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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AHR 엑스포서 북미 공조시장 격돌

북미 최대 공조 전시회인 'AHR 엑스포 2025'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차별화된 기술력을 앞세워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1800여개 글로벌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두 기업은 대형 전시장을 마련해 시장 주도권 다툼에 나섰다. 10일 각 업체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 트렌드에 맞춰 '무급유 인버터 터보 칠러'를 전면에 내세웠다. 고속 회전 압축기 모터의 회전축을 전자기력으로 띄워 마찰 손실을 최소화한 이 제품은 대형 AI데이터센터의 냉각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는 북미 가정용 시장을 겨냥한 고효율 하이브리드 '하이렉스 R454B' 실외기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기존 냉매 배관과 전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제품은 설치 비용 절감과 편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양사는 친환경 기술 경쟁에서도 맞붙었다. LG전자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미국의 냉매 규제에 대응해 지구온난화지수(GWP)가 30% 낮은 R32 냉매를 적용한 '인버터 스크롤 칠러'를 공개했고, 삼성전자도 같은 냉매를 적용한 상업용 DVM 대용량 시스템에어컨으로 응수했다. LG전자는 '2025 AHR 혁신상'을 수상한 '주거용 한랭지 히트펌프'로 기술력을 과시했다. 이 제품은 영하 35℃에서도 안정적 난방이 가능하며, 실외기 응축수 동결 방지 기술로 효율을 극대화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 연동 무풍에어컨으로 스마트홈 시장을 공략했다. 양사의 경쟁은 전시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LG전자는 ES사업본부 출범 후 첫 전시인 만큼 '코어테크'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해 제품 내부 구조와 핵심 부품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27냉동톤급 대용량 스크롤 컴프레서도 처음 공개하며 상업용 시장 확대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200L 전용 물탱크가 탑재된 '클라이밋허브 모노'를 비롯한 EHS 제품군을 전시하며 시스템 에어컨 라인업의 다양성을 부각했다. 공기열과 전기로 온수를 만드는 이 제품은 화석연료 보일러 대비 높은 효율과 낮은 탄소 배출이 특징이다. 삼성전자 DA사업부 최항석 상무는 “독보적 기술력과 스마트싱스 연결 경험이 결합된 혁신적 공조 솔루션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밝혔고, LG전자 ES사업본부장 이재성 부사장은 “다양한 공간·기후 맞춤형 솔루션으로 글로벌 공조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고 화답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삼성전자, 스마트폰 ‘출하 1위’ 무색한 매출…AI·폴더블로 반등 노린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하량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애플과의 매출 점유율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삼성전자의 '중저가 모델' 판매 비중이 높은 점이 자리하며, 프리미엄 시장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10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출하량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9%의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지난 2020년 연간 스마트폰 출하량 점유율 1위에 오른 삼성전자는 5년 간 단 한 번도 타 제조사에 왕좌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기업'이란 타이틀은 유지 중이지만 매출 점유율은 이 부문 1위 애플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매출의 46%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삼성전자(15%)와의 격차는 31%p에 달한다. 2020년 21%p 수준이던 양사의 격차는 4년 만에 10%p 더 커졌다. 이와 같은 격차는 스마트폰 판매에 있어 삼성전자의 중저가 라인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순위 상위 10위권에 삼성 스마트폰이 4개 제품 올랐는데, 그중 3개는 보급형 '갤럭시 A' 시리즈였다. 10위 안에 든 프리미엄 제품은 '갤럭시 S24' 울트라가 유일했다. 반면 애플은 고가의 아이폰 프로 시리즈의 비중이 계속 증가하며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 2위 '아이폰15 프로맥스'를 필두로 '아이폰15 프로(3위)', '아이폰16 프로맥스(5위)' 등이 판매 상위권에 포진했다. 