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기자의 눈] 또 등장한 ‘코스피 5000’…주가지수가 공약의 도구인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건 경제 공약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주주환원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저PBR 기업 정리까지 내세우며 '저평가 탈출'의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민주당은 아예 '코스피5000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생각보다 차갑다. 익숙해서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 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그보다 앞서 2007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비슷한 공약을 꺼낸 바 있다. 매 대선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지수 공약. 시간이 흘렀지만, 코스피는 아직도 2500 언저리를 맴돈다. 이 후보는 “한국 시장은 저평가 상태이며, 투명성만 확보돼도 5000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방향성은 공감된다. 주가조작 의혹, 물적분할 논란, 대주주 중심 지배구조 등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는 고질병은 분명 존재한다. 상법 개정 등으로 주주 권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긍정적이다. 문제는 '가능성'이다. 주식시장은 정책만으로 오르지 않는다. 구조개혁이 중요한 건 맞지만, 글로벌 금리, 환율, 지정학 리스크, 외국인 수급 같은 외생 변수 없이는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현재 시장은 오히려 '정책 기대감'보다 '정치 테마주'에 더 민감하다. 특정 정치인과 연결된 종목이 수백 퍼센트씩 오르고, 실적이 바닥인 기업이 주가 상승률 1위를 찍는 상황도 발생했다. 실적도, 수급도, 펀더멘털도 무시한 '천하제일 단타 대회'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장에서 '5000'을 논하는 건 무색하다. 더 큰 문제는 포퓰리즘의 그림자다. 기업 성장은 제쳐두고, 주주 친화 정책만 몰아붙일 경우 자칫 기업 투자 위축이나 소송 남발, 단기 투기자본 유입 등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상법 개정과 관련해 기업들의 우려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주식시장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하지만 그 목표가 '선거용 지수'에 맞춰진다면 정작 시장은 더 멀어진다. '코스피 5000'은 수치가 아니다. 시장이 자생력으로 회복했을 때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이번에도 또 지수는 공약의 도구가 됐다. 다만 그 공약이 유권자 향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 시장에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난 20년간 수없이 반복된 '지수 공약'의 역사 속에서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기대해본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작지만 강하다, 삼성 생활가전의 반격

삼성전자 안에서도 생활가전(DA) 사업부는 상대적으로 '작은 부문'이다. 반도체나 스마트폰에 비해 매출 규모는 작고, 언론의 주목도도 덜하다. 같은 완제품 사업이라 해도 TV를 맡은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가 '글로벌 1위' 타이틀을 19년째 지켜온 데 비하면 생활가전은 존재감이 옅은 편이다. 내부에서도 “우리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때는 '삼성 가전'이라는 말만으로도 경쟁력을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브랜드들이 '가성비'를 무기로 치고 올라오고, 프리미엄 시장에는 강력한 글로벌 경쟁자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생활가전 사업은 흔히 VD 사업과 함께 'VD·DA 부문'으로 묶이지만, 실적 온도차는 뚜렷하다. TV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동안 가전은 늘 '반전'을 꿈꿔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생활가전 사업부는 최근 눈에 띄게 분주하다. '스크린 에브리웨어', 'AI 홈' 같은 혁신 전략을 통해 새로운 가전 생태계를 구상하고 있다. 오디오 전문 브랜드 인수에 이어, 최근에는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까지 품에 안으며 글로벌 공조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겉으로 보기엔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가전 사업 체질 개선을 위한 중요한 밑그림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팔릴 제품만 고민해선 미래가 없다. 5년, 10년 후를 내다보며 기술력과 포트폴리오를 다듬어야 진짜 반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가전 사업부 직원들도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갖고 신기술과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으로 노태문 사장을 선임했다. 노 사장은 삼성 스마트폰 사업을 일군 주역으로, '갤럭시 신화'를 이끈 인물이다. 한종희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리더십 공백을 메우기 위한 포석이지만, 동시에 완제품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적 인사로도 해석된다. 특히 노 사장이 최근 생활가전 부문에 큰 관심을 보이며 현장 스터디를 반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조직 내부에서는 “갤럭시의 혁신 DNA가 가전에도 이식되길 기대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작고 조용해 보일지 몰라도, 삼성 생활가전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상반기 신제품 출시를 시작으로, 연내에는 '볼리' 등 신개념 가전도 선보일 예정이다. 덩치가 작다고 열정까지 작은 건 아니다. 삼성 생활가전의 조용한 반격이 시작됐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면세점 위기 짓누르는 ‘인천공항 임대료’

