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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전기차 캐즘? 이제는 ‘스태그네이션’

전기차 시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캐즘'이다. 시장이 형성 초기 대비 크게 주춤하면서, 이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됐다. 그러나 최근엔 캐즘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캐즘이란 '일시적' 침체를 뜻한다. 하지만 2023년부터 시작된 이 하락세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선 캐즘을 넘어 장기적이고 구조적 침체 국면인 '스태그네이션'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늘고 있다. 캐즘은 혁신 제품이 초기 수용자에서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기 전 겪는 일시적 수요 정체를 의미한다. 반면 스태그네이션은 장기간 지속되는 성장 둔화나 정체를 뜻하며, 구조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전기차 시장은 이제 후자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전기차 판매량이 줄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폭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단일 국가의 판매량이 전체 성장을 견인하고 있어 지역 간 불균형이 두드러진다. 2024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약 1710만대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으나, 성장률은 2022년 60%, 2023년 33%에서 점차 둔화되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은 보조금 축소와 충전 인프라 부족 등으로 2024년 판매량이 3% 감소하는 등 역성장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시장도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으며, 중국 시장만이 40%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정체 원인으로는 보조금 축소, 충전 인프라 한계, 소비자 수요 포화, 기술적 한계와 비용 부담 등이 지적된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기차 침체 극복은 단순히 보조금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제는 구매 보조금에서 벗어나, 인프라 투자,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으로 정책을 다변화해야 한다. 우선 충전 인프라 혁신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충전소 확충과 표준화, 지역 맞춤형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또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개발에도 대폭 지원이 필요하다. 전고체, 소듐이온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과 생산 자동화, 재활용 등을 지원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전기차 시장은 이제 단순한 초기 수요 정체를 넘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업계와 정책 당국은 이 현실을 직시하고, 인프라 확충과 기술 혁신, 정책 다변화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이슈&인사이트] 정치적 보릿고개...제대로 넘겨야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1년 중 요즘과 관련한다. 과거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 태어난 말로, 어원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떠돈다. 보릿고개는 말 그대로 보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힘겹게 넘는 굶주림의 고개다. 아직 이삭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 보리를 수확할 수 없던 요즘 같은 때에, 지난해 추석 무렵에 거둬들인 쌀 등 먹거리가 바닥나 손가락을 빨며 버텼다. 생선이나 조개 같은 해산물을 구할 수 있는 어촌과 달리 농촌은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쌀도 보리도 없다 보니 허기를 면할 먹거리를 찾으려 사투를 벌였다. 주식을 대신한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이 요긴한 역할을 했으나 기후가 변덕을 부리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생키는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나오는 하얀 부분을 일컫는다. 액즙이 나오고 씹으면 산뜻한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먹을 게 동나면 이 생키를 다른 나무뿌리에 수수나 조를 섞어 끓여 먹었다. 말 그대로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문제는 이것들이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아 배설할 때 항문이 찢어지기도 했다. 늦봄 배곯는 이들에게 이 '찢기는 아픔'이 실재했다. 중종 36년(1541년) 충청도 관찰사로 있던 안위(安瑋, 1491~1563)가 쓴 에 “솔잎은 먹을 수 있으니 연명에 도움이 된다. 풀죽에 솔잎가루를 섞어 먹으면 훨씬 좋다"라고 돼 있다. 다만 과다 섭취시 솔잎이 변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문제. 솔잎가루를 섭취한 후 '하도(下道)가 막혀 용변을 볼 수 없는' 곤경을 피하기 위한 여러 해결책이 나와 있던 것으로 보아 춘궁기에 솔잎이 널리 쓰였음을 짐작게 한다. 