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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온난화의 파라독스 한파

예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온난했던 연초의 날씨가 지난 주 초부터 돌변하여 전국을 냉기로 얼어붙게 하고 있다. 원인은 북극의 찬 공기덩어리가 한반도로 남하하며 몰고온 한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겨울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한파의 지속기간은 2-3일 정도인 것에 비하여 이번 한파는 예상보다 길게 이어져 이번 주 초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극발 한파는 단지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방 뿐만 아니라 미국의 뉴올리언스 같이 따뜻한 멕시코만 인근 지역이나 타이완과 같은 아열대 지역까지 남하하여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지난 9일에 대만에 불어닥친 한파는 78명에 이르는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 한파라니 다소 의아하기도 하고 더군다나 한파가 일주일 이상 이어지면 심지어 온난화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긴 지속시간과 강한 강도를 갖는 한파는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즉, 겨울철 이상 한파는 온난화의 파라독스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파라독스에 중심에는 제트기류가 있다. 제트기류란 겨울철에 북반구 중위도를 따라 둥글게 띠를 이루며 서에서 동으로 부는 강한 편서풍을 말한다. 1930년대 존재가 알려진 이 강한 편서풍의 밸트는 제트 추진 엔진이 고속으로 공기를 배출할 때와 같은 매우 강력한 흐름이라는 의미로 후에 제트기류라 명명되었다. 실제로 고도 10-12km 중위도 상공에 위치한 이 바람의 풍속은 중심부에서 최고 시속 300~500km에 이른다. KTX보다 빠른 속도이다. 그래서 항공사와 조종사들은 제트기류의 강풍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항공기의 비행시간과 연료효율성을 최적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미주지역으로 향하는 비행의 경우 순풍을 최대한 활용하면 전체 비행시간을 단축시키고 연료도 절약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동에서 서쪽으로 비행하는 경우에 조종사들은 날씨 상황에 따라 강한 역풍을 피해 항로를 택하기도 한다. 북반구 겨울에는 찬 공기덩어리가 북극을 중심으로 놓이게 되는데 찬 공기는 가라앉으려고 하고 더운 공기는 뜨려고 하는 기체의 일반적 성질 때문에 북쪽의 차가운 공기는 언제든 남쪽의 따뜻한 공기의 아래를 파고들며 남하하려 한다. 그런데 북극의 찬 공기의 남하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트기류이다. 즉, 제트기류는 극지방의 찬 공기가 저위도로 흘러내려와 지구의 지면기온이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것을 막아주는 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제트기류는 자전하는 지구 유체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남북 간의 기온차가 크면 강하고 기온차가 작으면 약하게 부는 역학적 성질이 있다. 따라서 적도와 극지방 간의 기온의 차이가 크면 지구의 중위도 둘레를 도는 제트기류는 강해지고 이에 따라 찬 공기는 북극을 중심으로 갇히게 되지만 남북 간의 기온차이가 작아지면 제트기류는 약해지고 남북으로 사행을 하게 된다. 즉, 남북 간의 기온차가 작아지면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는 능력이 감소하면서 찬 공기가 사행하는 흐름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내려오게 된다. 제트기류가 남북으로 사행할 때 북쪽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흘러내려오는 지역은 한파를 경험하게 되며 반대로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북쪽으로 향하는 지역은 이상 난동을 겪게 된다. 남북 간의 기온차가 커서 제트기류가 중위도 둘레를 원형의 띠를 이루며 강하게 부는 경우를 양의 북극진동 상태라고 하고, 반대로 남북 간의 기온차가 적어서 제트기류가 사행을 함에 따라 지구 곳곳에 이상 난동과 한파가 발생하는 경우를 음의 북극진동 상태라 한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 활동에 의해 대기 중에 방출되고 있는 온실기체의 중가로 말미암아 전지구 기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의 전지구 평균기온은 15.10oC로 관측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으며 이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무려 1.55oC가 상승한 수치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1월의 전지구 평균온도는 13.23oC로 관측사상 가장 따뜻한 1월로 2024년 1월의 기록을 또다시 갱신했다. 지구온난화 속도는 지역에 따라 다른데, 북극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하여 2-3배 정도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북극증폭"이라 부른다. 북극증폭은 보다 복잡한 물리적 원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극지방이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 속도가 더 크기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가속될수록 남북 간의 기온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되고 남북으로 사행을 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지구촌 곳곳에 한파와 이상난동 현상이 빈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더 유의해야할 점은 제트기류의 사행으로 발생한 한파는 일반적인 한파보다도 강도와 지속기간이 길다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제트기류의 사행은 일반적으로 블로킹(blocking)이라는 현상을 일으키는데, 블로킹이란 그 용어가 의미하듯이 공기의 흐름이 남북으로 사행함에 따라 정체되는 현상이다.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지난 45년 동안 170여 차례의 한파가 발생했는데 이 중 약 22%에 이르는 한파가 블로킹 한파로 분류된다. 일반적인 한파의 지속시간이 2-3일인데 비해서 블로킹 한파는 6.8일로 두 배 가량 길고 한파의 강도도 1.5배 정도 강하다. 이번 한파가 여기에 속하는 한파이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겨울과 봄에 이상난동이나 갑작스런 한파는 사회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갑작스런 한파는 이에 대비하지 않은 인프라에 부담을 주어 에너지 수요 증가와 정전과 교통 장애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농작물 피해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심혈관계 질환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파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은 결국 피해에 대한 수리와 복구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뉴노말(new normal)은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난 후 새로운 상황이나 조건이 일상적인 표준이 되어버린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로 COVID-19 팬데믹 이후에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비대면 회의 등 새로운 생활 방식이 자리잡으면서 생겨난 용어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 기상현상이나 극한적 날씨가 일상이 되어가는 요즘,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려는 차원에서 기후변화 분야에도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한파, 이상난동 그리고 이와 동반되는 폭설, 가뭄 등과 같은 현상은 더 이상 비정상적(abnormal) 기후형태가 아닌 새롭게 등장한 기후, 즉 뉴노말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강한 한파와 이에 따를 폭설과 극심한 기온변동과 같은 새로운 표준기후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의 정비가 필요하다.

