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EE칼럼] 우리 원전, 불가리아, 루마니아 찍고 체코로

지난해는 우리 원전 산업계에 가능성의 한 해였다. 탈원전 광풍에 휘청였던 우리 원전 산업계가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현대건설이 10조 원 규모의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건설사업을, 12월 한국수력원자력이 1.2조 원 규모의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개선 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작년 7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을 필두로 한 팀 코리아가 최대 24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우리 원전 산업의 경쟁력 핵심은 건설 공기와 예산에 맞춰 원전을 건설하는 시공 능력이다. 그런데 이는 온전한 원전 산업 생태계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작년 12월 갑작스러운 탄핵 정국에 탈원전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한 원전 산업계는 또다시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원자력 전공 기피 현상이 벌어진 대학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핵심 축인 원전의 안전 운영에도 결코 도움이 되질 않는다. 2025년 새해에도 우리 원전이 안정적 전력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체코를 비롯해 더 많은 나라에 수출되기 위해서는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의 완전한 정상화와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와 여야는 다음 3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원전을 더 이상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탈원전 그리고 탈탈원전. 정권에 따라 우리 원전 산업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러다 보니 우리 원전 기업들은 미래 예측을 하기 어렵게 됐다. 중장기 투자도 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선진 기술개발과 우수 인력 확보는 언감생심이 됐다. 우리 원전 산업의 미래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인 것이다. 이는 국가 경제에도 치명적 타격이다. 원전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 원전 산업의 미래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원전은 우리 경제와 산업의 근간이고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 원전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서도 그렇다. 더 이상 원전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상징적 조치로, 여야가 합의하여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 등을 제정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 봐야 한다. 둘째, 원전의 지속 이용을 지원하기 위한 핵연료 주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원전 운영을 위해서는 핵연료의 안정적 수급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및 처분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신규 원전 수요 증가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으로 세계 우라늄 시장이 요동쳤다. 우라늄 가격이 급등하고, 우라늄 공급부족이 만성화될 기미도 보였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대로 신규 원전이 건설‧운영된다면, 2038년 국내 농축우라늄 수요는 현재의 약 1.5 배가 된다. 핵연료 제작에 필요한 농축우라늄을 전량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원전 운영에 사용된 후 배출된 사용후핵연료가 누적되면서, 이를 저장할 공간도 부족해지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영구처분할 공간 확보가 급한 상황이다. 외견상 달리 보이지만, 핵연료 수급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용후핵연료에서 핵연료 물질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여부와 재활용 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방안 등을 포함해 우라늄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핵연료 주기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설 때다. 셋째, 원전의 지속적 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앞으로 수립될 핵연료 주기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에 우라늄 농축시설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시설을 건설‧운영해야 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들 시설의 설계‧건설 및 운영 단계에서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을 담보하기 위한 규제 요건들을 원자력안전법에 반영해 놓을 필요가 있다. 또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현실적 방법인 원전의 계속운전을 위해, 안전이 확인된 원전의 실질적 계속운전 기간을 10년 이상 보장하도록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외교부는 관련 부처와 협력해, 농축‧재처리 시설의 국내 건설에 가장 큰 걸림돌인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협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문주현