업계에선 스마트폰 시장 내 프리미엄화 추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비싼 폰'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거시경제 상황과 소비자 심리가 모두 개선됐고, 5세대 이동통신(5G) 도입, 카메라 성능 향상,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성능 개선 등도 주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매출액 성장이 출하량 성장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실피 자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책임연구원은 “높은 가격대 기기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평균판매단가(ASP)와 매출액은 출하량 성장을 계속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제조업체들이 프리미엄 부문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삼성전자는 '갤럭시 S' 시리즈와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 Z' 시리즈의 판매량을 늘려 프리미엄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이는 모바일 경험(MX) 사업부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X 사업부는 지난해 영업이익 10조6000억원을 기록하며, 2023년(13조100억원) 대비 19%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갤럭시 S25' 시리즈와 하반기 공개 예정인 폴더블 시리즈의 판매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다만, 두 제품 모두 기회와 위험 요소가 공존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 S25 시리즈는 강화된 인공지능(AI) 기능을 앞세워 초반 인기몰이에 성공한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대화형 AI 에이전트 탑재 등으로 편의성을 강화한 갤럭시 S25 시리즈는 2016년 S7 이후 9년 만에 역대 최대 판매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갤럭시 S25의 핵심 마케팅 포인트인 AI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지는 불확실하다는 점이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24 출시로 AI 스마트폰 시대의 포문을 연 것은 사실이지만, 애플 역시 아이폰 16 시리즈를 시작으로 올해 아이폰 17 등에 AI 기능 강화를 예고하며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제조사들도 AI 스마트폰을 잇달아 출시하며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어 삼성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폴더블 폰 부문에서는 시장 내 입지 회복이 요구된다. 앞서 출시된 '갤럭시 Z6' 시리즈는 전작 대비 판매량이 저조했으며,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격을 노리는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갤럭시 Z7'의 성능 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화면을 두 번 접는 '트리폴드' 스마트폰 출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으며, 업계는 해당 제품의 성공 여부가 프리미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현장]韓 소비자, ‘중국산’ 거부감 줄어···오프라인 분위기 달라졌다

“제품이 좋다는데 어디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가요?" 신세계백화점 본점 내 로보락 매장에서 만난 고객이 한 말이다. 로봇청소기 등 생활 가전 분야에서 중국 업체 공세가 거세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국적보다는 경쟁력이 먼저라고 판단하며 삼성·LG 대신 중국산을 선택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10일 오전 서울 시내 로보락 오프라인 거점들을 방문해 분위기를 살펴봤다. 영업사원들은 자신감에, 방문객들은 제품력에 대한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로보락을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인식하지만 중국산인지 모르는 이도 있었다. 먼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7층에 있는 로보락 전시장을 가봤다. 이날 매장을 정식으로 열고 기념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평일 오전이라 백화점에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로보락 청소기에는 다들 관심을 보였다. 매장이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 '명당'에 자리 잡은 덕분이다. 한 관람객은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로보락이 제일 잘 팔린다고 들었다"며 “가성비가 좋다면 중국산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국내에 거주 중이라는 한 미국인은 “로봇청소기는 로보락 제품이 제일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격과 신제품 출시 일정 등을 물어보려 들다"며 “중국 브랜드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현장 지원을 나온 본사 영업팀 직원은 “한국에 처음 진출했을 당시와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제품력을 인정받다 보니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간 신관 12층에 있는 삼성·LG전자 매장에는 손님이 없었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다 10~11층에 면세점이 껴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은 탓으로 풀이된다. 주력 제품을 선보이는 입구 정중앙에 로봇청소기를 전시해뒀다는 점은 눈길을 잡았다. 로보락은 국내 오프라인 거점을 무섭게 늘리며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2022년 5월 롯데 하이마트에 처음 판매 공간을 마련한 뒤 현재 매장을 450개까지 늘렸다. 스타필드 하남·고양에는 플래그십 스토어도 마련했다. 로보락은 이달 말 신제품 'S9 MaxV' 시리즈를 론칭한 이후 매장을 543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입소문'을 듣고 제품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을 인식한 전략이다. 