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당선되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현지 에너지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제도적으로 대통령이 법안을 폐기할 수 없고, 현실적으로도 오일메이저를 포함해 이미 수많은 현지 기업들이 IRA 사업에 착수했기 때문에 이를 중단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는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어 IRA 내에서도 블루수소, 바이오연료 등 미국에 유리한 분야를 더욱 강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31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후 및 에너지 공약은 간단하게 파리기후협정 재탈퇴 및 화석연료 규제 철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인터넷 공약집 아젠다47에서 “다시 한번 끔찍하게 불공평한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세계 어느 나라 보다 풍부한 미국의 에너지 자원개발을 중단시키려는 급진 좌파의 모든 그린뉴딜 정책에 반대할 것"이라며 “에너지의 80% 이상을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세계 경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계속해서 시추를 할 것이다. 미국의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을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연방 굴착허가 및 임대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지연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에너지정책 목표는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와 전기를 보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이루며, 이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제조 강국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화석연료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의 채굴 제한 등 관련 규제를 모두 철폐하고, 파이프라인 건설을 통해 화석연료 운송비용 등을 줄이며, 원전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에 그는 배터리 핵심광물을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전기차 산업과 풍력산업을 맹비난했다. 또한 수소 혼합,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에 대해서도 “검증되지 않았고,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트럼프의 공약 때문에 국내에서는 트럼프가 재당선될 시 바이든 현 정부에서 제정된 IRA법을 폐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IRA법의 핵심은 청정에너지 및 관련 어플리케이션의 미국 보급 확대를 위한 것으로 △전기차 △태양광 △풍력 △수소 및 수소화합물 △저탄소연료에 대한 세액공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에너지업계에서는 트럼프가 재당선돼도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IRA법의 폐기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에너지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미 정부 규제의 결과물은 예산 편성에 있다고 볼 수가 있는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IRA법의 예산이 이미 로컬정부나 프로젝트단계까지 전달된 상태"라며 “아무리 트럼프가 재당선 되더라도 그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2033년까지 8000억달러의 집행이 될텐데, 이 방향을 틀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며 “특히 미국의 메이저 에너지 회사들이 이미 에너지전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여서 트럼프의 에너지정책의 변화는 그다지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전 트럼프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렉스 틸러스가 사장으로 있던 엑슨모빌의 경우 텍사스 배이타운에서 세계 최대 저탄소 수소 및 암모니아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천연가스로부터 탄소를 포집저장해 연간 수소 90만톤, 암모니아 100만톤을 생산하는 사업으로 빠르면 2027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일본 최대 발전사인 제라(JERA)는 이 프로젝트와 연간 암모니아 50만톤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엑슨모빌은 아칸소주에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광물인 리튬을 개발 중으로, 빠르면 2026년부터 생산할 예정이다. 연간 100만대분의 리튬을 생산할 계획이며, 지난 6월에는 SK온과 최대 10만톤 공급 MOU도 체결했다. 트럼프의 기본 인식은 미국에 이익이 되냐, 되지 않느냐에 있다. 기후변화라도 미국 이익에 부합만 된다면 그는 얼마든지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수소 및 암모니아 같은 수소화합물 정책은 트럼프 체제에서도 충분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 에너지 및 원자재 시장조사기관인 아르구스(Argus) 발표에 따르면 세계 수소 및 암모니아 단가는 러시아가 가장 저렴하고 그 다음으로 북미로 조사됐다. 특히 미국은 남부지역의 풍부한 탄소포집저장층을 활용해 청정 수소 및 암모니아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 최근 엑슨모빌이 “미국은 수소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성명을 발표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전 집권기간 동안) 재생연료 표준(RFS) 프로그램의 투명성과 확실성을 더욱 강화했다"며 바이오연료 시장도 확대할 뜻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의 미국 저탄소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누구보다 미국의 정치상황을 잘 아는 일본 기업들은 미국 내 저탄소 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체제에서 오히려 CCS를 비롯한 저탄소 프로젝트들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 기업도 서둘러 미국의 관련 사업에 투자해 공급망 및 에너지안보망을 두텁게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