[기자의 눈] 참사의 기억법, 한국 사회는 성숙해졌나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 2024년 제주항공 2216편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 10년 새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대형 참사들이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1인 미디어의 발달로 매 사건마다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지고, 명예 훼손 우려가 큰 악성 게시물들이 판을 쳐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할 언론은 사실 관계 파악을 소홀히 해 조회수와 속보 경쟁에 목을 맨다. 그러다보니 299명이 사망하고 실종된 5명은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세월호 사고 당시에는 탑승자 전원을 구조했다는 대형 오보가 났다. 무안공항에서 생겨난 제주항공 참사에선 '기장·객실 승무원 6명 구조'라는 제목의 속보가 나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큰 사고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지만 결국 179명이나 사망한 대형 참극으로 귀결됐다. 또 여권 번호와 성별 등 개인 정보가 적힌 탑승객 명단을 사진으로 찍어 여과 없이 속보로 내보내는 부끄러운 행태도 목격됐다. 방송사들은 활주로에 동체 착륙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흙무더기에 덮힌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해 폭발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내 자극적인 보도를 했다. 일부 몰상식한 시민들이 유가족을 참칭하며 가짜 인터뷰를 진행해 진짜 유가족들이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2장 제3조는 '정확한 보도'를, 제10조는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를, 제11조는 '공적 정보의 취급'을, 제12조는 '취재원에 대한 검증'을, 제15조는 '선정적 보도 지양'을 명시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무시되기 일쑤다. 시간이 지나도 참사를 대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아 '정론직필'은 공염불에 불과한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언론과 시민 사회의 대대적인 변화가 나타났고, 독일·일본은 재난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혁하고 재난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문화를 구축했다.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법이다. 그런 만큼 이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고쳐야 하고, 언론과 시민들의 자성을 통한 의식 수준 제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윤 대통령 탄핵심판...헌법재판소의 독립성과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이유

필자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외교관으로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중국측과 협상과 담판을 많이 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공격적으로 외교를 전개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외교관 양성학교인 외교학원에서는 사회주의식 외교전술을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그런지 몰라도 평소에는 점잖은 외교관도 첨예한 이슈를 두고 다툴 때는 막무가내 식으로 나오고 예의같은 것 없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리 무례하게 나와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밀리지 않고 국익을 확보해 나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 헌법재판소의 편파성 논란이 제기되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사건 2차 변론준비 기일에서 탄핵을 소추한 국회측이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회가 지난달 14일 통과시킨 탄핵소추 의결서에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권을 남용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정부, 군대와 경찰을 동원, 무장 폭동하는 내란죄를 저질렀다. 윤 대통령의 행위는 형법의 내란죄, 직권남용죄 등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다. 탄핵소추의 핵심 사유로 내란죄를 명시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탄핵소추안 내용을 보고 표결에 참석했다. 만약 탄핵소추안에 내란죄가 명시되지 않았으면 표결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내란죄 혐의는 윤 대통령이 탄핵당한 핵심 사유이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모두 다 그렇게 알고 있다. 탄핵소추안에는 '내란'이라는 말이 38번이나 나온다. 만약 내란죄를 빼 버리면 탄핵심판은 탄핵소추의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고, 국민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빼버리고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잘못된 것이고 상식에도 어긋난다. 탄핵소추 의결서에 담긴 내란죄를 임의로 배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탄핵 심판 절차의 적법성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과 헌재가 서로 짜고 내란죄를 빼려고 하였고, 더 심각한 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내란죄를 빼자고 먼저 제안하였다는 의혹 때문이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측 대리인단이 헌법재판부의 권유로 탄핵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하기로 하였다고 주장했다. 최강욱 전 의원은 페이스북 게시글에 “우리 소추인단도 재판 성격과 재판부의 요청에 맞게 정리한 것"이라고 적어 민주당과 헌법재판소가 '짜고 고스톱을 치고 있다'는 의혹에 더욱 불을 지폈다. 물론 헌재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지만 매우 찜찜하다. 정계선 신임 헌법재판관은 취임식에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받치는 지혜의 한 기둥, 국민의 신뢰를 받는 든든한 헌재의 한 구성원, 끊임없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나아가는 믿음직한 동료가 되겠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정 재판관의 다짐이 무색하게 헌재가 민주당과 '짬짬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할 헌재가 오히려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면서 이재명 대표 재판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윤 대통령 탄핵재판을 끝내려 하는 민주당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할 수도 없게 되었다. 헌재는 민주당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겠다는 것인가? 헌재는 높은 독립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므로 정치적 중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재판에서 있어서 헌재는 재판부에 해당하고 민주당이 주축이 된 국회 탄핵소추단은 검사의 지위에 있다. 