먹을 게 없어 나뭇잎을 뜯어 먹어 병이 생기면 그 병을 낫게 하려고 다른 종류 나무의 껍질을 먹었다고 한다. 아무튼 소나무는 생키 말고 잎까지 내주었으니 조상에게 한 기여로 보아 애국가에 등장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칡뿌리, 풀뿌리를 캐거나 송피를 벗겨 죽을 쒀서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진흙까지 식재료 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입자가 매우 고운 흙을 물에 개어 가라앉은 부분을 쪄서 먹었다고 하는데 정말로 흙을 먹었는지는 논란이다. 초근목피마저 구하지 못하게 되면 먹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노르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크누트 함순의 소설 을 떠올리면 늘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 나무껍질과 마찬가지로 흙 또한 인체에 이상을 야기하고 나중에 심각한 변비를 일으켜 “똥구멍이 찢어지는" 사태를 초래했다. 영국에는 우리말 보릿고개에 해당하는 '굶주린 시기(hungry gap)'가 있다. 통상적으로 겨울 채소가 소진되고 여름작물이 아직 자라지 않아 농산물 공급이 부족한, 보릿고개보다 좀 이른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영국발 외신에 따르면 올해 토마토, 가지, 오이, 피망 등 지중해성 채소가 모두 예정보다 2~3주 일찍 익어 도시로 출하됐다. 몇 주 전 이야기다. 올해 영국에서 '헝거 갭'이 사라진 이유는 봄이 이례적으로 따뜻하고 건조했기 때문이다. 농산물 수확이 앞당겨지고 농산물 공급 공백이 해소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농민은 크게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해마다 점점 예측이 어려워지는 기후 변화가 농가에 불확실성과 부담을 안기기 때문이다. 올해는 좋았지만, 내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후변화로 전통적인 농업 방식과 농작 일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농가뿐 아니라 식량안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당연히 영국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소수를 제외한 한국인에게 보릿고개는 개념어에 불과하다. 지금 겪는 정치적 보릿고개가 더 심각할 따름이다. 정치적 보릿고개를 잘 넘지 못하면 기후위기와 맞물려 종국에 현실의 보릿고개가 도래할 수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 “똥구멍이 찢어지는" 세상이 두렵다. 허투루 듣지 말았으면 한다. 안치용

[이슈&인사이트] 조지프 나이의 ‘소프트파워’꿈을 무너뜨린 트럼프 시대

얼마 전, 미국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S. 나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힘이 아니라 매력과 설득으로 세상을 움직인다"는 소프트파워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다. 국제정치의 언어가 군사력과 경제제재 같은 하드파워 일변도였던 시대, 나이는 미국이 세계의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 지켜야 할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 그가 꿈꾸었던 미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세우는 부드러운 문화국가였다. 인권, 민주주의, 관용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실천하며, 이웃국가들을 억압하지 않고 모범으로서 세상을 이끄는 국가였다. 그러나 그의 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스스로 그 이상을 저버리고 있는 순간과 겹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소프트파워의 기반을 뒤흔들었다. 그는 동맹국을 모욕하고, 이민자를 사냥하며, 미국의 외교적 신뢰를 스스로 허물었다. 그가 해체한 USAID(국제개발처)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인도적 이미지와 글로벌 영향력을 지탱해온 상징적 기구였다. 트럼프에게 설득과 모범은 의미 없는 수사(修辭)이다. 그의 세계관에서 힘은 협박과 거래, 무력을 통해서만 작동한다. 조지프 나이가 말했던 소프트파워는 더 이상 미국 외교의 중심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지프 나이의 유산을 이어가려는 이들은 남아 있다. 빌 게이츠는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5년간 자신의 부를 공공보건과 빈곤퇴치에 쏟아부으며, 민간 차원의 소프트파워를 실천했다. 2025년 5월, 게이츠는 자신의 재산 99%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고, 2045년까지 재단을 해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날, 미국인 출신의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되었다. 그 역시 세계적 책임을 고민하며, 부유국의 의무를 강조하는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지프 나이가 옹호했던 '설득의 힘'을 지켜내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소프트파워를 밀어내고, '검열파워'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도 흑인 전투기 조종사의 역사 교육을 금지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유학생들을 추방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 정부 웹사이트에서는 '다양성', '젠더' 같은 단어가 사라졌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시온주의 비판을 법적으로 금지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고, 유럽연합은 러시아 국영 매체의 방송을 금지했다. 