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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韓 기술 노리는 ‘뱀’, 신속·강경 대응이 옳다

푸른 뱀의 해가 열렸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과 연구기관들이 피땀흘려 개발한 기술을 노리는 뱀들이 들어오는 문도 열렸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나섰으나, 산업스파이 규제를 위한 형법 제98조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올해 열리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될지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바꾸는 것이 조항 남용과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막기 위해 기술 장벽을 높이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할 필요성이 큰 것도 고려 대상이다. 부존자원이 극히 적고, 내수시장도 작은 탓에 '가성비'를 갖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경제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게 확보한 기술을 빼앗기면 이같은 강점을 지닌 나라들과의 경쟁이 힘들어진다. 경제적 손실이 크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말 웨이퍼 생산 기술 유출 혐의로 진행 중인 경찰 조사건의 피해액은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기술 탈취에 열을 올리는 나라로는 중국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이들은 국내 대기업 임원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하는 중으로, 반도체 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조선·2차전지를 비롯해 경쟁을 펼치는 분야를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조선의 경우 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선종을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으로, 대형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시장도 뺏기면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잃을 수 있다. K-방산도 타겟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기술진은 총 8조원이 투입되는 일명 '단군 이래 최대 무기체계 개발 사업'으로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관련 자료 유출 혐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끊지 못해 현지 생산을 요구하는 수출 대상국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방산 수출 4강 도약의 꿈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현행 형법이 가리키는 적국이 사실상 북한을 의미하지만, 다른 국가가 탈취한 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집에 물건을 훔치러 온 강도를 진압했다고 처벌을 받는 촌극이 벌어지는 나라지만, 우리 기술을 도둑질하는 행위를 국적을 불문하고 처벌 대상으로 포함시켜 경제를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고 싶다.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국내 경제의 저성장이 빚는 어려움이 많다는 점에는 좌우가 없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EE칼럼] 2025년은 에너지정책 재균형의 적기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 출범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 정책 방향 대부분을 뒤바꿔 놓을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정책은 가장 크게 달라질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는 모두 에너지 정책을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내용은 완전히 상반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공급망 확충을 통해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했지만, 트럼프는 화석에너지 개발 확대를 통해 에너지 가격을 하락시켜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에 분명한 반대를 하는 것이다. 선진국 중심으로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의 지향점은 곧 탈화석에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산화탄소 주배출원이 화석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화석에너지 소비량은 2022년 기준 11,656 백만TOE이고, 2050년까지 남은 날 수는 10,591일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대형 원전 1기 혹은 태양광 패널 4백만 장에 해당하는 백만TOE의 화석에너지를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해야 2050년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탄소중립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국가 간, 세대 간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아직 탄소 문명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수많은 저개발 국가에 탈문명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또한 기후변화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구체적인 피해는 미래에 발생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당장의 탈문명을 현세대에게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화석에너지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는 에너지 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하향 조정되겠지만, 여전히 중심에너지의 위치를 지켜낼 공산이 크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기후변화협약, 탄소국경조정세 등과 같은 제도를 통해 인류 공통의 의제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탄소중립은 실현가능성과 별개로 전 세계 화석에너지 투자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인 것이다. 화석에너지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탄력적으로 증가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에너지 가격 전망은 어렵지 않다.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늘어나기 어렵다면, 화석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주력 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의 높은 발전단가가 더해지면, 전체 에너지 가격 수준의 상향 조정은 명약관화다. 가격 수준만 문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와 함께 가격 변동성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다가갈수록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발생하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의 급등락이 자주 반복되면서 에너지 위기의 상시화가 우려된다. 트럼프는, 탄소중립은 현실적 어려움으로 장기간에 걸쳐 해결할 과제로 인식하고, 미국 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가교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는 천연가스를 적극 개발하여 재생에너지로 기울었던 에너지정책을 재균형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리도 재생에너지와 원전 양극을 오가는 에너지정책을 바로 잡을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탄소중립에 따른 고에너지 가격 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인정하고 널리 알림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한편,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국가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자원개발과 시장가격 그리고 에너지복지 점검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에 이르는 우리나라가 자원개발 없이 변동성 높은 고에너지가격 시대를 맞는 것은 천수답 농사를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의 10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인 자원개발에 다시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기·가스 가격은 유권자 표만을 의식한 정치 흥정의 산물에 가깝다. 원가 따위는 아랑곳없다. 그 결과는 턱없이 저렴한 가격, 한전과 가스공사의 대규모 적자와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자주 사용했던 유류세 인하, 전기 및 가스 가격 인상 억제 등과 같은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시장 수급을 반영한 정확한 가격 신호를 통해 합리적인 수요를 유도해 변동성 높은 시장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 고에너지가격 시대 도래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빈곤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가격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촘촘한 에너지복지 그물망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것이다. 화석에너지 재평가, 가격 기능 회복, 에너지복지 향상을 근간으로 하는 균형 잡힌 에너지정책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박주헌

[기자의눈] 과잉보호로 ‘헐값’될까, 시련으로 ‘성장’할까

“PBR 0.3배면 적대적 M&A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재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한국 자본시장의 근본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발언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극심한 저평가 현상이다. PBR 0.3이란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의 30% 가치로만 시장에서 평가받고 있다는 의미다. 1000원어치의 자산을 가진 기업이 300원에 거래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시장 가치 평가의 심각한 왜곡을 보여준다. 이 대표의 발언 중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과도하게 평화로운 시장"이라는 문제의식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오랫동안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보장되어 왔다. 재계는 이를 '안정적 경영환경'이라고 미화하지만, 실상은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압박이 부재한 상태다. 적대적 M&A의 위험이 실질적으로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재계는 통상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높은 상속세율, 지주사 디스카운트 등 외부적 요인을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하지만 이는 책임 회피에 가깝다. 기업 내부의 변화, 특히 경영진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현실의 근저에는 한국 기업들이 소액주주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구시대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조차 특별한 혜택인 양 포장해온 것이다. 이는 주주가 회사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처사다.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다. 한국 기업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를 이루려면 '과도한 평화'를 깨고 '건전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적대적 M&A의 위협은 그 자체로 경영진과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효과적인 시장 규율이 될 수 있다.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건전한 시장의 기본이다. 이제 재계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있다. 저평가 문제를 더 이상 외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가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리 보호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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