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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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트럼프 재집권이 재생에너지에 미치는 영향

지구 평균기온은 계속 상승 중이다.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2024년은 기록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며 파리 협정에서 제시한 산업화 이전 대비 1.5°C 한계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상황에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전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 전환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지고 속도는 느려지게 됐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파리협정 탈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해체, 환경보호청(EPA) 권한 축소, 천연자원 및 화석연료 채굴 가속화 등을 약속했다. 컨설팅 기업 우드 맥킨지(Wood Mackenzie)는 트럼프 재집권에 따라 미국의 2050 탄소중립 목표는 실패할 것으로 전망했고, 기후 에너지 정책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카본 브리프(Carbon Brief)는 2030년까지 대기 중으로 40억 톤의 탄소가 추가 배출될 것으로 추정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9)에 이미 정치 및 경제 지도자들이 대거 불참 의사를 밝히는 등 관심 저조로 인한 난항이 예상된다고 보도했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기후 세계는 피하고 싶었던 현실을 맞닥뜨렸다. 트럼프가 돌아왔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국제사회가 미국 없는 기후 대응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 미국은 국제사회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인 Our World in Data(OWID)에 따르면 매년 탄소 배출량이 증가 추세에 있는 중국과 달리 2005년 61억 톤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22년 51억 톤으로 감소 추세이기는 하나, 1792년 이후 2022년까지 누적 탄소 배출량 4,269억 톤으로 세계 1위(중국은 같은 기간 미국의 61% 수준인 2,606억 톤)이며, 2022년 한 해 탄소 배출량은 51억 톤으로 세계 2위(1위는 중국으로 114억 톤)다. 반면 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 점유율은 2023년 세계 평균 14.6%보다 낮은 11.7%이고,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점유율도 세계 평균 30.2%보다 낮은 22.7%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누적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3,870GW인데 그 중 미국은 약 10%인 388GW(중국은 37.5%인 1,453GW)다. 전 세계 누적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에서 중국은 2000년 10.1%에서 2023년 37.5%로 증가하고 있으나 미국은 2000년 12.2%에서 2023년 10.0%로 감소했다. 2023년 누적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전 세계 1,419GW 중 약 9.7%인 138GW(중국은 42.9%인 609GW)이며, 누적 풍력 발전설비 용량은 전 세계 1,017GW 중 약 14.6%인 148GW(중국은 31.2%인 442GW)다. 트럼프 재집권이 재생에너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IRA의 혜택을 공화당 지역구가 가장 많이 누리고 있으며 공화당 의원 18명이 IRA 폐지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는 향후 10년 청정에너지와 관련된 기업에 1조 달러 규모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경에도 재생에너지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제도(Renewable Standard Portfolio, RPS)를 2003년부터 시작했는데 참여하는 주는 늘어나고 의무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또한 2023년 기준 태양광과 풍력발전 점유율이 30%가 넘는 주가 아이오와(Iowa) 60.4%를 포함해 12개나 되고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도 2023년 27.8%에서 2024년(7월까지) 32.2%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AI 용 데이터센터, RE100 등 재생에너지 수요는 많아지고 전력시장이 민영화되어 있어 가격 경쟁력이 높은 재생에너지가 우선 적용되는 구조다. 트럼프는 특유의 감성적인 수사법과 슬로건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대부분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세계는 트럼프가 마지막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와는 다른 상황에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트럼프가 줄기차게 외친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내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할 예정이며, 영국은 11월 발표된 'Clean Power 2030'을 통해 2030까지 풍력을 두 배, 태양광을 세 배 확대하기로 하였다. 중국은 2030년까지 1,200GW의 태양광과 풍력을 추가하려는 국가 목표를 무려 6년 앞당겨 2024년 달성한 후 보급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인도는 2030, 500GW, 2032, 600GW의 재생에너지를 목표로 하고 있고는 등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례 없는 재생에너지의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은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전환 및 재생에너지 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속도는 줄일 수 있어도 멈출 수는 없으며,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다. 황민수

[박원주 칼럼] 에너지 정책, 그 실타래를 풀어야 할때

경제정책, 특히 통화금융정책을 논의할 때, 정부의 재량적 의사 결정을 반대하고 사전에 정해진 원칙에 따라 정책이 집행될 것을 요구하는 소위 '준칙주의' 논쟁은 널리 알려져 있다. 경제 현장의 각종 지표 변동에 즉흥적으로 대응하다가 정책효과가 시차를 두고 과도하게 발생하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경기 불안정을 야기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준칙주의가 거시경제정책뿐 아니라 다른 실물경제분야 중장기 정책의 성패도 좌우한다는 사실은 놓치는 분들이 더 많다. 필자는 1988년 동력자원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급조된 미니부처였던 동력자원부는 부처 창설 10주년을 맞아 첫번째 '동력자원행정10년사'를 막 발간했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 첫 10년사가 동력자원부의 마지막 10주년 백서가 되었다. 1993년 집권한 김영삼정부는 개혁과제의 하나로 정부부처통합을 제시했고 그 첫번째 성과물로 가장 규모가 작았던 동력자원부를 상공부와 통폐합하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당시 부처의 과장급 간부들이 부처 통합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각자 사직서를 써서 호주머니에 담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자기 부처를 존속시키고자 하는 사적 동기도 없지야 않았겠지만, 통합반대의 대외적 명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수립되고 집행되어야 할 에너지정책이 일반적인 산업정책처럼 그때그때의 시장환경과 정치적 여건변화에 따라 불안정하게 뒤집히다 보면 국가의 백년대계가 무너진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이때 이 결정이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에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초래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때까지 일반국민들의 관심권 바깥에서 정부관료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던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이 화려한 비전과 퍼포먼스로 덧칠되면서 국가 정책의 하일라이트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DJ정부의 자원외교, 노무현정부의 패키지딜, 이명박정부의 해외자원개발과 녹색성장전략, 박근혜정부의 수소경제,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과 그린뉴딜, 그리고 지금 정부의 친원전정책 등 이후 모든 정부의 핵심 어젠다가 에너지정책의 '변화'를 담고 있다. 