[기고]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방류에 관하여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 처리수 방류를 발표했을 때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는 안전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오염수는 삼중수소를 제외한 모든 방사성 물질이 안전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ALPS(다핵종제거장치)에 의해 처리 과정을 거친다. 방류 시 삼중수소는 규제 기준치의 1/40,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기준치의 1/7 수준인 리터당 1,500베크렐(Bq/l) 미만으로 희석되므로 매우 보수적인 수준이다. 연간 삼중수소 배출 총량은 원전 가동 당시와 같은 22테라베크렐(TBq)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비교적 삼중수소 생산량이 낮은 비등경수로(BWR)인 만큼, 이처럼 보수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원전은 물론, 이미 수많은 원전에서 60년 넘게 사람이나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보다 훨씬 많은 삼중수소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일본은 국제 안전 기준에 따라 안전하고 투명한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처리수 방류 계획과 준비 과정을 독립적으로 평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IAEA는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저명한 전문가 11명과 IAEA 직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조직하고 2022년 2월부터 관련 활동을 시작했으며 2023년 7월 '후쿠시마 제1원전 ALPS 처리수 안전성 검토에 관한 IAEA 포괄 보고서'를 통해 이번 방류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IAEA는 방류 기간 동안 현장에 상주하며 주변 해역의 방사능 수치를 독립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한국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비롯한 독립적인 제3의 실험실에서 해수 샘플 검사가 실시됐으며 IAEA는 2023년 5월 보고서를 통해 해수 샘플이 정확하게 분석되고 있음을 확인했다.희석된 처리수는 2023년 8월 24일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0차례에 걸쳐 방류됐으며 한번의 방류는 19일이 소요됐다. 일본 회계연도 기준 2023년에는 총 4차례의 방류로 4.5TBq의 삼중수소가 배출됐고 2024년에는 현재까지 6차례의 방류를 통해 10.3TBq의 삼중수소가 방류됐다. 현재 도쿄전력은 처리수 방류 현황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처리수 포털사이트(https://www.tepco.co.jp/en/decommission/progress/watertreatment/index-e.html)'를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처리수 방류는 기준치 이하로 안전하게 이뤄졌을까. 해수 삼중수소의 양은 어느 정도이며 한국에 도달할 수 있는 양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방류 기간 동안 처리수 유량과 해수 희석 유량이 지속적으로 측정돼 희석 후 삼중수소 농도가 일본 정부 기준치 1,500Bq/l 이하로 유지되도록 한다. 삼중수소 농도는 발전소 앞 바다의 표층, 저층, 3km 이내, 10km, 30km, 50km 지점에서 측정되고 도쿄전력과 IAEA 외에 일본 환경성이 해역 모니터링, 해양 생물상(해초 및 어류) 조사, 해변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환경성은 자체 측정 결과를 공식 사이트(https://shorisui-monitoring.env.go.jp/en/)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규제청과 후쿠시마현에서도 독립적으로 해수 삼중수소를 측정하고 있고 일본 수산청은 수산물 모니터링을 실시 중이다. 일반적인 측정 결과에 의하면 방류 지점 1km 이내 해수 삼중수소 수치가 10Bq/l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전력은 방류 지점 3km 이내 10곳에서 수치가 350Bq/l에 도달하면 조사를 실시하고 700Bq/l에 다다르면 배출을 중단한다. 모든 측정치는 이러한 수치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IAEA는 ALPS 처리수 방류 시작 이후 2023년 10월 첫번째 점검을 시작해 지난해 1월에 보고서를 발표했다. IAEA는 모든 운영 과정이 안전하게 수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필자는 지난해 2월 일본을 방문해 후쿠시마현 이와키 어시장을 방문했다. 생선 해부 샘플을 관찰하고 방사능 수치를 확인했지만 항상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한국에 유입되지 않을 것이며 일본산 수산물은 걱정하지 않고 섭취해도 되는 만큼, 한국 국민들은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처리수 방류는 일본이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토니 어윈(Tony Irwin)

[EE칼럼] 원자력 활용한 산업경쟁력 제고가 진정한 미래를 위한 투자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선진국은 인건비도 비싸고 모든 경비가 더 드는데 어떻게 그런 나라에서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고 공장과 일자리를 유지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고정비용 중 땅값 같은 것은 우리나라가 워낙에 불리하지만 아직은 한국의 국민소득이 좀 더 낮으니 산업 경쟁력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국 일인당국민소득이 2023년 기준 33,121달러였는데, 영국은 48,866달러, 독일은 52,745달러, 그리고 미국은 81,695달러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세 위협을 가하면서 외국 기업들에게 산업체를 미국 내로 이전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을 보면 궁금증이 더해진다. 미국 내에 공장을 지어서 미국 노동자와 미국 에너지로 만든 공업생산품이 과연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만약 가격이 지나치게 오른다면 곧 모든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될 텐데 어떻게 그런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국민소득이 높다고 공업 생산품의 원가가 그렇게 간단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로봇과 AI를 활용한 자동화를 진행해온 덕분에 선진국 산업의 생산성이 후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오랜 기간에 걸친 치열한 에너지확보 정책을 펼쳐왔기에 경쟁력 있는 가격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공장을 짓는 것보다 더 수익을 크게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 산업들이 있었기에 그쪽으로 투자가 집중되어 왔을 뿐이지 산업경쟁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공업의 쇠퇴에 따라 직업을 찾지 못해서 사회보장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노동자 계층을 위해 산업 재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3년 기준 미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77.9달러, 독일 68.1달러, 프랑스 65.6달러에 이르지만, 한국은 아직도 44.4달러이다. 