국내 면세점업계가 불황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면세점 4사는 외견상 모두 영업흑자로 전환하거나 전분기(2024년 4분기)보다 영업손실을 대폭 줄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순수 영업활동에 따른 개선이라기보다는 대부분 희망퇴직, 매장 폐점·축소 같은 '고강도 비용절감'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고환율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 백화점·쇼핑몰·균일가할인점 등 경쟁업태로 고객 이탈이 이어진 탓에 어려움을 겪는 면세점업계가 특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부담'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지난 2023년 공항면세점 임대료를 기존 '고정 임대료제'에서 '객당 임대료제'(출국여객 1인당 임대료 산정)로 전환했다. 그러나, 엔데믹 일상회복 이후 고환율·쇼핑패턴 변화로 해외여행객은 늘었음에도 1인당 면세점 구매액은 감소하는 바람에 면세점업계에 '큰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인천공항 출국여객수는 3531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3556만명) 수준을 거의 회복했지만, 지난해 면세업계 매출액은 14조2249억원으로 같은 기간보다 42.8%나 줄었다. 이는 여행객의 쇼핑패턴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거나 낙찰받기 위해 높은 입찰가격을 제시하는 등 면세점업체 귀책사유가 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천공항공사의 비항공수익(면세점 임대료 등)이 전체 수익의 65%로 해외 주요 공항(40~45%)에 비해 높다는 점, 한국공항공사가 김포공항 면세점 등에서 '영업요율 임대료제'(면세점 매출에 연동해 임대료 부과)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제도 개선을 바라는 면세점업계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부 특허사업인 면세사업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 유통업종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시장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전에 유통 전공 한 대학교수가 기자에게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면세점 중 현재 소비침체 위기에서 가장 돌파구를 찾기 힘든 업종은 면세점"이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면세점의 위기 돌파는 면세점사업자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인천공항공사도 면세점과 공항공사 간 지속적인 '공생관계'를 위해 면세점의 경영애로 개선에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탄소비용 없이는 ‘허상’, 기후경제가 갖춰야할 조건

기후경제는 기후위기 대응 산업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자는 표현이다.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가상발전소(VPP)를 통해 수백조원 규모로 키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경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후경제는 사람들에게 탄소비용을 강제로 부과하지 않으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전력은 실시간으로 소비돼야 하는 상품이다. 수요와 상관없이 날씨에 따라 전력을 생산하는 재생에너지는 시장 교란자다. 라면가게 주인이 저녁 손님이 먹을 라면까지 점심에 한꺼번에 끓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점심에 끓인 라면을 저녁까지 불지 않게 보관하는 라면저장고 개발에 돈을 쓰고 있는 가게 주인을 황당하게 여기지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돈으로 신메뉴 개발이나 가게 확장을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라면가게 주인이 점심에 만든 라면을 계속 먹지 않으면 세금을 왕창 부과한다고 하면 우리 생각은 달라진다. 저녁에도 불지 않는 라면을 제공해주는 라면저장고가 절실해질 것이다. 재생에너지도 비슷하다. 화력, 원자력으로 전력을 잘 쓰고 있는데 인공지능(AI) 개발 등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던 돈을 재생에너지를 갖추기 위해 써야 한다. 탄소비용 없이 정치적 구호만 있는 기후경제는 허상일 뿐이다. 기후위기로 우리 사회가 붕괴된다는 비용을 무한대로 가정하고 이에 맞춰 탄소에 가격을 매겨야 기후경제는 실현될 수 있다. 부동산과 주민 설득에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탄소비용 없이는 당장 그리드패리트(재생에너지발전 비용과 화력발전 비용이 동일해지는 상황) 달성이 불가능하다. 기후경제를 주장하고 싶다면 탄소비용을 어떻게 부과할지 고민해야 한다. 탄소비용은 탄소세나 탄소배출권 제도로 실현 가능하다. 현재 배출권 제도는 흉내만 내고 있다. 국내 배출권 가격은 톤당 1만원 정도로 유럽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기후경제가 힘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조기 대선에서 기후경제를 강조하는 대선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이 후보는 10대 공약 중 기후위기 대응 공약에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 확대를 포함했다. 탄소세 혹은 배출권에 대해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만, 모든 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하도록 탄소세를 도입하거나 배출권 할당량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눈] 전세사기특별법, 피해자 ‘0’ 될 때까지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로 전셋집을 고르지 말고,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경매 등으로 이 집을 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집일 때 계약해야 한다. 