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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플라스틱, 고생 많았다, 잘 가라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물질 중 하나로 플라스틱(Plastic)을 꼽을 수 있다. 플라스틱은 '빚어내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기원한 것처럼 변형이 쉽고 이를 통해 어떤 형태의 제조가 가능하며, 내구성도 튼튼하고, 원료비도 저렴해 현대사회에서 안 쓰이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고분자 물질인 플라스틱은 반영구적으로 썩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특징은 초기에는 축복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지금은 지구를 죽이는 최악의 물질로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구 바다의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서도 어김없이 인류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썩지 않고 발견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에 의하면 2016년 기준으로 최대 1400만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강, 바다 등 수생 생태계로 유입됐다. 이 양은 2040년에 최대 3700만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바다로 유입된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 대신 파도 등으로 미세하게 쪼개져 수생물의 몸속으로 유입돼 최종적으로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몸 속에 축적된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는 인간 몸 속의 여러 장기에서 미세플라스틱 검출량이 증가하고 있다. 더 이상 플라스틱 오염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유엔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플라스틱 오염 방지에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데, 오는 11월 부산에서 플라스틱 역사에 기념비적인 매우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위한 정부간협상위원회(INC)의 최종회의가 그것이다. 이 회의의 주제는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이다. 반영구적으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태계까지 교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뜻을 모아 규제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회의는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을 좀 줄여 봅시다"라는 자발적 협약이 아니라, “앞으로 이 플라스틱은 사용을 못 합니다"라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결의안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 세계가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하다보니 이견이 많다. 목표연도를 정하고 플라스틱 사용량을 감축하자는 강경파와 오염 방지가 목적이니 폐기물 처리만 잘하면 된다는 온건파의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그 중간 즈음이 절충안이라고 볼 때 어쨌든 플라스틱의 전성기는 이제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국은 플라스틱을 만드는 석유화학산업이 세계 4위이다. 한국도 이제 플라스틱과 작별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간이 왔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자의 눈] 삼양식품 ‘불닭면 리콜’이 던지는 교훈

