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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빠른데 정부는 느릿…전고체 배터리 양산 걸림돌

꿈의 배터리로 불려온 전고체 배터리의 양산이 점점 다가오는데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뛰어난 성능만큼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과 경쟁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전략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8일 SNE리서치에 따르면 리튬메탈 음극을 적용한 전고체 배터리(SLMB)의 시장규모는 2024년 2억달러에서 2035년 320억~470억 달러로 100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를 사용한 배터리로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충전 시간이 빠르며 안전성도 높아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 받고 있는 기술이다. 한국에선 삼성SDI가 2027년 양산할 계획으로 타 기업 대비 다소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완전 상용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여전이 많다. 높은 제조비용, 낮은 수율, 짧은 수명, 리튬 덴드라이트(금속 결정체) 형성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제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SDI, 퀀텀스케이프, 토요타 등 기업들도 황화물계·산화물계 등 다양한 고체전해질 기반 기술을 통해 이러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대량 생산에 적합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높은 배터리 단가도 발목을 잡는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팩 생산비용은 2023년 기준 평균 $139/kWh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의 생산 비용은 $400에서 $800/kWh 사이로 평가된다. 이 또한 추정치로 업계에선 최대 10배까지 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대비 최소 5배 이상 비쌀 것"이라며 “5000만원짜리 전기차에 들어가는 NCM 배터리의 단가를 2000만원으로 가정했을 때 전고체 배터리는 순식간에 차 값을 수억원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시장이 커질수록 단가는 낮아질 전망이다. SNE리서치는 2035년엔 배터리 단가가 120달러/kWh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비층을 잡지 못하면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한순간이 될 수 있다. 이에 업계에선 시장 선점을 위해 민간 기술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정부 정책과 생태계적 협력 구조가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정부 주도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산업기술종합연구소(NEDO)를 중심으로 전고체 배터리 R&D 컨소시엄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부(DoE) 차원에서 장기 기술 로드맵을 마련했고 GM·포드 등이 전고체 스타트업과 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CATL이 정부 지원 아래 초고에너지밀도 '응축형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으며, eVTOL 기업 오토플라이트와도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기업들의 주도로 전고체 배터리 전략이 주도되고 있다. 삼성SDI는 2023년 말부터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 상용화 목표하면서 최근 고체 배터리 조립 장비 파일럿 라인도 수주했다. 이어 SK온은 미국 전고체 배터리 기업 솔리드파워와의 협력을 강화해 전고체 배터리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반면, 정부 차원의 유기적 전략은 아직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소재부터 공정, 양산, 재활용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 전반의 전략 설계가 부족하다는 점이 걸림돌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는 기술적 도전과 상업적 기회가 공존하는 전략적 전환점"이라며 “규제 완화, 공동 테스트베드 구축, 원천 소재의 국산화 등 민·관 협력을 통한 생태계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삼성·LG, 프리미엄 TV 맞대결…HDR 표준 경쟁에 OLED 점유율 공방까지

프리미엄 TV 시장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기술 경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고화질 영상 기술인 HDR(High Dynamic Range) 표준화에서 양사의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점유율을 놓고도 신경전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 경쟁은 점유율을 넘어 영상 기술의 표준 주도권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HDR 기술을 둘러싼 전략 차별화가 대표적이다. HDR은 화면의 밝고 어두운 부분을 세밀하게 표현해 보다 생생한 화질을 구현하는 기술로, 최근에는 TV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전반에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개방형 포맷 'HDR10+' 생태계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HDR10+는 라이선스 비용이 없어 다양한 기기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범용성과 확장성이 강점이다. 