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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기업 규제 대대적 쇄신”…배임·산재, 처벌 대신 과징금 ‘폭탄’ 시사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기업 활동 과정에서 벌어지는 배임죄나 산업재해에 대해 형사 처벌 대신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관련 규제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제1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모두발언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우선 “우리나라 규제가 낡고 불필요하게 얽혀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거나 축소하고, 꼭 필요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하는 합리적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저성장과 글로벌 기술 경쟁 격화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의 기업인과 경제인 덕분"이라며 “경제의 상징 지표인 주가지수가 오늘도 사상 최고치를 찍은 것은 여러분들의 현장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또한 “입법부와 행정부가 제대로 판단·결정하면 그대로 집행되는 최적의 상황도 사실"이라며 “잘하면 아주 잘할 수 있고, 잘못하면 큰일 나는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이어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낡은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거나 축소하고, 필요한 규제는 확대·강화하는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특히 산업재해와 배임죄 등을 대표적인 혁신 대상 규제로 못박았다. 그는 “기업에서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수사·재판·배상 절차로 몇 년이 걸리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미국처럼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처벌 조항이 너무 많고 효과는 크지 않다. 불필요하게 국가 에너지만 소모된다"며 처벌 위주의 규제 문화를 개편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배임죄에 대해서도 기업의 활동을 가로 막는 대표적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은 본질적으로 판단과 결정을 자유롭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배임죄 때문에 결정을 잘못하면 기소되고 감옥에 간다"며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끼쳤다고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위험 속에서 어떻게 사업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기업 활동의 속성에 맞게 제도를 고쳐야 한다"며 “합리적이고 타당하며 실효적인 방향으로 대대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바이오헬스 등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위기는 언제나 있지만 우리가 한 발 빠르게 움직이면 선도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이번 규제 합리화 논의가 새로운 성장을 열어가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날 오전 산재 사망사고가 지속적으로 빈발하는 건설사는 아예 등록 말소를 요청해 영업 활동을 중단시키고,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서는 영업이익 5%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획③]“10년간 1만1천명 실직”…사모펀드 먹튀에 근로자·국민 피해 심각

홈플러스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2015년 이후 10년간 직·간접 고용 1만1000여 명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공식적인 구조조정 발표 없이 장기간에 걸쳐 저강도 정리해고가 이뤄진 셈이다. 국회 안팎에서는 사모펀드의 무분별한 자산 매각과 단기 이익 추구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에서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홈플러스의 직접 고용 인원은 2만6477명이었지만 2024년에는 2만12명으로 6465명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간접 고용 인력도 8112명에서 3191명으로 4921명 줄었다. 합쳐서 총 1만1386명이 감소한 셈이다. 특히 간접 고용 인력의 감소 폭이 두드러진다. 2015년 대비 60.6%가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경비·매장 관리 등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본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저강도 정리해고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실제 해고 계획을 공표하고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사회적 반발이 거셀 것을 우려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인력 규모를 줄였다는 것이다. 