는 필수 불가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력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어 관련된 전력계통 및 전력수급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공공 데이터센터보다 비중이 높은 민간 데이터센터의 경우 70% 이상이 이미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지만, 관련 사업자들은 광섬유망 등 정보통신 인프라의 사용, 소비자 근접성 확보를 통한 데이터전송 지연 발생의 최소화, 관련 서비스 제공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신속 대처 등을 이유로 여전히 수도권 입지를 선호하고 있다. 작년에 정부에서 발표한 데이터센터 신규 신청 기준 전력수요 전망 자료를 보면, 2029년까지 지리적 분포나 전력수요 양면에서 모두 수도권 비중이 80%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4년 상반기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센터들은 인허가 및 착공이 대부분 지연되었으며, 신규 허가를 득한 사업자는 단 한 군데뿐이다. 전력계통 및 수급상의 부담과 맞물려 데이터센터의 적기 공급이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있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문제를 우려하여 수립된 정책들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자들에게 유인책은 약하고 규제만 많아진 것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데이터센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경제의 둔화나 데이터 외주화로 인한 보안 취약성 증가 등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나 국민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센터의 구축 및 운영은 전력의 원활한 공급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지원을 충분히 해왔던 전력산업이 앞으로의 디지털화와 그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집단지성 등을 통해 혜안을 모을 때이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정범진

[EE칼럼] 트럼프 2.0 시대의 에너지 정책

미국 제 47대 대통령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공공연하게 본인의 첫 부임일에 41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겠다고 말해왔다. WP(Washington Post)는 2022년 11월 15일부터 2024년 9월 10일까지 트럼프가 유세를 하는 하는 과정에서 '첫날'(on day one) 이라는 문구를 쓰면서 했던 공약들을 추적 정리해서 발표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불법이민자 추방과 교육개혁에 대한 공약이다. 실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첫날 불법이민자를 모두 추방하고 인종적 편견과 성적 차별의 부당함을 가르치는 교육제도를 바로잡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에 지치고 법치에 소외되었다고 느낀 국민들을 자극하여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특히 에너지 부분은 다양한 언급을 했지만 핵심은 바이든 정부가 수행한 수많은 친환경 뉴딜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것이 주된 공약이다. 바이든 정부가 수행한 차량의 연료배출 강화 등 환경규제와 전기차 생산 촉진을 위한 보조금 확대 정책을 '전기차 의무화'로 지칭하며 강력하게 폐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트럼프 당선자는 지구온난화를 사기라고 생각하며 바이든 정부가 금지한 공공부지에 대한 유가스전 시추를 모두 허용할 것이고 중단된 송유관 공사도 재개할 예정이고 현재 불허된 LNG 액화터미널 공사도 허용할 것임을 수 차례 공약하였다. “drill baby drill"은 트럼프의 가장 유명한 유세 문구이고, 사실 그 문구 앞에 트럼프가 “frack, frack, frack"을 외치는 장면이 더 있다. 셰일(shale)오일과 가스가 묻혀있는 지역민들에게 경제회복을 약속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미국 국민들의 머릿속에 석유와 가스를 대량 시추하여 에너지와 전력가격을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인플레이션에 지치고 힘든 중서부의 소외된 러스트밸트 국민들에게 물가안정을 선물해줄 대통령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AI로 떼돈을 버는 듯한 실리콘 밸리 엘리트들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로 인해 친환경 보조금과 세금공제 혜택을 받는 태양광과 전기자동차 산업들을 매일 TV로 보면서 생활의 변화는 없고 인플레이션에 고통스러운 중산층들은 천문학적인 친환경 재정확장을 멈추고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를 회복해줄 대안으로 그를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친환경 산업이 결국 중국에 종속되고 중국만을 위한 돈잔치임을 부각시켰고 이를 막기 위해서 중국 수입품에 60% 관세를 때려 미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미국 우선주의의 메시지가 통한 것이다. 매우 이론적으로 엉성하고 보호무역주의가 결국 미국의 인플레이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에도 민주당 정권하에서 법치에서 소외됐다고 느끼고 인플레이션에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고 느끼는 절대 다수를 투표장으로 이끌어서 선거를 승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파리협약을 탈퇴했고 이번에도 첫날 파리협약을 탈퇴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 또한 금번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9에 트럼프는 당연히 참석하지 않았고 독일 숄츠, 프랑스 마크롱, EU 집행위원장인 폰데어라이언 등이 불참했다. 