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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LNG와 석유, 한국 산업 지배력 유지에 필수불가결

한국은 오랫동안 산업의 힘, 기술 혁신, 글로벌 야망의 찬란한 아이콘이었다. 반짝이는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울산 산업단지의 고동 소리 아래에는 섬세하고 필수 불가결한 에너지라는 실타래가 있었다. 한국은 에너지 수급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최근 석유, 천연가스, 석탄 수입을 두 배로 늘리는 대담한 조치를 취했다. 탈탄소화 요구가 지배적인 시대에 논란이 되는 이 결정은 산업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경제 엔진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의 실용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한국의 산업은 경제의 생명줄이다. 현대, 기아 같은 거대 자동차 기업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리더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글로벌 명성은 공장의 열기와 최첨단 생산 라인의 정밀성에서 형성된다. 중공업(화학, 철강, 전자, 기계)에서 섬유산업, IT, 농업, 축산, 수산에 이르는 산업의 중심지인 경기도와 석유화학 수도로 알려진 울산과 같은 지역에서는 칩 제조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집약적인 활동이 급증해 안정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전력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 울산과 광주와 같은 전통적인 산업 허브가 계속 번창하는 가운데, 정부의 에너지 전략도 신흥 중심지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정부가 이 지역을 최첨단 제조업 지역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30억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이미 배터리 생산과 로봇 공학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 상당한 에너지 투입이 필요하다. 이 경제를 구동하려면 대량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주로 수입으로 이를 충당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 주요 에너지의 약 80%가 화석 연료에서 생산된다. 석유가 대부분울 차지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석탄이 그 뒤를 따른다. 이는 2000년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원자력은 전력 생산에 세 번째로 높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는 국가 에너지 수요의 대부분이 화석연료 수입을 통해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터 분석 회사인 우드 매켄지(Wood Mackenzie)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2050년까지 LNG와 석유는 한국 경제에서 계속해서 강력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석연료 수입 시장에 대처하고 낮은 에너지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을 고려할 때 한국은 자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는 현재 전력 생산을 위한 LNG와 석탄에 대한 소비세 인하를 2025년 6월까지 연장했다. 이를 보완해 LNG에 대한 수입 관세는 0으로 유지되며, 이는 3월 말까지 연장된다. 이러한 표적 개입은 에너지 부문의 금융 환경을 안정시키고 중요한 인프라 복원력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2024년 10월에 인상이 예정됐던 가정용 전기 요금 동결을 허용했다. 현재 카타르와 오만 LNG 계약이 898만톤에 달하는 상황에서 한국가스공사(KOGAS)는 3년에서 15년에 이르는 유연한 중기 계약을 통해 약 400만톤을 확보하고 잠재적인 미국 장기 LNG 인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역동적인 조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카타르는 한국의 액화천연가스(LNG) 2위 공급국으로, LNG 전체 수입의 19.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1월 카타르와 한국은 장관급 회담을 서울에서 가졌고,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양국은 에너지 공급에 대한 강력한 협력을 유지하고 조선 프로젝트에도 진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미 2024년 7월, 한국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와 15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ADNOC는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 8~10척의 LNG선을 건조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양국은 또한 향후 10년간 양국 간 전체 수입량의 90% 이상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다. 가스공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석유공사(KNOC)도 전략적 비축량을 약 300만배럴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계산된 조치는 잠재적인 공급망 중단에 대한 강력한 완충 장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석유공사는 쿠웨이트석유공사와의 획기적인 계약을 통해 전략적 석유 매장량을 확보해 2024년 말까지 석유공사 울산 저유시설에 400만배럴의 쿠웨이트 원유를 저장할 예정이다. 한국은 일본, 중국, 호주에서 LNG 수입을 늘리고 중동에서 원유 수입을 계속 늘리고 있다. 기후 정책의 악당으로 묘사되는 석탄조차도 2021년 이후 인도네시아와 호주로부터 수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차세대 제조 허브를 육성하면서 기존 산업을 유지하는 한국의 이중적인 접근 방식을 강조한다. 양국의 즉각적인 에너지 수요를 해결해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탄소 없는 미래에 대한 이상주의적 비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과 같은 산업 강국은 에너지 안보로 도박을 할 여유가 없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반영한다. 오늘날 선택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혁신하고 경쟁하며 번영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결정할 것이다. 한국에서 산업의 불꽃을 유지하려면 국가가 모을 수 있는 모든 에너지가 필요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석탄, LNG, 원자력은 다음 세대 한국을 경제 패권국으로 계속 이끌 것이다. 비제이 자야라지(Vijay Jayaraj)