에너지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도 급격하게 상승했고 이에 비례해서 에너지정책을 정치 어젠다로 활용해야 할 이유도 더 늘어났다. 문제는 신중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에너지정책이 정권에 따라 무조건 바뀌어야 하는 '개혁과제'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도 에너지에 대한 쌍팔년도의 미신과 편견은 한치도 바뀐 지점이 없다는 사실. 가구당 전기 요금이 통신비의 1/3에 불과한 지금도 kWh당 전기 요금을 몇십원 올리면 선거에서 진다고 믿는 정치권, 공급망 교란으로 도처에서 생산 비용이 급등하고 제품과 서비스가격이 올라가는데 당장의 지표를 관리하겠다며 에너지요금만 압박하는 우리 물가당국, RE100, CBAM 등으로 우리 수출길이 막히고 있는데도 화석 에너지와 원전 등 전통 에너지만이 살길이라고 믿으면서 '값비싼' 재생에너지는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아직 패치가 덜 된 우리 지식인들. 지금의 현실에 대한 한 줄 평은 '바뀌어야 할 것들은 그대로인데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바뀌고 있다' 정도일 것이다.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mba 과정에서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현안 이슈가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 보도록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다. 대부분 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이슈들이긴 했으나, 그리드 부족, 석탄발전 경영난, K-RE100, 재생에너지 전기 부족, 에너지 가격 상승, ESS, 수소에너지정책, 탄소중립 등 나름 다양한 주제들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정책환경에 더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난제가 쌓여있는 셈이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는 송전망, 발전소 등 에너지인프라 부족과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대한 대응문제가, 환경 측면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Net-Zero, NDC 달성 문제가, 통상 이슈로는 CBAM, RE100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무역장벽 해소가, 사회적 수용성 차원에서는 고준위 방폐장과 분산형 전원의 실현 문제가, 에너지산업의 경쟁력 차원에서는 전기요금 정상화, 에너지산업의 시장기능 회복, 재생 에너지 연관 제조업의 육성이 대표적 국가과제로 남겨져 있다. 하나같이 골치 아프고 손대기 어려운 숙제들이다. 에너지 정책 여건의 변화 또한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국민들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송전망 등 에너지 인프라에 대해서는 극도의 NIMBY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투자 자금이 없어서 못했던 일들이 지금 와서는 이해관계 집단 간의 갈등, 이익분쟁으로 지연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을 앞세웠던 과거의 에너지정책은 이제 포퓰리즘 앞에서 힘을 잃고 있다. 에너지 정책의 이해관계 또한 과거 순수한 국내적 이슈에서 이제는 통상문제, Carbon Leakage 등 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마찰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고 신중하게 집행할 수 있었던 우리 에너지정책은 이제 법적 절차를 둘러싸고 행정부와 국회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수건돌리기의 무대로 변질되어 있다. 5년에 한 번씩 정책이 뒤집히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투자자 신뢰도 극도로 훼손되어 있다. 에너지 효율과 환경보전을 위한 신기술 수요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지만 이미 기술 한계선에 도달한 우리 경제로서는 새로운 기술이 없이는 한발짝도 떼기 어렵다. 방폐장 등 시한폭탄과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정책 당국은 책임있는 의사 결정을 다음 정부로 미루면서 NIMT 현상도 일상화되고 있다. 30여년전 소소한 정부 기관 하나 문 닫으면서 시작된 미세한 균열이 부풀대로 부풀어 이제는 누구도 가로지를 수 없는 거대한 협곡이 되고 말았다. 얽힌 실타래를 단칼에 끊어내던 알렉산더의 지혜가 진심으로 아쉽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젠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정책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최대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또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많은 갈등 이슈들이 시장의 보상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송전망 건설이 멈춰 있는 것은 전선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이 겪는 희생에 충분한 댓가가 지불되지 못하는 탓이 크다. 한전이 지역에 충분한 댓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은 전기를 팔아서 그 비용을 충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이 충분한 전기요금을 내지 않는다면 지금의 많은 문제들은 10년 후에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서민보호, 민생, 산업경쟁력을 이유로 대안 물색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이젠 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러 나라들이 소비자들의 에너지비용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에너지공급자들의 적자를 해소하는 대안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국 여러 주정부에서 도입한 디커플링제도는 에너지공급자가 에너지 절약에 투자하게 하면서 그 성과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여 소비자의 요금고지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공급사 수지를 개선시켜 주는 사례중 하나다. 우리도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에너지 정책의 실패가 산업 경쟁력의 악화로 직결되고, 우리 국민들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머리를 쥐어 짜서라도 답을 낼 때다. 정치권, 기업, 환경단체, 지역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 또한 자신들의 입장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현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박원주

[EE칼럼] 경제안보를 위한 장기적 관점의 자원개발이 필요하다