한창민 의원은 “MBK는 빚으로 회사를 인수한 뒤 돈을 빼내 단기 이익만 챙겼다"며 “마치 집을 대출로 사놓고 안에 있는 가구와 가전제품까지 다 팔아버린 것과 다를 바 없다. 피해는 노동자, 자영업자, 소비자, 그리고 국민연금이 떠안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간 경영진은 성장 투자보다는 핵심 부동산 자산을 비싼 값에 매각하며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버텨왔다. MBK의 최대 고민은 인수 직후부터 이자와 차입금 상환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영업력을 강화해 매출을 끌어올리거나, 보유 부동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는 길이다. MBK는 후자를 택했다. MBK파트너스는 인수 당시 “현금 1조원을 투자해 홈플러스를 성장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15년 이후 홈플러스의 자본적 지출(CAPEX)은 연간 1000억 원 안팎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이마트의 연평균 4400억 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후자 방식은 임대료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MBK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북수원점·김해점·김포점·가좌점·의정부점·강서점 등 전국 주요 점포 15개 매장을 '세일앤리스백(SLB·Sale & Leaseback)'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를 통해 매각 대금 1조8666억원을 챙겼다. 이후에도 2020년 전국 매출 5위권에 들었던 안산점을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2024년까지 전국 매출 상위권이던 가야·대전둔산·탄방·대구점 등 주요 14개 점포가 폐점됐다. 이어 홈플러스는 올해 8월 13일부터 내년 5월까지 15개 점포도 추가로 폐점하기로 했다. 단기간 급전 마련에는 효과적이었다. 실제 부동산 매각을 본격화한 2016년부터 최근까지 홈플러스의 장단기 차입금 2조7112억원을 줄였다. 이는 홈플러스의 매각 부동산자금 2조2111억원과 비슷한 규모다. 노조는 “영업이익으로는 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자 MBK는 결국 홈플러스 자산 매각으로 버틴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건물을 팔아 현금화한 뒤 다시 임차해 쓰는 SLB 방식은 임대료 부담을 키웠다. 해당 15개 임차점포에서만 2025년 2월 말 회계연도 기준 임대료 지출액이 1058억원에 달했다. 이는 최근 3년간 전체 임차매장(2022년 66개, 2023년 69개, 2024년 71개)의 임대료 총액 중 약 2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임차료는 같은 기간 연간 3843억~4148억원 규모였는데, SLB 임차점포가 그 부담의 4분의 1을 차지한 셈이다. 매출 상위 점포 축소와 임대료 부담 증가는 영업이익 악화로 직결됐다. 결국 홈플러스는 올해 1월 말 기준 총부채 8조5000억원이 달했다. 이중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유동성리스부채가 1조88억원이다. 빚더미에 허덕이던 홈플러스는 지난해 메리츠금융그룹에서 1조2000억원 한도의 부동산담보대출까지 받았다. 이후 MBK는 3월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그러나 회생 신청 이후에도 MBK는 구조조정 여부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추가 매각이 사실상 유일한 출구 전략으로 제시됐다. 실제 지난 3월 4일 채권단에 제출한 MBK 문서에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점포 4곳 추가 매각, 매출 하위 점포 면적 축소 계획 등이 담겼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본금이 부족한 기업이 무리하게 인수하면 차입금 상환에 치중해 구조조정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며 “특히 PEF의 기업 인수 후 SLB를 통한 자산 매각과 배당에 집중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서는 인수 후 일정 기간 기업의 자산 매각과 배당 지급을 제한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획②] [단독]국민연금, 수익률 매몰돼 사모펀드 M&A ‘보증인’ 노릇

공적기관이 국민연금이 수익률에 매몰돼 사모펀드의 기업 사냥에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부도나 문제가 됐던 홈플러스 인수전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형 프로젝트 투자 과정에서 입찰 전에 투자확약서(LOC·Letter of Commitment)를 발급해 주면서 사실상의 보증인 노릇을 한게 확인됐다. 또 홈플러스 등의 인수 과정에서 안전성, 공익성 등에 대한 검토 없이 수익률만 바라보고 투자를 확정해 공적 기관의로서의 책무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5년까지 지난 20년간 국내 사모펀드(PEF) 관련 안건을 심의하면서 국민연금 대체투자위원회에 국내 사모 관련 안건이 총 92건 부의됐으며, 이 가운데 12건에서 투자확약서가 발급됐다. 연도별로 보면 △2006년 LG카드 △2007년 메가박스·대경기계기술·하나로텔레콤 △2010년 해태제과식품 △2014년 ADT캡스(Project Angel) △2015년 ADT캡스(Project Angel II)·홈플러스(Project Equalizer) △2018년 11번가(Project Crystal) △2019년 모멘티브(Project Mom)·롯데카드(Project Curie) △2021년 덕양(Project Haldane) 등이다. 