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대전환(AX) 시대에 올라선 오늘,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속 한국이 인공지능(AI) 3강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11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주최로 서울 강남구 씨스퀘어에서 열린 'AXIS 2026 서밋'에 모인 각계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이 중심에 선 '한국형 AX'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 중심의 담론을 초월해 스타트업이 도전과 실패,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고, 스타트업의 '앙트러프러너십(기업가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제1세션 'AI 생태계'를 주제로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한국이 성공적인 AX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을 도출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날 행사에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AI 스타트업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해 국가가 보다 명확한 프로젝트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AI 생태계의 차별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국가 단위의 업계 지원·육성 프로젝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전 장관은 “엄밀히 따져보면 대한민국은 AI 반도체 제조 강국이지만, AI 시대를 설계하기 위한 전체적인 능력은 다소 부족하다"며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제대로 된 국가 프로젝트가 필요한데, 국가 프로젝트를 어떻게 선정할지에 대한 문제는 스타트업계와 논의를 통해 면밀한 아젠다(의제) 세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우리 스타트업계가 다른 AI 선진국과 비교해 차별화된 특성을 가질 수 있도록 견인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는 게 박 전 장관의 지론이다. 그는 국가가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민감 데이터의 '온톨로지(AI 모델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각 개념과 그 관계를 체계화한 구조)'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 전 장관은 “한국은 국방·재난·의료 등 민감 데이터의 개방성 측면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최상위권이지만, 이 데이터를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부분에선 미국 등에 굉장히 뒤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K-온톨로지 프로젝트를 가동해 이러한 데이터를 온톨로지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소버린 AI(국가 단위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통제가 가능한 AI)'·'버티컬 AI(특정 산업에 특화된 전문 AI)'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스타트업이 참여·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계 일각에선 '소버린 AI'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국내외 유망 인력이 자발적으로 한국에 모여들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급선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프로젝트가 대단하고 위대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국가주도 산업 성장의 망령을 벗어던지지 못한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류 대표가 이끄는 리얼월드는 피지컬 AI 기업으로, 최근 엔비디아와 휴머노이드 로봇 AI의 정밀조작 성능평가 체계·데이터 표준 개발 협력체계를 구축한 유망 스타트업이다. 핵심 인력과 투자자 등이 대부분 한국인으로 구성된 토종 기업이지만, 최근 한국에서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플립)해 국외 창업 기업으로 분류된다. 류 대표는 “리얼월드는 중기부 해석상 국외 창업 기업이지만, 소버린 AI의 관점에서는 미국 정부의 컨트롤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리얼월드가 미국행을 택한 건 한국의 자본시장을 전부 긁어모아도 미국의 파운데이션 모델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I 발전'이라는 거대한 테마가 전 인류의 조별과제로 부상한 지금, 폐쇄성이 짙은 소버린 AI의 개념은 실존하기 어렵다는 게 류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이미 개인이건 기업이건 자신이 자리잡을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라며 “실리콘밸리와 같이, 인도네시아 출신이건 동유럽 출신이건 기업과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을 선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선 AX시대에 맞서는 행정부의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AI 수요창출'이라는 국가 차원의 직접적인 역할론도 제기됐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소버린 AI나 AI 3강과 같은 의제를 제시함에 있어 정의부터 명확히 내릴 필요가 있다"며 “어떤 정의를 내리기 위해선 '메트릭(측정 지표)'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그간 정의를 명확히 하기보단 의제를 앞세웠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단순 의제 설정에 그치지 않고 의제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확보해야만 보다 진정성있는 한국형 AX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게 이 의원의 지적이다. 그는 “민간이 해야 할 일을 정부가 할 필요가 없고, 정부가 할 일을 민간이 해서도 안된다"며 “민간이 AX를 위해 공급에 나서고 있는 지금, 정부가 한국을 AI 3강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주도적으로 AI 수요 창출에 나서야 한다"고도 짚었다. 이 밖에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파편화된만큼, 보다 선별·집중적인 유망 스타트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업계 의견도 제시됐다.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는 자사의 주력분야인 자율주행 산업을 예로 들어 이 같은 문제를 제시했다. 서울로보틱스는 지난 2017년 설립된 물류 자율주행 솔루션 기업으로, 그간 BMW·NVIDIA 등과 협업 관계를 구축한 10년차 스타트업이다. 이 대표는 “과거 AI의 핵심 분야였던 자율주행이 산업계에서 입지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스타트업 대부분이 쇠퇴했고, 서울로보틱스는 이들이 실패한 프로젝트를 이어 수주를 받고 있다"며 “문제를 살펴보니 자율주행 유행 당시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긴 했으나, 이 투자가 지나치게 잘게 쪼개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판매가 가능한 제품을 생산하는 단계까지 기업 역량을 끌어올리려면 수백~수천억원 수준의 투자가 필요한데, 정부의 투자가 지나치게 파편화돼 완성도 90% 수준의 이른바 '보여주기식' 제품을 양산하는데 필요한 20억~3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에 그치며 산업 육성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AI 시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라는 한정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글로벌 성과를 이끈 것처럼, 자율주행이나 피지컬 AI 등 여러 스타트업 중 잠재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유망 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