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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CES 2025가 제시한 기후변화 대응의 새로운 방향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4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운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정치적 위기가 복합적으로 발생한 탓이기도 하지만, 파리협정에서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내로 제한하고자 했던 목표가 처음으로 무너진 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유럽연합(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4년 지구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6℃ 높아졌으며, 2023년 보다 0.1℃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가장 뜨거운 한 해였던 2024년,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 기조가 약화되면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기도 했다. 미국 및 유럽의 금융기관들이 '적도원칙'이나 '기후행동 100+'같은 글로벌 기후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하고,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ESG 펀드 출시를 축소하거나 기존 펀드명에서 ESG 또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등, 금융권의 기후변화 대응 추진력이 약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더해 기후변화에 대해 회의적이며 화석연료 사용을 옹호하는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더욱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커져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이전 임기 동안에도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협력을 약화시킨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 Show) 2025는 녹색 기술과 지속가능성이 미래 기술 및 경제 패러다임에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는 특히 인공지능(AI)이 사물인터넷(IoT)과 재생에너지와 접목된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에코플로(EcoFlow)의 AI 기반 홈 에너지 관리 시스템인 '오아시스(Oasis)'는 태양광 발전과 에너지 저장 기술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여 재생에너지의 활용도를 극대화한다. 이는 기술적 혁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가정과 지역 사회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기술은 한국의 삼성전자에서도 선보였다. 삼성의 '스마트싱스(SmartThings)' 에너지 플랫폼은 가전제품의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AI 기반으로 사용 패턴을 분석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번 CES 2025에서는 삼성전자의 기술이 주택뿐만 아니라 차량이나 선박, 매장이나 오피스 같은 비즈니스 공간에까지 확장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AI가 전기 에너지 소비 패턴을 분석해 전기 요금 절감이 가능한 것을 시연하였다. LG전자의 스마트홈 플랫폼인 'LG 씽큐(LG ThinQ)' 역시 에너지 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최적화하며, 개인화된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제공한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과 글로벌 금융 시장의 탈ESG 흐름은 녹색 기술의 확산에 단기적인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CES 2025에서 보인 새로운 기술들은 결국 녹색 기술이 단순히 환경적 가치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과 새로운 시장 창출의 잠재력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예로서 존 디어(John Deere)의 자율 주행 트랙터는 화학 비료 사용을 줄이는 동시에 생산성을 극대화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 기술이 미래 식량 안보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CES 2025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노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될 지라도 녹색 기술이 미래 경제와 사회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는 흐름은 되돌릴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건넸다. 결국 AI, IoT, 재생에너지와 같은 기술들이 서로 융합되며 미래 경제를 정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CES 2025를 통해 우리의 미래상에 대한 명확한 지표를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향후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그 방향성을 지속적으로 적극 추구해 가야 할 것이다. 임은정

[EE칼럼] 국가 에너지자원 독립을 위한 필요조건

한 국가와 사회의 지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와 자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국토가 협소하고 보유한 천연자원이 없는 대표적인 자원 빈국이지만 산업발달에 따른 경제 규모가 커져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결국, 국가 산업과 국민 경제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에너지자원 공급망 구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안정적인 에너지자원 공급망을 구축할 것인가이다. 국내 부존자원이 없는 국가 입장에서는 유일한 방법이 해외에서 에너지자원 공급망을 확보하는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해외로부터 안정적인 도입망을 구축하여 도입과 비축을 충분히 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원이 풍부한 자원부국과 협력하여 해외자원개발을 통한 자원확보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도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자원안보특별법을 제정하여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이제야 겨우 자원공급망 구축을 위한 시스템을 갖춘 형국이다. 시작이 반이니 고무적인 일일 수도 있으나 문제는 실질적인 실행력에 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있어도 실행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법과 규정이 있어도 잘 지켜지지도 않고 오히려 법의 취지에 어긋나게 악용되는 사례를 종종 목도하고 있다. 법은 멀고 남의 이야기라는 냉소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법의 취지에 맞게 실행이 가능할까? 올바른 방향을 정하고 이에 맞는 장기적 계획을 수립한 후 이를 뒷받침할 예산 확보가 따라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실행 주체가 실력과 의지를 갖고 지속적인 추진이 가능해야 성공할 수 있다. 즉, 마련된 시스템과 실행할 사람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따로 제도 따로 노는 따로국밥이 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가까이는 지난해 12월에 시작된 동해 심해 탐사시추를 두고도 엇박자가 나고 있다. 