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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발전공기업 재통합 등 산하기관도 대대적 개편 필요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기후에너지부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영역과 환경부 전체 혹은 기후영역을 합치는 정부부처 신설안이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정부 부처의 통합과 함께 산하기관의 개편을 피할 수 없다. 산업부 에너지 산하기관에 어떻게 기후를 녹여낼지가 주요 과제다. 반대로 환경부 산하기관은 에너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기후에너지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재생에너지청' 신설이 거론된다. 재생에너지청은 한국에너지공단 산하 신재생에너지센터를 전신으로 삼을만하다. 센터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인허가, 전력시장 경쟁입찰,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시장 관리 업무 등을 하고 있다. 또한, 공공주도의 입지개발 및 입찰자 모집도 하려 하는데 재생에너지청으로 업무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에너지공단에서 신재생에너지센터를 분리하면, 에너지공단에는 산업·수송 에너지효율 관리, 집단에너지, 기후 관련 업무 등이 남는다.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공단의 남은 부분을 현재 환경부 산하에서 온실가스감축 업무를 하는 한국환경공단과 합쳐 '에너지환경공단'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한국전력은 당연히 송전망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문제는 산하 발전공기업이다. 화력발전을 보유한 남동발전 등 5개 발전공기업은 에너지전환에 더욱 나서야 한다. 이에 5개 발전공기업을 통합해서 에너지전환을 한번에 추진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발전공기업 통합론이 더 구체적으로 제안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와 같이 화석연료를 다루는 거대한 공공기관에도 탈탄소 추진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들은 수소에너지 보급 및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개발의 선봉장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관 내 부서 개편이 따라와야 한다. 환경부 외청인 기상청이 기후에너지부 외청이 된다면 에너지 관련 업무가 강화될 수 있다. 기상청이 기상예보를 기반으로 태양광, 풍력 발전량 예측 사업의 주축이 되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에너지 공기업으로 더욱 활약하길 요구받을 전망이다. 이미 확보한 대규모 수력발전 외 수열에너지, 수상태양광 등 물을 이용한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해야 할 과제가 커진다. 내년 수도권 생활폐기물 매립지 금지로 위기를 맞이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게는 기회다. 수도권매립지공사는 자원순환공사로 명칭 변경 후, 쓰레기 순환과정 전체를 다루는 방향으로 갈 듯하다. 쓰레기 자원이 난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열에너지 분야의 탄소감축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협력도 기대해볼만 하다. 이 외에도 각종 에너지, 기후 관련 연구개발(R&D)·교육기관의 업무를 조율하는 과정도 거쳐야한다. 산하기관의 대대적인 개편은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에너지부에 진심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산하기관이 기후에너지부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면, 기후에너지부는 허울일 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미래 산업과 민생을 위한 국가전략, 원자력의 재정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며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예고했다. 이 조치는 한국 에너지 정책의 구조와 우선순위를 새롭게 설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에너지 정책과 기후변화 대응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각 부처에 흩어진 권한을 통합하여 보다 일관되고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목표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공존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TV 토론에서 원자력에 대한 회의적 입장을 언급한 바 있고, 이는 체코 원전 수주 계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았다. 민주당 정부의 재집권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이른바 '탈원전' 기조를 부활시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2025년의 국제 에너지 환경과 국내 산업 생태계는 과거와 크게 다르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그리고 AI 산업을 포함한 미래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맞물리는 오늘, 한국은 원자력이라는 무탄소 에너지원을 실용적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첫째, 에너지 안보라는 고전적 명제가 다시 중심 의제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홍해 해상 운송의 불안정, 중동의 정세 불안은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한국의 취약한 구조를 다시금 드러냈다. 천연가스 가격의 불안정과 선박 운송 리스크는 국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력은 탄소 배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연중무휴로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면서도 에너지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대안 중 하나로 여겨진다. 둘째,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생'과 '공공성'이라는 국정 철학은 원자력과 충돌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보적일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가계와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수급만으로는는 변동성 높은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원자력은 '기후위기 대응'과 '전기요금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 자산이다. 