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딧첵] “롯데=우량 채권” 옛말…신용 추락과 지속되는 재무 압박

롯데지주가 우량 채권으로 분류되는 AA 밴드에서 A 밴드로 추락하며 '우량 롯데'의 이름값은 옛말이 됐다. 화학·유통 등 핵심 계열사들은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수익성 악화에 빠졌다. 그룹에서 '현금창출원(캐시카우)'이 될 만한 알짜 계열사가 부재하다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 속에 신용도의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이 지난 6월 롯데지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종전 A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일시에 우량등급에서 비우량(A+이하) 등급으로 전락한 셈이다. A등급은 원리금 상환 가능성은 높지만 AA등급에 비해 경기 변동이나 기업 신용도 변화에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편이다. 추가로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지주의 단기신용등급도 한 단계씩 하향했다. 장·단기 신용도 모두 나빠진 것이다. 롯데지주의 신용도 하락의 주요 원인은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주요 핵심 계열사들의 부진에 있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의 전망 및 신용도 변동에 연동되면서 지난 2022년 11월 부정적 등급 전망이 부여된 데 이어 2023년 6월 AA-(S)로 하향 조정됐다. 2024년 6월 전망이 다시 부정적으로 변경된 후 올해 6월 실제로 추가 하락이 이어진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하향이 계열통합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롯데물산, 롯데렌탈, 롯데캐피탈의 전망과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실제 2022년 11월 롯데물산과 롯데캐피탈, 롯데렌탈은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전망이 부정적으로 변경됨에 따른 계열통합신용도 하방 압력 상승으로 부정적 전망이 부여됐다. 이후 롯데케미칼 등급 하향과 동시에 3개 회사 모두 2023년 6월 A+(S)로 하향 조정됐다. 롯데케미칼은 화학 부문이 추락하기 전까지는 그룹의 캐시카우로 불렸지만, 현재는 부담 요인으로 전락했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3년 평균 기준 그룹 전체 자산의 43%, 매출의 49%, 총차입금의 34%를 차지한다. 케미칼 부진이 그룹 신용도 전반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계열 관련 자금 소요도 만만치 않다. 2020년 이후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 참여로 차입 부담이 늘었다. 3월 말 현재 롯데지주의 순차입금은 3조5000억원으로 2020년 말 1조8000억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어 지난해 영구채 발행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97.7%, 더블 레버리지 비율은 179.8%에 달한다. 아울러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과 물류 계열 투자도 겹치며 재무부담을 키웠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바이오 캠퍼스 구축 등 향후 추가 지원 가능성도 남아있어 부담은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 2년간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전망 및 등급 하향은 개별 계열사 차원의 실적 부진과 재무부담 확대뿐 아니라 그룹 전반의 사업 환경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개별 계열사의 부진은 다른 계열사가 방어 역할을 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완충될 수 있다. 실제 HD현대그룹은 2023년까지 호황을 이어가던 화학 부문이 흔들렸지만, 조선 부문이 이를 대신 떠받치며 그룹 전체의 수익성 제고와 재무부담 완화에 기여했다. 반면 같은 화학 업황 침체에 직면한 롯데그룹은 HD현대의 조선처럼 현금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캐시카우는 부재한 상황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2022~2023년 2조7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했다. 그룹 차원의 신성장 동력 확보가 목적이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사업체를 품에 안음으로써, 화학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배터리 소재로 확장하고 미래 성장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지난해 64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이미 771억원의 적자를 내며 전년 연간 손실 규모를 넘어섰다. 롯데그룹은 사업 비중이 큰 비금융 부문 중에서도 핵심 계열사들이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계열사의 경우 재무개선이 나타났음에도 본질적인 체질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롯데쇼핑의 토지 자산재평가에 따른 재무 지표상 변화이거나, 롯데하이마트·코리아세븐 등 구조조정 효과에 따른 일회성 흑자에 그친다. 그룹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소매유통과 화학업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소매유통의 EBITDA는 1조8510억원으로 전년 1조9840억원 대비 6.7% 감소했다. 같은 기간 화학 부문은 4690억원을 기록해 2023년 8660억원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범위를 최근 3년으로 넓혀보면 연평균 EBITDA 성장률은 소매유통이 -2.1%, 화학 -7.4%다. EBITDA는 이자·세금·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으로, 기업이 순수하게 영업활동을 통해 얼마만큼의 현금을 벌어들이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즉 본업에서 실제로 벌어들이는 돈이 계속 줄고 있다는 의미다. 핵심 계열사들의 수익성이 꺾이면서 그룹 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통·화학을 비롯한 롯데그룹의 비금융 부문은 최근 3년간 연평균 영업이익 성장률이 -46.5%를 기록했다. 이는 고정비 증가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기평에 따르면 롯데그룹 주요 비금융부문 계열사들의 지난 3년간 매출액 연평균 성장률은 -2.1%에 그쳤고, EBITDA 연평균 성장률은 -0.9%를 나타냈다. 현금창출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영업이익 성장이 크게 꺾인 것은 고정비 증가에 의한 '영업레버리지' 효과가 역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업레버리지 효과는 영업비용 중에서 고정비 부분으로 인해 매출액의 변동률 대비 영업이익의 변동률이 확대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매출이 줄면 이익은 더 크게 줄고, 매출이 늘면 이익은 더 크게 느는 구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롯데지주의 순차입금/EBITDA는 해마다 나빠지고 있다. 연결기준 롯데지주의 2022년 순차입금/EBITDA는 4.8배에서 올 3월말 현재 7.4배까지 증가했다. 순차입금/EBITDA는 기업이 창출하는 현금으로 차입금을 얼마나 빨리 갚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배수가 높아질수록 부채 상환 능력이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상 2~3배면 안정적이라고 평가되고, 4배 이상이면 신용등급 하향 검토 요인으로 분류된다. 롯데지주의 경우 1년 간 벌어들인 현금으로 부채를 갚으려면 8년가량이 걸리는 셈이다. 이주원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구조조정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그룹의 영업수익성은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신사업 중심 투자계획 감안 시 재무부담은 과중한 수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크레딧첵] HD현대, 꼬였던 현금 풀리니 밝아진 미래…‘리툴링’ 성공 신화 쓸까