기후 변화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이 전 세계의 미래를 뒤흔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불안한 국제정세에 따른 에너지자원 수급 불안이 국가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에 따른 다양한 광물자원의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화이후 급증한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 중심의 2050 탄소중립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2050년이 되어도 여전히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는 60% 이상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탄소 기반의 경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에너지자원 공룡 국가인 30억 인구의 중국이 2060년에, 인도가 2070에 탄소중립 목표를 천명한 사실을 고려하면 탈화석시대로 부터의 독립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미래의 전망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은 한 국가 산업의 뿌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열매를 잘 맺는다는 말도 있듯이 국가와 사회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자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자원빈국에게는 해외자원개발을 통한 자원확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자원개발이 얼핏 선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한 번만 더 따져보면 금방 필수사항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0년 이상의 자원가격의 긴 변동 주기와 세계 경기의 변동 주기, 투자 후 생산에 이르는 10년 이라는 자원산업의 주기, 대통령 임기 5년 이라는 여러 가지 변동성 주기가 자원개발 추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자원산업의 특성을 바탕으로 자원개발을 추진하려면 독립적이고 통합적인 국가 자원공급망 확보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애초부터 연속성 있는 정책을 꾸준히 펼치기에는 불가능하다. 이제 시행을 앞둔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이 제대로 작동되길 기대하는 이유이다. 에너지자원 부존의 편재성과 유한성으로 자원공급의 불확실성이 상존하기에 에너지자원은 국가적 차원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자원안보차원에서 최소한의 확보가 필요하다. 유사시를 대비한 자원안보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 소극적 의미의 자원안보인 자원비축과 적극적 의미의 자원안보인 자원개발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자원안보 대책은 국가별로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부존자원이 풍부해 자국 내에서 자원을 생산하는 국가는 자원비축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과 같은 자원빈국에게 에너지자원의 안정적 공급 문제는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자원안보 측면에서 해외로부터 도입해 국내에 자원을 비축하는 것은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할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외자원개발을 통해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확보한 광구는 해당 자원을 수십 년에 걸쳐 생산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천연비축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10년 전 손 놓고 방치한 자원개발이 현재의 자원공급망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다시 10년 뒤에 더 큰 어려움이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원가격이 높을 때 투자하고 자원가격이 하락할 때 철수하는 엇박자 정책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어렵겠지만 국가적 자원안보 차원에서 자원개발의 선순환 구조가 확립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계획하에 실질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당장 안 해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원개발을 포기하다가는 다가오는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시대에도 국가 경제의 밑거름이 되는 에너지자원 확보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신현돈

[김상호 칼럼] “하남다움 알아야 하남 다음 보인다”

“하남다움(Hanamness)을 알아야 하남 다음(Next Hanam)이 보인다." 민선7기 동안 이 구호를 시민과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남시민 약 90%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공동체성이 균형발전, 도시 역사와 문화, 자연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남다움(Hanamness), 도시 브랜딩은 지금도 민선8기 시정과 시의회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선7기 당시 하남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 김용기 장로와 소설가 김유정, 국보인 하사창동 철불, 감일동에서 출토된 백제 고분군 유적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습니다. 아울러 하남시는 송파구-광주시-공주시-부여군-익산시 등과 함께 백제연합도시를 구성해 하남의 한성백제시대 역사가 공주(웅진)와 부여(사비)로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도시 상징 마스코트인 하남이와 방울이는 시민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로 성장시켰습니다. 무엇보다 광주하남교육지원청과 협력을 통해 '우리 고장 하남(두미강이 흐르는 우리마을 이야기)'이 사회과 지역화 초등학교 자료(3학년)로 발간돼 기뻤습니다. 최근 스타트업 기업인 모임인 핀텐츠포럼 회원들을 하남시에 초대해 친환경기초시설 유니온타워를 비롯해 자연 3경, 역사 5경, 인물 3경으로 이뤄진 하남시 11경(景)을 소개했습니다. 자연 3경은 사람과 동물, 자연이 공존하는 하남의 검단산, 한강 뚝방길, 나무고아원입니다. 검단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운길산, 예봉산과 이웃해 있습니다. 백제 검단선사(黔丹禪師 )가 은거했던 산으로 알려져 이름이 유래됐습니다. 검단산은 팔당댐, 당정섬과 미사섬을 품고 있으며, 한강 위례 강변길과 사랑길은 시민에게 자전거길과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시베리아에서 오는 고니와 철새들이 머물기도 합니다. 나무고아원은 하남시 망월동 한강변에 위치하는 공원으로 도시개발로 인해 버려지거나 이전된 나무들을 모아 가꾼 공간입니다. 이곳은 어린이들이 나무와 교감하는 체험공간(약 3만평)으로 활용됩니다.다음으로 역사 5경은 미사 선사유적지, 이성산성, 감일동 한성백제 고분군, 고려시대 동사, 선법사 등 불교유적지, 조선시대 광주향교입니다. 미사리 선사유적은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1960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이래 암사동 유적과 더불어 한강유역 대표적인 유적으로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 백제초기에 걸친 생활유적이 층위를 달리하면서 분포해 있습니다. 체계적인 역사유적 개발이 소중한 장소입니다. 하남시 대표 유산인 이성산성(사적 제422호)은 1986년 첫 번째 조사를 시작으로 2020년 현재까지 총 14차례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조사 결과 8-9-12각 터와, 장방형 등 10동 건물지와 2개 저수지,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은 성돌로 만든 성벽 등 유적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이성산성은 백제계 불상이 출토된 일본의 구마모토현 기쿠치성(서기 7세기 건립 추정, 8각형 건물터)과 유사성도 발견됐습니다. 이성산성 축성 시기와 정체성 문제는 더 많은 발굴과 고증을 통해 정확한 연대를 밝혀야 하는 과제입니다. 감일동 백제 고분군은 한성백제 최고위층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50여기를 포함한 총 70여기 고분(돌방무덤 즉 황혈식 석실분)이 2018년 발굴-조사됐습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청자호수호는 4~5세기 중국 남북조시대 동진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돼, 국내 고대 유적에서는 처음 확인되는 최고급 도자기이며 감일동 백제 고분군과 출토유물들 연대를 가늠하는 기준 유물로 평가됩니다. 한성백제 시대부터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하남의 대표적 불교유산은 동사지와 천왕사지, 그리고 객산 자락 선법사에 있습니다. 하남에서 발견된 4개 보물이 모두 이들 절(터)에 모여 있습니다. 천왕사지에는 보물 332호 철조석가여래좌상, 동사지에는 보물 12호 5층 석탑과 13호 3층 석탑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선법사에는 보물 981호인 마애약사여래좌상이 뚜렷이 새겨져 있고, 백제 온조대왕이 마셨다는 '어용샘'이 바로 곁에 있어 시민이 많이 찾습니다. 왼손에 약사발을 든 약사여래가 인간의 아픔을 여유롭게 다독여줍니다. 