동해에 가스전 부존이 확인되어 생산을 하기 위해 탐사시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스부존을 확인하기 위해서 탐사시추를 하는 것이다. 기술적인 평가를 통해 첫 번째 시추공에서 가스를 발견할 확률이 20%로 평가되었으니 80%는 가스 발견에 실패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사항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야기 하니 정치적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고 결국 야당에서는 시추예산을 전액 삭감하였다. 급기야는 1000억 원이 넘는 시추 비용을 자본잠식에 빠진 석유공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하여 추진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석유공사의 재정 상태가 양호했다면 정부의 지원 없이 공사의 자체 자금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자원탐사의 높은 불확실성과 낮은 성공률, 국내 자원개발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면 정부의 지원으로 시추가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일각에서는 네 돈이면 20%의 확률을 보고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 탐사시추를 할 것이냐고 묻는다. 자원개발은 높은 불확실성, 낮은 성공률, 대규모 투자, 장기적 사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개인이 투자하기 어렵다. 전세계적으로 자원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회사의 대부분은 메이저 회사이거나 국영기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 자원개발이 성공하려면 정치로부터 분리와 독립이 필요하다. 독립적인 시스템 기반 위에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 자금과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권의 교체에 따라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미리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차근차근 추진하자. 성공적인 에너지자원 독립을 위해서는 시스템, 기술, 자본의 삼위일체와 정부, 국회, 국민 의지의 삼위일체가 필요하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엇박자가 나면 국가 차원의 에너지자원 안보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모두의 일은 누구의 일도 아닌 것이 되어가기 쉬운 에너지자원 공급망, 독립된 예산과 계획 없이는 시작도 하지 마라. 국가 에너지자원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철저하고 치밀한 준비성, 계획성, 지속적 실행력, 전문성,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신현돈

[EE칼럼] 위기 속 기회, 캐나다산 원유 수출이 주는 함의?

작년 11월 29일, 캐나다 트뤼도 총리가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를 야간에 깜짝 방문하여 트럼프 당선자와 회담을 가진 것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주로 양국 간 무역협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무래도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맞서 캐나다와의 경제적 협력의 필요성을 설득함으로써, 특히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과 동시에 캐나다산 원유 등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는 계획을 철회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회담 직후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는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상 결례 섞인 농담까지 감수해야 할 정도로 캐나다 입장에서는 절박함이 엿보였다. 사실 청정한 국가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게 캐나다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의 산유국이다. 2023년 기준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577만 배럴, 이중 80%가 주로 중서부 앨버타 주에서 생산된 오일샌드(oil sand)로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중질유다. 이런 캐나다산 원유의 주 고객은 미국, 특히 중서부나 걸프 만 인근 정유공장들이다. 하루 평균 400만 배럴, 전체 캐나다 원유 수출의 97%에 해당할 정도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그만큼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시장에서 캐나다 산 원유의 가격경쟁력이 상실, 오일샌드 주산지인 앨버타 주를 넘어 캐나다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궁하면 통한다는 속담처럼 대안적인 수출 가능성이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사실 캐나다산 원유가 미국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 배경에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국이 경제 규모 측면에서 압도적인 소비처라는 점도 주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대안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캐나다산 원유의 주산지는 중서부 내륙인데, 만일 유럽 등 대서양 연안국으로 직접 수출하려면 캐나다 동부 연안까지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송유관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없다. 건설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2017년 환경 규제와 지역 반대 등에 막혀 취소 바 있었다. 좀 더 거리가 짧은 태평양 연안을 통한 수출을 위한 송유관 건설도 험준한 로키 산맥과 원주민 보호구역 통과 어려움, 거친 환경단체의 반대 등에 부딪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5월, 결국 Trans Mountain 확장 (TMX) 송유관이 개통되었다. TMX 송유관은 340억 캐나다 달러(미화 약 250억 달러)를 들여 앨버타 주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까지 약 1,150km를 연결, 수송 용량 하루 평균 89만 배럴로, 2012년 처음 제안되어, 다양한 환경적, 법적 도전 속에서 약 12년의 시간이 걸려 완공되었다. TMX 송유관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캐나다 입장에서 미국 이외 아시아․태평양 시장으로 수출처를 그 나마 좀 더 다변화할 수 있기 때문. 특히 25% 관세 부과가 현실화 될 경우, 받을 수밖에 없는 타격을 일부 저감시켜 줄 수 완충 수단될 수 있다. 단지 캐나다에게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시장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캐니다산 원유가 대량으로 풀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동안 다른 곳으로 수출길이 막혀있다 보니 캐나다산 원유는 미국산 원유보다 저렴하여 캐나다산 대표 원유인 Western Canadian Select(WCS) 가격이 미국 대표 WTI 가격보다 항상 낮게 형성되었으며, 더욱이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애용하는 중동산 원유 대표 두바이산 원유 가격보다도 대략 배럴 당 15달러 이상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TMX 송유관 개통 이후에도 하루 80% 이상의 가동률을 보이며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시장으로 해상 운송 수출이 확대되고 있다. 그래서 만일 25% 관세 부과될 경우 이러한 추세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직접적으로 TMX 송유관을 통해 저렴한 캐나다산 원유를 수입하여 원유 수입대금을 절감할 수 있겠지만, 직접 수입하지 않더라도 사우디 증산 완화와 맞물리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 유가 하락에 일정정도 일조할 수 있다. 그 만큼 우리에게 좋은 기회다. 2025년은 분명 국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미증유의 격랑기다. 하지만 새옹지마의 고사처럼 오히려 예상 밖의 기회가 열릴 수 있는 전기가 될 수도 있음도 유념하자. 김재경