삼성은 특히 상업적 로열티가 필요한 돌비비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왔으며, 자사 기술을 통해 HDR 표준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국제 영상 압축 표준인 AV1 코덱 기반의 고화질 콘텐츠와 HDR10+를 결합해, 프리미엄 시청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가 AV1 코덱을 통해 HDR10+ 콘텐츠를 제공한 사례는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반면 LG전자는 미국 영상·음향 전문기업 돌비(Dolby)의 '돌비비전'을 탑재해 고급 이미지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돌비비전은 보다 정밀한 색상 표현과 밝기 조절 능력을 갖춰 영화, 드라마 등 고화질 콘텐츠 제작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돌비비전 생태계의 확장성도 LG전자의 강점 중 하나다. LG뿐 아니라 소니, 파나소닉, TCL 등 글로벌 제조사들이 돌비비전을 채택하고 있어 관련 콘텐츠와 기기 생태계가 넓다. LG전자는 여기에 입체 음향 기술인 '돌비 애트모스'도 함께 적용해, 프리미엄 화질과 음질을 모두 갖춘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LG전자 측은 “돌비비전은 제작자의 의도를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돌비 애트모스는 현장감 있는 몰입형 사운드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LG전자는 현재 HDR10+ 도입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HDR 표준을 둘러싼 경쟁과 함께, OLED TV 점유율을 놓고도 삼성과 LG간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지난 7일 열린 'AI TV' 신제품 발표회에서 “자사 OLED TV 가운데 77인치 이상 모델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약 60%에 달한다"며 “대형 OLED 시장에서 국내는 물론 글로벌에서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지난해 같은 자리에서 “77인치 이상 초대형 OLED 시장에서는 이미 경쟁사(LG전자)를 앞섰다"고 강조한 데 이은 것으로, 당시에도 양사간 점유율 공방을 촉발시킨 바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발언은 OLED TV 경쟁 구도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핀 셈이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LG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주장은 근거가 불분명한 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자료에 따르면, 1∼3월 기준 77인치 이상 OLED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LG전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양사는 최근 OLED TV 시장의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OLED는 백라이트 없이 스스로 빛을 내는 구조로, 깊은 명암비와 얇은 디자인 구현이 가능해 프리미엄 TV 시장의 핵심 기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속에서도 OLED 기반 프리미엄 라인은 수익성이 높은 '알짜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서는 OLED와 HDR 모두 프리미엄 TV 시장의 핵심 기술로, 양사간 경쟁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OLED와 HDR은 단순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넘어 브랜드를 구분 짓는 상징적인 요소"라며 “이제는 하드웨어 스펙 경쟁을 넘어, 콘텐츠 호환성과 생태계 확장 전략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경쟁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돈 주는 AI’가 온다…뤼튼 “생성형 넘어 생활형으로 진화”

최근 1000억원대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가 올해 핵심 비전으로 '생활형 AI'로의 진화를 강조했다. 일상밀착형 AI를 통해 업무 생산성 효율 제고를 넘어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거듭나겠다는 취지다. 뤼튼은 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콘퍼런스 2025'에서 '뤼튼 3.0' 개편 방향과 사업 청사진을 공유했다. 2021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달 말 총 1080억원 규모로 시리즈B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 이로써 현재 누적 투자 유치액은 약 1300억원으로, AI 플랫폼 분야에선 국내 최초로 누적 투자 유치 1000억원을 돌파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의장 방한 당시 비공개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기도 했다. 이달 말 선보이는 '뤼튼 3.0'은 사용자 모든 대화를 기억하고 감정적 교류도 가능한 AI 서비스다. 현재 500만명대인 월간활성이용자수(MAU)를 1000만명대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한 핵심 사업 전략은 △1인 1AI 시대 개막 △성능 업그레이드 △AI 이코노믹스 실현으로 압축된다. 서비스의 핵심은 초개인화 기술로 업무·여가활동을 뒷받침하는 'AI 서포터'다. 