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 정부가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지원하는 보조금 축소 정책을 추진 중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커지는 정부 부담을 줄이겠다는 목적에서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정부 힘에 의존하지 않고 수익성을 갖춘 사업을 보다 책임 있게 추진하라는 메시지인데, 기후위기 시대에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지원을 일방적으로 축소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을 보다 활발히 추진해 온 독일에서조차 보조금 지원을 줄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우리나라 야당도 재생에너지 편에 서서 보조금을 줄이는 데 반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줄이려는 정부와 보조금을 최대한 지키려는 업계의 치열한 신경전이지만, 사업자에게 주는 보조금은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제도이다. 문제는 언제,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있다. 5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세계에너지시장인사이트' 제24-15호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채택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오는 2038년부터는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국가 지원을 완전히 중단하고자 한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 20년간 전력가격을 보장해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사업자를 지원해 왔다.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전력판매가격이 계약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올해만 차액 보전에 들어가는 비용이 약 200억유로(29조6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독일 정부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20년간의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발전소 건설 투자에 대한 일회성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이러한 제도 개편이 재생에너지를 전력시장에 완전히 통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보조금 정책 변화 목적이 독일과 비슷하다. 정책 당국자의 말을 통해 이를 엿볼 수 있다. 지난 4월 13일 사단법인 에너지미래포럼이 개최한 조찬 포럼에서 정경록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정책관 국장은 “철학적으로 재생에너지 정책은 정부가 보조금을 줘 민간사업자를 진입시키고 점점 보조금을 줄여가는 게 목표"라고 밝했다. 약 두 달 후인 6월 27일에는 한국에너지공단과 에너지경제연구원 공동 주최로 재생에너지 정책 개편 방향을 알리는 '재생에너지 보급제도 개편 연구 중간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발표회에서는 정부가 현행 제도를 경매방식 거래 방안으로 바꾸겠다는 중간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제도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로 독일의 발전차액지원제도와 다르다. RPS는 원자력, 화력발전과 같은 시장에서 전력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을 통해 거래하게 한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발급해주고 REC를 판매할 시장을 추가로 열어줘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하는 제도다. RPS에도 20년간 고정된 가격으로 계약을 맺는 고정가격계약제도가 있다. 계약을 맺지 않고 현물시장을 통해서도 REC를 팔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재생에너지 현물시장 가격이 치솟으면서 사업자들이 고정가격계약에 참여하지 않고 현물시장에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REC 현물시장 월평균 가격은 약 3년 전인 2021년 8월에는 1REC당 2만9913원이었다. 지난달 기준으로는 1REC당 7만5817원으로 2.5배나 뛰었다. SMP가 지난달 1MWh당 13만2490원이다. REC를 사는 데 전력도매가격의 57%나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다. 1REC는 1MWh의 재생에너지 전력량을 뜻한다. 지난달에 현물시장에서 거래된 REC는 총 156만2404REC로 총 1184억5678만원이 거래됐다. 이는 결국, 국민들이 전기요금의 기후환경요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몫이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거래를 경매방식으로 변경한다는 것은 비싼 현물시장을 없애고 상한가로 통제 가능한 고정가격계약제도 방식만 남긴다는 뜻이다. 연구중간결과를 발표한 조상민 에너지경제연구원 재생에너지정책연구실 실장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경매계약을 체결해야 전력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업계는 이같은 재생에너지 지원금 축소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독일 에너지기업인 BDEW는 “불확실한 정책 조건이 재생에너지 시스템 확장을 침체시킬 수 있다"며 독일 정부의 제도 개편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독일처럼 우리나라보다 재생에너지가 훨씬 많은 나라에도 보조금을 줄이는 게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 연방 에너지·수리연합(BDEW)과 바덴뷔르템부르크주 태양수소에너지연구센터(ZSW)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국내 총 전력사용량 5억1730만MWh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52%에 달했다. 반면 한국은 이제 겨우 10% 수준이다. 우리나라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전체의 9.2%로 올해는 10%를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는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국제사회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과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이 무역장벽으로 다가오는 만큼 재생에너지 보급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야당은 관련 세미나를 연달아 개최하며 정부에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더욱 펼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5월 31일 발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민주당 기후행동모임인 '비상'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주요 문제점과 개선방향 분석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지난 6월 21일 개최하며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다시 짜야 한다고 비판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달 19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비판하며 정책을 완전 되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전체의 21.6%, 2038년까지 32.9%로 늘리는 내용을 담았으나 이정도로 불충분하다는 의미다. 11차 전기본은 전력수요 예상치와 이에 맞춘 발전소 및 송전망 건설 계획을 포함한다. 11차 전기본에서 정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가 높을수록 RPS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지원하는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원리다. 대규모 발전사의 재생에너지 의무 확보량을 규정하는 RPS 의무비율은 11차 전기본에 따라 커진다. 국제단체도 대정부 압박에 가세했다.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캠페인 주관 국제단체인 더클라이밋그룹은 지난달 25일 22대 국회에 재생에너지 보급 가속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더클라이밋그룹은 서한에서 “전 세계 400여개 이상의 RE100 회원사들은 프랑스의 연간 전력 소비량보다 더 많은 전력을 매년 소비하고 있다. 그중 한국에 본사를 둔 회원사는 35개 이상이며, 160개 넘는 글로벌 회원사가 한국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며 “이러한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수요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있고, 이를 위해 적절한 시장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줄이기 위해 REC 현물시장을 없애고 RPS를 재생에너지 경매제도로 전환하려면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ㆍ이용ㆍ보급 촉진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192석을 차지한 거대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가뜩이나 지금처럼 야당이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에 불만을 가진 분위기라면 법 개정은 어려워 보이는 게 현실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