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신호등] 수도권 쓰레기 안 묻고 소각하려니…이제는 온실가스가 걱정

내년 1월 1일부터 서울 등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된다. 지난 2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서울시·인천시·경기도 등 4개 기관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직매립 금지 조처를 원칙적으로 시행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국무총리실까지 나서며 교통정리를 한 덕분에 '쓰레기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지만, 이번 협약이 성사되기까지 수도권 매립지 운영을 둘러싸고 오랜 갈등과 혼란이 있었다. 수도권 매립지 갈등의 역사를 살펴보고, 직매립 금지 이후의 상황도 전망해본다. ◇1992년 매립 시작…서울시 지분이 71.3% 33년 전인 1992년 인천 서구 백석동 일대(당시에는 경기도 김포군의 김포매립지)에 세계 최대 규모(약 1600만~2000만㎡)로 개장한 수도권매립지는 당초 2016년 12월까지만 사용할 계획이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기 전이고 생활쓰레기 중에서 연탄재가 많았던 당시에는 20여 년이면 제4공구까지 다 채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당초 동아건설이 매립한 땅이었는데,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강압적으로 넘겨받아 쓰레기 매립지로 조성했다. 조성 당시 서울시(71.3%)와 환경부 산하 기관(28.7%)이 지분을 나눠 가졌고, 인천시는 지분 참여를 포기했다. 초기에 서울·인천·경기 3개 시·도가 조합을 구성해 운영했는데, 이 과정에서 환경부와의 갈등이 벌어졌고, 부실 시공과 쓰레기를 덮는 복토재(흙) 구매 등을 둘러싸고 비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0년 환경부 산하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출범, 매립지를 관리하게 됐다. ◇매립 연장을 둘러싼 갈등의 시작 (2009년~2013년) 1992년 매립을 시작한 제1매립장은 2000년에 사용이 종료됐다. 제2매립장 공사를 위해 인천시가 공유수면매립 실시계획 인가를 1996년 11월에 내주면서 전체 매립지 사용 기한을 2016년으로 못박았다. 하지만 서울시와 환경부는 2010년 8월 매립 기간을 2044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공식화하려 했다. 서울시는 쓰레기 대란과 대체 매립지 조성의 비효율성(3조 원 소요 예상)을 이유로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인천시는 매립 연장 반대를 공식화하고 매립 면허권 국가 환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맞섰다. 특히 2011년에는 매립지 주변 거주지(청라국제도시 등)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악취 민원이 6000여 차례 폭증했으며, 황화수소가 법적 기준치를 16배 초과하는 등 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났다. 환경 문제 외에 돈 문제도 걸려 있었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경인아라뱃길을 조성하면서 2010년 2월 매립지 부지 일부를 1025억원에 사들였는데, 지분을 가진 서울시가 이 돈을 자체 세입으로 처리하면서 인천에서 불만을 샀다. 인천 주민은 고통받고 있는데 매립지에서 발생한 이익은 서울에서 가져가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갈등의 봉합(2014년~2015년): 1조 원짜리 빅딜 2016년이 다가오자 쓰레기 대란을 막기 위해 조건부 협상이 시작됐다. 2014년 12월 유정복 인천시장은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며, 협의 전에 매립지 소유권·면허권의 인천시 이양, 매립지관리공사의 인천시 이관, 주변 지역 실질 지원 등을 요구했다. 서울시와 환경부는 쓰레기 처리 지속을 위해 최소 1조 원으로 추정되는 재산권 이양 요구를 전격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2015년 6월 28일, 4자 협의체는 대체 매립지 조성을 전제로 현 매립지 중 제3-1 매립장을 추가로 사용하기로 최종 합의했는데, 이는 약 10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사실상 2025년까지 현 매립지를 사용함을 의미했다. 이 합의를 통해 인천시는 매립지 토지 소유권과 매립면허권을 이양받는 실리를 확보했다. 또한, 폐기물 반입 수수료의 50%를 가산금으로 징수해 매년 500억 원을 주변 지역 환경 개선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합의에는 '3-1 매립장 사용 종료 시까지 대체 매립지가 확보되지 못할 경우, 잔여 부지의 최대 15%(106만㎡) 범위 내에서 추가 매립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포함됐다. 인천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이를 장기 연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꼼수'라며 비난했다. ◇되풀이 되는 위기 (2016년~현재): 대체 매립지 확보 실패 2015년 합의 이후 대체 매립지 확보 및 후속 조치 이행은 지지부진했다. 매립지공사의 인천시 이관(지방공사화)은 노조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수년째 진전이 없었다. 제1매립장의 사후관리 비용(1269억~1300억 원)과 침출수 처리장 개선 비용(1300억 원) 분담을 두고도 4자 협의체 간 논의가 난항을 겪었다. 결정적으로, 2025년 종료 시점을 대비해 환경부와 3개 시·도가 수도권 전역을 대상으로 대체 매립지 후보지를 찾기 위한 공모를 네 차례나 진행했지만,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가 나서지 않아 번번이 실패했다. 4차 공모(2024년 5월 시작)에서 민간 2곳이 응모했지만, 주민 수용성과 인허가 절차에만 최소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3-1 매립장의 계속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인천시는 2020년 자체 매립지(영흥도 후보지) 조성을 공식화하며 수도권 공용 매립지 종료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반면, 서울·경기는 폐기물 감축으로 3-1 매립장의 용량이 2042년까지도 사용 가능하다는 추산을 근거로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대립이 재점화됐다. ◇ '직매립 금지' 합의 내용: 위기 속 대안 모색 내년 1월 시행되는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조처는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생활폐기물을 매립지에 바로 묻지 않고, 소각하거나 재활용한 뒤 소각재나 잔재물, 협잡물만 매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 제도는 매립지 낭비를 줄이고 폐기물을 최대한 발생지 내에서 처리한다는 '발생지 책임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지난 2021년 환경부(현 기후부)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결정됐다. 이번 합의에서는 다만, 생활폐기물 수거 지연이나 적체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재해·재난, 소각시설 가동 중단 등 불가피한 상황에는 직매립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기준을 연내 마련해 법제화하기로 했다. 기후부와 지자체는 실제 직매립량이 '0'이 되도록 2029년까지 예외적 직매립 허용량도 점차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톤당 11만6855원인 수도권매립지 생활폐기물 반입 수수료를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는 직매립이 금지되면 매립지로 들어오는 폐기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수수료 수익이 감소하고, 자칫 매립지 운영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립지 반입량은 15~20% 수준으로 줄 듯 직매립이 금지되면 수도권매립지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3-1 매립장에는 623만 톤을 추가 매립할 수 있는데, 직매립이 금지돼 연간 매립량이 지금의 15~20% 수준인 20만 톤 수준으로 줄어든다면 3-1 매립장은 앞으로도 3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매립지를 대체할 새 매립지가 조속히 확보되지 않는다면 기존 매립지를 계속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수도권 매립지 사용 연장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차후 문제이고 당장은 내년 1월 직매립이 금지되면 매립하고 있는 쓰레기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과제다. 공공 소각장 시설이 부족해 또다른 갈등과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 3개 시·도가 수도권매립지에 보낸 생활폐기물은 총 51만6776 톤, 하루 평균 약 1416 톤에 이른다. 3개 시·도는 2021년 이후 공공소각장을 새로 건설하지 못했다. 서울시 마포구와 경기도 광주·고양·부천시, 인천시 부평구 등에서 새 소각장 건설을 추진하거나 검토했지만 주민 반발로 실제 건설이 진행된 곳은 없다. ◇민간 소각시설 용량은 충분…일부는 시멘트 공장으로 경기도만 해도 직매립해온 하루 641 톤의 쓰레기를 소각 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공공 소각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이므로, 경기도 18개 시·군은 내년 처리해야 할 600여 톤의 물량 대부분을 민간 시설에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내에 민간 처리시설이 하나도 없는 서울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당분간 타지역 민간 처리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지역 혹은 수도권과 가까운 충청권 등으로 서울시 쓰레기를 넘겨야 할 상황이다. 민간 소각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수도권의 생활쓰레기 일부를 민간 시설에서 처리하고 있고, 직매립 금지로 물량이 늘어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일부 지자체는 생활쓰레기를 민간 처리시설이 아닌 시멘트 공장으로 보낼 가능성도 있다. 기존에도 적지 않은 생활폐기물과 산업폐기물이 시멘트 원료와 연료라는 명분으로 시멘트 공장 소성로에서 소각 처분됐다. 하지만 전문 소각시설에 비해 시멘트 공장 소성로는 배출 허용 기준이 상대적으로 느슨해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기후부는 최근 소성로서 폐기물을 태우는 것과 관련해 시멘프 품질을 조사하는 민관 공동조사 위원회를 구성했다. ◇'민간 위탁 고착화'로 공공 소각장 건설 더 어려워질 수도 일부에서는 민간 소각장을 확보한다고 해도 비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직매립 처리비는 톤 당 12만원 미만이지만, 민간 소각시설 위탁 처리비는 이보다 훨씬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소각 업계 관계자는 “소각 후 나오는 잔재물이나 재를 처리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서 “실제 비용 부담은 매립에 비해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간 소각장 활용이 장기화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임시방편으로 시작한 민간 위탁이 고착화하면 공공 소각시설 확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공공 소각시설이나 매립지를 지자체별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민간 위탁 처리가 일상화되면 서울 등 도시 지역 주민들은 “굳이 우리 지역에 소각장을 지어야 하냐"고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매립지에서는 그동안에도 반입총량제와 가산금 부과를 통해 매립 대신 재활용과소각률을 높이도록 지자체에 압력을 가해왔다. 직매립이 금지되면 재정이 넉넉한 시·군에서는 소각처리 비중을 높이면서 재활용에 대한 노력을 소홀히 할 수 있다. 물질 재활용을 늘리려는 노력 없이 소각으로 처리한다면 열적 재활용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날 수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민간 소각 시설 용량으로 볼 때 직매립을 금지해도 당장은 쓰레기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허가받은 시설용량보다 30%까지 더 태울 수 있도록 허용한 규정을 빌미로 소각업체에서 상시적으로 30%를 더 태울 경우 환경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수도권 매립지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려면 지자체별로 대체 매립지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소각을 늘리더라도 소각재나 잔재물은 매립할 수밖에 없고, 수도권매립지가 종료된다면 최소한의 대체 매립지 확보가 필요하다. 이번 기후부와 지자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국무총리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처럼 앞으로도 정부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체 매립지를 유치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한다. 법정 지원금 외에 사업비의 20% 이내(최소 2500억~3000억 원)의 파격적인 특별 지원금을 제공하고, 매년 반입 수수료의 일부를 주민지원기금으로 조성해 주변 환경 개선 사업에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전과정평가(LCA), 온실가스 측정의 새 도구로 주목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자동차 업계가 온실가스 전과정평가(LCA) 역량 강화를 위해 협력한다는 협약식 행사가 열렸다. LCA(life-cycle assessment)는 자동차 제작단계(원료 채취 및 부품제조, 완성차 생산포함)부터 운행,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하여 평가·관리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번 협약은 유럽연합(EU)이 2026년 자동차 생애주기 탄소배출 보고를 시작하는 등 국제 규범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마련됐다. 자동차 업계의 온실가스 LCA 역량을 선제적으로 강화하고, 공급망 내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탄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협약에는 현대자동차 등 주요 자동차 제작사(5개)와 부품사(16개)가 참여했다. 이번 협약은 LCA가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하는 데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앞서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는 한국기후변화연구원과 한국기후환경원 등이 주최한 '대한민국 탄소포럼 2025'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LCA 기반 제품탄소 규제동향과 사례'와 'Scope3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기준 및 기업적용 사례'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각각 열렸다. 또, 국제 기후환경단체 (사)푸른아시아는 최근 세계자원연구소(WRI)와 계약을 맺고 '온실가스(GHG) 프로토콜' 공식 번역본을 발간했다. GHG 프로토콜은 국제 온실가스 산정·보고·검증(MRV)을 위한 국제 표준·지침이다. 전 세계 기업과 기관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처럼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 가운데 특히 LCA가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의 핵심 도구로 주목 받고 있다. ◇ 스코프 3 부상… “전체 배출량의 70~90% 차지" 전 세계적으로 기후 관련 공시 의무화가 확산하면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이 핵심 경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2023년 내놓은 '기후 공시(IFRS S2)'는 기후 리스크와 배출량 정보를 재무 공시 수준으로 엄격하게 요구한다. 