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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구리 확보, 공급망 다변화와 자원개발이다

구리는 좋은 특성과 가성비를 보유한 전력 인프라의 핵심 소재다. 구리는 청동기 시대 이후 인류의 역사와 함께 꾸준하게 진화해 온 대표적인 산업용 금속이다. 다른 금속으로는 대체하기 어려운 고유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가격이 비싸지 않아 인류의 혁신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소재다. 구리가 산업용 소재로서 가치는 첫째, 전도율이다. 구리는 비철금속 중 은(銀) 다음으로 전기에 대한 전도율이 좋은 금속이다. 발전에서 송전을 거쳐 배전에 이르는 전력 그리드(GRID: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는 전자빔을 제어하는 구실을 함))의 필수적인 소재로 구리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열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구리는 매우 좋은 특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융점(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온도)도 상대적으로 높다. 각종 보일러 및 난방장치, 전자장비의 열 흡수장치 등의 소재로 사용된다. 둘째, 연성이다. 각종 작업 및 변형, 특히 길이가 매우 긴 형태로 가공이 가능하다는 점은 산업용 금속으로서 큰 장점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총.포탄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근대 이후에는 각종 전선의 필수적인 소재로 쓰인다. 셋째, 내식성이 좋다. 구리는 자연환경에서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특히 니켈 등 다른 금속과 결합시 환경에 대한 저항의 강도가 상당히 커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구리는 각종 파이프 등 건자재용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들어 부식에 대한 내식 및 전도율을 복합적으로 고려 한다면 귀금속이 최선의 대안이나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산업용 소재로 사용하기가 어렵다. 구리는 항시 일정한 수요가 존재하며 수요에 대한 공급의 조절 능력이 상당히 비탄력적이라는 점에서 투자 수단으로서 가지는 매력이 있다. 구리 원석의 경우 채굴되는 지역이 일부 지역에 집중된 관계로 파업이나 사고 등 특정 광산의 생산 차질이 글로벌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표적 자원이기도 하다. 구리는 세계 제련용량에서 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구리의 원석 생산은 칠레 등 남미에 집중된 반면, 실제 구리의 제련시설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집중된 구조다. 그 만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수요는 구리 수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되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3년 광산 생산량 기준 국가별 구리 생산량은 칠레(23%), 페루(12%), 콩고(11%), 중국(8%), 미국(5%), 러시아(4%), 기타(37%) 순이다. 하지만 국가별 제련 생산량을 보면 중국(44%), 칠레(7%), 콩고(7%), 일본(6%), 러시아(4%), 기타(32%)이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5월 30일 기준 구리 가격은 톤당 1만 692달러로 2022년 3월 최고가 1만 674달러에 넘어섰다. 미국과 중국에서 구리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공급 제한이 되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 공급 차질의 서막은 광산업체의 생산 차질이다. 대표적 사례가 파나마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캐나다 기업(First Quantum Minerals)이 보유한 꼬브레 파나마 구리 광산에 대해 20년간 부여된 광산 채굴권을 위헌이라고 판결하여 광산 채굴이 중지 되면서 부터다. 파나마 대법원의 광산 운영권 회수는 광산개발 이후 물 부족, 환경 파괴에 대한 주민의 염려 등을 원인으로 내세웠지만 속 듯은 광산 수익 대비 파나마에 대한 수익 배분에 대한 불만이다. 이 광산의 지분 10%는 한국광해광업공단(전, 한국광물자원공사)이 갖고 있다. 꼬브레 파나마 광산의 연간 구리 생산량은 약 40만톤이며 이는 올해 전 세계 구리 정광 전체 생산량의 1.7%에 달한다. 두 번째 서막은 중국 구리 제련업체들의 생산 감축이다. 중국 CNMC가 보유한 잠비아 구리제련소(Chambishi)가 올해 생산량을 20% 감축하기로 결정 했다. 이유는 잠비아가 지속되는 가뭄으로 전력 공급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중국 내 19개 구리 제련업체들이 지난 3월 생산 감축을 논의하고 하반기부터 5~10%의 생산량 감축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블론버그에 따르면 국가별 구리 제련 비중은 중국(50%), 일본(7%), 칠레(5%0, 러시아(5%) 기타(33%) 순이다. 셋째,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금속(구리, 니켈, 알루미늄)의 자국 내 거래소 유입을 금지한 조치로 이는 추가적인 공급 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은 4월 12일 러시아에 대한 추가적인 공동 제재 조치로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런던금속거래소(LME)의 러시아산 구리, 니켈, 알루미늄의 4월 13일 이후 신규 생산 물량에 대한 수입을 금지 시켰다. 4월말 기준 런던금속거래소(LME)의 비축량 중 구리 재고량의 62%가 러시아산이다. 원자재 컨설팅 기업 우드 매킨지는 2033년 전 세계 구리 소비량이 32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구리 생산량은 2240만톤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약 230만톤의 구리 정광을 수입했다. 국내 구리 수요는 해마다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안정적 구리 확보는 공급망 다변화와 해외 자원개발에 있다. 강천구

[EE칼럼]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탄소포집·저장 사업의 중요성

