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주요 기업들이 조직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주력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성장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 방식이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전세계적으로 전쟁·선거 리스크 등이 커진 만큼 이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연말 인사 시즌이 끝난지 3개월여가 지났을 뿐인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계열사간 사업 부문을 주고받는 '스몰딜'을 추진하기로 전날 결정했다. 지주사인 ㈜한화가 △해상풍력 사업과 글로벌 부문의 플랜트 사업을 한화오션에 넘기고 △태양광 장비 사업은 한화솔루션에 양수하는 게 골자다. 이밖에 ㈜한화의 100% 자회사인 '한화모멘텀'을 물적분할로 신설해 이차전지 장비 사업 전문화를 꾀할 방침이다. 한화그룹은 사업군별 전문화를 통해 각 계열사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는 안정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자체 사업인 글로벌 부문 고부가 소재사업에 집중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포스코그룹은 장인화 회장 체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3일자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13개 팀을 9개 팀으로 축소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지주사의 철강·수소사업팀과 사업회사인 포스코의 탄소중립전략실이 나눠 수행하던 탄소중립 전환 업무의 주요 기능은 지주사 전략기획총괄 산하에 신설되는 '탄소중립팀'으로 합쳤다. 아울러 그룹의 새 전략 사업인 이차전지 소재 사업 강화를 위해 관련 사업 기능을 전략기획총괄 산하로 이관해 '이차전지 소재 사업 관리 담당'을 신설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이를 통해 지주사 조직이 슬림해지고 컨트롤타워 기능이 강화돼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효성그룹 역시 지난 2월 '형제 경영'을 위해 2개 지주회사 체제로 조직을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효성첨단소재를 중심으로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HIS), 효성토요타 등 6개사에 대한 출자 부문을 인적분할해 신규 지주회사 '㈜효성신설지주'(가칭)를 설립하는 것이다. 기존 지주사는 조현준 회장이 그대로 맡고, 신설 지주사는 조현상 부회장이 대표를 맡게 된다. 효성그룹 측은 지주회사별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회사 분할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달 29일 별세하면서 효성은 '형제 독립경영'과 이에 따른 계열 분리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대표 IT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최근 주총시즌을 전후로 나란히 변화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네이버는 현재 5개인 사내독립기업(CIC) 조직을 개편해 12개 전문 조직으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5개 CIC는 비즈(광고), 서치(검색), 포레스트(쇼핑), 글레이스(지역 정보), 커뮤니티다. 네이버는 또 최수연 대표 직속으로 '글로벌 경영', '프로덕트&테크', '임직원 성장' 등 3개 위원회를 신설했다. 카카오는 정신아 대표를 신규 선임했다. 또 인공지능(AI) 기술 및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전사에 흩어져 있던 관련 팀들을 모아 AI 통합 조직을 꾸리기로 했다. 의사결정 단계와 조직 및 직책 구조를 단순화해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직 개편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은 수년 전부터 변화에 대비해왔다. AI, 첨단 반도체, 소프트웨어(SW), 바이오, 로봇 등 신사업 관련 인재를 적극 육성하고 관련 조직을 만들거나 확대하는 식이다. 이밖에 최근 리더십에 변화가 생긴 이마트, 삼성물산 등도 내실을 다지기 위한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조직 슬림화를 공식화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결정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재계가 이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복합위기'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유가를 비롯해 구리,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산업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상기후 현상 등 여파로 물가가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달러-원 환율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큰 정책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