세계 최대 철불이 출토된 천왕사지터는 정부가 지정한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교산지구에 속합니다. 지난 감일동 택지개발 사업 도중 백제시대 돌무덤 50여기가 발굴된 것처럼, 3기 교산신도시 건설과정에 어떤 문화재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발굴될 문화재들이 새롭게 지어질 하남시 3호 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국립박물관에 모셔진 철불도 다시 하남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산신도시에 보존될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며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29년(1703년) 옛 광주 관아 서쪽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제사기능만 남아있습니다. 경기지역에서 평지에 세운 유일한 향교이며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모두 갖춘 큰 규모의 향교입니다. 향교 곁에서 500년 동안 함께 벗한 은행나무 다섯 그루는 하남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습니다. 교산신도시가 완성되면 서울 명륜동 성균관과 함께 대표 유교 유적지로 이어지고 사랑받을 것입니다. 인물 3경은 구산성지 김성우 안토니오 순교자, 조선시대 개화사상가 유길준, 농민 운동가 김용기 장로입니다. 미사동 구산성지는 신분 평등과, 신앙을 스스로 증거한 순교자들 역사가 깃든 곳입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고향입니다. 유길준 선생님은 19세기 국비 유학을 통해 국제적 안목을 기른 개화사상가로, 그의 저서 서유견문(西遊見聞)은 도산 안창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서유견문에서 “국가의 큰 근본은 교육하는 방법에 달려있다"는 문장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1966년 아시아 농민 최초로 막사이상을 수상한 농민운동가 김용기 장로는 가나안 농군학교를 창립하며, 대한민국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유산은 미사동 일가 기념관과 기념도서관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남시 자연, 역사, 인물을 알게 된 핀텐츠포럼 회원들은 하남에 더 깊은 애정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5호선을 타고 하남-방화 구간을 오가면, 열차 내 양 끝에 지하철이 순환하는 마을 유적지, 관광지를 소개하는 사진이 부착돼 있습니다. 강서 둘레길-여의도공원-경복궁-청계천-아차산성과 풍납토성을 거쳐 방이동 백제고분 등으로 19개 장소를 홍보합니다. 민선7기에서 하남의 역사-문화 자원을 서울교통공사와 협력해 홍보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도시 자부심을 만드는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라고 말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역사, 문화, 자연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곳, 하남다움(Hanamness)이 뿌리 내리기를 기대합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EE칼럼] 전기차 배터리 주도권 싸움, 리튬부터 확보해야

전기차 배터리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 나온 배터리는 리튬을 소재로 한 리튬이온배터리이다. 리튬배터리 시장을 두고 NCM(니켈 코발트 망간)과 LPF(리튬 인산 철)의 대결이 본격화 되고 있다. 한국의 NCM과 중국의 LPF로 대표되는 시장이 점차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양극재로 구분되는 두 배터리 중 니켈 코발트 망간 계열은 높은 성능과 주행거리를 장점으로 하고 있고, 리튬인산철(LPF)은 가격 경쟁력과 안전성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 전기차와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장 초기만해도 에너지 효율이 높고 업력이 오래된 NCM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로 이후 LPF가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고 소재를 한번에 포장하는 셀투펙(CTP) 기술 등의 등장으로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시장은 점차 양분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LPF가 더 우세하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배터리시장은 한국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을 합쳐도 중국 CATL의 점유율에 못미치고 있다. 2분기 양극재 평균 판가를 참고해 보면 LPF 셀은 미드니켈 삼원계 셀에 비해 27%가 낮다. NCM(A) 8과 같은 하이니켈의 경우 니켈 비중이 높다 보니 미드니켈에 비해 LPF와의 괴리는 좀 더 크지고 있다. 또하나의 배터리 원료 확보 경쟁은 리튬이다. “배터리 전쟁"의 저자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배터리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 루카스 베드나르스키는 “앞으로 5년은 한.중.일 3국이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계속 우위를 차지하겠지만 10년후에는 미국, 유럽에 따라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리튬 금속은 리튬 정광을 채굴하거나 염호(소금호수)에서 리튬을 뽑아내는 원재료 생산과 이를 제련해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을 생산하는 공정으로 나눤다. 현재 사용되는 리튬은 대부분 카메라, 노트북 컴퓨터의 재충전이 가능한 리튬전지에 사용된다. 또 전기차에도 리튬전지가 많이 쓰이고 있어 리튬의 수요는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이런 리튬의 세계 매장량의 절반 가량을 갖고 있는 지역이 남미의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인데 이 중 볼리비아가 가장 많은 매장량을 갖고 있다. 그런데 볼리비아가 최근 리튬 개발-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월 중국 컨소시엄과의 첫 리튬 개발 협약에 이어 이번에는 중국. 러시아 업체와 각각 리튬 개발 협약을 했다. 볼리비아 국영기업 꼬미볼과 해외 기업 간 협약을 통해 볼리바아의 리튬 개발은 리튬의 구조적인 수요 증가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켜 주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리튬 공급 증가에 기반한 가격 안정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리튬 매장량에 있어 염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 중에서도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는 대표적인 리튬 염호 중심지이다. 칠레는 아타카마 염호에서 리튬을 생산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도 현재 몇 군데 염호에서 리튬을 생산 중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국가 주도로 리튬 사업을 통제하고 있는 볼리비아는 리튬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단일 지역으로는 세계 최대 탄산리튬 매장량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볼리비아 리튬 사업은 2010년 3월 26일 한국광물자원공사(현,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포스코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 3기관의 결의로 시작됐다. 한국 사업단은 볼리비아 염수를 이용한 독자적 탄산리튬 제조 기술 개발을 통해 볼리비아 리튬 개발권 경쟁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프랑스, 일본, 독일,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이 볼리비아 리튬 확보 경쟁에 뛰어 들었지만 결국 우리나라 사업단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독창적인 리튬 개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튬을 얻기 위해 한국의 노력은 볼리비아 정부를 감동시켰고 마침내 2011년 7월 29일 한국과 볼리비아 간 리튬 사업은 체결 되었다. 볼리비아는 여러 차례 리튬 개발을 추진 했지만 정권의 불안정성과 리튬의 국유화 정책 등의 이슈로 그 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리튬 개발 자체가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현시점에서 볼 때, 볼리비아의 리튬 개발은 리튬의 구조적 수요 증가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요인이자 중장기적으로 리튬 가격을 안정화 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들이 향후 리튬 가격 변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만큼, 볼리비아의 리튬 생산 확장 의지 현실화를 우리의 리튬 공급망 확보에 잘 활용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우리 정부가 다른 국가보다 먼저 볼리비아 리튬 사업을 따낸 노하우를 거울삼아 민관이 협력해 다시 리튬 확보에 나서야 한다. 강천구