[EE칼럼] 위험이 있는 곳에 규제가 있어야 ...과학적 원자력 규제 체계가 시급하다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요즘 미국도 대통령이 바뀌는 시기가 되니 부동산 규제를 이렇게 바꾸자, IT기업 규제를 저렇게 바꾼다 하는 뉴스가 자주 보인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하는 일에는 언제나 규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와 안전에 해를 끼치는 일을 누군가가 도모한다면 이를 규제하여야만 구성원의 안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매우 강력한 규제가 항상 좋은 것일까? 아무도 새로운 일을 도모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저 해 왔던 대로 반복할 뿐이니 특별한 규제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규제가 너무나 강력해도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지 않는 거세된 사회를 만들어 내게 된다. 강력한 종교적 규제 하에 있던 유럽의 중세시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사회 내에서 새로운 시도가 벌어지고 발전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발전과 규제는 서로 쌍을 이루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규제를 통해 발전의 방향을 정하고 그 속도를 조절하고 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 구성원간에 합의된 약속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어떤 규제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야 그 사회에 가장 좋은 것인지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된 규제가 가장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 잘 사용하였을 때의 유익이 대단히 커서 우리나라 같은 산업국가의 토대가 되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해 주지만, 안전관리에 실패하게 되면 재난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두 지점 사이에서 그야말로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운 문제가 되어 버린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에 이은 전문적 실행규칙 합의도 필요하게 된다. “원자력을 안전하게 이용한다"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을 경우, 얼마만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며 어떻게 이것을 검증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전문적인 규제 프레임이다. 원자력안전법 제1장 1조에서 “이 법은 원자력의 연구ㆍ개발ㆍ생산ㆍ이용 등에 따른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방사선에 의한 재해의 방지와 공공의 안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어서, 원자력이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안전'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법과 그 하위 법령들이 그 규제의 실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기존에 건설하고 운영해 오던 원자로형에 대해서는 상세한 규제 지침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어떤 상황이 생길지를 모두 미리 정의해 둘 수가 없는 것이니, 기존 원전에 대해서조차 지침서만 가지고 실제 규제를 다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최신형 원전일수록 매우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고안된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도 어렵다.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였다고 하자. 그때 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인한 건강 손실 가능성이 그 단층촬영을 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유익함을 초과한다면 어떤 의사도 그 촬영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예는 노출되는 방사선량이 명확하고 그 유익과 불익이 명확하여 상대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쉬운 경우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우에는 분석이 훨씬 복잡하다. 심각한 사고가 나서는 안된다는 대전제하에서 설계한 플랜트이므로, 처음부터 2중 3중의 안전 방벽을 가지게 설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의 비상대응 시스템도 마련해 두고 있다. 엄격히 교육된 경험많은 운전팀이 최고 신뢰도의 설비를 가지고 검사에 검사를 거듭하면서 운영을 한다. 얼듯 보기에는 완벽해 보인다. 위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실로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러한 플랜트의 위험도(리스크)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전문성과 과학적 지식을 집대성하여 리스크를 분석한 후, 위험이 큰 곳에 규제가 집중되어야 한다. 위험이 없는 곳에는 규제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규정집에 의존한 규제는 그 규정집이 대상으로 삼은 플랜트가 대상으로 삼은 상황에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특정 상황에만 유효한 규제를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려고 하면 당연히 맞지가 않게 되고, 규제의 목적이었던 '안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구현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는 위험도에 기반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에 대해 수백명의 전문가가 공개적으로 검증하여, 거기서 도출된 위험요소에 대해 위험의 정도에 상응하는 규제 행위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지금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리스크정보활용 규제 체제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전문가들 가운데 이 과학적인 체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94년에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구 탓인지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문화에서는 규제결정자가 규정집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이면 모든 가능한 경우에 대해 규정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원자력 규제는 지금 매우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책임추궁 문화와 규정집기반 규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프레임을 빨리 버리고 과학과 시스템에 기반한 규제로 옮겨가야 사회적 합의를 뒷받침하는 진정한 규제가 될 것이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희망찬 2025년, 전력산업의 발전을 기대한다.