루마니아에서는 러시아 개입 의혹을 이유로 특정 대선 후보가 결선 진출에서 배제되었으며, 독일은 '네트워크 집행법'을 통해 소셜미디어 검열을 제도화했다.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표현을 억압하는 이중적 현실. 검열은 더 이상 권위주의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국가들조차 검열의 유혹에 빠지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의 검열을 풍자한 캐릭터 '아나스타지의 가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불편한 표현을 자르고 통제하려는 충동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충동이 장기적으로 더 큰 불편과 억압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조지프 나이는 설득과 모범의 힘을 믿었지만, 지금 세계는 권력의 이름으로 표현을 자르고,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이견을 억누른다. 한쪽의 검열은 다른 쪽의 복수를 부르고, 그 악순환 속에서 결국 사라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유다. 조지프 나이의 경고, 오늘의 우리에게 조지프 나이가 남긴 소프트파워의 가치는 단지 외교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본질, 자유사회의 근본 원칙과 맞닿아 있다. 힘이 아니라 매력으로, 강압이 아니라 설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될 유산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세계는 그 유산을 밀쳐내고 있다. 검열의 칼날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시대, 조지프 나이의 꿈은 우리에게 묻는다. “힘이 아닌 설득으로,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성일권

[김성우 칼럼] 미국 기후·에너지 정책의 불확실성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기후대응기금 운용심의위원 지난 5월 21일부터 2일간 서울에서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가 개최됐다. 이는 한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 등 저명한 글로벌 리더들이 한곳에 모여 현대 사회가 직면한 이슈들을 놓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왔는데, 올해는 리시 수낙 전 영국 총리 및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부 장관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연사가 국제 정세, 세계 경제, 기후 위기 등에 대해 논의했다. 필자는 올해도 환경에너지 세션을 진행했는데, 최근 쏟아지는 트럼프2기 기후·에너지 정책의 후속조치들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다루었다. 이를 위해 미국내 기후·에너지정책 씽크탱크인 C2ES(Center for Climate and Energy Solutions)의 정책전문가를 초대해, 미국 행정부 조치 및 의회 입법화 현황을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또한, 급격한 정책변화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풍력 산업을 예시하기 위해, 글로벌 리딩 해상풍력 개발사의 아시아 태평양 대표를 초청해, 인사이트를 공유함으로서 불확실성을 구체화하고 시사점을 모색했다. 불확실성의 실체는 이렇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기후 변화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미국의 정책방향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취임 첫 날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NATIONAL ENERGY EMERGENCY) 선언하고 미국에너지해방을 위한 행정명령을(UNLEASHING AMERICAN ENERGY) 발표함으로서, 청정에너지 보조금 동결이나 사회적 탄소비용 배제 등 급격한 정책방향 전환의 서막을 열었다. 후속조치로 지난 3월 환경보호청(EPA)은 기존 환경 규제의 전반적인 재검토를 명령했고, 환경정의를(Environmental Justice) 더 이상 적용하지 않는 정책방침(Memorandum)도 발표했다. 이번달에는 에너지부(DoE)도 역사상 최대인 47개 규제 완화 및 철폐를 추진한다고 밝혀, 청정에너지에서 화석에너지로의 전환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영향이 큰 해상풍력을 예로 들면, 지난 4월 내무부 장관은 뉴욕 인근에서 공사가 30% 진행되고 있던 Empire Wind Project 건설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810MW 규모로 6조원이 넘는 규모의 사업이다. 다행히 지난주 건설 중지가 철회되어 공사를 재개하게 되었지만 시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게다가 의회도 세수 조정의 일환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의한 청정에너지 및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철폐하는 법안을 지난주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지난 2022년 IRA가 발효된 이후 발표된 청정에너지 사업은 총 390건인데 그 중 243건이 공화당 우세지역내 사업이므로 의회내 합의 과정에서 보조금 축소의 정도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관측이 무색해 짐에 따라, 그 불확실성은 최고조인 상황이다. 