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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방류에 관하여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 처리수 방류를 발표했을 때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는 안전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오염수는 삼중수소를 제외한 모든 방사성 물질이 안전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ALPS(다핵종제거장치)에 의해 처리 과정을 거친다. 방류 시 삼중수소는 규제 기준치의 1/40,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기준치의 1/7 수준인 리터당 1,500베크렐(Bq/l) 미만으로 희석되므로 매우 보수적인 수준이다. 연간 삼중수소 배출 총량은 원전 가동 당시와 같은 22테라베크렐(TBq)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비교적 삼중수소 생산량이 낮은 비등경수로(BWR)인 만큼, 이처럼 보수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원전은 물론, 이미 수많은 원전에서 60년 넘게 사람이나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보다 훨씬 많은 삼중수소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일본은 국제 안전 기준에 따라 안전하고 투명한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처리수 방류 계획과 준비 과정을 독립적으로 평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IAEA는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저명한 전문가 11명과 IAEA 직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조직하고 2022년 2월부터 관련 활동을 시작했으며 2023년 7월 '후쿠시마 제1원전 ALPS 처리수 안전성 검토에 관한 IAEA 포괄 보고서'를 통해 이번 방류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IAEA는 방류 기간 동안 현장에 상주하며 주변 해역의 방사능 수치를 독립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한국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비롯한 독립적인 제3의 실험실에서 해수 샘플 검사가 실시됐으며 IAEA는 2023년 5월 보고서를 통해 해수 샘플이 정확하게 분석되고 있음을 확인했다.희석된 처리수는 2023년 8월 24일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0차례에 걸쳐 방류됐으며 한번의 방류는 19일이 소요됐다. 일본 회계연도 기준 2023년에는 총 4차례의 방류로 4.5TBq의 삼중수소가 배출됐고 2024년에는 현재까지 6차례의 방류를 통해 10.3TBq의 삼중수소가 방류됐다. 현재 도쿄전력은 처리수 방류 현황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처리수 포털사이트(https://www.tepco.co.jp/en/decommission/progress/watertreatment/index-e.html)'를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처리수 방류는 기준치 이하로 안전하게 이뤄졌을까. 해수 삼중수소의 양은 어느 정도이며 한국에 도달할 수 있는 양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방류 기간 동안 처리수 유량과 해수 희석 유량이 지속적으로 측정돼 희석 후 삼중수소 농도가 일본 정부 기준치 1,500Bq/l 이하로 유지되도록 한다. 삼중수소 농도는 발전소 앞 바다의 표층, 저층, 3km 이내, 10km, 30km, 50km 지점에서 측정되고 도쿄전력과 IAEA 외에 일본 환경성이 해역 모니터링, 해양 생물상(해초 및 어류) 조사, 해변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환경성은 자체 측정 결과를 공식 사이트(https://shorisui-monitoring.env.go.jp/en/)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규제청과 후쿠시마현에서도 독립적으로 해수 삼중수소를 측정하고 있고 일본 수산청은 수산물 모니터링을 실시 중이다. 일반적인 측정 결과에 의하면 방류 지점 1km 이내 해수 삼중수소 수치가 10Bq/l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전력은 방류 지점 3km 이내 10곳에서 수치가 350Bq/l에 도달하면 조사를 실시하고 700Bq/l에 다다르면 배출을 중단한다. 모든 측정치는 이러한 수치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IAEA는 ALPS 처리수 방류 시작 이후 2023년 10월 첫번째 점검을 시작해 지난해 1월에 보고서를 발표했다. IAEA는 모든 운영 과정이 안전하게 수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필자는 지난해 2월 일본을 방문해 후쿠시마현 이와키 어시장을 방문했다. 생선 해부 샘플을 관찰하고 방사능 수치를 확인했지만 항상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한국에 유입되지 않을 것이며 일본산 수산물은 걱정하지 않고 섭취해도 되는 만큼, 한국 국민들은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처리수 방류는 일본이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토니 어윈(Tony Irwin)

[기자의눈]인재를 사는 중국, 시간을 사는 한국