[김성우 칼럼] 2025년, 기후변화 대응의 딜레마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2024년 기후변화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뉴스는 1.5도 붕괴 가시화와 트럼프의 재당선이다. 지난 11월 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서비스(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에 따르면 올해도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라는 발표와 더불어 2024년이 1.5℃ 마지노선이 처음으로 붕괴되는 해로 1.55℃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의 1.5℃ 상승이라는 마지노선은, 2015년 파리 협정의 전지구적 장기 목표가 수립되고 잇따라 그 근거에 관한 보고서가 채택되며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지구 면역체계에 상당한 붕괴를 촉발할 수 있는 임계점(tipping point)을 의미한다. 즉, 연쇄적인 기후재앙이나 회복 불가능한 생태계를 직면할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EU 감시기구 발표를 차치하더라도, 난생 처음 경험한 폭염 추석에서 송편이 쉬고 수영장이 북적이는 그 이상한 경고를 우리도 절감했다. 1.5℃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은 탄소중립 선언이나 목표 수립 단계를 넘어 행동의 가속화를 지속적으로 요구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기후변화를 사기라고 생각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예측이 어려운 내년을 마주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의제를 비난하거나 그린 뉴딜을 사회주의 정책으로 폄훼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으로 향후 기후변화 정책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반된 두 소식에 2025년 기후변화 대응 관련 이행의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들은 고민이 보다 짙어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더 이상 기후정의나 환경에 국한된 의제가 아니라 산업∙통상과 연계된 경제 현안이 되어 기업의 중요 의사결정 사항인 바, 기후위기 심화와 트럼프 2기 출범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시작하는 2025년에 기업이 고려할 사항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앞으로의 상황을 냉정하게 조망해 보면, 트럼프 2기의 정책 변화로 인해 기후국제협력은 약화되고 미국내 에너지는 기술별 차등화가 심화될 것이며 환경 규제는 완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로 인한 국제사회에의 영향이 중장기적으로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제사회는 1.5℃ 저지선의 붕괴로 인해 트럼프의 영향보다 거대한 기후위기에 노출되고 있어, 기후변화 대응은 더 부담스러운 숙제로 다가올 것이고, 사회내 이해관계자들의 기후변화 대응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트럼프 1기 시절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천연자원보호위원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NRDC)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거의 매주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기후위기가 심화된 지금은 더 넓은 전선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청정에너지 기술 확산, 탄소국경세를 포함한 탄소배출정보 요구 등의 국제사회 흐름은 미국 대통령이 이를 홀로 지연하거나 철회하기에는 이미 거대한 추세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작년 기준 글로벌 재생에너지 신규설치 용량이 473GW인 반면 미국은 31GW로 집계되어, 미국의 재생에너지 감소가 글로벌 추이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의 前 USTR 대표는 탄소국경세 도입에 긍정적이고 반스 부통령도 미국내 제품이 타국 대비 탄소배출량이 낮다고 발언해 미국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기업들은 관련 기술의 선제적 확보와 탄소배출 정보관리에 있어 위험을 줄이면서도 기회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할 시점이다. GDP대비 수출입비율이 90%에 육박하는 한국인 만큼 정부도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내년 상반기에 2035년 NDC설정 및 제4차 배출권거래제(ETS) 할당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이를 통해 기업이 탄소배출 관련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가격 시그널을 주어야 하고, 한국판 IRA같은 종합지원책을 마련해 글로벌 경쟁사 대비 공평한 기술 수요 및 시장을 형성해 줌으로써 기업의 의사결정을 도와야 한다. 트럼프는 임기가 있지만, 기후변화는 임기가 없다. 김성우

[EE칼럼] SK어드밴스드가 던진 질문: 전력시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최근 24년11월7일 본지에서 단독 보도 된 SK어드밴스드가 전력 도매시장 직접 접근을 모색한 사례는, 우리 전력시장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현재 한국의 전력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는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도매시장에서는 다수의 전력 공급자가 있지만, ㈜한국전력이라는 단일 독점 수요자가 존재하며, 소매시장에서는 ㈜한국전력이 독점 공급자로서 모든 전력 소비자를 상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시장의 기본 원칙인 자유 경쟁과 완전 경쟁의 정의에 어긋난다. 전력시장의 개방이 왜 필요한가?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넘어서 경제 효율성의 문제로 연결된다. 도매 전력 가격이 소매 가격보다 낮다는 점은 경제적으로 명백하며, 기업들이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다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PPA(전력구매계약)는 이미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형 RE100의 핵심 수단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는 전력시장이 유통 과정을 축소하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SK어드밴스드의 사례는 이와 같은 흐름을 잘 보여준다. 기업 입장에서 도매시장 접근권은 단순히 비용 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본질적 권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마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것과 유사하다. 중간 유통업자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거래 효율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한국전력의 역할 변화는 불가피하며 이러한 변화의 핵심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미 정부 당국자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손을 대고 있지 못할 뿐이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망 구축 사례를 보자. 한국전력은 전용 송전망 구축 비용을 기업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업들은 이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만약 기업들이 시장에서 전력을 도매가격으로 직접 구매할 수 있다면, 송전망 구축 비용 역시 자발적으로 감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송전망 구축 비용도 물면서 소매가격으로 전력구매를 하자니 억울한게 아닌가. 정부가 ㈜한국전력의 재정난을 이유로 도매시장 개방을 막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명분 모두 부족하다. 도매시장 접근권을 차단하는 것은 국영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려는 행위로, 자본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굳이 전기사업법 제32조를 근거로 한 법적 분쟁의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전력시장이 시장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전력도 공정한 가치가 매겨져야 하는 상품의 하나이다. 