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석유·LNG 부족하면 교환…한·일, 지정학 위기 맞서 ‘에너지 공조’

한국과 일본은 처지가 같다. 석유, 가스, 광물 등 대부분의 에너지와 자원을 수입해 사용한다. 이 때문에 지정학 리스크가 발생하면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양국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스와프 제도를 이용해 수급 어려움을 풀어가기로 했다. 산업통상부는 일본 경제산업성과 19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 후 에너지 안보 및 공급망 회복력 협력 강화 방안을 이 같이 밝혔다. 우선 양국은 원유와 석유제품 물량의 공급 부족 상황이 생기면 서로 교환하는 스와프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수급 위기 상황 발생 시 불필요한 수출 제한 조치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원유 조달과 운송 분야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주요 자원 생산국과의 협상력과 물류 안정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번 중동 전쟁으로 석유 수급에 가장 어려움을 겪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도가 70%, 일본은 80%이다. 양국이 스와프 제도를 이용하면 예기치 못한 사태로 휘발유, 경유, 나프타 등 특정 제품이 갑자기 부족할 때 수급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양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최대 수입국이란 점을 고려, LNG 수급 협력에도 뜻을 같이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때 일본 LNG 기지가 파괴돼 한국에서 LNG를 지원해 준 적이 있다. 양국의 최대 LNG 수입사인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JERA는 지난 3월 체결한 'LNG 수급 협력을 위한 협약서'를 토대로 LNG 수급 안정을 위한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한다. 양사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LNG 수급 관리 등 에너지 안보를 위한 실질적 협력 체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토대로 LNG 물량 교환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일본은 연간 약 7000만톤의 LNG를 소비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소비량보다 훨씬 많은 1억톤이 넘는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물량은 우선 국내에 공급하고 남는 물량은 판매한다. 이번 협력을 통해 한국은 부족한 물량을 일본으로부터 우선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은 지난 3월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성 대신이 체결한 '한-일 공급망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공급망 회복력 협력도 강화한다. 한국은 희토류 확보에서 매우 열세지만, 일본은 희토류 강국이다. 일본은 2010년 중국과 센카쿠열도 분쟁 때 중국 선원을 나포했다가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자 바로 풀어준 바 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희토류 확보에 적극 나섰고, 지금은 중국 다음으로 희토류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이 제안한 '아시아 에너지·자원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POWERR Asia)' 구상을 통해 비축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공동 협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산업부와 경제산업성은 양측 고위급 인사가 참여하는 '한일 산업통상정책대화'를 출범, 정부 간 논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 속에서 에너지 안보 및 공급망 회복력 분야의 협력 강화를 추진할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며 “양 정상 간 논의의 후속 조치를 구체화하기 위해 실질적 협력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후위기는 생존권 문제”…미래세대·농민, 탄소중립법 ‘조기 감축’ 요구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의 임기 만료를 10일 앞두고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 취지에 따라 탄소중립법에 초기부터 더 빠르게 온실가스를 줄이는 계획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김정호·강득구·이소영·박정현·박지혜·이주희·차지호·서왕진·정혜경 국회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미래를 위한 탄소중립법 개정 토론회'가 1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법 개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마련됐다. 당시 헌재는 정부의 탄소감축 계획 가운데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구체적인 감축 경로가 빠져 있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며 법 개정을 주문했다. 하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헌재가 제시한 법정 시한인 올해 2월을 이미 두 달 이상 넘긴 상태다. 