최근 샤오미가 딥시크를 개발한 핵심 인력에게 연봉 20억원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앞다퉈 보도됐다. 실리콘밸리조차 놀랄 파격적인 제안이다. 인재 영입에 집중하는 중국의 투자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소식이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되풀이됐다. '반도체 위기'를 외치는 재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정치권에 읍소하고 있다. 혁신은 사라지고 구태만 남았다. 극명히 엇갈린 두 풍경은 '미래 경쟁'과 '과거 답습'이라는 해법의 현격한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20억 연봉은 '사람'이 곧 미래라는 선언이다.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최고의 두뇌를 확보하고 기술 혁신을 가속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를 거쳐 이제 반도체까지. 그들의 무대가 넓어질수록 한국 기업의 활동 반경은 좁아진다. 반면 주 52시간 이슈는 '시간'에 매몰된 과거형 해법의 답습이다. 문제 해법을 노동 시간 연장에서만 찾는 낡은 사고방식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중국의 고액 연봉 전략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인재 쏠림, 기술 탈취 등 잠재적 문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기업들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을 '인재'에서 찾고 과감한 투자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가 애써 무시한 중국 기업이 이제 한국 기업들에 뼈아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주 52시간 완화가 단기적 효과를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은 창의성과 효율이 떨어지고, 인재는 빠져나가며, 혁신은 멈춘다.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20억 연봉을 과감히 제시하며 미래 인재 확보에 나서는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행보와, 주 52시간제 완화라는 낡은 해법에 매달려 정치권에 읍소하는 한국 기업의 소극적인 모습은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다. 진정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고 싶다면 낡은 '시간' 중심의 경쟁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지금은 '인재'와 '혁신'이라는 미래 경쟁력의 핵심 가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미래 지향적인 체질 개선에 당장 나서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이슈&인사이트] ‘국정 겨울잠’ 시기 정치권이 할 일

이강윤 정치평론가 국정 컨트롤타워 유고 상태가 두 달 넘게 지속중이다. 신뢰 위기-불확실성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탄핵안이 인용돼 조기대선이 실시된다 해도 최소 서너 달은 계속될 것이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행정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기능이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국민들은 현 시기 국정운영의 중심을 국회나 민주당으로 여기는 듯하다. 각 부처 업무보고와 정책발표가 벌써 진행됐어야 할 시기지만 들리지 않는다. 컨트롤타워 부재상태이니 서로 눈치 보며 현상유지만 하는 '로키(low key)'로 가기 때문일 게다. 신진대사를 최저로 하면서 생명현상만 유지하는 겨울잠 동물이 연상된다. 컨트롤타워 부재…겨울잠 자는 동물 연상되는 국정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당의 자세가 그래서 중요하다. 명목상 여당인 국힘은 내란 선긋기가 아니라 계엄내란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옹호적이다. 헌법정신으로 보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차원이건 국정운영책임자 차원이건 용인받을 수 없는 태도다. 물론 대선을 염두에 두고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트럼프체제 출범 이후 국제경제와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여러 면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긴장과 기민 대응이 필수건만 두 손 두 발 다 놓고 있다. 계엄내란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처리는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맡기고 국회와 각 당은 국정 겨울잠 상태를 깨워야 한다. 이 비상시기에 하는 것도 없고 되는 일도 없는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 대표기관이자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회의 직무유기이고, 각 당의 수권능력 부재 증명이다. 양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재판정 진술 하나하나로 공방을 벌인다.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일텐데 3권분립 정면 위배다. 국힘은 극우세력과 결별하고 국정관리자 역할에 진력해야 한다. 그게 집권여당의 책임이다. 민주당도 탄핵심판이나 내란형사재판은 법원에 맡기고 국정 공동운영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 대개혁방안-개헌논의 병행돼야 지금은 계엄내란으로 드러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사회대개혁 우선 순위를 정하는 한편, 큰 틀의 개헌논의도 병행해야 하는 시기다. 즉, 현 단계 주요 의제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차기 대선에서 이런 개혁안(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과 개헌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 동의를 구하는 경쟁이 펼쳐져야 한다. 이게 조기 대선의 주 의제이자 시대정신이다. 조기 대선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종료당하는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단순 보궐선거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대개혁이 절실한 상황이자, 인수위 기간 없이 바로 국정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상정부는 이미 7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경험하고 학습했다. 새 정부가 출범할 것으로 보이는 5~6월경으로부터 딱 1년 후면 지방선거다. 내년 초면 벌써 선거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이 없다. 민주당은 '지금은 혼란기이므로 개헌논의는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잘못된 판단이다. 