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EE칼럼]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의 갈림길에서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4년은 한국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화된 갈등과 대립을 겪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우려가 크다. 마침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 하게 되면서 글로벌 정치경제에 여러 불확실성마저 더해지고 있다. 이렇듯 국내외 정세가 복잡한 가운데 한국의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2025년 예산안을 둘러싼 갈등은 한국의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의 단면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부분은 핵심적인 쟁점 사안 중 하나로 부상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 주도로 통과된 예산안은 기존 정부안보다 4조 1000억 원이 감액된 673조 3000억 원 규모였는데, 이 중에서 에너지 정책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의 예산은 정부안에 비해 675억 원이 감액된 11조 4336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윤석열 정부 주도의 국정 사업이라는 인식이 확대된 동해 심해가스전 개발,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예산이 거의 전액 삭감된 것이다. 이는 산자부의 감액된 예산에서 무려 74%에 해당하는 금액(500억 가량)이다. 석유공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석유공사가 자체적으로 추진해 왔던 사업이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이니 만큼 사업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해서라도 탐사시추 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 현재 석유공사의 상황이다. 또 다른 윤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원자력과 관련해서도 예산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가 분분했다. 산자부의 안 그대로 추진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미래 기술 개발과 관련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기업과 정부가 함께 설계하기로 한 소듐고속냉각로(SFR) 예산이나, 양자 파트너십 대학 지원 등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던 것이다. 이는 윤 대통령의 2차 담화 내용과는 차이가 있지만, 윤 정부는 친 원자력인데 반해 야당은 반 원자력이라는 언론 프레임에 의해 원자력 업계를 둘러싼 논란과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것만큼은 부정하기 힘들다. 한편 결과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관련 예산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산안 통과 직후 11일, 나라살림연구소, LAB2050, 기후환경단체 플랜 1.5 등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5년 정부의 전 부처에 흩어져있는 기후변화 대응 관련 프로그램 예산을 모두 합산한 금액은 총 3조 7528억 원으로, 2022년의 4조 8115억 원에 비해 22%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줄어든 항목은 대부분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항목으로 무려 57%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상풍력 산업 지원과 탄소중립형 선박용 석유 대체 연료 보급 사업의 경우에는 2024년과 비교하여 전액이 삭감되었고,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가격을 보조해주는 지원책 역시 2024년도와 비교해 340억 원, 즉 54% 정도가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립은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일관성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은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과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보다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국민의힘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보다 방점을 찍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이 서로 충돌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두 과제가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같은 화석연료 사업은 성공한다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테지만, 탄소 배출을 줄이고 탈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예산 확대는 에너지 전환 차원에서는 분명 필요하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한국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화석연료 및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통해, 아울러 탈탄소 기술 개발을 계속함으로써 단기적 안정성과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모두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2025년은 한국이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을 회복하고, 에너지 안보와 전환을 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각자의 당리당략에 의한 대립을 넘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하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정책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와 기후 문제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와 미래 경제 패러다임을 결정할 핵심적인 과제다. 한국 정치권이 이 두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통합하며 국제적 신뢰를 유지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지에 따라 2025년이 진정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임은정

[기자의 눈] 탄핵정국 국정방향, 민생·공공성 우선돼야