기업이 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투자자와 고객, 규제기관 모두가 탄소 데이터를 기업 신뢰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보고가 아니라 재무 정보 수준의 엄격한 '탄소 회계'가 요구되는 시대다. GHG 프로토콜은 배출 범위를 스코프 1(기업이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직접 배출량), 스코프 2(전력 등 외부에서 가져온 에너지로 인한 간접 배출량), 스코프 3(원료·부품의 매입이나 제품의 배송 등 가치사슬(공급망)을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한 배출량)으로 구분한다. 그중 스코프 3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있다.국내 주요 기업의 스코프 3 배출량은 스코프 1·2 합산보다 8배 이상 많으며, 글로벌 탄소 공개 프로젝트(CDP) 공개 기업 기준으로는 전체 배출량의 96%에 달한다.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업에서도 배출량의 대부분이 스코프 3에서 발생한다. 최근 삼성전자·현대차·GS칼텍스 등 국내 대기업들은 스코프 3 공개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스코프 3 규모는 1억 톤을 넘으며, GS칼텍스는 스코프 3의 98%가 4개 카테고리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프 3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전체 배출량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보고도 불가능하다. CDP한국위원회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의 '2024 CDP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 23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68%인 158곳이 스코프3 배출량을 집계해 CDP에 공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프 3 측정의 가장 큰 난관은 “공급망의 불확실성" 스코프 3는 원자재 채굴부터 제품 폐기까지 가치사슬 전 과정의 배출을 포함한다. 총 15개 카테고리에 걸쳐 여러 단계의 협력사·물류업체·사용자·폐기물 업체 등이 얽혀 있기 때문에 기업 내부 통제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스코프 3 배출량 분석에서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는데. 이는 ▶협력사의 배출량 데이터 미제공 ▶국가·산업별 배출계수와 활동 데이터의 질적 격차 ▶공급망 규모의 방대함 ▶검증 비용 증가 등 때문이다. 이로 인해 스코프 3 보고는 스코프 1·2에 비해 데이터 품질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코프 3를 제외한 배출 보고는 국제적으로 '불완전 보고'로 간주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LCA 기법이 활용된다. LCA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태어나서 사라질 때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정량화하고 평가하는 방법론이다. 원료 채취부터 생산, 운송,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요람에서 무덤까지)에서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평가한다. LCA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단계를 거쳐 수행된다. 1. 목표 및 범위 설정: 분석의 목적, 대상 제품/서비스, 시스템 경계 및 기능 단위를 정의. 2. 목록 분석: 각 단계에서 원료, 에너지 등의 투입(input)과 온실가스, 폐기물 등의 산출(output)을 정량적으로 목록화함. 3. 영향 평가: 목록화된 데이터를 환경 영향 범주로 변환하여 평가. 주요 영향 범주에는 기후변화(온실가스), 대기오염(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수질오염(부영양화) 등이 포함됨. 4. 해석: 평가 결과를 종합하고 환경 부하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Hot Spot)을 식별,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보고. ◇ 스코프 3 산정의 핵심 도구는 LCA… “전 과정과 전 범위가 맞물린다" 스코프 3 측정이 중요해지면서 LCA의 역할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LCA는 가치사슬 전 과정 배출을 분석하는 스코프 3와 구조적으로 정확히 대응된다. 정확한 스코프 3 산정에는 LCA가 필요하고, 또 정교한 LCA 수행을 위해서는 공급망에서 확보한 스코프 3 데이터가 필요하다. 스코프 3와 LCA는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인 셈이다. 이에 따라 LCA는 '스코프 3의 확장판'이자 기업의 전(全)주기 탄소전략을 설계하는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는 자동차 산업은 LCA 도입의 대표 사례다. 해외에서 나온 자동차 대상 LCA 연구 결과를 보면, 전기차는 운행 단계에서는 내연차보다 배출량이 낮지만, 제조 단계에서는 배터리 생산으로 인해 상당한 탄소가 발생한다. 유럽의 전과정평가 분석에 따르면, 전기차 제조 단계 배출량은 내연차보다 약 30% 높고, 운행 단계에서는 32~47% 수준으로 크게 낮다. 전력망이 탈탄소화될수록 전기차의 전체 수명 배출량은 더욱 낮아진다. 보통은 운행 2~3년이 지나면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내연차보다 더 작아진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배터리 공급망의 스코프 3 감축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협력사에 탄소 데이터 제출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확성은 1차 데이터에서 온다"… 공급망 협력이 핵심 LCA의 신뢰도는 사용된 데이터의 질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기업이 실제 공정에서 발생하는 배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1차 데이터를 확보해야 정확한 LCA 산정이 가능하다. 반면 산업 평균값 또는 문헌 기반의 2차 데이터는 편리하지만 정확성이 낮고, 글로벌 공시 기준에서는 점점 인정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서 배출계수가 중요한데, 정부 등에서 제공하는 배출계수를 사용하는 것보다 실제 측정을 통해 확보한 배출계수를 적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이미 에너지 효율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공급망 탄소 파트너십'을 통해 실제 공급망의 배출계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제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 배출의 80~90%를 1차 데이터 기반으로 산정한다"와 같은 정량 목표를 세우고 공급망 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다. LCA 시대에는 기업 단일 노력이 아닌, 공급망 전체의 측정·보고·검증(MRV) 체계 구축이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탄소포럼 LCA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한 ㈜후시파터너스 박종한 상무는 “2026년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한국의 4차 배출권거래제 시행 등으로 탄소 규제 빅뱅이 벌어질 것"이라며 “공급망 전체를 단일 생태계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관계사들의 협력적 MRV다. 금융권에서도 LCA 기법 적용은 이미 현실화됐다. 금융기관이 대출·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배출량, 즉 '금융 배출량'이 스코프 3에 속하기 때문이다. 금융부문 탄소회계 파트너십(PCAF) 기준은 기업의 스코프 1·2 데이터 확보를 전제로 금융기관의 배출 귀책 비율을 계산한다. 이 때문에 제조업이든 금융업이든, 결국 스코프 3의 정확성이 기업 전체 탄소 회계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좌우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 LCA 시대, 스코프 3는 기업 경쟁력의 분기점 LCA 방법은 지금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최근 유엔 산하 '국제 자동차 규제조화포럼'에서는 자동차 전과정평가 전문가작업반을 구성하고 내년 초 국제사회의 채택을 목표로 평가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탄소포럼 LCA 세미나에서 '글로벌 제품탄소 규제동향과 LCA'를 주제로 발표를 한 스마트에코 김익 대표이사는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이 LCA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기업 내부 공정만 관리하면 됐지만, 현재는 가치사슬 전 과정에 대한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이사는 “스코프 3를 파악하지 못하면 기업의 실제 배출량은 물론 감축 전략도 수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기업 경쟁력은 ▶정확한 스코프 3 산정 능력 ▶공급망 1차 데이터 확보 체계 ▶LCA 기반 전 생애주기 인사이트 확보 능력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다. 스코프 3를 모르면 LCA를 실행할 수 없고, LCA 없는 탄소 회계는 국제 공시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정확한 데이터 기반의 LCA를 갖춘 기업만이 글로벌 규제 환경에서 신뢰를 얻고 지속가능 경영의 실질적 성과를 확보할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벼랑 끝 지구…행동과 재원의 격차를 메울 수 있을까

지난 10일부터 브라질 북부 아마존의 관문 도시 베렝에서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리고 있다. 오는 21일까지 이어질 COP30은 단순히 국제회의가 아니다.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다. COP30을 전후해 유엔환경계획(UNEP)와 세계기상기구(WMO) 등 주요 국제기관과 연구기관, 학술단체 등에서는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에너지, 생태계 문제를 짚은 과학 보고서를 쏟아냈다. 다양한 보고서가 내놓고 있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고, 지구는 이미 벼랑의 끝자락에 서 있다는 내용이다. 이들 최신 보고서 내용을 하나로 연결하면 ▶점점 더 많이 내뿜는 온실가스 ▶관측 사상 가장 뜨거운 지구 ▶약화하는 생태계의 복원력 ▶심화되는 기후 불평등 ▶심각한 적응·재원 격차라는 큰 그림이 그려진다. 이는 기후 위기 대응에서 말뿐인 합의나 목표 상향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COP30은 각국이 실제적으로 행동을 가속화하고, 지연된 이행을 만회할 구체적 조치와 재원 동원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회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지속적인 증가 14일 발표된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GCP)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에서 사용한 화석연료와 시멘트 생산에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지난해보다 1.1% 증가해 사상 최고인 381억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끈질긴' 증가세다. 특히, 미국은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돌아서서 2024~2025년 배출량이 2% 증가해 전 세계 배출량 증가의 약 40%를 차지했다. 반면 중국은 0.4% 증가하는 데 그쳐 배출량이 정점에 도달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35개국은 지난해보다 화석연료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태양광 발전의 부상은 고무적이다. 2015년 전 세계 발전량의 1%에 불과했던 태양광은 2025년 상반기 8.8%로 성장했다. 전력 공급량은 10년 사이에 약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1.5℃ 목표에 근접: 지구는 이미 뜨겁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COP30 개막을 앞두고 “우리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데 실패한 건 냉정한 현실"이라며 “이는 도덕적 실패이자 치명적인 과실"이라고 비판했다. WMO는 2024년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했다.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5°C 상승했고, 이는 인류가 피해야 할 위험 경계선인 1.5°C를 일시적으로 넘었다. 2025년 1월부터 8월까지의 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42°C 상승, 2025년은 역대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해양 열파(marine heatwave)는 세계 산호초의 84% 이상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생태계에 국지적 피해를 주는 수준이 아니라, 지구적 생명 순환과 어업 생산, 연안 경제를 흔드는 문제다. 산호의 소멸은 곧 수십억 인구의 식량 문제, 연안 지역 관광·어업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생물종의 피해도 심각하다. 3500종 이상의 야생 동물이 기후변화로 인해 위험에 처해 있는데, 기후 관련 동물 개체수 붕괴의 새로운 증거가 확인됐다. 육상 탄소 흡수원도 크게 약화되었다. 2023년 전 세계 산림 손실은 2800만 ㏊로 전년도에 비해 24% 증가했다. 이는 지구가 스스로 온실가스를 흡수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엘니뇨 및 대형 산불로 인해 육상 생태계는 오히려 탄소 배출원으로 전환되는 위험한 상황에 진입하고 있다. 과학계는 이러한 현상들이 누적될 경우, 지구가 '사우나 지구' 상태로 진입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즉, 인간의 정책 개입으로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 이른바 기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 실질적인 감축 전략 이행해야 할 때 파리 기후 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C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2% 감축해야 한다. 실질적인 감축 전략을 마련해서 이행에 들어가야 한다. ① 화석연료 단계적 감축: 석탄·가스 발전은 여전히 전 세계 전력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화석 연료의 신속한 단계적 폐지는 기후 완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원은 2050년까지 전 세계 전력의 최대 70%를 공급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COP28에서 세계 각국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3배로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를 2배로 향상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전력망 확충·에너지 저장장치 확보·전기화 전환 등 연쇄적 정책 변화가 요구된다. ②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배출집약 산업은 '감축이 어려운 부문'이다. 이 분야에서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 ▶탄소 포집·저장(CCUS) ▶공정 효율 최적화 ▶대체 소재 전환 같은 기술 혁신과 금융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탄소 직접 제거(CDR) 기술과 CCUS의 확대는 신속한 배출량 감축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하다. 특히 감축하기 어려운(hard-to-abate) 부문의 배출량을 처리하고 기후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 ③ 자연 기반 해법(NbS): 각국은 NDC 보고서에서 조림 및 재조림, 산림 관리 개선, 산림 파괴 감소 등을 잠재력을 가진 저비용 기후변화 완화 옵션으로 보고했다. 