여기에 NDC 설정 방식을 논의해온 국회 기후특위 임기마저 이달 종료를 앞두면서 이번 임시국회 내 합의가 무산될 경우 법 개정 자체가 불확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토론회에 앞서 국회 본관 계단에서는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공동 주최로 '정의로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법 개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왕진 의원은 “탄소중립법 개정을 더 이상 미루는 건 그 부담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일"이라며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와 시민들의 목소리가 법 개정에 반드시 반영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세대 대표로 발언한 이주연 푸른꿈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기후위기는 청소년과 미래세대의 생존권과 환경을 침해하는 불평등한 재난"이라며 “현 세대의 책임 있는 결정으로 미래세대의 삶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일부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들이 공론화 결과의 의미를 훼손하고 법안 통과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헌법재판소 결정과 국민의 뜻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즉시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기후특위 임기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탄소중립법 개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열린 토론회에서도 국회의 입법 지연과 정부 책임을 둘러싼 비판이 이어졌다. 서 의원은 축사에서 “법 개정 시한이 명시됐음에도 국회는 법을 개정하지 못했다"며 “기후특위 위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두 책임자 중 첫 번째는 국민의힘이고, 정부 역시 국민의힘만큼이나 중요한 책임이 있다"며 “산업통상부·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와의 협의를 근거로 진전이 없다는 점은 강력하게 유감"이라고 밝혔다. 발제는 김추령 과학저술가·성공회대 연구교수와 최창민 기후소송대리인단 변호사(플랜1.5 정책활동가)가 맡았다. 김 교수는 “감축 경로 그래프의 핵심은 모양이 아니라 그래프 아래 면적, 즉 2031~2050년 누적 배출량"이라며 가능한 한 빠르게, 많이 줄이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세 조건인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의 공정한 기여 △미래의 지나친 부담 전가 금지를 축으로 입법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2035년까지 전 세계 60%(한국은 2018년 기준 환산 시 61%) 감축은 파리협정 당사국이 공식 인정한 국제기준"이라며 “한국의 선형 감축 경로 누적 배출량은 탄소예산 부합 경로보다 50% 이상 커 헌재 결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유된 공론화위원회 결과에 따르면 시민대표단 78%·미래세대 대표단 75%가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조기 감축 경로'를 지지했고, '평균 이상 감축' 응답도 각각 75%·82%로 집계됐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가 좌장을 맡은 토론에서는 정민주 CO2gether 대표가 “기술은 이미 충분히 준비됐고, 남은 것은 입법"이라고 말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기후 변화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며 “기후위기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폭염으로 농민 12명이 숨졌다"며 △2035년 61% 이상 조기 감축경로 법률 명시 △농민의 기후위기 취약계층 명시 △농지 보전·식량주권 원칙 등을 요구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김하연·이현진 인턴기자

“2035년 전남 37GW·경북 26GW”…지역별 재생에너지 청사진

광역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 특성에 따라 태양광·해상풍력·분산에너지 중심 거점을 나눠 구축하는 전략이 세워졌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19일 발표한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는 각 지역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종합해 정리했다. 전남은 전국 최대 규모 목표를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현재 7.5기가와트(GW)에서 2035년 최대 37.8GW까지 확대한다. 솔라시도 5.4GW 태양광 집적화지구와 총 21GW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 4GW 영농형 태양광 단지 등이 핵심이다. 시군별 분산에너지 특구와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도 병행한다. 전북은 현재 5.9GW에서 2035년 최대 22.1GW까지 확대한다. 새만금 권역에 10GW 규모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태양광 5.5GW, 풍력 4.3GW, 조력발전 0.2GW 등이 포함된다. 영농형 태양광과 유휴부지 태양광 확대도 추진한다. 경북은 5.7GW에서 최대 26.1GW까지 늘린다. 포항 영일만 중심의 5GW 규모 부유식 해상풍력과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산업단지 연계 영농형 태양광이 핵심 프로젝트다. 산불 피해지역을 활용한 태양광·풍력 단지도 추진한다. 경남은 3.1GW에서 최대 11.4GW까지 확대한다. 지역 산업과 연계한 풍력단지 1.5GW와 해상풍력 전주기 클러스터 구축이 핵심이다. 국산 R&D 터빈 기반 해상풍력 실증단지도 조성한다. 충남은 현재 5.2GW에서 최대 17.8GW까지 확대한다. 간월호 수상태양광 0.5GW와 산업단지 태양광 확대, 주민참여형 발전소 등이 중심이다. 당진·서산·태안·보령을 중심으로 에너지산업 융복합단지도 조성한다. 충북은 2.6GW에서 최대 5.1GW까지 확대한다. 충주댐 수상태양광과 산업단지 에너지 자급자족 인프라 구축, 영동양수발전 등이 포함됐다. 경기는 3.7GW에서 최대 14GW까지 확대한다. 반도체 산업단지 RE100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와 시화호 등 대규모 입지 기반 태양광 사업이 포함됐다. 수도권 신도시 재생에너지 의무화도 추진된다. 강원은 3.8GW에서 최대 11.2GW까지 확대한다. 공공주도 육상풍력 1GW와 접경지역 주민참여형 태양광 0.1GW 등이 핵심 사업이다. 제주는 현재 1.7GW에서 최대 3.5GW까지 확대한다. 5GW 규모 해상풍력과 장주기 ESS 1GW 구축, V2G 기반 분산전력망 실증이 핵심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바이오디젤 찌꺼기로 친환경 원료 생산…KAIST·한화솔루션 10년 연구 결실

