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회장과 영풍,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놓고 지분 경쟁을 벌이는 원인은 급격히 악화된 '재무 리스크'에 대한 견해차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 회장이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추진한 대규모 투자가 영풍그룹 시선에는 매우 위험한 행보로 비쳐졌다는 진단이다. 특히 올해 고려아연 차입금 규모가 사실상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갈등이 더욱 깊어지는데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영풍·MBK 두 집단 사이에서 고려아연 경영 성과에 대한 문제를 놓고 여론전이 지속되고 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최근 며칠 동안 최 회장의 경영을 실패라고 지적하며 재무 리스크를 거듭 지적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22년 고려아연 대표로 취임한 이후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 순환) 사업을 중심으로 한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1974년 설립된 이후 50년 동안 제련 사업 외길에 집중해왔던 회사의 체질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대규모 투자가 단행됐다. 실제 최 회장 취임 전인 2021년 말 27개에 불과했던 고려아연 종속기업 수는 올해 6월 말 79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기간 신재생에너지 기업 에퓨런, 리사이클링 분야 전자폐기물 업체 이그니오 등을 인수한 결과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재무 리스크를 확대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지난 6월 말 기준 고려아연 총차입금 규모(연결 기준)는 1조4107억원으로 최 회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2021년 말 4460억원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이는 고려아연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한 1993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1993년 이전 국내에서 1조원 이상 차입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역대 최대치로 분석된다. 차입금 규모가 급증하면서 회사의 금융비용(이자)이 늘어나 수익성을 다소 압박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고려아연 금융비용은 318억원으로 지난 2021년 연간 금융비용인 42억원의 7배 이상 늘었다. 문제는 이 같은 재무 리스크가 고려아연을 최중요 계열사로 보고 있는 영풍그룹 입장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만약 고려아연이 무리한 체질 개선을 하다가 실적이 크게 악화된다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실제 영풍 측을 대표해 고려아연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장형진 기타비상무이사는 지난해 대규모 투자 안건을 결정하는 고려아연 이사회에 두어 차례 아예 참석을 하지 않는 등 간접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에 최 회장은 반대하는 영풍 측에 맞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유지하기 위해 현대차, LG, 한화 등 우호 세력을 포섭해 지배력을 강화했으며, 영풍 측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MBK파트너스와 손잡으면서 최근 상황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사내 안팎에서는 최 회장을 지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고려아연의 장기적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과도하지 않은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아직 영풍·MBK 측이 주장하는 만큼 재무 리스크가 과도하지 않다는 진단이 적지 않다. 지난 6월 말 기준 고려아연의 부채비율은 36.5%로 최근 크게 악화되기는 했으나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는 다른 기업을 감안하면 아직도 부채비율이 높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비용 역시 증가세 자체는 크지만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4532억원과 순이익 2879억원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수익성을 흔들만한 타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50년 제련업에 집중했던 고려아연의 미래 비전과 재무 리스크에 대한 견해가 뚜렷하게 다르다는 점이 양 측의 갈등의 씨앗 중 하나"라며 “지난 75년 동안 동업했던 두 가문이 치열한 여론전에 돌입한 상황을 보면 두 가문이 경영권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