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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경 초대석] 안병진 “유시민 李정부 비판, 엘리트주의적 오만이자 민생 대의에 독”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정책 혼선과 전당대회 이후 불거진 당내 노선 갈등 등이 겹치면서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인 유시민 작가가 연일 이재명 정부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유 작가는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를 두고 “지지층 동의 없는 재건축(중도 보수 외연 확장)은 오만이며 필연적 실패"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절대 권력은 부패해 썩은 내를 풍길 것", 심지어 “오만한 권력자로 이준석을 쫓아내다 집권 기반을 허문 윤석열과 유사하다"며 수위 높은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맹폭은 당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는 동시에, 당내 노선 갈등을 키우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연 유 작가는 왜 이 시점에 매서운 비판의 선봉에 섰으며, 그의 지적은 정당한가. 첩첩산중의 위기에 처한 이재명 정부는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에너지경제신문은 지난 28일 정치학자인 안병진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와 만나 정국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유시민 현상'의 이면을 진단하고, 이재명 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심도 있게 짚었다. 안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민주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냉철한 분석과 조언을 내놓아 온 대표적인 '공적 지식인'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과정에서 국정기획위원회 기획분과 위원으로 참여해 새 정부의 5년 국정 청사진 마련에 힘을 보탰다. 안 교수는 이번 대담에서 유 작가의 지적 중 타당한 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엘리트를 자임하는 이들의 오만한 태도와 모욕적인 언사는 대전환기의 더 나은 정치질서를 만들어 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나아가 이재명 정부의 진짜 위기는 진영 내 그들 간의 권력 투쟁이 아니라 “2030 청년층 등 시민들의 심각한 이탈"에 있다며, 민주당과 행정부가 기득권을 버리고 뼈를 깎는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 교수는 유 작가의 비판 수위가 극도로 높아진 배경에 대해 “단순한 감정적 토로나 원론적인 훈수가 아닌, 치밀하게 계산된 전술이자 권력 투쟁의 일환"이라고 어느 전략가의 진단을 인용하며 평가했다. 그는 지난 8.17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를 거론하며 유 작가의 의도를 짚었다. 당초 이재명 정부의 성공적 안착을 바라는 당내 주류의 심리는 실용주의와 메가 프로젝트를 앞세운 김민석 후보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정청래 후보와의 예상 밖 박빙으로 나타났다. 안 교수는 “이 틈새를 메운 결정적 요인이 장외에 있던 유 작가의 화력 지원"이라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유 작가가 정치지형을 전략적 역학 관계로 파악하는 데 탁월하며, 자신의 발언이 정치권과 지지층에 미칠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 작가가 당내 강성 지지층과 정청래 후보 지지자들에게 이재명 정부 비판의 근거를 자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해 김민석 체제 안착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고, 전술적으로는 전당대회 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나아가 안 교수는 유 작가의 행보가 단기적인 전당대회 개입을 넘어, 차기 대선과 당내 주도권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인 포석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냉혹한 현실 정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누가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본류(本流)' 세력이 될 것인가를 다루는 상징 투쟁이자 권력 투쟁"이라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총선을 넘어 차기 대선까지 보는 것"이라며 유 작가가 장기적인 정치적 그림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 교수는 “유 작가의 비판 중 현 정부가 뼈아프게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도 존재한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중도 확장' 명분으로 보수 인사를 기용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엇박자를 꼬집었다. 그는 “극우 세력을 고립시키고 건강한 보수와 진보의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한 중도 확장에는 찬성한다"면서도 “과거 계엄 정국을 옹호한 반헌법적 인사까지 무분별하게 끌어안는 것은 올바른 외연 확장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유 작가가 비판을 쏟아내는 태도와 어휘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강도 높게 질타했다. 아무리 지적이 옳더라도 이 대통령을 향해 '오만한 권력자', '썩은 내' 등의 모욕적 언사를 퍼붓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행동이라는 이야기다. 