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메모리 패권] ‘시장과 기술 다 가진’ 中의 반도체 야망, 삼성 발목을 잡다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장악해온 메모리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밀린 데 이어, DRAM과 낸드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경쟁력을 압박하는 세력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자국화 전략과 미국의 대중 규제라는 이중 압박은 삼성의 기술력만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구조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3알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삼성의 '텃밭'에 실질적인 균열을 내고 있다. 특히 DRAM의 CXMT와 낸드플래시의 YMTC는 생산 능력, 기술, 가격경쟁력 삼박자를 갖추며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CXMT는 2025년 현재 월 16만 장 수준의 12인치 웨이퍼 DRAM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이는 글로벌 생산능력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로, 아직 시장 점유율은 5% 내외에 그치지만 물량 확대에 따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6나노 기반의 DDR5 제품까지 양산하면서, 기존 DDR4·LPDDR4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YMTC는 최근 294층 적층 구조의 5세대 3D NAND 플래시 출하에 돌입했다. 자사의 핵심 기술인 Xtacking 구조를 바탕으로 232단 낸드 기술을 상용화한 데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적층 기술로 평가되는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경쟁사 대비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특히 중국 내수시장에서 이들 기업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탈삼성'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CXMT와 YMTC의 제품은 삼성·SK 제품 대비 10~20%가량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으며, 정부가 지원하는 국산화 확대 정책과 결합되면서 B2B 납품 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 공공·산업용 서버 메모리 시장에서 YMTC 점유율이 30%에 근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추격과 함께 삼성에게 더욱 복잡한 변수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다.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은 전체 낸드 생산의 약 28%를 담당하는 글로벌 핵심 거점이지만, 미국 상무부의 규제 정책에 따라 공정 전환과 장비 반입이 제한되고 있다. 2024년 미국은 삼성과 SK하이닉스에 대해 장비 수출 유예 조치를 일시적으로 연장했지만, EUV, 식각, 증착 장비 등 첨단 공정 설비에 대한 반입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시안 공장은 신규 라인 증설은 물론, 기술 업그레이드 속도에서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구조적으로 '미래 대응력'이 떨어지는 공장이 된 셈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최근 CHIPS법 관련 지원금 지급을 두고 조건 재검토에 들어갔다. 당초 삼성전자가 받을 예정이던 최대 64억 달러의 보조금은 2024년 말 기준 47억 달러 수준으로 조정됐으며, 2025년 들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법안의 전면 재협상 방침을 내세우면서 지급 자체도 유동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삼성의 글로벌 생산전략이 정치 환경에 따라 직접 영향을 받고 있는 대표 사례다. 물론 삼성전자는 여전히 DRAM, 낸드, HBM 등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만들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묻는 중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내걸도 정진하며 현재 자급률은 약 25% 수준까지 끌어 올린 것으로 조사된다. 정부 주도의 조달·보조·시장통제 수단을 통해 사실상의 자국 중심 공급망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미국은 CHIPS법, IRA 등을 통해 자국 내 생산 유치와 동맹 중심 공급망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양국 모두 '중립' 혹은 '회색지대'를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삼성의 전략은 전환이 불가피하다. 시안 공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미국·인도·동남아 중심의 글로벌 생산망 재편에 나셔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지정학과 외교, 산업 전략에 맞춘 생산 구조와 고객 파트너십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한 반도체 관계자는 “지금은 기술이 아닌 시스템을 설계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며 “삼성은 '기술 중심의 제조사'에서 '공급망 중심의 전략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끝] 강현창 기자 khc@ekn.kr

[격동의 메모리 패권] 기술 패권의 상징 ‘HBM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HBM(High Bandwidth Memory)이 글로벌 메모리 업계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기존 DRAM보다 수배의 대역폭과 소비전력 효율을 가진 HBM은 고성능 GPU와의 병렬 연산 구조에서 병목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메모리 솔루션으로 꼽힌다. HBM은 이제 메모리 업계의 '주력 제품군'이자, AI 생태계의 기술 패권을 좌우하는 상징적 제품이 되었다. 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HBM 시장은 약 9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2025년에는 13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엔비디아, AMD, 인텔 등 AI 반도체 설계사가 HBM을 필수 요소로 채택하면서, 고객사와의 연계성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는 중심에서 한 발 물러선 상태다.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은 SK하이닉스다. 하이닉스는 2022년 HBM3, 2024년 초 HBM3E 양산에 성공하며 AI 시장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의 주력 공급사로 자리매김했다. B100, GH200, GB200 등 최신 GPU 플랫폼 대부분이 하이닉스 HBM을 채택하고 있으며, 고객사와의 공동 설계·동기화 개발을 통해 패키징 호환성과 전력 효율까지 최적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4년 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었다. 이어 마이크론도 HBM 시장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후발주자였던 마이크론은 2025년 3월 엔비디아에 HBM3E 납품을 확정지으며 본격적인 진입에 성공했다. HBM3E 12단 제품은 동급 대비 소비전력을 20% 절감하고, 발열 제어에 강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마이크론은 'SOCAMM'이라는 모듈형 메모리 패키징을 병행 공급하며, 단순 메모리가 아닌 플랫폼 맞춤형 솔루션 벤더로 전략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해진 상태다. 삼성은 2023년 하반기부터 HBM3E 제품을 개발 완료하고 고객 인증을 추진해왔으나, 2025년 3월 말 현재까지 납품이 공식화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HBM3E 초기 제품에서 발열 및 수율 문제, 소비전력 최적화 이슈가 지적됐으며, 이로 인해 엔비디아의 플랫폼에 채택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보다 구조적인 문제는 삼성의 제품 개발 전략 자체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이 고객사와 '공동개발' 방식으로 설계-인터페이스-패키징을 맞춰가는 방식이라면, 삼성은 제품을 먼저 개발한 뒤 고객사에 제안하는 '단방향 납품 구조'를 고수해왔다. 