그런 집이 전세 문의도 줄을 이어서 보증금 반환 지연 등 문제가 생기지 않고, 만약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해결이 수월하다." 최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 소속 관계자를 만났을 때 들은 조언이다. 부모님 품을 떠나 집을 구하려는 20~30세대에게 전세사기 피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주위의 누구에게 물어봐도 피해 사례 한두 건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이러한 공포는 주거 선택의 기준마저 바꾸고 있다. 전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젊은 세대들은 훨씬 더 부담이 큰 월세를 찾고 있다. 초기 보증금 부담이 없는 대신 매달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지출해야 하지만 전세 사기를 당할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언론이나 대중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듯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올해 들어서도 1월 957명, 2월 1258명, 3월 873명 등 매달 피해자가 1000명 안팎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것이다. 최근 개정된 전세사기 특별법은 오는 31일까지 최초 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만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원래 취지가 '일시적 구제'에 있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지금 추세로는 6월부터도 매달 1000여 명씩 발생할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전세사기 특별법에 따른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들에게도 구조적인 방지책이 마련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 솜방망이 처벌조차 개선되지 않았다. 미추홀구 일대에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을 일으켰던 남모 씨는 세입자 수백 명을 상대로 수백억 원대 보증금을 편취했음에도 고작 징역 15년만을 받았다. 심지어 공범들은 무죄나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을 정도이다. 처벌이 약할 경우 전세사기는 범죄의 리스크보다 수익이 크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전셋집에 거주하려던 이들 가운데는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초년생들도 많다. 그런 만큼 그들이 들고 나온 보증금은 사실상 전 재산에 가깝다. 사회에서 뗀 첫걸음이 빚과 주거 불안정의 구렁텅이로 변하지 않도록, 피해 인정 기간이 확대돼 전세사기 피해자가 '0'이 되는 그날까지 정부 지원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중소기업 ‘미스매치’를 해소하려면

“지역에서 부품 등을 제조하는 3차 협력사는 사람이 없어서 망합니다. 기업은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재를 원하는데, 청년들은 사업장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실망해 '미스 매치(mismatch·불일치)'가 발생하는 겁니다. 사업장의 디지털 전환으로 중소기업 인프라를 개선하고, 학교에서부터 전문인력을 양성해 고용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금형 소프트웨어 1위 기업 오토폼의 한국법인 조영빈 대표는 국내 제조업의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 문제를 이같이 진단했다. 오토폼은 현대·기아차, LG전자 등 굵직한 제조사를 파트너로 두고 있는 기업으로, 최근 경북과 경남 지역의 전문계고 및 대학을 중심으로 현장 맞춤형 기술인재 육성 전략을 펴고 있다. 아울러 2·3차 부품 제조사들의 사업장 환경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에도 힘쏟고 있다. 조영빈 대표는 “꽃을 피우려면 벌과 나비가 있어야하듯, 한국 제조업의 부흥이 있으려면 상생에 기반한 생태계 조성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의 인력난과 청년들의 구직난은 풀기 어려운 숙제로 꼽힌다. 기업들은 “요즘 청년들이 눈만 높다"고 탓하고, 구직청년들은 “그런 곳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알바(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외면한다. 결국 지역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외국인력으로 채워지고 있지만, 서툰 한국어 소통과 작업 숙련도 부족에 따른 낮은 생산성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북에서 26년째 자동차 부품 제조업을 운영하는 강동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12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차기정부 중소기업 정책방향 대토론회'에서 “해외 선진국들은 인공지능(AI)과 자동화를 통해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있는 반면, 우리 중소기업들은 인력과 자본, 기술 측면에서 디지털화와 AI 도입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가적 차원의 지원책 마련을 강조했다. 오는 6월 3일 제 21대 대선을 뛰는 여야 후보들의 선거 운동이 막올랐다. 중소기업계의 바람대로 대선 후보들이 기업 현장의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담아주기 고대한다. 제조업 강국과 디지털 전환에 중소기업을 적극 참여시켜 식어가는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을 재점화시키는 게 차기 정부의 역할인 동시에 능력이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애플 폴더블폰 시장 진입···삼성전자 “위기를 기회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경쟁이 새 국면에 접어든다. 애플이 신제품 출시 일정을 삼성전자와 비슷하게 조정하는 동시에 최초의 폴더블폰도 선보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들은 애플이 내년 '아이폰 18'부터 제품 출시 일정을 재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기존에는 매년 9월 아이폰과 프로·프로맥스를 동시에 공개해왔다. 