로보락은 2022년부터 작년까지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롯데백화점 본점 로보락 매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보통 평일보다 주말에 가격 행사를 하다 보니 방문객 수 차이가 크다는 게 이 곳 직원의 설명이다. 갤러리아·롯데백화점 등에서 일해 봤다는 그는 “예전에는 부유층 중 일부가 로보락 제품을 보다 중국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며 “최근에는 바로 옆 삼성·LG 제품 상담을 받다가도 이쪽으로 와서 계약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미 주변에서 추천을 받고 주말에 제품을 직접 보려고 현장을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다고 해당 직원은 부연했다. 국내 시장에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무섭게 몰려들고 있다. 보조배터리 등 저가형 제품을 넘어 프리미엄 가전·자동차 분야에서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특히 단순히 제품 판매를 넘어 오프라인 거점을 마련하며 우리나라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잡는다. '대륙의 실수'로 불리는 샤오미는 이르면 이달 안에 매장을 열 계획이다. BYD, 에코백스 등도 제품을 직접 보여주며 홍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안방'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과거 일본산 제품의 위상을 '메이드 인 코리아'가 대체했고, 중국산이 치고 올라오며 우리와 경쟁하는 큰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들다"며 “중국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려 한다면 한국 기업이 이에 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리스크 관리가 ‘독’ 됐다…환율 급등에 기업들 8천억 손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통화선도계약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이 1470원까지 치솟으면서 환위험 헤지를 위해 체결한 통화선도계약이 오히려 기업 실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해들어 삼성중공업과 엘에스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 비에이치아이, 현대무벡스, 선진, 테크윙, 팜스코 등 8개사가 통화선도계약 관련 파생상품 손실 발생을 공시했다. 이들 기업의 손실 규모는 총 8565억원에 달한다. 공시의무가 없는 곳들의 손실까지 예상한다면 조단위의 손실이 환율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큰 손실을 기록한 곳은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은 6245억원의 파생상품 거래손실이 발생했다고 5일 공시했다. 세부적으로는 거래이익 779억원, 평가이익 414억원이 발생했으나 평가손실이 7439억원에 달해 전체적으로 큰 폭의 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즈베즈다사로부터 수주한 선박 블록 및 기자재 공급계약과 관련한 선물환계약의 회계처리 변경으로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해당 선물환 계약에 대해 '공정가치 위험회피' 회계처리 방식을 적용했으나, 발주처의 일방적 계약취소 통지에 따른 회계처리 영향을 검토한 결과 위험회피 회계 적용을 중단하고 평가손실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엘에스일렉트릭은 909억원의 파생상품 거래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자기자본 대비 5.27%에 해당하는 규모다. HD현대일렉트릭도 39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비에이치아이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손실 비율이 23.2%로 가장 높았다. 비에이치아이는 통화선도계약과 외환스왑 거래로 170억원의 누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환리스크 헤지 목적으로 거래한 파생상품에서 환율 상승으로 평가 및 거래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무벡스는 123억원, 선진은 336억원, 테크윙은 211억원, 팜스코는 167억원의 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 변동 위험을 회피하고자 통화선도계약을 체결했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오히려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통화선도계약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해진 환율로 통화를 교환하기로 약속하는 계약이다. 수출기업들은 환차손 위험을 헤지(hedge·위험회피)하기 위해 이러한 계약을 체결다. 약정환율을 기준으로 하한선과 상한선을 정해 그 범위 내에서 환헤지 또는 환차익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한다. 문제는 리스크다. 통화선도계약에서 발생하는 파생상품 손실은 일반적인 투자 손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당장의 현금유출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기업의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장외거래(OTC)의 특성상 거래상대방 위험에도 노출된다.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 투자 목적의 파생상품과 달리 통화선도계약은 만기일에 한 번에 정산되며 일일정산이 없어 위험이 누적된다. 