안 교수는 “이는 건강한 정책 노선 경쟁이 아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적대적 공격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안 교수는 공적 지식인 발언의 무게와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현재는 반헌법적 세력을 고립시키고 폭넓은 연대를 구축해 산적한 국가 과제를 해결해야 할 엄중한 시기"라며 “협소한 진영 논리에 갇혀 쏟아내는 저주는 시민의 무너져가는 삶을 지켜내고 다당제 등 더 나은 정치질서로 전환시키는 과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아울러 유 작가가 과거 '김대중 필패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빗나간 사례를 거론하며 “지식인 사회는 자신이 미래를 다 안다는 엘리트주의적 선민의식을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와 민심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주 진영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 측의 '재건축론(중도·보수 외연 확장)'과 유 작가 측의 '증축론(지지층 결속 및 진보 선명성 강화)'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안 교수는 이 같은 구도에 대해 “양쪽 모두 틀렸다"고 일축했다. 미국 정치에 정통한 안 교수는 미국 민주당 내 노선 투쟁을 예로 들며 한국 민주 진영이 나아갈 승리 공식에 대한 생산적 고민을 주문했다. 미국에서는 진보 지지층을 굳건히 하자는 좌파 그룹과 선거 승리를 위해 중도로 가야 한다는 현실주의 그룹이 대립하고 있다. 안 교수는 미국에서 민주당의 다가오는 대선 승리 공식은 “법과 질서 같은 사회·문화적 이슈는 중산층 눈높이에 맞춰 중도로 가되, 경제 정책은 양극화와 기득권 타파를 위해 과감히 급진적(진보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민주당은 타 정당들과 연합하여 진보와 중도의 새로운 연합과 승리 공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과거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안 교수는 당내 강성 지지층이 부르짖는 '진보'의 개념 자체에도 쓴 소리를 던졌다. 이들은 검찰 개혁을 진보의 최우선 과제이자 전유물로 여기지만, 진보적 공화주의의 핵심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같은 엘리트 사정기관 신설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시민 통제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소 배심원제처럼 평범한 시민이 사법 시스템을 통제하고 기소를 결정하는 관점이 진보에게 더 중요한 가치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안 교수는 진짜 진보라면 미국의 맘다니 뉴욕시장처럼 엘리트들의 권력 다툼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먹고사는 민생'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산층 청년과 중장년조차 노부모를 모시기 위한 돌봄 비용으로 월 수백만 원이 깨지며 고통받는 현실인데, 서민들은 오죽하겠는가. 유 작가가 진정으로 진보의 목소리를 내려면 전당대회 세력 다툼에 개입할 것이 아니라 치솟는 주거비와 지지부진한 돌봄 정책 등을 두고 현 정부를 매섭게 꾸짖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그리 진보적이지도 않은 엘리트 담론을 쥐고 당이 보수화된다고 비판하는 것은 그들만의 공허한 리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정부 2년 차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난국과 관련해, 안 교수는 진영 내 계파 갈등보다 '청년 세대의 심각한 외면'을 치명적 위기로 꼽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030 세대, 특히 범민주 진영의 기반이라 믿었던 30대 여성층마저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 교수는 “민주당과 청와대가 이 사실에 놀랐다는 점 자체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청년들이 원하는 아젠다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차별 금지, 일상의 안전, 주거와 돌봄 안전망 등이었고, 지난 10년간 꾸준히 경고 신호를 보냈음에도 (민주당) 주류 세력이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본인들이 얼마나 민심과 괴리된 기득권이 되었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시혜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용산 전체를 청년 주택으로 덮는다 해도 청년들의 마음은 열리지 않으며, 문제의 본질은 권력에 누가 참여하는가에 있다"고 주장했다. 구색 맞추기 청년위원회를 양산하는 위선을 멈추고, 정부와 당이 쥐고 있는 기득권 중 무엇을 포기하고 청년에게 내어줄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 교수는 “각종 요직과 공천 과정에 청년을 과감히 발탁하고, 기성세대의 정책을 단호히 뒤집을 수 있는 거부권에 준하는 실질적 권력을 청년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민주 진영이 살길은 '도전자 브랜드'를 회복하는 데 있다는 것이 안 교수의 진단이다. 보수 정당과 달리 진보 세력은 기득권과 싸우는 도전자일 때만 시민의 선택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혁신적 가치를 내세워 평범한 시민들의 동의를 끌어낸 것처럼, 현재의 민주 진영 역시 꼰대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오명을 벗고 도전자 브랜드를 되찾지 못하면 총선과 대선에서 시민의 선택을 다시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 교수는 위기를 타개할 첫 단추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의 일화를 제시하며 소통과 수용의 리더십 복원을 역설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측근이 아니었음에도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베이커는 가감 없는 직언을 쏟아냈다. 