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분주하다. 다양한 형태로 주주환원 정책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소통을 준비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는 작년보다 약해졌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을 벌이는 곳이 여전히 많다. 정관 변경을 안건으로 상정하며 신사업 진출에 포문을 여는 업체들도 눈길을 잡는다. 12일 재계와 한국예탁결제원 등에 따르면 국내 12월 결산 상장사 2614개사 중 1631곳이 오는 18일부터 29일까지 주총을 연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부분 기업들은 재무제표 승인, 이사 선임 등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올해 주총 시즌 최대 화두는 '주주환원'이다. 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다양한 회사들이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사의 보수한도를 축소하는 안건을 상정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3년간 나오는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들에게 돌려준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SK이노베이션은 7936억원 규모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했다. 2011년 출범 이후 첫 자사주 소각이다. 삼성물산은 5년 내 보통주 13.2%와 우선주 9.8%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HD현대건설기계, SM엔터테인먼트 등도 자사주 처분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는 자사주를 3년간 1%씩 소각하는 동시에 배당도 늘리기로 했다. 작년 기말 배당금을 역대 최대인 주당 8400원으로 책정하고 분기 배당도 계속 실시할 방침이다. 기아의 기말 배아금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 주당 5600원으로 정해졌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주주환원 차원에서 '선배당 후배당일' 제도에 동참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바꾼다. 자발적인 행동을 넘어 행동주의 펀드들에게 '공격'을 받는 사례도 있다. 시티오브런던 등 펀드 5곳은 삼성물산에 배당 증액과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에 사외이사 2명과 사내이사 1명을 후보로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했다. 금호석유화학에서는 수년째 이어진 '조카의 난'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이번에는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아 전면에 나섰다. 차파트너스는 이사회 결의 없이 주총만으로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하자는 주주제안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올해 말까지 자사주의 50%를 소각한 뒤 내년 말까지 나머지 50%를 모두 없애자는 내용도 담겼다. 19일에는 고려아연과 영풍의 표대결이 펼쳐진다. 공동 경영을 펼쳐온 이들은 고려아연 지배력을 두고 지분 매입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고려아연은 주당 5000원 결산 배당, 신주 발행을 외국 합작법인만을 대상으로 제한하는 현재 정관을 삭제하는 안건을 정기주총 안건으로 상정한다. 동업자 가문인 영풍 측은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 역시 주총 시즌 관전 포인트다. 통합에 반대하고 있는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가 각각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각자 대표이사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한미그룹 측은 이에 대해 “임 사장이 경영권 분쟁 상황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채무를 해결하는 등 한미그룹을 개인 이익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는 입장을 내놨다. 오는 28일 열리는 KT&G 주총장에서는 차기 사장 후보인 방경만 총괄부문장(수석부사장)의 대표이사 사장 선임안을 놓고 표대결이 열린다. 금융권에서는 15일 열리는 다올투자증권 최대주주 이병철 다올금융그룹 회장과 2대주주 김기수 프레스토자문 대표의 대결에 이목이 쏠린다. '미래 투자'를 위해 정관을 바꾸는 기업도 상당수다. 현대글로비스는 폐전지 판매·재활용업, 비철금속제품의 제조·판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다. 포스코퓨처엠은 이차전지 소재 원료 제조·판매, 수출입업, 가공업 등을 더할 생각이다. 롯데케미칼은 청정 암모니아 관련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수소 및 수소화합물 등의 제조, 판매 및 관련 용역의 제공 등 부대사업'을 추가한다. 롯데정밀화학도 수소 및 수소에너지를 사업 목적에 넣을 방침이다. 이밖에 HD현대는 신재생에너지 개발, 중개, 매매, 공급업, 발전업, 설비 임대 등을 추진한다. LS에코에너지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관련 투자왈 합금소재 판매, 초전도체 케이블 관련 시장 등에 도전한다. 카카오는 부동산 임대·컨설팅업, 호스팅 관련 서비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