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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韓 증시 ‘기피’, 정치권이 키운다

“비트코인이나 미국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세요. 국내 주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최근 한 투자은행(IB) 전문가가 한 말이다. 이는 처음 듣는 말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많은 이들이 흔하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언제 들어도 마음 아픈 말이 아닐까 싶다. 새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로 코스피지수가 2500선을 돌파하며 유의미한 반등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증시에 대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흐름이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뒤따른다. 그나마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은 약간의 호재가 발생하면 “중장기적인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부연한다. 지수가 역사적 저점에 닿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내 증시는 지난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에 따른 관세 부담 우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발생한 정치리스크 등으로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다. 증시 반등을 위해 우선 해결돼야 할 문제는 계엄발(發) 정치리스크 해소다.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안정감을 심어주는 게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낮았던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정치리스크로 더 낮아졌다. JP모건은 최근 한국 성장률을 1.7%에서 1.3%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내수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정치·정책 불확실성으로 급락하는 등 내수 부문이 취약한 상황인데, 당분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곧 현실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관세 부과 정책을 대비하기 위해 정치권의 단합이 중요하다. 외부적으로 미국과 협상을 도모하는 것과 동시에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것이다.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서로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리스크를 키울 때가 아니란 의미다. 미국의 강력한 자국 보호 무역주의로 우리 기업이 마주하게 될 환경은 매우 가혹할 것으로 예고됐다. 특히 수출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는 '2025년 글로벌 통상환경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은 우리나라 기업에게 험난한 풍파(Storm)와 같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한국 주식도 투자 매력이 상당하다'는 말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를 바라본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데스크칼럼] 미-중 ‘희토류戰’ 임박, 한국은 대비하고 있나

전 세계가, 특히 힘이 센 나라일 수록 이 광물을 확보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바로 희토류이다.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란 주기율표 제 3A족인 스칸듐(Sc, 원자번호 21), 이트륨(Y, 39)과 원자번호 57 (란타늄)에서 71(루테튬)까지의 란탄계열 원소 15개를 더한 17개의 원소를 총칭한다. 희토류는 주로 첨단산업에 사용되는데 아주 적게만 사용해도 월등히 높은 성능효과를 얻을 수 있어 마법의 광물로도 불린다. 예를 들어 전기차의 필수부품인 배터리와 모터에는 모두 희토류가 사용된다. 특히 모터의 핵심부품인 영구자석에는 희토류의 한 종류인 네오디뮴(Nd)이 사용되는데 일반 자석과는 확연한 성능 차이를 발휘한다. 네오디늄만 보더라도 현재 전기차 침투율이 채 20%가 안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양의 네오디늄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최근 희토류가 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오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무력을 써서라도 자국으로 편입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혀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놨다. 그린란드는 러시아와 가깝고 많은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어 전략적 가치가 높지만, 트럼프가 진짜로 노리는 것은 많은 양의 희토류 매장량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나라별 희토류 매장량 순위를 보면 중국 4400만톤, 베트남 2200만톤, 브라질 2100만톤, 러시아 1000만톤, 인도 690만톤, 호주 570만톤, 미국 180만톤이며, 그 다음 8번째로 그린란드 150만톤이다. 전 세계 총 매장량은 총 1억1000만톤이다. 매장량만 보면 각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미국이 그리 안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실제 생산량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23년 기준 나라별 생산량은 총 35만톤 가운데 중국이 24만톤으로 68.6%를 차지했고, 이어 미국 4만3000톤, 미얀마 3만8000톤, 호주 1만8000톤, 태국 7100톤, 인도 2900톤 등이다. 희토류 생산비중이 중국으로 쏠린 이유는 가공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황산이 사용되는데, 황산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중국은 환경오염을 무릅쓰고 값싸고 고품질의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자원무기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그린란드를 희토류 생산기지로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희토류 자원무기 파괴력은 엄청나다. 지난 2010년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두고 영토분쟁을 벌일 때, 중국이 꺼낸 회심의 카드가 희토류 수출 중단이었다. 이 카드를 꺼내자 일본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고, 지금까지 그곳의 영토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이 1기 집권때처럼 중국과 또 다시 무역전쟁을 일으키려고 시동을 걸자 중국이 다시 희토류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중국 상무부는 미국에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과 무기에 사용되는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흑연, 초경질 소재(Superhard Material)의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종의 경고성 사격이다. 