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자금이 연초부터 미국 증시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매수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방산·안보와 금·단기 국채 등 리스크 대응 자산까지 동시에 담으며 투자 범위가 넓어지는 모습이다. 불과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미국 주식으로 빠져나간 자금이 지난해 12월 한 달치 순매수 규모를 이미 훌쩍 넘어서는 등 유입 속도와 규모 모두 예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16일까지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32억4983만 달러(약 4조7886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순매수 규모인 18억7385만 달러(약 2조7611억원)를 이미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연초 서학개미 자금 유입이 이례적으로 빠르고 공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대규모 자금이 미국 증시로 이동한 가운데, 매수의 중심은 AI와 빅테크, 지수 ETF로 뚜렷하게 모이고 있다. 서학개미 순매수 1위는 구글 지주사인 알파벳 A주(3억3381만 달러·4918억원)로, 검색·광고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AI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빅테크에 대한 선호가 확인됐다. 알파벳 C주 역시 4위(5062만 달러·745억원)에 오르며 동일 기업에 대한 매수세가 클래스별로 분산되는 모습이다. 엔비디아(4257만 달러·627억원), 마이크로소프트(968만 달러·142억원) 등 AI 핵심 종목도 순매수 상위권에 포함됐다. 테슬라 역시 연초 서학개미 자금 유입의 한 축을 담당했다. 테슬라는 2위(8691만 달러·1280억원)를 기록하며 알파벳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순매수를 끌어냈다. 테슬라 현물 주식뿐 아니라 관련 레버리지 상품에도 자금이 유입되며, 중장기 성장 기대와 단기 변동성을 동시에 노린 매매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AI 기대와 맞물린 반도체 종목에 대한 매수세도 강했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반도체 ETF SOXX(2132만 달러·314억원), 마벨 테크놀로지(1102만 달러·162억원), TSMC ADR(1079만 달러·159억원), 인텔(963만 달러·141억원) 등으로 자금이 확산되며 AI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베팅이 이어졌다. 특정 종목에 대한 쏠림보다는 관련 산업 전반을 담으려는 흐름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에는 AI·빅테크 매수와 함께 방산·안보 관련 종목까지 순매수 상위권에 포함되며 투자 성향의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 최대 군함 제조사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스(1731만 달러·255억원), 무인기·국방 기술 기업 크라토스 디펜스(2121만 달러·312억원), 위성 데이터 기업 플래닛랩스(1745만 달러·257억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안보 수요 증가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한 투자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수 전반에 대한 매수도 눈에 띈다. 뱅가드 S&P500 ETF는 3위(6666만 달러·982억원), 인베스코 나스닥100 ETF는 5위(5033만 달러·741억원)에 오르며 상위권을 차지했다. 개별 종목을 넘어 미국 증시 전체가 우상향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매수는 단순한 추격 매수라기보다는 변동성을 전제로 한 공격적 거래 성격이 강하다. 테슬라·나스닥100·엔비디아 관련 레버리지 ETF가 순매수 상위권에 포함된 동시에, 반도체 베어 3배 ETF에도 1176만 달러가 유입됐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상승 기대와 함께 단기 조정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양방향 전략이 강화된 모습이다. 방어적 자산에 대한 수요도 동시에 확인된다. 은 ETF(iShares Silver Trust ETF, SLV)는 6위(4583만 달러·675억원)에 올랐고, 금 ETF(SPDR Gold Shares ETF, GLD·1872만 달러·275억원)와 0~3개월 만기 미국 국채 ETF(9위·3494만 달러·515억원)에도 자금이 유입됐다. 공격적인 주식 매수와 함께 현금성 자산을 병행하는 움직임이다. 시장에서는 연초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매수세를 두고 규모 자체가 이미 지난해와는 다른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름 만에 한 달치 순매수 규모를 넘어선 만큼 당분간 해외 주식으로의 자금 이동이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연초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매수는 단순한 분산 투자를 넘어선 움직임"이라며 “AI와 빅테크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는 데다, 환율이 더 상승할 수 있다는 인식까지 더해지면서 자금 유입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