우리나라는 세계 95번째 산유국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기름 한 방울 안나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사실 2004년부터 우리나라 동해가스전에서 원유와 가스를 생산했고, 이제는 거의 고갈되어 2021년에 동해가스전은 상업 생산을 종료했다. 그런데 지난 3일 우리 정부는 동해 수심 1 km 아래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됐을 수 있어 한국석유공사에서 탐사와 시추를 통해 이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깜짝 발표를 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라 이름이 붙여진 이 프로젝트는 저출생과 고령화, 경기침체, 전쟁과 테러, 각종 사회적 갈등과 같이 암울한 이야기에 지쳐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감을 선사했다. 만약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성공적이라면 우리나라는 명실 상부한 산유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전개발에 대한 기대감 한편으로는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전 지구적 목표와 우리나라의 2050년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정말 기쁜 일이겠지만, 대형 유전이 발견되어 상업 생산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탄소배출이 급증하여 파리협약을 통하여 국제적으로 약속한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생겨난다. 또한 기후위기를 막기위해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유전 개발의 경제성 하락도 고려해야 한다. 동해 석유는 얕은 바다인 대륙붕이 아니라 수심 1 km보다 더 깊은 해저에 매장되어 있으므로 생산비용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화석연료 또는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가 추가된다면 동해 유전개발에 규제 및 비용상승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우리가 경험한 사과가격 폭등이나 각종 기상이변 재해를 생각해보면 탄소감축 정책을 늦추거나 완화하는 것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탄소 포집 및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에 대한 기술과 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CCS사업이란 발전소, 제철소, 석유화학공장, 수소생산공장 등에서 배출되는 고농도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고갈된 유전·가스전의 빈 공간에 포집한 이산화탄를 고압으로 주입하여 반영구적으로 저장하는 사업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노르웨이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규모 CC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글로벌 에너지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하여 투자를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석유공사를 비롯하여 주요 대기업들이 국내, 호주, 말레이시아의 CCS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CCS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미 우리 정부는 올해 동해가스전 활용 CCS실증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 5월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CCS 산업육성 전략(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기술·인력·기업을 확보하여 초기시장을 창출하고, CCS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산업구조가 탄소감축이 어려운 업종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대규모 탄소감축을 할 수 있는 CCS를 활용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위해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에 더하여 우리의미래와 자손들을 위해 기후변화 측면에서 유전 개발에 따른 탄소배출 급증에 대한 우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고갈된 유전에 저장하는 CCS도 동시에 적극 사업화하여 경제와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용진

[EE칼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과 향후 과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2024~2038) 실무안이 공개되었다. 이번 계획은 무탄소 전원인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있는 확대를 도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무탄소 발전 비중이 2023년 39% 수준에서 2030년에는 53%, 2038년에는 70%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필자는 우리나라 에너지 환경에서는 원전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하며, 이번 실무안은 전력 수요와 기술 발전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고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이 극심한 현 상황을 반영한 과도기적 계획이라 생각한다. 2038년 목표 전력 수요는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 전기화 수요 등의 증가 요인을 반영하여 129.3GW로 산정하고 있다. 전력믹스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태양광은 2022년 21.1GW에서 2038년 74.8GW로, 풍력은 1.9GW에서 40.7GW로 크게 확대된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이미 건설계획이 확정된 4기(새울 3·4호기, 신한울 3·4호기) 외에 SMR 실증 원전(0.7GW)과 최대 3기(4.2GW)의 대형 원전 건설을 제시하였다. 2038년 발전량 기준으로는 원자력 35.6%, 신재생 32.9%, LNG 11.1%, 석탄 10.3%, 수소·암모니아 4.4% 등의 전력믹스를 예상하고 있다. 경제성 측면의 분석은 공개된 실무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증가는 산단 태양광 활성화, ESS 조기 보강, 이격거리 규제개선 등 정책적 수단을 반영한 '가속보급경로'에 따른 것이다. 이 경우, 작년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합의된 2030년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도 달성하게 된다. 반면, 신규 원전 도입과 관련해서는 적극적인 제도 개선 의지가 드러나지 않고, COP28 당시 22개국이 공동 선언한 2050년까지 원전을 3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과도 차이가 있다. 정부는 공개된 실무안을 바탕으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포함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마련하고, 전기사업법에 따른 공청회, 국회상임위원회 보고 등을 진행한 후 전력정책심의회의 심의를 통해 11차 전기본을 확정할 계획이다. 100쪽 전후로 예상되는 전기본과 함께, 가능하다면 추진 경과, 수요 전망 모델 및 가정, 공급 계획 수립, 발전량 전망, 향후 추진과제 등에 대한 상세 내용과 근거 등을 담은 배경자료를 함께 공개하여 국민의 이해를 높이면 좋겠다. 더욱 중요한 일은 실효성 있는 후속조치의 추진이다. 