상술한 정책변화는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나 의회가 새로운 기후·에너지 관련 조치를 발표할 때 대부분 이는 미국 산업을 위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12월부터 2월사이에 전세계 고위경영층을 대상으로 설문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정작 미국 임원들의 97%는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길 원한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2기의 에너지정책으로 과연 급증하는 AI의 에너지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은 2030년까지 84GW 수준의 막대한 AI 에너지수요가 예상되는데, SMR(소형원자력)이나 가스터빈은 2030년까지 활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청정에너지를 배제하면 대규모 단기수요 증가를 감당할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편, 2024년 기준 전세계에서 재생에너지가 신규로 설치된 양은 585GW였는데, 이 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GW로 약 7%인 반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74GW로 무려 64%에 달한다. 향후 미국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자국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지 않음과 동시에 중국 청정기술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이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약 20년간 워싱턴에서 미국 기후·에너지 정책을 분석해 온 전문가도 트럼프 2기의 정책변화는 선례가 없는 것이라 예측이 어렵다고 개별 식사자리에서 토로했다. 아무래도 상술한 초유의 불확실성은 미국 법원의 판단과 상원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김성우

[기자의 눈] 써니항공 비행 일지 조작 사태, 도덕적 해이 넘어선 범죄 행위다

“모든 비행 규정은 피로 쓰였다.(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 1903년 12월 17일, 윌버·오빌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를 제작해 사람이 하늘을 날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121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때마다 각종 안전 규제가 만들어졌고, 전세계 항공 안전 기관의 표상과도 같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희생된 이들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며 이 같은 자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FAA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안전 불감증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써니항공에서 일부 군 출신 조종사 훈련생들이 사업용 육상 다발(MEL) 조종 자격 증명을 위한 비행 시간 등 훈련 기록을 담은 비행 기록 일지(로그북, Logbook)를 조작한 사실이 항공 안전 감독(ASI)을 통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항공 전문 교육 기관에서 10시간 넘는 비행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써니항공은 4주 간 비행 교육 12시간·비행 훈련 장치(FTD) 3시간을 명시하고 있다. 해당 훈련생들은 비행 실습 교육을 불과 1~2시간만 듣는 등 정상 범위에서 한참 벗어났음에도 교육 과정을 다 마친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몄다. 이에 따라 관리·감독 기관인 부산지방항공청이 관련 사건에 대해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로그북은 조종사 자격 취득과 경력 관리의 핵심 자료로, 실제 비행 또는 시뮬레이터 훈련 시간을 기록해 항공사 입사·승급·자격 유지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로그북 조작은 항공 교통 안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도덕적 해이를 넘어 중대한 범죄 행위다. 아무리 오토 파일럿 시대라지만 항공 안전은 여전히 조종사의 숙련도와 경험에 크게 의존한다. 허위 경력으로 미숙한 조종사가 양성될 경우 사실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대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무고한 수백 명의 승객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비행 사고의 대부분이 인적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현재 국토부는 항공 전문 교육 기관 운영 승인·지정·관리 감독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급 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TS)은 국토부가 인가한 써니항공이 발급한 경력 증명서를 믿고 면장을 내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또 신규 기재 도입 계획에 따라 일부 저비용 항공사(LCC)들은 거짓 경력을 써낸 이들을 부기장으로 채용해 제트 엔진 한정 자격 증명 교육을 진행 중이다. 이 자체로 업무 방해죄에 해당하는데, 차후 해당 부기장들에 대한 자격 박탈 조치가 뒤따르면 유형의 손실을 떠안는다. 현행 항공안전법 제43조는 '항공 종사자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자격 증명이나 항공 신체 검사 증명 등을 받은 경우 국토부 장관은 취소 또는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효력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돼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국내에선 대형 항공 사고들이 연달아 터져 전 국민적 불안감이 고조돼있는 상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관계 당국의 훈련 기관·항공사·관련자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전수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 처벌이 시급하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E칼럼] 인공지능으로 설계하는 새로운 대한민국