이는 경제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자원으로, 그 시장구조가 공정하고 효율적이어야만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시장은 정치적 시혜나 소득 재분배의 도구로 악용되며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켜 왔다. ㈜한국전력의 독점 구조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으며,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접근성은 자본주의의 핵심 근간이다. 우리가 비웃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이, 공급자에게는 충분한 보상도 안 주고 제품생산을 강요하며, 소비자에겐 어처구니 없이 싼값에 상품을 제공하는 거 아닌가.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정부가 시장의 중간에 끼어서 공급자는 소매시장에 접근 못하게 하고, 소비자는 도매시장에 접근 못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전력시장은 그와 다를 바 없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력시장에서 중간 브로커로서의 역할과 존재를 강제시키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연결될 수 없게 적극적으로 방해자를 두고 차단벽을 치는 것이다. 전력시장 개방은 공급자에게는 더 나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할 기회를, 소비자에게는 더 낮은 가격으로 전력을 구매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전력시장이 진정한 시장다운 구조를 갖추는 첫걸음이다. ㈜한국전력은 독점적 역할에서 벗어나야 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과감한 정책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정치권은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그러나 권력이 어느 방향으로 재편되든, 미래를 이끌 새로운 권력에게 전력시장 개혁은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낼 강력한 이니셔티브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제안한다. 보수 진영에게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적용하는 정책으로, 진보 진영에게는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매력적인 아젠다를 제공할 수 있다. 유종민

[EE칼럼]중국산 태양광시설들이 전국 산림을 파괴할 거라는데...?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산림을 파괴할 것입니다." 지난 12월 12일 대통령 담화를 듣던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는 곧바로 전문을 찾아보았다. 아뿔싸! 그대로였다. 일국의 대통령이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의 한 요인으로 '중국산 태양광'을 꼽은 것이다. 지난 3년 윤석열정부가 재생에너지에 적대적인 정책을 펼쳐온 것을 우려해왔지만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고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인식을 살펴보고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보자.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여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 도입이 제한된 유럽연합은 에너지 위기에 처했다. 유럽연합은 파이프로 싸게 들여오던 러시아 가스 대신에 좀 더 비싼 미국의 LNG를 들여와야 했다. 이와 함께 주춤하던 태양광 발전 설비의 보급을 확대하였다. 외국의 에너지 자원에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립에너지인 태양광의 확대는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90% 이상의 에너지를 수입하기 위해 연간 200조원을 써야 하는 우리에게 자립에너지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태양광은 또한 청정에너지로서 탄소 감축에 핵심적인 수단이다.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조정제도에 적극적인 것은 그동안 재생에너지 확대에 누구보다 앞서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부족한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재생에너지 사용이 국내보다 더 유리한 해외 사업장의 확대에 가중치를 둘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처럼 태양광 발전은 우리의 안보를 해치는 적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튼튼하게 하고 미래의 먹거리 산업을 주도할 중요한 산업으로서 우리의 아군이다. '중국산'은 주적인가?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산업국가이다. 세계 교역량 순위 6위인 우리나라는 국내 시장이 독자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크지도 않고 부존자원도 부족하다. 우리 경제가 현재의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오롯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판매한 수출기업들에 의존한 바 크다. 더구나 21세기 들어 우리의 최대 교역국가는 중국이다. 무역수지에서 우리가 가장 이익을 보는 나라이기도 하다. 시골 5일장의 장돌뱅이도 내 물건을 많이 사주고 나도 사오는 거래처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빈말이라도 상냥하게 하고 서비스라도 하나 더 준다. 윤석열 정부 초기 급감했던 대 중국 수출이 왜 발생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국내에 설치한 태양광 셀 중 중국산의 비중은 74.2%에 달했다. 2019년 33.5%였던 중국산 비중이 4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국산 셀 비중은 2019년 50.2%에서 지난해 25.1%로 줄었다. 바로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왜 이리되었을까? 첫째는 중국의 퀀텀 전략의 성공이다. 21세기 들어 재생에너지 연구·개발 및 보급에서 세계 최대의 투자국은 중국이었다. 우리의 반도체와 무선통신이 세계 일류가 되었듯 중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이미 싸고 효율 좋은 수준에 들어서고 있다. 폴리실리콘과 웨이퍼, 셀, 모듈 등 세계 태양광 산업 공급사슬의 70~80%를 중국산이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째는 국가 온실가스 저감목표의 하향 조정과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등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의 축소에 기인한다.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패널제조업체들은 미국이나 유럽, 중동 등 새 시장을 찾아 떠났다. 며칠 전 태양광 셀 제조업체인 한화큐셀은 세계 최초로 페브로스카이트 적층 셀의 상용화에 한발 다가섰다고 발표했다. 기존 실리콘 셀과 페브로스카이트 셀을 적층하여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함으로써 발전효율을 28.6%까지 끌어올려 독일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 시스템연구소로부터 국제 인증을 획득한 것이다. 