통화선도시장의 규모가 매우 크고 규제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최악의 경우 연쇄 디폴트로 이어진다면 전체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관련 공시를 낸 기업들은 지난 2023년 말 1299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이 2024년 말 1470원 수준까지 급등(원화 가치 하락)하면서 통화선도계약을 맺은 일부 기업들이 약정환율 상한선을 초과하는 상황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기업들은 벌어들인 외화를 시장환율보다 훨씬 낮은 약정환율로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큰 손실을 입은 삼성중공업의 경우 100% 환헤지 정책을 고수하면서 다른 조선사들과 달리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환헤지 비율을 60% 수준으로 낮추었다면 최소 5000억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환율 예상이 빗나간 것은 해당 기업들만의 사정이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초 국내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5%가 현재의 고환율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 장기화, 한미 금리차 확대, 수출 부진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등이 겹치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했다. 특히 한국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가 환율 변동에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만 원화 가치가 5.1% 하락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실패, 이어진 탄핵 등 정치적 이슈가 뜨거웠던 시기다. 당시 원화 가치 하락폭은 주요 20개국(G20) 통화 중 가장 컸다.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환율은 기업 수익성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원화 약세가 수출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으나, 최근에는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와 해외 투자 부담 가중으로 인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해외 투자 확대가 필요한 시점에서 환율 상승은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들은 반도체, 배터리 등 주요 수출기업들이다. 특히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곳들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투자비용 증가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텍사스 테일러 공장 건설에 17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는데, 환율이 상승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이 불가피하다. SK하이닉스도 미국 조지아주에 추진 중인 패키징 공장 투자도 마찬가지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철강, 석유화학 업계도 타격이 크다. 포스코 등 철강업계의 경우 철광석과 원료탄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어 환율 상승이 직접적인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도 나프타 등 원료 수입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환헤지 뿐만 아니라 글로벌 생산기지 다변화, 수출입 결제통화 다각화 등 종합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기업들의 환위험 관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눈]인재를 사는 중국, 시간을 사는 한국

최근 샤오미가 딥시크를 개발한 핵심 인력에게 연봉 20억원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앞다퉈 보도됐다. 실리콘밸리조차 놀랄 파격적인 제안이다. 인재 영입에 집중하는 중국의 투자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소식이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되풀이됐다. '반도체 위기'를 외치는 재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정치권에 읍소하고 있다. 혁신은 사라지고 구태만 남았다. 극명히 엇갈린 두 풍경은 '미래 경쟁'과 '과거 답습'이라는 해법의 현격한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20억 연봉은 '사람'이 곧 미래라는 선언이다.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최고의 두뇌를 확보하고 기술 혁신을 가속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를 거쳐 이제 반도체까지. 그들의 무대가 넓어질수록 한국 기업의 활동 반경은 좁아진다. 반면 주 52시간 이슈는 '시간'에 매몰된 과거형 해법의 답습이다. 문제 해법을 노동 시간 연장에서만 찾는 낡은 사고방식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중국의 고액 연봉 전략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인재 쏠림, 기술 탈취 등 잠재적 문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기업들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을 '인재'에서 찾고 과감한 투자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가 애써 무시한 중국 기업이 이제 한국 기업들에 뼈아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주 52시간 완화가 단기적 효과를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은 창의성과 효율이 떨어지고, 인재는 빠져나가며, 혁신은 멈춘다.