산림·습지 보전, 맹그로브 복원, 이탄지 보호는 연간 최대 10기가톤(Gt CO₂eq,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값. 1Gt=10억톤) 감축 가능한 저비용·고효율 전략이다. 10Gt, 즉 100억톤은 전 세계 연간 배출량의 약 25%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재 산림 파괴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보호보다 개발이 경제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 적응: 더 이상 '예방'이 아닌 '생존 인프라' 기후 변화는 단지 환경 문제가 아니라 보건·식량·물·안보·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복합 위기다. 폭염은 심혈관 사망률을 높이고 가뭄은 수자원·농업 생산성에 직접 타격을 주며 집중호우는 도시 기반시설과 주거 안전을 위협한다. 가속화하는 기후 영향에 비추어 볼 때, 적응 행동은 여전히 불충분한 수준이다. 하지만 적응에 투자하는 것은 기후 영향 비용을 크게 줄이고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 해안 보호에 1달러를 투자하면 최대 14달러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적응 재원 수요는 연간 3100억~3650억 달러(450조~532조 원)이지만, 실제 지원은 260억 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즉 12배 격차가 존재한다. 적응은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이 아니라, 지금 당장 구축해야 하는 안전망이다. 적응 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계획 및 이행 일관성 강화 ▶취약 부문 우선순위 지정 ▶다중 위험 조기경보 시스템 확대 ▶제도적 역량과 거버넌스 구조 구축 ▶기후 위험 증가 초래할 행동 회피 등이 이뤄져야 한다. COP30에서는 전 세계 적응 목표(GGA)의 이행을 추적하기 위한 지표 채택이 논의될 예정이다. ◇기후금융: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변수 기후 대응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자금 조달 구조다. 2024년 전 세계 은행의 화석연료 산업 대출 규모는 6110억 달러였고, 세계 각국은 모두 9560억 달러 규모의 화석연료 보조금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기존 오염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모순된 상태다. COP29에서 새로운 기후 금융 목표(NCQG)를 합의했는데, 2035년까지 최소 연간 3000억 달러의 기후 금융을 목표로 하지만, 이는 개발도상국의 필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COP30에서는 이를 확장해 2035년까지 기후 재원을 최소 1조3000억 달러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바쿠-벨렘 로드맵(Baku to Belém roadmap)'이 논의되고 있다. 이 로드맵은 ▶보조금·양허성 금융 확대 ▶개도국 부채 상환 부담 완화 ▶민간·공공 금융 동원 경로 전환 ▶기후 관련 위험 공시 및 금융 시스템 개혁 등을 포함한다. 이와 관련 개도국의 손실 및 피해 위한 자금은 새롭고 추가적이어야 하고, 민간 금융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양허성 금융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양허성 금융은 이자율이 매우 낮거나, 상환 기간이 길고, 일부 또는 전액을 갚지 않아도 되는(무상지원 또는 일부 탕감) 형태의 국가 또는 국제기구가 제공하는 공적 금융 지원을 말한다. ◇국제 흐름 속 한국의 과제와 향후 역할 한국은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3~61% 줄이겠다는 내용의 NDC를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산업계의 불만이 고조되는 것처럼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다. 한국은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배출집약 산업의 비중이 높다는 구조적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감축을 위해서는 전환 금융(transition finance), 즉 산업이 실제로 변화할 수 있도록 비용과 시간을 지원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분야 뿐만 아니라, 청정 기술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거나 비용 경쟁력이 낮은 배출 집약적 부문의 기업의 녹색 전환을 돕는 데 필수적이다. ▶철강: 수소환원제철·전기로 전환 ▶시멘트: 에너지 효율 개선·탄산화 공정 적용 ▶발전: 재생에너지·저탄소 가스·ESS 확충 ▶농업·도시: 기후 적응형 인프라 구축 등이다. 이는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발표하면서 함께 내놓았던 기술적 제도적 해법과 맥을 같이 한다. ◇COP30: 이제는 행동의 속도를 높일 때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언젠가 대응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산호는 하얗게 죽어가고, 도시의 여름은 해마다 더 뜨거워지며, 농업과 식량 체계는 취약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행동의 속도는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의 상태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며, 목표가 아니라 이행, 그리고 약속이 아니라 재원이다. COP30은 그 본격적인 실행을 시작해야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현재 각국의 정책으로는 파리 기후협정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만큼, 모든 국가, 특히 주요 배출국들은 감축 목표를 대폭 상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COP30은 과학적 경고를 구체적인 협력 및 가시적인 결과로 전환해야 하는 분수령이 돼야 하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30년 역사: 교토-파리-아마존

10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 아마존 중심 도시 벨렝에서는 기후변화협약(UNFCCC)의 제30차 당사국 총회(COP30)가 열린다. 전세계 200개 가까운 회원국 대표단과 국제기구·기업 관계자, 전문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 수 만명이 모이는 회의다. 30차 회의를 맞아 COP의 지난 30년 역사를 돌아보고 이번 회의에서 논의할 내용을 정리했다. ◇기후 외교의 탄생: UNFCCC와 베를린의 첫걸음 기후협약은 1992년 리우 지구 정상회의에서 채택됐다. 이 협약은 위험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생산을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후협약 체제 내에서 모든 주요 기후 외교의 이정표는 COP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기후협약에는 현재 198개 당사국(197개 국가와 EU)이 가입하고 있다. 제1차 협약 당사국총회(COP 1)는 30년 전인 1995년 3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됐다. COP1에서는 협약 부속서 I에 나열된 당사국, 즉 선진국의 2000년 이후 감축 공약을 강화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기후협약은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명시했는데, 이는 국가들이 역사적으로 배출한 온실가스 양이 다르므로 감축 노력에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교토의정서의 채택과 미국의 이탈: 선진국만의 의무 기후 외교 역사상 첫 번째 구속력 있는 합의는 COP3(일본 교토, 1997년)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다. 이 의정서는 선진국(부속서 I 국가)에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를 부과했는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를 첫 번째 공약 기간으로 정해 1990년 수준 대비 평균 5.2% 이상 감축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교토의정서는 시작부터 큰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었던 미국은 1990년 수준보다 총 배출량을 평균 7% 낮추기로 동의했으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조약에 서명한 후에도 의회는 이를 비준하지 않았고,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 의정서를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러시아의 비준 덕분에 교토의정서는 2005년에야 발효될 수 있었다. 교토의정서는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 개도국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에서 제외돼 실효성이 약화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은 기후협약 채택 당시 개발도상국(비부속서 I 국가)으로 분류돼 교토의정서의 감축 의무를 지지 않았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9년 세계 10위권, 2002년에는 세계 9위였고, 1인당 배출량은 이미 일본을 앞지른 탓에 국제사회로부터 감축에 동참하라는 압력이 가중됐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경제 발전을 계속해야 하고, 선진국과 같은 방식의 의무 감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교토 이후, 파리 이전: 글로벌 합의를 향한 험난한 여정 COP 15(덴마크 코펜하겐, 2009년)에서는 교토의정서 '실패' 이후의 야심찬 글로벌 협정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첨예한 이견, 특히 개도국 지원 문제로 인해 최종적인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억제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장기 감축 목표 마련에는 실패했다. 선진국들은 2010년~2012년 동안 개도국에 총 300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COP 16 (멕시코 칸쿤, 2010년)에서는 녹색기후기금(GCF)을 설립하고,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조달해 개도국의 기후변화 적응 및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COP 17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2011년)에서는 모든 국가를 포함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정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홍수·해수면상승·가뭄 등 기후변화로 인한 복구 불가능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의제가 협상 테이블 위에 공식적으로 올라왔다. 한국은 이 시기 동안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자처하며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했다. COP 15에서 한국은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감축 노력이 없는 시나리오) 대비 30% 감축이라는 자발적 감축 목표를 세계에서 맨 먼저 내놓아 다른 개도국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COP 16에서는 녹색성장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파리 기후협정: 1.5도 목표와 보편적 참여 COP 21(프랑스 파리, 2015년)에서는 파리 기후협정이 채택됐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가입한 세계 195개국 모두에게 감축 의무를 부여하는 '신기후체제'가 탄생했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훨씬 아래로 억제하고, 가급적 1.5℃ 아래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파리협정은 각국이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설정해 5년마다 유엔에 제출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받도록 했다. 대신 선진국들은 2020년 이후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의 재원을 개도국에 지원하기로 재차 합의했다. 파리협정은 기후변화 대응에서 보편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각국이 제출한 NDC를 종합한 결과는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2.7℃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1.5℃ 목표 달성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파리협정은 2016년 11월 4일에 발효됐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기 취임 후 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협정에 재가입했다.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줄다리기 회의 COP 26 (영국 글래스고, 2021년)에서는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세부 규칙을 완성하고, 1.5℃ 목표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감축(phase down)' 문구가 합의문에 명시된 점이 성과로 꼽힌다. 이산화탄소보다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 배출량을 2030년까지 30% 줄이기로 하는 '국제 메탄 서약'도 발족했다. 한국은 이 메탄 서약에 서명했지만, 중국·인도는 불참했다. COP 27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 2022년)의 최대 성과는 기후 재앙으로 인한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한 기금 조성에 극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개도국이 30년간 분투한 끝에 이룬 첫 번째 긍정적 이정표로 평가받았다. COP 28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2023년)에서는 마라톤 협상 끝에 'UAE 컨센서스'를 채택했다. COP 회의 28년 만에 처음으로 합의문에 '화석연료에서 멀어지 는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표현이 포함됐다. '단계적 퇴출 (phase-out)' 문구는 산유국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결국 빠졌다. 대신 손실과 피해 기금 운영과 관련해서는 초기 재원으로 7억 달러 이상이 공여됐다. COP 29 (아제르바이잔 바쿠, 2024년)의 핵심 의제는 '신규 기후 재원 조성 목표(NCQG)' 설정이었다. 기후 변화 완화와 적응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 조달 방안은 진통 끝에 타결됐다. 203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연간 1조3,000억 달러 규모로 기후 투자를 확대하고, 선진국은 기존 목표(연간 1,000억 달러)의 3배인 최소 3,000억 달러를 주도적으로 분담하기로 합의했다. COP29 회의에서는 9년 만에 국제 탄소 시장 운영(파리협정 제6조)에 관한 세부 규칙이 최종 합의됐다. 한국은 COP 28에서 무탄소 에너지(CFE) 이니셔티브의 글로벌 확산을 제안했다. 원자력을 통한 탄소 중립 전략을 내놓았다. 동시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확충하는 국제적 목표에도 동참해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은 재원 공여 의무국은 아니지만, 기후 대응 기금에 700만 달러 신규 출연을 공약했다. ◇10일 브라질 COP30 개막, 전망 밝지만은 않아 이번 COP30은 파리 기후협정 채택 10주년이 되는 해에, 1992년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됐던 브라질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온전한 숲인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유한 브라질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런 상징적인 장소에서 열리는 만큼 COP30이 기후 목표를 강화하고 실제 이행을 가속화해야 하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 이번 COP30의 초점은 한국을 비롯해 각국이 제출한 2035년 NDC다. 