만약에 재판관과 검사가 서로 짜고 재판을 진행해 가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크게 훼손될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 헌정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헌재에 의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파괴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불신을 받는 괴물로 전락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상태로 탄핵심판을 진행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수긍하지 못하고 더 큰 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할 헌재에 요구한다. 그리고 재판관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탄핵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국회 탄핵소추단과 내통하여 내란죄를 빼자고 협의하거나 제의한 의심가는 재판관이 있다면 즉각 업무에서 배제시켜야 하며,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 핵심 내용인 내란죄가 명확히 포함되어야 한다. 이강국

[신연수 칼럼] 계엄이 성공했다면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너를 끌고 나아가며 난 노래했는데,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가 배경이다. 광주 상무관에서 찢어지고 뭉개진 처참한 시신들을 돌보는 소년, 공장을 다니며 진학의 꿈을 키우다 그날 이후 흔적 없이 사라진 소녀, 계엄군에 연행돼 잔인한 고문을 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청년….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5·18은 전두환이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 발단이었다. “비상계엄 해제하라"며 평화 시위를 하는 광주시민들을 군부는 화염 방사기와 집단 발포로 진압했고,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갔다. 이제는 오래된 역사인 줄 알았던, 믿을 수 없는 일이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날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많은 시민들이 “비상계엄 철폐하라" 외치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맨 손으로 기관총을 잡고 막아선 사람, 장갑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에워싼 사람들,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무장 군인들을 의자와 책상으로 막아내던 보좌관들, 그 날의 장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이들도 1980년 광주 시민들처럼 되었을지 모른다. ◇ 위태로웠던 순간들 비록 계엄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광인에 의한 시대착오적 폭거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후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윤석열은 오래 전부터 계엄을 생각했다. 더 심각한 것은 광인 한 명의 망상으로 끝나지 않고 측근들을 통해 실행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야 대표들을 체포 구금하는 등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들을 계획했다. 한발 더 나아가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고 원점 타격을 검토하며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가려던 외환(外患) 의혹까지 있다. 과거와 달리 젊은 군인들이 불법적인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이미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된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미국이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결과론적 해석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이번 계엄은 곱씹어볼수록 위태로운 순간들이 많았다. 군 내부의 엇박자 때문에 특전사 헬기의 여의도 진입이 늦어지지 않았다면. 국회의장이 공관에 갇혀 회의를 열수 없었다면. 주말이어서 의원들이 1시간 만에 본회의장에 모일 수 없었다면. 북한이 무인기에 대응해 접경지역에서 작은 교전이라도 벌어졌다면. 계엄은 한밤의 해프닝이 아니라 4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현실이 될 뻔했다. 전두환은 결국 내란수괴 및 내란목적살인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반면 윤석열의 내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윤석열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마저 거부하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조속한 사태 해결로 국정을 안정시켜야 할 여당은 대선 시간표만 계산하며 내란 세력을 옹호하고 있다. ◇국힘은 더 이상 역사에 죄짓지 말라 극히 일각에서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이나, 야당의 탄핵과 발목잡기가 도를 넘었다는 내용은 설사 전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상 계엄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부정선거 의혹은 근거 없음이 밝혀졌고, 야당과의 갈등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미국은 여야 대립으로 툭하면 연방 정부의 예산 집행이 멈춰 서지만, 그걸 이유로 계엄령이 내려진 걸 본 적이 있는가. 미국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는 30년이 걸리지만 그것을 파괴하는 데는 1년이면 족하다"(Charles Tilly, 'Democracy')고 했다. 헌재의 탄핵 심판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넣느니 빼느니,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느니 이런 논란들은 '위헌적 계엄령을 단죄하고 헌정 질서를 회복한다'는 본질을 흐릴 수 없다. 국민의힘은 국민과 역사 앞에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기 바란다.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와줄 수 있는가" 물었다. 그렇다. 광주의 민주화 영령들과 5·18에 대한 처절한 기억들 덕분에 우리는 이번 불법 계엄을 막을 수 있었다. 이제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일은 산 자들의 몫이다. 신연수 기자

[기자의 눈] 국정혼란 때마다 춤추는 ‘물가 인상’