이 셀이 상용화되면 현재의 셀보다 15%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일류에 진입하고 있는 '중국산 태양광'을 극복하는 길은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국내 보급 시장을 확대하는 데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비를 삭감하고 한국과학기술원 학위수여식에서 이에 항의하는 학생의 입을 틀어막고 쫓아내는 사태가 다시 발생해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끝으로 '전국의 산림'은 어떤지 살펴보자. 2018년 2443ha로 최고치를 기록한 태양광 목적 산지전용 허가 면적은 점차 줄어들어 2020년에 229ha로 급감하고 2021년 상반기엔 32ha에 불과했다. 2018년 산림청이 산지전용허가 경사도 기준을 25도에서 15도로 강화하고 2019년에는 환경부가 생태자연1등급 지역을 회피지역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에 이미 산지 태양광 발전은 매우 어려운 사업이 되었던 터이다. 국가의 모든 고급 정보가 올라오는 대통령실에서 무엇을 보고 정책 결정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새해에는 정상적인 경제 인식을 가진 이들에 의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기를 희망해본다. 신동한

[EE칼럼]기후변화 대응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명연설이 있지만 고(故)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했던 연설 중 'Connecting The Dots'라는 부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요약하면 인생 속 경험과 과정들을 일련의 점으로 표현하고 그 점들을 연결하다 보면 현재의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한 점은 미래의 우리와 후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 노동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1월 개최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가 막을 내렸다. 이번 총회는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막 전부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이력이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주요국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대거 불참 의사를 밝히는 등 난항이 예상되었고, 개막일에는 100여 명의 국가 및 정부 수반이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는 와중에 개최국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는 화석 연료를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며 기후변화를 서방의 가짜 뉴스에 비유해 비난했고, 환경단체나 정치인들이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연설을 해 참석자는 물론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참석한 정상들과 회담을 통해 자국의 가스를 수출하는 협상을 벌이는 등 반 기후적 행동도 서슴없이 했다. 이번 COP29에서는 국제 탄소 시장 운영을 위한 표준 확정(파리협정 제6조), 선진국이 기후 재원을 매년 최소 3,000억 달러(약 420조 원) 조달 합의, 2025년 이후 신규기후재원조성목표(NCQG)를 수립하기 위한 논의 진행 등의 일부 결과가 있었지만, 파리협정 제6조 이외에는 사실상의 성과라고 보기 어렵고 개도국이 요구하던 5,000억 달러(약 700조 원)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기후 재원에 합의하는 등 개도국의 불만이 크게 제기되었다. 이에 국제환경법센터(CIEL)의 니키 라이쉬(Nikki Reisch) 기후·에너지 책임자는 'COP29는 재앙(dumpster fire)이었다'라고 비난했다. COP29에서의 제한적인 성과와는 대조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이 그 중심에 있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24년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는 약 600GW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약 600기에 해당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홈페이지에 명시된 11월 현재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총용량 374.531GW의 1.6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태양광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요국은 2024년 신규 태양광 설치량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은 2023년 216.9GW에서 2024년 최대 260GW를 설치할 것으로 보이며, EU는 2023년 51GW에서 2024년 최대 64GW, 미국은 2023년 24.8GW에서 2024년 최대 40GW, 인도는 2023년 10GW에서 2024년 최대 23GW(11월까지 20.8GW 신설), 독일은 2023년 14.3GW에서 2024년 최대 18GW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주요국에서 신규 발전설비의 70~80%를 태양광이 차지하고 있어, 태양광이 이미 주력 발전원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사태로 정세가 요동치고 있고, '탄핵 정국'의 후폭풍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모든 정책은 표류하고 있고 특히 당장 시급한 기후·에너지 정책은 길을 잃은 모양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비롯해 제4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년 감축 목표) 수립이 대표적인데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COP29에서 우리나라는 2년 연속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3위에서 올해는 1위로 올라서는 등 글로벌 기후 악당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얼마나 미흡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며, 이러한 오명은 향후 국제 협력에서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현재의 정치적 불안정은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있어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과감한 투자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대응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부디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 대한민국이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황민수