지난 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한 국숫집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면서 동행했던 지인이 가게주인에게 탄핵정국의 주말장사가 어땠는지 슬쩍 물었다. 주인은 누가 들을새라 살짝 입을 가리고는 “역대급 매출을 올렸다"고 속삭였다. 손가락 사이로 비친 싱글벙글한 표정을 보니 어렵다는 이 시국에 웃는 이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퇴근길에 집 근처 텅 빈 식당들을 목도했을 땐 우울감이 한 번에 몰려왔다. 그날 밤 책장에서 낡은 책 한 권을 십수년 만에 꺼내 펼쳤다.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민주주의의 황혼'이라는 책으로, 기자가 대학시절 교양 과목 수업으로 듣었던 교재였다. 명색이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수강했는데 결과적으로 성적은 C­+를 받았다. 재수강했지만 또다시 C+에 독기를 품고 내리 3학기째 수강했음에도 보란 듯이 또 C+로 마감했으니 개인적으로 '애증(愛憎)의 책'인 셈이다. 사적인 일화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책에서 저자가 밝힌 내용을 이번 탄핵정국에 빗대어 풀어보기 위해서다. 노(老)교수는 저서에서 '참된 민주주의'는 공공성의 가치 관념으로, 무장된 혁명적 시민들이 연대하는 데서 온다고 밝혔다. 전업 정치인의 주문과 사술에 사로잡힌 유사 시민사회가 아닌 염치를 중하게 여기는 공동체적 시민사회를 강조한 것이다. 비상계엄 파동과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누군가는 고꾸라지지만, 또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일반국민에게 손에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은 '공동체적 시민사회'를 권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장사가 너무 안 되는 걸 본 손님이 커피 두 잔을 더 사갔다는 이야기, 팍팍한 상황에 힘내시라는 쪽지를 받았다는 가게 사장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쩌면 '공동체적 시민사회'가 국회나 용산, 광화문광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민생은 정쟁과는 다른 문제다. 누가 권력을 쥐건 향후 국정운영 방향에 소상공인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자명하다. 거기에 '공공성'에 바탕을 둔 모든 시민들의 지혜와 힘이 모아졌을 때 그때야말로 소상공인이 살고 '참된 민주주의'도 오지 않을까 싶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경제 위기...트럼프 신 행정부와의 스킨십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오후 가결된 직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미국 국민은 한국 국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계속 함께할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의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대한 약속은 변함없다"며 우리의 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15일 오전 한덕수 권한대행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였다. 한 대행은 “앞으로 모든 국정이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우리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을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갈 것이며, 한미동맹 또한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신뢰한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서 “철통같은 한미동맹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며, 한미동맹 및 한미일 협력 발전·강화를 위해 한국 측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군사 쿠테타, 계엄령 발포 등 군사적 조치에 대해 매우 강경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태국에서 쿠테타가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양국간 긴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제재 조치를 취하여 문민정부로의 권력 이양을 압박했다. 이번 비상계엄 조치로 인한 혼란 상황에 대해 미국 조야에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즉, 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약 북한이 도발하면 누구에게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어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됨으로써 군 지휘계통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헌법 질서를 복원하는 것을 평가하고 안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가 이루어진 것은 한국정치 상황에 대해 미국 정부가 안도하고 있다는 반증으로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곧 시작될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이다. 비상계엄 선포와 뒤따른 정치 위기로 인해 행정부 교체 과도기라는 중대한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를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 약화된 것은 매우 뼈아프다. 지금은 새로운 관세나 한국 기업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를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을 시점인데, 비상계엄 상황 발생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호주와 일본 같은 주변국은 트럼프 정부를 겨냥해 열심히 뛸 텐데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해 치명적일 수 있다. 특히, 대통령 직무가 정지돼 정상외교가 향후 수개월간 사실상 공백 상황을 맞게 된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지만, '임시직'이라는 한계상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는 힘들다. 미국 신 행정부의 정책이 수립되기 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입장이 미 정책에 반영토록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직후 최대한 신속하게 한미 정상회담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차질이 생기게 됐다. 한덕수 권한대행도 트럼프 대통령과 어떤 형식이든 접촉하여 협의를 하려고 시도하겠지만, 문제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가라앉기까지 한국과 관계의 우선순위를 낮게 설정할 수 있어 용이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기존 대미 라인을 풀 가동하여 트럼프 행정부와 스킨십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외교부가 중심을 잡고 주미대사관이 보다 순발력 있게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대기업 중에는 상당한 수준의 외교력과 정보력을 갖춘 데가 많다. 민관 협력 시스템도 가동해야 하며, 우리 현지 공관이 기업 외교를 측면 지원해야 한다. 비상상황에서는 모든 역량을 모으고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이강국