문제는 LOC 발급 시점이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를 포함해 최소 4건의 확약서를 입찰 전에 내줬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인수전(Project Equalizer) 당시 2015년 8월 21일 LOC를 발급했고, 정식 입찰은 사흘 뒤인 24일이었다. 또 국민연금은 2006년 LG카드 인수 과정에서 입찰일(8월 10일)보다 13일 앞선 7월 28일 LOC를 내줬다. 2007년 대경기계기술의 경우에도 입찰 하루 전인 9월 11일에 LOC가 발급됐다. 같은 해 하나로텔레콤은 입찰일(11월 13일) 두 달여 전인 9월 20일에 이미 확약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은 입찰이 진행되는 대형 프로젝트 투자일 경우 특정 컨소시엄에 참여해 초기 단계부터 투자 검토를 진행하도록 돼 있다. 국민연금은 “초기부터 검토가 진행돼야 조건 협상이 가능하고, 투자자가 희망하는 자금액 확보가 용이하다"며 “빠른 속도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가 LOC를 사실상 사모펀드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홈플러스 인수 당시 MBK파트너스는 국민연금 LOC를 근거로 해외 연기금(CPPIB 등)을 끌어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LOC는 사실상 '믿을 수 있는 투자자 인증마크'로 통한다"며 “입찰 전에 LOC를 발급하면 특정 컨소시엄에 압도적 우위를 안겨주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공적 기관인 국민연금이 '수익률'만 보고 투자 확약서를 써줬다는 점이다. LBO 구조의 위험성, 홈플러스의 업계 전망, MBK의 과거 투자 실적 등에 대한 종합적 검토 없이 수익률이 높다는 이유로 투자를 약속했다. 당시 MBK는 연 9%의 수익률을 제시하며 LOC를 요청했다. 이는 경쟁 컨소시엄이 제시한 7.8~8%대보다 높은 조건이었다. 국민연금은 이를 근거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펀드였기 때문에 LOC를 발급했다", “MBK 파트너스가 제시한 투자조건이 국민연금에 유리한 조건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투자는 손실로 이어졌다. 앞서 국민연금은 2011년부터 MBK파트너스와 거래를 이어오며 총 11개 펀드에 약 2조원을 출자했고, 이 중 회수금은 1조3000억원에 그쳤다.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 3호 블라인드펀드'에는 6121억원을 투입했으며, 이익금을 포함해 아직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 약 9000억원에 달한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홈플러스 투자 건의 경우 상장전환우선주(RCPS) 수익률이 당초 9%였는데, 일정 기간 후 스텝업 조건이 있어 현재는 13%"라며 “회수 금액을 제외하면 못 받은 돈이 공정가치평가상 약 900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LOC 발급이 공적 기금을 사모펀드의 '마케팅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국민연금은 단순히 높은 '수익률'에 끌려서는 안 된다. 공적 기금인 만큼 안정성과 사회적 책임, ESG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은 원금 손실을 피하는 안정성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이어 “수익률을 강조하다가 손실을 본 홈플러스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모펀드도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을 강화하고, 공시의무와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관세 카드’로 압박하는 美…韓 “국익 최우선 원칙 협상”

대통령실은 12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미 관세·무역 협상과 관련해 “유연함은 없다"고 밝힌 데 대해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이 25% 관세 유지·복원 가능성을 지렛대로 내세운 만큼, 양국간 세부 문안 조율은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못 박았다. 이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한미 협상과 관련해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러트닉 장관은 11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일본의 최종 서명을 언급하며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명확하다"며 “그래서 유연함은 없다"고 압박했다.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를 요구하고 있다. 한미는 지난 7월 30일 새 무역협정의 큰 틀에 합의했고,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다만 투자 패키지의 구성·운용, 수익 배분 등 세부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8일(현지시간) 워싱턴 실무협의도 결론 없이 끝났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일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급거 출국해 뉴욕에서 러트닉 장관 등과 접촉, 양국 간 협상 모멘텀 유지를 시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트닉 장관은 일본의 5500억 달러 대미 투자 구상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송유관 등 인프라 투자 사례, 수익 배분 구조까지 소개하며 한미도 유사 조건으로 빨리 서명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좋으면 사인해야 하는데, 이익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라며 미국 측 요구를 현재로선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이를 받지 않으면 관세를 되돌리겠다는 입장이어서 양국 간 힘겨루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도 “앞으로도 한참 더 협상해야 된다"며 난항을 예고했다. 