“불닭 신화라지만 결국 불닭 하나로 버티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갑작스런 변수에 회사가 느끼는 당혹감은 더 크겠죠." 최근 식사 자리에서 만난 한 식품업계 관계자가 귀띔해 준 삼양식품 분위기다. 그동안 '너무 매운 덕분에' 잘 나가던 불닭면이지만, '너무 매운 탓'에 처음으로 해외서 리콜 사태를 겪는 삼양식품의 아이러니 상황을 전달한 것이다. 앞서 지난 6월 덴마크 수의학·식품청(DVFA)은 삼양식품의 '2배 매운 핵불닭볶음면', '3배 매운 핵불닭볶음면', '핵불닭볶음탕면' 등 불닭라면 3종을 현지 시장에서 리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현지 판매 중인 핵불닭면 3종의 캡사이신 수치가 높아 '급성중독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양식품은 덴마크 정부에 반박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캡사이신 함량 측정이 잘못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해당 제품의 캡사이신 함량이 덴마크 당국 발표수치의 약 4분의 1 수준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불닭면의 해외 리콜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 전반으로 파장이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실제로 뉴질랜드 식품안전국도 지난달 하순 불닭복음면 캡사이신 함량 조사에 착수했다. 다행히 리콜 필요가 없다고 결론이 나 삼양식품은 가슴을 쓸어안았다. 일각에선 삼양식품이 덴마크 리콜 사태를 계기로 '노이즈 마케팅' 홍보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부정적 이슈로 해외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려는 홍보 전략이 수출지향형 기업의 이미지에 마냥 좋게 작용할리는 만무하다. 지난해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액은 8000억 원을 돌파했고, 특히 불닭면 비중이 80% 이상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불닭면 브랜드와 수출 의존도가 큰 삼양식품에게 이번 리콜 사태는 위기감으로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삼양식품은 리콜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불닭면이 잘 나가지만, 불닭면 이후 차선책인 '포스트 불닭면' 브랜드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 동시에 리콜 사태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불닭면의 매운 맛을 앞세워 재도약에 성공했지만, 한편으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이른바 '맵부심(매운맛+자부심) 현상'에 편승한 상술을 부채질한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삼양식품이 한국의 매운 맛과 음식을 해외로 전파하려는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더 매운 맛' 경쟁보다 '건강한 매운 맛'의 표준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 트럼프 ‘시즌2’ 가능성 고조…韓 산업계 대응책 마련 시급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 첫번째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9월 '2차전'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중동 분쟁과 관련해 아랍 국가와 멕시코를 혼동하는 등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탓이다. 조지아·애리조나·펜실베이니아 등 일명 '경합주(스윙스테이트)'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세가 지속되면서 재집권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 산업계도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답게 무역수지를 종종 언급하는 인사다. 5월 한달간 자국에 109억3000만달러를 수출하는 등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인 한국도 타겟이 될 수 있다. 특히 반도체·자동차·배터리·철강·방위산업을 비롯해 미국을 주력 시장으로 하거나 현지 진출을 통한 성장을 모색하는 업종이 우려 대상으로 꼽힌다. 반도체와 자동차의 경우 관세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65만대에 달하는 차량을 판매했고, 올 1~5월에도 5만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전년 동기 대비 70.5% 성장하면서 탑3 진입을 노리는 상황이다. 철강업계도 미국 대선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동북아 3국 중 무관세로 수출 가능한 물량을 가장 많이 배정 받았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에 대해 60%가 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한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이지만, 철강을 포함한 수입산 제품을 겨냥한 청정경쟁법이 의회에서 통과될 경우 현 수준의 수출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앞서 US스틸 인수를 시도했으나 난항을 겪고 있는 일본제철의 사례로 볼 때 국내 기업도 현지 진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의 경우 '먹구름'이 예상된다. 대중 규제 강화가 장기적인 모멘텀 확보에 도움을 주겠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폐지 또는 축소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되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1분기 영업이익 1573억원을 시현했다. 그러나 첨단제조 세액공제를 제외하면 -316억원으로 떨어진다. SK온은 세액공제까지 빠지면 적자 폭이 더욱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전기차 의무화 및 보조금 지급 정책 폐지를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는 국내 업계가 미래먹거리로 보고 있는 지역이다. 전기차 침투율이 낮고 중국 제품의 입지가 약한 덕분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구매력을 지녔다는 점도 거론된다. 삼성SDI가 북미 진출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돌아오면 배터리3사의 투자금 회수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2027년 글로벌 수출 4강 진입을 위해 미국 진출을 타진하는 K-방산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한·미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재협상 등 양국간 방산협력이 후퇴할 수 있다는 이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공언한 것도 변수다. 그간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국산 무기체계의 약진을 도운 '동앗줄'이 사라지는 셈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이번 파도를 잘 넘기면 향후 수출경쟁력 증대 등 오히려 리스크를 위기로 바꿀수도 있다. 가격경쟁력 향상을 비롯한 정공법 뿐 아니라 합작사(JV) 설립 확대로 '바이 아메리칸' 기조에 대응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관세장벽이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자국 산업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지속적으로 어필해야한다. 미국은 스무트-홀리법을 비롯한 악성규제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아웃리치 활동을 전개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점은 다행이지만, 보다 현실적인 대책 수립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됐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 눈] 코스닥 퇴출 기준 완화가 필요

지난 18일 거래소는 이노그리드의 코스닥시장 상장예비심사 승인 결과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거래소는 최대주주 지위분쟁을 이노그리드가 숨겼다는 것이 골자다. 이노그리드는 즉각 반박했다. 분쟁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거래소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투서를 넣은 자는 해외 도피 중이고, 본인이 지배관리 한 코스닥 상장사가 상장 폐지됐다. 회계장부 조작도 법원에서 인정돼 메신저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이다. 거래소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코스닥 시장에 좀비 기업이 많아 K-밸류업에 저해되기에 좀비 기업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좀비 기업으로 인한 주주들의 피해는 상당하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국내 성장성 특례상장 1호' 셀리버리다. 셀리버리는 좀비처럼 기생하다 불법 주총을 벌이더니 결국 상장 폐지됐다. 상장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하고 실적 역시 예상과 크게 다른 경우도 있다. 최근 유상증자를 발표한 비트나인이 대표적이다. 비트나인은 상장 당시 지난해 135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상은 132억원의 영업손실 뿐이었다. 접대비와 복리후생비 지출은 예상보다 2.5배 많았다. 무엇보다 비용의 절반 이상을 기타 비용으로 분류, '깜깜이 회계'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비트나인은 이달 결국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 두 사례 이외에도 유사한 사례는 많다. 이 같은 사례는 소액주주들을 국내 주식시장에서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정부는 은행 대출로만 이뤄지고 있는 기업들의 자금 확보 경로를 다양화하기 위해 기업공개(IPO)를 장려하고 있다. 즉 IPO는 자금 확보를 용이하게 해 좋은 기업들의 성장을 이끌기 위함이다. 하지만 모든 IPO 기업들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들이 발생한다. 껍데기(Shell) 기업 양산, 자금 분산 효과 등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특히 껍데기 기업은 주가 조작의 수단으로 자주 쓰이는 등 부작용이 상당하다. 그렇기에 시장 퇴출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제시한 예상 손익계산서 기준 예상 영업이익이나 기술 개발의 진척도가 50%를 밑돌 경우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게 된다면 IPO 과정에서 부담도 줄어들게 돼 이노그리드와 같은 초유의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적극적인 퇴출이 진행돼 작전 세력이 개입할 여지도 줄어든다. K-밸류업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지금이다. 개미들이 투자한 자금이 성장주·가치주·배당주 등 껍데기가 아닌 정당한 기업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세원이앤씨가 삼킨 주주 가치와 시장 신뢰

