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석 물가안정을 위해 성수품 공급을 크게 늘려 일부 품목의 가격이 내려갔지만 극심한 소비 침체로 대형마트·전통시장 등 유통가의 추석 경기는 '우울한 분위기'다. 지난해 추석때 금값이라 불렸던 사과·배 등 차례상 과일의 가격은 공급량 증가로 저렴해진 반면,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작황이 나빴던 배추·무 등 채소류의 가격은 물론 수산물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추석 차례상 비용이 1년 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더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정부의 각종 물가지표보다 웃돌아 고금리로 위축된 소비 심리를 더욱 억누르고 있다. 10일 에너지경제신문이 지난주 4~6일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분위기를 취재한 결과, 추석물가 안정을 체감하는 상인과 소비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추석 연휴를 앞둔 전통시장 상인들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지난 5일 찾은 서울 청량리 청과물시장 내 야채가게 상인 A씨는 “원래 골목을 꽉 채울 정도로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털어놓았다. A씨는 “손님들이 대형마트로 유출됐다기보다는 소비를 줄이고 지갑 자체를 닫은 것 같다"면서 “아예 명절 장보기를 포기하거나 시장에 예전처럼 다량으로 사는 게 아니라 소량 단품으로 사는 식이다"이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대형마트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같은 날 방문한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50대 여성 B씨는 “사과는 작년과 비교하면 확실히 싸진 것 같다"면서도 “정작 다른 물건을 사려고 보면 크게 물가가 낮아진 것은 실감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인(매장)과 소비자들 모두 추석물가 안정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부 과일 가격 하락에 불구하고 채소 및 수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올해 차례상 비용이 지난해 추석보다 더 늘어난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 6일 공개한 4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 차림비용 조사(전국 23개 지역 16개 전통시장과 34개 대형유통업체 대상) 결과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은 평균 20만 9494원으로 지난해보다 1.6% 더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대표 성수품의 하나인 '사과(5개)' 가격은 지난해 추석 시기(2023년 9월 13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서 각각 1만 5247원, 1만 4713원이었으나, 올해(9월 6일 기준)는 각각 1만 3941원, 1만2453원으로 떨어졌다. 배 가격은 올해 전통시장에서 1만1838원(3개 기준)으로 지난해(1만 322원)보다 소폭 올랐지만 대형마트는 6941원으로 지난해(9109원)보다 크게 낮아졌다. 소고기(설도 900g 기준) 가격도 전통시장 3만 3426원, 대형마트 3만 1005원으로, 지난해 3만 5856원, 4만 743원과 비교해 모두 떨어졌다. 그러나, 여름철 폭염으로 작황이 나빴던 배추·무 등 채소를 비롯해 조기 등 수산물은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었다. 배추(300g)의 경우, 지난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서 각각 1016원, 752원에서 올해는 각각 1524원, 830원으로 나란히 상승했다. 특히, 무의 가격 상승 폭이 컸다. 무(1개)는 지난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서 각각 1524원, 830원이었지만, 올해 추석엔 무려 4430원, 3082원으로 치솟았다. 이밖에 조기(3마리)도 지난해 전통시장과 유통업체에서 각각 4356원, 3903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각각 5781원, 4137원으로 최소 6%에서 최대 32% 오름 폭이 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추석물가 안정 노력에도 유통가 상인들과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물가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소비자는 물가 하락을 피부로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더욱이 온라인몰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전통시장이나 대형마트를 찾는 내수 발길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이는 물가안정 체감도가 떨어진 소비자들이 추석 비용을 줄이는 등 대응 방법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예온·김유승 기자 pr9028@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