[EE칼럼] 배출권거래제 10년, 성과와 과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국가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총량과 기업별 할당량을 정한 후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다. 감축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고,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배출권을 사들여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이다. 시장 기능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유럽을 비롯해 많은 국가가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2012년 녹색성장기본법을 통해 도입을 확정했으나 어려운 경제 사정과 산업계의 반발 등으로 진통을 겪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시행되었고, 올 해 10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배출권거래제도가 거둔 성과는 무엇이며,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은 무엇일까? 배출권거래제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이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참여기업의 99% 이상이 매년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고 있고, 제도 운영 경험의 축적과 실효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제도가 안착 중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에도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였고, 2019년 이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추세가 과연 배출권거래제 효과인지 불분명하며 여전히 제도 운용에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상존한다. 엇갈리는 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배출허용총량 간의 괴리 및 정책의 일관성 결여이다. 정부 발표처럼 국가 배출량의 70%에 해당하는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감축목표를 매년 충실하게 달성하였는데, 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 계속 증가했으며, 왜 국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제도 도입 1단계('15~'17년) 때의 국가 목표는 기준시나리오(BAU) 대비 30% 감축이었지만, 2단계('18~'20년) 때의 목표는 BAU 대비 37%로 강화되었고, 현재 진행 중인 3단계('21~'25년)에서 반영해야 하는 국가 목표는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이다. 이처럼 국가 목표는 국제 정세에 따라 계속 강화된 반면, 배출권거래제도의 배출허용총량과 각 기업에 배정하는 할당량은 국가 목표의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항상 한발 뒤쳐져 있었다. 더구나 정권이 변할 때마다 정책 우선순위와 강조점이 달라지면서 배출권거래제도의 역할과 기능에 붙임이 있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참여기업은 매년 주어진 목표를 충실하게 달성해 왔다곤 하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한 감축목표가 할당되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줄어들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참여기업의 감축목표에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는 것 외에도 전기 수도 등 간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도입 당시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산업부문의 전기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그로 인해 발전부문에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과도하게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간접배출원 포함문제는 중복산정 및 배출량 감축의 직접적인 효과 측정을 어렵게 하는 등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어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다른 국가들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의 지적이 계속되고 있고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이를 개선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약 1만원 수준인 반면, 유럽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가격은 약 10만원 수준이다. 기후변화를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는 한국에서 배출되던 유럽에서 배출되던 그 영향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온실가스 1톤을 배출하는 비용이 한국에서 배출하는 비용보다 10배 높다는 것은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세와도 연관성이 크다. 기업은 낮은 배출권 가격을 원하고 정부는 기업의 국제경쟁력 등을 고려하여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탄소시장에 개입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나름 배출권 가격의 안정화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낮은 배출권 가격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술 투자 및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축시키고 있다. 현재 2026년부터 시작하는 네 번째 배출권거래제기본계획에 대한 이해당사자와 다양한 집단의 의견수렴이 진행되고 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산업계는 기업의 비용부담과 경쟁력 저하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반면 시민단체는 보다 강력한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 정부는 과연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답은 어려울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제1장 제1조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의 목적은 “시장기능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핵심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기반으로 배출허용총량을 명확하게 결정하고 이를 참여기업에 공정하게 할당함과 동시에 배출권 거래가 투명하게 거래되고 가격 신호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탄소시장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모쪼록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배출권거래제도의 새로운 10년이 성공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지혜로운 결정이 도출되길 기대한다. 조용성