주요국의 인사들이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아제르바이젠 바쿠에서 열린 COP29에서 합의한 선진국이 $300 Billion을 모아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저감에 도움을 줄 펀드를 마련한다는 최종안은 아무도 지켜질 거라고 믿지 않는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한 합의라고 보인다. 원래부터 탄소저감 담합은 지켜지기 어려웠는데 미국이 당분간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지키는 나라는 바보가 돼버린다. 모든 나라는 이제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이제 명분이 아닌 실리를 위한 국익에 맞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새로운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현명한 협상을 통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조홍종

[김성우 칼럼] 트럼프 2기와 기후변화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트럼프 2.0'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트럼프 1기때 기후변화는 사기(hoax)라고 언급해 향후 정책에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이에 후보 시절의 공약집(Agenda 47)과 선거유세 과정에서 언급한 내용, 그리고 인선 결과를 바탕으로 기후변화 정책 및 영향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지난 7월 발표된 최종 공약집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10대 공약별 세부 항목들로 구성된 16페이지짜리 책자에 '기후'나 '환경'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 대신 에너지 해방(unleashing), 규제 완화 및 철폐, 안정/풍부/저렴한 에너지 등에서 기후변화 정책 방향을 포괄하고 있어, 여기에 선거유세 과정에서의 발언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방향이 보인다. 첫번째 방향은 환경적 요소는 무시하고 경제적 요소를 중시하는 정책의 확대이다. 선거유세 과정에서 연방정부 석유/가스 시추 허가 절차 완화∙가속화, 화석연료 발전소 건설∙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설치, 원자료 발전소 가동, 투자 등을 통한 원자력 에너지 생산 지원, 미 환경보호청(EPA) 규제 철폐 등 환경 규제 완화 등이 언급되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천연가스와 석유 생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했고, 바이든 정부에서 제한했던 연방 토지 내 시추를 허가하고 원유수송을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도 예고한 상태로 단기적으로 관련 산업이 활성화될 가능성은 높다. 두번째 방향은 경제성에 방해가 되는 비싼 환경성 강화 정책의 철폐이다. 사회주의적 그린 뉴딜 종식이나 전기자동차 의무화 폐지는 공약집에 명시되어 있고, 파리협정 탈퇴나 기후공시 기관장 교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미사용자금 철회 등은 선거유세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로,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의 역점 친환경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미국에서 최종 생산된 전기차 등 청정기술에 보조금을 주는데, 폐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액공제 관련 세부 지침을 수정하는 등 지원을 축소하거나 느리게 집행할 가능성은 높다. 또한 미국이 글로벌 기후대응 협정인 파리협정에서 다시 탈퇴할 경우, 다른 국가들이 탄소감축에 덜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고, 개도국 지원금도 감소해 국제사회의 기후협력을 한층 더 약화시킬 수 있다. 상술한 두 방향은 최근 지명한 인선에서 더 선명해 진다. 환경정책을 총괄하는 EPA청장에는 리 젤딘 전 하원 의원이 지명되었는데, 석유시추 등 경제활동을 막는 친환경 법안에 반대한 인물로 지명 직후 일자리 창출 및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국가 에너지 전략을 지휘하는 국가에너지회의 의장이자 내무부장관 지명자인 더그 버검은 미국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 3대 주(州)인 노스다코타의 주지사로, 지난 5월 “바이든의 화석연료에 대한 공격을 트럼프가 멈출 것"이라고 말한 인물이다. 지난 16일 에너지부 장관에 지명된 크리스 라이트는 아예 미국 2위 수압 파쇄(fracking·프래킹) 전문 기업 리버티에너지의 CEO이자 석유재벌로, 기후위기는 허구이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화석연료의 장점보다 적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기회 요인을 더 발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기후위기의 수단은 탄소중립이고 탄소중립의 핵심은 전기화인데, 미국시장내 중국기술의 부재는 우리나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및 전력기기 산업에 분명 호재다. 미국으로 가지 못하는 중국제품과의 글로벌 경쟁 심화는 이슈이지만, 친환경 규제가 심화되는 EU시장에서는 우리나라 수출제품의 탄소배출량을 낮추고 재활용비율을 높여 에코디자인법안처럼 EU에서 강제화되기 시작한 제품의 친환경 기준에 선제적으로 맞춤으로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화석연료 및 청정에너지를 다 활용할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나, 화석연료 자산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은 더 주목받을 것이므로 이를 활용해야 한다. 국가별 감축목표 및 기후투자가 위축될 것이고 국제사회의 기후대응 모멘텀도 약화될 것이지만, 이러한 위험 요인은 단기적일 확률이 높아, 병존하는 중장기적 기회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김성우