이 노동생산성과 산업경쟁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관계에 있다. 가내수공업 방식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니, 생산성의 향상은 신규투자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이 계속 향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수년간 신규투자가 부진했던 공업생산성 지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약간 후퇴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생산성을 높이려면 신규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산업경쟁력이 높지 않으면 누가 그 나라에 신규 투자를 하겠는가? 다르게 말하자면, 그 나라의 노동생산성은 산업경쟁력을 드러내는 지표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과 산업경쟁력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나라의 장기 발전에 꼭 필요하다. 여기서 에너지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버드인터내셔널리뷰에서는 작년 5월에 이미 에너지문제로 인해 독일의 산업경쟁력이 없어지고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는데, 독일의 에너지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 수준에 비해 35% 나 급등한 주요 이유로 러시아 일변도의 가스 공급에 지나치게 안주한 정책과 원자력발전량을 계속 축소한 탈원전 정책을 꼽고, 이 두 가지 정책을 바꾸어야 강력하고 회복력 있는 경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에 대해 합리적 분석보다는 정치적으로 접근한 결과가 최근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독일 경제 위기의 실제 이유인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 드러난 것처럼 가스와 전기 가격이 사실상 그 나라의 에너지경쟁력 지표이다. 그중에서도 전기 가격은 정부의 정책적 개입으로 인해 각국별로 그 편차가 매우 심한 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이 국가의 산업보조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저렴한 전기요금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산업용전기 요금만 급격히 올리고 있어서 걱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kWh당 산업용 전기요금은 종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80원정도 된다. 2024년 11월 기준으로 미국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7.89센트이니 놀랍게도 미국이 60%나 저렴하다. 참고로, 미국 가정용 전기 가격은 17.01센트이니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 요금인 172.4원에 비교하면 오히려 40%가 비싸다. 이런 상황이니 노동 생산성도 낮고 에너지 비용도 높은 우리나라에 산업 신규 투자가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걱정이 저절로 들게 된다.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춘 원자력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다. 더구나 최근 한수원이 제안한 스마트 넷제로 시티(SSNC)는 소형모듈형 SMR 원자로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면서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획기적인 에너지 모델이다. 단순히 도시에 주거용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량 에너지를 소비하는 산업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원자로의 열과 전기를 공급하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정체된 산업경쟁력을 일거에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자력이야 말로 기술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 우리 노력하기에 따라서 얼마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이다.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트럼프가 쏘아 올린 에너지 비상사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 공언한 대로 행정명령을 쏟아내며 미국의 정책 방향을 급격히 뒤집고 있다. 특히'친환경에서 다시 화석연료'로 급선회시킨 소위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Unleashing American Energy)은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완전히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화석에너지로부터 멀어지는 에너지전환(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s)을 선언한 유엔기후변화협약과도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후변화는 “녹색 신종 사기"일 뿐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에 서명함으로써 자신의 에너지정책 방향성을 대내외에 분명히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은 에너지 상황 인식에서 시작된다. 그는“미국은 에너지 생산, 운송, 정제, 발전의 부족으로 경제, 안보에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직면했다."라는 인식 아래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연방 정부 차원의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는 미국 역사상 처음일 정도로 충격적이다. 더욱이 세계 최대 석유, 가스 생산국이자 에너지 순 수출국이 될 정도로 에너지가 풍부한 미국에서 전쟁 때나 발동할 수 있는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법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 프리미엄을 활용해, 현시점에서는 체감되지 않지만 이대로 가면 큰 에너지 위기와 미국의 리더십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미국 사회에 각성시키기 위해 정치적 초강수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질서는 미∙중 간 신냉전 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약 30년간 조성된 미국의 일극 체제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재 상황은 미국으로서는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신냉전 승리 전략은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통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MAGA)이다. 