KAIST와 한화솔루션이 10년 연구 끝에 바이오디젤 생산 찌꺼기인 글리세롤 성분으로 플라스틱 원료를 만드는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19일 KAIST는 KAIST-한화솔루션 미래기술연구소가 폐자원을 활용해 플라스틱과 섬유용 원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바이오 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바이오디젤 생산 공정에서 버려지는 부산물인 '글리세롤'을 원료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삼는다. 글리세롤에서 플라스틱과 화장품의 핵심 소재인 '1,3-프로판디올(1,3-PDO)'을 생산하는 고효율 미생물을 개발하고 발효 공정을 최적화했다. 이번 연구의 또 하나의 성과는 산업 현장에 적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실험실 규모를 넘어 대형 공장 설비 적용에 앞서 시험 생산이 되는 300리터 규모의 파일럿 공정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연구실의 성과가 실제 공장에서도 똑같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것이다. 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미생물의 대사 과정을 사전에 설계하는 '디지털 설계 기술'과 항생제 없이도 안정적으로 원료를 뽑아내는 '무항생제 공정'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생산 비용은 낮추고 환경 규제 리스크를 줄이며 친환경 가치를 극대화했다. 최근 중동 전쟁으로 석유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 수급도 어려워지고 있다.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나프타 거래가격은 전쟁 전인 2월 말에 톤당 580달러에서 5월 18일에는 91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 원료는 친환경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친환경성까지 인정되고 있다. KAIST와 한화솔루션은 2015년 11월부터 이 연구를 시작해 중도에 끊기지 않고 결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주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친환경 바이오 플랫폼 연구를 통해 총 6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13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엔지니어링(Nature Chemical Engineering) 5월 12일 자에 게재됐으며, 5월호 표지논문으로 선정될 예정이다. 표지논문은 해당 호를 대표하는 연구 성과에만 선정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정부, 재생에너지를 ‘제2의 반도체’로… 2030년까지 태양광 10GW·풍력 3GW 확충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국내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을 연간 10기가와트(GW), 풍력 터빈은 3GW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제2의 반도체·조선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9일 발표한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국내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을 현재 연간 6GW 수준에서 2030년까지 10GW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풍력 터빈 생산능력 역시 같은 기간 0.8GW에서 3GW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수출 규모도 2024년 4조2000억원 수준에서 2035년 20조원까지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특히 태양광·풍력 산업 생태계 재건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공공사업과 계획입지 사업 등에 국산 태양광 모듈과 인버터 사용을 확대하고, 국내 생산 기준을 마련해 금융지원과 연계하기로 했다. 햇빛소득마을과 학교, 공공주차장 등 공공 태양광 사업에서도 국산 기자재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노후 인버터 교체 시장도 국산 제품 중심으로 재편한다. 정부는 수명이 6~7년 수준인 노후 태양광 인버터를 국산 제품으로 교체할 경우 융자와 금융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인버터 통신장비에 대한 보안 검증 기준도 새롭게 마련해 공급망 안정성과 보안성을 동시에 강화한다. 계통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차세대 스마트 인버터 개발도 추진된다. 정부는 전압·주파수 제어 기능을 갖춘 스마트 인버터와 인공지능(AI) 기반 발전 예측·고장 예지 기능을 갖춘 차세대 제품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전 기술지주 출연금과 모태펀드 등을 활용한 전용 펀드 조성도 검토 중이다. 정부는 태양광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제지원과 인증제도 개편에도 나선다. 저탄소 태양광 모듈 설계·제작·설치 기술을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해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국내 셀을 활용한 모듈에는 공공입찰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태양광 핵심 기자재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 개발도 속도를 낸다. 정부는 탠덤셀과 페로브스카이트 등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에 대한 대규모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건물일체형태양광(BIPV) 시장 육성에도 나설 계획이다. 국내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탠덤셀 초기효율을 확보한 만큼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개발과 투자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해상풍력 산업 육성 전략도 포함됐다. 정부는 20메가와트(MW)급 초대형 해상풍력 터빈 개발을 지원하고, 부유식 해상풍력 시장 선점을 위해 100MW급 테스트베드 구축도 추진한다. 