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제1차 산업혁명은 석탄 시대를 열었고, 내연기관의 발명과 석유화학 기술의 발전은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3차 산업혁명을 거쳐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빅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 등을 토대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미래 에너지는 무엇일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작년 10월 세계에너지전망(World Energy Outlook) 보고서를 통해 곧 “전기의 시대(Age of Electricity)"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전기 사용량은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 보다 2배나 빠르게 증가하였고, 전기자동차, 에어컨, 인공지능 등의 확산에 따라 2035년까지 현재보다 6배 더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또한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절반 이상은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전력량은 1990년 2,202 kWh에 그쳤던 것이 30년이 지난 2022년에는 10,652 kWh로 급증하였다. 이에 따라 총 발전량은 1990년 118.5 TWh에서 2022년에는 591.8 TWh로 약 5배 증가하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3 장기에너지전망"에 따르면 2050년에는 총 발전량이 759.4 T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특히, 냉방을 위한 전기 수요 증가와 함께 전기차가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면서 전기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신문사가 새해를 맞이하여 ChatGPT에게 한국 전력산업 전망에 대해 물어본 결과가 흥미롭다. “전력시장은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 확대, 스마트 그리드 및 ESS 기술의 발전, 전력 수요의 증가 등으로 인한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동시에 전력 가격의 변동성 증가와 민간 기업의 시장 참여 확대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전력시장의 디지털화와 효율성 증대가 이뤄지면서 전력 시장의 경쟁과 변화는 지속적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전력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2025년은 글로벌 경기둔화, 지정학적 갈등 확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등으로 더 큰 도전과 변화의 해가 될 것이며, 국내에서는 지역별 차등요금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선정 등 전력생태계 개편이 급물살을 탈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인공지능의 전망과 한국전력사장 메시지의 공통점은 “변화"다. 증가하는 전력 소비를 기존의 화석에너지발전으로부터 무탄소전원으로 전환하여 전력부문의 탈탄소화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 외에도 생산된 전력을 적재적소에 보내고 스마트한 전력소비를 위한 새로운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구축과 전기저장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현재 전력시스템은 극심한 이상기후 현상과 사이버 테러 위험 등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전력시스템의 복원력과 디지털(사이버)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태양광과 풍력, 차세대 전력망, 에너지저장기술과 같은 분야에서의 혁신은 전력산업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열쇠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 몇 년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정치적 쟁점사안이 되어 갈등만 커지면서 서로의 장점 보다는 단점만 부각되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였다. 또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에너지 공급망의 변화는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전력산업의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모두를 아우르는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빠르게 진화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전력산업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4차 산업혁명과 전력산업의 변화 전망" 보고서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 기술을 전력산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며, 신규 사업자들이 전력시장 및 산업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가 없이는 발전이 있을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물론 변화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전은 언제나 가능성을 품고 있다. 2025년은 전력산업의 탈탄소화를 비롯하여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여부를 시험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불신과 분열을 걷어내고 새로운 전력산업의 미래를 열어가는 힘찬 2025년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조용성

[EE칼럼] 우리 원전, 불가리아, 루마니아 찍고 체코로

지난해는 우리 원전 산업계에 가능성의 한 해였다. 탈원전 광풍에 휘청였던 우리 원전 산업계가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현대건설이 10조 원 규모의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건설사업을, 12월 한국수력원자력이 1.2조 원 규모의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개선 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작년 7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을 필두로 한 팀 코리아가 최대 24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우리 원전 산업의 경쟁력 핵심은 건설 공기와 예산에 맞춰 원전을 건설하는 시공 능력이다. 