물가 인상엔 권력 공백기가 적기인가. 계엄령 파동과 탄핵정국에 따른 국정 불안의 어수선한 틈을 타 지난해 말부터 식품·화장품·패션 등 업종에서 가격인상 물꼬가 터졌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줄인상에 나섰던 유통업계에 또 다시 국정 불안이 호재로 작용하는 있는 분위기다. “원부자재·물류비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렸다"는 업계의 해명마저 8년 전과 '판박이'다. 더욱이 물가 안정을 내걸고 몇 년 간 가격 동결의 뚝심을 보였던 업체마저 인상 카드를 꺼내든 것이 시기의 우연이라 보기엔 찝찝한 느낌을 남긴다. 물론 업체들 속사정을 들어보면 나름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글로벌 통상 환경 등 대외변수까지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 1500원(6일 오전 현재 1469.5원)을 넘보고 있어 기업의 가격 인상은 수익성 보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만 치솟고 있어 국민들의 생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시급)은 지난해(9860원)보다 170원(1.7%) 찔끔 오른 1만30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세로 위기 상황이던 2021년(1.5%) 이후 역대 최저 인상률이며,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2.3%)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1만원대 시대'라는 의미 부여는 서민생활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물가 인상이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진행되는 점도 문제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1인 4역을 소화해야 하는 형국인지라 물가 안정을 포함한 주요 민생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민간시장의 동향을 실효적으로 제어할 조치 능력마저 버거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4개월 연속 1%대 물가 상승률을 유지중이지만 환율 급등 여파로 1월 소비자물가가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국정이 혼란스러울수록 빨리 수습하고, 국민생활을 안정시키는 게 정부의 책무다. 물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설 명절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과일을 비롯해 국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며, 수입가공식품도 고환율로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가격인상 충격을 최소화하는 실효성 높은 물가대책이야 말로 국정 혼란을 막고 민심을 진정시키는 상책(上策)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 전력수급, 지역수요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적 혼란에도 에너지산업과 전력시스템은 아직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한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큰 한파가 없어 아직까지 예년과 같은 동계피크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공급예비력에 여유가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전력수급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전력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지역별로는 어떻게 달라질지, 또한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전력망 확충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오리무중이다. 전력산업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바퀴의 축이 맞아야 제대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우리 전력산업 정책은 대부분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전력수급만 보더라도 여지껏 발전소나 송전망 건설과 같은 전원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물론 외형만 보면 전원개발의 산업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다. 근래 들어서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늘어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매년 적지 않은 지원금이 투입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십년 넘게 지원했지만 아직도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원개발 투자의 효율성도 주기적으로 집어보아야 한다. 우리 전력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아직도 여기저기서 보조금에 의존하는 개발러시는 여전하다. 공급주도 정책이 전원의 지역적 편중, 공급신뢰도 문제, 송배전망 부족, 보조금 확대와 같은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신규 전원과 송전망을 확충하겠다는 정부 주도의 개발계획은 수십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계획 무용론, 아웃룩(outlook)으로의 전환, 시장기능의 확대를 주장해왔지만 요지부동이다. 전기사업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기왕에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제라도 계획의 내용이나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수급계획의 초점을 공급보다는 수요에 맞추는 접근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요예측도 거시지표에 의한 방법이나, 여러 국가의 수요패턴을 활용하는 방식만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수요예측 니즈에 대응하기 어렵다.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획득은 물론 실시간 접근도 가능하다. 빅데이터가 순식간에 취합되고 분석이 가능한 시대다. 누가, 언제 어디에 얼마만큼의 부하나 수요를 유발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예측도 물론 가능하다. 만약 전력수요를 유발하는 계획이 취소 또는 변경되더라도 주기적인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수요예측의 핵심은 일정 규모 이상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종수요의 위치, 시기, 용량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수시로 취득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활용되어야 한다. 전력수요는 대부분 주택단지, 빌딩, 공장, 데이터센터, 공항이나 항만, 지하철과 같은 SOC에서 발생한다. 이를 보다 정밀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접근과 공학적 방식이 활용되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최소한 행정구역에 상응하는 지역별 수요예측이 필수적이다. 