현재 세계 부유식 해상풍력 시장 규모가 아직 크지 않은 만큼 조선·철강·케이블 산업과 연계해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RPS 폐지법 국회 상임위 통과…재생에너지 경매제 전환 본격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재생에너지 정책 체계가 대대적인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기존 RPS 중심 시장 구조를 정부 주도의 경매제도로 바꾸겠다는 방향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1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해당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현행 RPS 제도를 폐지하고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 물량과 목표를 정한 뒤 경매 방식으로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계약시장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RPS는 500메가와트(MW)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2012년 의무비율 2%로 시작해 올해는 15%까지 확대됐다. 그동안 국내 태양광·풍력 보급 확대를 견인해왔지만 최근에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RPS 대상 발전사들은 직접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발전사들이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기보다는 REC 구매에 의존하고 있어 REC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RPS 체계 아래 운영되던 REC 현물시장은 사라지고 정부가 사전에 입찰 물량을 정한 뒤 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시장이 재편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발전사업자가 신규 재생에너지 물량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대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환경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오히려 재생에너지 확대를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독소조항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채 통과됐다"고 비판했다. 플랜1.5는 특히 재생에너지 설비를 직접 보급하지 않고 일정 금액 납부로 의무를 대체할 수 있는 '보급대체이행' 조항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에는 대체이행 상한선 규정이 없어 사실상 재생에너지 직접 보급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 RPS에서 의무 대상이었던 민간발전사가 개정안에서는 '목표관리대상자'로 완화돼 실질적 규제가 약해졌다는 점도 우려 요소로 꼽았다. 플랜1.5는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최하위 수준인 약 10%에 불과하다"며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를 달성하려면 오히려 의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사위와 본회의 과정에서 독소조항을 보완하는 수정안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수도권·충청·강원에 GW급 태양광 벨트”…기후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승부수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수도권과 충청·강원권을 중심으로 기가와트(GW)급 초대형 태양광 단지를 조성해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100GW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상대적으로 전력망 여유가 있는 수도권과 간척지, 군사접경지역, 폐쇄 석탄발전소 부지 등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성환 장관 주재로 제38차 에너지위원회를 열고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올해 3월 개정된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따라 처음 수립되는 중장기 계획으로 오는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과 실행 과제를 담았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전력수요 전망과 송전망, 발전설비 구축 계획을 담는다면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은 이 중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보급 계획을 담았다. 기후부는 이를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 100GW, 203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 이상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기후부는 우선 수도권·충청권·강원권을 중심으로 10개 이상의 GW급 초대형 태양광 사업을 발굴해 총 12GW 규모의 신규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시화·화옹지구 등 간척지, 석탄발전소 폐지 부지, 군사접경지역을 활용한 '평화 태양광 벨트' 등이 주요 부지다. 기후부는 범정부 차원의 '초대형 계획입지 발굴 추진단'을 구성해 사업을 집중 관리하고, 인허가 절차도 대폭 단축하기로 했다. 유휴부지 활용 확대도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기후부는 공장 지붕, 영농형·수상형 태양광, 도로·철도·농수로 등 이른바 '4대 정책입지'를 중심으로 2030년까지 총 44.2GW 규모 태양광을 추가 보급한다는 방침이다. 일정 규모 이상 신축 공장에는 태양광 설치 의무화를 추진하고,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법제화해 입지 갈등을 줄이기로 했다. 계획입지 제도 도입과 인허가 병목 해소도 병행한다. 해상풍력 확대 전략도 함께 추진된다. 2030년까지는 태양광 위주로 보급하고 2030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상풍력을 전력시장에 투입한다. 