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대선의 최대 승부처가 될 TV토론이 오는 10일(현지시간) 예정된 가운데 미국 대선 판도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과거 TV토론의 순간들이 주목받는다. 9일 연합뉴스가 인용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TV토론이 대선 판도를 가르는 주요 이벤트로 자리 잡은 것은 1960년 대선 때부터다. 당시 공화당 후보는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 민주당 후보는 존 F.케네디 상원의원이었다. 흑백 브라운관 속 닉슨은 무릎 부상 탓에 창백한 얼굴에 듬성듬성 수염이 보이는 데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반면 케네디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7000만명의 시청자는 듣는 것 대신 보는 것에 집중했고, 케네디가 대선에서 승리했다. 1980년 10월 28일엔 대선 투표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후보 TV토론이 열렸다. 당시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의료복지 정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를 공격했는데, 레이건은 웃으며 “또 시작이네"(There you go again)라고 응수한 뒤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어갔다. 레이건의 이 발언은 청중의 웃음을 끌어냈고 유행어가 됐다. 레이건은 카터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 1988년 TV 토론에서는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공화당 후보 조지 H.W. 부시 당시 부통령이 맞붙었다. 사형제 폐지론자였던 듀카키스는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에 대한 사형을 찬성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는 얼음처럼 차가운 인간으로 비판을 받던 듀카키스에게 감정적인 면모를 보여줄 기회였으나 듀카키스는 냉정하게 “아니오"라고 답했다. 이를 계기로 듀카키스는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남겼고 결국 대선에서 패했다.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발 돌 전 상원 원내대표가 맞붙은 1996년 토론의 승부처는 고령 논란이었다. 당시 73세의 나이로 대선에 출마했던 돌 후보는 청년들의 요구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돌 후보는 자신의 나이가 되면 지적 능력과 경험은 지혜의 우위를 의미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클린턴은 “돌 의원이 대통령이 너무 늙어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며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돌 의원 생각의 나이"라고 쏘아붙였다. 고령 유권자들에게 차별적으로 비치지 않으면서도 경쟁자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하는 데 성공한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했다. 2000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 부통령이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 당시 텍사스 주지사가 발언하는 동안 큰 소리로 한숨을 쉬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대선에서는 조지 W. 부시가 승리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은 2016년 대선의 첫 번째 TV 토론에는 무려 시청자 8400만명이 몰렸다. 두 번째 TV 토론에서는 모욕적인 말들이 오갔고 클린턴 전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개된 2005년 비디오에서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공격적인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클린턴 전 장관의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성에게 더 나쁜 짓을 했다면서 비난을 피해 가려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토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의 답변 도중 고통스러워하거나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2020년 대선 토론 당시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사회자의 말을 계속 방해하면서 토론의 흐름을 끊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것이 결국 대선 승패에 있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답변 시간에 집요하게 끼어들자 “이 사람아, 입 좀 다물어주게"(Will you shut up, man?)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지난 6월 27일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TV 토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은 말을 더듬거나 정확하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는 등 논쟁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며 고령에 따른 건강과 인지능력 논란을 재점화하는 심각한 후폭풍을 맞았다. 결국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로 이어졌고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의 새로운 대선 후보가 됐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