특히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에서 완벽한 승리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확고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AI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왜냐하면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기재들은 모두 전기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하루 전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집회에서 “우리는 지금의 두 배,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비상 권한을 사용해 대형 공장과 AI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한 미국 내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더그 버검 후보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전력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다면 중국과의 AI 군비 경쟁에서 패배해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비상한 각오로 AI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을 태세다. AI 산업이 필요한 에너지는 한순간도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기다. 자연 여건에 따라 간헐적으로 발전되는 태양광, 풍력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에 미국의 안보를 맡기기는 역부족이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기후변화 이슈를 후순위로 밀어낸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이 화석연료 생산 확대,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파리기후협약 탈퇴, 원자력 발전 활성화 등으로 집약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우리나라도, 대개의 전통 산업이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경쟁력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현 상황을 고려할 때, AI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성패에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충분하고 안정적인 전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만 필요한 전기가 10GW를 넘을 전망이다.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25%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수도권 신규 LNG 발전소 건설과 동해안과 서남해안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생산된 전기를 송전선로로 끌어오는 방안이 계획 중이지만, 탄소중립 목표, 송전선로 건설 지연, 한전의 재정 악화 등으로 비상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비상사태는 오히려 우리에게 더 필요해 보인다. 에너지 비상사태가 미국에서는 부자 몸조심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생존의 몸부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년에 벌써 확정해야 할 11차 전력수급계획조차 거대 야당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미루는 한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박주헌

[EE칼럼]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는 에너지 자원개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전환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늘어나는 세계 인구와 경제 성장을 위해 안정적 에너지자원 공급이 모든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된 지도 오래되었다. 최근 4년 만에 미국의 대통령으로 돌아온 트럼프의 값싼 에너지 정책 표방으로 그간 유럽 주도의 세계 기후변화 정책은 후퇴되고 있다. 또한 자국의 석유가스 개발과 생산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값싼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예고했다. 세계 최대 에너지 강국인 미국의 에너지 정책변화는 곧바로 전 세계 에너지전환에 큰 변수로 작용하여 미래의 에너지원 확보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런 상황에 더하여 작금의 국내 경제 및 정치의 불확실성은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에너지자원 안보 정책을표류하게 만들고 있다. 오랜 시간과 대규모 자본 및 기술의 축적이 필요한 에너지 자원개발은 장기적 관점에 기반한 실행력 있는 계획이 없으면 우왕좌왕한다. 계획은 있지만 추진할 자본과 능력이 없으면 또한 낭패를 본다. 결국 청사진만 반복하여 만들다가 시간만 지나가고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 없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자원개발의 경우에는 치밀한 계획과 넉넉한 자본이 있어도 꾸준히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사업에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불확실성이 크다고 운에만 맡기면 아무런 발전도 없이 실패만 반복될 뿐이다. 불확실성이 큰 분야에서는 여러 번의 실패가 쌓여 씨앗이 되어 훗날 성공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끈질긴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런 각오가 아니라면 아예 자원개발에 나서지도 말라. 그냥 국가의 운명을 운에 맡기고 위기를 극복할 도전도 포기한 채 지켜만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에너지자원은 국가별 편재성과 유한성으로 인하여 국가 산업과 경제에 민감한 문제이기에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분쟁의 원천이 된다. 그러기에 에너지자원은 국가의 문제이지 기업과 개인의 문제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히, 땅속에 부존하고 있는 자원을 탐사해야 하는 자원개발은 탐사 성공률도 낮고 사업 시간도 길게 소요되고 또한 대규모 자금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규모 기업이나 국영기업이 나서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끊임없는 국지적 분쟁과 기후변화 및 에너지 정책변화 등 다수 분야에 걸쳐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는 사업 특성상 불확실성이 큰 자원개발 분야의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꼭 추진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원산업은 긴 리드타임이 필요하다. 투자를 시작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도 어렵고 또한 성공하더라도 생산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10년 이상 필요하다. 즉, 미리 시작해야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국가와 사회를 지탱해 주는 자원 확보는 장기적 계획에 따라 꾸준히 실행되어야 한다. 자원공급 문제가 발생하여 겉으로 드러나면 당장 대응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그대로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제 정세에서 지금 또다시 준비 없이 방황하며 시간을 보냈다가는 10년 후에 또다시 후회를 반복할 수도 있다. 향후 30년 이상 소요될 불확실한 탄소중립과 복잡한 에너지전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실패가 두려워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가도 얻는 것도 변하는 것도 없다. 우리 사회와 국가를 위한 자원안보 최전선에서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며 어렵게 버티고 있는 자원 기업들의 도전정신에 대한 응원과 기다림이 필요한 시기이다. 신현돈