기후부는 해상풍력 장기 입찰 로드맵과 계획입지 제도를 도입해 사업 불확실성을 줄이고 비용 절감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초대형 해상풍력 터빈 개발과 부유식 해상풍력 실증단지 구축도 추진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국내 풍력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고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산업을 '제2의 조선·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기후부는 그동안 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돼온 계통 문제 해결을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은 날씨에 따라 급변하는 만큼 저장장치와 유연한 전력망 구축 없이는 대규모 확대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기후부는 배전망에 ESS를 설치해 지역 내 생산·저장·소비를 최적화하는 분산형 전력망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와 ESS, 히트펌프 등을 패키지 형태로 지원해 주택과 마을 단위 에너지 자립 모델도 확대할 계획이다. 기후부는 이 같은 보급 계획을 통해 kWh당 목표 단가를 △태양광 2026년 150원→ 2030년 100원→ 2035년 80원 이하 △육상풍력 각각 180원 → 150원 → 120원 이하 △해상풍력 각각 330원 → 250원 → 150원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기후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단순한 발전 설비 보급이 아니라 국민 소득과 연결되는 산업 구조 전환으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주민 참여형 태양광·풍력 사업을 확대하고, '햇빛·바람·계통소득'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해 주민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가용 태양광 인증서(REGO) 제도를 도입해 추가 수익을 제공하고, 베란다 태양광 보급 확대 등 생활밀착형 정책도 병행한다. 심진수 기후부 재생에너지정책관은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과 계통 안정 대책을 함께 제시한 것이 이번 계획의 핵심"이라며 “ESS 확대와 분산형 전력망 전환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주력 전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석탄발전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국회 상임위 통과…김소희 의원 “노동자·지역 지원 시급”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지역경제 충격과 노동자 고용 불안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포함해 여야 의원들이 제출한 17건의 법안을 통합한 대안이 1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통과했다. 이번 특별법은 석탄발전 폐지지역의 대체 산업 육성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지원 체계를 담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폐지되는 석탄화력발전소의 기반시설을 활용해 무탄소발전 등 에너지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할 수 있도록 했으며, 전력수급과 계통 안정성 확보가 필요할 경우 일부 발전기를 '안보전원발전기'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도 포함됐다. 또 폐지지역 지원 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노동자 대표 등이 참여하는 '지역전환 협의체'를 설치하도록 해 노동계 참여를 제도화했다. 이날 법안소위 심사 과정에서는 일부 조항이 수정됐다. 김소희 의원은 폐지지역 정의 조항에 인접지역을 포함하는 단서를 추가해, 고성군 삼천포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지만 상당수가 거주하는 사천시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관련 내용이 반영됐다. 아울러 석탄발전 노동자 고용 보호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원 조항도 기존의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에서 의무 규정으로 강화됐다. 협력업체 근로자 보호를 위한 계약 연장 조항 역시 수의계약 허용과 함께 지원 대상 기간을 '폐지 후 5년'에서 '6년'으로 확대했다. 대체산업 범위를 둘러싼 논의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무탄소발전 등 에너지산업' 표현을 '재생에너지'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김 의원은 “지자체와 노동자들은 청정수소와 SMR 등 다양한 에너지원도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고, 결국 정부 원안이 유지됐다. 김 의원은 지난 2024년 11월 특별법안을 처음 발의한 이후 김성환 장관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 기자회견 등을 통해 법안 통과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올해 3월에는 충남도청과 보령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으며, 4월에는 한국노총·전력연맹·공공노련 등이 참여한 긴급 간담회를 개최해 노동계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노동계와 관계 부처 의견을 반영해 여야 17개 법안을 통합한 정부 대안을 마련했고, 이날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하게 됐다. 김소희 의원은 “석탄화력 폐지지역은 경제적 피해와 인구 감소로 지역소멸 위기까지 겪고 있다"며 “오늘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만큼 법안이 조속히 본회의까지 통과돼 대체산업 육성과 노동자 고용 보호를 위한 정부 지원이 하루빨리 이뤄지도록 끝까지 챙기겠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AI 데이터센터 전력TF 떴지만…업계 “단기 해법은 안 보인다”