[기자의 눈] 尹 탄핵안 가결, 이제는 정상화에 집중할 때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헌정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다. 국회는 지난 14일 본회의를 열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윤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11일 만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열흘간 겪지 않아도 될 혼란에 휩싸였다. 12.3 사태 발발로 국민들은 밤잠을 못 이루고 국회와 광화문으로 향했고 연일 시위가 이어졌다. 사고는 터졌는데 책임지는 이는 없는 상황에 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만큼 이제는 그간의 혼란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계엄 사태로 증시는 출렁이고 있고 환율도 급등했다. 위축된 내수 경기도 다시 살려야 한다. 다행인 점은 탄핵안 가결로 국내 증시는 최악은 면할 것이라는 점이다.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그간 하락했던 지수는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증시 부양을 위해 밸류업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고 발표한 만큼 국장을 빠져나간 개미들이 다시 돌아올 길이 열렸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을 당시에도 흔들리던 증시는 가결 직후 안정세를 보인 바 있다. 다만 대외적으로 하락한 국가 이미지는 곧바로 회복되긴 어려워 보인다.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계엄 사태와 탄핵안 표결 과정을 지켜봤다. 이에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로 급등한 이후 고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으로 여행 오는 인바운드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내년 초 한국 여행을 계획했던 독일인 친구가 계엄 직후 “지금 한국에 가도 진짜 괜찮은 거냐"며 불안해하는 걸 보면서 씁쓸했다. 물론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대통령은 권한이 정지됐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정 안정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해외 정상들과 협상을 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협력을 구상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이 또한 현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내년 1월 방한 계획을 보류했다. 이제 남은 건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이를 통한 신속한 국정 회복이다. 추운 날씨에도 국회로 나가 계엄을 막고 탄핵을 이끌어낸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국가 정상화에 나서주길 바란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EE칼럼] SMR 시대와 팀 코리아의 i-SMR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 에너지는 무거운 핵이 가벼운 핵들로 분열하면서 질량 결손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이 열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형태로 활용한다. 대량의 석탄이나 가스를 태워서 고온을 만들어내는 대신 원자로를 사용하는 것인데, 비슷한 운전인력과 자본으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경제성이 더 좋기 때문에 종래에는 원전을 더 크게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모델인 APR1400(전력 1400메가와트 생산)은 그런 관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형 원전 모델 중 하나이다. 반면에 300메가와트이하의 전력을 생산하는 소형 원자로는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낮으니, 그동안은 러시아나 미국 등에서 잠수함과 항공모함 등 군사목적 선박이나 극지에서의 활용에 국한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최근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규격화되고 공장제작으로 생산되는 소형모듈형원전(SMR)이 현장에서 십여년에 걸쳐 건설되는 대형원전과 경제성으로도 경쟁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종래 대형원전에서는 안전설비를 강화하면서 비용이 계속 증가하였는데, SMR은 특유의 안전성 덕분에 주변에 방사선 비상대비구역조차 설정할 필요가 없게 되니 안전성은 물론이고 사회적 수용성도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 탈탄소 에너지원 중에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출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뿐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에너지에서는 자연적으로 어쩔 수 없는 간헐성이 생기는데, SMR의 탁월한 출력조절력은 이런 간헐성을 보완해 주어 신재생에너지와 결합해서 사용하면 최상의 탈탄소 조합이 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는 SMR의 바람이 거세다. 최근에 계속 보도된 것처럼 AI나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대량 전력 소비 기업이 원자력으로 생산한 에너지를 직구매하는 것은 비즈니스 연속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탄소배출을 피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선택지이니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기업이 원자력을 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현존하는 발전소를 활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최근의 계약은 모두 SMR을 도입하는 계약이다. 국가나 주정부 차원에서도 원자력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많은 주정부들이 SMR,을 도입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고, 텍사스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SMR로 전환하기 위한 조사도 진행되었다. 