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20억 연봉을 과감히 제시하며 미래 인재 확보에 나서는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행보와, 주 52시간제 완화라는 낡은 해법에 매달려 정치권에 읍소하는 한국 기업의 소극적인 모습은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다. 진정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고 싶다면 낡은 '시간' 중심의 경쟁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지금은 '인재'와 '혁신'이라는 미래 경쟁력의 핵심 가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미래 지향적인 체질 개선에 당장 나서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LG전자, 고객 맞춤형 ‘HVAC 솔루션’ 앞세워 북미 시장 공략

LG전자가 산업용부터 주거용까지 고객 맞춤형 '냉난방공조(HVAC) 솔루션'을 앞세워 북미 공조 시장을 공략한다. LG전자는 현지시간 10일부터 12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리는 북미 최대 공조전시회 'AHR EXPO 2025'에서 고효율 HVAC 제품을 대거 선보인다고 10일 밝혔다. 지난해 말 신설·출범한 ES사업본부의 첫 전시회 참가로 이목을 끈다. 앞서 LG전자는 전사 기업 간 거래(B2B)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 온 HVAC 사업을 기존 H&A사업본부에서 분리해 별도 사업본부 체제로 꾸렸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글로벌 탑티어 종합 공조업체로의 보다 빠른 도약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올해 지난해보다 73㎡ 확장된 총 646㎡(약 195평) 규모의 공간을 마련했다. 자사 '코어테크'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해 제품 내부 구조와 핵심 부품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렸다. 최근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열관리 솔루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LG전자의 '칠러(Chiller)'가 AI데이터센터를 비롯해 대형 건물, 공장 등 대규모 공조 수요처를 중심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모터 회전축에 윤활유를 사용하지 않는 '무급유 인버터 터보 칠러'를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무급유 인버터 터보 칠러'는 고속으로 돌아가는 압축기 모터의 회전축을 전자기력으로 공중에 띄워 지탱하며 회전시키는 자기 베어링 기술이 적용돼, 마찰 손실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이 높다. 미국 전역의 다양한 기후를 고려한 '인버터 히트펌프' 라인업도 선보인다. '인버터 히트펌프'는 미국 환경청의 '에너지스타(ENERGY STAR®)' 인증을 획득한 고효율 제품이다. 천장 공간이 넓은 단독 주택이 많은 북미 주거 환경을 고려해 덕트를 활용한 유니터리(Unitary) 방식의 주거용 냉난방 솔루션으로 현지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특히, '2025 AHR 혁신상' 지속 가능 솔루션 부문을 수상한 '주거용 한랭지 히트펌프'는 영하 35℃에서도 안정적인 난방 성능을 유지하며, 냉매 사이클 최적화 기술로 실외기 응축수 동결을 방지해 난방 효율을 극대화했다. LG전자가 HVAC 솔루션으로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선 이유는 HVAC 시장의 높은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2023년 1642억1000만달러(약 239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HVAC 시장이 2030년에는 2493억8000만달러(약 36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LG전자는 지난해 북미 친환경 건축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매체 '그린빌더미디어(Green Builder Media)'가 발표한 「2024 그린빌더 지속가능 브랜드 지수」에서 HVAC과 가전제품 부문 지속가능 브랜드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그린빌더미디어는 건축업자(빌더), 시행사(디벨로퍼) 등 500명 이상의 건축분야 전문가 대상의 설문 조사를 기반으로 매년 다양한 제품군에서 브랜드 지속가능성 순위를 발표하는 곳이다. 당시 LG전자의 HVAC 솔루션은 지속가능 브랜드 평가에서 북미 지역의 전통적 강자인 트레인(Trane), 캐리어(Carrier) 등을 제치고 최초로 1위에 올랐었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 열관리 솔루션으로 주목 받는 초대형 냉방기 칠러부터 상업용 시스템 에어컨과 가정용 에어컨까지 주거, 공공, 상업, 산업 시설 등 다양한 공간에 최적화된 공조 토털 솔루션을 갖추고 있다. LG전자 HVAC 제품들은 고효율 히트펌프 등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전기화(electrification) 솔루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LG전자는 이러한 고성장이 예상되는 HVAC 중심의 B2B 사업 비중을 확대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부사장)은 “AI데이터센터 열관리 솔루션으로 주목 받는 칠러를 비롯해 다양한 공간·기후 맞춤형 냉난방공조 솔루션으로 B2B 비즈니스를 가속화하고, 글로벌 공조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삼성전자, ‘비스포크 AI 무풍 콤보 갤러리’ 에어컨 출시