셋째, 이재명 정부가 한국의 글로벌 AI 및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압도적인 전력 공급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미국의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AI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이미 원자력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장기 전력 수급 계획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전, 판교, 용인 등지의 데이터센터 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며,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AI 인프라에는 전력망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성이 크고, 저장 기술은 여전히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제약이 크다. 특히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 대규모 재생에너지 개발에는 물리적 한계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차세대 원전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SMR은 설치 면적이 작고 안전성이 높아 산업단지나 도심 인근에도 배치 가능하며, 수소 생산 등과 연계되어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력망의 부담을 분산하고,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부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면, 이 부처는 단순한 행정 통합기구를 넘어, 국가 에너지 전략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해야 한다. 원자력에 대한 재평가는 단순히 증설 또는 감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역할을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형 발전소 중심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SMR, 수소 연계형 원전, 산업단지 특화형 원전 등으로의 기술적 다변화와 공간적 분산이 필요하다. 더불어, 한국은 이미 원자력 수출국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체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국형 원자로가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건설될 가능성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한국의 산업적 이익을 넘어 전략적 신뢰 자산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의 정치적 유산과 이념적 입장을 넘어서, 2025년의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원자력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반이며, 기후와 안보, 산업이 교차하는 전략 자산이다.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용과 균형, 그리고 책임 있는 전환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민생을 지키고 미래를 준비하는 길일 것이다. 임은정

[데스크칼럼] 이재명의 탈석탄 vs 트럼프의 아름다운 석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대표적 실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다. 그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들보다 저렴하게 요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4월 기준 원전의 발전 단가는 kWh당 80원인 반면, 가스발전 단가는 159원이다. 탈원전은 현실을 외면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서 환영받을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는 탈원전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대선 전 “민주당이 더 이상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우파 에너지, 좌파 에너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전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SMR(소형모듈원전)이라든지 MMR(10메가와트 이하 원자로), 더 나아가서 핵융합 에너지 등 미래 전략산업의 육성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 실책으로 잃었던 민심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이 대통령도 탈원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탈석탄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0대 공약 중 기후 분야에서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폐쇄'를 약속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61기에 약 40GW 용량에 달하는 석탄발전이 있다. 2040년까지면 15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단순 계산하면 1년에 4기씩 석탄발전을 없애야 한다. 1기당 650MW 규모이므로 1년에 2600MW의 발전용량을 석탄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석탄발전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석탄의 환경오염 때문일 것이다. 석탄은 연소 과정에서 많은 배출물질을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천연가스의 3배이고,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그리고 먼지도 많이 발생시킨다. 우리나라 봄철마다 극심한 미세먼지가 생기는 것도 중국의 석탄발전에서 나오는 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이 주요 요인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석탄의 다른 면도 봐야 한다. 석탄은 에너지원으로서 아주 훌륭한 물질이다. 석탄의 열량은 석유, 천연가스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가공이 거의 필요없고, 유일한 고체물질이라서 운송도 매우 쉽고 저장도 쉽다. 