트럼프가 실제로 대중 무역전쟁을 벌인다면 중국이 내놓을 회심의 카드는 희토류 수출 중단이 될 게 뻔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희토류 전쟁은 두 나라를 최대 무역국가로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줄 수 있다. 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3년 희토류(반제품 또는 완제품) 수입량 309만톤 가운데 중국 수입량은 193만톤으로 62.5%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희토류 전쟁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전혀 충분치 못한 상태다. 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3년 희토류(반제품 또는 완제품) 수입량 309만톤 가운데 중국 수입량은 193만톤으로 62.5%를 차지했다. 희토류 자체 생산량도 없다. 우리나라는 희토류 4개 광산에서 4700만톤의 매장량을 갖고 있지만 모두 폐광 상태다. 광해광업공단이 희토류 해외 확보 목적으로 중국의 희토류 생산법인 지분을 갖고 있지만, 현재 이 법인은 사실상 폐업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희토류를 핵심광물로 지정하고 수급 위기 사태에 대비해 광해광업공단을 통해 비축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심각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자원무기화 동향을 꼼꼼히 체크하고 그에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야 할 광해광업공단의 수장이 몇 달째 공석이다. 최종후보 3인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올라 간 만큼 신속히 임명이 이뤄져 대비책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자의 눈] 조선업계 슈퍼 사이클, 이번이 마지막 기회

최근 오랜 불황의 파고를 넘어선 조선업계가 모처럼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동반 흑자를 달성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국내 대형 조선 3사가 지난해 3분기 일제히 흑자를 달성했다. 최근 각 조선사의 일감이 3년치가 쌓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지난해 4분기에도 동반 흑자가 예상된다. 지난해 연간으로 본다면 13년 만에 나란히 3사가 모두 흑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최근 조선업계가 슈퍼 사이클(초호황)에 돌입한 영향이다. 선주가 주문을 해야 일거리가 발생하는 산업의 특성상 조선업은 선박 교체 주기에 맞춰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손꼽힌다. 선박 교체 주기가 몰려 한꺼번에 일감이 쏟아지는 시기를 슈퍼 사이클이라고 불러왔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 산업이 세 번째 슈퍼 사이클에 돌입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첫 번째 슈퍼 사이클은 1963~1973년 동안이었고 두 번째는 2002~2007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슈퍼 사이클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이 언제 찾아올지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여러 관측들이 나온다. 다만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조선 산업에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0~20년 이후에는 중국에 추월당해 국내 조선사를 찾는 선주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예상이다. 이 같은 예상이 나오는 이유는 지금도 국내 조선 산업을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차 슈퍼 사이클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 조선사는 국내 빅 3의 그림자도 밟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실제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가 지난해 9월 20일 기준으로 집계한 글로벌 수주 잔고를 살펴보면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 잔고를 살펴보면 중국 조선사가 70%를 차지했으나 국내 조선사는 25%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지난 2011년 국내 조선사는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75%를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3년 만에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오랜 기간 동안 불황에 시달려온 조선사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슈퍼 사이클 기간만큼은 시름을 잊고 샴페인을 터트려보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 조선사가 가격 경쟁력이라는 뚜렷한 강점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세 번째 슈퍼 사이클이 끝나는 직후 국내 조선사의 일감이 크게 줄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국내 조선 산업이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을 맞이할 때까지 생존하고 지금의 위상을 지켜내려면 더 이상 중국이 쫓아올 수 없을 만큼 기술력과 경쟁력을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EE칼럼] 위험이 있는 곳에 규제가 있어야 ...과학적 원자력 규제 체계가 시급하다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요즘 미국도 대통령이 바뀌는 시기가 되니 부동산 규제를 이렇게 바꾸자, IT기업 규제를 저렇게 바꾼다 하는 뉴스가 자주 보인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하는 일에는 언제나 규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와 안전에 해를 끼치는 일을 누군가가 도모한다면 이를 규제하여야만 구성원의 안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매우 강력한 규제가 항상 좋은 것일까? 아무도 새로운 일을 도모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저 해 왔던 대로 반복할 뿐이니 특별한 규제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규제가 너무나 강력해도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지 않는 거세된 사회를 만들어 내게 된다. 강력한 종교적 규제 하에 있던 유럽의 중세시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사회 내에서 새로운 시도가 벌어지고 발전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발전과 규제는 서로 쌍을 이루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규제를 통해 발전의 방향을 정하고 그 속도를 조절하고 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 구성원간에 합의된 약속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어떤 규제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야 그 사회에 가장 좋은 것인지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된 규제가 가장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 잘 사용하였을 때의 유익이 대단히 커서 우리나라 같은 산업국가의 토대가 되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해 주지만, 안전관리에 실패하게 되면 재난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두 지점 사이에서 그야말로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운 문제가 되어 버린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에 이은 전문적 실행규칙 합의도 필요하게 된다. “원자력을 안전하게 이용한다"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을 경우, 얼마만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며 어떻게 이것을 검증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전문적인 규제 프레임이다. 