각국의 감축 목표 제시와 이행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다. COP 30가 '인류 생존선'으로 불리는 1.5℃ 목표를 지킬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현재까지는 각국이 새로 제출할 NDC 역시 1.5℃ 목표 달성에는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지난해 COP 29에서 합의된 연간 1조 3,000억 달러 목표 달성을 위한 ' 바쿠-벨렝 로드맵'이 제시될 예정이다. 2035년까지 개도국을 위해 연간 최소 300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는 데 합의를 시도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행보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변화를 '사기'라고 주장하며, 2기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또 다시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의 공식 탈퇴는 내년 1월 이뤄질 예정이지만, 미국은 이번 COP 30에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글로벌 기후 리더십이 어떤 식으로 재편될 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최국 브라질은 열대우림 보존 기금에 자체적으로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번 COP30에서 선진국과 중국으로부터 추가 기여금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2035년 NDC 목표(2018년 대비 50~60% 혹은 53~50% 감축안 중 택일)를 확정해 COP30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61% 이상 감축 목표에는 미치지 못해 '기후 악당'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COP 회의는 인류를 안전하게 이끌 조타실 기후협약 COP는 기후 변화라는 실존적 위협에 맞서는 데 필수적인 국제 회의체이지만, 매년 성과 부족과 '그린워싱' 비판, 그리고 화석연료 업계의 영향력 증대 등으로 인해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30년이 넘는 COP 역사는 만장일치 기반의 의사결정 구조와 복잡한 지정학적 이해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진통을 겪어왔다. 화석연료 감축, 기후 재원 마련, 손실과 피해 보상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싼 협상과 타협은 매년 폐막일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OP 회의는 기후 위기 담론을 형성하고, 글로벌 기후 행동의 방향을 설정하며, 국가 간 협력과 신뢰 구축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그 중요성은 갈수록 극심해지는 기후위기 만큼이나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인류가 기후 위기를 헤쳐 나가는 길고도 먼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고 보면, COP는 그 항로를 논의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조타실 역할을 앞으로도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강찬수의 기후신호등] 지구, 한계선을 넘어서고 있다

2025년 지구는 더 이상 '안전한 행성'이 아니다. 이기적인 인류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지구 시스템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국제 과학 프로젝트 '플래닛 헬스 체크 2025(Planetary Health Check 2025)'에 따르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을 유지하는 9개의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 PB) 가운데 7개가 이미 안전범위를 넘어섰다. 특히, '해양 산성화(ocean acidification)' 항목이 처음으로 안전지대를 벗어났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막아주던 바다 생태계의 완충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고, 지구 시스템이 '고위험 지대(high-risk zone)'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구의 건강검진': 9개 행성 경계 '행성 경계' 개념은 스웨덴 스톡홀름 복원력센터의 요한 록스트룀 등이 지난 2009년 제시한 프레임워크다. 지구가 스스로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운영공간(safe operating space)을 의미한다. 이 경계를 넘어서면, 지구 시스템은 인간이 경험한 적 없는 불안정 상태로 진입해 회복이 어려운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행성 경계는 9개 항목에 걸쳐 평가를 해왔다. 지구 건강을 체크하는 검진 항목이 9개라는 의미다. '플래닛 헬스체크 2050' 평가에 따르면, 이 9개 가운데 7개가 이미 안전범위를 벗어났다.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성층권 오존층과 대기 에어로졸 부하(미세먼지 오염) 두 항목뿐이다. 즉, 지구는 이미 '위험 증가 지대(zone of increasing risk)'의 상한선에 서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해양 산성화 문제다. 해양 산성화는 보이지 않는 '붕괴의 신호'다. 지금까지 바다는 인류의 최대 완충지였다. 산업화 이후 인류가 배출한 CO₂의 약 4분의 1이 바다에 흡수돼 지구 온난화를 늦춰왔다. 그러나 그 대가로 바닷물의 산성도가 빠르게 높아졌다(산성도를 나타내는 pH 값 자체는 낮아짐). 지표로 사용되는 아라고나이트 포화도(Ω)는 1750년 이전 수준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안전하지만, 최근 관측값은 2.84로 떨어지며 안전경계(2.86)를 공식적으로 밑돌았다. 아라고나이트 포화도(Ω)는 바닷물 속에 있는 탄산칼슘이 얼마나 잘 녹거나 침전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값이 높을수록 산호나 조개껍질 같은 해양 생물이 껍질과 골격을 만드는 데 유리하고, 값이 낮아지면 이런 생물들이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산호, 조개류, 플랑크톤 등 탄산칼슘 기반 생명체의 생존을 직접 위협한다. 해양 생태계 붕괴는 곧 탄소 순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행성 경계 보고서 공동저자인 요한 록스트룀은 “바다는 더 이상 우리의 방패가 아니다. 스스로 산성화되고 있으며, 그 영향은 대기·기후·식량체계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티핑 포인트':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의 경고 행성 경계 9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그 뒤에는 훨씬 더 많은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지구의 수많은 기후환경 요소가 갈림길에 처했다. 바로 티핑포인트에 있다는 얘기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란 작은 변화가 시스템 전체의 급격한 전환을 일으키는 임계점을 의미한다. 최근 독일 뮌헨 공과대학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등이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그린란드 빙상(Greenland ice sheet), 대서양 자오선 역전순환(AMOC), 아마존 열대우림, 남미 몬순 등 지구 시스템의 핵심 요소들이 불안정해지고 있고, 열대 산호초 등 일부는 이미 임계점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들 요소가 서로 연결된 '티핑 연쇄(cascade)'를 형성하기 때문에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시스템도 연쇄적으로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그린란드의 빙상 손실은 해수의 염분과 밀도를 바꾸어 AMOC를 약화시키고, 그 결과 아마존의 강수 패턴이 무너져 열대우림이 사바나로 바뀔 수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수 세기가 아니라 수십 년 안에 현실화될 수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글로벌 시스템연구소(GSI)와 영국 엑서터대학, 스톡홀름 복원력 센터 등에서도 '글로벌 티핑 포인트 보고서 2025'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에서도 지구가 위험한 기후 티핑 포인트에 근접하거나 이미 도달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파국적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전례 없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티핑 포인트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1.5°C를 초과하는 전 지구적 온도 오버슈트(overshoot)의 규모와 지속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전 세계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넷 제로(net zero)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핑 포인트 위험을 막으려면 전 세계 정책 입안자들의 전례 없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중 행성 위기'의 실체: 기후·생물·오염의 연결고리 지금의 기후환경 위기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자연 생태계를 훼손한 인류 탓에 벌어진 일이다. 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환경오염.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위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플라스틱 오염이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연구팀은 지난 9월 '환경과학저널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플라스틱 산업이 이 삼중 위기에 모두 개입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의 90% 이상이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며, 플라스틱 산업만으로도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5%를 차지한다. 플라스틱의 미세입자는 해양 산성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플라스틱 속 화학첨가물은 '신규 화학물질'의 안전 경계를 넘어서 지구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 바로 행성 경계 9개 항목 중 하나다. 이처럼 단일한 기후 대응책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며, 에너지·소재·소비·순환의 전환이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이는 기후환경 위기가 서로 얽혀 있는 만큼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환경신데믹(eco-syndemic)'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도넛 경제학': 경계를 지키면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길 이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실낱 같은 희망은 남아있다. 바로 영국 옥스퍼드대 케이트 라워스가 지난 2012년 처음 제안한 '도넛 경제학(doughnut economics)'이다. 지나친 개발은 행성 한계를 초과하고 인류의 자멸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인류 복지를 위해 최소한의 개발은 필요하기 때문에 과도한 개발과 최소한의 개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 그 범위 안에서 경제활동을 하자는 것이 도넛 경제학의 핵심 내용이다. 옥스퍼드대 도넛 경제학 행동연구소 소속의 라워스와 앤드루 패닝은 도넛 경제학의 핵심 내용을 10월 초 '네이처(Nature)'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도넛 모형을 이용해 '인류의 사회적 기초(social foundation)'와 '지구의 생태적 한계(ecological ceiling)'를 동시에 측정한 연구 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이 프레임워크에서 도넛의 안쪽 구멍은 인간의 결핍(빈곤·교육·건강 등)을, 바깥 테두리는 행성 한계의 초과(탄소배출·토지사용·해양산성화 등)를 의미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란 이 두 경계 사이, 즉 '도넛의 알맹이' 안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라워스의 네이처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로 늘어나는 동안, 행성 경계 초과는 더 심해졌고 인간의 결핍은 여전히 30억 명을 덮고 있다. 가장 부유한 20%의 국가가 생태 초과의 40%를 유발하고, 가장 가난한 40%의 국가는 사회적 결핍의 60%를 떠안는 구조다. 라워스는 “지속 가능한 번영은 더 많은 성장(growth)이 아니라 더 나은 분배(distribution)와 재생(regeneration)으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했다. 행성 경계를 지키면서 인간의 삶을 유지하려면 경제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는 GDP 성장에 의존하는 기존의 선형 경제 대신, 자연의 순환 구조를 모방해 자원과 에너지가 다시 사회와 생태로 돌아오는 구조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화석연료 산업의 단계적 퇴출 ▶플라스틱 및 화학물질의 순환 체계 구축 ▶지역 단위의 생태복원·녹색 일자리 전환 ▶사회적 기초를 보장하는 복지·교육 투자 확대가 포함된다. 이는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지구 시스템의 안정성과 인류 복지를 함께 회복하는 경제 패러다임 전환이다. ◇티핑포인트에 이르지 않는 선택을 지구는 지금 '회복 가능한 선'을 향해 마지막 균형을 잡고 있다. 빙상과 산호, 아마존 숲과 대서양 해류, 토양과 대기—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전체 시스템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보고서와 논문을 발표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는 이미 위험 지대에 들어섰지만, 아직 되돌릴 여지는 있다"고 말한다. 티핑포인트에 이르지 않도록 선택하고 서둘러야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도넛 경제학 행동연구소의 라워스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경제 정책은 인류를 도넛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해 왔다"면서 “경제의 이론과 실천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촉구하는 탈성장 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적으로 부유한 계층이 생태적 초과에 불균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빈곤에서 벗어나야 할 계층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고려해서 각국은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녹색전환연구소와 그린피스, 도넛집(集) 등의 단체를 중심으로 도넛 경제학의 개념을 현장에 접목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환경과 생태계 훼손을 피하면서도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찾으려는 시도다. 한편 '글로벌 티핑 포인트 보고서 2025'는 사회와 기술의 '긍정적인 티핑 포인트'를 촉발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발전과 전기차 보급,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등이 자기증폭적인 변화, 연쇄적인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다면 지구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생분해성 플라스틱, ‘환경 구원투수’인가 ‘또 다른 재앙’인가?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의 대안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biodegradable plastics, BP)이 급부상하고 있다. BP는 보통 미생물 활동을 통해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물(H₂O), 바이오매스로 완전히 분해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말한다. 