이용자 정보를 토대로 최적화된 외형·말투·장기 기억 등을 결합한 감성지수(EQ) 레이어를 통해 AI와 감정적 교류까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기존보다 10배 더 향상된 메모리 성능으로 이용자의 정보 저장 공간과 시간을 확대한 것도 특징이다. 이를 통해 국민 5000만명에게 각 개인에 최적화된 AI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초개인화 기술 향상을 위해 다양한 AI 모델을 서비스 특성에 맞게 골라 사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택했다. 개발 비용·시간은 줄이면서 성능을 높이기 위해 자체 모델과 외부 모델을 함께 활용하는 구조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글로벌 빅테크가 개발한 최신 모델을 탑재했다. △이용자 의도 파악 △도구 추천 알고리즘 △최신 AI 모델 활용 △검색 데이터베이스(DB) 현지화 △검색 자동화 모델 등을 통해 사용 만족도를 35%가량 끌어올렸다고 회사는 밝혔다. AI 대중화를 앞당기기 위해 앱테크 기능을 강화했다. 함께 도입되는 'AI 재테크'는 기존의 무제한 무료 서비스를 넘어 사용자가 AI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용자가 앱 내 광고 시청, 출석체크, 도구 체험 등 미션 수행을 통해 캐시를 적립할 수 있는 구조다. 향후 캐시 인출·결제 기능도 도입해 서비스 영역을 계좌 연동, 체크카드, 커머스 연결까지 확대 적용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중심으로 구축되는 'AI 이코노믹스 체계'가 핵심 수익모델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앱 활동에 대한 보상 체계를 통해 신규 이용자 유입을 늘리고,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서비스를 다양화해 매출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이동재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체계가 한 번에 맞아떨어지게 구축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용자 증가세에 따라 테스트와 미션을 추가·삭제·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맞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금융 시장 진출 가능성도 열어뒀다. 공혜진 광고(AD)비즈니스 파트장은 “AI 재테크 기능과의 연동을 위해 현재까지 확보한 제휴사는 20~30개 정도며, 모바일·지류 상품권 형태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업체를 우선 공개할 계획"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네이버·카카오 등 기업이 운영하는 페이 서비스와 같은 금융모델로 발전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세영 대표는 “2년 전 MAU 30만명대를 기록할 때도 우리의 꿈은 'AI 시대의 포털'이었고, MAU 500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그 목표는 유효하다"며 “과거 인터넷 전화기에서 모바일로 전환되던 시기에 많은 기업들이 자사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을 만들었던 것처럼, AI 에이전트 기술이 더 많은 기업에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넥스트 포털'로 키워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뤼튼은 오는 14일 AI 개발 프레임워크 '에이젠티카'와 프론트·사용자환경(UI) 자동화 개발 도구 '오토뷰'를 오픈소스로 공개한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국내 주요 화학사 올해도 자산 팔아야 버틴다

국내 대형 화학사들이 최근 반 년 동안 3조원 이상의 비핵심 자산과 사업을 매각했음에도 여전히 재무 상태 악화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일반 화학제품 생산설비를 대규모로 증설하면서 기존 사업에 큰 타격을 받은 탓이다. 올해도 국내 화학사들이 여전히 비핵심 자산과 사업을 매각하지 못하면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운 환경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화학 업황 악화에 원매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데다 원하는 매각 대금을 받아내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8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화학사들이 최근 반 년 동안 비핵심 자산과 사업을 대규모로 매각해 현금을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의 기간 동안 국내 대형 4개 화학사(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SKC 효성화학)의 자산·사업부 매각 규모는 3조1053억원에 달한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롯데케미칼 루이지애나(LCLA) 지분 40%와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LCI) 지분 25%를 활용해 각각 6627억원과 6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올해 2월 롯데케미칼 파키스탄 지분을 979억원에 매각한 것을 포함하면 1조4106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PRS는 기업과 금융기관 사이에 체결되는 파생상품으로, 계약 기간 중 담보로 맺은 주식의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서로 교환하게 된다. 정산 시기에 기초자산의 주식가치가 매각 당시보다 높을 경우 기업이 차액을 가져가고, 가치가 낮을 경우 손실금액을 기업이 금융기관에 보전하는 방식이다. 