무엇보다 매장량이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고갈 걱정도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걸쳐 매장지가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미국 내 석탄산업을 활성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석탄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안전하고 강력한 에너지이다. 저렴하고 효율성이 뛰어나고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며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을 저렴한 미국 에너지로 계속 활용할 것"이라고 석탄을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환경 파괴론자가 아니다. 현실주의자다. 앞으로 국가간 패권싸움은 얼마나 우수한 AI(인공지능)를 확보했느냐에서 나온다. AI는 데이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센터 확보가 경쟁의 핵심이다.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 에너지 소비량을 감당하려면 충분한 석탄 공급이 필요하다는 게 트럼프의 의도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AI 전쟁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막대한 에너지 소모가 예상된다. 그런 와중에 석탄발전을 폐쇄한다면 도대체 어떤 에너지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전국 모든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모든 산간과 해안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며,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해결하기 위해 화재 위험성이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전국에 구축해 놓으면, 과연 그것이 석탄발전을 대체한 깨끗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신규 원전 수십 기를 추가 설치해야 하는데, 과연 어느 지역에 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국가의 근간이다. 얼마나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느냐가 국가간 경쟁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석탄발전 패쇄 정책을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자의 눈]주택 공급, ‘이’ 정부는 달라야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연초 토지거래허가제 도입 이후 크게 출렁인 데다, 집값이 여전히 언제든 불이 붙을 기세로 꿈틀거리고 있다. 한강벨트 등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신고가도 속출하고 있다.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쉽지 않은 부동산 환경과 마주하게 됐다.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이 어깨 위에 얹힌 셈이다. 정부가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는 주택 공급 확대이다. 과거 윤석열 전 정부는 270만 호 공급을 내세우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실제 공급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실제로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19만773가구로, 올해보다 30% 넘게 줄어들 전망이다. 서울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내년 입주 예정 물량은 2만4462가구로, 올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전 정부와 달리 이재명 정부는 주택 공급 성과를 내야 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급 확대를 위해 신속 인허가 제도 도입,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250만 가구 공급 등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공공임대 확대, 노후 인프라 정비, 4기 신도시 조성 등 구상도 꺼내 들었다. 문제는 지금부터 주택 공급에 전념한다고 해도 성과를 내는 데는 최소 2~3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더욱이 전 정부가 추진하던 3기 신도시조차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채 표류 중이고, 그린벨트 해제 문제도 아직까지 큰 진전이 없다. 추가 부지 확보가 어려운 서울은 재건축, 재개발이 주택 공급 확대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업계는 신규 부지를 공급하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급선무다. 윤석열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개선, 다주택자 규제 완화, 종합부동산세 조정 등 정책도 계승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비사업 촉진이 필요한 것은 물론 시장 안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인식을 확고히 한다는 점이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이번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면 지난 정권에서 손상된 민주당의 이미지 회복도 기대해볼 수 있는 만큼 잘 풀어나가길 기대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박원주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비상경제 운영에 거는 기대

대선이 끝났다. 2024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반년 동안 이어온 국정과 경제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고 넘어지지 않으려 급급하는 동안 세계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국내 경제의 어려움 또한 가중되었다. 제대로 된 리더십이 있었다면,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다가오는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기민한 행동을 기대해 볼 수 있었을텐데, 앞바다에서 수십미터 높이로 들이닥치는 거대한 쓰나미를 맥없이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아무 대책도 없이 이 중요한 시기를 허비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사태 앞에서 민생과 국가 경제의 생존이라는 어젠다가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엄과 탄핵, 대선이라는 극단적인 광기와 혼란, 마찰과 분열의 시기를 막 끝낸 우리 앞에 놓인 계산서는 냉정하다. 