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렛츠런파크 서울)을 3년 내 이전하고 기존 부지에 주택 9800호를 조성한다는 주택공급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말산업계가 정부의 경마 및 말산업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졸속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업계는 정부의 과천 경마공원 이전계획이 현실성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국내 경마·말산업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규탄했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와 한국경마기수협회 등 10개 말산업 유관단체로 구성된 축산경마산업 비상대책위원회(축경비대위)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과천경마공원 졸속이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과천시민으로 구성된 과천경마공원 이전반대 비상대책위원회(과천비대위) 역시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과천경마공원 졸속이전을 반대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 가두행진은 '초록 태릉을 지키는 시민들', '용산공원을 지키는 주민모임' 등 정부 주택공급대책 대상지역에 포함된 서울 노원(태릉)과 용산지역 주민도 참여하는 연합집회 형식으로 열렸으며 이들은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까지 상여 행진, 단두대 퍼포먼스도 벌였다. 김동진 과천비대위 위원장은 “(경마공원 이전 및 주택공급 대책이) 시민의 어떠한 동의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과천 경마공원은 수 십년간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삶의 터전이다. 하루아침에 저들만의 정치적 셈법으로 빼앗으려는 시도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과천 주민 강 모씨는 “주택 공급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묻지도 않고 대책도 없이 3년 안에 (경마공원을) 나가라고 통보하는 방식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순서가 틀렸다. 지금의 과천 교통 문제를 먼저 풀고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0년 이상 걸리는 경마공원 이전을 3년만에?…말산업 붕괴 불보듯 경마 및 말산업계도 과천 경마공원 이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인프라 이전사업을 아직 이전부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3년 내에 강행하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말)을 다루는 경마·말산업 특성상 돌이킬 수 없는 산업생태계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29일 발표한 주택공급대책에서 과천 경마공원과 인근 국군방첩사령부 부지를 통합 개발해 98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13일에는 다음달까지 경마장 이전 대상지를 선정하고, 현재 과천 경마공원 인근에 있는 삼포 마사(馬舍, 말 거주시설)을 우선 이전해 2029년 12월 이곳부터 주택 착공에 들어간다는 구체적인 일정을 내놨다. 정부 일정대로라면 과천 경마공원은 3년 내에 폐쇄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달 공식 개장을 앞두고 있는 경북 영천경마공원 사례에서 보듯이 신규 경마공원 조성은 부지매입부터 토지보상, 예비타당성조사와 각종 인허가, 시공업체 선정과 건설 등 통상 10년 이상 걸린다. 정부가 계획대로 강행한다면 최소 7년 이상 시설규모, 매출, 고객접근성 등에서 과천경마공원보다 열세인 부산, 제주, 영천 경마공원만 활용해야 한다. 과천경마공원은 국내 3개 경마공원(과천·부산·제주) 전체 매출 및 입장객 수의 약 70%를 차지한다. 과천경마공원 폐쇄 후 대체 경마공원 개장까지 공백이 길어질수록 경마산업 위축은 불 보듯 뻔한 노릇이다. 경마와 승마, 말생산 등을 아우르는 국내 말산업은 연간 매출 10조원, 순수익 3조~4조원 규모로, 이 중에서 경마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 기준 약 70%, 순수익 기준 80%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경마산업이 말 생산·사육, 사료, 장제, 승마 등 말산업 전체의 존립 기반을 떠받치는 셈이다. 만일 경마가 파행으로 치닫는다면 국내 전체 말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업계의 절규가 나오는 이유다. ◇ 말 거주지 옆에서 주택공사?…기수·조교사 안전사고 위협 특히 정부가 지난 13일 대책에서 '신속 공급 방안'으로 과천경마공원 인근에 있는 삼포마사를 경기 화성 화옹 말조련단지로 우선 이전하고, 이 삼포마사 부지에 주택을 우선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업계는 말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졸속 대책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포마사에 살고 있는 경주마 600여두의 이전 후보지로 언급된 화옹 말조련단지는 당초 경주마 훈련시설로 추진되다가 철새도래지 환경 규제와 조명시설 설치 제약 등으로 기초공사만 시작했다가 수 년째 공사가 중단된 곳이다. 매일 새벽 조명을 켜고 훈련하는 경주마 특성상 이곳에 마사나 훈련시설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매주 수만명이 운집하는 경마장을 조성하는 것은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평가다. 더욱이 현재 삼포마사 옆에는 경주마 800여두가 살고 있는 주암마사가 있다. 정부는 삼포마사를 우선 이전하고 이곳부터 주택공사를 시작한다는 계획인데, 만일 삼포마사에서 공사가 시작되면 고양이 만큼이나 소리·진동에 민감한 동물인 말 특성상 주암마사 경주마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경기력 저하는 물론 경기 중에 기승하는 기수나 마필관리사의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과천·안양 등에 터전을 두고 있는 1000여명의 기수, 조교사, 마필관리사 등 경마종사자들은 매일 새벽 출근하는데 이들의 이주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또한 과천경마공원 이전을 위해서는 부지매입 비용을 제외하고도 2조4000억원 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정부는 재원 마련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경마공원 이전 재원 마련을 위해 레저세 감면 등을 요구했지만 행정안전부는 다른 산업과의 조세 형평성을 이유로, 경기도는 이 주택공급 사업이 국가차원의 사업이라는 이유로 각각 세제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조원이 넘는 제세금과 축산발전기금을 납부하는 마사회로서는 이전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정작 이전을 추진하는 정부는 나몰라라 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정부가 말과 경마산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일부 마사시설부터 무리하게 주택 착공을 강행하려는 것은 조금이나마 가시적인 성과부터 보여주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의견을 수렴해 절차를 거쳐 경마공원 이전을 추진하고 그 후에 주택공급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정치권도 보여주기식 추진 비판…“신속 행정 아닌 졸속 행정" 정치권에서도 경마공원 이전과 주택공급 계획 사이에 시간표 순서가 뒤바뀌었음을 지적했다.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여의도 집회 현장에서 “9800호라는 숫자와 2029년이라는 날짜부터 정해놓으면 경마장이 저절로 옮겨지느냐"며 “1400두에 달하는 말과 수천 명 노동자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경마장은 일반 사무실 하나 옮기는 일이 아니다. 대책 없이 날짜부터 못 박는 것은 신속 행정이 아니라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직장을 이전한다면 그곳에 있는 분들에게 의견을 먼저 물어보는 것이 순서"라며 “일단 이전부터 시키고 그 다음에 알아보자는 방식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기식 국민의힘 과천·의왕 당협위원장도 “수 십년간 잘 관리된 인프라를 걷어내고 새로운 곳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경마장을 다시 짓는 것이 합리적이냐"고 반문했다 축경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부 마사 선이전 및 주택 선착공 중단 △대체부지 재원 및 인프라 선제 확보 △말산업 종사자의 고용과 생계 보장대책 마련 △이전 절차 및 재원 조달 과정의 투명한 공개 등 4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김용근 한국경마기수협회장은 “경주로와 마사 인근에서 대규모 주택공사가 진행되면 훈련 또는 경주 중 말이 갑자기 흥분하거나 이상 행동을 보일 때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말 위의 기수"라며 “안전 대책 없이 착공 일정부터 정해놓고 현장을 거기에 맞추라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창만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장은 “지금도 바람만 불면 넘어질 형편인 말 생산농가를 태풍의 눈 속으로 몰아넣으면 생존 가능성은 1%도 없다"며 “졸속으로 이전하지 말고 정부와 국회, 마사회, 경마산업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 상생할 방안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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