효성화학도 지난해 12월 특수가스사업부를 계열사 효성티앤씨에 매각하면서 9200억원의 현금을 챙겼다. SKC도 지난해 10~11월 자회사 SK엔펄스의 CMP 패드사업과 SK넥실리스의 박막사업을 매각해 합계 4360억원의, 한화솔루션도 지난해 10월 한화저축은행 지분과 울산 무거동 사옥 부지를 매각해 합계 3387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들 화학사는 이 같이 확보한 자금 대부분으로 차입금을 상환해 재무 구조 개선을 추진했다. 하지만 3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으나 모든 화학사가 여전히 차입금 부담이 완화되지 않고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실제 이들 4개사의 총차입금(연결 기준)은 지난해 말 29조5996억원으로 집계돼 지난 2023년 25조7436억원 대비 14.98%(3조856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이들 4개사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 모두 악화됐다. 효성화학은 특수가스사업부 매각 마무리가 늦어지면서 지난해 연말 기준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가 올해 1월 이를 해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재무 리스크 악화는 국내 화학사의 가장 큰 경쟁자인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격화된 탓으로 분석된다. 최근 중국 업체는 일반 화학제품 생산을 위해서 대규모로 생산 설비를 늘리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증설 규모를 살펴보면 국내 화학사의 생산능력의 2~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증설의 결과로 지난해부터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공급 과잉 국면에 진입해 국내 화학사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향후 국내 화학사가 생산원가가 낮은 중국산 일반 화학제품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국내 대형 화학사들은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이차전지·첨단 산업 소재 등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결과 재무 리스크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때문에 최근 6개월 동안 국내 대형 화학사들이 비핵심 자산과 사업부를 매각해 재무 리스크를 조금이나마 줄이는데 힘쓰고 있다. 이 같은 비핵심 자산사업부 매각은 올해 내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화학 업황 악화로 인해 원매자 확보와 매각가 협상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탓이다. 후한 가격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향후 자산·사업을 매각한 화학사의 재무 리스크도 대폭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화학사들이 비핵심 자산사업을 매각해 재무 관리를 강화하고 있으나 근원적 사업 경쟁력 악화로 차입금 부담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올해도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 화학사들의 재무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시황] ‘폭락 공포’ 진정…국내 증시 숨고르기

간밤 미 증시 폭락세가 진정되면서 국내 증시도 하락세를 멈추고 소폭 상승 마감했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은 전 거래일 대비 6.02포인트(0.26%) 오른 2334.22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는 2381.20으로 개장해 장 초반 2.28% 오른 2381.31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다시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면서 2330대에 마감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6190억원, 1160억원어치를 팔아치웠지만 개인이 6054억원을 순매수하면서 방어에 성공했다. 코스닥 지수는 7.16포인트(1.10%) 오른 658.46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에서는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664억원, 740억원어치를 팔아치웠으나 기관이 1455억원을 순매수하면서 1% 상승세를 유지했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주 가운데 삼성전자(0.56%), SK하이닉스(2.85%), 현대차(0.06%), 한화에어로스페이스(8.72%) 등이 오름세를 기록했고 LG에너지솔루션(-1.55%), 삼성바이오로직스(-0.40%), 셀트리온(-0.79%), 기아(-0.35%), 네이버(-6.36%) 등은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올 1분기 영업이익 6조6000억원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면서 장 초반 5만500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되면서 0.56% 상승에 그쳐 5만3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주 중에서는 알테오젠이 전 거래일 대비 7.45% 올라 36만500원에 마감했고 에코프로비엠(2.38%), HLB(0.72%), 휴젤(1.08%), 리가켐바이오(5.81%), 코오롱티슈진(0.36%) 등이 상승 마감했다. 반면 레인보우로보틱스(-2.63%), 삼천당제약(-6.61%), 클래시스(-0.54%) 등은 하락세를 기록했다. 에코프로는 보합 마감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증시의 패닉셀이 3거래일 만에 진정됐다"며 “며칠간 폭락장세가 이어졌으나 공포가 선반영된 이후 정상화 국면이 전개되면서 최근 급락 장세에서 낙폭이 크게 나타났던 업종들에서 반등이 나타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1분기 서울 아파트 분양 단 1곳”…공급 절벽 시작됐나?