아울러 미국의 강경 메시지는 조지아주에서 미 이민당국에 구금됐던 한국인 300여 명의 귀국 시점과 맞물려 한미 관계에 파장을 낳고 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언론에 보내온 의견에서 “이번 사태는 과거 IRA 보조금 제외 이슈보다 훨씬 심각하며, 한국은 미국에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등 안보 현안도 향후 협상 지형에 변수로 거론된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사퇴 압박 or 단순 질책’?…李대통령이 道公에 던진 돌 ‘일파만파’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한국도로공사를 강하게 비판하자 도공 안팎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경기도 지사 시절 겪어 보니 도로 청소를 안 하고 말도 잘 안들었다는 '경험담' 성격이었지만 도로공사 사장이 하필 전 정권에서 임명된 함진규 전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일각에선 여당과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기업 사장 임기를 대통령과 일치시키는 법안과 맞물려 함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14일 관가 취재를 종합하면 함 사장은 이 대통령의 공개적인 '질책'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3년의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3년 2월 도로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함 사장은 지난 6월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여전히 도로공사를 이끌고 있다. 선거로 정권이 교체된 후 이전 정부에서 선임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수장의 거취는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일부 인사들은 자진 사퇴하기도 했지만 임기를 채우기 위해 정부와 대립각에 서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건설 관련 공기업과 기관 수장들도 상당수 윤석열 정부 당시 선임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자리를 지켰다. 새 정부 출범 시기부터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면서 현재까지 100일 동안 대출을 조인 6.27 대책과 주택공급에 주안점을 둔 9.7 대책이 연달아 발표됐을 정도로 임기 초부터 국토부와 산하 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국토부 장관 인선이 늦어지고, 관련 공기업 리더십도 이전 정부에서 그대로 이어지면서 부동산 정책의 동력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김윤덕 국토부 장관 취임 후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자진 사퇴했다. 지난달 21일엔 한문희 코레일 사장이 경북 청도 철도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로써 현재 국토부 산하 4대 공기업 중 윤석열 정부가 선임한 사장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도로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로 좁혀졌다. 특히 도로공사와 인국공 사장들은 앞서 이한준 LH 사장이나 한문희 코레일 사장과도 또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이한준 사장은 정부 산하 출연기관인 국토연구원 출신이고, 한문희 사장도 코레일에서 내부 승진한 케이스다. 나름 전문성을 인정받아 '낙하산' 소리를 듣지는 않았다. 반면 함진규 도로공사 사장과 이학재 인국공 사장은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 2선과 3선 출신의 중진 의원들이다. 전문성이 없는 당시 여당 소속 전직 의원들이 '자리 나눠갖기' 차원에서 공기업 수장에 앉게 된 셈이었다. 이런 와중에 이 대통령이 지난 9일 전국적으로 생중계 되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고속도로 청소 미흡 사실을 거론했다. “도로공사가 죽어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까지 써 가면서 도로공사를 작심 비판했다. 도로공사 안팎에선 그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나오고 있다. 단순 업무 비판이나 경험담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일각에선 함 사장을 향해 물러나라는 간접적 신호를 보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도로공사가 고속도로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소홀히 한 데 대해 최고경영자인 함진규 사장이 사임 등 책임을 지라는 무언의 압박을 했다는 것이다. 함 사장이나 도로공사는 대통령의 '작심비판'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공사는 도로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함진규 사장도 임기까지 공사 사장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李대통령, 이억원 금융위원장·주병기 공정위원장 임명안 재가