[EE칼럼] 초대형 국내 민간 에너지기업 탄생에 대한 기대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100조 원 규모의 자산을 가진 에너지기업이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등장했다. 제대로 된 부문별 수직계열화를 갖춘 에너지기업이 이제 우리나라에도 생긴것이다. 11월 1일 자로 출범한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작회사 이야기이다. 1962년 대한석유공사로 시작한 SK이노베이션은 1980년 선경이 인수하여 민영화 이후 오랫동안 '유공'으로 국민에게 불려 왔으며, 1990년대 이후 SK의 이름 아래 여러 법인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이번에 통합법인으로 재출발하게 된 것이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자산 100조 원대, 매출 88조 원대로 국내는 물론 아시아권 민간기업 중 최대 규모이다. 한국전력공사의 2023년 매출액이 88조 원 규모였으니 실로 국내 최대 에너지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아시아에서도 중국 등에 더 큰 규모의 에너지 공기업들이 있지만 이들을 포함해도 아시아에서 8~9위권이다.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이제 에너지자원의 개발을 담당하는 상류 부문은 물론 정유, 석유화학, 주유소 등 중류 및 하류를 모두 갖추고 있는 명실공히 제대로 된 에너지기업이다. 엑손모빌(ExxonMobil),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 아람코(Aramco) 등 국제적인 에너지기업은 상·중·하류 부문을 모두 한 회사 안에 가지고 있어 실로 우리나라 기업으로서는 공기업 및 민간기업을 통틀어 국제적인 에너지기업들과 가장 유사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력, 원자력, 재생에너지, 천연가스, 도시가스, 그리고 수소와 배터리 등 에너지 분야의 주요 사업들을 모두 가지고 있어 명실공히 제대로 된 에너지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기업 탄생에 대한 기대로 주주총회에서 외국인 주주 95%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합병안 찬성을 권고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 의견을 내었다. SK이노베이션 주주가 합병으로 손해 볼 수도 있음을 우려하였다고 한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당장에는'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운영된다고 한다. 통합법인은 SK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SK E&S 부분은 SK이노베이션 E&S이라는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운영한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 그리고 배터리 회사인 SK온 등도 함께 합병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SK E&S가 매년 1~2조 원대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었기에 다양한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 역량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SK의 발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합병을 통하여 2030년에는 연간 영업이익 20조 원대를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두 기업의 사업역량과 연구개발 역량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달성이 그리 쉽지 않은 목표이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현재 수익 대부분이 정유 및 가스 부분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미래 최대 먹거리로 평가받고 있는 전력 기반 탄소중립 시스템과 자원순환 사회시스템의 구성과 운영에 상당한 사업 기반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통합 SK이노베이션이지만 기업의 체질과 과감한 사업 분야 구조조정 과정을 잡음 없이 부드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제적 경쟁력 있게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현재 전 세계 시장의 불확실성이 너무나 커져 있으며 이들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 SK이노베이션에 거는 기대는 정말 크다. 에너지 분야는 규모의 경제성(economies of scale)이 매우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난 반세기 내내 국제적 규모의 에너지기업 하나 제대로 없어 선진국은 물론 자원 보유국들에 무시당하고 사업에 참여할 기회도 얻지 못하였다 한탄해 왔다. 이번에야말로 우리나라도 제대로 한번 에너지 사업을 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 그것도 국가 예산에 기대지 않고 민간기업의 역량으로 해 볼 수 있다는 기대, 이 기대가 아주 들뜬 마음으로 통합 SK이노베이션을 바라보고 또 응원하게 되는 이유이다. 허은녕

[EE칼럼] 전력망 위기 극복, 국가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전력망이 한계에 다다랐다. 산업 발전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가지 도전 과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망 인프라는 이미 포화 상태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력망 운영의 복잡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송전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외적 압박마저 가중되고 있다. EU는 2023년 10월부터 CBAM을 시행하고 있으며, 미 의회에서 준비 중인 탄소규제 법안들은 더욱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 의회에서 논의 중인 청정경쟁법(CCA)과 외국오염부과금법(FPFA)은 EU CBAM이 철강, 알루미늄 등 6개 부문에 국한된 것과 달리, 석유화학, 식품첨가물, 플라스틱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산업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EU 공급망실사법(CSDDD)까지 발효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사들에게 RE100 달성은 물론, 탄소배출, 환경영향, 인권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지속가능성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완제품 제조기업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 걸친 중소·중견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은 심각한 송전제약에 직면해 있다. 발전은 가능하지만 전력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송전선로 부족으로 계통 연결을 대기 중인 태양광 발전소의 용량만 10.9GW로, 이는 원전 11기에 맞먹는 규모다. 이러한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은 전력망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2023년 기준 24.9GW로 2017년 대비 4배 증가했다. 문제는 이 중 약 70%가 전남·경북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송전망이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계통 연결 지연이 심화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전력망 확충을 책임지고 있는 한전이 대규모 부채로 적극적인 투자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대목이다. 