최근 코스피 상장사 세원이앤씨를 취재하면서 자본시장의 민낯을 목격했다. 이 회사는 주주가치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소수 경영진의 이익만을 좇는 모습을 봤다. 세원이앤씨가 벌인 일들은 황당 그 자체다. 수백억원대의 의심스러운 자산 매입을 강행하면서 이사회 소집부터 의사결정까지 온통 하자투성이다. 지난 5월 13일 열린 이사회는 정관상 규정된 소집 절차를 무시한 채 전날 저녁 카카오톡으로 통보되었다. 더욱이 안건의 세부 내용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매입하려던 자산들도 문제투성이였다. 성지건설 소유의 부동산 우선수익권은 15년간 미분양 상태로 7차례나 공매에 실패한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96억원이라는 가격에 매입을 결정했다. 성지피에스의 회생채권 120억원어치도 실제 가치는 10억원도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화신테크 소유 부동산 매입 건은 더욱 황당하다. 해당 부동산은 이미 법원의 처분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상태였고, 강제경매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도 세원이앤씨는 이사회 직후 전환사채(CB) 30억원 어치와 현금 20억원을 거래 상대방에게 건넸다. 결국 이 부동산은 얼마 후 법원 경매를 통해 제3자에게 낙찰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주들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특정 세력에게 회사의 자금을 흘려보내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최승혁 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이번 거래의 주체인 세원이앤씨, 성지건설, 성지피에스 등 여러 회사를 넘나들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모든 일이 버젓이 상장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주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상장회사가 소수 경영진의 사익 추구 도구로 전락한 꼴이다. 이는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를 넘어 우리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를 해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금융당국과 사법기관의 철저한 조사가 시급하다. 세원이앤씨의 의사결정 과정에 불법적 요소는 없었는지, 자금의 흐름은 정당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만약 위법 행위가 적발된다면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해 유사 사례의 재발을 막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상장회사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전횡을 막고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감사 기능의 실질화 등이 시급히 요구된다. 세원이앤씨 사태는 우리 자본시장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제 이를 개선할 차례다. 당국의 엄정한 법 집행과 제도 개선,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의 경각심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건강한 자본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세원이앤씨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애물단지 된 청약통장

“더 이상 청약통장 납입금으로 아등바등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주변 친구들도 이제는 필요없다며 해지하고 있는데, 나도 고민 중이다." 최근 만난 한 30대 지인의 고민이다. 그의 말대로 최근 청약통장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2022년 6월을 정점으로 올해 1월까지 19개월 연속으로 줄었다. 이 기간 무려 147만여 명이 빠졌다. 올해도 2~3월 반짝 늘었지만, 4월에 다시 꺾인 뒤 5월까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청약통장이 외면받고 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아파트 값이 너무 비싸졌다. 청약통장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더라고 감당하기가 어렵게 됐다. 게다가 매매가가 떨어지면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더라도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나마 조금 싼 공공 분양 물량은 심각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무주택자가 저축한 청약통장을 활용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정부도 청약통장 이탈을 막기 위해 각종 유인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말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유리하도록 대대적인 청약제도 개편을 단행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중복청약 허용, 다자녀 특별공급 기준 3자녀→2자녀 완화, 미성년자 가입인정 기간 2년→5년 확대, 공공분양 신생아 특별공급 유형 신설 등 다양한 제도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오히려 4~5월 연속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감소했다. 그러자 국토부는 청약통장 납입 인정액을 월 10만원에서 25만원으로 확대하고, 청약부금·청약예금·청약저축을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전환을 허용키로 하는 등 추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청약통장 신규 가입에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청약통장을 주요 재원으로 하는 주택도시시금을 저출산 대응,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해소 등으로 펑펑 쓰다가 고갈되자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2021년 49조원이었던 기금여유자금은 올해 3월 기준으로 13조90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내 집 마련의 필수품으로 여겨졌던 청약통장이 다시 무주택자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매달 납부하는 무의미한 지출이 아닌 든든한 주거 마련 사다리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단순히 청약통장 혜택만 늘리는 것은 실익이 없는 대책이란 점을 인식하고 주택공급 활성과 분양가격 안정화로 이러한 믿음을 줘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기자의 눈] 이유없이 달리는 말에 올라타선 안된다