지역별 수요예측이 주어지면 이어서 어떤 공급방안이 가능할 것인지를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계통계획을 의한 공급 가능성도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만약 송전용량 제약으로 계통연계가 불확실하다면 지역 내에서 해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수급불균형이 큰 지역에서는 분산전원을 설치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수급 정보가 사전에 주어진다면 전력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는 공급 가능성과 조달방식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자체 조달하거나 판매사업자나 발전사업자로부터 직접으로 구매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다. 대규모 전기소비자는 이를 참조하여 스스로 입지, 규모, 공급방식을 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신도시에는 열병합발전이 들어서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산업체나 대규모 복합시설, 캠퍼스 등에도 앞으로 유사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이나 RE-100과 같은 국제적 규제체제 속에서 기업의 의사결정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에너지 공급비용만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은 물론 다양한 외부비용과 기업이미지도 고려하여야 한다. 앞으로의 수급계획은 특정전원 중심의 전원개발계획에서 탈피하여 상세한 지역별 전력수요 전망과 다양한 시나리오분석을 포함하는 수요전망리포트로 바뀌어야 한다. 이창호

[김한성 칼럼] AI 2025: 비즈니스, 혁신, 책임의 재정의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5년 AI는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다. 전 세계 기업들은 AI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으며, 이 기업들은 인공지능(AI)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커다란 세 개 흐름에 부딪히면서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하여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다. (흐름 1) 자동화 가속화: 운영 효율성의 새로운 정의 2025년에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 중 하나는 “자동화 가속화 (Automation Acceleration)" 로 단순 반복업무를 AI가 처리하면서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현상이다.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부터 재무 분석을 자동화하는 고급 알고리즘까지, AI는 직원들을 지치게 만드는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업무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는 데 주력한다. 목표는 명확하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인재들이 전략적이거나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수천 건의 청구를 처리하는 보험회사를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청구 담당자들이 문서를 검토하고, 세부사항을 확인하며, 복잡한 정책 규정에 따라 청구를 승인하거나 거절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이러한 작업이 AI를 통해 상당 부분 자동화된다. 머신러닝 모델이 문서를 스캔하고, 이상 징후를 확인하며, 몇 초 만에 의사결정을 제안한다. 인간 전문가는 특별한 사례나 예외적인 상황이 공정하게 처리되도록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기계의 속도"와 “인간의 감독" 사이의 시너지는 새로운 운영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 기업들은 일상적인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서비스 처리시간 단축, 오류 감소, 직원 만족도 향상을 경험한다. 한편 자동화는 고급 분석이 일상 운영과 원활하게 통합되는 “지능형 기업"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변화 관리, 직원들이 AI 시스템과 협업하도록 교육하는 것, 중요하거나 민감한 사안에서 인간이 최종 의사결정자로 남도록 보장하는 것 등은 신중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러한 단계가 없다면, 자동화는 의도치 않게 직원들 사이에 혼란이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흐름 2) 데이터 중심의 과감성: 실시간 의사결정 방식 AI 주도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데이터 중심의 과감성 (Data Driven Daring)"이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이는 종래의 데이터 기반 경영(Data-driven Management) 보다 실시간 처리(Real-time processing)를 강조한 실천적인 개념으로 직관, 추측, 또는 정적인 스프레드시트가 전략적 의사결정의 주요 도구였던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AI 역량은 기업이 IoT 기기, 온라인 사용자 행동, 소셜 미디어 여론, 심지어 경쟁사 패턴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데이터셋을 활용해 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제품을 맞춤화하며, 소비자 니즈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접근법의 초기 도입자로 주목할만 하다.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유통업체들은 소비자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 부족을 최소화하며, 개인화된 쇼핑 경험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AI기반 예측분석은 재고를 최적화하고, 특정 지역의 판매를 예측하며, 심지어 트렌드 데이터에 맞춰 마케팅 캠페인을 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찬가지로 여행·숙박 분야에서도 항공사와 호텔들은 이제 수요 패턴, 경쟁사 가격, 계절적 요인을 기반으로 항공권과 객실 가격을 동적으로 책정하는 데 AI를 활용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다. 하지만 데이터 중심의 과감성에도 위험은 따른다. 알고리즘이나 낮은 품질의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기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제대로 조정되지 않았거나 편향된 AI 기반 신용평가 모델을 사용하려 한다면, 의도치 않게 적격 차입자를 배제함으로써 평판이 손상되고 잠재적으로 규제 당국의 반발을 촉발할 수 있다. 관건은 지속적인 감시와 반복적인 개선이다. 