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과 관련 금융당국 수장들이 “은행의 배임 문제는 없다"고 일축하면서 은행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며 자율배상의 가이드라인을 줬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배임 소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분쟁조정안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간 가운데,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센 만큼 자율배상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3일 홍콩 H지수 ELS 판매사의 자율 배상과 관련 은행권이 주장하는 배임 우려에 대해 “배임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개인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분쟁조정안을) 법원이 적용하는 기준에 준해 마련했다는 점은 법률적 근거에 따른 것"이라며 “소비자와 책임을 분담하는 방안이 개별 금융사 배임 이슈에 연결된다는 점은 조금 먼 이야기"라고 했다. 전날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ELS 자율 배상과 관련해 “왜 배임 문제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금감원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놓고 이를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처리하자는 것"이라며 “명확하게 당국이 인식하고 공감할 정도의 배임 이슈가 있고, 당국이 고칠 수 있는 분야라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배임 가능성을 일축하자 은행들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분쟁조정안에 따른 자율 배상은 사실상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배임 소지가 있다고 은행들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원칙대로 따지면 분쟁조정위원회나 법원 판결을 통해 배상비율을 확정해 주고 이에 맞춰 배상을 해줘야 한다"며 “자율배상은 법적 근거 없이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선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임의적으로 배상을 해주는 것이 맞냐에 대한 논란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번 분쟁조정기준안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을 모두 고려하고 있는데, 투자자 책임 부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아 은행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금감원은 투자자의 예·적금 가입 목적,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 ELS 최초 투자자, 모니터링콜 부실 등의 여부를 판단해 배상비율을 가산하도록 제시했다. 이중 예적금 가입 목적의 경우 은행들이 이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예적금 가입 목적 여부까지도 녹취를 하거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예적금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에 방문했었다고 주장하면 이를 어떻게 입증해 낼 지 은행들도 난감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배임은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칠 경우를 의미하는데, 자율배상이 이뤄진 후 투자자들이 은행의 자의적 배상 기준에 대해 따지며 배임으로 몰아가면 은행도 할 말이 없다"며 “금융당국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금융사들은 법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분쟁조정안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법적 분쟁으로 가기 보다는 결국에는 자율배상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는 분위기다. 사실상 금감원이 강제력을 가진 가이드라인을 준 만큼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자라고 언급한 것에 모든 말이 함축돼 있다고 본다"며 “지금처럼 ELS 배상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의 감독을 받는 은행이 법적 분쟁까지 가겠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은행이 완전한 사기업이 아니라 금융당국의 라이선스를 받는 성격상 당국과 대치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며 “정치적인 이슈로도 번진 사안이라 정무적인 판단도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뜻 분쟁조정기준안을 받아들인다면 은행의 잘못을 인정한 모습이 될 수 있어 충분한 법적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은행권 입장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홍콩 H지수 ELS의 재투자자 비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상품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투자자가 많은데 투자상품에 손실이 났다고 해서 은행에게 배상을 하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건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며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이 사라지고 시장이 위축되는 것이 아닌 지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송두리 기자 ds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