악화된 경제지표와 서민의 현실은 일자리, 소상공인 매출과 폐업, 가계대출 등 대부분의 서민 관련 지표들이 악화된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이후 임금근로자의 신규 일자리수는 11분기 연속해서 줄곧 줄어왔다.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 숙박업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경기침체 여파로 소상공인들의 매출도 작년에 비해 크게 줄고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이 있는 사업장 360여만개 중 50만개가 폐업이라는 통계도 보인다. 가계 대출 규모 또한 작년 2/4분기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소비, 건설 투자 등 내수 경기 지표도 부진하다. 올 1-4월의 소매 판매 불변지수가 작년보다 줄었고, 건설 기성도 작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제조 평균 가동률도 올 4월 73.8%로 작년보다 줄어들었다. 이에 더해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여파가 현실화되면서 수출에도 주름이 잡히고 있다. 금년 5월에는 수출이 1.3% 감소했다. 석유 제품,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부품, 전기차, 디스플레이 등의 수출 감소세가 특히 두드러져 보인다. 앞으로 더 많은 제조업 분야가 수출 감소의 위기를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재명대통령의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이 외에도 무수히 많다.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전 국민의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을 해소하고 화해와 통합을 일구어야 한다. 양극화와 세대 갈등, 지역분열의 씨앗이 되어 공동체의 불안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충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 2기의 관세전쟁과 가치동맹 소실에 대응하여 각자도생의 시기를 살아남을 수 있는 균형잡힌 외교안보와 국제협력, 자주국방의 길을 열어야 한다. 눈앞에 닥친 초고령화 사회가 제기하는 수많은 도전과제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시대의 글로벌 공조체제에서 우리 몫을 다하고 그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실행력과 지속가능성을 구비한 온실가스 감축의 새로운 로드맵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숙제들은 우리가 살아 남아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경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특단의 전환 필요 당장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생존 환경은 척박하고도 암울하다. 서민이 살아야 내수가 살고, 내수가 살아야 중소기업이 살며,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받쳐 주어야 대기업의 글로벌 도약이 가능하며, 대기업의 성과가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져야 서민경제가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정반대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형국이다. 흐름을 바꾸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날 바로 비상경제 대응TF를 가동하고 직접 회의를 주재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필요했고 마음이 놓이는 일이었다. 3년전 전임자가 취임 일성으로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편향외교와 정적 탄압에 국정의 방향타를 세웠던 것이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지 많은 국민들이 걱정스러워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용주의와 중도의 기치 아래 국민의 삶을 가장 앞에 세우겠다는 것이 위정자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그러지 못할까 두려워할 만큼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는 극도로 낮아져 있었던 것 같다. 이젠 그런 '사소한' 걱정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정치인이 풀어야 하는 최고의 숙제는 당연히 당면한 민생의 위기일 것이다. 이번 비상경제 운영의 핵심에도 추경 편성을 통해 민생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비상경제가 우선이고 개혁 과제는 후순위의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공감한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을 놓칠까 우려스럽다. 위기 극복의 조건은 고통감내와 혁신이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경제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그 말이 대부분 맞았다. 그러나 위기가 당연히 기회가 된 것은 아니었다. 위기를 이겨내는 우리의 방법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이란 너무도 당연하게 고통과 인내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가깝게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1997년의 IMF 외환위기가 그러했고 멀게는 1973년과 1979년에 일어난 2차례의 오일쇼크가 그러했다. 우리는 진통제와 마약으로 위기를 견디고 다시 일어선 것이 아니다. 이를 악물고 환부를 도려내고, 상처부위의 피를 지혈하고 소독약과 항생제를 뿌려가면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 뿌리 뽑는 독한 의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세계가 놀라는 '기적'들을 연달아 만들어 내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IMF가 강요한 처방은 시장개방과 개혁이었다. 그들은 과연 우리나라가 외화 지급불능의 위기를 이겨내고 선진국으로까지 도약하리라 기대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IMF의 처방은 폐쇄되어 있던 우리 경제를 세계적 투기자본들이 약탈적 히트앤런을 되풀이하는 난장판으로 만들거나 부진한 개혁이행과 고질적 정경불안, 경기침체로 채무불이행이 거듭되는 남미형 정체경제로 쇠락시켰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이를 바꾸어 놓은 것이 DJ정부의 결기였다. 기업과 공공부문의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민들이 생활하고 사고하는 방식마저도 뒤집어 놓았다.