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주 비은행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마무리하며 임기 2년차를 함께할 경영진을 새롭게 구축했다. KB금융은 지난해 12월 8개 계열사 가운데 6개 계열사 대표이사를 교체한 만큼 이번 인사에서는 큰 폭의 변화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신한금융이 직급과 관계없이 각 계열사에서 현장 감각이 뛰어난 실무진을 대거 사장단으로 발탁한 것과 달리 양종희 회장은 자신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KB국민은행, KB금융지주 임원들을 등용한 점이 눈에 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지난달 27일 KB국민은행장 후보로 이환주 현 KB라이프생명보험 대표이사를 선임한 데 이어 이달 6일에는 KB증권, KB국민카드, KB라이프생명보험, KB데이타시스템 등 4개 계열사의 CEO 인선을 마무리했다. 이번 KB금융 인선의 특징은 파격인사 혹은 세대교체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에 방점을 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환주 KB국민은행장 후보와 구본욱 KB손해보험 사장이다. 우선 1964년생인 이환주 후보는 이재근 KB국민은행장(1966년생)보다 두 살 많아 '세대교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후보는 KB금융그룹 비은행 계열사 CEO가 그룹 최대 계열사인 KB국민은행장에 오른 최초의 사례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 후보는 KB국민은행 영업기획부장, 외환사업본부장, 개인고객그룹 전무, 경영기획그룹 부행장, KB금융지주 재무총괄(CFO) 부사장 등 KB국민은행, KB금융지주의 핵심직무를 거친 점이 이번 인선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나아가 이 대표는 2022년 KB라이프생명 전신인 KB생명보험 대표이사로 취임해 올해까지 2년간 푸르덴셜생명과 KB생명보험의 성공적인 통합을 이룬 점도 KB국민은행장에 발탁된 배경으로 꼽힌다. 이환주 후보가 KB금융그룹 내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과 달리, 올해 초 KB손해보험 대표로 취임한 구본욱 대표는 2021년 KB손해보험 리스크관리본부장 전무를 지내다가 부사장을 건너뛰고 대표이사로 오른 인물이다. 구본욱 대표는 양 회장이 2016년 3월부터 2020년 말까지 KB손해보험 대표를 재임할 당시 경영전략본부장 상무, 경영관리부문장 전무를 맡으면서 양 회장 눈에 띈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양 회장은 시장 예상과 달리 이재근 현 KB국민은행장이 아닌 이환주 대표를 KB국민은행장에 발탁해 취임 2년차를 맞이해 자신의 경영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이환주 국민은행장 후보는 보험 전문가라기보다는 은행원에 가까운 인물"이라며 “비은행 계열사 CEO가 국민은행장에 발탁된 만큼 어떠한 방향으로 은행, 비은행 간에 시너지가 창출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KB금융그룹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서 KB국민은행 부행장들이 대거 중용되면서 KB국민은행의 '여전한 파워'를 입증한 점도 이번 인선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KB국민은행 주요 임원들이 계열사 대표이사로 이동하는 '관례'를 이번에도 착실하게 수행했다는 뜻이다. 실제 연임에 성공한 김성현 KB증권 IB부문 대표이사, 이홍구 KB증권 WM부문 대표이사와 달리 KB국민카드, KB라이프생명, KB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에는 현 KB국민은행 부행장을 대거 발탁했다. KB국민카드 대표이사 후보에는 김재근 KB금융지주 재무담당(CFO) 부사장이, KB라이프생명보험 대표이사에는 정문철 현 KB국민은행 개인고객그룹대표 부행장이 추천됐고, KB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로 선임된 박찬용 후보 역시 현재 KB국민은행 기획조정담당 부행장을 맡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KB금융은 전반적으로 안정 속 변화에 중점을 둔 걸로 보인다"며 “KB금융그룹 내에서 다양한 경력을 보유한 인물을 CEO로 등용하는 것이 경영에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아니겠나"고 설명했다. 이는 신한금융그룹이 신한카드, 신한저축은행, 신한DS, 신한파트너스, 신한리츠운용에 부사장이 아닌 본부장급 인사를 CEO로 발탁하며 이른바 '인사 실험'을 단행한 것과 대비된다. 물론 신한금융지주도 대부분 신한은행 부행장, 본부장을 지낸 인물들이 계열사 CEO로 선임됐지만, 박창훈 신한카드 대표이사 후보의 경우 신한카드 내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부 차별화도 꾀했다. 일각에서는 양종희 KB금융 회장이 안정 속 소폭 변화를,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인사 실험과 과감함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향후 금융지주 1, 2위를 다투는 KB금융, 신한금융 간에 경쟁도 한층 흥미진진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분 금융지주 내 시중은행은 다른 계열사보다 회사 출범 자체가 오래됐기 때문에 임원들의 연령대도 상대적으로 높다"며 “금융지주사들이 (신한처럼) 젊은 인력들을 대거 앞세워 세대교체를 하거나, (KB처럼) 은행 주요 인사들이 자회사 대표이사로 이동하는 등의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길을 택할지는 CEO의 의중에 달렸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인사 방향만으로는 CEO의 의중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추후 금융지주, 은행 임원 인사까지 나와봐야 나머지 퍼즐들도 맞춰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