집중식 재생발전단지와 원전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망의 효율적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변동성과 간헐성이 극심한 태양광·풍력 발전이 확대되더라도 전력계통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에너지저장시스템이 제대로 설치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전과 관련해서도 전력시장 및 규제 제도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원전 계속운전 제도의 합리적 개선은 특히 시급하다. 그리고 신재생 발전의 급속한 확대가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고, SMR 등 원자력 분야에서도 민간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므로 무탄소 전원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새로운 전력 공급 및 정산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절차에 따라 원전 신규부지 확보가 추진되어야 하며,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부지 확보를 위한 법 절차도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매우 의욕적으로 전망한 재생에너지, 특히 해상 태양광의 확대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 원전 등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안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매 2년마다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마련한다. 그런데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급증 등으로 고차원 방정식이 되어버린 전력수급 문제를 1년 남짓 운영되는 위원회가 직접 풀어내기는 어렵다. 전문가 조직에서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질적·양적으로 충분한 기본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 조합이 에너지 안보, 환경성, 가격적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상세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기술적, 경제적, 산업적 측면의 최상의 지식과 정보를 통합해야 하므로, 특정 기관에 의존하는 대신 각 발전원, 전력계통, 에너지·전력경제, 산업 분야의 핵심기관 전문가들로 상설 '전력수급 TF(가칭)'를 구성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력수급계획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 수립에 필요한 핵심 데이터를 표준화하여 국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남은 기간 더욱 완성도가 높은 전기본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며, 계획에 대한 책임성과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한 근거자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계획 확정 후에는 전력계통 보강과 제도·절차 혁신 등 후속조치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차기 전기본 수립을 위한 준비도 바로 착수하길 기대한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EE칼럼] 체코 원전 수주,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신은 공평하신 듯하다. 우리 국민에게는 자원 대신 근면함과 똑똑함을 주셨다. 우리 근로자 1명이 외국 근로자 서너 명 몫을 한다." 중동의 건설사업 현장에서 일하는 지인께서 한 말이다. 우리나라의 해외 건설사업 경쟁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 건설사업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둬왔다. 아무나 쉽게 도전할 수 없는 혹한 환경 속에서도 완수한 성과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중 한낮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와 숨 멎을 만큼의 모래바람이 수시로 부는 아랍에미레이트(UAE)에서 APR-1400 원전 4기를 완공한 것은 특별하다. UAE 원전 건설사업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계획된 공기와 예산 범위 안에서 이루어 낸 쾌거이기 때문이다. UAE 원전의 적기 완공은 우리나라 원전 산업 역량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원전 1기 건설에는 2백만 개 이상의 부품과 수만 명의 인력이 소요된다. 이 많은 부품을 설계, 제작 및 구매하여 제때 조달하고, 각 역무에 적정 인력과 기자재를 배정하여 원전 건설이 공정에 맞춰 진행되도록 사업관리를 하며, 건설된 원전이 성능을 제대로 내는지 종합 시험하는 시운전 역량 등이 총망라되어야 비로소 원전 1기가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복잡다단한 과정을 제시간에 맞춰 해낸 것이다. 프랑스와 비교해 보자. 프랑스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56기의 원전을 운영하는 원전 강국이다. 프랑스 아레바사는 2005년부터 핀란드 올킬루오토에서 자국이 개발한 EPR 건설을 시작했다. 올킬루오토 3호기다. 이 올킬루오토 3호기는 2023년이 돼서야 비로소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건설부터 상업 운전까지 18년이나 걸렸다. 또 자국 내에 2007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플라망빌 3호기 원전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상업 운전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 건설 역량은 건설단가와 직결된다. 국제에너지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kW(킬로와트)당 3717달러로 미국(1만1638달러)과 프랑스(7809달러) 보다 2~3배가량 낮다. 중국(4634달러)과 러시아(5271달러)와 비교해도 경제성이 높다. 이러한 가시적 효과 이외에도, 우리나라는 “어떠한 여건에서도 약속은 꼭 지킨다"라는 신뢰 자산을 축적하였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한층 높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이래서 원자력을 우리 국격을 높이는 기술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UAE에서 거둔 유·무형의 성과는 후속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이집트의 엘다바에서도 원전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다. 엘다바도 UAE에 못지않은 혹한 환경이다. 원래 이 원전 건설사업은 러시아가 수주받았다. 러시아가 우리나라의 UAE에서의 원전 건설 역량을 인정하여 우리나라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동참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신규원전 시장에서 강자다. 