이재명 대통령이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임명안을 재가했다. 13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 위원장과 주 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재송부 요청 마감일(11일)이 지나도 송부되지 않아 이 대통령이 어제 임명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에 대한 인사청문 기간은 지난 8일로 종료됐다. 그러나 국회는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고, 이에 이 대통령은 11일까지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국회에 재차 요청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대통령은 기한 내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경우 10일 이내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고, 국회가 여기에도 응하지 않으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앞서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보고서 재송부 요청 마감일이었던 11일 브리핑에서 “두 후보자는 청문회를 통해 소관 분야에서의 자질과 역량을 충분히 검증받았다"며 “국정 공백을 우려한 정부가 (보고서의) 채택과 송부를 재차 요청했는데도 (국회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김정은 “9차 당대회서 핵무력·상용무력 병진정책 제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년 열릴 제9차 당대회에서 핵무력과 상용무력(재래식 무기) 병진정책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11·12일 국방과학원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전자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1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땅크(탱크)설계국의 합동 연구로 완성된 중요 핵심기술 개발 경과를 청취했다. 또 특수복합장갑 개발 실태와 “최종 도입 전 시험 공정"에 있는 지능형 능동방호종합체의 반응 시험, 효과적인 상부 공격 방어 구조물의 설계 방안을 비롯한 장갑방어 부문의 연구 실태를 파악했다. 김 위원장은 “지향성 적외선 및 전파교란장비와 능동 방호 종합체, 피동 방호 수단들이 성과적으로 개발 도입됨으로써 우리 장갑무력의 전투력은 비상히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당 제9차 대회는 국방건설 분야에서 핵무력과 상용무력 병진정책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국방과학원이 당의 강군 건설 로선을 높이 받들고 상용무력을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계속 기치를 들고나갈 데 대한 믿음"을 표시했다고 통신은 밝혔다. 이번 시찰에서는 각종 반탱크 미사일 실탄 사격에 의한 정면 및 측면, 상부 공격에 대응하는 신형 능동 방호 체계의 종합 가동시험도 진행됐다. 통신은 시험을 통해 “탐지 체계와 회전식 요격탄 발사기들의 반응성이 대단히 높으며 새로 개발된 능동 방호 체계가 매우 우월하다는 것이 실천적으로 검증되였다"고 자평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비행하는 대전차 무기 모의표적을 명중해 폭파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담겼다. 실제 전차의 외형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지능형 능동방호체계를 갖춘 신형 탱크 개발 현장을 찾은 것은 지난 5월 '중요 탱크 공장' 시찰에 이어 넉달 만이다. 전차의 능동방호체계는 적의 대전차 무기가 접근할 때 자동으로 반응해 요격하는 체계를 뜻한다. 당시 김 위원장은 최신 탱크와 장갑차로 교체하는 것은 “무력 건설과 육군 현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평양지구 제38훈련기지를 찾아 수도경비사령부 관하 저격수 구분대와 중앙안전기관 특별기동대 저격수 구분대 간 사격 경기를 참관했다. 김 위원장은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에게 “우리 무력의 전망적인 저격수 역량 양성 규모와 전군적인 저격수 편제 방안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관련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또, “현대전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훈련 방법과 혁신적인 교육 및 훈련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저격수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이 우리 군대의 군사활동전반에 주는 영향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전문 저격수 력량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그 활동을 적극화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저격수 경기에는 리영길을 비롯해 노광철 국방상,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리정철 총참모부 부처장이 수행했다.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전자무기연구소 시찰에는 김정식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특수작전부대를 대규모로 파병한 후 특수작전부대 훈련 현장을 수시로 찾아 재래식 무장 현대화와 실전 훈련 및 전투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말에도 저격 훈련을 참관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영주·봉화·영양 주민 만난 임종득 의원 “작은 민원도 정책에 반영”