[EE칼럼]전기본, 새로 짜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수립 기한을 넘겼다. 전기본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년 단위로 수립하여 시행한다. 11차 전기본의 계획기간이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이니 계획이라는 의미를 살리려면 2023년에는 수립되어야 맞겠으나 그동안 시작년도에 수립해 왔다. 이번에도 지난해 5월에 실무안이 나온 뒤 산자부는 연말에 확정하려 하였으나 계엄사태로 해를 넘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산자부는 실무안을 일부 수정한 조정안을 만들어 국회를 설득하고 나섰으나 에너지정의행동 등 시민단체가 백지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전기본은 지난해 실무안이 나왔을 때부터 근본적인 문제들이 지적되어왔다. 한 차례 공청회를 하기는 했지만 수정 의견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국회 보고용 조정안조차 환경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요구를 미미하게 반영한 수준에 머물렀다. 첫 번째로 제기되는 문제점은 과다한 목표 수요이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의 최대 전력수요를 129.3GW로 전망하여 22%의 예비율을 적용해 157.8GW의 설비가 필요하다고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동하는 기존 발전설비와 기 계획된 발전설비 총 147.2GW를 감안하면 추가로 10.6GW의 발전설비가 필요하며, 이는 대형 원전 최대 3기와 소형 모듈러 원전, 가스복합발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목표 수요는 10차 전기본의 2036년 목표치 118GW보다 불과 2년 후에 11.3GW를 높여 잡은 것으로 그에 따라 신규 필요 설비량도 1.7GW에서 10.6GW로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는 대형 원전 3기를 추가하기 위해 목표 수요를 늘려잡았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11,402kWh로 세계 14위이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이 수력전기가 풍부한 나라와 일부 산유국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가장 많다. 독일의 1인당 전력소비량 5,500kWh에 비하면 약 2배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력의 열량 당 가격이 석유, 가스보다 싼 것도 한몫하였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우리의 경쟁국들은 에너지 효율이 우리의 2배 수준이며 이미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가 동반하지 않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에너지 수입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전기본은 계획의 출발점인 목표 수요를 전망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다. OECD 국가 중 에너지 안보가 가장 취약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제일의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취임 일성으로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여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선언하였다 우리나라는 1988년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여 에너지원의 수입대체를 위한 노력을 본격화하였다. 이미 육상풍력발전의 보급이 궤도에 오르고 있던 시점이다. 이후 태양광 발전이 빠르게 성장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법의 명칭은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으로 바뀌었다. 이 중 신에너지는 화석연료를 활용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에너지 이용 합리화라고 보아야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진정한 자립 에너지이다. 97.5%까지 올라갔던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3% 수준으로 내려온 것은 더디나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보급된 덕분이다. 이에 따른 수입대체 효과는 약 10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목표는 2030년에 총 발전량의 18.7%, 2038년에 29.1%에 불과하다. 국회 설득용 조정안에는 기존안에서 0.1%를 상향하였다. 참으로 안이하기 이를 데 없다. 독일은 이미 올해 초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62.7%를 기록하였다. 주춤했던 유럽의 재생에너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불붙었다. 에너지 안보가 더욱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손실이나 좌초할 자산이 아니다. 200조원에 이르는 에너지 수입의 대체 효과는 물론 강화되는 기후위기 대응 압박에서 우리나라 산업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목표는 대폭 상향 조정되어야 한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독선과 극한의 사고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회로 재정립되는 해가 될 것이다. 전기본의 지연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7개월이나 늦은 해도 있었다. 산자부는 11차 전기본의 강행을 유보하고 출발부터 다시 점검하기를 바란다. 신동한

[EE칼럼] 트럼프의 에너지 역주행... 全方位 에너지 시대의 K-기업 생존법칙

바이든 행정부가 4년간 추진해온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취임으로 급격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기조 하에 파리기후협정 재탈퇴, 화석연료 규제 완화, LNG 수출 제한 해제, 해상풍력 프로젝트 중단,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예산 삭감 등 일련의 행정명령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의회·법원·주정부가 얽힌 미국의 권력 구조상, 트럼프 행정부의 '친환경 예산 전면 중단'이 바로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역주행' 흐름은 이미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시계를 흔들고 있으며, 한국의 에너지·전력 기업들 역시 이 급격한 변화의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정책 급변 속에서 시장은 당장의 불확실성에 주목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표면적인 '친환경 대 화석연료'의 대립 구도 너머에 더 복잡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정책 당국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에너지원의 선택보다도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증가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는 노후화된 전력망에 전례 없는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전력망 인프라는 상당 부분 노후화되어 있다. 특히 동북부와 중서부 지역의 설비 교체 수요가 매우 크다.