세계 1위 원자력기업이자 러시아 국영회사인 로사톰은 현재 33기의 해외 원전 건설사업 진행 중이다. 러시아가 우리나라보다 원전 성능이나 시공 능력이 뛰어나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파이낸싱이다. 원전 1기 건설에 우리 돈으로 10조 원 내외의 자금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원전 도입 의사는 분명하지만, 사업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러시아가 원전 건설사업 자금을 대는 것이다. 재정이 여의치 못한 국가에는 거부하기 힘든 조건이다. 엘다바 원전 건설사업 총 재원의 85%를 러시아가 충당하고, 이집트는 15%만 부담한다. 원전 사업 수주는 국가 총력전이다. 러시아가 재정지원을 원전 건설사업 수주의 지렛대로 삼듯이, 원전 건설사업 수주는 원전 자체 경쟁력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체코에 원전을 수출하려 한다. 프랑스와 경쟁 중이다. 유럽연합 내에서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체코를 방문하는 등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산업부 장관이 방문했다지만, 외관상 역부족이다. 장관이 체코에 제안할 수 있는 지원 패키지의 범위와 깊이가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통령께서 나서야 할 때다. 원전 수출은 원전 도입국과 건설에 10년, 운전에 60~80년, 해체에 10년 등 도합 100년의 관계를 만든다. 이 기간 양국은 원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며 긴밀한 관계를 이어 나가게 된다. 지난 UAE 원전 수주전에서도 대통령의 적극적인 비즈니스 정상외교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코 원전 수출 성사를 위해, 대한민국 1호 비즈니스맨의 활약이 절실한 때다. 우리 국민의 근면함과 똑똑함이 체코를 무대로도 여실히 발휘될 수 있도록, 대통령 이하 우리 정부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희망한다. 문주현

[EE칼럼] 드디어 발표된 전기본, 첨단 전력망 건설이 문제다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이 만들어져 5월 31일에 정부에 전달되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2008년부터 발표해 오던 에너지기본계획을 지난 정부에서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으로 법 규정을 변경한 이후부터 에너지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세부 기본계획으로 자리 잡아 왔다. 비록 전력 사용량이 우리나라 총 에너지사용량의 20%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발전원에 대한 첨예한 갈등과 낮은 전력 요금으로 인한 전력공기업 부채에 대한 이슈로 인하여 중요성이 크게 주목받아 왔다. 이번 11차 전기본은 확정되면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15년 계획을 담게 되는데, 장기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어떠한 발전설비를 언제 건설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담는다. 상당히 세부적인 계획을 담기에 참여 전문가가 상당한데, 이번 실무안을 만들기 위한 총괄위원회의 민간 전문가만 90여 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된 실무안은 이후 환경영향평가, 정부 부처 간 협의, 국회 보고 등 절차를 거쳐 연말에 확정된다. 이번에 제출된 11차 전기본 실무안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먼저 2038년까지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전기 중 70% 이상을 '무탄소 전기'로 채운다는 목표를 들 수 있겠다. 기존의 9, 10차 전기본의 무탄소 전기 생산 목표보다 더 높인 것이다. 이는 2009년 최초로 국내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 이후 지속되어 온 무탄소 전력 생산량 목표의 증가 추세를 이어간 것이기에, 한때 여러 방향으로의 논의가 이루어지던 이번 정부의 전력 정책 방향이 분명히 결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과 소형원자로(SMR)를 포함한 원자력을 함께 늘려 2038년 무탄소 전기 목표인 70%를 달성하기로 한 것 역시 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무탄소 전기 생산이 가능한 발전원이라면 갈등이나 차별 없이 모두 함께 늘려가자는 것이다. 기후변화협약에서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이번 11차 실무안의 목표보다도 2배 이상으로 무탄소 전기 생산량을 더 늘려가야 함을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방향이라고 보인다. 실무안은 10차 전기본보다 더 높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권고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를 2030년까지 현재의 3배 수준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또한 10차 전기본에서 확정된 노후 석탄 발전소의 천연가스 발전소로의 전환을 유지하고 있다. 실무안은 또한 원자력발전소를 최대 3기 새로 짓고 소형원자로도 실증을 넘어 1기를 실제 건설하여 활용하기로 하였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SMR에 대한 실증사업과 더불어 국내 건설 및 가동을 통한 실적(track record)을 쌓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한편 실무안은 2038년 국내 최대 전력 수요는 129.3GW(기가와트)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적정한 전력 예비율로 22%를 적용하였다. 이 부분은 그러나 최근 봄철 전력 소비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보다 입체적인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즉, 발전원과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줄여 전력망 건설을 줄이거나,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4차산업혁명 기술을 사용하여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프로슈머(prosumer) 형 발전을 추가하여 적정 예비율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충분히 담겨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무안은 현재 우리나라 전력 부문의 최대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전력 계통에 대한 투자 부족에 대한 해결 방안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전력계통망 투자 지연과 감소로 인한 부작용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심각한 전력 계통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지방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전력망도 제대로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실무안에 더하여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체계적인 전력계통망 투자 계획을 마련하여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허은녕