삼성전자는 2025년형 신제품 '비스포크 AI 무풍 콤보 갤러리' 에어컨을 출시했다고 9일 밝혔다. 기존 '무풍' 기술에 '쾌적 제습' 기능을 추가해 섬세한 습도 관리와 에너지 효율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쾌적 제습' 기능은 습도에 맞춰 냉매를 조절해 불필요한 냉기 방출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사용량을 기존 대비 최대 30% 절감한다. AI 기반 'AI 쾌적' 기능은 실내외 환경을 분석해 최적의 냉방∙공기 청정 모드를 자동 제공하며, 'AI 절약 모드'를 통해 추가 절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업그레이드된 AI 음성 비서 '빅스비'를 탑재해 음성 명령으로 △냉방 모드 변경 △예약 설정 △에러 진단 등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삼성 갤럭시 워치나 갤럭시 링과 연동해 사용자의 수면 패턴을 분석해 자동으로 에어컨을 제어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이 외에도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절전 모드로 전환하는 '부재 절전', 에어컨 내부 건조를 자동 수행하는 '부재 건조', 편리한 세척을 돕는 '이지케어 8단계' 기능을 갖췄다. 삼성전자는 내달 6일까지 삼성닷컴과 삼성스토어에서 사전 판매를 진행하며, 냉방 면적에 따라 325만원~683만원에 판매한다. 사전 구매 시 삼성케어플러스와 10만 원 상당의 혜택을 제공하며, 'AI 올인원 요금제'로 가입하면 추가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정부 부처·기업, ‘전방위 딥시크 차단’…해외서도 접속 규제 줄이어

중국에서 탄생한 생성형 AI '딥시크(DeepSeek)'가 광범위한 정보 수집에 따른 보안 위협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따르면서 전세계적으로 줄줄이 접속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9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국방부·국토교통부 등을 필두로 한 정부 부처들은 속속 딥시크 접속을 차단했다. 지난 3일 행정안전부가 '보안 주의 사항'이라는 제하의 공문을 각 부처에 보낸 이후의 조치다. 행안부는 해당 공문을 통해 “최근 딥시크 등 다양한 생성형 AI 서비스의 공공 분야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보안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비공개 또는 개인 정보 등 민감한 사항을 입력하거나 검증 없이 활용하지 않도록 기존 보안 유의 사항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지난 7일 별도 브리핑을 진행해 딥시크의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보안상 우려가 지속 제기되고 있다며 신중한 이용을 당부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 기관과 경찰청·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 기관, 서울시·경기도 등 광역 지방 자치 단체들도 줄줄이 '딥시크 금지령' 대열에 참여했다. 민간 기업 중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LG유플러스·카카오·네이버·삼성카드·쏘카·CJ제일제당·신한은행·삼성SDS·신성이엔지·롯데백화점·한화시스템·KB국민은행이 사용을 금지했다. 이처럼 차단 움직임이 본격화됨에 따라 딥시크 앱 사용자도 급감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는 딥시크 앱 일간 사용자수가 지난달 28일 19만1556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밝혔다. 이후 29일 13만2781명, 30일 9만6751명 등으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지난 4일의 경우 7만4688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딥시크 앱 신규 설치는 설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달 28일 17만1257건으로 최다 수치를 기록한 후 29일에는 6만7664건으로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달 들어서는 1일 3만3976건, 2일 2만5606건, 3일 2만3208건, 4일 2만452건 등으로 실적이 저조해지고 있다. 행안부 자제 권고가 나온 4일의 경우 28일과 비교해 8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딥시크는 V3모델의 개발 비용이 557만6000달러(한화 약 81억2869만원)라고 밝혔다. 70억달러(10조2046억원)가 소요된 오픈 AI의 챗GPT의 0.08%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고품질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초기에는 '가성비 좋은 생성형 AI'라고 칭송받았지만 보안 사고의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기관과 기업, 개인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딥시크는 이용 약관을 통해 사용자의 △생년월일 △이름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비밀번호 △텍스트·오디오 입력 △프롬프트 △업로드된 파일 △피드백 △채팅 기록 △기타 콘텐츠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 △고유 장치 식별자 △쿠키 △접속 장치 모델 △운영 체제 △키 입력 패턴·리듬 △시스템 언어 △충돌 보고서 △성능 로그 등 서비스 관련 진단·성능 정보 △결제 주문·거래 정보를 수집한다고 명시해뒀다. 또 이 정보들을 한데 모아 중국 내 서버에 저장한다고도 공시해둬 정부와 기업들의 정보 보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형국이다. 하정우 네이버 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딥시크가 수집하는 정보가 매우 많아 이런 점을 고려해 사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국가정보법·데이터 보안법·사이버 보안법 등을 근거로 자국 내 IT 기업에 데이터 접근 권한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데이터 접근권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모은 개인 정보를 중국 정부가 활용한다는 분석도 꾸준히 제기된다. 