최근 주택 착공 물량이 줄어들면서 '공급 절벽론'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부터 분양이 급격히 줄어들어 1분기엔 16년 만에 최소 규모를 기록했다. 일각에선 '공급난'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1분기 전국 일반분양 물량은 전년 동기(3만5215가구)의 절반 이하인 1만2358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2009년(5682가구)이래 16년 만에 가장 적은 물량이다. 특히 수요가 높은 서울은 2월에 분양된 482가구가 1분기 전체 분양의 전부였다. 경남, 전남, 제주에는 1분기에 단 한 가구도 공급되지 않았다. 4월 분양 전망도 어둡다. 직방에 따르면, 4월 분양 예정 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약 10% 감소한 전국 27개 단지 총 2만 3730가구(일반분양 1만 2598가구)로 예상된다. 권역별로는 수도권 1만 7772가구, 지방 5958가구가 예정돼 있지만 서울에서는 '청계 노르웨이숲' 404가구 중 97가구만이 일반 분양한다. 게다가 최근 서울시의 강남 3구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및 재지정 여파로 시장이 관망세에 접어들자 서울 아파트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기 시작해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지는 추세이다. 안그래도 아파트 수요자들은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공사비 급등으로 분양가가 대폭 올라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날 기준 환율은 무려 1472원을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2월(1462원)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건설업계는 철근, 봉강, 석제품, 합판 등 원자재 수입으로 인해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1차적으로 0.34%의 공사비가 인상된다. 타 업계에 비해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으나 고환율이 지속되면 간접적인 상승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통계청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용 중간재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6%에서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한 12월 9.2%, 올해 1월 8.6%, 2월 6.9%를 기록하며 계속 급변했다. 더 큰 문제는 현 정부 들어 주택 공급 실적이 저조해지면서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다시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 정부는 임기 내 전국 270만 호 공급을 약속했지만, 착공·인허가·준공 등 주요 지표는 모두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주택산업연구원은 윤 정부 출범 이후 올해까지 약 50만 가구 이상의 공급 부족이 누적된 것으로 전망했다. 착공 물량만 보더라도 2021년 58만4000호에서 2022년 38만3000호로 감소한 뒤 지난해에는 26만호까지 줄어들었다. 착공 이후 입주까지 약 2~3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와 내년부터는 공급 부족이 본격화될 거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긴 했다. 최근 선호도가 높은 서울 상급지 등에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한 대안으로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이 국회에 상정됐다. 지난해 발표한 '8·8대책'의 후속 조치였다. 하지만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10~15년 이상 소요되는 재건축·재건축 인·허가를 최단 3년 이내로 줄이자는 내용인데, 야당의 반대로 법안심사소위에 계류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공공택지 개발이나 1기 신도시 재건축 촉진을 위한 규제 완화도 정권 교체시 장애물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공급 우려와 관련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약 4만 7000호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5년 이후 네 번째로 많은 수준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 내년까지 입주 예정인 물량은 7만1000호로, 최근 2년간 입주 물량을 상회한다는 입장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주택 공급 정책은 여야를 떠나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삼성전자 1분기 실적 전망치 상회 ‘안도감’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하며 안도했다. 통상 분야 각종 불확실성이 부각되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까지 하락하며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전년과 비슷한 성적을 내며 선방했다. 매출액은 역대 최대치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조6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 0.15% 줄어든 수치다. 작년 2분기(10조4439억원) 이후 2개 분기 연속 쪼그라들다 3분기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9.84% 늘어난 79조원이었다.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잠정 실적 집계 오차가 수천억원 단위까지 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년 3분기 올린 역대 최대 기록(79조1000억원)을 경신할 가능성도 있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5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매출액 예상치도 75조원 수준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비수기인데다 관세전쟁 등 통상 관련 불확실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6조4927억원이었다. 