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그리드 도입, ESS 연계를 통한 계통 안정화 등은 연방 차원의 예산 지원이 줄더라도, 민간투자와 주정부 협력으로 상당 부분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全방위 에너지(All-of-the-above)' 접근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 중심 정책이 역설적으로 다양한 에너지원의 병존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안정적 기저전력 확보와 탄소 저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규제 승인과 상용화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SS는 이미 단순한 재생에너지 보조 수단을 넘어 스마트 그리드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주요 전력회사들은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대체 전원으로 대규모 ESS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환경 규제 대응뿐만 아니라 전력망 안정성 확보라는 현실적 필요에 기인한다. 수소 역시 IRA 보조금 축소 여부와 상관없이 EU와 아시아에서의 투자 확대로, 향후 블루·핑크·그린 등 여러 방식이 공존할 전망이다. 유럽의 수소 밸류체인 구축 노력과 일본의 수소 발전 실증이 진전을 보이면서, 미국 내에서도 수소 인프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이미 재생에너지·배터리·연료전지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한 한국 기업들은 SMR·청정수소·지능형 전력망 등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내 전력망 현대화 프로젝트는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중장기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주의할 점은 미국 내 주정부별 에너지 전략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다. 캘리포니아, 뉴욕 등은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ESS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텍사스는 풍력·태양광 외에 가스발전·배터리 설치도 함께 늘리는 '사실상 전방위'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별 RPS 목표, 상쇄 크레딧 제도, 인허가 절차 등을 면밀히 분석한 맞춤형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 더불어 글로벌 공급망과 정책의 연계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미국뿐 아니라 EU·중국 등도 저마다의 에너지 안보 전략을 강화하고 있어, 원자재·부품 조달과 현지 생산 요구가 강화될 수 있다. 미국 현지화가 유리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유럽·중국 수출 규제나 글로벌 무역 갈등으로 인한 리스크도 경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역주행' 시도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기술 혁신과 시장 수요 증가는 하루아침에 멈추기 어렵다. 오히려 화석연료·원자력·재생에너지·ESS·수소가 복합적으로 경쟁하고 협업하는 '全방위 에너지 시대'로의 진입이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이 증가한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포트폴리오의 다각화, 정책·규제 변화에 대한 발 빠른 대처, 주정부·민간과의 협력 모델 구축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내 주요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클러스터가 전력 인프라 현대화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마이크로그리드와 자체 발전설비 구축을 통해 전력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기술력과 시장 적응력을 두루 갖춘 기업만이 연방정부 정책 변화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며 한 단계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윤희

[EE칼럼] 에너지와 AI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올해 1월 초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들라고 하면 단연 AI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일 것이다. 삼성전자와 LG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물론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수천 개의 기업들이 참여하여 저마다 본인들이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를 이끌어 갈 선두 주자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엔비디아, TSMC,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 관련 업계는 이미 수년 전부터 AI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으며 선진국 정부들 역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지난주 중국의 작은 벤처기업 딥시크(DeepSeek)의 뉴스는 이제 AI의 시대가 규모에서 효율성으로 퀀텀 점프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AI는 에너지 분야와는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을까? 아마도 다음의 세 가지가 가장 먼저 보이는 관계일 것이다. 먼저 컴퓨팅 파워의 증가로 인한 영향이다. AI가 가능하게 된 이유는 CPU에 이은 GPU의 발달과 HBM으로 대표되는 저장장치의 발달 등 이른바 컴퓨터의 능력이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AI의 발전은 컴퓨팅 파워를 보다 더 증가시킬 것이며 이제 손에 든 핸드폰의 컴퓨팅 능력이 70~80년대 수퍼컴퓨터의 능력보다 우수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혜택을 크게 보고 있는 분야가 바로 석유가스 및 광물의 탐사 분야이다. 특히 물리탐사 자료의 해석 분야가 대표적이다. 깊은 바닷속 석유를 찾기 위하여 탐사용 선박을 동원하여 얻은 물리탐사 자료를 예전에는 분석용 수퍼컴퓨터가 있는 지상의 연구소에 가져와서 분석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 확인하였는데, 이제는 탐사용 선박 위에서 물리탐사를 진행함과 동시에 선박에 탑재된 소형 PC만으로 선박 위에서 자료 해석과 확인 작업을 곧바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바로 AI와 Big Data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전력 사용량이 크게 증가하는 부분이다. 사람의 노동력을 AI 기능을 탑재한 전자제품이 대신하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현상은 대표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인 화석연료의 청정전력화와 맞물려 엄청난 규모의 발전시설과 송배전 시설의 추가 건설을 필요로 한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정책의 주요 내용이 바로 AI의 시대를 맞이하여 어떻게 더 저렴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느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미국의 제조 경쟁력을 더욱더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미국에서 생산되는 셰일가스의 생산을 늘려 전력 생산원가를 낮추고자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AI 혁명 시대를 선점하기 위하여 전력 인프라의 확대 및 전력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한 자국산 에너지원의 생산 증대를 정책의 중심에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AI는 또한 컴퓨팅 파워나 사용량의 증대 이상으로 학습을 통하여 보다 '스마트'하게 생활함을 의미한다. 