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경영 확장으로 외형의 거대화만을 추구했던 우리 기업 집단들은 사업 구조조정과 대량 정리해고 등 극단적인 경영개선 활동을 통해 생존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가장 기민하게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최적의 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도산이 줄을 이었고,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50대의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와야 했다. 이전 같았다면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동쟁의와 파업 등 극한 대립으로 치닫았을 노조들 또한 행동을 자제했다. 나라가 살아야 미래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이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진보정권이었던 DJ정부 때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2025년의 위기, 과거와는 다른 해법 필요하다 2025년 우리가 직면한 비상경제 상황은 일견 1997년처럼 유혈이 낭자한 지경은 아니다. 새 대통령 취임이라는 낭보에 주가와 외환 등 일부 경제 지표가 크게 반등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우리 경제는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는 아니라지만 상황을 호전시킬 수단 또한 대부분 소진된 난감한 지경임을 알 수 있다. 예전처럼 고통을 참고 인내하고 더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것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각종 규제가 중첩되고,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동시장과 기업운영의 경직성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시장환경이 급변하면서 대기업들마저도 끊임없는 사업재편을 통해 살 길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이를 도와주어야 할 금융시스템은 아직까지도 '우물안 개구리/구멍가게'란 멸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대외적인 부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시발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의 흐름, 중국 제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점점 그 폭과 빈도를 키워가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교란, 챗GPT 등 AI 신기술을 필두로 우리 제조업의 비교우위에 근본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기술혁명의 전개, 미중 대립구도를 매개로 확산되고 있는 자원 민족주의와 세계시장의 블록화, 온실가스 감축을 명분으로 하는 새로운 시장 규제의 보편화 등 우리 혼자 힘으로 풀 수 없는 난제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코로나 19가 터진 이후 세계 경제에 누적된 군살은 어마어마했다. 일상으로의 복귀 이후 모든 나라들이 경제 정상화를 위해 매진했다. 그러나 건설부문의 PF 부실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가계부채 잔고가 GDP를 넘어섰는데 시장에서는 소상공인의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지난 3년간 우리나라가 누적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새 정부는 이처럼 지난 정부가 게을리했던 시급한 숙제까지 떠안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시장을 살린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기업과 개인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까지는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비상경제 운영의 핵심에는 민생안정과 더불어 시장경제 건전성을 제고하고 기업 경영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상'이란 말을 빼는 순간, 우리 국민들은 고통과 인내를 떠올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언이설과 당장의 위로가 아니라 진실을 알리고 공감을 얻어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이다. 하기 싫더라도 우리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것, 그것이 당면한 비상경제 운영의 기본이다. 이는 모든 국민들에 있어 그러하고,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박원주

[기자의 눈] 소비쿠폰 좋다지만 최저임금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내건 기치는 '민생 회복'이다. 소비 쿠폰 등이 포함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은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단비'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속도감 있는 추경 편성을 당부하며 “취약계층, 소상공인을 우선 지원하라"고 지시한 건 참 다행스럽다. 그러나 새 정부의 행보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한창 논의를 진행 중인 최저임금 문제 때문이다. 소상공인업계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에도 최저임금의 동결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동계 표심(票心)을 고려한 행보였다 하더라도, 소상공인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대비 14.7% 올린 1만1500원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 인상률이 16.4%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한발 물러났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의 최저임금도 버텨낼 여력이 없는 소상공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숫자다. 노동계의 요구안이 공개된 후 소상공인 자영업자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성토의 장이 됐다. 편의점 사장의 수입이 아르바이트생 수입보다 적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재 중 만난 한 자영업자는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가게를 접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이 안 오거나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쪼개기 알바'만 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주일에 1시간에서 14시간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지난해 174만2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간 당 1만원을 넘어선 최저임금에 주휴수당 부담까지 커진 결과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사라지면 근로자가 설 곳도 없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영세 소상공인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다. 