안 교수는 “성공적인 청와대 시스템의 전제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이슈의 성역이 없는 상태에서 계급장을 떼고 허심탄회하게 비판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내부 정보 유출 문제로 레이건이 전 직원을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강행하려 했을 때, 베이커는 끝까지 반대하며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자신의 지시가 항명 당했음을 알고도 화를 내거나 파면하는 대신 참모의 판단을 존중했다"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정권을 성공으로 이끄는 참모의 결기와 리더의 품격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초기 소위 '97세대'(90년대 학번으로 70년대생) 강훈식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중용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존 세대의 엘리트층이나 소위 친명(친이재명)을 넘어 다양한 목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 2년 차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강한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유 작가의 '직언할 참모가 없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입맛에 맞는 여론에 갇히지 말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사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프로세스를 복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참모진은 파면을 각오하고 바른말을 해야 하며, 대통령은 이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안 교수는 지식인과 정치권 모두에게 당부를 남겼다. “공적 지식인이고자 하는 이들은 절제되지 않은 언어나 엘리트주의적 선지자 행세를 버리고 품위 있고 열린 자세로 시민의 삶을 개선할 대안 제시에 헌신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자신들만의 자의적 결정에서 벗어나 평범한 시민의 시선 및 그들과 함께 민생 정책을 재점검하고 청년에게 실질적 권력을 나누는 결단을 내릴 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 안병진 교수 프로필 ◇약력 △1967년 대구광역시 출생 △서강대 사회학 학사·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정치학 석사·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정치학 박사, 학위논문으로 '한나 아렌트상' 수상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국정기획위원회 기획분과위원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인터뷰] “개별 설치보단 중앙공급”…이명주 교수가 말하는 한국형 히트펌프 전환 전략

“우리나라처럼 공동주택 비중이 높은 곳에서는 개별 설치보다 기계실에 중·대형 히트펌프와 축열조를 설치해 여러 세대에 열을 공급하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이명주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만나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한다는 (정부의) 목표가 매우 도전적이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통령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온실가스 감축분과 민간위원이자 건물·도시 전문위원회 전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건축물의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보급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 고층 공동주택의 경우 세대마다 히트펌프 실외기와 저장설비를 둘 공간이 부족하고 전력설비 용량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공동주택 특성에 맞춰 개별 히트펌프를 설치하거나, 단지 기계실에 중·대형 히트펌프와 열 저장시설인 축열조를 설치해 여러 세대에 열을 공급하는 중앙공급 방식을 적용하고, 특히 도시에 버려지는 열 등을 회수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생열과 하수열, 산업폐열, 데이터센터 폐열 등 도시에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하기 위한 기반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이 어디에서 얼마나 발생하고 주변에 어떤 수요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국가·지역 단위의 '열지도'를 구축하고 이를 열네트워크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열에너지의 전환 없이는 건물부문 탄소중립도 달성하기 어렵다"며 “건축물의 에너지성능을 다루는 정책과 열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정책이 따로 움직이지 않도록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명주 교수와의 일문일답. - 현재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에서 어떤 정책에 주목하고 있는가. ▲ 건축물이 실제로 사용하는 에너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일에 주목하고 있다. 건물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5210만톤(t)에서 2030년 3500만t, 2035년에는 2420만~2280만t까지 줄여야 한다. 17년 안에 절반 이상을 감축해야 하는 만큼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동안 건축물의 에너지성능을 다루는 정책과 열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정책은 서로 떨어져 있었다. 지금 전문위원회에서는 이 두 정책이 따로 움직이지 않도록 연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 현재 국회에서 청정열에너지 관련 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법 제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 청정열에너지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열에너지를 국가 에너지전환의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력은 장기계획과 통계, 시장과 지원제도가 비교적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열은 건축물과 산업, 지역난방 등 여러 분야에 흩어진 채 관리돼 왔다. 