제조사와 많은 소비자는 BP가 기존 플라스틱의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해 줄 '녹색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에 따라 음식물 포장재나 일회용품, 농업용 멀칭 필름 등 환경 유출 위험이 높은 분야에서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BP가 과연 플라스틱 오염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과학계의 비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표된 관련 연구를 종합하면, BP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특히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나노플라스틱(MNPs) 문제, 독성물질 배출,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관리의 어려움 등 여러 면에서 심각한 도전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분해(biodegradable)'라는 함정 BP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제품에 '생분해성'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든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오해는 소비자들이 특정 제품의 과도한 소비를 장려하고, '생분해성'이라고 표시된 제품을 무단으로 투기하는 행위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생분해가 일어나려면 환경 조건이 맞아야 한다. 생분해는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세균·곰팡이 등)의 효소 작용을 통해 고분자가 분해되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생분해 속도는 산소 함량, 주변 온도, 산성도(pH), 수분 함량, 미생물의 종류와 풍부도, 고분자 특성(결정성·분자량)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대표적인 BP인 폴리젖산(polylactic acid, PLA)의 분해는 산업 퇴비화 시설의 조건(높은 온도, 높은 습도, 충분한 산소)을 전제로 한다. 환경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온도에서는 토양에 버려질 경우 분해가 되지 않아 토양을 오염시킨다. 반면, 폴리하이드록시알카노에이트(polyhydroxyalkanoates, PHA)와 전분 블렌드(starch blends)는 산업 퇴비화 조건에서는 물론 토양이나 해양 환경 등 다양한 환경에서 분해 가능성을 보인다. 그렇지만 PHA나 전분 블렌드조차도 해양 환경에서는 분해가 느리거나 제한적일 수 있다. 실제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해양 환경에서의 분해율(중앙값)은 전분 블렌드가 43%, PHA가 9.0%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PHA는 토양 환경에서 분해 잠재력(중앙값 38%)을 보였으나, 해양 환경에서는 낮은 온도와 낮은 용존산소 농도로 인해 분해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말레이시아 파항대학의 타오픽 모스후드 교수 연구팀은 2022년 '녹색 및 지속가능 화학 분야 최신 연구(Current Research in Green and Sustainable Chemistr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부분의 BP는 특정 조건에서만 분해되며, 자연 상태에서는 수십 년간 잔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 시스템에 섞여 들어간다면 BP가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재활용 시스템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물질이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에 섞여 들어가면, 재활용된 물질의 특성이 바뀌어 제품 불량을 초래할 수 있다. PLA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 PET) 재활용 공정에 섞여 들어가더라도 재활용된 PET의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PLA 오염 수준이 0.1% 미만이어야 한다. 폴리프로필렌(PP) 재활용에서는 5% 미만으로 유지해야 한다. BP는 재활용될 수 있지만, 기존 플라스틱과는 별도의 흐름으로 분리돼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는 BP를 기존 플라스틱과 분리해 수거할 수 있는 전용 인프라가 미흡하다. 이로 인해 BP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매립 또는 소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P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재활용 및 퇴비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품 회수 및 재활용에 대한 생산자 책임제도(EPR)를 도입하는 정책적 책임이 필수적이다. ◇분해돼도 문제: 미세 플라스틱 및 독성 물질 배출 BP가 기존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덜 유해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성물이 생태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BP는 특정 환경에서 기존 플라스틱보다 더 빠르게 쪼개져서 미세 플라스틱(MNPs)과 나노 플라스틱(NPs)을 생성한다. 중국 칭화대와 시안교통대 연구팀은 2020년 '환경 오염(Environmental Pollution)'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자외선이 내리쬐는 담수 및 해수 환경에서 생분해성인 폴리부틸렌 아디페이트 테레프탈레이트(polybutylene adipate terephthalate, PBAT)의 미세·나노플라스틱 생성률이 비(非)생분해성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보다 2.6배에 이르렀다고 보고했다. 이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노화(aging) 과정에서 표면 균열과 구멍이 생겨 더 빨리 붕괴하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미세·나노 플라스틱은 기존 미세·나노 플라스틱과 유사하거나 더 큰 독성을 나타내고, 생태계에 축적될 가능성도 있다. PLA 및 PBS(polybutylene succinate)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조류 일종인 클로렐라(Chlorella vulgaris)의 성장을 억제했는데, 성장 억제 효과가 기존 폴리에틸렌(PE) 및 폴리아미드(PA, 나일론)와 비슷했다(PLA는 48%, PE 는 47%). PLA 미세플라스틱은 에쁜꼬마선충(C. elegans)의 번식 능력을 감소시키고 DNA 및 생식선 발달에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노화된 BP는 표면에 산소(O)를 함유한 작용기가 늘어나게 돼 기존 플라스틱보다 오염물질을 흡착하는 능력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생분해성 미세·나노 플라스틱이 유해물질을 생물체로 운반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PLA 미세 플라스틱은 구리·납 이온을 흡착해 메기 조직에 축적됐고, 성장 억제와 면역 억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BP의 또 다른 위협은 단량체(monomers)와 올리고머(oligomers, 2~40개의 단량체가 붙어 있는 형태)다. BP는 분해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분해 중간 생성물을 환경에 고농도로 방출할 수 있다. 올리고머와 단량체는 분자량이 작아 세포막을 더 쉽게 통과해 조직과 장기로 이동할 수 있다. PCL가 분해된 올리고머는 담수 미생물과 해양 조류·포유류 세포에 대해 PCL 입자 자체보다 더 큰 독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됐다. BP도 기존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기능성 향상을 위해 안정제·가소제·색소 등첨가제를 사용한다. 첨가제가 환경에 용출되면 유해성을 유발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과 폐기물 처리의 딜레마 BP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 즉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CF)은 원료 조달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로 파악할 수 있다. 바이오매스에서 유래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예: PLA)은 원료 조달 단계에서 CO₂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이는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PE, PP)이 원료 단계에서 탄소 흡수가 없는 것과 대비된다. 생산 단계는 일반적으로 모든 플라스틱 제품의 전 과정(life cycle) 중 탄소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과정이다. PLA와 같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모노머 생산과 중합 공정에 천연가스·전기 등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PBAT는 부분적으로 석유 기반 원료를 사용하고 생산 공정이 복잡해 탄소 배출량이 높은 편이다. 어쨌든 생산단계까지 PLA 제품의 총 탄소 배출량은 PP 플라스틱 제품보다 61.43%~73.75% 낮아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폐기 단계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바로 온실효과가 큰 메탄(CH₄) 배출 가능성이다. 매립지(landfill) 땅속에서 산소가 없는 혐기성 조건에서 분해될 때 메탄이 발생하는데, 메탄은 CO₂보다 지구 온난화 지수(GWP)가 20배가 넘는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매립될 경우, 기존 플라스틱보다 더 심각한 기후 변화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업용 멀칭 필름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주요 응용 분야 중 하나다. LCA 기반 연구에 따르면, 생분해성 멀칭 필름은 기존 플라스틱 멀칭 필름보다 탄소 발자국이 낮다. 이는 생분해 멀칭 필름의 생산과정에서 화석연료 소비가 적고, 폐기 때 수거할 필요가 없어 인력 투입 비용과 관련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용 필름 사용이 늘면 그 자체가 토양 환경을 변화시켜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킨다. 필름 멀칭 처리는 토양의 온도와 수분을 높여 미생물 활동을 촉진하고, 이는 강력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N₂O) 배출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물론 생분해성 멀칭 필름은 기존 플라스틱 필름보다 N₂O 배출량을 낮출 수 있지만, 필름을 남용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비싼 가격도 장벽으로 작용 BP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높은 생산 비용이다. 현재 BP의 가격은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의 3~10배에 이르고 이로 인해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원료 혁신, 생산 공정 최적화 및 생산 규모 확대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BP는 불투명한 관리 시스템과 환경적 한계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의 투명성, 표준화된 테스트 방법론의 확립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연구가 표준화된 테스트 방법(standard test method)을 따르지 않거나, 동일한 환경(예: 퇴비화)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표준을 사용하고 있어 결과의 비교 가능성이 떨어진다. 또, 대부분의 BP의 분해도 테스트는 실험실 조건에서 최적화된 조건으로 진행되고, 실제 환경 조건(field conditions)에서 이뤄지는 테스트는 부족한 실정이다. 더욱이 순수 고분자 상태로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아, 첨가제까지 포함된 실제 최종 소비자 제품의 분해도를 정확히 반영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분해 연구는 반드시 생태독성 연구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BP도 마찬가지다.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나노 플라스틱, 올리고머와 단량체 등 분해 중간 생성물의 독성을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근본 해결책으로 기대하긴 어려워 BP가 기존 플라스틱의 대안으로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PLA와 PHA와 같은 제품은 환경 오염을 줄이고 에너지를 회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BP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고, 기존 플라스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BP의 도입이 마치 환경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처럼 오인되고, 무단 투기 행위를 장려하는 쪽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생분해성 제품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부적절하게 폐기된다면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명확한 라벨링 시스템을 개발하는 한편, 소비자가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고, 사용한 플라스틱을 올바르게 폐기하도록 행동 변화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결국, BP는 문제 해결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BP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소재 개발과 함께 폐기물 분류 기술에 대한 투자, BP와 음식물쓰레기 등 유기 폐기물 처리 시설의 확충,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환경적 책임 의식 향상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강찬수의 기후 신호등] 중국, 새로운 글로벌 기후 리더로 부상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글로벌 리더십의 지각 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오랫동안 기후 행동을 주도해 온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정치적·경제적 난관에 부딪혀 정책의 후퇴와 정체를 겪는 사이,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제시하며 새로운 '녹색 리더십'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으로 향후 전 세계 기후 대응 체제의 방향을 결정지을 중대한 분기점에 국제 사회에 서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미국: “녹색 사기극" 주장에 정책 기반 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은 글로벌 기후 대응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전 세계에 저질러진 최대의 사기극(green scam)"이라고 비판하며, 유럽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정책 때문에 “파멸의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 때 복귀했던 파리기후협정에서 다시 탈퇴하는 행정명령을 재집권 직후 추진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제출했던 미국의 2035년 국가 감축목표(NDC)는 현재 무효화된 상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화석연료 사용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최근 미국 환경보호청(EPA)·에너지부·내무부는 석탄 채굴 및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를 이유로 퇴역 직전이거나 퇴역 예정인 석탄발전소를 개조·재가동하는 데 3억50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6억2500만 달러(약 