또 다시 실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판은 법원에 맡기고 정치권은 개혁방안 경쟁해야 계엄령이 발동된 12월 3일 밤 대통령이 누구와 무슨 통화를 했고, 법정진술이 엇갈리는데 누구 말이 맞는지를 두고 각 당이 옥신각신 공방하는 것은 재판부에 대한 월권인 동시에, 양 당은 그 진위를 밝혀낼 능력이나 수단도 마땅찮다. 이재명 대표의 정책 우클릭을 두고 정책경쟁이라 할지 모르나 본질은 대선을 염두에 둔 외연 확장방안이다. 총체적 사회대개혁과는 거리가 있다. 진영 간 사생 대결과 양당의 '상대당 무조건 비토'가 현 위기와 직결돼있다. 개헌 논의가 정국불안요소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차원에서 진행된다면 그 자체로 진전이자 현 위기상황의 수습방안이기도 하다. 그간 무수히 논의되어왔기에 개헌의 요체나 쟁점은 대개들 알고 있다. 각 정파는 입장을 제시하면 된다. 선거 도움 여부로 접근하면 주객 전도다. 정책경쟁도 선거용 득표전략(집토끼-산토끼라는 케케묵은 선거공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사회대개혁 방안으로 향도되어야 한다. '일단 집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준비기간 없이 긴급 출범할 수 밖에 없었던 비상정부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라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과거이자 지금도 진행중인 현실이다. 비상 시기 각 정파의 입장변화를 촉구한다. 국민들은 누가 집권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무슨 개혁을 관철시켜 나라의 퇴행을 막고 민주공화국을 굳건히 다질까가 주 관심사다. 그게 곧 선거운동이자 국민들 채점포인트다. 탄핵은 탄핵, 재판은 재판, 대선은 대선이다. 각각 독립된 영역이자 별도 채널이다. 재판부가 할 일과 정치권이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만일 집회 군중의 숫자나 규모로 재판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요즘 유행하는 '실용적 자세'도 아니라는 것을 각심해야 한다. 이강윤 정치편론가

[EE칼럼] 원자력 활용한 산업경쟁력 제고가 진정한 미래를 위한 투자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선진국은 인건비도 비싸고 모든 경비가 더 드는데 어떻게 그런 나라에서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고 공장과 일자리를 유지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고정비용 중 땅값 같은 것은 우리나라가 워낙에 불리하지만 아직은 한국의 국민소득이 좀 더 낮으니 산업 경쟁력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국 일인당국민소득이 2023년 기준 33,121달러였는데, 영국은 48,866달러, 독일은 52,745달러, 그리고 미국은 81,695달러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세 위협을 가하면서 외국 기업들에게 산업체를 미국 내로 이전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을 보면 궁금증이 더해진다. 미국 내에 공장을 지어서 미국 노동자와 미국 에너지로 만든 공업생산품이 과연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만약 가격이 지나치게 오른다면 곧 모든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될 텐데 어떻게 그런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국민소득이 높다고 공업 생산품의 원가가 그렇게 간단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로봇과 AI를 활용한 자동화를 진행해온 덕분에 선진국 산업의 생산성이 후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오랜 기간에 걸친 치열한 에너지확보 정책을 펼쳐왔기에 경쟁력 있는 가격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공장을 짓는 것보다 더 수익을 크게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 산업들이 있었기에 그쪽으로 투자가 집중되어 왔을 뿐이지 산업경쟁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공업의 쇠퇴에 따라 직업을 찾지 못해서 사회보장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노동자 계층을 위해 산업 재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3년 기준 미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77.9달러, 독일 68.1달러, 프랑스 65.6달러에 이르지만, 한국은 아직도 44.4달러이다. 이 노동생산성과 산업경쟁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관계에 있다. 가내수공업 방식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니, 생산성의 향상은 신규투자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이 계속 향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수년간 신규투자가 부진했던 공업생산성 지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약간 후퇴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생산성을 높이려면 신규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산업경쟁력이 높지 않으면 누가 그 나라에 신규 투자를 하겠는가? 다르게 말하자면, 그 나라의 노동생산성은 산업경쟁력을 드러내는 지표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과 산업경쟁력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나라의 장기 발전에 꼭 필요하다. 여기서 에너지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버드인터내셔널리뷰에서는 작년 5월에 이미 에너지문제로 인해 독일의 산업경쟁력이 없어지고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는데, 독일의 에너지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 수준에 비해 35% 나 급등한 주요 이유로 러시아 일변도의 가스 공급에 지나치게 안주한 정책과 원자력발전량을 계속 축소한 탈원전 정책을 꼽고, 이 두 가지 정책을 바꾸어야 강력하고 회복력 있는 경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에 대해 합리적 분석보다는 정치적으로 접근한 결과가 최근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독일 경제 위기의 실제 이유인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 드러난 것처럼 가스와 전기 가격이 사실상 그 나라의 에너지경쟁력 지표이다. 