북유럽의 부국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전기생산은 물론이고 지역난방을 저탄소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고자 SMR을 도입하고 있다. 유럽에서 새로운 SMR을 도입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 프랑스,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등 너무나 많아서 이제 SMR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러한 동향이 단지 개별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노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년 1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유엔 COP28 기후변화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22개 국가 장관들은 2050년까지 전세계 원자력 발전용량의 3배 확대를 위한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SMR과 첨단 원자로를 지원하고, 나아가 탈탄소화를 위한 원자력기반 수소 또는 인공합성연료 생산도 지원하기로 하였다. 이런 와중에 SMR을 만들어 공급하겠다는 회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이 설립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 각국이 에너지 안보에 촉각이 곤두선 상황에서, SMR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라고 이름붙인 원자로를 2020년부터 개발해 왔다. 산업부와 과기부의 공동 지원 하에 원자력기업들, 원자력연구소, 학계가 팀 코리아를 이루어서 내년에 표준설계에 대한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한 서방세계의 3대 원전 강국 중 하나이다. 이 i-SMR에는 한수원과 원자력연구소에서 수십년간 개발해 온 많은 원자로의 경험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 최고의 운전이력을 보였고 우리나라에서 거의 매년 건설해 왔던 가압경수로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무전원 피동안전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실제 건설, 인허가, 운전에서 다른 신규노형보다 큰 강점이 있을 것이다. 특히 붕산을 사용하지 않는 혁신적인 안전개념 덕분에 원자력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성에서도 미국과 여타 국가의 경쟁노형을 앞설 것으로 기대한다. i-SMR로 결집된 팀 코리아의 노력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최신형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이런 기술을 평가하고 감독할 수 있는 법체계와 규제체계의 개발도 중요하다. 규제가 제대로 안되는 원자력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니 이미 바짝 다가온 SMR의 시대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원자력 시장은 각국의 총체적 경쟁의 장이면서 동시에 가장 냉정한 기술 경쟁의 장이다. 제대로 잘 만드는 팀만이 살아남아 새롭게 열리는 거대한 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체코원전 우선협상자 선정에 이은 또 한번의 팀 코리아의 활약을 기대한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탄핵안 가결 이후...문제는 경제야

매서운 겨울이 오고 있다. 겨울이야 때가 되면 늘 찾아오는 계절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폭설로 시작한다. 마치 마른하늘에 계엄령이 떨어지고 우리 경제에 예사롭지 않은 겨울이 예고되듯이 말이다. 지난 3일 밤 10시 30분 계엄령이 발동되자마자 원화 NDF 환율은 1,430원대까지 치솟았으나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물량으로 잠시 하락하였다가, 1,440원을 넘기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금융환경에서야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외환시장 개입으로 안정될 수 있겠으나, 몇 시간후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환율은 1,420원을 훌쩍 넘은 상태였다. 지난주 탄핵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환율은 1,430~1,440원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어제 비록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 탄핵안이 가결되었으나 문제는 정치적 리스크에서 전이된 경제적 리스크이다. 환율상승은 우리 경제의 수출경쟁력과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도 이제 옛말이다. 이미 과잉공급과 저가 밀어내기로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중국에 대해 수출가격 경쟁력을 지니려면 환율이 매우 큰 폭으로 상승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환율상승은 어떤 측면에서도 반갑지만은 않다. 환율 급등은 해외투자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내 금융시장에서 10% 수익을 낸 해외자본이 달러로 환전하여 자국으로 회수할 때 원화환율이 10% 오른다면 투자수익률이 0%가 된다. 환율이 10% 이상 상승할 경우 투자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환율의 급격한 상승은 이러한 해외자본의 이탈을 부추긴다. 수출경쟁력은 고사하고 국내 금융시장에 자금경색과, 자산가격의 하락은 현재까지 해결하지 못한 TF, 민간부채의 문제를 크게 악화시킨다. 민간부채 문제로 금리인상 시기에 온갖 비명소리가 들리던 우리경제다. 유동성 감소는 금리인상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을 가져다줄 수 있다. 또한 급격한 환율상승을 저지하기 위한 외환당국의 개입은 달러 매도와 원화 매입이 이루어지므로 자연히 본원통화를 감소시킨다. 이는 긴축적 통화정책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므로 바짝 얼어버린 자금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 된다. 계엄 다음날 열린 임시 금통위에서 한은 총재가 약 150조의 유동성 공급을 약속한 이면에는 외환시장 개입으로 감소할 수 있는 유동성이 최대 150조에 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한편 한은이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은행의 지준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지는 못한다. 만약 자금시장의 불확실성 증대와 해외자금 이탈 등 대외여건 불안으로 은행이 보수적으로 자금울 공급하고 초과지준만 증가한다면 시중에 자금부족현상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계엄의 부작용을 축소하기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동원할 경우 은행은 자본건전성 등 위험관리에 더욱 민감해질 것이며 이는 더욱 심각한 자금경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자금부족이 지속될 경우, 내수경기 부진으로 업황이 단군이래 가장 어렵다는 자영업자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영업자들의 폐업으로 임대를 구한다는 상가가 늘어가는 마당에 자영업자들이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폐업은 가속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상가 소유자들은 괜찮을 것인가? 