HD현대그룹의 재무 체질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영업력이 뚜렷하게 개선된 데다 현금흐름이 회복되면서 차입 규모가 큰 폭으로 줄었다. 그룹의 최대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조선 부문의 경우 사실상 무차입 경영 수준이다. 재무구조가 안정화된 가운데 최근 그룹 전반에서 진행 중인 '리툴링(retooling·사업구조 재편)' 전략이 성공신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1일 국내 신용평가사들에 따르면 HD현대그룹의 순차입금/EBITDA 비율(현금흐름배수)은 2020년 15.4배에서 지난 3월 말 현재 1배까지 낮아졌다. 순차입금/EBITDA는 기업이 창출하는 현금으로 차입금을 얼마나 빨리 갚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통상 2~3배면 안정적이라고 평가되고, 4배 이상이면 신용등급 하향 검토 요인으로 분류된다. HD현대그룹의 경우 2020년 당시에는 1년 간 벌어들인 현금으로 부채를 갚으려면 15년 이상 걸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 1분기 말 현재 이 기간을 1년으로 대폭 줄인 것이다. 순차입금/EBITDA가 1배 수준으로 내려온 것은 이익 체력이 올라가고 현금 흐름이 개선되면서 차입 규모는 크게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HD현대그룹의 EBITDA는 2020년 6648억원에서 2024년 4조8983억원으로 7배 이상 늘었다. 지난 1분기 말 현재 기준으로 보면 1조7935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2481억원 대비 44% 증가했다. EBITDA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순차입금도 대폭 줄었다. HD현대그룹의 순차입금은 2022년 14조4000억원으로 최고치에 달했다. 정유 부문의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사업 관련 투자 부담과 HD현대인프라코어 연결 편입, 정유 부문의 투자 지출 등의 영향이다. 하지만 올해 3월 말 순차입금 규모는 7조원 수준으로 절반이 줄었다. 조선사 사업 부문의 실적 개선과 선수금 유입 등 이익 체력이 올라가면서 외부 차입 구조 개선으로 이어졌다. 선수금은 '착한 부채'로 불린다. 특히 조선업은 계약부터 납품까지 수년이 걸리는 산업인 만큼 선수금 자체가 수주 경쟁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HD현대는 이 같은 자금 유입 덕분에 차입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김현준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조선 부문의 실적 개선과 선수금 유입, 건설기계·전력기기 부문의 이익 창출 등을 통해 그룹 합산 순차입금이 크게 감소했다"며 “그룹 합산 재무부담이 점진적으로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래 기업 체력을 엿볼 수 있는 지표도 우상향했다. 실제로 HD현대 그룹의 순영업현금흐름(NCF)은 2020년 7971억원에서 지난해 말 현재 7조5115억원으로 9배 이상 늘었다. 이 역시 조선 부문의 성장이 주요했다. HD현대에서 조선 부문이 성장세로 전환된 것은 그룹 차원에서 중대한 지점이었다. 그룹 사업의 한 축인 정유화학이 기울기 시작했으나, 조선 부문이 이를 만회하는 것 이상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정유화학 업황은 2022년 하반기부터 악화하기 시작한 후 2023년부터 그 본격화했다. 정제마진 약화와 중국발 공급과잉,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부진 등이 원인이었다. HD현대 그룹도 2023년부터 정유화학 부문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정유화학과 건설장비 부문이 그룹 실적의 하방을 지지했다. 그러나 같은 해부터 업황 부진이 본격화하면서 해당 부문은 성장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실제 당시 그룹내 정유화학 계열사들의 총 NCF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정유화학의 NCF는 2022년 1조6227억원에서 2024년 1조3481억원으로 17% 감소했다. 반면 조선 부문의 NCF는 2020년 -900억원으로 유출상태였다. 하지만 2021년 8358억원으로 급증한 후 2022년 4622억원, 2023년 2조816억원, 2024년 4조2887억원 등 증가폭이 큰 상태다. NCF는 본업(영업활동)에서 벌여 들여 실제로 손에 쥔 현금흐름이다. 장부상의 이익이 아닌 실제로 돈이 들어와야만 플러스로 나타날 수 있어 기업의 진짜 체력을 알 수 있는 지표다. 한국기업평가는 정유화학부문의 실적 저하에도 그룹의 수익성 개선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과 전력기기부문의 신규수주 확대 과정에서 선수금이 대거 유입돼 대규모 NCF를 창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그룹은 현재 세 가지 축으로 대규모 사업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조선 부문에서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이는 강점을 지닌 분야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자 나아가 방산 분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대응을 병행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건설기계 부문에서는 현대건설기계와 인프라코어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역량을 재편하고 있다. 이런 작업이 단기적으로 재무안정성이 낮아질 수 있으나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정유화학 부문에서는 현대케미칼과 현대오일뱅크의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김종훈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건설장비부문의 합병 과정에서의 통합 비용, 석유화학사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비용 발생이 재무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오랜 기간 그룹의 현금흐름을 저해해왔던 조선부문이 가파른 실적 개선 추이를 보이며 현금창출력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어 그룹 전반의 재무적 부담은 완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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