“주가가 급등하는데 관심이 안생길리 있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지인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꺼넨 말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들과 관련된 기업들이 일종의 테마주가 돼 주가 급등락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을 통해 “동해 가스전 주변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0억 배럴을 현재 가치로 따지면 삼성전자 시총의 총 5배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더욱 키웠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련주들은 급등했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등을 통해 전달된 관련주들은 증권사 리서치센터들도 관련주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기대감마저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정부의 '저출생 종합 플랜'이 6월 초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에 저출산 관련주들이 급등했고, 지난 1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관련주들이 등락을 거듭하기도 했다. 정책 관련주에 대한 투자가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플러스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긍정적이다. 문제는 해당 테마와 연관성이 거의 없는 종목까지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립하는 테마주에 투자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거다. 일례로 동해 가스전 테마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국석유가 대표적이다. 정식 사명은 한국석유공업이다. 1분기 보고서를 보면 아스팔트 매출 비중이 39.4%에 달한다. 케미칼과 합성수지 부문도 각각 32.6%, 18%다. 한국석유공사와는 다른 회사다. 석유공사는 비상장 기업이다. 출산관련 정책 수혜주 중 삼익악기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도 아이러니 하다. 올 1분기 보고서를 보면 매출 비중의 41%가 악기사업이며 집단에너지부문이 48%에 달한다. 주식 격언 중에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말이 있다. 강하게 상승하는 주식에 투자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올라탄 말이 달리지 못하는 데에도 억지로 달리고 있다면 올라탄 사람이 다칠 수 있음은 자명하다. 국내 주식시장이 어려운 이유는 무지성에서 비롯된다. 무지성 주식 권유와 무지성 투자가 혼합된 결과다. 확실한 모멘텀을 가진 회사들은 찾아보면 많다. 이유없이 달리는 말에 올라타선 안된다.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양성모 기자 paperkiller@ekn.kr

[기자의 눈] 당국 골칫거리 단기납 종신, 이번엔 ‘과세’로 제동…부메랑은 소비자 몫?

정부가 비과세로 판매됐던 단기납 종신보험 상품에 대해 과세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과세 여부와 관련된 판단은 당초 지난 달 결정될 계획이었으나 법령 제정 및 개정의 차원이 아닌 해석에 따라 결론이 갈릴 수 있는 문제로써 향후 발생할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검토 작업이 길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정부가 이전 판매분까지 과세 대상으로 포함을 고려 중인 데 있다. 앞서 보험사들은 단기납 종신보험을 비과세 상품으로 안내하고 판매해왔다. 5~7년 동안 보험료를 납입하면 사망사고를 보장받을 수 있는데다 10년을 유지할 경우 냈던 보험료의 30%가 넘는 금액까지 해약환급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는 데서 인기를 모았다. 금융당국이 소비자가 이를 저축성 보험으로 오인할 수 있다며 지적하자 판매를 이어온 보험사들은 일제히 '고환급금' 마케팅을 중단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 피해를 막으려던 제재가 오히려 절판마케팅 조장과 불완전판매라는 파장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따랐다. 업계에선 '효자상품'이 가로막힌 데 대해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현재 단기납 종신보험은 새로운 특약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생보업권 내 먹거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만 당국이 단기납 종신 상품에 대해 '비과세 대상 제외'를 확정할 경우 업계와 소비자로부터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단기납 종신 상품이 '저축성'이 아니라며 제재에 나섰던 정부가 단기납 종신보험을 저축성 보험처럼 여기고 과세해야한다면 이중잣대가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단기납 종신 상품이 세금을 물지 않는 것으로 알고 가입했다가 난데없이 15.4%의 이자소득세를 물게 된다. 소비자로선 단기납 종신 상품이 결코 '저축성'이 아니라는 안내를 듣지만 '저축성 상품처럼 과세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게 되는 격이다. 업계는 업계대로 발등의 불이다. 소비자들로부터 대규모 해약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고, 갑작스런 보험금 반납에 보험사 건전성에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업계에선 당국이 당초 단기납 종신을 판매하는 보험사들에게 '10년을 채우지 않고 해지하면 원금 중 일부만 돌려받는다는' 점을 안내하도록 해놓고 지금은 소비자들로부터 나오는 해약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냐는 눈총도 나온다. 세수 부족에 따른 정부의 법령 해석 방향이 소비자와 업계에 일관된 잣대로 향하기를 기대해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눈] 최저임금 차등적용, 국회 아닌 국민 설득해야