이는 AI 시대를 위한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기존의 방식과는 매우 달라야 함을 말한다. 전력망 증대 및 스마트미터 보급 등의 단순한 양적인 증대가 아닌 실제로 스마트한 생산과 소비를 위한 투자와 제도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에너지망을 활용한 다양한 에너지 서비스의 제공 및 다양한 에너지 요금제의 제공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사용패턴에 적합한 요금제도와 사용 방식을 AI 기능과 결합하여 소비자에게 새로운 서비스로 제공하여야 한다. 이를 활용하면 에너지 소비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최근 발표한 World Energy Outlook에서 냉난방을 포함한 가전제품(appliances)의 효율 증대로 인한 효과가 데이터센터의 증가로 인한 변화보다 훨씬 크다고 전망하고 있으며 에너지 사용기기의 개선 및 소비자의 에너지 사용 행태의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미 가전업계는 건물과 가정의 다양한 전자제품을 AI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전력사용량이 피크에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저전력 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소비자와 전력사용기기 제조회사 및 건설사들이 함께 구축하는 스마트한 측정기기 및 요금제도라면 에너지 효율성의 증대는 물론 국민의 만족도도 함께 증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공급자 역시 전력망의 부하 관리를 AI와 빅데이터를 통하여 크게 효율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허은녕

[EE칼럼]미래의 주력 에너지원은 태양광

2024년 태양광 산업은 전례 없는 성장을 기록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엠버(Ember)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2023년 대비 약 30% 증가한 593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광 발전의 총 설치 용량은 최근 몇 년간 주요 이정표를 연이어 달성했다. 2018년 원자력, 2021년 풍력, 2023년 수력 발전 용량을 차례로 추월했으며, 2024년 말 이전에는 가스 발전 용량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 추세라면 2025년에는 석탄 발전 용량마저 추월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설치 용량을 가진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2024년 신규 태양광 발전 용량이 2010년 이후 전 세계에 신규 설치된 석탄 발전 용량 540GW를 상회한다는 것이며, 이는 태양광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현재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총용량 375.92GW의 약 1.6배이며, 2024년 신규 건설된 원자력 발전 용량보다 약 100배 더 빠르게 배치되는 등 역사상 가장 빠른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통계에서는 2024년 신설된 원자력 발전 용량은 6.815GW, 영구 정지된 용량은 2.889GW, 순 증가용량은 3.926GW였다. 글로벌태양광협의회(Global Solar Council)와 솔라파워유럽(Solar Power Europe)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에 설치된 누적 태양광 발전 용량은 2024년 11월에 2테라와트(TW)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는데, 첫 번째 테라와트를 설치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지만 두 번째 테라와트를 설치하는 데는 불과 2년이면 충분했다. 태양광은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전문기관의 예측이나 시장 기대치를 계속 뛰어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핵심 전력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2024년 설치 통계가 발표되지 않아 두 개 이상의 기관 자료를 참고하여 분석했기 때문에 최종 통계와 일부 다를 수 있겠지만 2024년 신규 태양광 설치가 급증한 국가들을 보면 터키가 2023년 1.9GW에서 2024년 7.4GW로 289% 증가했고, 인도가 2023년 10GW에서 2024년 24.8GW로 148%, 미국은 2023년 24.8GW에서 2024년 38GW로 53% 증가했다. 태양광 발전에 절대 강국인 중국도 2023년 216.9GW에서 2024년 260GW 20% 증가했고, EU, 브라질, 독일 등도 전년 대비 증가했다. 2024년 전 세계 원별 발전량에서도 태양광은 전체 발전량 증가분 1,069TWh 중 430TWh로 40%를 점유하여 수력 19%, 풍력 15%, 석탄 14%, 가스 7%, 원자력 5%를 압도했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은 태양광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비용 감소, 그리고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정책 추진에 기인한다. 최근 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질 실리콘 탠덤 태양전지 효율이 세계 최고 효율인 28.6%를 달성했고, RMI(Rocky Mountain Institute)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태양광 모듈 가격은 2010년 이후 89%, 2024년에만 35% 하락하여 9센트/W 미만이 되었으며, Ember의 중국 태양광 모듈 수출 현황에서도 2024년 전체 기간은 아니지만 전 세계 모듈 수출 단가가 2023년 10월 14센트/W에서 2024년 10월 10센트/W로 40% 하락하는 등 역사적 최저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탄소 중립 정책과 관련해서도 REPowerEU, IRA, RE100, COP21, COP28 등은 태양광 산업의 성장을 더욱 가속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은 햇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연료비가 들지 않고 발전과정에서 탄소 배출 등 대기오염이나 폐기물 발생이 없으며, 국산 에너지이자, 에너지 안보에 크게 기여하는 무한 에너지원이다. 때문에 주요국에서는 신규 발전설비의 60~80%를 태양광이 차지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에 신설된 발전설비의 83%는 재생에너지였고, 신설된 모든 발전설비 중 태양광 비율은 63%였으며, 각각의 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24년의 경우 독일은 신설 발전설비의 91%가 태양광이었으며, 중국은 66.2%(1월부터 11월까지), 인도 72.8%, 미국은 75.2%가 태양광이다. OpenSolar 앤드류 버치(Andrew Birch)의 S-Curve 모델은 2035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절반이 태양광으로 공급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연간 10%씩 비용이 감소하고 25%씩 성장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2025년 태양광이 원자력을, 2031년 석유를 추월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태양광은 급속한 기술 발전, 비용 감소, 그리고 청정에너지에 대한 글로벌 수요 증가에 힘입어 미래의 주력 에너지원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에너지 안보 강화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옵션으로 부상한 태양광은, 앞으로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꿀 것이다.