그들도 부채를 통해 상가를 구입하였을 것이고 또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하다. 대외여건은 또 어떠한가? 지금 중국은 여러 교역대상국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한중 FTA를 요구하고 알리, 테무가 국내시장을 침투하기 위해 TV 광고까지 동원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이렇다할 정책적 대안도 내놓지 못하였다. 미국은 이제 한 달 뒷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는 마당에 우리의 대통령은 사실상 공석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가오는 2025년은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내수를 살리고 대외 경쟁력 강화와 불확실성 감소를 위해 노력해야할 시기에, 시대착오적인 계엄에 휘말려 대통령은 대표성을 잃고 정책여력은 계엄의 불을 끄기 위해 모든 자원이 동원하게 되었다. 그렇다 문제는 경제다. 대외의존도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이 석연치 않다. 여러분도 계엄령이 발동된 어느 개발도상국에서 사업을 한다던가 행여 해외여행이라도 선뜻 가겠는가? 이제 우리가 그런 나라가 되었다. 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우리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나라"라고들 했다. 지금은 “전성기인줄 착각했던 나라"라고들 한다.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겨울 한파처럼 우리의 살을 에는 추위와 고통이 될 것이다. 1992년 당시 미대선 후보 빌 클린턴이 우리에게 외치는 듯 하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김수현

[기자의 눈] ‘제왕적 대통령제’ 손볼 지혜 모으자

중국 주(周) 나라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은 흔히 '나라 망친 군주'로 기억된다. 국정을 등한시하고 폭정을 일삼은 탓이다. 애첩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이유 없이 봉화를 피워 여러 차례 병력을 소집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제후들은 왕의 봉화가 거짓이라고 생각해 어느 순간부터 출병하지 않았다. 주나라는 건융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 지난 주말 뉴스를 보는데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같이 놀자며 졸랐다. 중요한 소식이 있어 지켜봐야 한다 하자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설명은 듣고 난 뒤 아들이 심각하게 물었다. “아빠 그런데 대통령이 뭐야?" 이때 떠오른 게 유왕과 포사 얘기다. 아들이 '대통령의 정의'를 물었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는 점에 스스로 놀랐다. 은연중 대통령을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도 대통령 후보가 되면 TV 토론에 나서면서 손바닥에 왕(王) 자를 새기고 싶어 할까? 우리나라 정치는 5년 단임형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수십년간 이어진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요직 임명권을 독차지하는데 사면권까지 가졌다. 유사한 대통령제(또는 이원집정부제)를 택한 미국과 프랑스를 살펴봐도 우리처럼 한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없다. 국무위원 대부분이 반대하는데 대통령 홀로 계엄령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다. 비선 실세가 나라를 다스리고 '탈원전'·'소득주도성장' 같은 망상이 경제를 망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볼 때가 됐다는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돼 있다.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등을 도입하는 방법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관건은 방법이다. 헌법 개정이라는 큰일을 국회에 맡기고 싶은 이는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국민투표법' 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 일부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외국에 있는 국민 등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아서인데 법 개정이 아직이다. 정국 혼란 수습을 위해 전국민의 지혜와 뜻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국회가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박원주 칼럼]리더십 ...그 책임의 무게

우리 사회에 리더는 왜 있는 것일까? 필자가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2003년의 이야기부터 해 보자. 일본인 지인과 함께 차를 몰고 동경으로 가는 중이었다. 라디오에서는 국회 의사진행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자위대의 이라크전 파병을 두고 참의원 의원들과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라크가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대량살상 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세계의 안보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자위대의 이라크전 파병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제 정신이냐며,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아무런 객관적 증거도 내밀지 못한 채 미국의 주장이 맞다고 강변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궁색해 보였다. 아무리 일본 정치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크다고 하지만 행정수반인 총리가 노골적인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미국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당시 한국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 반환 등 여러 이슈에서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고 있던 터라 더 대비되어 보였다. 일본인 친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총리는 당연히 저래야 하는 것 아닌가. 총리가 국회에서 욕을 먹으면서 미국 입장을 지지하니 미국이 더 파병을 서둘러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고,국민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 주장에 대놓고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지 않나." 