정부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전력 공급을 위한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했지만, 업계에서는 “정작 핵심 전력 해법은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주 AIDC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향후 기가와트(GW)급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 발생 시 공동 전담조직(TF)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 특별법'의 후속 조치다. 표면적으로는 정부 부처 간 협력 체계 구축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TF 출범만으로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심 쟁점이었던 LNG 발전 전력 직접구매계약(PPA) 특례가 결국 법안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산업시설과 달리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특히 최신 GPU 기반 데이터센터는 수백 메가와트(MW)에서 많게는 GW급 전력을 요구한다. 문제는 현재 국내 전력 구조상 단기간 내 이 같은 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재생에너지는 확대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계통 부족과 간헐성 문제가 여전히 걸림돌로 꼽힌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신규 재생에너지 접속 대기와 출력제어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원전 역시 단기 해법으로 보기 어렵다. 신규 대형 원전은 건설에 장기간이 필요하고, 소형모듈원전(SMR)도 아직 초기 단계다. 석탄발전은 즉시 공급 가능한 기저전원이지만 탄소중립 정책과 정면 충돌한다는 부담이 있다. 결국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전원으로 LNG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는 사실상 국가 전략 인프라"라며 “재생에너지 확대 방향과 별개로 과도기적 관점에서 안정적인 LNG 공급 방안도 현실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이번 협약에서 강조한 '국가 전력계통을 통한 공급' 역시 당초 산업계가 기대했던 개별 발전원 기반 PPA 확대 대신 기존 계통 체계를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이 경우 한전 계통 부담과 송·변전망 투자 확대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AI 데이터센터 집중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전력망 증설 논의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향후 공동 TF 논의 과정에서 국회 심의 단계에서 제외됐던 LNG 발전 PPA 특례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AI 산업 확대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될 경우, 정부 역시 현실적인 전력 공급 방안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지금 논쟁의 본질은 단순히 데이터센터 지원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앞으로 어떤 전력 시스템으로 AI 시대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며 “결국 AI 산업 확대가 기존 에너지 정책의 현실성과 속도를 다시 시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GDP 수치만으로 국가가 정말 발전했는지 알 수 없다”

국내총생산(GDP) 중심의 국가 성과 측정 방식을 넘어, 사람의 '삶의 질'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식 제안이 나왔다. 유엔(UN) 사무총장이 지난해 구성한 'GDP를 넘어서 - 독립 고위급 전문가 그룹(Independent High-Level Expert Group on Beyond GDP)'은 최근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제목은 《가치 있는 것을 측정하기: 사람과 지구를 위한 진보의 나침반(Counting What Counts: A Compass of Progress for People and Planet)》이다. 보고서는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제연구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인 캐럴 그레이엄이 총괄 편집을 맡았으며, 컬럼비아대학교의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등 세계적인 경제학자와 공식통계 분야 전문가 14명이 공동 집필했다. 이들 전문가는 “우리가 무엇을 측정하느냐가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결정한다"면서 “GDP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이고 지속가능한 국가 진보 측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DP 성장의 역설…숫자 늘었다고 삶이 나아졌나 GDP는 일정 기간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총가치를 보여주는 대표 경제지표다. 경제 규모와 성장 속도를 비교하는 데 강력한 도구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보고서는 GDP가 애초에 국민 삶의 질(well-being)이나 사회적 안녕을 측정하도록 설계된 지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많은 국가에서 GDP는 증가했지만, 불평등 심화와 환경 파괴,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약화, 사회적 고립 등은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GDP는 무급 돌봄노동이나 디지털 공공재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산림 훼손이나 자원 고갈처럼 미래 기반을 잠식하는 활동도 경제 생산으로 계산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단기 경제성장은 포착하지만 장기 지속가능성은 놓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성장의 역설'이라고 규정했다. 경제가 성장해도 시민들이 삶의 개선을 체감하지 못하고, 공동체의 신뢰와 미래 자산이 약화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진보(발전)라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GDP 대체 아닌 보완…31개 핵심지표 제시 전문가 그룹은 GDP를 폐기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GDP를 보완할 수 있는 'GDP를 넘어서 대시보드(Beyond GDP dashboard)'를 제안했다. 대시보드는 자동차 계기판처럼 여러 핵심 지표를 한눈에 보여주는 종합 표시 체계를 뜻한다. 이 대시보드는 총 31개 핵심 지표를 통해 국가의 현재 상태와 미래 지속가능성을 다층적으로 측정하는 체계다. 대시보드는 네 개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축은 '기초 원칙'이다. 평화·인권·지구 존중이라는 세 가지 기본 가치를 측정한다. 