[EE칼럼]막판 탈원전 정책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매우 묘한 시기에 발생하였다. 정권의 마지막 해였던 2022년이 되자 탈원전을 선언했던 많은 유럽 국가들이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에너지가 부족해지자 탈원전의 선두주자였던 독일도 폐기하려던 원전의 재가동을 시도하였다. 영국은 원자력발전 비중을 현재 16%에서 2050년까지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고 일본도 당초에 폐기할 계획이었던 원전 3기를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이태리, 스위스, 벨기에 등 탈원전을 선언했던 나라들이 기존원전의 계속운전을 추진하거나 신규원전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불가리아, 체코, 폴란드, 네덜란드 등은 신규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소형모듈형원자로(SMR)이 대형원전을 건설할 수 없는 나라의 희망이 되면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중국 등 여러 나라가 각자 고유한 SMR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가 도입되면서 데이터센터 한 곳에 필요한 전력량이 원전 5기분에 달하고 그런 데이터센터가 5곳 이상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전에 대한 수요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는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2년 유럽연합(EU)는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원자력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것이다. 또 2023년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포함하여 무탄소 에너지를 현재보다 세 배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조짐은 2018년 송도에서 개최된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에서도 있었다. 지구온도상승을 1.5도씨 이내로 낮추기 위한 4가지 시나리오중 하나만 원자력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고 나머지 3개의 시나리오는 적게는 50% 많게는 400%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첨단 원자력 즉 소형모듈형원자로를 전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탈원전을 선언한 시기는, 탈원전을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주장했던 나라들이 친원전으로 돌아서려는 바로 그 시기였던 것이다. 물론 우리보다 약간 먼저 탈원전을 선언하고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대만이 유일한 예외지만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다들 친원전으로 돌아서려는 시기에,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유일한 예외국가인 독일을 따랐다. 사실상 독일의 제조업이 높은 전기요금 때문에 숨이 막혀가고 있는 상황을 못 본 체 하면서 예외를 마치 좋은 사례인 양 포장하였다. 원전가동을 멈추게 하고 신규원전 건설을 하지 않으면서 태양광 발전을 턱없이 늘렸기 때문에, 가정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은 각각 50%와 70% 인상하였다. 한전의 부채는 1백조 원에서 2백조 원으로 늘었다. 꼭 그 때문은 아닐지 모르지만 마무리가 되어가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수출은 멈춰섰고 영국 원전수출에서는 우선 협상자 지위를 상실하였다. 그간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국내에서는 신한울3·4호기 건설이 5년간 중지되었고, 천지1·2호기와 대진1·2호기는 백지화되었고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원전부품 공급망이 일부 붕괴되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웨스팅하우스이다. 미국내에서 40년간 원전건설을 하지 않다가 4기의 원전건설이 정부지원하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보글3·4호기는 7년의 공기지연 끝에 지난해와 올해에 준공되었고 VC 서머2·3호기는 건설하다가 중간에 포기하였다. 그 결과 웨스팅하우스는 도산하였고 소유자였던 도시바는 헐값에 이를 캐나다의 헤지펀드에 매각하였다. 문제는 웨스팅하우스를 놓고 도시바와 수주경쟁을 하였던 우리나라 두산중공업이 탈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고 2천 명 감원, 두산건설 매각, 산업은행 1조원 차입경영을 할 때였기 때문에 구매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월성1호기을 조기 폐쇄하여 2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한빛3·4호기를 5년간 정지시켜 10수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그보다 더 한 것은 신한울1·2호기의 준공이 2년여 미뤄지고, 신한울3·4호기 건설이 5년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손실이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했다. 득도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많은 국민이 원자력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원자력 사회는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원전 안전성에 대한 폄훼를 극복하고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 대한 확실한 오해불식 등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재인식이 미래 원자력 산업의 나아갈 길을 평탄히 해주었다. 이제는 안보와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영역에 무지한 정치의 간섭을 막아야 할 때이다. 정범진

[EE칼럼] 기상 재난과 전기 안전

올해 우리는 극과 극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 기상 관측 역사상 114년만에 폭염이 오더니, 117년 만에 폭설이 왔다. 폭염으로 전기 공급도 최고치를 기록하더니, 경기남부와 충청지역에 11월에 몇일 만의 폭설로 경제적 피해와 인명피해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3대 재보험사 중의 하나인 뮌헨 재보험사(Munich Re) 사 발간한 2022년 보고서를 보면 22년에 폭풍, 가뭄, 지진, 화재 등 자연재해로 인한 글로벌 보험사 손실액이 약 1,200억 달러, 비 보험 포함시에는 약 2,700억 달러라고 한다. 2022년 자연재해 보험금은 2017년에 비해 3배 증가하였고 지급 건수도 4.3배 증가하였다고 한다. 유럽의 기상 재난 손실은 2021-2023년에만 162 billion 유로에 달하여 최근 10년동안의 손실액 중 22%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은 더 심각하다. 미국 보험사는 홍수, 허리케인, 폭염 등의 극단적 기후로 인해서 매년 경제적 손실이 20–55 billion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 기후변화 평가에 따르면 과거에는 극단적 기후로 인한 피해가 4개월 마다 약 10억 달러 비용이 소요되었다면 최근에는 3주마다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에서 2022년 동안 매년 피해액은 1500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흔히 기상재난 피해가 폭우, 폭설, 폭염, 태풍, 산불 등과 연관 되었다는 것은 잘 안다. 최근 발생한 태풍은 30년 전과 비교해 풍속 20km/h 증가했으며 강수량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2023년에만 전기 화재가 8,871건, 재산피해액은 1,823억 원에 달하고 있다, 물론 일상적인 누전 등의 원인도 있으나 기상재난으로 인해서 자주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서부 전력 협력 위원회는 건설 및 복구 비용이 통상 인구 밀집 지역이 인주 저밀도 지역 보다 1.59배 많다고 하였다. 그러니 한국처럼 인구 밀집이 높은 곳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와 전국 도시들은 올해의 기록적인 폭염과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여름 전기요금이 가구당 평균 719 달러 증가한 것으로 나왔는데 이는 2023년 대비 8% 인상을 의미한다. KB 손해보험에 따르면 기상 재난 피해액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7년 3947억 원에서 2018년에는 7058억원, 2020년에는 1조 3098억원, 그리고 2022년에는 1조 2559억의 피해를 보였다는 것이다. 