소비쿠폰, 부채탕감 등 달달한 정책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의문이 든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사용자 측 위원으로 참여하는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제1의 기치로 내걸겠다고 했다. 최저임금 동결은 소상공인의 '마지막 보루'다. 소비쿠폰이 당장의 어려움을 잊게 해 줄 '진통제'라면, 최저임금 인상은 지병을 악화시키는 '독약'이나 마찬가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단순 득표 합산의 함정: 이준석 지지층의 실제 이동 패턴

선거 결과를 분석할 때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만약 A후보가 없었다면 그의 표가 B후보에게 고스란히 갔을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론적으로 이준석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득표를 합하면 이재명 후보를 넘어선다고 분석하며 단일화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하면서, 이준석 책임론을 들고나오거나 아니면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정신 승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지층 분석이나 출구 조사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이런 주장은 '주관적 희망'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이준석 후보를 지지하는 계층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는 보수적 성향을 가지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 둘째는 민주당 성향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 그리고 셋째는 이준석 후보 자체를 본래부터 지지하는 핵심 지지층이다. 출구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다른 세대에 비해 2030 남성들이 이준석 후보를 가장 많이 지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젊은 세대들의 투표 패턴을 분석해 보면, 이들은 최소한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이재명 후보를 선호하지 않는 층은 아니다. 이들은 기존 보수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한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는 성향의 유권자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김문수 후보와 같은 강경한 보수도 거부하고, 민주당의 '진보 노선'에도 매우 부정적이어서, 또 다른 '보수의 대안'인 이준석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 행태는 기존의 '고루한 형태의 보수'에 대한 거부감과 더불어, 평등과 분배만을 강조하는 기성 진보의 이념 지향성에 대한 거부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런 성향의 젊은 세대들의 지지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이준석 후보가 만약 선거 막판에 사퇴했다면, 그의 지지층은 김문수 후보로 움직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출구 조사 데이터와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준석 후보 지지층 중 보수 성향을 갖는 이들의 비율은 약 30%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2030 세대 남성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전부 김문수 후보 지지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김문수 후보 지지로 이동하는 비율은 많아야 20%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준석 후보를 지지했던 나머지 80%는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일부 민주당 성향의 지지층은 이재명 후보 지지로 옮겨갔을 것이고, 일부는 기권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30 세대의 경우 '차악'을 선택하기보다는 아예 투표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준석 후보에 대한 지지가 주로 젊은 남성 유권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인데, 이는 과거 20대 대선에서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의 성별 갈라치기 전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젊은 세대들의 남성들이 성별 갈라치기와 개혁적 보수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젊은 남성의 이런 정치 의식을 과연 '개혁적 보수'를 향한 지향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성별 갈라치기 전략을 구사했음에도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 후보를 지지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이 건설적인 대안 모색보다는 감정적 반발로 나타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 방식은, 이성에 입각한 이념 지향보다는, 감성과 이념이 뒤섞인 측면이 강함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이준석 의원이 중도 사퇴를 했다고 하더라도, 김문수 후보가 당선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수층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가정을 가지고 현실을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신율

[EE칼럼] 새 정부의 실용주의적 원전 정책을 기대한다