이날 사업부별 세부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예상 외로 호실적을 냈을 것으로 추산한다. 메모리 분야에서 3조~4조원 가량 이익을 내고 파운드리 사업 적자 규모를 1조원대로 줄였을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가 분기 기준 DS에서 영업적자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왔었다. 중국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 수혜를 입어 반도체 재고가 예상보다 감소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내에서 관세 부과 전 전자제품 사재기 현상이 일부 나타난 게 삼성전자 반도체 실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선제적으로 물동량이 증가한 게 D램 출하량 자체를 끌어올렸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모바일경험(MX) 부문에서는 '갤럭시 효과'가 돋보였을 것으로 보인다. 영업이익이 4조원에 육박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 MX부문은 통상 'S시리즈'가 출시되는 1분기 실적이 뛰었다 2~4분기 줄어드는 경향을 보여왔다. 작년 영업이익을 보면 1분기 3조5100억원에 달했지만 4분기에는 2조1000억원으로 줄었다. 올해의 경우 갤럭시 S25 시리즈가 사전계약 당시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21일만에 100만대 판매 고지를 넘어서기도 했다. 역대 갤럭시 시리즈 중 최단기간 기록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인공지능(AI)' 기능을 대거 추가하며 프리미엄 폰 수요가 늘어난 것도 실적 개선에 보탬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갤럭시 S25 시리즈는 사전 판매 당시 가장 비싼 '울트라'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생활가전(CE) 및 하만 부문도 호실적을 냈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관세 부과 이전 각종 제품을 구매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이에 따른 수혜가 일정 수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오는 30일 부문별 실적을 포함한 1분기 확정 실적을 발표한다. 주주들과 소통 강화 차원에서 실적·경영 관련 문의사항을 사전에 접수해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답변할 계획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롯데지주 CP 조달 1조 한숨 돌렸지만…단기 자금 의존 심화

롯데지주가 기업어음(CP)을 통한 자금 조달을 대폭 늘리며, 차입금의 만기구조가 급속도로 단기화되고 있다. 올해 들어 CP 순발행 규모만 8600억원에 달하며, 지난해 말 발행한 장기물까지 포함하면 전체 CP 잔액은 1조원에 육박한다. 신용등급 하향 압력으로 공모 회사채 시장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단기성 자금으로 유동성을 충당하는 구조가 뚜렷해진 셈이다.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롯데지주는 매달 대규모 CP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1월 600억원, 2월 3500억원, 4월 들어 다시 4500억원 규모 CP를 신규 발행했다. 이 중 4월에 발행분은 은행매입약정한도가 체결되어 있는 CP로서 3개월 단위로 차환발행하는 은행차입금의 성격이다. 3월에는 분기 말 부채비율 관리를 위해 발행을 일시 중단했지만, 2분기 시작과 동시에 조달이 재개됐다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올 들어 CP 순발행 규모는 8600억원 수준이며, 여기에 지난해 말 발행된 장기 CP 약 1200억원까지 포함하면 전체 발행잔액은 9800억원 규모다. 이 중 이번 분기에만 5100억원의 만기가 집중되어 있으며, 이달 3000억원, 다음달 2100억원의 상환이 예정돼 있다. 반면, 롯데지주의 지난해 말 별도 기준 현금성 자산은 약 2000억원에 불과해 지속적인 상환 부담과 맞물려 단기 유동성 대응 여력이 불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신증권 등에 따르면 올해 2~4월 기준 91일물 CP 평균 금리는 3.2%대에서 2.9%대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AA- 등급 회사채 금리도 함께 하락했지만, 롯데지주는 등급 민감도가 낮고 진입장벽이 낮은 CP 시장을 선택했다. 현재 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롯데지주의 연간 이자비용은 약 276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CP 조달의 단기성 구조로 인해 상환·재발행이 반복될 경우 계속해서 누적될 수 있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롯데 측은 상환이나 이자가 부담되더라도 조달의 안정성을 택한 것이다. 통상 롯데지주는 매년 초 공모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금리가 하락하는 중에도 회사채 시장을 찾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단순한 금리 조건이 아니라,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라는 보다 구조적인 리스크 요인이 자리한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지난해 6월 롯데지주의 신용등급(AA-)에 대해 일제히 '부정적' 아웃룩을 부여한 바 있다. 정기평가 결과에 따라 A+로 한 노치 강등될 경우, 시장의 평가는 급변하게 된다. AA-와 A+는 단지 1등급 차이지만 시장에서는 각각 우량등급과 비우량등급으로 간주되며, 투자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크다. 롯데지주뿐 아니라 그룹 계열사 전반의 신용도 악화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롯데케미칼은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되었으며, 롯데건설도 '부정적' 등급을 유지 중이다. 이는 그룹 전체의 조달 여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규모 투자 부담을 안고 있는 화학·건설 계열사들의 신용 리스크가 지주사의 등급 평가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신용 리스크는 회사채 발행 실패 가능성으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 투자자들은 수익률보다 신용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실제 발행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롯데지주는 등급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CP 시장을 통한 조달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CP는 구조적으로 만기가 짧은 단기자금이라는 점이다. 