8800억원)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내무부는 또 1300만 에이커(5만2600㎢ ) 이상의 연방 토지를 석탄 채굴에 개방하고,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행정부 관리들은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배터리와 결합하더라도 불안정하다"며 “AI 및 산업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석탄을 포함한 기저전력원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책 변화의 결과로 2005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5년 일시적으로 반전돼 총 배출량이 1%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후퇴는 단순한 방향 전환을 넘어, 기후 정책의 기반 자체를 해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EPA는 오염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던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GHGRP)'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이 배출량을 추적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인 '근간(backbone)' 역할을 해온 제도인데, 이것이 중단되면 정부의 기후정책 수립 역량이 심각하게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민사회단체(NGO)나 민간 부문(예: Climate TRACE, RMI)이 이 공백을 메우려 노력하고 있지만, EPA의 법적 강제력과 데이터 표준화, 중앙 저장소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연방 차원의 퇴보는 넷제로(온실가스 순 배출 제로)를 선언한 나라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에는 넷제로를 공약한 나라를 다 합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3% 수준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77%에 머물게 됐다. ◇ 유럽연합(EU): 내부 분열로 흔들리는 리더십 미국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손을 떼는 동안, 가장 헌신적으로 기후 행동을 이끌던 EU 역시 내부적 난관에 봉착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EU는 2022년 기준으로 1990년 대비 배출량을 37% 감축하는 등 선진국 중 가장 빠른 탈탄소화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감축 목표를 두고 회원국 간 이견이 커지며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은 5년마다 새로운 NDC를 제출해야 하지만, EU는 회원국 간 이견으로 9월 말 유엔 마감 시한을 넘겼다. 환경장관들은 목표 수준에서 합의에 실패했고, 결국 공식 NDC 대신 '의향 성명서(statement of intent)'를 채택해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66.25~72.5% 감축'이라는 범위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덴마크·스페인 등은 2040년까지 90% 감축을 주장했으나, 헝가리·체코·폴란드 등은 “산업 경쟁력을 해친다"며 반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무역 긴장으로 EU의 관심이 국방과 산업 쪽으로 옮겨가면서 기후 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EU의 이번 타협이 “위로상(consolation prize)"에 불과하며, “EU가 기후 리더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비판한다. EU는 제30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이전에 공식 NDC를 제출하기로 약속했지만, 리더십의 타격은 이미 불가피해졌다.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영국의 경우도 기후 리더십이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야당인 보수당의 케미 바데녹 대표는 이달 초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 폐지를 공약했다. 이 법은 2008년 초당적 합의 아래 만들어져 영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50% 줄이고, 안정적인 정책 틀과 독립적 감시기구를 통해 장기적 기후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해왔다. 법이 폐지될 경우 영국의 기후 정책에 대한 국내외 신뢰를 훼손하고, 재생에너지 투자와 국민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 중국: '녹색 기술 초강대국'으로 부상 미국이 책임을 외면하고 EU가 분열로 흔들리는 가운데, 세계 최대 배출국인 중국(전 세계 배출의 약 1/3)은 새로운 감축 목표를 제시하며 '녹색 리더십'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딜 24일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35년까지 중국 경제 전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점 대비 7~1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CO₂뿐 아니라 메탄·아산화질소 등 모든 온실가스를 포괄한 최초의 절대적 감축 목표다. 이전까지 중국은 “2030년 이전 배출 정점 도달"만을 약속했다. 이번 목표는 중국의 '정점 이후(post-peaking)' 계획을 공식화한 것으로, 중국의 배출량 감소는 곧 전 세계 배출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 주석은 비(非)화석연료 소비 비중을 2035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풍력·태양광 발전 용량을 총 3600GW(기가와트)로 늘리며, 신에너지 자동차를 신규 판매의 주류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7~10% 감축은 파리기후협정의 1.5℃ 목표(2035년까지 최소 30% 감축 필요)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전략을 “낮게 약속하고 과도하게 이행(under-promise, over-deliver)"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중국은 목표를 '정치적 약속'으로 간주하며 실제 이행을 중시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계를 갖고 있다. 실제로 2030년까지 1200GW 달성을 목표로 했던 풍력·태양광 발전 용량은 이미 6년 앞당겨 달성한 바 있다. 영국 리즈대학 피어스 포스터 교수는 “중국이 2035년까지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 절대량은 영국 3개국이 완전히 탈탄소화하는 규모에 맞먹는다"고 높이 평가했다. 중국은 오염 배출국이면서도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등 청정 기술의 세계 선도국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미국의 이탈에도 국제사회는 에너지 전환을 지속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 글로벌 기후 대응의 새로운 동력 미국과 EU의 정책 불안정 속에서도, 글로벌 기후 행동은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후퇴로 전 세계 GDP 기준 넷제로 목표를 제시한 국가 범위는 줄었지만, 미국 내 주(州) 단위 목표를 포함하면 다시 83%로 늘어난다. 현재 미국 19개 주가 넷제로를 약속하고 있고, 넷제로를 공약하는 미국 기업 숫자도 증가 추세다. 넷제로는 이제 정치 논쟁이 아니라 미래 시장과 투자,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경쟁의 영역'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전 세계 GDP의 77%를 차지하는 국가들이 넷제로 목표를 유지하고 있고, 글로벌 상장기업 대부분이 이를 계획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과학적 요구에 못 미친다. 현재 각국이 제출한 NDC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를 1.5℃ 이내로 억제하기 어렵다. 특히 기후 목표와 화석연료 생산 계획 사이의 불일치가 심각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30년 예상되는 화석연료 생산량은 1.5℃ 목표치보다 120% 이상 많고, 2℃ 목표와 비교해도 77%를 초과한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20대 생산국 중 17개국이 2030년까지 생산 확대를 계획 중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의 85%를 차지하는 G20은 이 격차를 해소할 핵심 주체로 꼽히고 있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글로벌 거버넌스 전반에 대해 정책 제언을 담당하는 싱크탱크 네트워인 '씽크20(Think20)' 그룹은 기후 대응과 관련해 긴급 과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기후 적응자금 확대 및 재정 개혁 ▶핵심 광물 공급망의 공정·포괄적 거버넌스 구축 ▶모든 사회계층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추진 ▶생물다양성·기후·개발을 통합하는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확립 등이 포함됐다. ◇ 불안한 리더십 속 중국의 '이행 능력'에 주목 지금의 글로벌 기후 리더십은 불안정하고 복잡한 전환기를 겪고 있다. 미국은 국제협력을 외면하며 후퇴하고, EU는 내부 분열로 리더십 공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막강한 청정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녹색 리더'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비록 중국의 목표가 과학계의 권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의 목표 설정 방식(이행 가능성을 중시하는 하향식 정치문화)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는 “약속한 그 이상을 이행할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기도 하다. 결국 향후 글로벌 기후 대응의 향방은 선진국의 정치적 의지(특히 미국의 복귀 여부와 EU의 단합) 그리고 중국의 감축 속도라는 두 축에 달려 있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감축 목표를 '최대치(ceiling)'가 아닌 '최저선(floor)'으로 삼고 이를 초과 달성하며, 다른 국가들이 화석연료의 '생산 격차'를 좁히는 데 동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헬싱키에 위치한 싱크탱크인 에너지 및 청정 대기 연구 센터(CREA)의 중국 분석가 벨린다 셰페는 “중국의 배출량이 감소하면 전 세계 배출량도 감소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덕분에 인류는 1.5℃ 목표를 향한 좁고 도전적인 길을 계속 갈 수 있고,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런 기대가 이뤄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 추세를 나타내는 그래프 모양을 만드는 데 중국이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의 주도권 역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국이 쥐게 됐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강찬수의 기후 신호등] 매일 겪는 기후 위기: 한반도의 현실과 해법은

지난 19일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으로 발간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한국이 직면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 5년간 축적된 연구 성과(2000여 편의 논문 등)을 종합해 한반도의 기후변화 진행 상황, 현재의 충격, 미래 전망, 그리고 정책적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반도는 지구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기후 재난이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는 것,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 위험 수위 돌파 한반도에서 최근 10년(2013~2022) 동안 이산화탄소(CO2) 농도 증가율은 연평균 2.5ppm으로 그 이전 10년(2003~2012)의 연평균 증가율 2.2ppm보다 빠른 증가 추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동안 메탄과 아산화질소는 각각 11ppb, 1.1ppb의 연평균 농도 증가율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24년 안면도와 울릉도, 제주(고산리) 기후관측소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428~431ppm이었다. 이는 같은 해 전 지구 평균보다 5~8ppm 높다. 매년 약 3.4ppm씩 증가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산업화 이전 대비 2℃ 상승의 한계선인 450ppm까지 불과 6~7년밖에 남지 않았다. 메탄도 심각하다. 안면도에서 관측된 메탄 농도는 2030ppb로, 전 세계 평균보다 약 100ppb 높았다. 아산화질소, 육불화황 등 다른 온실가스도 모두 전 지구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들 가스는 각각 수십 년에서 수천 년 동안 대기에 남아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한다. ◇한반도는 얼마나 더워졌나 기온 상승은 기후위기의 가장 직관적인 지표다. 1912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 지표 기온은 10년마다 0.21℃씩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0.15℃/10년)보다 40% 이상 빠른 속도다. 100년 넘게 쌓인 온난화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반도는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8℃ 이상 더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지구 평균 상승폭(1.2℃ 안팎)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봄과 겨울철의 온난화가 두드러진다. 서울의 겨울철 평균기온은 100년 전보다 3℃ 가까이 상승했고, 눈 내리는 날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강원 산간 지역에서조차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이 잦아졌고, 겨울 스포츠 산업과 산림 생태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 미래 전망: 지금보다 7℃ 더 뜨거워질 수도 보고서는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AR6)기반의 공유사회경제경로(SSP) 시나리오를 적용해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단기(2021~2040년 이전) 및 장기(2081~2100년) 기후 전망을 제시했다. 온실기체 고배출 시나리오(SSP5-8.5)에서 전 세계 평균 기온이 단기적으로 1.5°C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중간 및 높은 배출 시나리오(SSP2-4.5, SSP3-7.0)에서도 1.5°C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2081-2100년 장기적 전망에서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1.5°C를 초과해 SSP1-2.6에서 1.8°C, SSP2-4.5에서 2.7°C, SSP3-7.0에서 3.6°C, SSP5-8.5에서는 4.4°C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특히 SSP5-8.5 시나리오 하에서는 2100년까지 한반도 기온이 최대 7℃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기온이 7℃ 상승한다면, 폭염 일수는 현재보다 9배, 열대야는 21배 늘어난다. 5일 단위 최대 강수량은 31% 증가해, 서울 같은 대도시는 매년 침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바다의 경고: 뜨거워지고 높아지는 해역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의 변화는 육지 못지않게 심각하다. 1968~2023년 동안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1.4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0.7℃)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다. 