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가 개막한 가운데 기후 위기를 둘러싼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주요 기관들이 각 분야별로 제시한 2030년 기후목표가 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신규 설치량, 전기자동차 보급량 등 청정에너지의 확장 속도가 현재 수준대로 이어진다면 2030년 목표 달성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기후위기 대응이 외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 재생에너지 역부족…2030년까지 3배 더 늘어야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473기가와트(GW)의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새로 추가되면서 전체 발전용량이 3.9테라와트(TW)로 집계됐다. 그러나 IRENA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선 2030년까지 글로벌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11.2TW에 도달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아직 7.3TW가 남은 것으로, 올해부터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매년 16.4%씩 성장해야 목표달성이 가능한 셈이다. 문제는 현 추세대로라면 재생에너지는 2030년까지 매년 14%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9.7TW에 그쳐 목표치의 13.5%가 미달될 것이라고 IRENA는 내다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블룸버그 산하 에너지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는 올해부터 재생에너지 분야에 매년 1조달러씩 투자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BNEF에 따르면 지난해 재생에너지 투자규모는 6230억달러로 집계됐다. ◇ 전기차 캐즘에 완성차업계 '전동화 전략' 속도조절 BNEF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서 새로 판매되는 자동차 중 전기차(하이브리드 차량 포함)의 비중이 2030년에 70%까지 올라야 한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전기차 판매비중이 18%에 달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보급량이 4배 가까이 늘어야 한다. BNEF는 청정에너지 중 전기차가 2030년 기후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낙관했다. BNEF는 앞으로 정부의 새로운 지원책이 없을 경우 2030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비중이 45%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면서 적당한 추가 정책으로 70% 목표치 달성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이어지자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전동화 전환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BNEF가 집계한 결과 완성차기업 14곳은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목표량을 330만대 가량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 테슬라 역시 올 상반기 공개한 연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인 '임팩트 리포트 2023'에서 2030년까지 연간 2000만대의 차량을 판매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삭제했다. 제너럴모터스(GM)은 2025년까지 북미에서 전기차 100만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 어렵다고 밝혔고 볼보는 2030년까지 전기차만 판매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2040년으로 연기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전기차 판매 비중 50% 달성 시기를 기존 2025년에서 5년 미뤘다. ◇ 온난화 주범 패션업계 배출량은 증가세 패션 산업도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의류 생산과 소비는 전 세계 배출량의 10% 가량 차지한다. 이에 미국 비영리단체 '텍스타일 익스체인지'는 2030년까지 패션 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수준 대비 45% 감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단체에 참여하는 의류 브랜드들은 샤넬, 나이키, 룰루몬 등을 포함해 800개가 넘는다. 그러나 패션산업의 탄소 배출은 2022년 511톤으로 집계되는 등 2019년(491톤) 대비 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출시되는 패스트 패션이 탄소배출 감소에 중대한 장애물로 거론됐다. 텍스타일 익스체인지의 클레어 버그캠프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의류를 과도하게 소비하고 있다"며 “이같은 일회용 사고방식은 기후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큰 문제점"이라고 우려했다. ◇ SAF 필수격인데 턱없이 부족한 공급 항공분야에서는 SAF(지속가능항공유)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 떠오르지만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올해 항공업계가 사용하는 SAF는 150만톤으로, 작년(50만톤)대비 3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IATA는 그러나 2030년까지 2400만톤의 SAF가 공급돼야 탄소중립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급이 16배 가량 대폭 확대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항공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BNEF는 각국과 기업들이 경제적이고 상용화 가능한 기술만 활용할 경우 항공산업의 배출 비중이 현재 2%대에서 2050년 6.7%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뉴질랜드의 국영 항공사 에어뉴질랜드는 2030년 기준 탄소 배출 목표를 철회하고 고가 친환경 연료 및 새 항공기 도입 시기도 늦추겠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 글로벌 은행들의 그린 파이낸싱도 역부족 미 월가를 비롯한 글로벌 주요 은행들의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움직임에 자금을 지속적으로 조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분석한 결과 글로벌 10대 은행들은 자사가 설정한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까지 4조달러 넘게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목표인 1조달러의 80% 가량을 도달한 상태고 골드만각스, RBC, 도이체방크, BNP파리바도 3 분의 2 이상을 달성한 상태다. 바클리는 2030년까지 1290억달러를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이미 달성해 조달액을 1조달러로 높였다. 이같은 움직임에도 탄소중립 달성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BNEF에 따르면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시키기 위해선 2030년까지 최소 4대1 비율로 청정에너지 분야에 대한 자금조달 규모가 화석연료보다 커야 한다. 그러나 가장 최신 자료인 2022년엔 비율이 0.73대1로 청정에너지 조달액이 화석연료를 밑돌았다. ◇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 사상 최고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탄소중립 달성과 멀어지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달 24일 보고서를 통해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2%, 2035년까지 57% 감축하겠다는 국제사회의 약속에 기반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수립되고 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각국이 NDC를 야심 차게 세우는데도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571억톤 수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추이가 지속될 경우 이번 세기 안에 지구 기온은 2.65도에서 최고 3.1도까지 상승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문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이런 흐름이 지속됐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미국의 배출량이 추가로 17% 감축돼야 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기후정책이 탄력을 잃을 공산이 크다. 트럼프 2기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독립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현 미국 행정부의 존 포데스타 기후특사는 11일 COP29에 참석해 “트럼프의 당선은 기후 운동가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기후변화 대응에 각국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비영리단체 CDP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오를 경우 세계 국내총생산(GDP) 12% 가량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됐다. 한국은행이 이달초 공개한 '기후변화 리스크(위험)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도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2100년께 우리나라 GDP는 기준 시나리오(국내 인구성장 추세 바탕 추정 성장 경로)보다 21% 대폭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블룸버그는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산림전용, 생물다양성 분야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