작년 말 충격적인 비상계엄 선포 후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는 짙은 불확실성의 안개 속을 헤쳐 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고, 세계의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혼란한 시기에 출마한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인공지능(AI) 관련 공약은 향후 대한민국호의 진로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기존 대선에서 주로 부동산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인공지능 관련 정책을 내세우기 바쁘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현재의 인터넷 이상으로 인간 문명의 근본적 기반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기에 이러한 열성이 당연하다 여겨지기도 하나, 공약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실행의 현실성에 있어서는 차분한 복기가 필요해 보인다. 인공지능 관련 산업의 현 주소를 보면 아직도 수익이 주로 발생하는 분야는 인공지능 모델 개발과 개발된 모델로 서비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와 설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 분야이다. 물론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미국의 엔비디아지만 기존부터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도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하드웨어 분야에 대한 지원 역시 국가 경쟁력 유지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세한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지원과 구분되지 않으면 오히려 인공지능 산업의 보다 본질적인 요소인 소프트웨어 몫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더구나 현재 공약으로 제시된 GPU나 AI데이터센터 확보와 같이 단순한 자금 지원만으로 가능한 방법으로는 인공지능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엔비디아가 오늘날 인공지능 업계 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GPU만 제조한 것이 아니라 '쿠다(CUDA)'라는 GPU를 활용할 수 있는 개발 툴로 AI 개발 생태계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반 전환(AX, AI Transfomation) 역시 AI 모델을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지, 인공지능 칩이나 데이터센터 확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버린 AI 구축이냐 해외 인공지능 모델 기반 서비스 활성화냐 논쟁도 결국 국내 인공지능 기반 산업 생태계가 존재해야 의미가 있다. 또한, 인공지능 산업 생태계의 본격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의 가장 핵심이 되는 데이터에 대한 규제 명확화 및 자율 규제 확대가 필요하다. 공공 영역에 쌓여 있다고 홍보가 많이 되는 의료데이터는 품질 문제나 개인정보 보호 등 가공의 어려움으로 활용에 많은 난관이 있다.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개인형 맞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국민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필수적인데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생명윤리법 등 각 부처별로 관할 법령에서 따로 규제를 하고 있어 하나의 장애물을 넘어도 다른 장애물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자동차를 포함하는 모빌리티 산업은 자율주행을 핵심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향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국이자 아시아 최초로 자율주행자동차법을 선도적으로 제정한 우리는 수년간 시범운행지구에서 제한된 방식의 운행만 허용한 결과 자율주행자동차 업계의 기술력이 중국, 미국 등 세계 수준과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자국에서 이미 충분한 운행 데이터를 확보한 중국의 자율주행 업체가 최근 국내에서 로보택시 운행을 위한 임시운행 허가를 신청한 반면 국내 업체들은 자율주행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데이터에 대한 규제 방식과 정책 방향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야기한 것이다. 데이터 보호기관이자 동시에 데이터 활용 규제의 중심축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최근 전 분야 마이데이터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데이터 활용을 장려하는 정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인공지능 산업은 데이터를 원료로 발전하기에 양질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데이터 활용을 위해서는 활용 범위와 방법에 대한 규제가 명확해야 한다. 또한 이제 초창기에 들어선 인공지능 산업에 규제 만능주의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업계의 자율규제에 맡길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원인제공자에게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후보들이 대선을 위한 공약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인공지능으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길 빈다. 양희철