심각한 기상 재난에 대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많다. 유럽에서는 2014년 - 2017년동안 15개 기관이 참여한 RAIN(Risk Analysis of Infrastructure Networks in Response to Extreme Weather)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재난 모의실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기상재난 피해 상황의 예측, 신속한 복구를 위한 전력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재난관련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북미 전력 신뢰사 일명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rporation(NREL)에서는 2012년 22조의 경제적 피해로 인해 GDP의 2퍼센트 하락을 가져온 초대형 허리케인 Sandy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호주에서는 약 79만명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에르곤 에너지는 혁신적인 전기안전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현장 대응팀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는 중앙 플랫폼운영을 운영중이며 GIS와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사고 시각화, 고객 대응, 침수 분석, 주요 사고 결함 분석 등 모든 요소를 시각적으로도 표출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도 기반시설관리법이 통과되어 154kV 이상의 송전선로(전력구, 철탑 및 스위치야드 설비)를 대상으로 노후 고려 성능평가, 설계 자료 및 점검이력 결과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2020년 기준 총 578km전력 시설물 중 30년이 경과한 시설물은 10.8%이지만 2030년에는 약 32.5%가 30년을 경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럼으로 대대적인 전기안전 관련 투자가 있어야 한다. 전기에 관한 한 “순간의 방심이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은 최우선 과제다. . 김정인

[EE칼럼]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의 갈림길에서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4년은 한국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화된 갈등과 대립을 겪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우려가 크다. 마침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 하게 되면서 글로벌 정치경제에 여러 불확실성마저 더해지고 있다. 이렇듯 국내외 정세가 복잡한 가운데 한국의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2025년 예산안을 둘러싼 갈등은 한국의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의 단면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부분은 핵심적인 쟁점 사안 중 하나로 부상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 주도로 통과된 예산안은 기존 정부안보다 4조 1000억 원이 감액된 673조 3000억 원 규모였는데, 이 중에서 에너지 정책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의 예산은 정부안에 비해 675억 원이 감액된 11조 4336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윤석열 정부 주도의 국정 사업이라는 인식이 확대된 동해 심해가스전 개발,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예산이 거의 전액 삭감된 것이다. 이는 산자부의 감액된 예산에서 무려 74%에 해당하는 금액(500억 가량)이다. 석유공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석유공사가 자체적으로 추진해 왔던 사업이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이니 만큼 사업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해서라도 탐사시추 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 현재 석유공사의 상황이다. 또 다른 윤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원자력과 관련해서도 예산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가 분분했다. 산자부의 안 그대로 추진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미래 기술 개발과 관련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기업과 정부가 함께 설계하기로 한 소듐고속냉각로(SFR) 예산이나, 양자 파트너십 대학 지원 등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던 것이다. 이는 윤 대통령의 2차 담화 내용과는 차이가 있지만, 윤 정부는 친 원자력인데 반해 야당은 반 원자력이라는 언론 프레임에 의해 원자력 업계를 둘러싼 논란과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것만큼은 부정하기 힘들다. 한편 결과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관련 예산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산안 통과 직후 11일, 나라살림연구소, LAB2050, 기후환경단체 플랜 1.5 등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5년 정부의 전 부처에 흩어져있는 기후변화 대응 관련 프로그램 예산을 모두 합산한 금액은 총 3조 7528억 원으로, 2022년의 4조 8115억 원에 비해 22%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줄어든 항목은 대부분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항목으로 무려 57%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상풍력 산업 지원과 탄소중립형 선박용 석유 대체 연료 보급 사업의 경우에는 2024년과 비교하여 전액이 삭감되었고,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가격을 보조해주는 지원책 역시 2024년도와 비교해 340억 원, 즉 54% 정도가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립은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일관성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은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과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보다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국민의힘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보다 방점을 찍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이 서로 충돌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두 과제가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같은 화석연료 사업은 성공한다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테지만, 탄소 배출을 줄이고 탈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예산 확대는 에너지 전환 차원에서는 분명 필요하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한국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화석연료 및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통해, 아울러 탈탄소 기술 개발을 계속함으로써 단기적 안정성과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모두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2025년은 한국이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을 회복하고, 에너지 안보와 전환을 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각자의 당리당략에 의한 대립을 넘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하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정책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와 기후 문제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와 미래 경제 패러다임을 결정할 핵심적인 과제다. 