전기요금 통제로 인한 적자 누적은 필수 인프라 투자마저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송전설비 증설에 대한 님비 현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순한 기업 차원의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구축하고 싶어도 송전망 부족으로 계통연계가 불가능하고, 산업단지 내 자가발전 설비를 설치하려 해도 기존 전력망의 용량 제약에 막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결국 전력망 문제는 개별 기업의 생존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력망은 더 이상 한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로, 철도와 마찬가지로 국가 핵심 인프라로서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이 인프라 투자 법안을 통해 대규모 전력망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나, 독일이 에너지 전환을 위해 송전망에 대규모 국가 투자를 단행한 것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한편, 송전설비 확충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발 문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독일의 사례처럼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전력 인프라 구축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일회성 보상을 넘어, 지역사회와의 지속가능한 협력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지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심 역할을 고민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지역별로 전력 생산자, 송전설비 인근 주민, 수혜 기업,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지역 전력망 협의체'를 통해 지역 내 대화, 지역 간 대화를 통한 대타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전력망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산업 경쟁력과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의 확충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없다.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이 문제의 당사자이며, 해결의 주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전력망 문제는 단순한 기반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우리의 주력산업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 역시 튼튼한 전력망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력망의 공공재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 분담에 합의하는 것이다. 정부의 과감한 투자, 기업의 책임 있는 참여, 지역사회와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윤희

[EE칼럼]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고 있다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신뢰(trust)가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에너지 인프라는 최소 20~30년의 수명을 갖는 설비로서 초거대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발전설비, 송배전망, 천연가스 저장 탱크, 집단에너지 설비 등은 최소 몇천억 원 때로는 수조 원의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된다. 이렇게 큰돈을 조달하려면 설비 완공 후 안정적인 수익성을 보이는 현금흐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에너지 인프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독점 및 수요독점의 횡포에 취약할 수 있다. 당사자간의 장기계약, 정부의 규제 그리고 안정적 에너지 정책이 주는 신뢰성으로 이러한 문제점이 보완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신뢰성 있는 안정적 에너지 정책을 통해 급속한 에너지 인프라의 건설을 지원해 왔다. 그 결과 다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 빠른 속도로 에너지 인프라를 건설했다.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정부의 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제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산업의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커지고, 산업구조도 공기업 독점체제에서 민간이 참여하고 경쟁하는 개방적 시스템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에너지 산업의 규모와 구조가 변했다고 해서 에너지 거래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갖는 신뢰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져 가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한전과 가스공사 등 대표적인 공기업의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그 결과 이들과 거래하는 수많은 에너지 사업체와 소비자들에게 그 위험이 전가되고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 미수금 및 부채 규모에 대한 '알람(alarm)'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 후유증과 이에 따른 연쇄효과다. 재무적 어려움에 처한 한전의 송전망 공사 지연으로 동해안에 건설한 여러 석탄발전소와 원전의 가동에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현금이 떨어진 한전은 발전자회사에 대해 무리하게 중간배당을 받아냈으며 발전사업자에 대해 결제주기를 줄이고 대금 입금도 늦추려 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재무적 어려움과 자가용 직수입 사업자에 빼앗기는 시장을 만회하기 위하여 평균요금제에서 개별요금제로 공급방식을 일방적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발전소가 계약만료에 따른 개별요금제 적용으로 급전순위가 개선된 반면 효율성 높은 신규 발전소가 남은 계약기간으로 인하여 평균요금을 적용받는 바람에 급전순위가 역전되는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공급조건을 변경하는 것은 상법에서 말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 2011년 9·15 순환정전 전후, 거듭되는 전력부족으로 정부는 몇 차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걸쳐 민간 석탄발전소의 건설을 독려한 바 있다. 그러나 10여년 후 공급과잉으로 사정이 달라지자 당초 '차액계약(vesting contract)'으로 지급하려던 공급조건을 바꾸고 용량요금 지급에 어려운 입지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등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9년에 완공되어야 할 동해안-수도권 송전선이 2026년 이후로 무한정 연기되어 민간 발전소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지역별 차등요금도 소매요금이 아닌 도매요금의 차등화며 이마저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분화로 섬세한 시그널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여건의 미성숙으로 소매요금 지역 차등화는 쉽지 않다고 하지만 발전설비를 갑자기 이전시킬 수도 없고 새로운 발전설비의 입지에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도매요금 지역 차등화를 시행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게다가 비수도권에 신규 발전설비를 완공한 사업자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일 수 있다. 사업도 개시하기 전에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깜짝 방식으로 지역별 도매요금 차등화를 시행하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게 된다. 조성봉