[EE칼럼] 지속적 원전 수출의 성공 조건

올해는 을사년(乙巳年)이다. 청색을 뜻하는'을(乙)'과 뱀을 의미하는 '사(巳)'를 합하여 '청사(靑蛇)의 해'라고 한다. '다산·재물·치유'를 상징한단다. 그러나 우리는 을사년이라면 우선 120년 전 일제가 강제로 저지른 을사늑약(勒約)이 먼저 생각난다. 그때처럼 지금 우리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통령 구속-기소에다 무주공항 참사까지 겹쳐 온 나라는 어수선하다. 이러니 우리 사회공동체의 존재 이유인 국리민복 증강 기반이 무너지는 듯하다. 원화 환율은 급변하고 소비 심리와 기업 체감 경기는 코로나 사태 이후 최악이다. 이 모두가 지나고 보면 허망하게 끝날 정쟁(政爭)의 승리에만 몰두하는 망라한 정치권 탓이 가장 크단다. 이런 정치권의 피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 우리 정치 불확실성은 경제사회 시스템에 추가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AP통신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이 보고 있다. 올해 잠재성장의 상당 부분(년 0.2%p)이 훼손될 것 같다. 정치권 관련 '이슈'에 관여를 꺼리는 우리 재계(대한상공회의소 등)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따른 관세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AI의 빠른 기술적 변화 등을 걱정하고 있다. 이에 2차 대전 이후의 호혜적 다자(多者) 협력 체재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1) 다양한 해외 투자와 국제연대, 2) 소프트파워 등 대체 성장 모델 모색, 3) 해외 이민자 유입(500만 명 수준)을 통한 인구절벽 극복 등이 필요하단다. 이 밖에 에너지 조달과 관련 대책으로는; 97% 에너지 수입 의존국인 우리는 AI체재 유지-발전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등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식 전력체계에서 분산 전원 체재로의 일 부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암울한 여건에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총사업비 20조 원대 '체코'원전 '두코바니' 사업의 최종계약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한전과 그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 1월17일자로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을 종료하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그간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에 공급하려는 최신 한국형 원전 APR1400 모델이 자사의 원천 기술에 기반한 것이라며 한수원의 독자적인 수출에 제동을 걸어왔다. 반면 우리는 APR1400의 국산화에 성공으로 독자 수출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왔다. 그간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지재권 분쟁은 오는 3월이 시한인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최종계약에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 정부 당국은 '수백억 달러 상당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최고 수준의 비확산 기준을 준수할 수 있는 매우 경쟁력 있는 대안'이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그간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원전 시장장악 가능성을 우려해온 미국 서방권은 큰 전략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번 원전 수출을 위한 한-미 간 협상 결과는 관련 당사자들의 유-불리 여부는 결국 검증되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불리한 내용이 많을 수 있다는 의혹이 일부 계층에서 표출되고 있다. 당사자들 간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아직 그 세부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유럽 원전 수주는 '웨스팅하우스'가 전담하고, 우리 기업들은 중동·동남아 지역진출을 담당할 것이란다. 오는 3월이 시한인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최종계약을 앞둔 한국 측으로서는 국내 정치여건 혼돈의 악영향이 겹친 상황에서 한-미 관련자 분쟁 해결은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이었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없고 협상 여건마저 약화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양보가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원전 사업 경쟁력은 지난 50년간 정부 지원에 따른 것이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전체 발전량의 40% 수준을 원전에 우선 배정했다. 기기/부품 생산의 전 주기적 구축 지원도 있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비교적 충분했고 미국 스리마일, 일본 후쿠시마 등 원전사고에 따른 악영향도 차단됐다. 이에 따라 세계 수준의 경제적 기기조립 및 시공능력(On Time On Budget) 확보가 가능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이 바로 그 산물이다. 건설단가(㎾당 1,500달러 수준)는 중국보다도 낮고 선진 경쟁국들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장기 특혜 성장은 항상 비효율을 동반한다. 원전폐기물 처리와 사고 복구 비용, 품질관리 미흡과 전력 시스템 왜곡 등 모든 외부효과를 반영하면 원전의 경제성이 당연히 저하된다. 사실 지금 세계 신규 발전설비의 절반 이상이 신재생이지만, 우리의 경우 일사 조건 등 자연환경과 토지 확보, 설비 수입 비용 등에서 불리한 점이 많아 신재생 주도 시대가 세계 추세에 비해 늦을 것 같다. 그래서 특정 발전원의 압도적 우세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탈원전 논란이 원숙한 에너지환경정책으로 전환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원전 업계는 무조건적 원전 수출 지원만을 요구하고 있다. 집단이기주의로 오해받을 수 있다. 더욱이 우리 경수로기술의 경제성 확보는 길지 않을 수 있다. 미국 등에서 안전성과 경제성을 두루 갖춘 소형-모듈형 원자로 실용화가 급진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저성장-분산전력 시장에 적합하고 신재생과의 공생도 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는 원전 수출에 필수적인 금융조달 능력이 부족하다. 결정적 약점이다. UAE 원전 수출의 경우 지급보증능력 부족으로 최종계약이 5년쯤 지연됐다. 우리 대신 UAE 재무부가 자국 원전회사에 지급 보증을 했다. 우리는 이득 감소를 수용했다. 예컨대 기대 투자수익률이 16%에서 10.5%로 줄었다는 분석(최기련 2018)결과도 있다. 환율 변동, 안전기준 변화 등으로 원전 수출 위험의 가변성이 커질 수 있다. '남지 않는' 원전 수출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 금융조달과 미래기술 확보가 가능한 경우에만 원전 수출을 지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중국에 대응해 우리 원전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 능력과 미래기술 확보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장쇠퇴기에 접어든 기존 원전의 수출 이득 감축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새로운 이득 창출 전략 도입이 불가피하다. 원전 수출은 항상 '남는 장사'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이득 창출 시스템 없이는 대폭적인 원전 수출 지원은 불가능하다. 관련 경제주체들의 미래지향적 개혁조치가 필요한 때다. . 최기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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