그런데 이는 온전한 원전 산업 생태계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작년 12월 갑작스러운 탄핵 정국에 탈원전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한 원전 산업계는 또다시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원자력 전공 기피 현상이 벌어진 대학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핵심 축인 원전의 안전 운영에도 결코 도움이 되질 않는다. 2025년 새해에도 우리 원전이 안정적 전력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체코를 비롯해 더 많은 나라에 수출되기 위해서는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의 완전한 정상화와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와 여야는 다음 3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원전을 더 이상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탈원전 그리고 탈탈원전. 정권에 따라 우리 원전 산업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러다 보니 우리 원전 기업들은 미래 예측을 하기 어렵게 됐다. 중장기 투자도 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선진 기술개발과 우수 인력 확보는 언감생심이 됐다. 우리 원전 산업의 미래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인 것이다. 이는 국가 경제에도 치명적 타격이다. 원전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 원전 산업의 미래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원전은 우리 경제와 산업의 근간이고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 원전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서도 그렇다. 더 이상 원전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상징적 조치로, 여야가 합의하여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 등을 제정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 봐야 한다. 둘째, 원전의 지속 이용을 지원하기 위한 핵연료 주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원전 운영을 위해서는 핵연료의 안정적 수급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및 처분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신규 원전 수요 증가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으로 세계 우라늄 시장이 요동쳤다. 우라늄 가격이 급등하고, 우라늄 공급부족이 만성화될 기미도 보였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대로 신규 원전이 건설‧운영된다면, 2038년 국내 농축우라늄 수요는 현재의 약 1.5 배가 된다. 핵연료 제작에 필요한 농축우라늄을 전량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원전 운영에 사용된 후 배출된 사용후핵연료가 누적되면서, 이를 저장할 공간도 부족해지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영구처분할 공간 확보가 급한 상황이다. 외견상 달리 보이지만, 핵연료 수급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용후핵연료에서 핵연료 물질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여부와 재활용 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방안 등을 포함해 우라늄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핵연료 주기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설 때다. 셋째, 원전의 지속적 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앞으로 수립될 핵연료 주기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에 우라늄 농축시설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시설을 건설‧운영해야 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들 시설의 설계‧건설 및 운영 단계에서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을 담보하기 위한 규제 요건들을 원자력안전법에 반영해 놓을 필요가 있다. 또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현실적 방법인 원전의 계속운전을 위해, 안전이 확인된 원전의 실질적 계속운전 기간을 10년 이상 보장하도록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외교부는 관련 부처와 협력해, 농축‧재처리 시설의 국내 건설에 가장 큰 걸림돌인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협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문주현

[EE칼럼] 전력수급, 지역수요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적 혼란에도 에너지산업과 전력시스템은 아직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한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큰 한파가 없어 아직까지 예년과 같은 동계피크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공급예비력에 여유가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전력수급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전력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지역별로는 어떻게 달라질지, 또한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전력망 확충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오리무중이다. 전력산업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바퀴의 축이 맞아야 제대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우리 전력산업 정책은 대부분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전력수급만 보더라도 여지껏 발전소나 송전망 건설과 같은 전원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물론 외형만 보면 전원개발의 산업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다. 근래 들어서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늘어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매년 적지 않은 지원금이 투입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십년 넘게 지원했지만 아직도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원개발 투자의 효율성도 주기적으로 집어보아야 한다. 우리 전력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아직도 여기저기서 보조금에 의존하는 개발러시는 여전하다. 공급주도 정책이 전원의 지역적 편중, 공급신뢰도 문제, 송배전망 부족, 보조금 확대와 같은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신규 전원과 송전망을 확충하겠다는 정부 주도의 개발계획은 수십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계획 무용론, 아웃룩(outlook)으로의 전환, 시장기능의 확대를 주장해왔지만 요지부동이다. 