한국 정치권이 이 두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통합하며 국제적 신뢰를 유지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지에 따라 2025년이 진정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임은정

[EE칼럼] 배출권거래제 10년, 성과와 과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국가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총량과 기업별 할당량을 정한 후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다. 감축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고,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배출권을 사들여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이다. 시장 기능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유럽을 비롯해 많은 국가가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2012년 녹색성장기본법을 통해 도입을 확정했으나 어려운 경제 사정과 산업계의 반발 등으로 진통을 겪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시행되었고, 올 해 10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배출권거래제도가 거둔 성과는 무엇이며,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은 무엇일까? 배출권거래제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이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참여기업의 99% 이상이 매년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고 있고, 제도 운영 경험의 축적과 실효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제도가 안착 중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에도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였고, 2019년 이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추세가 과연 배출권거래제 효과인지 불분명하며 여전히 제도 운용에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상존한다. 엇갈리는 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배출허용총량 간의 괴리 및 정책의 일관성 결여이다. 정부 발표처럼 국가 배출량의 70%에 해당하는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감축목표를 매년 충실하게 달성하였는데, 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 계속 증가했으며, 왜 국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제도 도입 1단계('15~'17년) 때의 국가 목표는 기준시나리오(BAU) 대비 30% 감축이었지만, 2단계('18~'20년) 때의 목표는 BAU 대비 37%로 강화되었고, 현재 진행 중인 3단계('21~'25년)에서 반영해야 하는 국가 목표는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이다. 이처럼 국가 목표는 국제 정세에 따라 계속 강화된 반면, 배출권거래제도의 배출허용총량과 각 기업에 배정하는 할당량은 국가 목표의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항상 한발 뒤쳐져 있었다. 더구나 정권이 변할 때마다 정책 우선순위와 강조점이 달라지면서 배출권거래제도의 역할과 기능에 붙임이 있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참여기업은 매년 주어진 목표를 충실하게 달성해 왔다곤 하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한 감축목표가 할당되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줄어들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참여기업의 감축목표에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는 것 외에도 전기 수도 등 간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도입 당시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산업부문의 전기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그로 인해 발전부문에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과도하게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간접배출원 포함문제는 중복산정 및 배출량 감축의 직접적인 효과 측정을 어렵게 하는 등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어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다른 국가들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의 지적이 계속되고 있고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이를 개선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약 1만원 수준인 반면, 유럽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가격은 약 10만원 수준이다. 기후변화를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는 한국에서 배출되던 유럽에서 배출되던 그 영향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온실가스 1톤을 배출하는 비용이 한국에서 배출하는 비용보다 10배 높다는 것은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세와도 연관성이 크다. 기업은 낮은 배출권 가격을 원하고 정부는 기업의 국제경쟁력 등을 고려하여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탄소시장에 개입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나름 배출권 가격의 안정화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낮은 배출권 가격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술 투자 및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축시키고 있다. 현재 2026년부터 시작하는 네 번째 배출권거래제기본계획에 대한 이해당사자와 다양한 집단의 의견수렴이 진행되고 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산업계는 기업의 비용부담과 경쟁력 저하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반면 시민단체는 보다 강력한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 정부는 과연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답은 어려울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제1장 제1조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의 목적은 “시장기능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핵심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기반으로 배출허용총량을 명확하게 결정하고 이를 참여기업에 공정하게 할당함과 동시에 배출권 거래가 투명하게 거래되고 가격 신호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탄소시장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모쪼록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배출권거래제도의 새로운 10년이 성공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지혜로운 결정이 도출되길 기대한다. 조용성

