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공세에 나선 가운데 고려아연도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발 빠른 물밑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추석 연휴 기간이던 지난 16∼18일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출장을 다녀왔다. 이번 출장에서 최 회장은 현지 협력사 등 글로벌 기업들과 접촉하며 영풍·MBK 측에 맞서 우군 확보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재무 담당 임원 등과 함께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글로벌 투자회사 일본 소프트뱅크 측과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소프트뱅크가 에너지볼트에 투자할 때 5000만달러(약 600억원)를 투자해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에너지볼트는 스위스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개발 업체다. 이에 일각에서는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일본 소프트뱅크가 고려아연 '백기사'로 등판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또 일본 대형 종합상사 스미토모 등과도 만나 협력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들과 접촉해 타개안을 모색했다거나 주식 담보 대출을 검토하는 등 해법을 찾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최 회장은 지난 19일 계열사·협력사 임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추석 연휴였지만, 외국 회사들과 소통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며칠간 밤낮으로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 계획을 짜냈다"며 “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최 회장을 비롯해 최씨 일가에서는 최내현 켐코 회장과 최주원 아크에너지 대표 등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우호 세력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켐코와 아크에너지 모두 고려아연 계열사다. 특히 최윤범 회장은 추석 연휴 직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회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수소·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고려아연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한 한화그룹이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고려아연 편에 서겠다는 방침을 굳힌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현재 한화그룹은 고려아연 지분 7.76%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한화를 비롯해 현대차, LG화학 등 대기업 지분(18.4%)을 최씨 일가 우호 지분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려아연 사업장이 있는 울산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이번 경영권 인수 시도에 고려아연 지지를 공식화한 것도 고려아연 측에는 호재다. 이런 '세 몰이' 결과는 이번 주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 주식 약 7∼14.6%를 주당 66만원에 공개 매수하기로 했는데, 고려아연의 주가는 70만원까지 치솟아 MBK 측에 부담인 상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공개매수신고서를 정정하면 공개매수 종료일은 정정신고서 제출한 날이 종료일 전 10일 이내일 경우 제출일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이 된다. 그보다 일찍 정정하면 예정된 날짜에 종료한다. 즉 24일까지는 예정대로 10월 4일에 공개매수가 끝나지만, 25일부터는 하루씩 뒤로 밀리게 된다. 다만 10월 5∼6일이 휴일인 관계로 실질적인 청약 마감은 같은 달 4일이 된다. 이 경우 MBK는 26일까지 기간 연장에 대한 부담 없이 공개매수가를 올릴 수 있다. 공개매수가가 시세보다 낮으면 실패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만일 이보다 늦게 가격을 조정하면 최 회장 측에 대응할 시간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 전 공개매수가 인상도 인수 비용 증가로 부담이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최 회장 측이 그간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1조원 안팎을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MBK 측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등 역공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오는 2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영풍과 MBK 측 경영권 인수 시도 부당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MBK는 최 회장 대항공개매수설이 루머 내지는 여론전에 불과한 것으로 일축하고 있다. 최 회장이 다양한 인사들과 접촉·회동하고 있다는 정보가 실시간 공개되고 있다는 게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거래 상대방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만남조차 비공개하는 것이 투자은행(IB)업계 불문율이라는 데 전제했다. 이런 싸움이 지속되면서 양측 주가도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영풍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6만 7500원(29.39%) 내린 40만 2500원에 마쳤다. 고려아연도 전장 대비 1만 2000원(1.63%) 내린 72만 3000원에 마감했다. 지난 12일 종가 기준 29만 7000원이었던 영풍 주가는 다음날부터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50만원대로 올라섰다. 지난 20일에도 13.77% 상승해 3거래일 만에 주가가 91.9% 치솟았다. 고려아연 역시 지난 13일부터 3거래일 연속 오르며 주가가 32.19% 뛴 바 있다. 안효건 기자 hg3to8@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