앞으로는 일정을 두 차례로 나눠 일부 모델을 이듬해 초 출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9월 애플의 첫 폴더블폰이 데뷔할 것으로 점쳐진다. 연초에는 아이폰 보급·일반형 모델을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매년 2월 갤럭시 S 시리즈를, 8월 폴더블폰을 소개하고 있다. 애플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20%, 애플이 19%를 기록했다. 관심사는 폴더블폰 시장 성장 여부다. 글로벌 빅테크 애플이 제품을 선보이면 접는 폰이 '틈새시장' 대신 '프리미엄폰' 이미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5년 이상 폼팩터, 생산공정, 부품 생태계 등에서 경험치를 쌓은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애플의 참전을 기회로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 폴더블폰 핵심 부품을 공급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구매하며 좀처럼 폴더블폰을 선택하지 않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해 전세계 폴더블폰 시장이 전년 대비 2.9% 성장하는 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한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했다. 다만 내년 애플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강력한 반등'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Z 시리즈 등을 만들며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60% 이상 점유율을 확보 중이기도 하다. 특허·기술력은 물론 소프트웨어와 생태계 측면에서도 애플 대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폴더블폰을 공개하는 하반기 '갤럭시 언팩'을 미국 뉴욕에서 개최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갤럭시 Z 폴드·플립4를 공개했던 지난 2022년 이후 3년만의 미국행이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공세 속에서 다시 한번 기술 리더십을 증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혈세 낭비’ 체코원전 사태, 책임은 누가?

지난 7일 한수원 등 팀코리아와 체코 측 간의 체코원전 수주 본계약 체결을 위해 정부 장관급과 국회 상임위원장 등 정부·국회 100여명의 대표단이 체코를 방문했지만, 대표단은 현지에 도착해서야 본계약 체결이 보류됐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체코로 이동하는 중간에 체코 지방법원이 프랑스 EDF가 제기한 본안 소송 전 본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한국과 체코 간의 원전 수주 본계약 체결은 무기한 보류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규정하고,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책임은 체코 측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정부의 해명을 납득하지 못할 뿐더러 매우 크게 실망하고 있다. 국민들이 매우 크게 실망한 부분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는가 이다. 수십조원 규모의 대형 원전 건설을 수주하는 본계약 체결을 위해 장관급을 포함한 정부 고위급과 국회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포함된 대규모 특사단이 출국하는 상황에서, 이번 법적 변수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사전에 확보하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로 정보력과 외교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체코 출장에는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 한수원, 한전KPS 등 팀 코리아 관계기관의 사장과 담당자들이 인당 천만 원이 넘는 출장비를 집행했으며, 일부 인사들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다녀온 출장에서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왔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산업부는 7일 본지의 '산업부, 팀코리아 사장단에 사직 권고' 기사에 대한 해명 자료에서 계약 주체인 기관장들에게 사직 권고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계약 불발 사태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팀코리아와 산업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모든 책임은 체코 정부와 소를 제기한 프랑스 EDF에 있다는 말인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세금으로 치른 출장, 정보력과 외교력 부재, 결과 없는 계약, 그리고 무책임한 책임 공방 등 이 네 가지가 겹쳐지면서 국민은 이번 체코 원전 외교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산업부는 지난 3월에도 우리나라가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크게 질책을 받은 바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지난 4월 15일부로 민감국가로 지정되면서 미국과 과학 및 기술 협력에서 불필요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됐다. 산업부는 이번 체코원전 사태에 대해 분명하고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팀 코리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준비와 검토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 이번 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계약으로 이어져 성과를 이루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바란다. 다만 그에 앞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과 설명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이름만 바꾼다고 될 일인가