전기사업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기왕에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제라도 계획의 내용이나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수급계획의 초점을 공급보다는 수요에 맞추는 접근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요예측도 거시지표에 의한 방법이나, 여러 국가의 수요패턴을 활용하는 방식만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수요예측 니즈에 대응하기 어렵다.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획득은 물론 실시간 접근도 가능하다. 빅데이터가 순식간에 취합되고 분석이 가능한 시대다. 누가, 언제 어디에 얼마만큼의 부하나 수요를 유발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예측도 물론 가능하다. 만약 전력수요를 유발하는 계획이 취소 또는 변경되더라도 주기적인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수요예측의 핵심은 일정 규모 이상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종수요의 위치, 시기, 용량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수시로 취득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활용되어야 한다. 전력수요는 대부분 주택단지, 빌딩, 공장, 데이터센터, 공항이나 항만, 지하철과 같은 SOC에서 발생한다. 이를 보다 정밀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접근과 공학적 방식이 활용되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최소한 행정구역에 상응하는 지역별 수요예측이 필수적이다. 지역별 수요예측이 주어지면 이어서 어떤 공급방안이 가능할 것인지를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계통계획을 의한 공급 가능성도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만약 송전용량 제약으로 계통연계가 불확실하다면 지역 내에서 해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수급불균형이 큰 지역에서는 분산전원을 설치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수급 정보가 사전에 주어진다면 전력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는 공급 가능성과 조달방식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자체 조달하거나 판매사업자나 발전사업자로부터 직접으로 구매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다. 대규모 전기소비자는 이를 참조하여 스스로 입지, 규모, 공급방식을 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신도시에는 열병합발전이 들어서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산업체나 대규모 복합시설, 캠퍼스 등에도 앞으로 유사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이나 RE-100과 같은 국제적 규제체제 속에서 기업의 의사결정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에너지 공급비용만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은 물론 다양한 외부비용과 기업이미지도 고려하여야 한다. 앞으로의 수급계획은 특정전원 중심의 전원개발계획에서 탈피하여 상세한 지역별 전력수요 전망과 다양한 시나리오분석을 포함하는 수요전망리포트로 바뀌어야 한다. 이창호

[EE칼럼] 중국의 희토류 등 “광물 무기화” 시작됐는데 우리는?

중국이 지난달 3일 발표한 갈륨과 게르마늄 그리고 희토류 등의 대미 수출 통제는 향후 예상되는 중국의 “광물 무기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은 국제 관계에서 외국과의 갈등이 심화할 때 “광물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국방 무기 산업 등의 핵심광물인 희토류는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중국은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벌일 때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꺼냈다. 당시 중국은 대일 희토류 수출을 40% 줄였다. 그 결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희토류 가격이 40% 이상 급등하면서 공급망에 큰 혼란이 벌어졌다.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에서도 중국은 광물을 무기로 사용한 적이 있다. 작년 8월 중국은 반도체 핵심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대미 수출을 통제했다. 당시 각국은 중국의 갈륨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등 대응에 나섰다. 곧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중 제재를 강화하면 중국은 희토류 통제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낼 것이다. 희토류는 사실 희소하지도 않고 흙도 아닌지라 이름 자체가 모순이다. 홑 원소로 추출이 어려운 금속이라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전 세계 희토류 최대 매장과 생산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이 매장량, 산출량, 생산량 모두 세계 1위 이지만 세계 희토류의 90%를 가공하는 기술과 산업 체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전략적으로 의미가 더 크다. 희토류는 전자, 통신, 에너지산업, 자동차,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분야에 많이 쓰인다. 미 국방성에 따르면 스텔스 전투기 F-35 한 대에 희토류 광물 420kg이 쓰인다. 만약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중단 또는 제한하면 90일 이내에 미국의 주요 첨단 무기에 들어갈 재고가 소진된다. 희토류가 국제적 이슈화된 시점은 2010년부터다. 중국-일본 간의 다오위다오(일본명 : 센카쿠 열도) 분쟁은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쓴 최초의 사례다. 미국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토류 확보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희토류 수요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중국은 프럼프의 관세 폭탄에 대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희토류 관리 조례"는 산업 집중도 제고와 수출 통제 및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2030년부터는 자동차의 절반 가량은 전기차가 차지하게 된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엔진이 아닌 배터리와 구동모터이다. 특히 구동모터의 필수 소재는 희토류 이다. 희토류는 연비와 제품의 성능을 결정 짓는다. 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차, 로봇, 모빌리티, 풍력발전기와 같은 신재생에너지 제품 등 모터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제품에는 희토류가 필요하다. 2018년 희토류 세계 생산량의 30%는 희토류 영구자석을 만드는데 소비 됐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19년 38%, 2022년 40%, 2023년 43%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8년에는 그 비중이 68%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희토류의 중요성이 더 해지고 있다. 