조금 충격을 받았다. 국가 지도자의 체면을 손상시켜 가면서 국민들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그리고 약간의 깨달음도 얻었다. 지도자는 자기 몸에 검댕을 묻히면서 국민들의 자존심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때도 있구나 하는... 일본 정부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다음 해에야 마지못해 이지스함과 소수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했다. 한국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달랐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고 동등한 위치를 고수하려 했고, 파병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도 살펴야 했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의 참전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당시 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 의견을 낸 것에 대해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나름 그 의견에 공감하는 바도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2003년 4월 2일 국회는 비전투병력의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철군을 결정한 2008년 말까지 우리나라는 총 3000여명의 병력을 이 전쟁에 보냈고 이는 미국, 영국에 이어 연합군중 세번째로 대규모 파병이었다. 이 결정은 노 대통령 개인에게는 재앙이었다. 취임 당시 60%에 달했던 지지율이 이 것 때문에 20%까지 급락했다. 노 대통령은 나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고 국익을 지켰던 것이다. 두 리더 모두 국가와 국민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희생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기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 썼고, 노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소중한 정치적 자산을 잃었다.리더가 지켜주어야 할 국가와 국민의 가치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보, 재산권과 경제적 이익, 헌법상의 자유 등 많은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때 리더는 어떤 가치를 희생해서 무엇을 지켜야 할 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그 결단이 독단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하게 리더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2022년 2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시 문재인 정부에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상대국이었고 원유, 천연가스, 알미늄 등 필수 원자재의 주요 공급처였다. 삼성, 현대차를 비롯한 우리 대기업과 중소기업, 교민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활발한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우리 조선소에 40척 이상의 대형선박 건조를 발주해 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미국, EU, 일본 등은 광범위한 대러 수출규제와 금융제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에도 동참을 요구했다. 정부는 우리 국민과 기업의 타격이 적은 부분부터 적극적으로 제재에 참여했다. 그러나, FDPR로 대표되는, 비전략물자에 대한 자발적 수출규제는 우리 대러수출을 본격적으로 제약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유력 언론 등을 중심으로 정부의 미온적 제재 참여에 대한 비판이 계속 커져 갔다. 수출규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씨도 먹히지 않았고, 국격에 걸맞는 희생을 해야 된다는 여론이 대세가 되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2022년 3월 FDPR 참여를 결정하고 이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대러 제재가 기업 피해로 번지지 않도록 뼈를 깎는 외교적 노력을 해야 했다. 그로부터 2년반이 지난 지금, 적지 않은 우리 기업들이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멀쩡한 수출상품에 대해 상황허가를 신청했다가 반려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정부가 기업에 대해 이럴 수 있냐고 항변하는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런 결정을 했던 전 정부에 대해 격한 비난을 쏟아낸다. 2021년의 상황을 설명하면 그땐 제재가 이런 의미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안타깝지만 돌이켜 보면 모두의 이익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결정은 우리 선택지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 여론은 한국의 국격과 동맹의 가치를 경제적 이익보다 앞세우는 선택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그 결과로 고통받는 기업들을 마주할 때 마다 당시 이 결정에 참여했던 이들은 그 책임의 막대한 무게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잡다한 이야기를 했지만, 현재로 돌아와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 리더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국민을 지키려 몸을 내던지는 이, 자기 이익을 희생하면서 국익을 지키려는 이, 어려운 선택을 하고 그 책임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이, 그 어느 누구도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책임 있는 의사 결정에서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 침체로 현장에서 서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하는 공무원들이 없다. 중요한 정책 결정들이 멈춰서 있고, 국회는 여야간 정쟁의 장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배가 불렀는지 코인과세 같은 설익은 어젠다를 내놨다 주어담는 등 연이은 실책으로 점수를 까먹고 있고,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은 흉하기 짝이 없는 내분에 휩싸여서 민생이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위선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대통령이 선포했던 비상계엄령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이자 책임감 없는 리더가 자기 이익을 위해 어떤 짓까지 벌일 수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 주었다. 