열에너지는 우리나라 최종에너지 소비의 약 48%를 차지한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열에너지에 관한 통계와 감축목표, 투자와 지원의 근거는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열은 전기와 달리 멀리 보내기 어렵다. 도시 안에서 버려지는 열이 있어도 주변에 어떤 열수요가 있는지, 열의 온도와 발생시간이 맞는지 알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다. 국가 차원의 계획뿐 아니라 지역별 열지도와 열에너지 계획이 필요하다. 청정열에너지법은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책임과 근거를 만드는 법이어야 한다. - 청정열에너지 사용을 의무화한다면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나. ▲ 청정열 공급의무는 필요하다. 다만 몇 %를 의무화할 것인지부터 정해서는 안 된다. 지역마다 이용할 수 있는 열원의 종류와 양이 다르고 열수요의 밀도와 열배관을 설치할 수 있는 여건도 다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너지사업자와 공공 열공급시설부터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신도시와 공공주택지구처럼 계획단계에서 열공급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사업도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존 지역에는 준비기간을 주고 지역별 열원과 수요를 조사한 뒤 적용해야 한다. - 의무비율을 정하지 않으면 보급이 따라올 수 있겠는가. ▲ 의무비율은 전국에 하나의 숫자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공통적인 최저기준을 두고 지역 여건에 따라 조정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유럽연합은 지역냉·난방에 사용되는 재생에너지와 폐열·냉열 비중을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2%포인트씩 확대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방향은 참고하되 먼저 실제 공급실적과 지역별 잠재량을 파악해 출발점을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환비용이 열요금에 그대로 반영돼 주민 부담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청정열 의무화는 공급량을 늘리는 제도인 동시에 지역 주민이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열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가 돼야 한다. - 정부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보나. ▲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는 매우 도전적이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350만대의 가스보일러를 350만대의 개별 히트펌프로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주택은 공동주택 비중이 높다. 특히 기존 고층 공동주택은 세대마다 실외기와 저장설비를 둘 공간이 부족하고 전력설비 용량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단지에서는 개별 설치보다 기계실에 중·대형 히트펌프와 축열조를 설치해 여러 세대에 열을 공급하거나 재생열을 이용하는 지역 열네트워크와 연결하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신축 공동주택은 설계할 때부터 히트펌프 위치와 전력용량, 배관과 저장공간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보급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정책 성과를 기기 대수로만 판단하면 실제 효과를 알기 어렵다. 몇 대를 설치했는지와 함께 얼마나 많은 열을 공급했고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보급 목표를 세우되 최종 성과는 감축량으로 평가해야 한다. - 기존 공동주택에 히트펌프를 대규모로 보급하려면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하나.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기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열의 양을 확인하는 것이다. 단열성능이 낮은 노후 공동주택에 큰 용량의 히트펌프부터 설치하면 초기비용과 전력사용량이 모두 늘어난다. 외피성능을 개선해 열소비량을 줄인 뒤 적정 용량을 산정해야 한다. 기존 공동주택은 세대별 설치 가능성만 살펴서도 안 된다. 단지의 변압기와 간선설비가 추가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겨울철 여러 세대의 히트펌프가 동시에 작동할 때 발생하는 최대전력도 검토해야 한다. - 히트펌프와 청정열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인가. ▲ 히트펌프의 경제성은 기기 가격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설치비를 지원받아도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우면 사용자는 가동을 줄이게 된다. 반대로 전기요금을 일률적으로 낮추면 겨울철 전력수요가 한꺼번에 증가할 수 있다. 초기 시장에서는 설치비 부담을 낮춰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보조금을 기기 구입비에만 집중하기보다 장기간 낮은 금리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더 지속적이다. - 전기요금을 히트펌프에 맞춰서 개편할 필요도 있는가. ▲ 전기요금은 히트펌프를 언제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이 많은 시간에는 히트펌프를 가동해 열을 저장하고 전력수요가 높은 시간에는 가동을 줄이면 전력망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이러한 운전에 요금 혜택이나 수요반응 보상을 제공하면 축열시설 활용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탄소배출권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히트펌프를 설치했다는 사실만으로 감축실적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화석연료 사용량이 실제 얼마나 줄었는지 측정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지원제도와 동일한 감축량을 중복 인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화력발전이 많아 히트펌프가 탄소중립 수단으로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현재의 전원구조에서도 히트펌프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히트펌프는 전기로 열을 직접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공기와 물, 땅속에 있는 열을 끌어와 필요한 곳으로 옮기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기 1단위를 사용해 약 2.5~4단위의 열을 공급할 수 있다. 