한국은 2023년 희토류 원재료 수입량의 60%, 희토류 소재.부품량의 89%를 중국에서 조달 받았다. 필수 산업의 핵심 원료에 대한 대중 의존도가 이처럼 높다 보니 세계 1위의 희토류 생산국인 중국에서 희토류 수출 제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산업계에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따른 오래된 긴장감으로 피로해진 국가들은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미국은 희토류 확보를 위해 2019년 8월 그린란드에 매장된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통째로 매입하고자 시도했다. 현재도 미국은 자체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는 2001년 정부의 희토류 확보 정책( 제1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2003년 10월 중국 희토 원료 생산업체인 서준신재료유한공사와 합작으로 “서한맥슨 희토류 가공사업"에 진출했다. 총 투자 규모는 1억 위안(약 160억원)으로 이 중 광업공단이 4900만 위안(약 80억원)을 투입, 지분 49%를 확보했다. 중국 섬서성 서안시 하이테크 지구에 있는 가공공장에서 매년 약 1000톤의 형광재, 연마재, 자성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시발점은 19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밝혔던 중국의 서부개발 참여의 일환이기도 했다. 광업공단은 중국산 희토류 공급망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상무부가 희토류 수출 통제 방침을 강화함에 따라 지분을 매각 하기로 했다. 문제는 희토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지분을 매각 하겠다는 것이 잘된 결정인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생산 제품의 국내 도입을 추진할 것이지 등 다각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아직까지 희토류 소비량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예측을 뒤 엎을 만한 신기술이나 대체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따라서 한국 제조업의 운명은 희토류의 독자 수급 체계 확보에 달려 있다. 새해도 미.중 간 무역 갈등으로 공급망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희토류 광산개발과 희토류 제품.생산 기업을 육성하는 등 독자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강천구

[EE칼럼] 2025년은 에너지정책 재균형의 적기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 출범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 정책 방향 대부분을 뒤바꿔 놓을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정책은 가장 크게 달라질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는 모두 에너지 정책을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내용은 완전히 상반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공급망 확충을 통해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했지만, 트럼프는 화석에너지 개발 확대를 통해 에너지 가격을 하락시켜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에 분명한 반대를 하는 것이다. 선진국 중심으로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의 지향점은 곧 탈화석에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산화탄소 주배출원이 화석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화석에너지 소비량은 2022년 기준 11,656 백만TOE이고, 2050년까지 남은 날 수는 10,591일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대형 원전 1기 혹은 태양광 패널 4백만 장에 해당하는 백만TOE의 화석에너지를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해야 2050년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탄소중립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국가 간, 세대 간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아직 탄소 문명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수많은 저개발 국가에 탈문명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또한 기후변화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구체적인 피해는 미래에 발생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당장의 탈문명을 현세대에게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화석에너지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는 에너지 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하향 조정되겠지만, 여전히 중심에너지의 위치를 지켜낼 공산이 크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기후변화협약, 탄소국경조정세 등과 같은 제도를 통해 인류 공통의 의제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탄소중립은 실현가능성과 별개로 전 세계 화석에너지 투자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인 것이다. 화석에너지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탄력적으로 증가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에너지 가격 전망은 어렵지 않다.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늘어나기 어렵다면, 화석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주력 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의 높은 발전단가가 더해지면, 전체 에너지 가격 수준의 상향 조정은 명약관화다. 가격 수준만 문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와 함께 가격 변동성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다가갈수록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발생하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의 급등락이 자주 반복되면서 에너지 위기의 상시화가 우려된다. 