[EE칼럼]기후변화 대응 막는 전력시장 경쟁 부재: 한전 자회사 재통합 논쟁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기후위기 대응의 첩경은 사실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발전 자회사 매각를 통한 전력 도매시장의 경쟁 촉진이다. 경쟁 촉진이란 말만 나오면 거품을 물며 민영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후환경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특히 한입으로 한전자회사들 매각에 학을 떼면서도 탈석탄을 동시에 외치는 자가당착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사실 공공기관의 공공성 사수는 기후위기대응 정책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둘 중 누가 선순위인지는 이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발전자회사들이 진작에 기업공개(IPO)를 거쳐 민간에 매각되었다면, 탈석탄이라는 정책적 목표는 이렇게 저항에 가로막혔을 리가 없다. 민간부문이라면 기후변화 억제라는 대의명분에 이토록 조직적으로 저항을 할 수 있었겠나? 현재 가스발전을 주로 하는 민영 발전소들이 전력거래소의 급전 지시나 이익 정산에 찍소리나 할 수 있던가. 만약 석탄발전소가 민간에 매각되었다면 이미 기존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따라 도와주는 정부 부처도 없이 소리 소문 없이 퇴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뜬금없이 한전 자회사 발전사들의 모회사인 한전과의 재통합 논의가 나왔다.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 자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한 탓에 제각각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최근의 연결재무제표로 연결된 한전의 적자 상황의 원인으로도 지적된 것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자회사 간 비협조로 인한 비효율도 한전적자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전력노조도 다시 한전의 직원이 되고자 하는 바램으로 재통합론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다. 심지어 지난 국회에서는 발전자회사 구조개편 방안으로 이들 자회사들을 신재생에너지/화력/원자력으로 나줘서 자회사간 비효율적인 경쟁을 제거하고 한전 자회사들이 각 분야에서의 독자적인 시장 지배력을 주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경제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제안들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이란 시장경제의 장점을 거세(去勢)하는 것을 공통점으로 가진다. 오히려 지나친 경쟁을 통한 비효율성으로 전력 생산 단가가 높아져 한전의 적자가 심해지는 원인이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전력시장에선 그런 걱정을 할 정도의 경쟁이 제대로 있어본 적도 없다는 것은, 전력업계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안다. 이익배분 구조부터 민간사들은 공공자회사들과는 아예 다른 처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허리띠를 졸라매는 적자생존이 이뤄지지 않으니 발전단가는 최대한으로 내려 갈리 만무하다. 이러한 경쟁시장의 부재는 1999년 당시 발전자회사 매각 계획에 대한 한전 및 발전 자회사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 기인한 바 크다. 매각이 이루어질 경우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경쟁적인 시장경제에서는 자연스럽게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상시 이뤄질 수 있는 요소였기에, 당장 눈에 보이는 노조의 반발은 당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게다가 민간 매각이 전력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이란 오해가 개혁에 대한 사회적 여론 악화를 일으켰다. 가격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형성될 때 가장 효율적인 수준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장기적인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었고, 개혁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 발전자회사 형태로 형식적 분가는 하였으되 아직은 연결재무로서 탯줄이 연결된 상태가 되었다. 발전자회사들을 민간에 매각하지 못한 채 발전공기업 형태로 두게 된 것이다. 자립할 능력도 안되면서, 분가하면서 부모한테 집 사달라 생활비 따로 달라는 자녀로 인해 초래되는 가계 경제의 비효율성을 떠올리면 된다. 별도 법인화 되면서 같은 지역에도 한전과 자회사별로 별도 지사가 설립되고, 임원부터 실무진까지 모두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제 와서 한전과 자회사들을 재통합하면 중복 기능 인력들이 풍년을 이룰 것이다. 전력 도매시장의 완전 경쟁체제 구축 실패에 대한 대가는 컸다. 비효율성은 곳곳에 내재되어 오히려 소비자들이 내는 부담을 가중시켜 왔다. 앞서 설명한 적자를 겪고 있는 모회사인 한국전력, 그 적자의 기준이 되는 발전원가가 경쟁부재로 인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그걸 기준으로 발전사별로 다르게 배분되는 이익구조로 인해 불만이 팽배한 민간 발전사들, 이러한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결정된 전기료를 아무 말없이 수용해야 하는 국민들, 경쟁적 전력시장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전력가격을 직접 결정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집권당과 정부, 이에 덧붙여 나름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이러한 비경쟁적 전력시장으로 인해 기후변화 억제 정책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 의아할 뿐인 해외의 시선들. 정치권력이 마무리 짓지 못한 어중간한 전력시장 개혁을, 행정부처가 어쩌지 못하는 입장도 십분 이해가 간다. 게다가 산하기관 및 발전공기업들은 담당 정부부처와 오랜 인력교류로 한 몸으로 얽힌 상황이다. 기후변화 억제라는 정책적 목표를 위해는 제살을 자르는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정부의 책무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제 식구 챙기느라 어정쩡한 태도밖에 취할 수 밖에 없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결국 지금처럼 한국전력과 여전히 탯줄로 연결되어 임의로 이익을 정산 받으며 정부로부터 성에 차지도 않는 보호를 받으며 겨우 명줄만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불만족스러우니 자회사 매각은 커녕 재통합에 미련을 가지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도 저도 머리 아프고 한국전력의 적자는 해소해줘야 하니, 기후변화 대응 핑계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전기가격만 올리자는 의견이 대세이다. 기존 전력부문의 비경쟁 상황 (재통합이든 현재의 무늬만 자회사 분할)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비효율성은 그냥 일반 국민들이 십시일반 갹출해서 메꾸자는 거다. 물론 앞서 언급만 문제 중 몇 가지는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미봉책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혹은 소비자 권리 측면에서, 경쟁을 통하지 않은 묻지마 식 가격 인상을 수용하기가 매우 찜찜하다. 이상태로는 여전히 발전 전환부문의 탈탄소는 저항이 거셀 것이고, 탄소시장과 같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도 영원히 겉돌 것이다. 요컨데, 전기가격 조정 논의보다 도매 전력시장 정상화가 먼저이고, 이는 모든 기후변화 억제 정책들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유종민

[EE칼럼] 에너지 정책 기조 강화를 위해...‘조직화된 무책임성’부터 벗어나야