이에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6일 “데이터 프라이버시·안전을 고도로 중시해 관계 법령에 따라 보호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기업 또는 개인에게 위법한 형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저장하도록 요구한 적이 없고,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불안감을 불식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 정부와 딥시크에 대한 불신은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개인정보 보호 기관은 지난달 29일 전세계 최초로 자국 내 애플 앱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딥시크 앱을 전면 차단했다. 호주·대만은 뒤이어 정부 소유 기기에서의 딥시크 사용을 금지했다. 일본 내각관방은 공식적으로 딥시크를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수집한 자료에 대해서는 중국 법령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이용 자제를 권고했다. 아울러 영국과 유럽 연합(EU) 회원국들도 딥시크의 위험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방부·해군·항공우주국(NASA) 등 일부 연방 기관이 이미 딥시크 접속을 막아둔 상태이고, 주 정부 차원에서는 텍사스주가 가장 먼저 나섰다.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 대런 라후드 공화당 의원과 조시 고트하이머 민주당 의원은 정부 소유 기기에서 딥시크 챗봇 서비스를 금지하는 내용을 이른 시일 내에 발의할 예정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삼성전자 DS, TSMC에 2개 분기 연속 매출 밀려…AI 반도체 주도권이 갈랐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공 지능(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확보 여부가 양사의 실적을 좌우함에 따라 양사 간 매출 차이는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은 2023년 4분기 매출 30조1000억원, 영업이익 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기대에는 못 미친 실적이다. 반면 TSMC는 AI 반도체 수요 증가에 힘입어 같은 기간 매출 8684억6천만 대만달러(약 38조4000억원)를 달성하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AI 활용이 집중되는 고성능 컴퓨팅(HPC) 부문 매출 비중이 53%에 달해 기존 핵심 사업이었던 스마트폰(35%)을 크게 웃돌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 매출은 2023년 2분기까지는 TSMC와 대등했으나, 3분기 3조원 차이로 벌어지더니 4분기에는 8조원까지 격차가 커졌다. 삼성전자는 2021년 메모리 반도체 호황 덕분에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를 차지한 바 있으나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장 침체로 인해 TSMC에 역전을 허용했다. 이후 2023년 2분기에 한 차례 매출 1위를 되찾았지만 AI 반도체 시장 성장과 함께 다시 TSMC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도 삼성전자의 실적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DS 부문의 1분기 매출이 25조원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모바일·PC 부문의 메모리 재고 조정이 지속되면서 반도체 실적 개선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범용 D램 수요가 둔화된 가운데 AI 서버용 고 대역폭 메모리(HBM)도 아직 본격적인 실적 반등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다. 파운드리 역시 수주 부진과 낮은 가동률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반면 TSMC는 1분기 매출 전망치를 전년 대비 32% 증가한 250억∼258억 달러(약 36조∼37조원)로 제시했다. 이는 삼성전자 예상 매출보다 10조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TSMC는 AI 반도체 수요가 견조하게 유지되면서 스마트폰 비수기 영향을 상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TSMC의 실적 개선을 이끄는 핵심 요소는 고부가가치 반도체 수요 증가"라며 “삼성전자와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TSMC의 독점적 지위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AI 반도체 시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며, 이에 따라 해당 시장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 차별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삼성전자 ‘도쿄선언’ 42주년···‘복합위기’ 돌파할 이재용 리더십이 절실