원자력안전법 제1장 1조에서 “이 법은 원자력의 연구ㆍ개발ㆍ생산ㆍ이용 등에 따른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방사선에 의한 재해의 방지와 공공의 안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어서, 원자력이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안전'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법과 그 하위 법령들이 그 규제의 실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기존에 건설하고 운영해 오던 원자로형에 대해서는 상세한 규제 지침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어떤 상황이 생길지를 모두 미리 정의해 둘 수가 없는 것이니, 기존 원전에 대해서조차 지침서만 가지고 실제 규제를 다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최신형 원전일수록 매우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고안된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도 어렵다.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였다고 하자. 그때 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인한 건강 손실 가능성이 그 단층촬영을 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유익함을 초과한다면 어떤 의사도 그 촬영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예는 노출되는 방사선량이 명확하고 그 유익과 불익이 명확하여 상대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쉬운 경우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우에는 분석이 훨씬 복잡하다. 심각한 사고가 나서는 안된다는 대전제하에서 설계한 플랜트이므로, 처음부터 2중 3중의 안전 방벽을 가지게 설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의 비상대응 시스템도 마련해 두고 있다. 엄격히 교육된 경험많은 운전팀이 최고 신뢰도의 설비를 가지고 검사에 검사를 거듭하면서 운영을 한다. 얼듯 보기에는 완벽해 보인다. 위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실로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러한 플랜트의 위험도(리스크)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전문성과 과학적 지식을 집대성하여 리스크를 분석한 후, 위험이 큰 곳에 규제가 집중되어야 한다. 위험이 없는 곳에는 규제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규정집에 의존한 규제는 그 규정집이 대상으로 삼은 플랜트가 대상으로 삼은 상황에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특정 상황에만 유효한 규제를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려고 하면 당연히 맞지가 않게 되고, 규제의 목적이었던 '안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구현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는 위험도에 기반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에 대해 수백명의 전문가가 공개적으로 검증하여, 거기서 도출된 위험요소에 대해 위험의 정도에 상응하는 규제 행위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지금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리스크정보활용 규제 체제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전문가들 가운데 이 과학적인 체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94년에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구 탓인지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문화에서는 규제결정자가 규정집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이면 모든 가능한 경우에 대해 규정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원자력 규제는 지금 매우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책임추궁 문화와 규정집기반 규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프레임을 빨리 버리고 과학과 시스템에 기반한 규제로 옮겨가야 사회적 합의를 뒷받침하는 진정한 규제가 될 것이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기자의 눈] AI 지속가능성 실현하려면 ‘복제’는 안 된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속 우주비행사 캐릭터 버즈 라이트이어의 명대사다. 찬란한 비행을 꿈꾸며 한계를 극복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울림을 줬다. 지난해 산업 현장을 취재하며 버즈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공지능(AI)이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미지의 세계로 항해하는 그의 도전정신이 일견 닮아서다. 공상과학 소설의 결말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AI는 운신의 폭을 계속 넓히며 산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 기업부터 중견·중소기업까지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혁신 방향을 찾기 분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별다줄(별 걸 다 줄인다)'이란 신조어처럼 '별 거에 AI를 접목하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최신 기술로 중무장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 대표들은 세일즈를 자처하며 판로 뚫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한 통신사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AI 투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도태되면 죽는다'는 압박이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확보에 대한 현장 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연함이 무색하게 현재까지 선보인 AI 서비스 기능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대화 요약, 질의응답, 통역, 보이스피싱 차단 등 주요 구성은 사실상 동일해 소비자 입장에서 느끼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아직 초기 단계임을 감안하더라도 기업의 정체성이 담긴 AI 기능은 현재로썬 찾기 힘들다. 