특히 동해에서는 표층 수온이 1968년부터 2023년까지 약 1.9℃ 상승했고, 중층 수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울릉분지에서는 최근 18년간 중층 수온이 1.075℃ 상승하는 등 심층 및 중층 해수의 열, 염분, 산소 특성 변화가 관측됐다. 해양 극한 현상도 증가 추세에 있었다. 해양열파는 해수온이 과거 평균 대비 매우 높게 오르는 현상으로, 국내 해역에서 특히 자주,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 1982~2020년 동안 동해는 전 세계 해역 중 해양열파 누적강도가 세 번째로 높았으며, 여름철 발생일수는 다른 계절보다 65% 이상 많았다. 해수면 상승도 빠르다. 동해 일부 해역은 연평균 7㎜ 이상 해수면 상승을 기록하며, 세계 평균(3.7㎜)보다 거의 두 배 높았다. 2100년까지 해수면은 최대 82㎝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에 해당하는 연안 지역이 침수 위기에 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천·군산·부산 등 항만과 어촌 마을은 장기적으로 거주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일상화된 극한기상 기후위기는 평균 기온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체감하는 극한 날씨로 나타난다. 2025년 여름은 관측 이래 가장 높은 평균기온을 보였다. 기후 보고서가 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기온 상승이 가파르고 극한호우도 심해지고 있다. ▶폭염: 최근 10년간(2015~2024년) 연평균 폭염 일수는 15.6일로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0년대 평균(7일)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2018년과 2023년 여름에는 일부 지역에서 체감온도 40℃를 넘는 날이 잇달아 발생했다. ▶열대야: 열대야(밤 최저기온 25℃ 이상)는 폭염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1970년대 연평균 2.5일에서 최근 10년간 20일 이상으로 늘었다. ▶집중호우: 강수 패턴이 변해 6월 강수량은 줄고, 7~8월에는 국지성 호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장마 시작일과 2차 장마 시작일이 모두 앞당겨지면서 여름철 평균 강수량과 호우 빈도가 증가했다. 장마가 물러나는 날은 2000~2014년의 기간 동안 약 10일 늦춰지는 경향이 관찰됐다. 2020년 충청지역 기록적 폭우, 2022년 서울 강남 도심 침수, 2023년 경북 지역 산사태는 모두 이 같은 흐름의 단면이다. 2022년 수도권에서는 시간당 141.5㎜의 기록적인 폭우가 발생했다. ▶태풍: 북태평양의 폭풍 수는 최근 증가하며 생애 주기가 길어졌고 더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반도에 도달하는 태풍은 과거보다 강력해졌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태풍이 세력을 유지한 채 북상하기 때문이다. 2020년 '하이선', 2022년 '힌남노'가 대표적 사례다. ▶가뭄: 여름철 폭염과 겹치면서 '폭염형 급성가뭄(돌발가뭄)'이 늘고 있다. 2022년 제주도의 경우 50일 넘게 비가 내리지 않아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었다. 2022년 수도권에서 극한강수현상이 발생하는 동안 남부 지방은 역대 최악의 기상 가뭄을 겪는 등 지역 간 차이가 두드러졌다. ▶한파: 극한저온현상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1980년대 중후반 이후 감소하다가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해 해빙 감소, 음의 북극진동 발달, 성층권 극와도 순환 약화, 우랄 블로킹의 빈도 증가 등에 기인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1973~2023년 한반도 한파일수는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후위기의 사회·생태적 충격 ▶수자원: 지난 40년간 제주 지역 연강수량은 206㎜ 증가했지만, 충남은 120㎜ 감소했다.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며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늘고 있다. 물 부족에 있어서는 한강권의 임진강 하류와 주변 낙동강권역이 위험한 것으로 분석됐다. ▶생태계: 일찍 개화하는 식물 종의 개화 시기가 더 빨라질 것으로 분석됐다. 아고산 침엽수 구상나무는 집단 고사 중이며, 남방계 나비와 야생벌은 북상하고 있다. 반대로 양서류와 민물고기는 서식지를 잃고 있다. 외래종인 뉴트리아, 붉은불개미, 작은입배스의 서식지가 확대돼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산림: 지난 40년간 매해 약 400㏊의 산사태가 발생했고, 발생면적과 피해액이 지속해서 증가했다. 산사태 발생 원인으로는 강우, 지형, 지질, 식생 등의 자연적 요인과 토지이용, 산림관리, 벌목 등의 인위적 요인이 존재한다. 산불은 매해 약 4004㏊의 피해가 발생했고, 2020년대 피해면적이 2010년대보다 10배 증가했다. 산불 증가의 원인은 사회경제적 원인과 평균기온 증가와 습도 감소 등으로 나타났다. ▶농업: 벼의 출수 한계기가 늦어지고 보리의 유수형성기가 빨라지는 등 이상기상의 피해가 발견됐다. 채소와 과수의 수량성과 품질도 낮아지고 있다. 사과 재배지는 북상하거나 축소되고 있다. 사과 최대 산지인 충북 일부 지역은 앞으로 재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밭작물의 생산성과 품질도 이상기상으로 감소세다. 열대거세미나방 등 외래 병해충도 확산 중이다. ▶수산업: 수온 상승으로 명태는 거의 사라졌고, 오징어·고등어 어획량도 감소 중이다. 김·다시마 양식장은 고수온 피해로 막대한 경제 손실을 입고 있다. SSP5-8.5 시나리오 하에서의 어획량 변화는 최대 2923억원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양식업 중에서는 멍게와 해조류가 높은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보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는 2018년 여름 한 해에만 4000명 이상 발생했다. 대기오염과 알레르기 질환, 감염병 확산도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 말라리아 국내 연평균 환자 수는 2016~2019년 310명에서 2020~2023년 370명으로 늘었고, 특히 2023년에는 673명으로 급증했다. ◇결론: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한국은 이미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 가뭄은 더 이상 '이례적 현상'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됐다. 경제와 안전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는 분명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적응 전략을 강화한다면 피해를 완화할 수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기후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현재이자, 우리의 미래다. 이제는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가 행동해야 할 때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19세기 극심한 가뭄이 주는 경고…‘기후공학’ 도입에 신중하라

200여 년 전 조선은 유례없는 대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 끔찍한 재앙의 뒤에는 다름 아닌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의 거대한 힘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늘날 인류는 기후 변화라는 또 다른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과거의 화산 폭발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려는 '지구공학' 혹은 '기후공학'(Geoengineering)기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과거의 비극은 이처럼 지금의 기후 위기에 대한 깊은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 대응 만큼은 과학적이고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역사의 경고: 소빙하기 화산 폭발과 조선의 비극 소빙하기(Little Ice Age, 약 1350~1850년)의 마지막 시기였던 1809년과 1814년 조선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두 차례의 대기근에 시달렸다. 특히 1809년의 미지의 화산 폭발과 1815년 4월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 그리고 그 사이의 세 차례 소규모 화산 폭발(1812년 카리브해 세인트빈센트섬의 라수프리에르, 1813년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스와노세지마, 1814년 필리핀 루손섬 마욘 화산)은 지구 기후를 심각하게 교란했다. 특히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은 화산폭발지수(VEI)가 7에 이르는 엄청난 폭발이었다. VEI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과 스미스소니언 연구소가 제안한 화산 분출의 규모를 나타내는 지수다. 0에서 8까지 등급으로 나뉘며, 분출된 화산재·화산쇄설물의 양, 기둥 높이, 폭발 강도 등을 종합해 결정한다. 탐보라 화산 폭발은 인류 역사상 기록된 가장 큰 폭발 가운데 하나로, 대기 중에 엄청난 양의 황 에어로졸을 방출해 '여름이 사라진 해(1816)'라는 기후 재앙을 일으켰다. 탐보라를 포함한 연쇄적인 화산 폭발은 두꺼운 화산 먼지와 화산재를 성층권으로 뿜어 올려, 지구 곳곳에 다양한 기후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몬순 기후대는 매우 건조한 여름을 보냈는데, 이는 쌀 수확량을 크게 떨어뜨려 심각한 기근으로 이어졌다. ◇다산 정약용의 기록과 조선왕조실록 등으로 본 기근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김성우 교수는 최근 국제 저널인 '과거 기후 연구 (Climate of the Past)'에 발표한 논문에서 소빙하기 마지막 시기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심각한 기근을 자세히 다뤘다. 논문에서 언급한 두 차례 기근은 순조 재위 기간(1800~1834년)과 겹치는 1809~1810년, 1814~1815년에 발생했다. 김 교수는 다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과 『경세유표(經世遺表)』,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참고로 당시 심각한 기근 상황을 정리했다. 『다산시문집』은 정약용의 전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중에서 시문집 22권을 국역서 10책(색인 1책 포함)으로 간행한 것이다. 『경세유표』는 정약용이 조선 후기의 혼란한 상황을 바로잡고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해 『서경(書經)』과 『주례(周禮)』의 이념을 근간으로 하여 조선 사회의 개혁안을 저술한 책이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1809년 여름 전라도 남서쪽 해안의 강진에서는 2월 초부터 8월 초까지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다. 가뭄이 너무 심해 대나무는 새순을 돋우지 못하고 소나무는 솔방울을 맺지 못했으며, 모든 수원(水源)이 말라 주민들은 마실 물 부족에 허덕였다. 논의 70~90%에서 벼가 시들어 말라 죽었고, 강진 전체 논 면적의 1.7~10%에서만 벼를 수확할 수 있었다. 나주를 비롯한 다른 지역과 조선 전체의 상황도 비슷했다. 6년 후인 1814년에 또 다른 극심한 가뭄이 닥쳤다. 7월 하순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보리 농사는 완전히 실패했고, 모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늦은 장마로 강변 저지대에 홍수가 발생했는가 하면, 서리가 유난히 일찍 내려 가을 농작물마저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경상도 지역의 곡물 가격 변동으로 미루어 볼 때, 1814년의 기근은 1809년보다 1.5~2배 더 심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기근으로 생지옥으로 변한 조선 사회 두 차례의 대기근은 조선 사회를 말 그대로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당시 약 1400만 명의 조선 인구 중 약 24%에 해당하는 340만 명 이상이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이질·발진티푸스·,천연두·홍역과 같은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부 지방에 피해가 집중되었으며, 강진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의 거의 30%가 목숨을 잃었다. 유배지인 강진에서 이를 겪은 다산은 “백성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고, 관청은 이주민으로 붐볐다"고 기록했다. 곡식을 구하기 위해 금과 은을 들고 시장에 가도 살 수 없었고, 겨울이 오기도 전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해적 행위와 산적이 만연했다.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이주민들 사이에서 홍역 등 전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1810년 봄 사망자수는 더 늘었다. 다산은 “길과 들판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라고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서는 집의 담이 허물어지고, 문은 뜯겨 나가고, 마당에는 쑥이 무성했다. 1809년 여름에 시작된 대기근은 1810년 6월 말 보리 수확 직전에 절정에 달했다. 유배 생활을 하던 다산은 겨와 모래를 섞은 보리죽을 먹었야 했다. 조선왕조는 3년마다 전국 인구를 조사했는데, 전라도와 경상도 등지의 초과 사망자는 1809~1810년 102만명, 1814~1815년에는 232만명이었다. 두 대기근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약 34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4.3%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후 재앙에도 불구하고 조선 조정은 농민들에게 이전 수준의 높은 세금을 강요했다. 이에 다산은 토지 개혁(정전제(井田制)) 방안을 제시했지만, 부패한 권력층의 반대와 무관심 속에서 좌절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 대기근의 충격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조선 왕조의 무능과 무책임은 왕조의 멸망과 한일합방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위험한 유혹: 기후 공학에 대한 우려 과거의 화산 폭발이 지구 기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듯이, 오늘날 일부 과학자들은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tratospheric Aerosol Injection, SAI)이라는 기후공학 기법을 통해 기후변화 영향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이는 화산 폭발이 성층권에 뿜어내는 황산염 에어로졸과 유사한 물질(주로 이산화황, SO2)을 대량으로 주입하는 방식이다. 태양에너지가 지구 표면에 도달하지 않도록 차단해 지구 기온을 낮추려는 것이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당시 약 1700만 톤의 이산화황이 성층권에 분출되어 약 2년간 전 지구적으로 0.5°C 가량의 기온 하강 효과를 보인 사례가 이러한 아이디어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SAI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전문가들은 SAI와 같은 지구공학 기법들이 기후 관련 위험을 제한하기 위한 책임 있는 접근 방식으로 간주될 필수 기준(예: 실현 가능성 및 성공 가능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도 기후과학 전문가들은 기후공학이라는 '꼼수'로는 온난화를 막을 수 없을 뿐더러 환경에도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전문가 42명은 9일(현지시간) 학술지 '프런티어즈 인 사이언스'에 '위험한 기후공학으로부터 극지방 보호하기: 제안된 개념들과 미래 전망에 대한 비판적 평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기후공학 기술을 통한 환경 개입으로 제안된 방안 중 비교적 널리 거론되는 것을 검토한 결과, 모두 실현가능성과 효과가 의심스러우며 환경에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이 검토한 것으로는 ▶에어로졸을 성층권에 살포하는 것 ▶그린란드나 남극 등 대륙빙하에 따뜻한 바닷물이 닿지 못하도록 '바다 커튼'을 설치하자는 주장 ▶해양 빙하가 더 많은 햇빛을 반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바다 얼음에 유리구슬을 뿌려 반사율(알베도)을 높이거나, 펌프로 바닷물을 그 위에 뿌려 해양빙하의 두께를 늘리자는 방안 ▶철분 등 영양분을 바다에 뿌려 식물플랑크톤 번식을 촉진,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토록 하자는 제안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공학 제안은 급격하고 깊이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외에 다른 수단으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의사 결정자들이 입증된 탈탄소화 전략 대신 기후공학에 집중하게 만들고, 심지어 화석 연료 산업과 같은 '약탈적 지연(predatory delay)' 행위자들이 기후 행동을 가장하여 지속적인 배출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의 진정한 해법: 경각심과 실질적인 행동 과거 조선의 비극은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 현상에 의해 촉발된 기후 재앙이었다. 