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의 광양 제2고로 개수, 한국가스공사의 모잠비크 가스전 투자, 삼성전자가 들어서는 용인 국가산단 개발까지. 이 세 건의 대규모 사업을 두고 시민들은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정"이라며 잇따라 소송에 나섰다. 원고로 나선 이들은 청소년, 소액주주, 지역 주민들. 다른 배경, 다른 위치에 있지만 이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 목소리가 결정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포스코는 노후 고로(용광로)를 교체해 사용 연장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청소년 6명이 원고가 되어 고로 개수 중단과 석탄 기반 설비 폐쇄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인 중 한 명인 이주원(14세, 포항 중학생) 학생은 “저희가 살아갈 지구인데, 그 지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막고 싶었다"며 “또 기후위기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송을 발판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고, 모든 사람들이 미래의 지구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소송에 참여했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도 부담이 되지만, 특히 포항이라는 지역에서 포스코를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주변 시선이 걱정되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많은 아동들과 우리의 미래, 우리가 살아갈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기회를 잡는 아동들이 많아져야 지구에도 더 나은 발전이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광양 제2고로 개수로 인해 향후 15년간 약 1억3700만 톤의 탄소가 추가로 배출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대한민국 인구 약 980만 명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최근 모잠비크 해상 가스전 사업에 75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업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생산하는 '코랄 노스 FLNG' 프로젝트로, 향후 4억89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 기후 활동가들과 소액주주들은 “이 사업은 기후위기에 역행하고, 경제적 리스크도 크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액주주 이세윤 씨는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면서 LNG 발전용 수요가 감소한다는 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측이며, 각국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다"며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이미 2021년부터 탄소중립을 위해 신규 가스전 개발이 불필요하다고 지적했고, 2024년 보고서에서는 각국의 정책을 반영한 시나리오(STEPS)에서도 2035년 이후 천연가스 발전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정부 역시 LNG 발전 비중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 'LNG가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백업'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정부 방침과도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LNG는 채굴, 정제, 수송, 저장, 연소까지 전 주기에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은 석탄발전소의 78%에 이르는 수준이라는 연구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스 채굴 방식만 근거로 '탄소가 적다'고 주장하는 건 전체 배출량의 빙산 일각만을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투자의 불투명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가스공사는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쳤다고 밝혔지만, 정작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이다. 모건스탠리, RBC 등 글로벌 기관들은 LNG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를 경고하고 있는데, 이런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깜깜이로 대규모 투자를 강행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세윤 씨는 “만약 가스공사가 떳떳하다면 예비타당성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LNG 수요 전망과 공급 과잉 우려가 어떻게 반영됐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용인에 조성되는 국가산단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시설이 들어설 대규모 프로젝트다. 10GW의 전력을 추가로 필요로 하는 만큼 LNG 발전소 3GW가 우선 추진되고, 나머지는 동해안과 호남에서 장거리 송전을 통해 공급할 계획이다. 이에 시민 16명은 “기후영향평가가 부실했고, LNG 발전이 오히려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개발 승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참여한 김건영 기후솔루션 리걸팀 변호사는 “국가산업단지 계획에서도 기후변화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것이 용인된다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다른 사업들에도 배출량 감축 의지를 떨어뜨리는 부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우려해 이번 소송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업은 자신의 사업활동이 초래하는 기후변화가 국민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기업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경제적 비용도 커지게 된다.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선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마련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시민, 주주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2023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자리한다. 헌재는 지난 8월 “정부가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기후소송은 정부를 넘어서 기업과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이제는 각 기업과 공공기관이 탈탄소 전환의 책임을 스스로 지는 시대"라며 “기후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결정의 중심에 두는 것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