[EE칼럼]지역별 전기요금의 차등화는 재생에너지 자립도에 근거해야

정부는 2026년부터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내년 상반기 전기요금 도매가격을 지역별로 차등화한다고 한다. 발전소가 많아 전력자립도가 높은 지역은 싸지고 수도권과 같이 발전소에 비해 수요가 많아 전력자립도가 낮은 지역은 가격이 오른다. 현재 계획은 kWh당 최소 19원에서 최대 34원의 격차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 전국경제인협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대 도매가격 격차 34원이 그대로 소매가격에 반영될 경우 수도권 제조업체 전체가 내는 전기요금은 현재보다 1조3748억원이 증가할 것이며 이 중 전자·통신 업종은 6248억원으로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렇게 전력요금의 지역별 차등제를 실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래 이 제도는 송배전 비용을 그대로 소매 요금에 반영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발전소에서 먼 거리에 있는 소비지는 가까운 곳보다 더 많은 송배전 비용을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왜 전국 단일 요금제를 채택하고 있었을까? 그건 우리나라의 전력망이 좁은 국토에 매우 촘촘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송배전 효율도 높아 그 손실율이 3.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한국전력의 송전이용요금 단가표를 보면 기본요금 외에 사용요금의 차이가 수도권은 2.44원/kWh, 비수도권은 1.42원으로 전체 전기요금에서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한전 입장에서도 차등 고지하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없으니 그냥 전국 단일요금제를 시행해 온 것이다. 전력공급 비용 측면에서 실익이 크지 않은데 왜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시행하려는 걸까? 이유는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전력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 중립이 중요한 과제가 되면서 청정자립에너지 보급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에 국회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공간·지역 또는 인근지역에서 생산·공급하는 분산에너지의 활용을 높이고자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하여"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는 이를 근거로 2026년부터 소매 요금의 지역별 차등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첫걸음을 떼는 방향이 영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전력거래소와 산자부, 한전 등 전력당국이 지난 7월에 마련한 '지역별 전력 도매가격 차등요금제 기본설계안'은 2026년 소매요금 차등화에 앞서 내년에 도매가격부터 차등화하기 위한 시행안이다. 전체 가격은 유지하는 가운데 차등을 두다 보니 발전소가 많은 지역의 발전소들은 도매가격이 낮아지게 된다. 가격 차등화가 노리는 효과가 발전소가 적은 지역에 발전소를 늘리든지 아니면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기업이 분산되는 것이지만 그런다고 도매가격이 높아지는 수도권에 얼마나 발전소들이 늘어날 수 있을까? 설령 가격이 높아져 수도권에 발전소를 짓는다 해도 화력발전은 환영받기 어렵다. 미세먼지 오염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데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지비용이나 용수 공급 때문에 건설비도 만만치 않다. 본래 분산에너지법이나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추구하는 바는 청정·자립에너지의 활성화이다. 청정한 자립에너지의 생산이어야 비로소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고 이에 근거한 가격 차등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대형 원전이나 화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이미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런저런 혜택을 받고 있다. 또한 수도권이라 해도 화력발전소가 많은 인천은 전력자립도가 186%에 이르고, 비수도권이라 해도 대구와 광주, 대전은 13% 이하이다. 이들 지역은 나름대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이 시행하려는 지역별 전기요금의 근거는 단순한 전력자급도가 아니라 청정한 자립에너지인 재생에너지의 자급도가 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모든 건물과 시설들을 발전소로 만들 수 있어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고 송배전의 부담을 덜어준다. 또한 재생에너지 전력이 풍부하게 제공되는 지역에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이를 필요로 하는 전자·통신 산업의 지역 분산도 꾀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법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지역별 요금제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새롭게 도입하려는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순항하려면 원칙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지향은 청정한 자립에너지인 재생에너지의 확대임을 상기하자. 신동한