[EE칼럼]전력계통 보강,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향한 야심찬 여정을 걷고 있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전력계통 문제이다. 전력계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무탄소 발전원을 통해 생산한 전기가 소비자한테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변동성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전력계통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사실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생생히 목격되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전력계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을 새로 발표하였다. FERC가 제안한 새로운 규칙안은 송전망 건설을 가속화하여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력망에 연결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송전망 보강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목 할만하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FERC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송전 인프라는 향후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재생에너지를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못 갖추고 있다. 대대적인 송전망 보강 및 신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재생에너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도 불가능하다. 전력계통 곳곳에서 관찰되는 병목 현상과 비효율성은 신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에너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FERC 개혁안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지역별로 최적화되던 송전계획을 연방 정부 주도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전력계통의 성능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도 유사한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입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송전 인프라가 가장 효율적이고 비용 효과적인 방식으로 개발되도록 보장할 수 있다. 또한 FERC의 제안은 민간부문의 송전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포함되어 있다.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사업의 성격을 고려하여, 민간자본을 유치하고 공공자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우리도 해묵은 민영화 논쟁으로 인해 앞으로 한걸음도 제대로 못 나가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고, 송전망 확장을 촉진하기 위해 민간기업의 자원과 전문 지식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력계통 보강을 위해서는 공공부문에 대한 규제 체계의 개선도 발전해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로 인해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며, 신규 사업에 대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지역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신규 송전망 건설계획에 지역사회를 참여시키고 그들과 협의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력계통 보강을 목표대로 달성할 수 있다. 송전망 건설에 따른 직간접적 피해를 입게 되는 지역사회와 투명한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공정한 보상절차 마련은 신규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이행되는데 핵심이 될 것이다. 송전망 확충의 시급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탄소중립 달성을 진지한 목표로 고려하고 있다면, 송전망 확충을 위한 결단력 있는 행동과 전략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재생에너지나 원전이나 둘 다 송전망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너무 늦긴 했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지금은 남아 있는 날 중에서 제일 빠른 때이다. 정연제

[EE칼럼] 철강 산업의 저탄소화

철은 태양과 같은 항성의 핵융합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규소 원자 2개가 융합하여 니켈이 만들어지고, 이 니켈은 불안정하여 대부분 몇 달 안에 붕괴하여 철이 된다. 원소 중에서 철의 원자핵의 에너지가 가장 안정적이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다. 철은 지구의 핵을 구성하는 주요 원소이고, 알루미늄 다음으로 지각에 두 번째로 많은 원소이다. 해마다 지표면을 파고 폭파해서 퍼올리는 물질들의 순위를 살펴보면, 모래와 자갈이 430억 톤, 석유와 가스가 81억 톤, 석탄이 77억 톤, 철광석이 31억 톤이다. 채굴한 철(iron)은 대부분 강철(steel)로 가공한다. 철의 종류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탄소 함량이다. 철이라는 스펙트럼의 한 극단에는 선철(pig iron)이 있다.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 모양이 어미의 젖을 먹고 있는 새끼 돼지들을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선철은 탄소 함량이 약 3~4퍼센트로, 부서지기 쉽다. 반대쪽 극단에는 연철이 있다. 연철은 극소량의 탄소를 함유한 매우 순수한 금속인데, 망치로 두드려서 펼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인류 역사를 보면 독재자이든 민주적 지도자이든 모두가 강철에 집착한다. 강철이 물질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거의 모든 제조 공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타국의 강철로 자국의 무기를 만드는 걸 선호하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 “강철이 없다면, 국가가 없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마오쩌둥은 강철 생산을 언급하며 중국의 산업적 역량을 자랑했다. 2000년대 초반, 한 중국 기업이 독일 도르트문트에 있는 티센크루프의 제강소를 매입한 뒤 공장 시설을 분해하여 양쯔강 하류의 부지로 실어 날랐다. 