그중에서도 전기 가격은 정부의 정책적 개입으로 인해 각국별로 그 편차가 매우 심한 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이 국가의 산업보조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저렴한 전기요금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산업용전기 요금만 급격히 올리고 있어서 걱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kWh당 산업용 전기요금은 종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80원정도 된다. 2024년 11월 기준으로 미국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7.89센트이니 놀랍게도 미국이 60%나 저렴하다. 참고로, 미국 가정용 전기 가격은 17.01센트이니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 요금인 172.4원에 비교하면 오히려 40%가 비싸다. 이런 상황이니 노동 생산성도 낮고 에너지 비용도 높은 우리나라에 산업 신규 투자가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걱정이 저절로 들게 된다.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춘 원자력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다. 더구나 최근 한수원이 제안한 스마트 넷제로 시티(SSNC)는 소형모듈형 SMR 원자로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면서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획기적인 에너지 모델이다. 단순히 도시에 주거용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량 에너지를 소비하는 산업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원자로의 열과 전기를 공급하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정체된 산업경쟁력을 일거에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자력이야 말로 기술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 우리 노력하기에 따라서 얼마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이다.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김병헌 칼럼]이재명표 실용주의...급변침(急變針)우클릭의 끝은?

선박이나 항공기 등이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변침(變針)'이라고 한다. 변침은 각 항로마다 정해진 '변침점'에서 해야 한다. 전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가 침몰한 곳도 목포~제주, 인천~제주로 향하는 선박이 서로 항로를 바꾸는 이른바 변침점이었다. 사고 직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항로를 급격하게 바꾸는 급변침(急變針)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변침점에서 세월호는 목적지인 제주로 항해할 경우 병풍도를 끼고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려가야 했다. 침몰당시 배가 좌현으로 급하게 기울었다는 사실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급작스런 '우클릭' 항로 변경에 민주당은 물론이고 정부여당과 국민들도 우려스러운 눈길을 감추지 못하는 현상도 유사하게 보이는건 왜일까. 그동안 일부 유명 정치인들의 정치적 변침점이 되기도 됐던 대선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계엄 사태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국면으로 대선이 조만간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선 유력후보의 행보로는 있을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는 되나 다소 즉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대표의 실용주의 주창은 당내 의견수렴마저 미흡한 '급변침'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가? 이 대표의 실용주의 우클릭 행보는 당내에서부터 비명계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이 대표 일극주의 체제라 내부 설득도 가능하겠지만 그 실천의 진정성 확인은 두고 볼 일이라는게 중론이다. 민주당 집권플랜본부는 지난 5일 '성장 전략 세미나'를 열고 '5년 내 3%대 성장' 목표를 제시하며 이 대표의 실용주의 친기업 성장론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첫시험대가 된 '반도 체특별법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부터 삐걱거린다. 이 대표가 지난 5일 토론회에서 언급한 예외 조항에 대한 '분리 처리' 방안은 실용주의가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후퇴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진의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대표 제안이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에 대한 양보였다는 의견이 적지않다. 당시 참석한 삼성·SK·LG·현대차 등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은 누구도 이에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이 대표가 이틀 전만 해도 재계 요구를 수용해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킬 것처럼 얘기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기조의 얘기를 하더라"라고 전했다. 