[EE칼럼] AI와 기후변화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세계 많은 나라들이 트럼프의 귀환에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 페루의 리마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내년 10월 경주에서 열릴 APEC을 주최하게 되는 한국으로서는 이번 APEC에서의 논의를 그 어느 때보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확산하는 가운데 치러진 이번 APEC은 '권한 부여(empower), 포용(include), 성장(grow)'이라는 대주제 하에 포용적이고 상호 연계된 성장을 위한 무역 및 투자 촉진, 공식 및 글로벌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혁신 및 디지털화, 회복력 있는 발전을 위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요 의제로 내걸었다. 요컨대 이번 2024 APEC 회의의 핵심 의제는 포용성과 투명성, 상호연계성을 토대로 한 디지털 혁신과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한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추려진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제조업과 AI의 결합을 촉진하기 위해 'APEC AI 표준 포럼' 창설을 제안한 것이 흥미롭다. 윤 대통령은 “APEC이 전 세계 제조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역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조업과 AI의 결합을 촉진해야 한다"면서 “산업 AI의 모범사례를 발굴·확산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설치하고, 공통의 표준과 인증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제안의 취지는 제조업 분야에서 AI의 역할 확대가 불가피 하느니 만큼, 그에 따른 혁신을 추진하면서도 표준 설정을 위한 다자간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번 APEC에서의 논의를 계기로 기후위기 대응 시대에 AI의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세계 주요 국가들은 기후위기와 디지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AI는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의 기업들은 AI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예측하고 수요에 맞춰 전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나 자연재해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아울러 농업 활동의 최적화를 도모하는 데에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 역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표 강화를 위해 AI 프로젝트를 확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자사의 AI 기술을 이용한 '지구환경AI(AI for Earth)' 프로젝트를 통해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AI 기술의 확대는 새로운 문제를 불러온다. AI 시스템의 학습과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며, 이는 전력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AI의 발전이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는 도구로 자리 잡으려면, 그 자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AI 모델은 학습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고성능 서버와 데이터 센터를 사용한다. 전 세계가 AI 사용을 위해 소비하는 전력은 이미 소규모 국가의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다는 분석들도 있었다. 한국도 2021년 기준으로 이미 전국의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 소비량이 4006GWh를 기록해서, 서울시 강남구의 소비량(4625GWh)에 육박하는 수준을 보였다. AI가 확산될수록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한 전력 공급이 무탄소(carbon free) 전력원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AI로 인해 오히려 기후변화 대응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저전력 반도체를 개발해 AI 학습에 필요한 전력 소비를 줄이는 데 앞장서고 있는데, 이는 AI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AI 자체를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안, 달리 말해 스마트그리드를 통해서도 전력 사용 데이터를 분석하고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전반적인 전력 수요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열에너지, 즉 폐열을 활용해 지역난방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도 모색되고 있다. 결국 AI는 기후위기 해결의 도구이면서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느니 만큼, 한국은 이 두 가지를 국제 협력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이을 수 있는 중견국으로서 국제사회가 AI와 기후변화 대응에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사례를 충실히 축적해 가면서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의 AI 활용과 탈탄소화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년 경주에서 열릴 APEC이 이런 논의의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임은정