회사채가 보통 2~3년 이상의 장기물인데 반해, CP는 3개월~1년 내외의 만기로 발행되기 때문에 수시로 롤오버(차환)가 필요하다. 자금시장이 경색되거나 신용이슈가 부각될 경우, 리파이낸싱 리스크가 곧바로 현실화될 수 있다. 여기에 롯데지주는 지난 2월 말 3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CP로 상환했고, 최근에는 자회사 롯데글로벌로지스와 관련한 유상보전 리스크도 떠안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IPO를 추진 중이지만, 2017년 프리IPO 대비 기업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에이치프라이빗에쿼티 등 FI에 최대 2931억원 규모의 차액 보전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이 중 상당액을 롯데지주와 호텔롯데가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CP는 빠르게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대규모로 운용되면 만기 집중도가 커져 리스크로 작용한다"며 “최근처럼 금리 자체는 낮은 시기라도, 그룹 차원의 현금흐름 약화와 맞물릴 경우 유동성 압박은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양자배터리 띄우던 퀀텀온, 의견거절 받아 상장폐지 기로

양자배터리, 초전도체 등 미래 산업에 뛰어들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퀀텀온이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이미 거래정지 중이었던 데다 감사인으로부터 감사 의견거절까지 받자 주주들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전날 퀀텀온에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2024사업연도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이 '감사 범위 제한 및 계속기업 존속능력 불확실성으로 인한 의견거절'로 나온 데 따른 결과다. 의견거절은 외부 감사인이 회사의 회계나 재무상태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의견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견거절을 받을 경우 상장폐지사유가 발생,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감사인은 퀀텀온에 대해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판단했다. 감사인은 감사보고서에서 “지난해 연결기준 345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고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106억원 더 많다"며 “이러한 상황은 연결회사의 계속기업으로의 존속능력에 대해 유의적인 의문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퀀텀온이 상장폐지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인 오는 28일까지 한국거래소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앞서 사업보고서 미제출로 인해 발생한 상장폐지 사유는 이날 사업보고서를 제출함에 따라 해소됐다. 업계에서는 무리한 사업영역 확대가 사업성 악화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퀀텀온은 지난해 초전도체 및 양자배터리 기술 개발업, 부동산 분양대행사업, 건강기능식품업 등으로 신규 사업 목적을 공시했다. 사업을 확대할 때마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양자배터리 및 초전도체 개발을 내세우며 약 18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 신사업 추진 소식이 공개될 때마다 주가도 급등했는데 이 때문에 테마성 이슈에 편승해 주가를 띄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지난해 8월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양자배터리 관련 연구개발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면서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양자배터리 사업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퀀텀온 역시 사업보고서를 통해 사업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퀀텀온 측은 사업보고서에 “양자배터리사업은 장기간의 연구개발이 필요한 사업으로 막대한 자금과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며 “양자에너지 기술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아직 초기 연구 단계로 시장 선점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나 성공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은 거창했지만 퀀텀온은 실질적으로 매년 적자 행진을 이어왔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퀀텀온은 △2023년 -39억원 △2022년 -45억원 △2021년 -95억원 △2020년 -5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직전 사업연도 기준 자본잠식률도 156.20%에 달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최근 3사업연도 중 2사업연도에 자기자본 50%를 초과하면서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발생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도 공시 번복 등을 이유로 최근 1년 내 누계벌점이 15점을 넘어서면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바 있다. 불성실공시법인 또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한다. 이에 퀀텀온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지정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현재 경영개선계획을 철저히 수립해 실행하고 있고 이를 통해 기업의 내실을 다지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편 퀀텀온은 지난달 31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보고서 지연제출로 재무제표 승인의 건을 진행하지 못했다. 이에 오는 2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해당 안건을 비롯한 세부 안건을 재상정할 계획이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관세 전쟁’ 후폭풍에 삼성·LG전자 ‘실적 방어’ 대책 마련 올인