이렇게 해서 사강그룹의 본거지인 상하이 북부에 다시 세운 공장은 세계 최대의 제철소가 되었다. 철강 산업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2021년 생산액이 183.1조원으로 제조업 중 1위이다. 3,045개 사업체에 13만 9천명이 종사한다. 2022년에 중국(18%), 미국(14%), 일본(8.7%), 인도(6.8%), 베트남(6.3%) 등에 545억 달러를 수출했다. 철강 산업은 다른 주요 산업과는 달리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골고루 생산하고 있다. 수도권이 전국 생산액의 15.2%, 충청권 16.9%, 호남권 19.1%, 대경권 24.6%, 동남권 23.8%라는 숫자가 이를 보여준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산업이다. 선철 1톤을 얻으려면 철광석 1.4톤과 석탄 0.8톤이 필요하다. 석탄은 용광로를 가열하는 것과 동시에, 용광로 내부에서 매우 중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철광석은 산화철을 풍부하게 함유한 암석이다. 철광석을 금속으로 바꾸려면 산소와 철을 분리해야 한다. 용광로 속에서 철광석에서 분리된 산소와 석탄에서 나온 탄소가 결합하여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7~8퍼센트에 해당한다.우리나라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에 9,327만 톤으로, 국가 총배출량의 14.2%를 차지했다. 산업부문 배출량 2억 4,670만톤의 37.8%에 해당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1위와 7위 업체이다. 이들은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등의 기술을 사용하는 공정으로 전환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철은 비교적 재활용이 쉽다. 전통적 용광로가 아닌 전기로에 고철을 녹여 강철을 만드는 방식이다. 선진국에서는 강철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는데, 한 사회가 사회기반시설을 충분히 보유하면 강철 수요가 포화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고층 건물과 자동차가 새로운 철근이나 강철 플레이트로 재생되면서, 현재 미국 내 강철의 3분의 2 이상이 고철에서 탄생하고 있다. 21세기 후반에는 철광석보다 고철에서 더 많은 강철을 얻을 것이다. 재활용 강철을 생산하는 전기로가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서 전력을 얻는다면 이것이 그린스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이용해 직접환원철(DRI)을 만들고, 이를 전기로에서 녹여 쇳물을 생산한다. 철광석에 있는 산소와 수소가 만나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생긴다. 궁극적으로 탄소중립을 선도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그린스틸을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수소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그린수소를 만들 때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부터 시행되는데, 철강과 알루미늄, 비료 등 6개 제품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2050년까지 자사가 구매하는 철강제품 전부를 넷제로 철강으로 조달할 것을 선언하는 '스틸제로'와 같은 자발적 이니셔티브도 확산되고 있다. 볼보, 머스크, 오스테드, 지멘스 가메사 등 전 세계 36개 기업이 가입했다. 강철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세계를 유지하고, 한 국가의 안보와 경제를 위해서는 철강 산업의 저탄소화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철강 산업의 저탄소화를 위해 기업들의 기술개발 노력과 정부의 적절한 지원,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김정인

[EE칼럼] 조기 탈석탄, 함부로 할 일 아니다

총선 승리 후 기세가 오른 야당은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통과의 전제조건으로 신규원전 포기를 내세우며 탈원전 군불을 지피고 있지만 정작 총선 공약에는 원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40% 확대와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중단만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반대 여론이 높은 탈원전에는 잠시 눈감고, 득표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 이미지를 얻으려는 선거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탈원전을 포기한 적이 없는 야당은 선거 공약에 명시적으로 포함된 석탄발전 조기 퇴출, 재생에너지 확대 가속화와 더불어 탈원전을 에너지정책 패키지로 묶어 행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탈원전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원전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우세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간헐성에 따른 출력제한과 경제성 등의 이유로 마냥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억울하게도 기후변화 주범으로 이미 악마화된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은 큰 저항 없이 함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은 탄소중립과 ESG 경영 조류에 올라타 조금은 급진적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탄소중립과 ESG 경영은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추진되는 목표가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그것도 아주 최근에 설정된 목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 논의는 1992년 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오던 중, 주요국들이 구체적인 행동 강령으로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년 전인 2018년 IPCC 보고서 이후로 볼 수 있다. 사실, 탄소중립은 2018년 이전까지는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을 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용어였다. ESG 개념은 2006년 유엔이 제정한 '사회책임투자 원칙'에 반영되면서 조금씩 학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2020년 초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 CEO 래리 핑크의 연례 서신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ESG와 탄소중립의 명시적 결합은 래리 핑크가 2021년 연례 서한에서 전 세계 투자 기업에게 탄소중립 계획 발표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조기퇴출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민간 석탄발전은, 2011년 순환정전을 겪은 직후 예비율이 3.8%에 불과할 정도로 빠듯해진 전기부족의 타개책으로, 2013년 수립된 제6차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도입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민간 석탄발전사들이 사업 참여를 결정했던 당시에는 탄소중립과 ESG를 적극 고려하지 않았고 또 그럴 필요도 적었음은 당연하다. 