경북 영주·봉화·영양 주민들의 생활 민원을 직접 챙기고 나선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영주·영양·봉화)이 '민원의 날'을 정례화하며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장에서 접수된 의견은 지방의회와 협력해 즉시 대응하는 한편, 제도 개선이나 예산 확보가 필요한 사안은 국회 차원에서 의정활동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임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주, 봉화, 영양 지역사무소에서 '민원의 날'을 열고 지역 주민들과 직접 만났다. 매월 둘째주 토요일마다 정례적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을 위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도로·교통 문제와 복지·환경 개선 요구, 행정 처리 지연 등 생활 민원이 접수됐다. 농촌 고령화 대책과 청년 정착 지원,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 같은 정책 건의도 이어졌다. 주민들은 “정례 운영을 통해 현실적인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민원 상담에는 시·도의원, 군의원, 국회 보좌진도 함께 참여해 즉각 해결이 어려운 사안까지 기록·관리했으며, 임 의원은 직접 처리 과정을 확인하고 민원인과 통화해 결과를 공유할 계획이다. 임 의원은 “주민 한 분, 한 분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고 경청해 반드시 의정활동에 반영하겠다"며 “생활 민원은 지방의원과 협력해 신속히 대응하고, 제도 개선이나 예산 확보가 필요한 사안은 국회 차원에서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원의 날을 정례적인 소통 창구로 운영해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현장 정치, 책임 있는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찾아가는 정책간담회'를 열어 마을과 단체를 직접 찾아 주민과 기업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정책 설계와 예산 반영 과정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야당탄압 규탄” 국힘 대규모 집회…국회서 용산까지 장외 압박

더불어민주당이 합의를 파기하고 3대 특검법 개정안을 사실상 원안대로 처리한 데 반발해, 국민의힘이 12일 국회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야당탄압 독재정치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당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는 약 5천명(당 추산)이 참석했다. 참석한 국회의원과 당원들은 '야당탄압 독재정치 정치보복 규탄한다', '야당 말살 특검 악법 대통령은 거부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장동혁 대표는 전날에 이어 '삼통 분립론'을 다시 꺼내 들며 배후로 '개딸'을 지목했다. 장 대표는 “용산의 대통령 이재명, 여의도 대통령 정청래, 충정로 대통령 김어준. 그러나 대한민국에 보이지 않는 대통령은 개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의 한국인 구금 사태를 언급하며 “국민 손발이 묶여도 말 한마디 못 하면서 안에선 정치보복의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면서 “밖에 나가서 신나게 얻어터지고 집에 돌아와 가족에게 식칼을 휘두르는 꼴이다.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3대 특검법 수정 합의 파기와 관련해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겨냥, “참으로 몰염치한 사람"이라며 “강성 당원이 반대한다고 약속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엎는 당 대표를 인정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는 '우파 연대론'도 제기됐다. 임이자 의원은 “우리도 뺄셈 정치는 그만하자. 전광훈 목사가 극우라고, 전한길 강사가 더 나갔다고, 이준석이 결이 다르다고 뺄셈 정치하면 진다. 이제 곱셈 정치하자"며 “작은 차이는 극복해서 함께 뭉쳐서 싸우자"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국회 규탄대회는 지난 4일 특검의 원내대표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시도에 항의해 같은 장소에서 열었던 집회 이후 8일 만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규탄대회 직후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이동해 '정치보복 불법 특검 규탄대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신간] 유대인은 왜?...유대주의를 버린 유대인들의 비극