이는 HBM처럼 초정밀 맞춤 설계가 요구되는 제품군에서는 고객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은 이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관계 경쟁"이라며 “고객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채택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인은 “삼성의 기술력은 여전히 뛰어나지만, 고객 생태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입지를 단기간에 따라잡긴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에게도 기회는 있다. 바로 HBM4다. HBM4는 HBM3E 대비 속도는 60% 이상 빠르고, 소비전력도 개선된 차세대 메모리다. AI GPU 업체들은 2026년부터 HBM4 기반의 차세대 플랫폼(B400 등)을 출시할 예정이며, 2025년 한 해가 공급사 선정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HBM4에서도 삼성전자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HBM4 12단 샘플을 이미 고객사에 제공하고 있으며, 마이크론도 설계 협의 단계에 들어섰다. 반면 삼성은 HBM4 개발을 가속화하고는 있으나, 핵심 공정인 1c D램의 일정이 지연돼 시제품 제작조차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당초 2024년 말 목표였던 1c D램 양산은 2025년 6월로 연기되었고, 이는 HBM4 개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삼성전자의 반등은 HBM4를 기점으로 전략을 전면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고객 공동개발, 플랫폼 최적화, 패키징 역량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HBM 시장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양자 구도로 고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전쟁은 단기 수주 경쟁이 아니라, AI 시대를 선도할 '기술-고객-생태계 동맹'의 전쟁"이라며 “삼성이 이 경쟁에서 다시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그 성패는 2025년 HBM4 공급 전선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격동의 메모리 패권] ‘흔들리는 1위’ 삼성전자의 균열, 어디서 시작됐나

삼성전자가 내달 발표할 2025년 1분기 실적에 대해 시장은 '부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D램·낸드 등 전통 주력 제품의 가격 반등이 더디고,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HBM 고부가 메모리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다. 동시에 중국의 기술 자립화와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삼성의 글로벌 공급망 전략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이에 본지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와 경쟁 지형의 변화를 짚어보고자 한다. 삼성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이 순간, 메모리 산업의 권력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가 다음달 초 2025년 1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시장의 예측은 명확하다.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이 유력하며, 메모리 사업도 낙관하기 어렵다. 1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에 대한 실적을 예상하는 증권가 보고서는 대부분이 컨센서스 하회를 점치고 있다. “낙폭은 줄겠지만, 턴어라운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 DRAM과 NAND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 반도체 매출 기준으로도 글로벌 톱티어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제 단순한 숫자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수치상 1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기술·고객 신뢰·시장 내 영향력 등 '질적 리더십'은 분명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단순한 실적 부진이나 경기 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1등 삼성전자가 이제 대세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시작은 2023년 이후,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그 핵심에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라는 고부가 제품군이 있다. 현재 이 분야에서 삼성은 후발주자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HBM3E 제품의 고객 인증이 지연되고 있으며, 실제 납품에 있어서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모두 밀리는 상황이다. 수율·발열·전력 효율 등 기술적인 완성도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된다. 2022~2024년의 삼성전자의 전략 흐름을 되짚어 보면 삼성전자의 위기가 시작된 지점이 보인다. 이 시기는 메모리 업계 전체가 혹독한 다운사이클을 겪은 시기다. 수요 급감에 대응해 삼성은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물량 공세' 전략을 고수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점유율 방어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고객 신뢰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낳았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수익성 중심의 유연한 공급 전략을 택했고, 고객사와의 설계 단계 협업도 강화하며 기술 중심 생태계로 발빠르게 이동했다. 이 차이는 HBM 시장에서 특히 극명하게 드러났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사실상 플랫폼 수준에서의 최적화를 실현했고, 최근 마이크론도 HBM3E 납품을 통해 '대체 벤더' 이상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독자 설계 전략을 고수했고, 고객사와의 밀착 협업 구조가 뒤늦게 시작되었다다.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닌 '고객과의 거리'가 패권 구도에서 밀려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삼성의 약점은 조직 전략 차원에서도 드러난다. 바로 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부문 간의 시너지가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고객사는 AI 반도체를 하나의 '통합 솔루션'으로 보고 메모리-CPU-GPU까지의 연결성을 중시하고 있으나, 삼성은 부문 간 전략 연계보다는 독립 채산제 기반의 사업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 역량은 있지만, 이를 고객 맞춤형 설계로 구체화하는 역량에서는 경쟁사 대비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근의 메모리 산업은 '관계의 경제'로 재편되고 있다. 고객은 단순히 메모리를 구매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품 설계 단계부터 벤더를 선정해 최적화 구조를 함께 만들어간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AMD와 긴밀한 개발 파트너십을 형성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대량 생산→고성능 납품'이라는 과거형 전략에 머물러 있었고, 이로 인해 신뢰의 고리를 잇는 데 실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계 최대의 메모리 생산 능력과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패키징 경쟁력 강화와 차세대 메모리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의 위기는 단지 기술이나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기의 전략 실패'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단기간의 수익 개선이나 제품 출시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다시 중심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함께 설계하고 미래를 제안하는 회사'로의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며 “플랫폼에 최적화되고, 전력 효율과 패키징 구조까지 설계에 반영된 '맞춤형 기술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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