[EE칼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대비한 대한민국의 인공지능 전략

얼마 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우리 사회에서 미국과의 정치·외교나 경제 정책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다양한 의견 중 미래 산업을 이끌어 갈 전략산업인 인공지능 관련 내용은 특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이 지금, 이 순간 일으킨 변화는 사람들이 예상한 것처럼 크지는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핵심 키로 삼아 미래 경제를 주도하고자 하는 각국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언론 매체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관련 기사들은 가장 표면에 드러난 충돌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이 미칠 영향은 인류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일어난 변화처럼 인류 문명이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먼저 인류가 과거 불로 음식을 요리하여 영양소를 보다 잘 흡수할 수 있게 되어 뇌가 발달한 것처럼 고도로 발전된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되면 이를 이용하는 인류 문명의 지능 수준 역시 높아질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존 사고와 지식을 학습하면서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엉뚱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도구를 제공해 줄 수 있어 이를 통해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발명, 기술적 진보가 일어날 수 있다. 야생의 맹수를 피해 동굴에 은거했던 인류가 불을 사용해 활동 반경을 넓힌 것처럼 인류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지구를 넘어 먼 우주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패권을 노리거나,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국가라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절치부심 끝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 당선자에게 이보다 매력적이고, 중요한 의제는 없을 것이다. 사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2019년에는 “인공지능에서 미국의 선도적 위치 유지" 행정명령을, 2020년에는 “연방정부의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사용 촉진" 행정명령을 각 발한 바 있어 인공지능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의 2020년 행정명령 제3조(정부에서 AI 사용을 위한 원칙)(b)는 “정부기관은 AI를 설계, 개발, 취득 및 사용하여 얻는 이익이 위험보다 훨씬 크고 그 위험을 평가·관리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와 같이 AI를 설계, 개발, 취득 및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여야 한다."라고 정부가 목적과 성과 중심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하기 위한 원칙을 규정하고 있었다. 바이든 정부의 2023년 10월 “인공지능의 안심․안전, 신뢰할 수 있는 개발과 활용에 관한 행정명령"이 안전·신뢰를 우선시하는 책임 있는 인공지능 개발과 이용을 강조하는 것과 대비된다. 새로 들어설 트럼프 2기 행정부도 큰 틀에서 기존 인공지능 개발 및 이용에 대한 의지와 정책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능력과 파급력을 고려하면 기존보다 인공지능을 국가 전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산업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전방위로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가하는 것도 반도체가 인공지능 개발과 이용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16일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 캠프에서 이른바 “AI 맨해튼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모토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군사기술을 개발하고, “불필요하고 부담스러운 규제"를 즉시 검토하는 내용으로 기존 바이든 행정부의 2023년 10월 행정명령 폐지를 포함하고 있어 향후 정책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이 향후 인공지능 개발과 이용에 있어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며 자국 기업의 인공지능 모델의 공유를 규제한다면 국제적인 교류와 협력이 퇴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모델을 공유하는 폐쇄적인 국가 간 지역적 블록이 형성될 수 있다. 만일 미국이나 중국이 동맹국을 상대로도 인공지능 패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세계 각국은 독자적인 소버린 인공지능 모델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독자적인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자금과 시간, 노력이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모델의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용자를 확보할 수 없어 지속 가능성이 없다. 우리 역시 미국의 정책 변화를 고려해 인공지능 산업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다. 양희철