이 정도 효율이라면 화석연료 발전이 남아 있는 전력으로 운전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개별 가스보일러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 국제에너지기구도 탄소집약도가 높은 전력으로 운전할 때조차 히트펌프가 가스보일러보다 온실가스를 최소 20%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감축효과는 더 커진다. - 물에 전기를 흘려 저항열로 물을 데우는 전극보일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 전극보일러는 역할이 다르다. 전기 1단위를 거의 1단위의 열로 바꾸기 때문에 같은 전력을 사용한다면 히트펌프보다 생산하는 열이 훨씬 적다. 대규모 전극보일러를 지역난방의 상시 열원으로 운영하면 전력수요와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아 출력을 제한해야 하는 시간에는 전극보일러가 유용할 수 있다. 남는 전기를 열로 바꿔 대형 축열조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면 전력계통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전극보일러는 잉여전력을 흡수하거나 피크수요에 대응하는 보완설비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 산업폐열이나 데이터센터 폐열 등 버려지는 열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 버려지는 열을 활용하려면 배관을 설치하기 전에 먼저 열지도를 그려야 한다. 어느 시설에서 몇 도의 열이 얼마나 발생하고 하루 중 언제 나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장과 발전소, 하수처리장, 소각시설, 데이터센터가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이를 국가와 지역의 열지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열은 전기처럼 먼 거리까지 보내기 어렵다. 데이터센터나 산업단지의 입지를 정할 때부터 주변에 공동주택과 병원, 공공시설처럼 열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요구하는 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기술과 제도가 자리 잡는 동안에는 익숙한 생활방식을 바꾸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 수고를 지금 우리가 감당한다면 다음 세대는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고도 따뜻하고 쾌적하게 사는 일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 일상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김경완씨 별세, 김순자씨 남편상, 김상훈(제주동부소방서)·용훈(서울청 공항경찰대)·정훈(KB손해사정)·석훈(제주공항공사)·상희(제주동부경찰서)씨 부친상, 고희숙·고은영·송명은·양은희씨 시부상, 김길현(KB손해보험 브랜드홍보본부장)씨 장인상 = 24일, 제주 그랜드부민장례식장 6호실(26일 4호실 이동 예정),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장지 양지공원 및 99골가족선영. 064-742-5000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하경자 아시아·태평양 기후센터 신임 원장 취임

하경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기후센터(APCC)' 제6대 신임 원장이 취임했다. APCC는 하 신임 원장이 부산 해운대 아태기후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취임식을 하고 3년간의 임기를 시작했다고 14일 밝혔다. 하 원장은 부산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에서 활동해왔다. 또한, 한국기상학회 제30대 회장을 지내며 기상과 기후 분야의 발전 및 정책 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부산대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후,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 원장은 기상청과 녹색기후기금(GCF)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협력해 '글로벌 리더십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을 알렸다 이를 바탕으로 센터의 '글로벌 기후 허브' 역할을 강화하고, 아태지역 개발도상국이 겪고 있는 기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연구 조직의 전문성을 높여 최신 인공지능(AI) 기술을 기후 예측에 적극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 농업, 재난 관리 등 사회 각 분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맞춤형 기후 정보'를 생산해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인터뷰] “AI 전력 인프라 ‘신(新) 골드러시’…한국 산업계에 새 기회 열린다”