체코 원전 수출이 우여곡절 끝에 체결되었다. 이번 계약은 우리의 경쟁 상대였던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제기한 계약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방법원이 받아들이면서 한때 무산될 위기에 빠졌으나, 체코 최고법원이 가처분 결정을 취소함으로써 최종 성사되었다. 이번 계약 과정에서 EDF가 보여준 모습은, 유럽을 자기 앞 마당쯤으로 여기며 역외 업체의 원전 시장 진입을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억지 그 자체였다. EDF가 문제 삼는 건 크게 두 가지로, 입찰 과정과 건설단가이다. 한수원은 지난 입찰에서 경쟁사였던 EDF와 웨스팅하우스가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건설단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EDF는 한수원의 가격 경쟁력 배후에는 한국 정부의 보조금 있다는 소위 역외 보조금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체코 원전 계약 연기는 역설적으로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대내외에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수원의 원전 건설 비용은 킬로와트 당 3,571달러로, 7,931달러인 EDF 건설단가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전 건설단가는 다른 초장기 대형 공사와 마찬가지로 공사 기간에 비례한다. 원전 건설은 수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거액의 공사비가 들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길어지면 건설 중 이자가 크게 늘고 납품 문제도 복잡해져 이런저런 추가 비용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건설 공기는 2024년 기준 평균 56개월로, 지난 20년간의 전 세계 평균 공사 기간 190개월의 1/3에 불과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EDF는 수 차례 기한을 못 맞춰 건설 예산이 늘어난 전례가 있다. 2007년 짓기 시작한 프라망빌 원전 3호기도 예정보다 12년이나 늦어 지난해에야 가동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예산은 4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면 한국 원전이 압도적 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의 원전 기술이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크게 앞선다고 볼 수는 없다.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매년 표준화된 한국형 원전을 중단 없이 꾸준히 건설해 왔기 때문이다. 동일한 노형을 반복적으로 건설하다보니, 표준화된 설계를 바탕으로 설계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공기 관리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적기 준공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1호기의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총 30기의 원전을 건설하거나 건설 중이다. 특히, 최신 한국형 원전인 APR1400도 국내에 4기, UAE에 4기가 건설 완료되었고, 새울 3,4호기는 완공이 눈앞에 있으며, 신한울 3,4호기는 최근에 착공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랑스는 2007년 12월에 착공되어 무려 17년 만에 완공되어 작년 12월에 전력망에 연결된 플라망빌 3호기가 최근 건설된 유일한 신규 원전이다. 미국도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건설된 신규 원전은 2024년에 상업 운전을 시작한 보글 3, 4호기가 유일하다. 세계적으로 바야흐로 원전 르네상스가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에 걸쳐 잠정 건설 계획 중인 신규 원전은 344기에 이르고, 더욱이 15년 내 건설 계획 중에 있는 원전만 해도 88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큰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원전은 핵무기와 관련되어 있어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에 민감하다. 최근처럼 진영 대립으로 치닫고 국제 질서에서, 원전 건설을 상대방 진영에 맡기기는 매우 부담스럽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원전을 러시아나 중국에게 맡기기 어렵다는 말이다. 결국 서방세계에서 발주되는 신규 원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일본 정도가 차지할 공산이 크다. 현재와 같은 경쟁력 분포를 감안하면 우리가 독차지할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의 원전 경쟁력 유지가 관건이다. 신규 원전 건설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였지만, 원전에 대한 다소 애매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원전은 수출 목적 외에도 대통령 1호 경제공약인 AI 산업 육성과 대선 토론의 독립 주제였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전원이라는 점을 반영한 실용주의적 원전 정책이 하루속히 나와야 할 것이다. 이제는 에너지전환이라는 명분으로 기존 에너지믹스를 급격히 무너뜨리려는 에너지 반달리즘을 끝내야 한다. 국내 원전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린 탈원전 정책의 귀환은 기우가 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대통령 주변을 감싸고 있는 탈원전 인사들이 어른거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박주헌

[기자의 눈] 한국지엠 철수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상상해 보자. 현대자동차가 베트남 자동차 제조사를 인수했다. 인건비가 저렴해 매력적인데 정부가 보조금까지 준다. 세월이 흐른다. 경쟁에서 밀려 판매가 급감했다. 현지 수요가 줄자 차량을 한국으로 수출하기로 한다. 어느날 갑자기 관세 장벽이 생긴다. 인건비는 매년 치솟아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생산성은 최하위다. 그런데도 노조는 계속 임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일부 조합원들은 사장실을 점거한 뒤 집기를 부수며 폭력시위를 한다. 베트남 정부는 내수용 전기차 신모델을 생산하라고 회사를 압박한다. 현대차는 이 공장을 계속 운영해야 할까? 한국지엠 '철수설'로 자동차 업계가 시끄럽다. 사실 정확한 표현은 '철수설'이 아니라 '철수 수순'이다. 한국지엠은 주요 공장 부지와 직영 서비스센터 9개를 매각한다고 최근 밝혔다. '수익성 증대 차원의 결정'이라는 사측 발표를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떠날 준비를 해왔다. 유럽 오펠 매각 등 글로벌 사업장 구조조정을 본격화한 2017년이 기점이었다. 당시 메리 베라 회장이 '해외공장 살생부'에 한국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지엠이 수조 원 적자를 내는 동안 노조가 성과급을 달라고 파업을 벌이던 시기였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은 2018년 군산공장 문을 닫으며 시작됐다. GM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투입한 혈세 8000억 원은 '10년간 사업을 지속한다'는 약속의 대가였다. 