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을 보고 소주를 처음 접했고 지금은 가족 전부들과 함께 마실 정도다. 참이슬 후레쉬를 가장 선호하고 시식(Sisig) 등 필리핀 음식과 페어링하기도 좋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방문한 필리핀 마닐라 대표 부촌인 마카티 소재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 S&R(에스앤알) 서킷(Circuit)점. 이날 진로 시음 매대를 구경하던 현지인 회사원 킴(30) 씨는 “다른 리큐르인 사케는 도수가 세서 좋아하지 않지만 소주는 부드럽고 아침에 일어날 때 숙취도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각종 진로 소주를 한 가득 담은 카트를 끌고 다니던 그는 “주로 주말에 가족들과 소주를 즐기며 한 번에 20병을 구매한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유통 채널에서 선보이는 진로 소주 가격대 한 병(360ml) 당 100~120페소(약 2500원~3000원) 수준이다. 현지 물가를 고려해 마냥 저렴하지 않지만 다른 수입 주류 대비 싸고, 한류 인기에 따른 호기심으로 기꺼이 제품을 경험하려는 젊은 층이 많다. S&R 주류부문 구매 담당자인 니코(35) 씨는 “S&R에서 소주를 판매한 지 약 10년째"라며 “소비자 판매용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는 한식당·마트 점주 등 도매사업자 수요도 있어 소주를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기 동안 집에서 K-드라마 속 삼겹살과 소주를 함께 먹는 문화를 접한 현지인들이 늘면서 소주 판매가 급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민형 마트에서 진로 소주 호응도 높다. 필리핀에서도 다른 음료들과 술을 섞어 마시는 믹쏠로지(Mixology)가 유행하면서, 혼합용 술로 일반 소주인 참이슬 후레시를 택하는 소비자도 많다. 필리핀 최대 규모 슈퍼마켓 '퓨어골드' 파라냐케점에서 만난 현지인 소비자 사이린(23) 씨는 “보통 주 2회, 1~2병씩 소주를 음용하고, 맥주와 섞어 마실 수 있는 참이슬 후레쉬를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약 30년 전 하이트진로가 필리핀에 진출한 당시 교민 중심이던 진로 소비 흐름은 K-문화 확산 속 현지 위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한국에서 쌓아온 영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타가이(TAGAY, 건배)·풀루탄(PULUTAN, 음식과 곁들인 음주)·팀프라도(Timplado, 소주에 각종 음료를 혼합해 즐기는 것)·비디오케(VIDEOKE, 노래방+음주) 등의 현지 주류 문화에 발맞춰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최근에는 진로의 대중화를 위해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를 노린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현지 커피 브랜드와 손잡고 일반 소주를 접목한 이색 음용 레시피를 선보이거나 현지 길거리패션 브랜드와 협업한 굿즈를 출시하며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 참여형 콘텐츠도 적극 발굴하고 있다. 현지 연예인을 초청해 진행하는 취중 라이브 콘셉트의 '진로라이브'가 대표 사례다. 국내에서 10년 간 운영해온 '이슬라이브'를 현지화한 버전으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 지난 22일 마닐라 말라테 소재 한국식 무한리필 바비큐 프랜차이즈 '삽겹살라맛'에서 열린 진로라이브에는 현지 걸그룹 YGIG가 출연해 술자리 게임과 노래, 토크 등을 통해 진로 브랜드를 알렸다. 이들 뒤편에 자리한 팬들도 “따가이"를 외치며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등 현장 분위기를 달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진로라이브는 단순한 술 예능이 아니라, 진로가 필리핀 대중문화 안에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콘텐츠"라며 “"한식, 소주, 노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브랜드 친밀도를 높이고 MZ 세대를 겨냥한 현지화 마케팅을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