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이는 근로 시간 단축의 역사에 역행하고, 민주당의 노동 가치에 반하는 주장"이라며 “'실용'도 아니고 '퇴행'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때와 달리 전향적 결단을 내리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민주당 비상설특별기구인 '월급방위대'는 사측이 우리사주조합에 주식을 매각하면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를 면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또 자녀가 두 명 이상이거나 부모를 부양하는 가구에 소득세율을 최대 3%포인트 인하하는 법 개정도 추진한다고 한다. 직장인과 중산층을 겨냥한 감세 정책을 통해 외연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당 일각에서는 “과거 MB(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을 연상시키는 성장 플랜"이라며 “우클릭에 치중하다가 지지층을 잃을 수도 있다"고 비판 목소리도 사그러 들지 않고 있다 이 대표 실용주위 급변침 우클릭의 여정은 앞으로 더욱 험난해보인다.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중도층등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실천은 물론이고 자신부터 환골탈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동안 잦은 말바꾸기 정치 행태 및 적절치 못한 사법 리스크 대처가 소환되면서 실용주의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있는 부분마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은 정치인의 말보다 행동으로서의 실천을 중시한다. 문제 발생시 책임을 지고 해결하려는 태도도 포함해서다. 무슨이유인지 사법리스크 대처부터 옆길로 새고 있다. 본인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무더기 증인 신청, 억지성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 시간 끌기가 의심되는 행태가 발목을 잡는다.비판이 쏟아지자 이 대표는 지난 5일 재판에 출석하면서 “재판은 지연되지 않고 신속히 끝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이런 태도는 중도 외연을 넓히려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갖은 꼼수를 동원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급변침을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자신의 재판도 신속한 판결을 요구해야 합리적이다. 실용주의가 사법 리스크에 매몰되면서 거짓말과 말바꾸기 등 이중적 태도로 인식될 공산이 크다. 그리 높지않은 그의 정치적 신뢰도에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줄수 있다. 중도층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특히 중시한다. 공자는 신뢰를 얻는 법과 관련해 “경사이신(敬事而信)하라"고 했다. 경(敬)은 사람이든 일이든 한결같이 집중하여 대하는 마음'을 뜻하는 글자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매사에 천성적 '마음가짐'은 전혀 변함없이 한결같아야 그게 경(敬)이다. 자기중심적 사상이나 생각과는 엄연히 다르다. 실용주의로 바쁘시겠지만 이 지점에 이 대표에게 이솝 우화 '양치기소년'의 가벼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기자의 눈] 커피 한 잔 받자고…체감은 미미한데 출혈은 막대한 ‘상생금융’

손해보험사들이 올해 자동차 보험료를 0.8~1.0% 인하한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치솟아 적자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의 결정이다. 지난달 22일 메리츠화재가 선두로 개인용 차 보험료 1%를 낮출 것이란 소식을 전한 뒤 삼성화재, DB손보 등이 줄줄이 인하를 결정했다. 오는 3월 중순~4월 책임 개시되는 계약부터 인하된 보험료가 적용될 예정이다. 자동차보험으로 인해 득보다 실이 많은 상황에서도 이같은 결정을 내린 건 정부가 강조하는 '상생기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의 부담이 줄면 많은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가입자가 2400만명에 달하는 만큼 국민보험으로도 여겨져서다. 치솟는 물가로 서민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어느정도 소방수 역할도 할 것이란 예상도 더했다. 당국의 의도는 좋지만 상생기조에 편승하기 인해 업계가 실제 감당해야 할 부담은 꽤나 크다. 특히 지난 2022년 이후 올해까지의 인하로 4년 연속 보험료를 할인하면서 부담감은 몇 배로 더 크게 느껴질 수있다. 앞선 보험료 인하 누적분까지 약 8%가량으로, 21조원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보험료는 실제로 크게 줄 전망이다. 출혈폭은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7개 손보사(삼성·현대·DB·KB·메리츠·한화·롯데)의 지난해 1~11월까지 손해율은 평균 82.9%로 집계돼 이미 적자 구간에 들어섰다. 가뜩이나 지난해는 폭설과 폭우 등 차 사고 상승 요인이 많은 해였기에 손해율과 적자 규모는 이보다 더 클 수 있다. KB손보의 지난해 연간 자동차손익은 87억원으로 전년(488억원) 대비 82.2% 크게 줄었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9월까지 957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54% 급감했다. 3분기 기준으로는 1년 만에 77% 급락한 132억원의 손익을 거뒀다. 문제는 업계가 보험료를 더 내릴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인하율이 1%에 그치면서 실질 인하액이 차 한대당 3500~7000원 미만 수준을 나타내게 된 점이다. 최근 오른 물가를 감안하면 연간 커피 한 잔 가격을 할인 받는 셈이다. 결국 손실은 손실대로 보고 정작 당국이 기대한 실효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일거양득'을 노렸지만 '일소무득' 형국이 나타날 수 있단 우려다. 