“이름이 바뀐다고 날만한 사고가 안 날까." 최근 한 건설사 고위 임원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사명 변경에 대해 얘기하다 들은 말이다. 올해 2월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은 세종포천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량이 무너지면서 4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달 30일 주우정 사장 주재로 전직원 타운홀 미팅을 가지고, 사명 변경 및 주택 사업 신규 수주 중단을 선언했다. 주우정 사장 입장에서 2월 사고는 날벼락이라면 날벼락이다. 작년 11월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에 내정된 후 올해 1월 정식으로 현대엔지니어링 수장직을 맡은 지 한 달여 만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으니 기운이 빠질만도 하다. 그리고 주 사장은 그 해결책으로 아예 회사 이름을 바꿔버리고, 신규 주택 사업 수주를 중단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과거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해경을 해체했던 해프닝이 데자뷰로 떠오른다. 공사 현장 사고는 시공을 맡은 건설사의 이름에 따라 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철저하게 현장 관리 작업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사고가 터지니 사업을 중단한다'는 말은 '사고가 터졌으니 해경을 해체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 물론 현대엔지니어링의 사명 변경 선언은 그만큼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주택 사업 신규 수주 중단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바꾸겠다'는 언뜻 파격적으로 보여지는 선언은 결국 내부 단속 차원과 대외 홍보를 위한 보여주기식 조치로 비춰질 수 있는 리스크도 안고 있다. 과연 현대엔지니어링이 2월 사고의 피해자 보상 문제와 같은 후속 조치,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현장 안전 강화 등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제대로 내놨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경을 해체한다'는 극단책을 사용한 박 전 대통령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3년 후 탄핵돼 대통령 자리에서 끌려 내려왔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해체한 해양경찰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2017년 다시 부활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아무리 극한 상황에 몰렸다고 해도 어느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한민국 해경이 겪었던 혼란을 되풀이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K뷰티, 美관세에 이유 있는 ‘아이 돈 케어~’

“미국에서 K뷰티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관세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아요". 국내 한 뷰티기업의 관계자가 미국발 관세 파동 이후 꺼낸 반응이었다. 지난 4월 트럼트 미국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자 고공행진 중이던 K뷰티의 수출에 적신호가 켜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동시에 '판도라 상자의 희망'을 피력하는 발언이었다. 이같은 희망의 배경에는 'K뷰티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기업의 화장품은 미국에서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가성비 전략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공식적으로 관세가 발효된다면 일부 제품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할 전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제품에 크게 만족하며 사용해 온 미국 소비자가 하루아침에 '손절'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K뷰티는 미국에서 단순히 제품이 아닌 K컬처(한류)의 한 카테고리로 소비되고 있다. K컬처를 향유하는 방식의 하나로 한국 뷰티제품을 사용한다. 즐겨보는 K드라마 속 여배우의 피부 표현이 마음에 들어 그가 사용한 제품을 따라 구매하는 행동이다. 외국인들의 K뷰티 인기는 국내 유명·중소 화장품 기업의 제품의 대표 판매처인 CJ올리브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 600만 명 중 400만 명이 여행기간에 올리브영을 찾았다. K뷰티의 태생지에서 직접 K뷰티를 경험하려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 지난해 외국인이 올리브영에서 쓴 돈은 전년 대비 무려 140%나 급증했다. 관세청 자료에서 지난해 해외 소비자가 오픈마켓 등을 통해 K뷰티 제품을 직접 구매한 금액도 9억7300만 달러(1조 3500억 원)로, 전년(5억2300만 달러)보다 약 2배 늘었다. 특히, 미국에서 'K뷰티 역직구' 열풍이 심상치 않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플랫폼 아마존 온라인 쇼핑몰에는 'K뷰티 인기제품(K-Beauty favorites)'이 따로 분류돼 있다. 유명 패션잡지 얼루어(Allure)는 “관세도 아마존의 'K-뷰티 딜'을 막을 수 없다. 쇼핑카트에 담는 한국 뷰티 베스트 딜 21개"라는 제목으로 현지에서 인기 있는 한국 화장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관세 영향으로 가격이 오르기 전 미리 구매하는 것이 좋다"는 팁까지 소개했다. K뷰티의 경쟁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급성장해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콘텐츠'다. 미국 관세 영향으로 일정 정도 타격은 받겠지만 K뷰티만이 보유하고 있는 뛰어난 품질을 이미 경험한 소비자의 지갑을 '보호주의'로 닫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강하고 희망찬 경쟁력을 갖춘 K뷰티는 트럼프 관세시대에 한국 산업이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