“유대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 시온주의의 발명품이다." 유대주의 전문가인 쉴로모 산드의 이 선언은 『유대인은 왜? ― 유대주의를 버린 유대인들의 비극』을 내내 관통한다. 이 문장을 따라 책을 읽어가다 보면,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신화로 구성되고, 권력의 손에 쥐어진 무기로 변해왔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직면하게 된다. “유대인은 왜?"라는 물음은 결코 유대인을 향한 혐오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유대인의 이름을 빌려 권력을 정당화하고 폭력을 은폐해온 언어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반복적으로 소비해온 세계를 향한 물음이다. 박해와 신화의 기원 1부는 유대인의 박해사(史)를 다룬다. 소피 베시는 「2,000년의 고독」이라는 글에서 고대 로마 및 이집트의 유대인 추방, 중세 기독교의 '예수를 죽인 민족' 낙인, 근대 인종주의의 '과학적' 차별, 나치의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긴 박해의 궤적을 묘사한다. 유대인은 언제나 '타자의 타자'였다. 그러나 베시는 피해의 연속선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그는 오스만 제국과 마그레브에서 유대 공동체가 차지했던 사회적·문화적 기여를 상기시키며, 반 유대주의가 단일하고 보편적인 역사라는 통념에 균열을 낸다. 폴 헤인브링크는 '유대-볼셰비즘 신화'를 추적한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대인을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는 음모론은 극우 정치의 주된 무기였다. 이 신화는 단순한 오해나 편견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재생산된 정치적 장치였다. 냉전기 반공주의와 신나치즘, 극우 포퓰리즘 속에서 신화는 옷을 갈아입으며 살아남았다. 오늘날 인터넷 공간에서 가짜뉴스와 혐오 담론으로 되살아나는 장면은, 과거의 괴물이 현재에도 계속 숨을 쉬고 있음을 입증한다. 신화로 세운 국가, 이스라엘의 그림자 2부는 시온주의와 이스라엘 국가를 정면으로 다룬다. 쉴로모 산드는 '유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근대 시온주의의 발명품임을 논증한다. 민족이라는 허구가 어떻게 정치적 정체성으로 굳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글은, 민족주의 비판의 전범이 된다. 이드잇 제르탈은 홀로코스트 기억이 어떻게 정치적 면죄부로 변질되었는지를 드러낸다. 희생자의 기억은 성찰과 애도의 자리가 아니라, 현재의 점령과 폭력을 합리화하는 무기로 전도되었다. 제르탈의 글은 '기억의 정치'가 어떻게 도덕적 권위를 잃고 권력의 기술로 전락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국 런던대 교수인 질베르 아슈카르는 가자지구에서 반복되는 폭격과 학살을 예로 들며, 서구 자유주의 사회의 위선을 고발한다. 그는 “이스라엘 비판은 곧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이 어떻게 국제정치의 상식을 뒤틀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유럽의 정치적 침묵과 미국의 전략적 동맹이 어떤 파국을 초래하는지 증언한다. 현재의 정치적 현실은? 3부는 현재의 정치적 현실을 집중 조명한다. 세르주 알리미는 “진실을 말하면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기술"을 분석한다.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이 이스라엘 비판을 이유로 정치적 중상과 배제의 대상이 된 사례는, 비판적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구조를 극명히 보여준다. 피에르 랭베르는 언론의 역할을 파헤친다. 언론은 '반유대주의'라는 도덕적 낙인을 증폭시켜, 비판의 언어를 위험한 발언으로 몰아간다. 공론장은 봉쇄되고, 권력은 안전해진다. 아녜스 칼라마르는 표현의 자유와 혐오 발언 규제의 긴장을 논한다. '보호'라는 명분이 어떻게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변질되는지, 그는 국제 인권의 언어로 경고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글은 실비 로랑의 「흑인과 팔레스타인의 거울」이다. 그는 앤젤라 데이비스, 말콤 X, 제임스 볼드윈, 휴이 뉴턴 등 흑인 지식인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발언을 불러내며, 억압받는 집단 간의 공명을 보여준다. 시카고 래퍼 빅 멘사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거울 속 내 모습을 본다"고 말했을 때, 독자는 억압받는 자들이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순간의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편집 책임자 그레고리 르젭스키는 서문에서 유럽 극우 정치인들이 이스라엘 우파와 손을 잡는 기묘한 풍경을 포착한다. “그들이 반유대주의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편이다." 이 냉소적 언명은 오늘날 권력의 언어가 얼마나 기묘하고도 위험하게 작동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의 편집자 성일권은 “유대인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 유대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을 정치적으로 도구화해온 세계를 겨냥한다. 『유대인은 왜?』는 단순한 시사 기획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심연을 가로지르며 현재의 정치적 위선을 꿰뚫는 지적 고발장이자, 동시에 윤리적 분별을 회복하라는 호소문이다. 이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그 불편은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라 사유를 촉발하는 불편함이다. 책을 덮는 순간, “유대인은 왜?"라는 물음은 “우리는 왜?"라는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왜 타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왜 증오를 정치의 도구로 삼는가. 김병헌 기자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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