이제는 고루하기까지한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업계도 살고 소비자도 살림살이에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석이조, 금상첨화의 방안을 고민해야할 때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 한강 덮개공원, 문제는 소통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한강변 '덮개공원' 사업이 한강유역환경청(한강청)과의 협의 부족으로 난관에 부딪혀 해당 지역 재개발 조합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도대체 시와 환경청은 인근 지역 재개발 사업의 규모와 비용, 파급 효과 등을 감안했을 때 여태까지 사전 협의와 조율도 없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한강 덮개공원 사업은 한강 바로 옆 재개발 아파트단지와 한강 사이의 올림픽대로 구간에 덮개 구조물을 설치해 시민들이 편하게 오가게 해 한강 접근성을 높이고 사업성·공공성도 보장하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반포1단지와 서래섬 사이가 첫 번째 시도다. 오세훈 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시는 재개발 조합의 기부채납을 활용해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와 한강청의 사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재개발 일정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시는 한강청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2016년 설계도면 작성 계획에서 한강청이 사실상 동의했지만 최근 갑자기 입장을 번복하는 바람에 제대로 협의가 안 됐다는 것이다. 반면 한강청은 당시 동의한 적이 없고 세부계획을 수립해 오면 검토하겠다며 반박하고 있다. 실제 한 한강청 관계자는 “시가 초기 단계에서 조언을 구한 것 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간 서울시가 덮개공원과 관련해 의견을 조율해 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강청이 사업을 허가하지 않은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천법상 제방 위에 영구 구조물 설치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반포 일대는 지대가 낮아 홍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두 기관의 소통 부재로 피해는 애꿎은 시민들이 보고 있다. 덮개공원 사업 지연에 따른 피해가 천문학적이다. 반포 정비계획을 변경해 건축심의와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다시 받아야 경우, 110억원의 설계비가 손실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사업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 부담도 1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오는 2027년 하반기로 예정된 입주 일정도 최소 1년 이상 연기될 수 있다. 조합원들만 속을 끓이는 상황이 됐다. 만일 시가 원론적 부분을 넘어 법적·기술적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한강청에 충분히 전달해 협의했다면 이번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속한 협의를 위해 시가 한강청에 하루빨리 구체적인 법적·기술적 해결책을 전달하기를 기대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이슈&인사이트] 헌법재판소가 자초한 위기

2025년 2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이 헌법재판소에 주어졌다. 헌재에 접수된 수많은 탄핵 및 권한쟁의 사건들, 그중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과는 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헌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헌재의 위기는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것이다. 헌정사상 두 번밖에 없었던, 그것도 대통령에게만 이루어졌던 국회의 탄핵소추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무려 29번이나 발생했다.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도 탄핵됐다. 누가 봐도 사적 목적이 명백한 탄핵인데도 헌재는 각하할 생각도 없고 심판을 서두르지도 않았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취임 단 하루 만에 탄핵소추 당했다. 단 하루 만에 헌법과 법률의 중대한 위반이 얼마나 있었을까마는 헌재는 6개월을 꽉 채워 결과를 내놨다. 방통위가 6개월이나 무력화돼도 서두르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재판관의 성향에 따라 정확히 4:4로 판단이 갈렸다는 것도 놀랍다. 법 해석을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재판관의 이념에 따른 것이라면, 혹은 국민이 그렇게 느꼈다면, 헌재 스스로 국민의 불신을 일으킨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특히 탄핵소추의 의결정족수에 의문이 제기된 사건이다. 민주당이 말을 듣지 않으면 권한대행의 대행도 탄핵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기에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의 의결정족수 문제는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었다. 그런 사안을 두고도 아무 설명도 없이 헌재는 마은혁 후보자 임명보류의 합헌성 여부를 먼저 다뤘다. 헌재 대변인은 위헌결정을 전제로 최 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위헌이라며 협박까지 했다. 지금까지 위헌법률이나 헌법불합치 판정난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 있는 국회에 대해 단 한 번의 경고도 없던 헌재가 말이다. 어이없게도 마 후보자 임명보류의 합헌성 결정을 불과 두 시간 앞두고 취소했다. 스스로 헌재의 신뢰성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다. 그뿐인가. 윤 대통령 탄핵사건 준비 기일에 국회 측 대리인은 '헌재의 권고에 따라' 탄핵소추의 핵심 사유였던 내란죄를 심리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내란수괴라며 탄핵해 놓고 내란죄를 빼달라니, 그 무슨 해괴한 일인가. 그것도 '헌재 측 권고에 따라'서라니! 