이달 27일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 법정시한이 다가오면서 경영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 양측간 공방이 언제나 그렇듯 격화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이 화두로 떠올라 노사간 찬반 논리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모습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경영 여건이 어렵고 업무 난이도가 낮은 일부 업종이나 실질생활비가 서울에 비해 적은 지역의 최저임금을 타직종보다 낮게 적용해 동결 또는인하해 달라는 경영자측 요구사안이다. 특히, 경영난이 악화되고 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계는 “그동안 최저임금 상승률이 가팔라 폐업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등 업계가 다 죽어가는 상황"이라며 “최저임금을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대로 차등 적용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펴왔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공적 공제제도인 노란우산의 폐업공제금 지급 건수는 5만 125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 증가해 경영 상황이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차등적용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시 일반국민들은 실질임금 저하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만큼, 현재 네이버 등 인터넷 플랫폼과 소셜미디어(SNS)에서는 격한 반대 의견(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도 주기 어려우면 그냥 폐업하라"는 아주 직설적인 반응도 심심찮게 눈에 띌 정도이다. 노동계도 △최저임금법 취지 훼손 △저임금 근로자 차별 △직업간 불평등 심화 △고물가 현상상으로 인한 근로자 생활고 지속 △해당업종 구인난 발생 및 경쟁력 상실 등의 다양한 이유를 내세워 반대여론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시 근로자들의 소비 여력이 더욱 낮아져 결국 경기 침체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였다. 청년층 비정규직 노조를 대변하는 청년유니온은 지난 40여년간 생산력에 따라 각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 온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부작용이 심화돼 오히려 현재 단일 최저임금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간 갈등 및 도시지역 편중화가 심각해져 고질적 병폐라 할 수 있는 지역격차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로자가 대다수인 일반국민의 감정이 나쁘고 다양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최저임금위원회나 국회는 최저임금법 차등적용법 통과나 차등적용 실질 시행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법 차등적용법은 한계에 다다른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통과가 절실한 사안이다. 그런 만큼, 국회에 감정적 호소를 이어가기보다 최저임금 상하선과 최저임금 저하 시 증가하는 근로자 수 등 구체적 효과 논의·분석을 제시해 국민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여야 정쟁 속 출구 안보이는 22대 국회…이제는 타협할 때

22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여야의 원 구성 협상이 공전하면서 야당만 국회 상임위원회 일정을 수행하는 '반쪽 국회'가 3주 째 이어지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석 수를 앞세워 국회를 장악했다. 민주당은 국회의장에 이어 법제사법위원장, 운영위원장,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싹쓸이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특별위원회를 가동하며 국회 상임위 활동을 보이콧하고 나섰다. 시작부터 여야 사이 협상과 타협이 아예 실종되면서 22대 국회의 앞날은 21대 국회보다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확보하면서 입법 폭주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은 벌써부터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방송3법 등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던 법안을 재발의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비한 '거부권 거부법'까지 발의한 상태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재발의한 쟁점 법안들이 처리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갔다면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던 합법적인 장치들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이런 형국이라면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무한 반복될 소지가 다분하다. 민주당은 입법 폭주에 대한 역풍이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에도 '총선 민의'를 내세우며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남아있는 7개 몫의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할 분위기다. 여야의 이러한 극단 대치가 이어지면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민생 법안도 통과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고준위방사선폐기물법, 반도체법(K칩스법), 모성보호 3법 등은 아직까지 뒷전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길어지고 있다. 다수결을 밀어붙이며 입법 독주를 하고 있는 야당이나, 국회 활동을 하지 않고 입법권이 없는 특위에서 민생을 챙기겠다고 하는 여당이나 국민들 눈에는 국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여야의 고집이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서로가 공멸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뿐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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