효과적인 기업들은 고급 분석과 머신러닝이 강력한 데이터 거버넌스, 윤리적 감독, 그리고 기본 가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결합될 때 가장 강력한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흐름 3) 알고리즘 우위: 경쟁력을 높이는 비결 기업 입장에서 알고리즘 우위(Algorithmic Advantage)를 확보한다는 것은, AI를 기업 핵심 프로세스와 전략에 융합해 남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역량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경쟁 우위는 특히 제조·물류 등 마진이 박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거대한 물류망이나 생산라인에 AI를 도입해 예측과 실시간 최적화를 수행함으로써 비용 절감과 품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급망 관리에서는 작은 문제도 전체 프로세스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장 원자재 입고가 늦거나 물류센터 중 한 곳이 마비되면, 연쇄적으로 납품 지연이나 재고 부족이 발생한다. AI 기반 예측분석은 이동경로, 기기고장, 날씨나 도로 사정을 미리 파악해 운송 시간을 단축하고, 재고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금융업도 예외가 아니다. 자동화된 트레이딩 시스템은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스캔하며, 인간 트레이더가 놓칠 수 있는 미세한 시장 패턴까지 포착한다. 대출 심사나 보험 인수 심사에서도, 전통적 모델보다 정교한 AI 모델이 위험도와 고객 프로필을 세밀하게 분석해 수익을 올리거나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한다. 이렇게 알고리즘 우위를 확보한 기업은 시장 변동에 빠르게 대응하며 장기적 성장을 이끌 것이다. 미래 혁신과 규제 2025년 이후에도 AI 연구 및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생성형 AI, 엣지 AI (Edge AI), 나아가 양자 컴퓨팅까지 차세대 기술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기업이 누릴 수 있는 혁신 범위도 크게 넓어진다. 반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고위험 분야 AI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데이터 처리 기준과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는 추세다. 혁신 속도와 윤리·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결국 AI는 효율성·정밀도를 극적으로 높이는 한편, 책임·윤리·인력 재편 등 복잡한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기업이 어떻게 AI를 설계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장 경쟁력과 조직 문화가 달라질 것이다. 사람과 기계가 서로의 강점을 살려 협업하고,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며 규제 변화를 발 빠르게 파악하는 기업만이 미래 비즈니스 판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김한성

[데스크칼럼] 반창고는 한 번에 떼는 게 좋다

지난해말 왼쪽 엄지에 상처가 났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상처의 피떡이 밴드에 들러붙었다. 언제 이 밴드를 떼어내버리나 걱정이 앞섰다. 딱지를 건드리지 않으면 욱신한 정도로만 느껴졌다. 밴드를 한 번에 떼어내자니 격한 통증이 밀려올 게 뻔했다. 의사는 걱정말고 떼어내고 다시 약을 바르라고 했다. 통증은 잠시면 잊혀지고 새살이 빨리 돋도록 하는 게 좋다고 했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달 14일에서야 국회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에 대한 심리에 들어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관저에서 경호처를 방패 삼아 영장에 응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1달이 넘었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한 총리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했다. 야당은 한 총리마저 탄핵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을 이었다.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후보 3명 중 2명만 임명했다. 민주당에선 최 권한대행마저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한 달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은 공전했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경기는 계엄으로 얼어붙었다. 연말 특수를 준비하던 유통가는 매대를 거둬들였다. 송년회 예약도 줄줄이 취소돼 외식업계는 울상을 지었다. 연초에는 좀 달라지나 기대했다. 그러나 무안공항 참사까지 겹치며 소비는 절벽에 다가가고 있다. 불안한 정세 탓에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부총리는 경기 회생책을 내놓기는 커녕 탄핵정국 진정에 몰두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계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대폭 절하됐다. 11월 말 1390원 선이던 원/달러 환율은 한달 사이 1470원대까지 치솟았다. 주요국 통화 가치가 모두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만 약세를 이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증시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외국인은 너도 나도 '셀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올해가 더 걱정이다. 이미 천장을 가늠할 수 없는 고환율의 여파는 1~3개월이면 국내 수입물가에 반영될 예정이다. 이에 더해 '트럼플레이션 2.0'(Trumpflation 2.0)이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할 재정 및 무역 정책 등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압박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1.8%였다. 그러나 이미 1월에만 2%를 넘길 전망이다. 계엄은 대한민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상처를 돌봐서 새살이 나도록 치유해야 할 때다. 상처가 곪도록 나둬 치료를 외면하면 상처는 덧난다. 경제 사령탑이 내수와 수출, 금융시장 안정화에 전력을 쏟아부어야 할 때다. 그러려면 최상목 권한대행이 탄핵정국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나 본연의 전공 분야로 돌아와야 한다. 대통령 체포든, 탄핵 선고든, 조기 대선이든 불안은 빠르게 해소되는 것이 좋다. 엄지 손가락에 붙어있던 밴드를 한 번에 떼어냈다. 눈을 찔끔 감을 만큼 아팠다. 그 뿐이었다. 새로 약을 발랐다. 설 전까진 상처가 다 나을 것만 같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EE칼럼] 중국의 희토류 등 “광물 무기화” 시작됐는데 우리는?