헌재의 중립성을 의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헌재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자연스럽게 재판관들의 과거 행적과 이념 성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언제, 누구에 의해 지명됐느냐에 따라 재판관들이 특정 이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판단의 주된 이유가 재판장의 이념이나 가치라면 문제는 다르다. 앞서 언급한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안 결정이 우려를 불러일으킨 이유다. 재판관의 제척사유 유무도 논란이 많다. 단순히 동창이나 동향, 또는 개인적 친분이 제척사유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건관계자 혹은 대리인과 인척 관계나 고용 등 특수관계라면 얘기는 다르다. 대학입시에도 4촌 이내 친족이 지원한 경우, 입시관리에 참여할 수 없다. 정계선 재판관처럼 남편이 그런 관계에 있다면 당연히 제척을 고려해야 한다. 부부는 무촌이기 때문이다. 헌재는 설명도 없이 제척요구를 즉각적으로 거부했다. 헌재가 문제없다고 해서 그대로 믿을 국민이 아닌데도 말이다. 헌재와 함께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시위대가 난입한 것은 있어서는 안될 불행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도 따지고 보면 법원이 자초한 일이다. 과거 이재명 대표의 구속적부심에서 법원은 유죄가 소명되지만 야당 대표임을 고려해 불구속한 전례가 있고, 그 이유도 소상히 설명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는 단 한 줄로 구속해 버렸다. 증거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며 아예 내란죄로 단정했고 '내란수괴'라고 부르면서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다고?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법원에 대한 폭력행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이 사태를 법원 스스로 초래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국민은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론이 어느 쪽이든 다른 쪽 국민은 헌재를 믿지 않을 것 같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명백한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서울서부지방법원과 같은 난동과 폭력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헌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홍성걸

[EE칼럼] 트럼프가 쏘아 올린 에너지 비상사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 공언한 대로 행정명령을 쏟아내며 미국의 정책 방향을 급격히 뒤집고 있다. 특히'친환경에서 다시 화석연료'로 급선회시킨 소위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Unleashing American Energy)은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완전히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화석에너지로부터 멀어지는 에너지전환(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s)을 선언한 유엔기후변화협약과도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후변화는 “녹색 신종 사기"일 뿐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에 서명함으로써 자신의 에너지정책 방향성을 대내외에 분명히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은 에너지 상황 인식에서 시작된다. 그는“미국은 에너지 생산, 운송, 정제, 발전의 부족으로 경제, 안보에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직면했다."라는 인식 아래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연방 정부 차원의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는 미국 역사상 처음일 정도로 충격적이다. 더욱이 세계 최대 석유, 가스 생산국이자 에너지 순 수출국이 될 정도로 에너지가 풍부한 미국에서 전쟁 때나 발동할 수 있는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법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 프리미엄을 활용해, 현시점에서는 체감되지 않지만 이대로 가면 큰 에너지 위기와 미국의 리더십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미국 사회에 각성시키기 위해 정치적 초강수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질서는 미∙중 간 신냉전 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약 30년간 조성된 미국의 일극 체제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재 상황은 미국으로서는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신냉전 승리 전략은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통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MAGA)이다. 특히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에서 완벽한 승리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확고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AI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왜냐하면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기재들은 모두 전기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하루 전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집회에서 “우리는 지금의 두 배,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비상 권한을 사용해 대형 공장과 AI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한 미국 내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더그 버검 후보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전력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다면 중국과의 AI 군비 경쟁에서 패배해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비상한 각오로 AI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을 태세다. AI 산업이 필요한 에너지는 한순간도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기다. 