“누가 뭐라고 해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해야겠다. 이 사실을 알려 달라." 1983년 2월8일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한 말이다. '도쿄선언'으로 잘 알려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 창업회장을 '과대망상증 환자'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성공 신화'를 썼다. 통상 18개월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만에 짓고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다. 1993년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점유율 1위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도쿄선언' 42주년을 맞은 2025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역대 최악의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존 메모리 사업은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고 신사업은 아직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벗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만큼 정부·국회의 '지원사격'도 절실해 보인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신사업 역량 강화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고에 전세계 산업·금융 지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는 경쟁사 SK하이닉스에 밀렸다. SK하이닉스가 'AI 큰손' 엔비디아와 협업하며 역대급 실적 을 내는 와중에 삼성전자는 아직 품질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3조4673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15조1000억원에 머물렀다.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대만 TSMC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64.9%, 삼성전자 9.3%로 집계됐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맞설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푸젠진화(JHICC) 등 현지 기업들은 D램을 시중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밀어내며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공급이 늘어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업황 자체가 나빠지고 있는 형국이다. 기술력에 대한 도전에도 직면했다. CXMT는 최신형 제품인 DDR5 D램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과거 수년 이상 차이났던 한국과 중국간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 격차가 1년안팎으로 줄어들었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트럼프 리스크'로 약속받았던 보조금을 다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삼성전자 역시 위기를 일찍부터 인식하고 해법 찾기에 골몰해왔다. 지난해 5월 새로운 반도체 사업 수장으로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을 데려오며 쇄신을 도모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예상보다 저조한 반도체 실적을 돌아보며 '반성문'까지 썼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우선 '엔비디아 문턱'을 넘어야 한다고 본다. 8단 HBM3E 관련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명확한 공급 일정은 아직이다. D램 가격 하락세가 본격화한 가운데 부가가치가 높은 HBM 판매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이재용 회장이 과감한 조직개편과 신사업 발굴 등에서 리더십을 확인시켜줘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 회장이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멈춰선 삼성의 인수합병(M&A) 시계를 다시 돌릴지도 관심사다. 이런점에서 최근 AI 반도체 분야 '동맹'에 합류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비쳐진다. 이 회장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최근 국내에서 회동하며 '3각 동맹'을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가 미국 '스타게이트' 생태계에 합류해 오픈AI에 반도체를 공급할 경우 성장하는 AI 시장에서 대규모 물량을 따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계는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할지 여부와 그룹 콘트롤타워를 정식으로 부활시킬지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지원사격' 역시 절실한 상황이다. R&D 인력을 대상으로 주52시간제 등 규제를 없애는 '반도체특별법'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일단 올해 계획을 짜며 중장기 경쟁력 강화와 고용량·고사양 제품 포트폴리오 구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장 D램과 낸드 모두 시장 수요에 맞춰 범용(레거시) 제품 비중을 줄이고 첨단 공정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수익성 방어를 위해 서버용 SSD(Solid State Drive) 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을 늘린다는 방침도 정했다. '아픈 손가락' 파운드리의 경우 2나노 공정 양산과 안정화를 통해 고객 수요를 확보하고, 4나노 공정 설계 인프라도 강화하기로 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 하락 싸이클이 막 시작됐고 삼성전자 본원 경쟁력 회복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며 “엔비디아 인증 통과, HBM4에 사용될 D램 특성이 양호할지, 중국향 HBM 및 전용 그래픽카드(GPU) 판매가 미국 정부에 의해 제한될지 등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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