중국이 지난달 3일 발표한 갈륨과 게르마늄 그리고 희토류 등의 대미 수출 통제는 향후 예상되는 중국의 “광물 무기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은 국제 관계에서 외국과의 갈등이 심화할 때 “광물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국방 무기 산업 등의 핵심광물인 희토류는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중국은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벌일 때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꺼냈다. 당시 중국은 대일 희토류 수출을 40% 줄였다. 그 결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희토류 가격이 40% 이상 급등하면서 공급망에 큰 혼란이 벌어졌다.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에서도 중국은 광물을 무기로 사용한 적이 있다. 작년 8월 중국은 반도체 핵심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대미 수출을 통제했다. 당시 각국은 중국의 갈륨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등 대응에 나섰다. 곧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중 제재를 강화하면 중국은 희토류 통제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낼 것이다. 희토류는 사실 희소하지도 않고 흙도 아닌지라 이름 자체가 모순이다. 홑 원소로 추출이 어려운 금속이라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전 세계 희토류 최대 매장과 생산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이 매장량, 산출량, 생산량 모두 세계 1위 이지만 세계 희토류의 90%를 가공하는 기술과 산업 체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전략적으로 의미가 더 크다. 희토류는 전자, 통신, 에너지산업, 자동차,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분야에 많이 쓰인다. 미 국방성에 따르면 스텔스 전투기 F-35 한 대에 희토류 광물 420kg이 쓰인다. 만약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중단 또는 제한하면 90일 이내에 미국의 주요 첨단 무기에 들어갈 재고가 소진된다. 희토류가 국제적 이슈화된 시점은 2010년부터다. 중국-일본 간의 다오위다오(일본명 : 센카쿠 열도) 분쟁은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쓴 최초의 사례다. 미국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토류 확보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희토류 수요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중국은 프럼프의 관세 폭탄에 대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희토류 관리 조례"는 산업 집중도 제고와 수출 통제 및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2030년부터는 자동차의 절반 가량은 전기차가 차지하게 된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엔진이 아닌 배터리와 구동모터이다. 특히 구동모터의 필수 소재는 희토류 이다. 희토류는 연비와 제품의 성능을 결정 짓는다. 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차, 로봇, 모빌리티, 풍력발전기와 같은 신재생에너지 제품 등 모터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제품에는 희토류가 필요하다. 2018년 희토류 세계 생산량의 30%는 희토류 영구자석을 만드는데 소비 됐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19년 38%, 2022년 40%, 2023년 43%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8년에는 그 비중이 68%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희토류의 중요성이 더 해지고 있다. 한국은 2023년 희토류 원재료 수입량의 60%, 희토류 소재.부품량의 89%를 중국에서 조달 받았다. 필수 산업의 핵심 원료에 대한 대중 의존도가 이처럼 높다 보니 세계 1위의 희토류 생산국인 중국에서 희토류 수출 제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산업계에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따른 오래된 긴장감으로 피로해진 국가들은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미국은 희토류 확보를 위해 2019년 8월 그린란드에 매장된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통째로 매입하고자 시도했다. 현재도 미국은 자체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는 2001년 정부의 희토류 확보 정책( 제1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2003년 10월 중국 희토 원료 생산업체인 서준신재료유한공사와 합작으로 “서한맥슨 희토류 가공사업"에 진출했다. 총 투자 규모는 1억 위안(약 160억원)으로 이 중 광업공단이 4900만 위안(약 80억원)을 투입, 지분 49%를 확보했다. 중국 섬서성 서안시 하이테크 지구에 있는 가공공장에서 매년 약 1000톤의 형광재, 연마재, 자성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시발점은 19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밝혔던 중국의 서부개발 참여의 일환이기도 했다. 광업공단은 중국산 희토류 공급망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상무부가 희토류 수출 통제 방침을 강화함에 따라 지분을 매각 하기로 했다. 문제는 희토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지분을 매각 하겠다는 것이 잘된 결정인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생산 제품의 국내 도입을 추진할 것이지 등 다각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아직까지 희토류 소비량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예측을 뒤 엎을 만한 신기술이나 대체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따라서 한국 제조업의 운명은 희토류의 독자 수급 체계 확보에 달려 있다. 새해도 미.중 간 무역 갈등으로 공급망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희토류 광산개발과 희토류 제품.생산 기업을 육성하는 등 독자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강천구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