정부조차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구체화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소중립과 ESG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기업과 정부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가 민간 석탄발전사의 출현이다. 민간 석탄발전의 탄생 배경과 시점의 특성을 무시한 채, 갑자기 정책 기조를 바꿔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퇴출 운운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로 헌법은 단지 공익적 필요만으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며, 법률에 의한 정당한 보상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을 적절한 보상 없이 무작정 밀어붙인다면 이는 헌법상 사유재산 침해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사유재산권의 보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버리지 않는 이상, 국가가 마지막까지 철저히 지켜야 가치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물론, 공익적 이유로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이 추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기 퇴출에 따른 손실에 대한 보상 대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탈석탄을 먼저 추진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법률에 근거하여 경매에 의한 재정지원 방식으로 직접 보상에 나선 반면, 네덜란드는 재정지원 없이 비석탄 연료로의 전환을 통해 사업자가 스스로 손실을 만회하는 간접 보상 방식을 택하였다. 대체적으로 독일은 순조로웠지만, 네덜란드는 신규 발전소를 중심으로 소송이 이어지는 등 혼란이 많았다는 평가다. 현재 우리나라가 취하는 방식은 연료전환을 유도하는 네덜란드 방식에 오히려 가까워 줄소송이 이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벌써 국내 민간석탄발전사의 소송이 시작되었다. 순조로운 탈석탄을 원하면, 정교한 재정지원 보상책 마련에 속히 나서야 한다. 박주헌

[EE칼럼] 자동차 정비소, 전기차 시대 배터리 중개소로 육성하자

할리우드 유명 영화감독 론 하워드의 1992년 作, “Far and Away"에는 서부개척시대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정부 소유 땅을 공짜로 나누어주는 흥미로운 방식이 그려진다. 주어진 시간 동안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한 멀리 질주하여, 땅을 차지했음을 선언하는 깃발을 도착한 곳에 꽂으면 거기까지를 소유지로 인정받는 경주가 그것이다. 극 중에서 아일랜드 가난한 소작농 출신 조셉 도널리(톰 크루즈 분)가 이 경주에 참여, 우여곡절 끝에 광대한 땅의 소유권을 획득한다. 미국 정부가 미개척지 개발에 투입할 외지 노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으로 국가 재산인 토지를 사실상 무상으로 매각했던 역사적 사례를 극화한 것이다. 이처럼 보통 무상 또는 시가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국가 또는 공공의 재산을 개인에게 매각하는 행위를 '불하(拂下)'라 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불하'가 그동안 전기차에 탑재되었다가 폐차 등으로 탈착된 배터리, 즉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에도 적용되었다. 사실 사용후 배터리는 전처리 후 일정 공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희귀 유가금속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 자체는 용량이 새로 샀을 때와 비교해 약 70~80% 이하로 감소하면 주행거리 감소, 충·방전 속도 저하 등으로 차량 구동용으로는 활용이 어렵지만, 다른 에너지 저장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전기차에 한 번 쓰이고 난 이후, 배출된 배터리는 남은 수명이나 배터리 건강상태(SOH) 등에 따라 다른 차량용 배터리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무정전 전원장치(UPS) 등으로 '재사용'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용후 배터리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용 자산이 될 수 있다. 한편 적어도 2020년까지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받아 전기차를 구매한 경우, 전기차主가 해당 차량의 폐기 등 자동차 등록을 말소할 때 관할 주소지의 지방자치단체에 사용후 배터리를 반납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었다. 표현을 바꾸어 말하자면 보조금을 지급한 정부(지자체)가 사실상 사용후 배터리를 보조금 형식으로 선구매함으로써, 소유권을 확보하여 일종의 국가 재산으로 보유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비즈니스를 위해서 사업자가 지자체로부터 이를 '불하'를 받아 활용하였다. 그리고 이런 불하 과정에서 사용후 배터리의 수거 및 보관 함께 성능평가를 통한 상품성을 확인하는 역할을 하는 '거점 수거센터'를 공공재원으로 전국 주요 거점에 구축,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비즈니스 육성을 지원하는 체계로서 운영되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체계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2020년부터 사용후 배터리 반납 의무가 폐지되면서, 구매보조금을 지원받은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도 그 소유권이 지자체에서 전기차주에게로 이전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2021년부터는 지자체에 반납하지 않아도 되는 사용후 배터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향후 전기차 확산 추세를 고려한다면, 이런 비반납 사용후 배터리도 함께 급증할 수밖에 없어, 지자체 반납 배터리 발생이 사실상 끝날 것으로 예상하는 2028년부터는 사실상 발생하는 모든 사용후 배터리가 전기차주의 소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사용후 배터리 소유권 변경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함께 던져준다. 