당시 인류는 그 원인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능력이 없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기후 변화의 주범이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임을 명확히 알고 있다. SAI와 같은 기후공학 기법은 과거의 화산 폭발처럼 성층권에 먼지를 뿌려 일시적인 냉각 효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재앙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지금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기술적 해결책에 자원과 노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고, 오히려 기존에 입증된,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기술과 전략에 집중하고 이를 신속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의 확대를 제한하는 유일하고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접근 방식은 '넷 제로(net-zero)' 배출 달성을 위한 즉각적이고, 신속하고, 심층적인 탈탄소화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깊은 경각심은 가져야 하지만 불확실한 기후공학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후공학 접근법이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점과 이러한 기술에 대한 추가 연구가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이러한 아이디어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라는 우선순위나 극지방에서 기초 연구를 수행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행성 지구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직시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검증된 행동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강찬수의 기후 신호등] 폭염과 가뭄의 악순환…그 치명적인 사슬

올여름 한반도는 폭염으로 달아올랐다. 6~8월 전국 평균기온이 25.7℃로 역대 1위를 기록했고, 전국의 폭염일수(낮최고기온 33℃ 이상)는 28.1일로 역대 3위를 기록했다. 강원도 강릉에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다. 강원 영동 지역은 올여름 강수량이 232.5㎜로 평년(679.3㎜)의 34.2% 수준에 그쳤다. 여름철 강수량으로는 역대 최저다. 가뭄은 점차 다른 지역까지 번져나갈 기세다. 지난 4일 환경부는 안동·임하댐의 가뭄 단계를 '주의'로 격상했다. 다목적댐 가뭄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나뉘는데 강원도 삼척·정선·태백에 물을 공급하는 광동댐도 곧 가뭄단계가 '주의'가 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 소양강댐과 충주댐도 가뭄단계가 '관심'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구 온난화가 가뭄과 폭염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들이 서로를 부추기는 치명적인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특히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돌발 가뭄(flash droughts)'은 극심한 폭염과 결합할 때 그 피해가 훨씬 커지고, 폭염 역시 가뭄으로 인해 더욱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전 세계적인 식량 안보와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강원대 전자⋅AI시스템공학과 김병식 교수는 강릉 지역의 가뭄 상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27일과 7월 25일을 전후해 '표준화 강수-증발산 지수(standardized precipitation evapotranspiration index, SPEI)'가 급감, 돌발 가뭄이 나타난 것이 확인됐다고 7일 본지에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심각한 돌발가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뭄과 폭염이 어떻게 서로를 증폭시키며, 이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가뭄이 폭염을 악화시킨다 가뭄은 폭염의 강도를 크게 증폭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토양 수분 부족이 지표면의 에너지 분배 방식을 변화시킨다. 일반적으로 토양에 수분이 충분할 때는 증발산(evapotranspiration)을 통해 많은 양의 '잠열(latent heat)'이 대기로 방출된다. 잠열은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열(에너지)을 말하는데, 수증기를 만드는 데 에너지가 투입되면서 주변은 온도는 오히려 내려간다. 그러나 가뭄으로 인해 토양 수분이 고갈되면, 식물은 잎의 기공을 닫아 증산 작용을 줄이고, 토양 자체의 증발도 감소한다. 이로 인해 잠열의 방출이 줄어들고, 대신 현열(sensible heat)의 형태로 에너지가 지표면과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수분이 부족할 때 방출된 에너지(현열)는 그대로 주변 공기를 끌어올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표면 온도가 상승하고 대기 온도가 더욱 가열되어 폭염이 심화된다. 이를 '토양 수분-온도 결합(soil moisture-temperature coupling)' 또는 '육지-대기 피드백(land-atmosphere feedback)'이라고 부른다. ◇온난화가 가뭄 피해를 키운다 1901년부터 2022년까지의 고해상도 전 지구 가뭄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영국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이 지난 6월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가뭄 심각성의 증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뭄 심화의 핵심 동력은 바로 '대기 증발 수요(atmospheric evaporative demand, AED)'의 증가다. AED는 대기 조건(온도·습도· 바람·일사량 등)에 의해 잠재적으로 증발산될 수 있는 물의 양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1℃ 상승하면, 대기는 수증기를 7% 더 지닐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고 AED가 증가하면, 토양과 식생으로부터의 증발이 촉진돼 가뭄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AED의 증가는 전 지구적 가뭄의 심각성을 평균 40% 증가시켰다. 이로 인해 가뭄 피해 면적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간(2018-2022년) 전 세계 가뭄 피해 면적은 1981-2017년 대비 평균 74% 확장됐고, 이 중 58%가 AED 증가 탓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22년은 기록적인 해로, 전 세계 육지 면적의 30%가 중간 정도 또는 극심한 가뭄의 영향을 받았다. 이 중 42%가 AED 증가 때문으로 지목됐다. 유럽의 경우 2022년에는 육지 면적의 82%가 가뭄을 겪었는데, 50%는 중간 정도 혹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이는 강수량이 35% 줄어든 것과 AED가 40% 증가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지역적으로 보면 아프리카, 호주, 북아메리카 서부 및 남아메리카의 건조 지대에서는 AED가 가뭄 추세에 최대 65% 기여하는 등 그 영향이 특히 두드러졌다. 아프리카는 가뭄 추세의 44%, 호주는 51%에 AED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폭염-가뭄의 상호 증폭 작용: 악순환의 고리 최근의 상황은 기후변화가 극심한 더위를 낳고 극심한 더위는 가뭄을, 가뭄이 다시 폭염을 부추기는 상호 증폭 작용, 악순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돌발 가뭄이 발생하는 것은 강수량 부족과 더불어 극심한 더위로 인한 AED 증가가 토양 수분을 빠르게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대기기후과학연구소는 지난 6월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돌발 가뭄을 폭염 관련성에 따라 구분했다. '복합 폭염 돌발 가뭄(compound heat flash droughts, CHFDs)'은 극심한 더위를 동반하는 돌발 가뭄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비(非) 폭염 돌발 가뭄(non-heat flash droughts, NHFDs)'으로 분류했다. NHFDs와 비교했을 때 CHFDs는 피해 정도가 최대 90.8% 더 심각하며, 회복 시간도 8.3%에서 최대 114.3% 더 길다고 보고됐다. CHFDs는 증발산이 심하고 토양 수분을 극심하게 고갈시키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뭄으로 인해 건조해진 토양은 지표면 냉각 효과를 감소시켜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도 한다. 토양에 수분이 부족하면 잠열이 줄어들고 대신 현열 형태로 열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지표면 근처 공기 온도를 상승시킨다. 이는 온도가 더 상승하고 AED가 더 높아지는 '양(+)의 되먹임 루프(positive feedback loop)'를 형성해 가뭄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2023년 여름 중국 북부 폭염-가뭄 사례 2012년 미국, 2010년 러시아, 2015년 남아프리카, 2018년 호주 동부, 2022년 중국 남부 등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이 농업 및 사회경제적 피해를 야기했다. 중국과학원 대기물리학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지구의 미래 (Earth's Futur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가뭄-폭염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바로 2023년 여름 중국 북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 사례다. 2023년 6월 22~24일 이 지역의 일(日)최고기온은 35°C를 넘어섰고, 64년 만에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이 폭염은 대기 순환(이상 고기압)과 토양 수분-온도 결합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23년 폭염이 발생하기 전, 5월부터 6월 초까지 중국 북부의 누적 강수량은 1979년 이래 가장 적었다. 이러한 이른 건조한 토양 조건은 육지-대기 되먹임이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이상 고기압으로 인한 하강 기류가 공기를 가열하면서 폭염이 촉발됐고, 이에 건조한 토양은 증발 냉각을 감소시키고 현열 방출을 증가시켜 폭염의 강도를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표층 열 방출 증가 → 총 구름량 감소 → 토양 수분 증발 강화 → 잠열 방출 감소 → 현열 방출 증가 → 지표면 온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과정으로 설명된다. ◇돌발 가뭄 피해 국내 사례도 국내에서도 2022~2023년 호남지역에서 발생한 극심한 가뭄은 돌발 가뭄으로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강원대 김병식 교수팀은 최근 한국방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강원도 지역의 11개 기상관측소의 2015~2024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돌발가뭄과 일반가뭄의 발생특성을 분석한 결과, 10년 동안 39회의 돌발가뭄과 96회의 일반가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강원도 지역의 돌발가뭄은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해안지역보다는 내륙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되는 것이 분석됐다. 김 교수는 4주 이내에 SPEI가 -2 이상 급감하고 최종 지수가 -1.5 이하에 도달하는 경우를 돌발 가뭄으로 정의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돌발 가뭄의 발생이 기상학적, 증발산 조건 그리고 지형특성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생태계 및 식량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 폭염과 가뭄의 연쇄 작용은 전 세계 생태계와 식량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은 생태계 생산성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경작지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져 전 세계 식량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복합 폭염 돌발 가뭄은 식생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탄소 흡수를 감소시키고, 장기적인 토양 수분 고갈과 산림 화재 증가, 나무 고사 등의 현상으로 이어진다. 농작물의 주요 성장 시기와 가뭄이 발생하는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농작물은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에는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농업 위험은 지난 수십 년간 특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에서 크게 증가했는데, 중국·인도·인도네시아와 같은 취약 국가들이 복합 폭염 돌발 가뭄 발생 가능성 증가로 인한 인구 및 농업 위험에 직면해 있다. ◇돌발 가뭄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기온 상승에 따른 대기 증발 수요(AED)의 증가는 미래의 온난화 시나리오에서도 심각한 가뭄을 유발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가 지금 추세로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2023년 중국 북부 폭염과 같은 극단적인 온도가 '일상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반대로 중국 북부의 경우 세기 말에는 육지-대기 결합의 영향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예측도 없지는 않다. 이는 동아시아 여름 몬순 시기에 강수량이 증가하면서 토양 수분도 증가해 육지-대기 결합의 강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근에 발표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은 지구 온난화가 지속될 미래에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대비가 시급함을 강조한다. 수자원 인프라를 확충하고, 생태계 회복력을 높이면서, 더 나은 사회경제적 및 환경적 적응 조치 등을 강구해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전 세계 식량 안보에 직결되는 만큼 가뭄에 취약한 경작지의 철저한 관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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