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반드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와 학계 등에서 제시된 밸류업 해법에 대한 정면 반박인 셈이다. 6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지난 1일 상의는 “아시아 각국 지배구조와 주가지수 상관관계 연구" 보고서를 분석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2024년 평가에서 한국은 12개국 중 8위를 차지했지만, 2020년 1월부터 2024년 9월까지의 주가지수 상승률은 25%로 5위를 기록했다. 또한 지배구조 1위인 호주의 주가지수 상승률은 6위, 지배구조 7위인 인도는 주가지수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대한상의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반드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또한 각 나라마다 주가 상승의 이유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호주는 원자재 가격이 올라 주가가 상승했고, 인도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늘어나 주가가 올랐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경우 기관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투자를 늘리고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한 것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됐다고 봤다. 이에 따라 대한상의는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배당 소득세를 낮추거나 주식을 오래 보유한 사람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대한상의의 주장에 대해 학계에서는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의 이상철 교수가 지난 2017년에 발표한 연구 “기업지배구조가 효율성 및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 가치 사이에는 긍정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증시에 상장된 2448개 기업의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기업 지배구조 점수가 높을수록 기업의 가치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기업 가치는 '토빈의 Q'라는 지표로 측정했는데, 이는 기업의 시장 가치를 자산의 대체 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쉽게 말해,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주식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가 얼마나 더 높은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연구는 또한 왜 좋은 지배구조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지 그 이유도 밝혀냈다.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일수록 기업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졌고, 이 높아진 효율성이 결국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 연구는 대기업 집단에 속한 기업들에서 이러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의 특수한 기업 환경, 즉 재벌 구조에서 좋은 기업 지배구조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예기다. 또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박사과정의 이인식 씨와 이헌상 교수가 2020년에 발표한 연구 “기업지배구조 수준에 따른 주가 수익률의 장·단기적 관계 분석"에 따르면, 기업 지배구조와 주가 수익률의 관계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이 연구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한국 상장기업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의 주가 수익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부터는 이 관계가 뒤집혀서,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의 주가 수익률이 더 높아졌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들의 경우 지배구조 평가 발표 후 1년간의 수익률은 0.29%였지만, 4~5년 후의 수익률은 0.91%로 3배 이상 높아졌다. 반면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들은 처음에는 1.11%의 높은 수익률을 보였지만, 45년 후에는 0.33%로 크게 떨어졌다. 이 연구는 또한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의 주가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의 경우 시장 전체의 움직임, 기업의 크기, 기업의 가치 등 모든 요인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지만,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은 시장 전체의 움직임과 기업의 크기만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학계의 연구 결과들은 대한상의의 주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상의의 분석이 단기적인 주가 변동만을 본 반면, 학계의 연구들은 더 긴 기간에 걸쳐 기업 가치의 변화를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밖에 황선웅 중앙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2007년 발표한 '주식가치와 기업지배구조간의 상호관련성에 관한 실증연구'와 박순홍 건국대학교 교수가 지난 2011년에 발표한 '기업지배구조가 시장 경쟁도에 따라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도 모두 기업의 지배구조가 기업의 가치에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내용이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지배구조 상위 20% 기업들의 포트폴리오가 하위 20% 기업들의 포트폴리오보다 41.49% 높은 누적평균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우수한 지배구조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 증대와 주주 부의 극대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이에 대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 가치의 관계는 대한상의 보고서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입장이다. 지배구조 개선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결국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한상의가 제안한 정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대주주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의가 제안한 배당소득세 저율 분리과세나 장기보유주식에 대한 세제혜택은 주로 많은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정책들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한상의의 보고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기업 가치 간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며 “연구 결과들을 고려할 때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정책을 수립할 때는 단기적인 주가 상승만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한상의의 제안은 기업 경영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나 경영 투명성 제고 등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요소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있다"며 “단순히 규제를 완화하거나 대주주에게 유리한 정책만을 제시하는 것은 장기적인 기업 가치 상승과 건전한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