[김병헌 칼럼] ‘백척간두(百尺竿頭)’의 경제 앞에 선 정치

“물을 건너지 않고는 바다를 알 수 없고, 산을 넘지 않고는 그 너머의 세계를 알 수 없다."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정식 시문(詩文)에서 확인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제를 진단하는 데 있어 이 고전의 통찰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정부도, 한국은행도, 여야 정치권도 바다 건너는 배에 타지 않았다. 산 너머를 보려는 망루도 짓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지금, 고물가, 고금리, 고부채'3고(高)'라는 질긴 덫에 빠져 있다.지난달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다시 한 번 2.75%로 동결했다. 표면적으론 인플레이션 둔화와 경기 위축, 부채 부담을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엔 방향을 향한 철학도, 구조 변화에 대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서민에게는 숫자가 아닌 체감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달 기준 2%대를 기록했지만,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6% 상승했다. 더구나 농축수산물 가격은 6% 이상 올라 체감 물가는 통계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한 끼 외식비가 1만 원을 넘는 시대다. 커피 한 잔 가격은 6천 원대를 넘본다.공자(孔子)가 편찬한 역사서인 춘추(春秋)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상화이민곤(上和而民困/윗사람은 평안한데 백성은 곤궁하다"는 말이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가계부채는 1,806조 원. 국민 한 사람당 약 3,500만 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가도, 전체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은 15조 원이 늘어난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코로나19 이후 대출로 연명하던 이들이 이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지만, 경기는 되살아나지 않는다.앞으로 나가자니 부채가 발목을 잡고, 물러서자니 물가의 칼끝이 서민 경제를 베어낸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79%로 상승했다. 이는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월세 내고 직원 월급 주면 남는 건 마이너스"라는 말이 상식처럼 오간다. 이제는 장사를 접을지, 버틸지를 두고 줄을 서는 형국이다. 와중에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3개월 연속 상승했다.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된 자산시장의 불안한 움직임이다. 경제에서 금리는 신호다. 정책은 방향이고, 금리는 그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신호도 그 등대도 없다. 그러면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해 4월 총선 이래 12·3 계엄사태,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지금까지 여야는 경제 회복보다 '주도권 싸움'에 몰두해왔다.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뒤늦게 유력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경제회복에 외치고 있지만 공약은 하나같이 공허해 보인다. 실천 의지가 제대로 담긴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의 무망한 '경제 공백' 속에서 국민의 삶은 오늘도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오는 28일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발표한다. 기존 전망치는 2.1%였지만, 1% 중후반 혹은 1% 초반까지 하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부 민간 연구기관은 무려 0.8% 전후까지 하락할 것이라고도 예측한다. 더큰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우리의 성장 궤적은 수년간 점차 기울어왔다. 팬데믹의 후유증, 글로벌 금리 인상, 공급망 재편, 미·중 패권 경쟁, …이 모든 것이 구조적 요인으로 누적되어 왔다. 여기에 트럼프 관세 전쟁은 새로운 불확실성까지 가중시키고 있다.고통은 현실이고, 위기는 현재다. 아쉽게도 해답은 경제 통계 속에는 없다. 거리의 노점상, 새벽의 택시 기사, 반찬 앞에 선 주부, 빚내어 집을 산 청년의 눈빛 속에 있다. 정치란 결국, 국민을,사람을 위한 것이다. 정치는 위기 앞에 비로소 진심을 보인다고 하니 이번 대선을 통해 정치는 진심을 회복하고 다시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불씨를 살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경제는 결코 숫자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도 명심하기 바란다.