한 마디로 눈에 '확' 띌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AI가 없다는 의미다. AI 발전의 토대가 돼야 할 법적 가이드라인의 부재가 길었던 점이 주효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요 정책 방향과 전문인력 양성 등이 담긴 AI 기본법은 최근에서야 국회 문턱을 넘었다. 보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각계 의견을 효과적으로 모으고, 국내 시장 여건과 해외 동향을 종합 고려해 강력한 법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기업 역시 '한탕주의'에 젖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작금의 AI 투자 양상을 보면 본업이 뒷전으로 밀릴 만큼 기술 개발에 치우쳐지거나, 사업 방향성이 부실한 경우가 적잖다. '남들이 다 하니까' 섣불리 뛰어드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물론 수많은 실패작 가운데서 새로운 기술 모멘텀을 발굴할 수도 있지만,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AI 서비스가 무한 증식된다면 대중은 금세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이는 곧 발전이 정체되는 현상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득 기술 등장 초창기 밀물처럼 들이닥쳤다가 엔데믹 직후 썰물처럼 빠져나간 메타버스를 떠올려본다. 어쩌면 첨단 기술이 무한한 공간 너머로 진출하는 걸 방해하는 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이슈&인사이트] 현직 대통령 체포소동

2024년의 마지막은 12·3 비상계엄으로 엉망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번의 투표 끝에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다. 대통령을 지키는 것은 곧 이 나라 보수세력의 궤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위기의식은 친윤이나 비윤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스스로 수사든 탄핵이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선언했던 윤 대통령이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윤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나빠져야 하는데, 오히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소위 태극기 부대에 젊은 사람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시간이 지나면서 비상계엄으로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그 원인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바탕으로 밀어부친 탄핵소추 중 단 한 건도 인용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나 방통위 등 정부 무력화를 위한 정략적 탄핵을 일삼았다. 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사들과 감사원장의 탄핵을 감행했고, 급기야 자신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고도 모자라 최상목 권한대행을 고발했고, 대통령 권한 대·대·대행마저도 탄핵하겠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로 크게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죄를 적시했다. 윤 대통령을 내란수괴로 낙인찍고, 자신들의 입장에 반대하는 의원이나 국무위원은 모두 내란동조 세력으로 몰아부쳤다. 탄핵된 대통령도 비록 직무는 정지되지만 엄연히 현직 대통령임에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헌재 탄핵심판 준비과정에서 내란죄를 탄핵소추 이유에서 철회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국회측 변호인의 입에서 '헌재의 권유에 따라서'라고 밝히면서 말이다. 국회 탄핵소추의 이유를 보면 비상계엄은 내란의 수단이고, 탄핵의 핵심 이유는 내란죄다. 그런데 탄핵이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한다면 그 소추가 정당할까. 더욱이 '헌재의 권유에 따라' 탄핵사유에서 철회한다니... 헌재는 극구 부인했지만 국회측 변호인 주장은 헌재의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불신을 자극했다. 탄핵돼도 그 절차는 반드시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대통령 만들기에 눈이 멀어 헌재의 심판을 빠르게 진행하는데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재판은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탄핵심판은 가장 빠르게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어르신 중심의 태극기 집회에 최근 젊은이들이 함께하기 시작한 근본 이유다. 공수처를 둘러싼 수사기관의 불법성 의혹도 문제다. 계엄사태 초기, 검찰·경찰·공수처가 수사권을 놓고 경쟁하다가 공수처가 사건을 이관받았다. 공수처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수사권을 행사하게 됐는데, 민주당이 윤 대통령을 내란수괴로 단정하면서 내란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해졌다. 내란죄의 수사권은 경찰만 가지고 있다. 공수처는 직권남용 수사에 연계된 사건이므로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은 내란과 외환의 죄 외에는 소추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직권남용 수사의 연관사건으로 내란죄를 수사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공수처는 관할권이 있는 중앙지법이 아니라 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는데, 이것도 영장쇼핑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끝으로 현직 대통령을 꼭 체포할 이유가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공수처는 대통령이 거듭되는 수사 요청에 응하지 않아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민주당은 당장 체포하라고 아우성이다. 수사권 문제와 함께 현직 대통령이 도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증거도 이미 차고 넘친다면서 탄핵심판을 앞둔 현직 대통령을 '반드시' 체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언뜻 보면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체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현직 대통령 망신주기 외에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현직 대통령 체포과정으로 유발되는 국격 실추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에는 관심이 없다. 세계 3대 투자가 중 하나인 짐 로저스는 한국을 앞으로 10년 내 쇠락할 나라로 꼽았다. 많은 이유 중 정치가 가장 큰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 기회에 정치를 바로잡지 않으면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은 인도나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 돈 벌러 가야 할지 모른다. 극한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필연이다. 홍성걸

[EE칼럼] 희망찬 2025년, 전력산업의 발전을 기대한다.