분쟁 사망자 수, 차별 경험 비율, 여성 폭력 피해율, 온실가스 배출량, 생물다양성 온전성 지수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축은 '현재 삶의 질'이다. 가처분소득, 노동의 질, 건강수명, 교육 수준, 디지털 역량, 치안, 삶의 만족도, 외로움, 공공서비스 만족도, 대기질, 식수 접근성 등 시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삶의 조건을 측정한다. 특히 '삶의 만족도'와 '외로움' 같은 주관적 지표가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세 번째 축은 '형평성과 포용성'이다. 상위 1% 부(富) 점유율, 지니계수, 사회적 빈곤율, 남녀 임금격차, 지역 인프라 접근성, 다차원 빈곤지수 등을 통해 성장의 혜택이 얼마나 고르게 분배되는지를 평가한다. 네 번째 축은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이다. 이는 미래 세대의 안녕을 떠받치는 국가의 자산 기반을 평가하는 영역으로, 생산·인적·사회적·제도적·자연 자본이라는 5가지 자본 개념을 중심으로 측정된다. ◇'5가지 자본'으로 미래를 측정하다 보고서가 제시한 가장 새로운 개념은 '5가지 자본'이다. ①생산 자본은 도로·철도·항만 같은 사회기반시설과 공장·기계·설비 등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자산을 뜻한다. 한 사회가 재화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기반으로, 전통적인 GDP 성장의 핵심 토대가 되는 요소다. ②인적 자본은 국민이 보유한 교육 수준과 건강 상태, 직업 능력, 디지털 활용 역량,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포괄한다. 개인의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장기 경쟁력을 좌우하는 미래 성장의 원천으로 평가된다. ③사회적 자본은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협력, 상호부조, 시민 참여, 사회적 연대 의식 등을 의미한다. 사회적 자본이 높을수록 갈등을 줄이고 위기 상황에서 공동 대응이 가능해져 사회의 안정성과 회복력이 커진다. ④제도적 자본은 정부와 공공기관, 사법·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자산이다. 정책 집행의 신뢰성, 법치주의, 부패 통제, 공공서비스의 질 등이 포함되며, 시민과 시장이 제도를 신뢰할수록 국가 운영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⑤자연 자본은 토지와 물, 산림과 토양, 광물자원, 대기, 생태계 서비스와 생물다양성 등 인간 삶과 경제활동을 떠받치는 자연의 기반 전체를 뜻한다. 식량 생산과 기후 조절, 수자원 공급, 탄소 흡수 같은 기능을 제공하며, 훼손될 경우 미래 세대의 삶의 질과 경제적 지속가능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 전문가 그룹은 생산 자본이 늘더라도 자연 자본이나 사회적 자본이 훼손되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이는 GDP가 놓치는 '자산 고갈'을 포착하기 위한 장치다. ◇국가별 도입 권고…2027년까지 대시보드 구축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 그룹은 GDP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GDP는 여전히 경제활동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라는 것이다. 다만 GDP 수치만으로 국가의 발전을 판단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보고서는 “GDP는 경제의 속도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세계가 기후위기와 불평등, 사회적 단절이라는 복합위기에 직면한 지금, 국제사회는 '얼마나 성장했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성장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이번 보고서는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글로벌 설계도로 평가된다. 한편, 보고서는 각국 정부가 2027년까지 자국 실정에 맞는 'GDP를 넘어서 대시보드'를 구축해 정책과 예산 편성 과정에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이를 위해 통계 시스템 강화와 정기적 국민 체감조사, 자연자본 회계 구축, 정책 효과 평가 기준 개편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유엔 차원의 연례 글로벌 보고서를 통해 국가별 진척 상황을 비교·관리하는 국제 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에도 적잖은 변화 예고…정책·기업 평가기준 바뀔 수도 이번 UN 보고서는 한국에 당장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가 정책 평가와 기업 경영 환경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성과 평가 기준의 확대다. 지금까지 한국은 성장률과 수출, 고용, 물가 등 경제지표를 중심으로 정책 성과를 평가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체계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앞으로는 삶의 질과 사회적 신뢰, 불평등 수준, 환경의 질, 자연자본 보전 여부 등이 국가 경쟁력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부상할 수 있다. 정부 역시 정책 성과를 설명할 때 단순한 성장 수치보다 국민 삶의 개선 정도와 미래 지속가능성을 함께 제시해야 하는 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예산 편성 방식에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통계 인프라 확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고서 권고에 맞추려면 국가데이터처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가 협력해 새로운 조사 체계와 자연자본 회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수도 있다. 산업계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특히 UN이 강조한 자연자본 회계가 본격 도입되면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산업단지 조성, 에너지·건설 투자 평가에서 단순 경제효과뿐 아니라 생태 훼손 비용과 복원 가치까지 함께 반영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역시 탄소배출 감축을 넘어 지역사회 신뢰와 생태계 보전, 공동체 기여도까지 폭넓게 평가받는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