[기자의 눈] 또 ‘인명 사고’, 또 ‘SPC’

또 SPC그룹이다. 잊을만 하면 발생한 계열사 사업장의 산업재해로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식품그룹 SPC에서 다시 인명사고가 터졌다. 과거 허영인 회장의 대국민사과와 함께 사업장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던 약속을 무색하게 만들며 다시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19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 SPC삼립은 김범수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공장 가동 중단 등 뒷수습에 나섰지만 재발되는 인명 사고 탓에 SPC를 바라보는 여론은 차갑기 그지없다. 산재 발생과 인명 피해, 기업의 사과와 안전대책 약속이 반복되면서 SPC의 '안전 불감증'이 다시 도진 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2022년 10월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사망한 사고를 시작으로 최근 3년 간 SPC 계열사에서 총 3건의 사망, 5건의 부상 사고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첫 사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허영인 회장이 1000억 원을 투자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경영을 펼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번 인명사고로 '사실상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SPC는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안전경영 레터'를 통해 그동안 안전설비 확충·장비 안전성 강화·고강도·위험작업 자동화·작업환경 개선 등을 수행하며,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예산(1000억원)의 약 84%인 835억원을 집행했다고 홍보했다. 이같은 SPC 산재예방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진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이번 시화공장 인명사고로 그 진의가 의심받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당장에 일각에선 소비자 불매 움직임이 있어 SPC그룹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사고가 난 시화공장이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킨 '크보(KBO)빵'의 주요 생산공장이어서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안전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더라도 산재, 그것도 인명 피해가 반복된다면 그 기업은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SPC는 뼈를 깎는 노력에도 유사한 사고가 반복된다면 내부 안전경영 전면 재검토, 작업장 안전시설 개편, 작업현장 종사자 안전의식 개선 등 사운을 건 전사적 캠페인으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언제쯤 대선 공약집에 금융산업 발전 방안 담길까

6.3 조기 대선이 2주도 남지 않았다. 대권을 노리는 주자들은 전국을 돌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등 주요 후보들의 공약집에서 금융 관련 공약이 소상공인 지원·대출 부담 완화를 비롯한 정책금융에 국한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인공지능(AI)·방위산업·에너지 등의 분야에 각종 공약이 집중된 반면 금융 분야는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인다. 요식업을 비롯한 소비업종을 중심으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고 취약 차주가 늘어나는 상황을 고려해도 '기브 앤 테이크' 방식이 결여된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재명 후보의 중도상환수수료 단계적 감면, 김문수 후보의 신용카드 캐시백 제공 등은 금융사의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하다. 앞서 민주당이 주장했던 횡재세 이슈가 금융권 안팎의 비판을 받고 수그러들었으나, 상생금융을 비롯한 다른 형태로 녹아드는 셈이다. 높은 은행 의존도와 가맹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금융사들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규제 대상 은행을 확대하고 자본요건을 강화하는 '바젤3 엔드게임' 대폭 수정 또는 폐지 △인수합병(M&A) 심사 기준 완화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의 수수료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는 것과 대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시절에도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를 천명한 바 있다.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대 대선에서도 금융 분야는 소외됐었다. 당시 안보 분야에서 진보·보수 후보간 입장이 명확히 갈라지면서 공방이 벌어졌지만, 금융 부문의 경우 금융사고 방지와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정책이 언급됐을 뿐 큰 쟁점이나 이슈가 된 정책·공약은 없었다. 20대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영업자 손실보상 프로그램(50조원 규모) 및 소액채무 원금 감면폭 대폭 확대, 이재명 후보는 전국민 대상 기본소득과 최대 1000만원 장기·저리 기본대출을 비롯한 공약을 내놓았다. 두 후보 모두 여의도와 전북을 중심으로 금융산업을 발전시킨다고 했으나, 기존에 있던 계획과 유사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구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대선에도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금융당국 구조개편이 그나마 금융산업 분야 공약으로 포함될 수 있는 정도다. 지난해 IMD가 전 세계 67개국을 대상으로 금융산업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대한민국이 20위로 나타나는 등 민·관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차기 정부와 국회가 이같은 현실을 타개하고 금융사들이 '밸류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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