트럼프는, 탄소중립은 현실적 어려움으로 장기간에 걸쳐 해결할 과제로 인식하고, 미국 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가교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는 천연가스를 적극 개발하여 재생에너지로 기울었던 에너지정책을 재균형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리도 재생에너지와 원전 양극을 오가는 에너지정책을 바로 잡을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탄소중립에 따른 고에너지 가격 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인정하고 널리 알림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한편,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국가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자원개발과 시장가격 그리고 에너지복지 점검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에 이르는 우리나라가 자원개발 없이 변동성 높은 고에너지가격 시대를 맞는 것은 천수답 농사를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의 10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인 자원개발에 다시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기·가스 가격은 유권자 표만을 의식한 정치 흥정의 산물에 가깝다. 원가 따위는 아랑곳없다. 그 결과는 턱없이 저렴한 가격, 한전과 가스공사의 대규모 적자와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자주 사용했던 유류세 인하, 전기 및 가스 가격 인상 억제 등과 같은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시장 수급을 반영한 정확한 가격 신호를 통해 합리적인 수요를 유도해 변동성 높은 시장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 고에너지가격 시대 도래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빈곤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가격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촘촘한 에너지복지 그물망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것이다. 화석에너지 재평가, 가격 기능 회복, 에너지복지 향상을 근간으로 하는 균형 잡힌 에너지정책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박주헌

[EE칼럼] 2025년의 불확실성과 미-중 간 제조업 경쟁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2025년의 키워드는 단연코 불확실성(uncertainty)과 위험(risk)의 증대일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시작하는 2025년은 중동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기존의 위험들이 여전하여 21세기 들어 가장 거대한 불확실성을 맞닥트리는 해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COVID-19 사태가 사실 불확실성이나 위험성으로 보면 더 큰 위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전 세계가 상호 존중과 협력을 기반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국가, 특히 선진국들은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번에는 COVID-19 시기와 같은 우방의 도움이나 자비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에 불확실성과 위험의 진폭은 시간에 감에 따라 가라앉기보다는 오히려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에 발생할 다양한 변화 및 불확실성 중 특히 미국과 중국 간 4차산업혁명을 선점하기 위한 경주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AI와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두 나라의 21세기 후반을 선점하기 위한 경주는 우리는 이미 2024년에 미국의 IRA 법과 보조금을 둘러싼 논쟁과 미국의 엔비디아, 대만의 TSMC,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뉴스로 그 전초전을 경험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미국의 제조 경쟁력을 더욱더 높이는 쪽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의 에너지, 특히 전력 생산 인프라가 정책의 중심에 있다. 21세기 초반 미국이 자국 내 셰일가스 대량생산에 성공하였을 때 미국 정부는 자국의 전력 생산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가스로 바꾸면서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전력 생산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게 되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했었다. 미국은 현재 원유생산량 세계 1위이며 셰일가스는 수출하고 있는 에너지 수출국이다. 재생에너지 역시 상당하며 관련 첨단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나라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 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이 건설한 발전시설 건설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자력발전 계획 기수만 150개가 넘는다. 재생에너지 제조업 역시 세계 최고이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기의 제조업은 이제 중국이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중국의 전력 생산원가는 이미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보통신산업과 반도체 제조업에서 중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주지하다시피 제조업이 중요한 나라의 경우, 제조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와 용수 그리고 수출 과정에 필요한 도로와 항만 등은 필수적인 공공 인프라이자 공공 서비스이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 통신, 자동차, 이차전지, 조선산업 등은 모두 에너지와 용수 그리고 도로와 항만이 필수적인 산업이다. 2022년 우리나라의 총 전력 사용량은 547.9TWh이며 이 중 제조업이 49%에 달하는 266.9TWh를 사용하였다. 제조공정은 물먹는 하마이기도 하다. 제조업의 운영에서 제품에 들어가는 주요 원자재는 물론 양질의 에너지와 물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이러한 인프라에 대한 투자 부진과 NIMBY 현상 및 지중(地中)화 요구로 인한 사회기반 인프라 건설비용의 급증을 경험하고 있다. 지중화를 해서라도 지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하여 미국은 우수한 전력 생산 인프라를 건설하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실질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는 제조업, 특히 4차산업혁명에 관련된 제조업이 다수인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첨단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 있어서 전력, 물, 도로로 대표되는 국가 인프라건설에 대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과 지역주민의 협조가 결정적인 이유이다. 여기에 뒤처지게 되면? 그 답은 다들 잘 알고 있다. 2025년이야말로 우리 모두 그 노력을 함께 시작할 가장 좋은 시점이다. 허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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