한국지엠은 곧바로 연구개발 법인을 인적분할하며 오는 2028년 이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내수 판매가 부진하다면서 광고선전비 집행액은 2023년 348억 3300만 원에서 지난해 221억 4200만 원으로 36.4% 줄였다. 이런 상황에 한국지엠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요구안에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 당기순이익의 15% 성과급, 통상임금의 500% 격려금 등 내용을 담았다. 1인당 6000만원 이상 일시금을 받아 가겠다는 뜻이다. 사측이 밝힌 자산매각 계획을 철회하고 국내에 신차 물량을 배정해달라는 요청도 할 계획이다. 파업은 정해진 수순이다. '노란봉투법' 같은 법안 통과도 예고돼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GM은 이 공장을 계속 운영해야 할까? 한국지엠이 철수할 경우 우리 경제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직접 고용 인력만 1만1000여명이다. 협력사 수는 3000여개로 추산된다. 결국 정부가 나서 GM과 협상을 벌일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쌍용차 사태'까지 겪었던 KG모빌리티는 한국지엠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부활한 경험이 있다. 중국·인도 자본의 만행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노동자와 경영진이 뭉친 덕분이다. 지난해까지 15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 시기 쌍용차 노동자들은 수년간 임금을 동결하며 고통을 분담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이슈&인사이트] 코너로 몰리는 트럼프 관세와 외교 무대에 등단하는 이재명 대통령

트럼프의 관세 부과 정책이 지난 달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지난 달 28일 국제무역법원(CIT)은 트럼프가 관세 부과의 이유로 들고 있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전세계적 관세 또는 보복관세를 정당화할 어떠한 법적 권한도 부여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면서 전면 무효화 그리고 행정명령의 시행을 영구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바로 트럼프는 29일 미 연방순회 항소법원(CAFC)에 항소하여 CIT 판결에 대한 가처분 인용을 받은 상태다. 5월 10-11일 제네바에서 미·중이 만나 관세회담을 한 후 미국은 중국의 관세를 145%에서 30%로 원상복귀 시켰고 90일 간의 유예 기간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풀지 않자 트럼프는 격노했고 지난 6일 극적으로 시진핑과의 전화 회담이 성사되어 오는 9일 런던에서 미·중 관세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 번 회담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사의 예측대로 양국 간 무역 전쟁이 최근 관세에서 수출통제로 초점이 전환되면서 관세 문제보다는 미국은 중국에게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을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수출통제의 해제를 다소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시장은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TACO(Trump Always Chicken Out) 성향을 알고 있어 관세가 궁극적으로 10%로 수렴될 거라는 자신감으로 각국의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고 있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주가지수는 물론 미국의 S&p 지수는 6000 포인트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관세 카드 패가 읽혀면서 중국에게 관세 문제보다 희토류 공급을 요청해야 하는 등 관세 문제에 대해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주 트럼프와 머스크의 충돌에서 보듯이 측근과도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는 최종적으로 그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감세 재원을 만들기 위한 관세의 조속한 타결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세협정이 코너로 몰리면서 유예기간이 끝나는 다음 달 8일까지 과연 몇 개국과 타결이 될지도 불확실한 상태다. 그가 예상한 관세가 징수되지 못한 상태로 감세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발효된다면 10년간 거의 4조 달러에 가까운 재정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마저 안아야 한다. 사법부도 그 어느 나라도 그의 말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11월 초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일본 등 주변국에 대한 태도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올 10월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참석 가능성도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일본도 중국과의 접촉을 늘리며 중일 관계 개선에 눈에 띄게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다케시 일본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한 후 리창 중국 총리를 면담했고 지난 1월에는 일본 자민·공명 연립여당 간사장이 12명의 방중단을 이끌고 중국 공산당과의 정당 간 교류를 7년 만에 재개했을 때도 방중단은 중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최근 10년간 이렇게 많은 공산당 고위 간부가 일본 측을 환대한 건 처음이다. 이런 환경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열리는 G7 회담에 초청을 받아 드디어 외교무대에 등단한다. 세계 강대국 지도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그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 주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이 번 만남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요구할 게 틀림없다. 다자에서 지역 무역체제로의 전환 시기에 우리도 더는 중립 외교 노선을 취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일본처럼 중국과의 무역 실리는 포기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G7 등단이 우리 국민에게 관심과 기대가 되는 이유다. 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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