“AI 시대 최대 수혜는 반도체만이 아닙니다. 과거 미국 골드러시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번 사람은 금을 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와 삽을 판 사람이었습니다." 김나영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 전력·신재생에너지 컨설팅 디렉터는 AI 시대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성형 AI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엔비디아 GPU와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되고 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전력기기와 발전설비, 송전망, 배터리 등 AI 인프라를 뒷받침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수혜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AI 플랫폼이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전력 공급망 기업들은 분명한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효성·LS·두산·배터리…한국 기업에 큰 기회" 김 이사는 AI 시대 가장 유망한 분야로 전력기기, 발전설비, 배터리, 통합 에너지 솔루션을 꼽았다. 효성중공업과 LS일렉트릭은 미국의 변압기와 송배전 설비 공급 부족으로 이미 수혜를 보고 있으며,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글로벌 가스터빈 공급 부족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는 평가다. 배터리 산업도 새로운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그는 “데이터센터용 배터리는 단순한 UPS를 넘어 브리지 전원과 전력품질 관리, 피크 절감, 계통 안정화까지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며 “전기차 시장 둔화와 별개로 데이터센터용 ESS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화와 SK도 주목했다. 한화는 태양광과 ESS, 발전사업 역량을 결합해 데이터센터 전력 솔루션 사업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SK 역시 반도체와 통신, LNG, 데이터센터 등 그룹 내 사업을 연결하면 새로운 AI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그는 “앞으로는 장비를 잘 만드는 기업보다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하도록 도와주는 기업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며 “AI 시대 승자는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의 'Deliverability'를 가장 높여주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 “AI 승부는 GPU가 아니라 전력" 김 이사는 AI 시대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의했다. “경쟁의 병목이 비트(Bits)에서 와트(Watts)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반도체가 덜 중요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GPU와 메모리는 여전히 AI의 두뇌"라면서도 “지금은 AI 데이터센터를 추가로 지을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부족한 자원이 전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과거 수십 MW에서 최근 수백 MW, 일부는 GW급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는 “AI 경쟁은 디지털 기술 경쟁에서 물리적 인프라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전력 확보가 곧 산업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 “미국도 가장 큰 병목은 송전망" 미국 현장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발전원이 아니라 송전망이다. 김 이사는 “발전설비와 변압기 공급 부족은 시간이 지나면 생산을 늘릴 수 있지만 송전망은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 비용 분담 등을 함께 해결해야 해 가장 오래 걸리는 병목"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대형 데이터센터 계통연계 제도 전면 재검토에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기존 제도만으로는 앞으로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미국에서도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All of the Above'…속도가 가장 중요" AI 시대 전원 구성에 대해서는 “정답은 'All of the Above'"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 발전원이 정답인 시대가 아니라 가장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조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태양광과 ESS, LNG 발전이 가장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태양광과 ESS는 건설 기간이 짧고, LNG는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브리지 역할을 맡게 된다는 설명이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과 출력 증강도 중요한 선택지로 꼽았다. 반면 SMR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향후 5~10년은 상업성을 입증하는 단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한국은 '전력이 통하는 땅'부터 만들어야" 김 이사는 미국 사례가 한국에 주는 가장 큰 교훈으로 'Powered Land'를 꼽았다. “이제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부지가 아니라 전력이 공급되는 부지입니다." 그는 한국이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과제로 △전력망 선제 투자 △대형 부하를 위한 계통연계 제도 정비 △비수도권 데이터센터 유인책 마련을 제시했다. 특히 “전력망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AI 시대 핵심 산업 인프라로 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한국은 중앙정부와 전력회사가 장기 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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