'관세전쟁' 폭풍이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삼성·LG전자가 실적 방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미국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해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쟁사 동향은 물론 각 국가별 외교 정책 방향까지 살펴야하는 처지지만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위기를 넘기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LG전자는 1분기까지 시장 기대치에 부합하는 실적을 내며 일단 안도했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매출액 79조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을 올린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이날 공시했다. 매출은 역대 최대급이고 수익성은 증권가 평균 예상치를 30% 이상 웃돌았다. LG전자도 분기 기준 최대 매출액(22조7447억원)을 거두고 영업이익은 1조2590억원으로 선방했다. 양사는 1분기 호실적이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찍부터 이달 '관세전쟁'이 시작된다고 예고해온 만큼 TV·가전·반도체 등 수요가 선제적으로 일어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들은 소매 시장에서 일부 소비자가 생활가전 제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앞서 수차례 보도했다. 각사는 '판매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전날 열린 TV 신제품 공개 행사장에서 “사재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당장 북미향 TV 등이 멕시코에서 대부분 만들어지고 있어 관세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이) 계속 변화하고 있어 그런 부분을 잘 살피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전세계에 10여개 생산거점을 둔 만큼 유연하게 파고를 넘어가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LG전자 전략 역시 비슷하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지난달 25일 정기주총 개최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국가보다 멕시코 관련 불확실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하는데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국 현지 공장에서 다양한 가전 제품을 생산할 라인을 구축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해외 생산 거점들의 일정을 조율하는 작업도 면밀히 진행 중이다. 양사는 애플, 월풀 등 경쟁사 동향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국가별 외교 정책 방향도 살피는 '고차방정식'을 풀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가별 관세, 인건비, 물류비 등을 고려해 가전제품 및 스마트폰의 생산지 재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베트남이 미국과 협상에서 관세율을 낮추지 못할 경우 브라질 공장 생산량을 늘리는 식이다. LG전자도 지난해 말 전사 차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글로벌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양사 해외 공장들이 관세 영향에 비상이 걸린 것은 맞지만 트럼프 행정부 정책 방향이 워낙 불확실해 마땅한 대응책 자체가 없다는 호소도 일각에서 나온다. 업계에서는 통상 불확실성을 제외하면 기본적인 업황 자체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의 경우 1분기 호실적 배경에 갤럭시 S25 시리즈 흥행과 메모리 D램 출하량이 예상보다 많았다는 점이 거론된다. 중국의 소비 촉진 정책 '이구환신(以舊換新)' 등이 효과를 내며 2분기에도 반도체 분야에 긍정적인 환경이 마련됐다는 기대가 나온다. 삼성·LG전자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상품성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미국 관세전쟁의 주요 타깃이 중국이라는 점을 역이용하는 발상으로 읽힌다. '저가공세'를 퍼붓는 중국 가전·스마트폰 업체들 공세를 프리미엄 전략으로 이겨내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신형 갤럭시 Z시리즈 및 두 번 접는 폴더블폰 G시리즈 출시를 앞두고 막판 담금질 작업에 한창이다. LG전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에 인공지능(AI) 기능을 대거 접목해 프리미엄 가치를 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관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통상 협의를 강화하고 필요시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하는 등 정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은 특정 국가·지역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구조를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시켜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단순한 조립·가공 제품이 관세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 제품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며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전략 기술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게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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