[EE칼럼] SMR 시대와 팀 코리아의 i-SMR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 에너지는 무거운 핵이 가벼운 핵들로 분열하면서 질량 결손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이 열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형태로 활용한다. 대량의 석탄이나 가스를 태워서 고온을 만들어내는 대신 원자로를 사용하는 것인데, 비슷한 운전인력과 자본으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경제성이 더 좋기 때문에 종래에는 원전을 더 크게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모델인 APR1400(전력 1400메가와트 생산)은 그런 관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형 원전 모델 중 하나이다. 반면에 300메가와트이하의 전력을 생산하는 소형 원자로는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낮으니, 그동안은 러시아나 미국 등에서 잠수함과 항공모함 등 군사목적 선박이나 극지에서의 활용에 국한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최근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규격화되고 공장제작으로 생산되는 소형모듈형원전(SMR)이 현장에서 십여년에 걸쳐 건설되는 대형원전과 경제성으로도 경쟁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종래 대형원전에서는 안전설비를 강화하면서 비용이 계속 증가하였는데, SMR은 특유의 안전성 덕분에 주변에 방사선 비상대비구역조차 설정할 필요가 없게 되니 안전성은 물론이고 사회적 수용성도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 탈탄소 에너지원 중에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출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뿐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에너지에서는 자연적으로 어쩔 수 없는 간헐성이 생기는데, SMR의 탁월한 출력조절력은 이런 간헐성을 보완해 주어 신재생에너지와 결합해서 사용하면 최상의 탈탄소 조합이 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는 SMR의 바람이 거세다. 최근에 계속 보도된 것처럼 AI나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대량 전력 소비 기업이 원자력으로 생산한 에너지를 직구매하는 것은 비즈니스 연속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탄소배출을 피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선택지이니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기업이 원자력을 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현존하는 발전소를 활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최근의 계약은 모두 SMR을 도입하는 계약이다. 국가나 주정부 차원에서도 원자력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많은 주정부들이 SMR,을 도입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고, 텍사스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SMR로 전환하기 위한 조사도 진행되었다. 북유럽의 부국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전기생산은 물론이고 지역난방을 저탄소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고자 SMR을 도입하고 있다. 유럽에서 새로운 SMR을 도입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 프랑스,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등 너무나 많아서 이제 SMR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러한 동향이 단지 개별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노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년 1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유엔 COP28 기후변화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22개 국가 장관들은 2050년까지 전세계 원자력 발전용량의 3배 확대를 위한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SMR과 첨단 원자로를 지원하고, 나아가 탈탄소화를 위한 원자력기반 수소 또는 인공합성연료 생산도 지원하기로 하였다. 이런 와중에 SMR을 만들어 공급하겠다는 회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이 설립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 각국이 에너지 안보에 촉각이 곤두선 상황에서, SMR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라고 이름붙인 원자로를 2020년부터 개발해 왔다. 산업부와 과기부의 공동 지원 하에 원자력기업들, 원자력연구소, 학계가 팀 코리아를 이루어서 내년에 표준설계에 대한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한 서방세계의 3대 원전 강국 중 하나이다. 이 i-SMR에는 한수원과 원자력연구소에서 수십년간 개발해 온 많은 원자로의 경험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 최고의 운전이력을 보였고 우리나라에서 거의 매년 건설해 왔던 가압경수로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무전원 피동안전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실제 건설, 인허가, 운전에서 다른 신규노형보다 큰 강점이 있을 것이다. 특히 붕산을 사용하지 않는 혁신적인 안전개념 덕분에 원자력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성에서도 미국과 여타 국가의 경쟁노형을 앞설 것으로 기대한다. i-SMR로 결집된 팀 코리아의 노력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최신형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이런 기술을 평가하고 감독할 수 있는 법체계와 규제체계의 개발도 중요하다. 규제가 제대로 안되는 원자력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니 이미 바짝 다가온 SMR의 시대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원자력 시장은 각국의 총체적 경쟁의 장이면서 동시에 가장 냉정한 기술 경쟁의 장이다. 제대로 잘 만드는 팀만이 살아남아 새롭게 열리는 거대한 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체코원전 우선협상자 선정에 이은 또 한번의 팀 코리아의 활약을 기대한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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