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제1차 산업혁명은 석탄 시대를 열었고, 내연기관의 발명과 석유화학 기술의 발전은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3차 산업혁명을 거쳐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빅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 등을 토대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미래 에너지는 무엇일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작년 10월 세계에너지전망(World Energy Outlook) 보고서를 통해 곧 “전기의 시대(Age of Electricity)"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전기 사용량은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 보다 2배나 빠르게 증가하였고, 전기자동차, 에어컨, 인공지능 등의 확산에 따라 2035년까지 현재보다 6배 더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또한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절반 이상은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전력량은 1990년 2,202 kWh에 그쳤던 것이 30년이 지난 2022년에는 10,652 kWh로 급증하였다. 이에 따라 총 발전량은 1990년 118.5 TWh에서 2022년에는 591.8 TWh로 약 5배 증가하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3 장기에너지전망"에 따르면 2050년에는 총 발전량이 759.4 T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특히, 냉방을 위한 전기 수요 증가와 함께 전기차가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면서 전기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신문사가 새해를 맞이하여 ChatGPT에게 한국 전력산업 전망에 대해 물어본 결과가 흥미롭다. “전력시장은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 확대, 스마트 그리드 및 ESS 기술의 발전, 전력 수요의 증가 등으로 인한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동시에 전력 가격의 변동성 증가와 민간 기업의 시장 참여 확대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전력시장의 디지털화와 효율성 증대가 이뤄지면서 전력 시장의 경쟁과 변화는 지속적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전력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2025년은 글로벌 경기둔화, 지정학적 갈등 확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등으로 더 큰 도전과 변화의 해가 될 것이며, 국내에서는 지역별 차등요금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선정 등 전력생태계 개편이 급물살을 탈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인공지능의 전망과 한국전력사장 메시지의 공통점은 “변화"다. 증가하는 전력 소비를 기존의 화석에너지발전으로부터 무탄소전원으로 전환하여 전력부문의 탈탄소화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 외에도 생산된 전력을 적재적소에 보내고 스마트한 전력소비를 위한 새로운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구축과 전기저장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현재 전력시스템은 극심한 이상기후 현상과 사이버 테러 위험 등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전력시스템의 복원력과 디지털(사이버)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태양광과 풍력, 차세대 전력망, 에너지저장기술과 같은 분야에서의 혁신은 전력산업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열쇠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 몇 년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정치적 쟁점사안이 되어 갈등만 커지면서 서로의 장점 보다는 단점만 부각되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였다. 또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에너지 공급망의 변화는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전력산업의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모두를 아우르는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빠르게 진화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전력산업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4차 산업혁명과 전력산업의 변화 전망" 보고서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 기술을 전력산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며, 신규 사업자들이 전력시장 및 산업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가 없이는 발전이 있을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물론 변화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전은 언제나 가능성을 품고 있다. 2025년은 전력산업의 탈탄소화를 비롯하여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여부를 시험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불신과 분열을 걷어내고 새로운 전력산업의 미래를 열어가는 힘찬 2025년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조용성

[기자의 눈] 다가온 ‘트럼프 2.0’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그의 공약대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보편 관세 부과 등이 실현된다면 한국 산업계는 큰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트럼프를 찾아가 한국 산업의 역량을 어필하고 그간의 우호적이었던 관계들을 잘 설명해 조금이라도 우리 기업들에 유리한 쪽으로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로를 끌어내리고 비판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다. 트럼프 취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스탠스로 협상에 임할 것인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여전히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유세 때부터 강력한 '관세정책'을 내세웠다. 그는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매기고 이외 모든 수입국엔 10~20% 보편관세를 매길 방침이다. 