최근 에너지 부문의 가장 큰 '이슈'는 국제에너지기구(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최근(10월 16일)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WEO:World Energy Outlook) 2024' 일 것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매년 WEO 출간을 기다리고 그 내용을 음미하면서 금년을 마무리하고 앞날을 기약한다. 올해 WEO 내용 중 가장 주목할 것은 '전기 에너지 시대'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슈'이다. 오래된 에너지 원론에서 에너지의 진전 방향을 나무 땔감, 석탄 등 '고체' 에너지 시대에서 석유 등 '액체' 에너지 시대로 발전하고 가스, 수소 등 “기체' 에너지 시대로 나아간다고 한다. 이런 진전의 끝은 석탄, 석유 등 모든 천연자원 바탕 에너지원들이 도선(導線: Grid) 에너지인 전기로 전환되어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에 도달한다. 상술한 IEA의 WEO 2024에서도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의 사용 정점이 가까워진 만큼 조만간 '전기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2020년대 하반기부터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과잉을 예상하였다. 이에 따라 화석 연료 가격의 하락 소지가 크다. 당연히 이 부문에 대한 투자 매력은 줄어든다. 이에 정부 등 공공부문은 미래 지구환경문제에 대비하여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투자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화석 연료 보조금을 폐지/축소할 것이다. 이 결과로 태양광 등 주요 청정에너지 생산 능력이 대폭 증가할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전문가/기관들이 원유 가격은 강세장이 오더라도 현재 수준보다 5~10달러 정도 상승에 머물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현안 관심사인 이스라엘의 이란 석유 시설 직접 공격 가능성은 미국, 유럽 등의 적극적 중재로 매우 낮다고 한다. 사실 이란은 지금 최대 200만 배럴/일(bpd) 수준 수출을 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공급량의 약 2% 정도이다. 지금 세계 원유시장은 공급은 풍부하고 수요 증가는 부진한 편이다. OPEC+로 총칭되는 러시아와 석유 수출국 기구(OPEC) 국가들은 500만 배럴/일 이상의 추가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 원유 공급중단에 대비에 충분한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만 해도 400만 배럴/일 이상의 추가 생산이 가능하다. 더구나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브라질, 멕시코, 가이아나 등지에서 원유 증산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유럽의 예상보다 저조한 경제 성장과 휘발유차에서 전기 자동차로의 대체 움직임으로 인해 석유 수요 증가속도는 낮아지고 있다. 올해 석유 적정 가격을 70달러 수준이라는 의견도 많다. 여기서 우리는 에너지 유발 환경오염문제가 갈수록 부각 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번 WEO 내용에서도 저공해 에너지원에 더 많은 투자를 강조하였다. IEA는 현재 각국 여건을 종합할 때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저탄소(Low Carbon) 에너지원이 전 세계 전력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IEA 사무국은 석탄 시대와 석유 시대를 거쳐, 이제는 저탄소- 신재생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하는 '전기 시대'가 오고 있다고 공언하였다. 특히 중국의 저탄소 에너지 개발 속도에 유의하였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는 조만간 원자력, 풍력, 수력, 가스, 그리고 마침내 석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발전원이 될 것으로 보았다. 이런 여건에서 석탄, 석유, 가스 등 핵심 화석 연료 수요는 2030년 즈음 최고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석유 수요가 2030년경 하루 약 1억200만 배럴로 최고치에 달한 뒤 2035년엔 하루 9천900만 배럴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여건에서 IEA/WEO 자료를 포함하여 여러 전문기관 자료를 종합하면 현재 세계 에너지/환경 여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이미 언급한 내용도 있지만 가용한 모든 전문의견을 취합한 것이다. 미묘한 전문기관 간의 다른 의견을 음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는 2030년까지 2.7배 증가할 것이다. 이는 지난 9월 '두바이'개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결의한 신재생 용량 '3배 증가' 목표에는 못 미친다. 사실 IEA는 COP28에서 2030년까지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을 세 배로 늘리고 화석 연료 사용량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건설허가 및 송전망 연결과 같은 많은 제약요인 극복이 문제인 것 같다.그래도 청정에너지는 "전례 없는 속도“로 성장하여, 석탄, 가스, 그리고 석유를 추월하여 "2030년대 중반“에 세계 최대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재생 에너지와 원전을 포함한 저탄소 에너지는 2030년까지 44% 성장하여 글로벌 에너지 공급의 주력이 될 전망이다. 같은 기간 동안 글로벌 에너지 수요는 5% 정도 증가할 것이다. 전기 자동차(EV)는 작년 전망에서 2030년까지 하루 400만 '배럴'의 원유 대체가 예상됐지만, 올해 여러 전망에서 2030년까지 600만 배럴/일의 원유 대체가 가능하단다. 세계는 2030년까지 CO2 배출량을 2023년 수준보다 4%쯤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도 산업화 이전 기온보다 2.4도 상승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온상승 전망은 아직도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변화에 즈음하여 우리나라 입장에서 가장 큰 걱정은 에너지 문제가 또다시 지정학적 변화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다. 시장변화 과정에서 경제 논리가 배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불길한 징조이다. 원자재가격, 환율, 인플레 상승이라는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3高) 문제가 재연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우리 과제는 국가안보 차원의 에너지자원부문 위험관리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 97%, 중국, 일본 등 세계 2~3위 석유 수입국과 근접한 동북아 에너지시장의 구조적 불안정성, 그리고 남북분단에 기인한 고립된 우리 에너지시장 등 구조적인 한계 요인들 때문이다. 이 결과 오랫동안 추진해온 수입의존도 감축, 동북아 에너지공동체 형성, 남북 에너지협력이라는 3가지 우리 에너지 '비전'추진이 걱정이다. 이에 우리 에너지전략 변화를 재검토할 수 있다. 실용화가 다소 불확실한 수소 등 대체에너지 개발 대신에 '지속 가능한 화석에너지(Sustainable Fossil Fuel)'개발전략이 검토될 수 있다. 이 전략은 석유, 가스 등 비교적 청정한 에너지 단기확보와 석탄 등 저급연료의 청정화를 동시 추진하는 '단기' 전략이다. 물론 저탄소 에너지원개발은 '장기 중점'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전략추진은 2030년까지는 석유, 석탄 등 화석 연료가 세계 에너지 수요의 80% 이상 유지한다는 각종 전문분석과 전망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공급구조를 바꾸는 것은 막대한 체제전환비용이 소요된다. 그리고 장기간의 준비 기간도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 에너지전략에는 반드시 시스템 안정성, 예측 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들도 '남몰래' 기존 에너지산업의 보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에너지 문제를 '통제 불가능한 위험'에서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이런 판국에 국내 전기요금 조정은 정부 실패를 지속하여 에너지 문제를 '통제 불가능한 위험'으로 악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정부가 24일 산업용 전기요금만 킬로와트시(kWh)당 평균 16.9원(9.7%) 인상하고, 가정용 등 여타 요금을 서민 생활 안정 등을 구실로 동결하였다. 당연히 정책 실패에 따른 비용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국민 여론에 부응하여 당장 반발이 가장 적을 산업용만 인상하는 것으로 시장원칙 무시하면서 요금체계 왜곡을 가중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참고로 우리 주택용 전기요금은 OECD 평균의 54%, 산업용은 66% 수준이다.이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 확실한 대안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차원의 '조직된 무책임성'(Organized Irresponsibility)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최기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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