[EE칼럼] 분산에너지 특별법에 대한 소고

깜짝추위가 왔지만 아직 청명한 가을이다. 아직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이 이래서 좋다. 지난 10월 31일 KBCSD 주관으로 개회한 국제세미나에서 GS칼텍스 상임고문이면서 명예회장인 허명수고문은 “도전을 통한 K-기업가정신 발현과 녹색산업 확산을 위한 민관협력 방안"이라는 발표에서 미국의 'Scale Up America Initiative'와 EU의' 기업가정신 2020 실천 계획'처럼, 대 중소기업의 단계별 성장 지원 방안을 제공하고, 민관차원의 사업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틀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세계 역사상 도전이 없으면 발전은 없었다. 그런 시도가 한국에서는 에너지 분야에 나타나고 있다. 흔히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재생에너지 4법은 해상풍력 특별법, 영농형 태양광 특별법,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분산 에너지법 등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분산법은 분산 에너지의 발전원별 설비용량 등 범주를 구체화하고, 분산에너지 사업자의 자격요건, 배전망 관리감독, 설치의무제도, 전력계통 영향평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 분산 편익 산정, 지역 차등 요금제 및 지원 센터 운영 등이 포함되어 있어 혁신적인 시도라고 본다. 그러나 혁신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지역별로 특별 지역을 하나씩 선정하여 도입해야 한다. 상당수의 지자체들은 특별 지역 선정을 받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울산, 제주, 경기, 부산, 대전, 경북(구미, 포항), 전북(나주) 전남(해남,영암) 등이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많거나 자급률이 높은 지역인 전북, 전남, 부산, 제주도등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제주도에 '전력시장 제도개선 제주 시범사업 운영규칙'을 통하여 전력도매 시장형 VPP를 시범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역지정을 오히려 자급율이 낮더라도 분산 에너지를 높이도록 하는 것이 법의 취지에 더 맞다고 본다. 적은 곳은 공급처를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지역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두 번째가 지역 에너지 요금으로 인한 지역 쏠림 현상도 막아야 한다. 시행에 발맞춰 전력시장 제도개선을 통해 2026년부터 지역별 발전 규모와 송배전 비용을 따져 2026년부터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지역별로 다른 전력 도매가격을 적용하는 '지역별 한계 가격제'를 우선 도입해 발전소 분산을 유도하고, 지역별 전기요금 책정 시 근거가 될 원가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역별 전기요금 제도의 도입은 의도는 좋은데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화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관련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거나 지역 사업장을 이동하거나 전력 자급율이 높은 지역으로 이전하여 전기요금 상승 리스크를 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은 요금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 기업 유치를 위한 과다한 지역간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번쨰는 전력계통 영향평가의 모호성과 기업 비용 부담 가중을 해소해야 한다. 전력계통 영향평가 제도가 시행령에서 구체적인 평가 기준과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기업들은 환경영향평가, 기후영향 평가 그리고 비재무 기후변화 정보의 공시 (TNFD). 자연자산의 정보공시(TNFD) 그리고 심지어 ESG 공시 등 많은 평가와 공시제도에 직면하고 있다. 전력계통의 영향평가로 인허가 절차의 복잡성이 야기될 수 있다. 아울러 분산 편익의 명확한 기준과 보상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분산편익은 분산에너지를 통해 송전 손실 감소와 송전망 건설비용 절감 등의 이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에너지 수요지 인근에서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 등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는 점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집단에너지는 열 이용이 많은 곳에서는 송전망 건설이나 이에 따른 송전 손실을 줄이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열 요금 등의 원가 반영이 안되고 있어 중소사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고 가격상한제로 인해 총괄원가 보전을 받지 못해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도는 좋은데 결과는 나쁘면 안된다. 처음부터 차분하게 접근하면서 좋은 제도를 완성해 가야 지속적으로 제도가 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흔히 “물마시고 체했을 떄는 약도 없다"는 말이 있다. 쉽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신중하게 갔으면 한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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