또 미국 우회수출 기지인 멕시코산 자동차에는 1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의 강세로 미국 산업에 타격이 전망되자 강력한 보호주의로 자국 산업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트럼프는 전기차도 싫어한다. 그는 “전기차는 사기"라고 언급할 정도로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인 인물이다. 이에 그는 바이든 정권이 작품인 IRA 폐지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외의 다른 변수도 많지만 이 두 가지 성향만 보더라도 한국 산업계 특히 자동차, 배터리 업계엔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이나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기존 제공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사라지고, 원래 없었던 관세가 부과된다면 매출과 비용에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서야 할 곳은 정부다.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불안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이를 잠재울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판을 바라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올해는 '불확실성의 해'라고 긴장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대통령 체포하기에 혈안돼 국외 사정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갈등은 잠시 미뤄두고 국가의 미래와 기업의 먹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자세를 보이길 촉구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이슈&인사이트]12.3 쿠데타와 중앙선관위 습격

한 달 전 전대미문의 괴이한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이상한 움직임이 주목을 모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선포 직후, 국회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병력이 집결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윤삭열 대통령이 12일 티브이 담화에서 “작년 하반기 선관위를 비롯한 헌법기관들과 정부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다. 국정원이 이를 발견하고 정보 유출과 전산시스템 안전성을 점검하고자 했지만, 선관위는 완강히 거부"했고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됐는지 알 수 없어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라는 말로 밝혀졌다. 비상계엄의 이유가 엉뚱하게 야당에 대한 경고용이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려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이 담화가 나온 날 바로 국회의 요청에 따라 보고를 진행했다. 국정원은 “과거 선관위 직원의 e메일을 해킹해 대외비를 포함한 일부 업무자료가 유출되는 등 선관위의 보안 시스템이 다른 기관보다 취약하다고 판단했을 뿐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라고 공개했다. 한마디로 국정원은 비상계엄의 구실로 여겨지는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한 전말은 2023년 10월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에 나온다. 2023년 7-9월에 국정원이 선관위와 한국인터넷진흥원 합동으로 선관위 해킹설이 맞는지 아닌지 선관위 정보보안시스템에 대한 보안 컨설팅을 실시한 결과이다. 회의록에는 선관위가 국정원의 해킹시도를 정상적으로 잘 막아냈더니 국정원이 점검을 위해 보안시스템을 다 풀어주라고 요청해서 이에 따라주고 점검하게 했더니 그때에야 국정원이 해킹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국정원이 국회에서 이번에 다시 보고한 취지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애초에 국정원이건 국정원 할아버지건 선관위 전산망을 해킹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선관위 내부망과 일반 인터넷망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정한 과학기술을 무시하고 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시초는 대표적으로 2020년 국회의원선거 때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내용이다. 민경욱 전 의원은 “성명불상의 특정인이 투표 단계에서 서버 등을 통해 사전투표 수를 부풀린 뒤 위조된 사전투표지를 다량 제조해 투입하고, 투표지 분류기와 서버 등을 통해 개표 결과를 조작하는 등 선거 과정 전반에 걸쳐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 종합법률정보에 따르면 민경욱 전 의원이 “이 사건 선거에서 위조 투표지의 투입·전산조작 등의 중대한 범죄행위가 대규모로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행위 주체의 존부 및 방법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채 외견상 정상적이지 않은 듯한 투표지가 일부 보인다는 등의 의혹 제기만으로 증명책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대법원은 1) 사전투표 단계에서 부정한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 2) 특별사전투표소의 운영 등이 위법하다는 주장, 3) 사전투표용지 발급 방식으로 다량의 위조투표지 제조가 용이해졌다는 주장, 4) 사전투표용지에 사용된 QR코드 관련 주장, 5) 사전투표의 통계 수치상 사전투표 조작이 추정된다는 주장, 6) 사전투표 수가 과다하다는 주장, 7) 관외사전투표지의 배송 과정에서 위조된 투표지가 혼입되었다는 주장, 8) 투표함 봉인지에 관한 주장, 9) 투표지 위조 주장 등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에서 진 사람이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하는 사례는 많이 봤지만 자신이 대통령선거에서 똑같은 투표 관리시스템을 통해 당선되어 놓고선 총선에서 졌다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2020년 대선에서 진 뒤 부정선거를 제기하고 의회까지 점거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024년에 승리한 뒤에는 부정선거를 입에도 올리지 않는다. 이를 접어두고라도 일부 유튜버가 제기하는 부정선거 의혹을 그대로 믿고 계엄까지 선포하여 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내고 직원들을 대거 잡아들이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격이 없는 대통령이었는지 탄식이 나온다. 이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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