자연 여건에 따라 간헐적으로 발전되는 태양광, 풍력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에 미국의 안보를 맡기기는 역부족이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기후변화 이슈를 후순위로 밀어낸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이 화석연료 생산 확대,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파리기후협약 탈퇴, 원자력 발전 활성화 등으로 집약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우리나라도, 대개의 전통 산업이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경쟁력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현 상황을 고려할 때, AI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성패에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충분하고 안정적인 전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만 필요한 전기가 10GW를 넘을 전망이다.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25%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수도권 신규 LNG 발전소 건설과 동해안과 서남해안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생산된 전기를 송전선로로 끌어오는 방안이 계획 중이지만, 탄소중립 목표, 송전선로 건설 지연, 한전의 재정 악화 등으로 비상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비상사태는 오히려 우리에게 더 필요해 보인다. 에너지 비상사태가 미국에서는 부자 몸조심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생존의 몸부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년에 벌써 확정해야 할 11차 전력수급계획조차 거대 야당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미루는 한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박주헌

[기자의 눈] 물 넘어 공기까지 침투한 녹조 독소…안이한 대응 언제까지

낙동강 인근 주민 97명 중 46명의 콧속에서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녹조 문제가 단순한 수질 문제가 아니라,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도 유입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환경부는 즉각 반박했다. 기존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공기 중 조류독소는 검출되지 않았다"며 추가 조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환경부의 반응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낙동강의 녹조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국제적으로 녹조 에어로졸이 공기 중으로 확산된다는 연구는 이미 다수 존재한다. 녹조가 번성하는 지역에서는 독소가 공기 중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공기 중 불검출'을 강조하며 문제를 축소하고 있다. 2023년 한국물환경학회에 의뢰한 연구도 녹조 발생이 적었던 해의 자료를 근거로 했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는 환경부의 대응을 두고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공기 중 검출 여부를 떠나, 이미 주민들의 몸속에서 녹조 독소가 검출됐다는 점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가 녹조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는 사이 주민들은 점점 더 건강상의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녹조 피해는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한 환경 활동가는 “우리 마을 조사 대상자 14명 중 절반이 녹조 독소에 노출됐다"며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겠냐"고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어민들은 죽은 물고기가 그물에 대량으로 걸려 올라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환경부는 “민·관·학 공동 조사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이는 또 다른 시간 끌기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도 공동 조사를 언급했지만 결국 환경단체의 조사 방식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실질적인 조치 없이 '불검출'이라는 입장만 반복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태도가 아니다. 낙동강 녹조 문제는 더 이상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녹조 독소는 강에서 머무르지 않고, 농산물과 공기를 통해 사람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이를 외면해선 안된다. 전문가들은 녹조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4대강 사업 이후 정체된 물은 점점 더 오염되고 있다. 환경부는 이제라도 녹조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반박이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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