바로 하루전이었던 12월 2일 공주에서 열렸던 민생토론회에서 경제와 소상공인, 서민을 살리겠다고 비장하게 약속했던 대통령이다. 그가 겨우 하루만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기울어 가는 자기 권력을 지키려 했다. 국민의 인권을 초법적으로 제약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며, 국회기능을 정지하겠다는 계엄사 첫 포고문은 더욱 가관이었다. 6시간만에 내외 압박으로 계엄령이 해제되었지만 그 상처는 앞으로 두고 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80년대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군사독재를 몰아내려 거리로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같은 시기를 살았던 대통령이 이럴 수 있는가? 거듭된 정쟁과 쿠데타, 내분으로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들이 아사지경에 빠졌던 남수단의 내전이 상기된 것은 과한 일일까? 리더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로서 자기 소임을 다하는 행위자를 말한다. 역할을 손에서 놓고 자리에만 연연하는 리더는 없는게 낫다. 그가 자기 책무에 따라오는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방종하게 행사한다면 더더욱 존재 자체가 해악일 수 밖에 없다. 국민을 위해 자기 이익을 희생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 이제라도 조용히 물러나 주면 고맙겠다. 박원주

[EE칼럼] 부유식 해상풍력을 차세대 산업으로 키워야

석유의 정점을 일컫는 '피크 오일'이라는 용어가 있다. 과거에는 공급 관점에서 매장량 고갈로 인한 피크를 얘기했다면, 지금은 석유 수요의 정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트럼프 2기 하에서 미국은 석유와 가스 생산에 열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사용의 주체인 세계 시민들과 기업들은 깨끗한 에너지를 원한다. 조만간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가 전기 생산량의 10% 가까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2시간 넘게 햇빛과 바람에서 얻는 전기를 사용하는 셈이다. 태양광은 매년 3GW 정도가 새로 설치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한 축인 풍력발전은 이제 본격적인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입지 제약이 있는 육상풍력 보다는 해상풍력이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거대한 구조물을 해상에 안전하게 설치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파도, 염분, 폭풍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까다로운 해양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확보하려면 수십 년에 걸쳐 파도와 폭풍을 견디는 방법을 터득한 산업의 힘을 빌려야 한다. 이 때문에 해상풍력에 적용되는 기술들은 전통적인 석유‧가스 산업에서 사용해 온 것들이 많다. 특히 부유식 해상풍력이 그렇다. 석유‧가스 산업은 가혹한 해양 환경을 견딜 수 있는 플랫폼을 설계, 제작, 운영한 경험이 충분하다. 이러한 전문지식은 부유식 해상풍력의 핵심인 터빈 플랫폼에 그대로 활용될 수 있다. 해상 유전 플랫폼을 고정하는데 사용하는 계류 및 앵커링 시스템도 부유식 해상풍력에 적용된다. 유지관리 및 운영에 사용되는 선박은 부유식 풍력단지에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석유‧가스 산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는 해상풍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석유‧가스 기업과의 협업은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일본은 덴마크, 노르웨이와 협력하고 있다. 우리도 이들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석유·가스 기업들은 부유식 해상풍력에 투자하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이들의 풍부한 자금과 위험관리 능력은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기술을 확장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노르웨이의 국영 석유·가스 기업인 에퀴노르가 세계 최초의 상업용 부유식 해상풍력 단지인 하이윈드 스코틀랜드(30MW)를 조성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해상풍력에 관한 한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이다. 중국, 대만에 비해 훨씬 뒤쳐져 있다. 우리처럼 부유식 해상풍력을 통해 이를 만회하려고 한다. 일본의 해안선 길이는 세계 7위이며, EEZ 면적은 세계 6위이다. 일본 해역은 수심이 깊어 부유식 해상풍력이 적합한 편이다. 기술개발과 실증을 위해 2021년부터 2030년까지 그린이노베이션기금 1,235억엔을 지원한다. 터빈, 부유체, 해상변전소 생산을 위한 제조시설에 투자하기 위해 345억엔을 배정했다. 미쯔비시중공업과 히타치는 전세계 부유식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특허 순위에서 각각 1위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2031년까지 울산 앞바다에 세계 최대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울산시와 투자의향서를 체결한 4개 컨소시엄이 4,875MW 단지 조성에 참여한다. 이들의 외국인 직접 투자규모는 4,500억원, 총 사업비는 37조 2천억원에 달한다. 예정대로 실현된다면 울산이 세계적 해상풍력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유식 해상풍력의 보급 가속화를 위해서는 혁신적 기술개발을 통한 비용 절감이 시급하다. 2017년 설치한 하이윈드 스코틀랜드 단지는 5기의 터빈에 15개의 앵커를 사용했지만, 2023년 준공한 하이윈드 탐펜 단지는 11기의 터빈에 19개의 앵커만을 사용했다. 1개 앵커에 여러 기의 터빈을 연결하는 기술을 적용하여 비용을 절감했다. 강철 대신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부유체를 제작하면 재료비의 50%를 절감할 수 있다. 계류선 역시 스틸 체인 대신 탄소섬유와 같은 합성 로프를 활용하면 안전과 수명을 개선할 수 있다. 미국은 서해안에 2045년까지 25~50GW의 부유식 해상풍력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에 필요한 공급망이 갖춰져 있지 않아 미국 정부는 부품을 동아시아에서 조달하는 것이 비용효과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 여러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해상풍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선사들이 세계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울산을 포함한 동남권에 있는 것도 경쟁우위에 도움이 된다. 부유식 해상풍력을 차세대 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체계적인 전략과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박성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