우선 대략 배터리 3,500대 정도면 포화될 현재의 공공 거점 수거센터의 저장용량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급증하게 될 전가차주 소유 사용후 배터리를 소화할 수 있도록, 이를 대신할 거점 수거센터를 추가로 구축해야 한다. 다만, 전기차주가 소유권을 지닌 만큼, 이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가능하면 공공보다 민간재원으로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앞으로는 지자체 대신 전기차주가 재활용·재사용 사업자와 사용후 배터리를 거래해야 하는데, 협상력 면에서 열세인 개별 전기차주가 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재활용·재사용 사업자로서도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이나 사업의 다양한 위험 배분 차원에서라도 개별 전기차주보다는 다량의 배터리 묶음으로 거래하는 단일한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이 좋다. 결국, 개별 전기차주의 사용후 배터리를 위임받아 '중개(仲介)' 또는 직집 구매하여 재판매하는 '중계(中繼)' 거래를 하는 일종의 '거래소' 역할이 필요하며, 민간 거점 수거센터가 이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민간 거점 수거센터 겸 신규 사용후 배터리 거래소의 유력한 후보로 자동차 정비소를 고려해볼 만하다. 사실 국내 자동차 정비소들은 수익 구조상 주로 내연기관차 정비에 특화되어 있어, 중장기적으로 전기차 확대 및 내연기관차 축소라는 수송부문의 전환에 취약,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만일 신규 비즈니스인 사용후 배터리 거래소로 전환·육성한다면 전기차 확대로 인해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배터리 순환 시스템 완비와 함께 수송부문 탄소중립 정책 추진에 따른 자동차 정비업에 대한 정의 전환을 지원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거래소 구축·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법·제도와 함께 전환지원을 유도할 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며, 이를 제안한다. 김재경

[김성우 칼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AI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지난 4월29일 기상청은 '2023 이상기후 보고서'를 공개했다.지난해 연평균 기온은 13.7도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이는 서울에 88년만에 9월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고, 온열질환자도 1.8배 폭증했으며, 산불 면적 및 남부지방 장마철 강수량도 역대급이었던 이유다.이제 더 이상 북극이나 섬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배출을 줄이면서도 이상해진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기후변화 대응방안으로, 우리의 주력 기술인 AI 및 디지털 기술 활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기상청이 동 보고서를 발표한바로 그 날,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으로 'AI 기반 그린디지털 전환 컨퍼런스'가 열려,AI 및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기후변화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탄녹위가발표한 '디지털 전환을 통한 탄소중립 촉진방안'의 후속조치이다.당시 탄녹위는 에너지(수급•분산관리)및 수송(고효율항로)등 6개 분야를 디지털 기술로 그린화하는Green by Digital과,설비고효율화(데이터센터) 및 저전력화(냉각) 등 디지털 산업을 그린화하는 Green of Digital방안을 제시했는데,이번 컨퍼런스에서는AI에 초점을 맞추어 이행방안들을다양하게 공유한 것이다. 우선 AI 적용 분야의 75%가 고객관리, 마케팅•판매, SW엔지니어링, 연구개발이고, 향후 생산성향상에 기여함은 몰론 개인업무 역량증대까지 잠재력이 큰 상황이므로, 이상기후예측 및 설비효율향상 등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AI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는 주장이 나왔다. 또한, AI와 Robotics기반의 Autonomous랩 구축을 통해, 연구원을 대체해 물질합성 자동화 등으로 신물질 개발 가속화도제안됐다. 예를 들어, 새로운 구조를 가진 Zeolite를 찾아내 불순물 제거나 탄소 흡착에 활용하고, 반도체 공정배출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저탄소 증착가스 개발에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한편, AI 관련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전기나 물 수요 급증 등 부정적인 영향과 업종별 운영 효율성 개선 등 긍정적인 영향이 공존하는 가운데 AI가 정책•기술•금융등 주요 대응방안들을 대체한다기 보다는 대응을 가속화하는 역할로 봐야 한다는 발표도 있었다.공유된 개별 사례들도관심을 끌었는데,데이터센터내 개별 서버 기능 제어를 통해 최대 55% 전력을 절감한 사례, 공장 Heater내 불꽃 색깔에 따라 수동으로 산소 주입하던 것을 CO가상센서 설치 및 버너별 연료/Air조절 등을 통해 최적화한 사례, 전세계 563만개 디바이스가 연결된 AI기반 에너지 관리 IoT 플랫폼을 통해 에어컨 컴프레셔 회전속도 제어 등으로 60%까지 전력을 절감한 사례들도 소개됐다. 필자도 탄녹위 소속 과학기술전문위원장으로서 패널로 참여해 AI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했는데,주목할 만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현재 가시화된 AI 활용 기후변화 대응은, 감축 측면에서는 설비효율화•운영효율화•고난도모니터링•플랫폼효율화 등이고, 적응 측면에서는 이상기후예측• 사회영향예측•기상시뮬레이션•피해예방 등으로 요약되는데,아직은 생성형 AI의 활용이라기 보다는 기존 디지털 기술의 활용에 가깝다는 점이다. 둘째, 향후 연구인력을 AI+로봇으로 대체하는 Autonomous랩 등 혁신적 AI활용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물질/공정이 개발된다면, 이는 새로운 차원의 기후변화 솔루션이 될 것이나 아직 가시화된 사례가 없어 그 임팩트를 미리 가늠하긴 어려운 면이 있다.셋째, AI 활용 증가에 따른 학습증가 및 사양고도화로 에너지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어, 단기적으로 화석연료 발전기 사용 증가는 물론이고, 중장기적으로 산업 탈탄소에 사용될 재생에너지를 두고도 경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인류가 대응에 성공하지 못한 기후변화에 AI가 확실한 해결책을 제공할지는 아직 불명확하지만, AI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효용을 제공하는 기술이라니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싶다.다만,그 기대가 실현되려면 청정에너지 수요 급증 등 현재에도 명확히 예상되는 이슈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대응이 필요하겠다.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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