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설악산을 비롯한 충북 보은의 속리산·경북 청송 주왕산·광주 무등산 등 주요 산들은 단풍이 아직 절정에 이르지 못했다. 단풍 시기가 늦어진 것은 기온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름철 장기간 이어진 폭염으로 인해 매년 단풍 시기가 점차 늦어지며 앞으로 10년 후에는 단풍 절정이 11월 중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기상청과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설악산의 첫 단풍은 평년보다 6일, 지난해보다 4일 늦은 10월 4일에 시작됐다. 이는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과거에 비해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 기온이 높아지면서 단풍 시기가 뒤로 밀리는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풍나무류는 매년 평균 0.39일, 참나무류는 0.44일, 은행나무는 0.45일씩 단풍 시기가 늦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올해에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또 올해 6~8월의 평균기온이 지난 10년 평균보다 약 1.3도 높아지면서 단풍 시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1도 상승할 때 단풍나무는 4일, 은행나무는 5.7일 늦게 물든다. 30년 전과 비교해 단풍 지각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주요 산의 단풍 시작일은 1990년에 비해 최대 13일 늦어졌고, 지리산과 월악산의 단풍 시기도 각각 5일, 2일씩 늦어졌다. 이우균 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 환경생태공학과 교수는 “식물도 계절을 느끼는데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면서 식물의 계절 감각에 혼선이 생기고 있다"며 “이로 인해 단풍 시기가 미뤄질 뿐 아니라 철쭉과 같은 일부 식물들은 계절을 혼동해 봄이 아닌 때에 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해 정상적으로 진행돼 왔던 생태계의 흐름이 왜곡되면서 기후위기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중배 부산대학교 대기환경과학과 명예교수는 “전체적으로 가을철 기온이 높아지면서 단풍 절정 시기가 뒤로 늦춰지고 있다"며 “100년 전과 비교하면 여름이 약 20일 가량 늘어나면서 나무들의 탄소동화 작용이 잘 되지 않아 단풍 시기가 전반적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풍의 색감과 질 역시 기후변화로 악화되고 있다. 단풍이 선명하게 들려면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날씨가 유지돼야 한다. 또 미세먼지 증가와 일사량 감소 등도 단풍 색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단풍에 적합한 외부 조건은 광합성 효율을 떨어뜨린다. 그러면 나무는 활동을 멈추고 잎에 저장되어 있던 영양분을 재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광합성을 담당하던 녹색 엽록소는 분해되고 안토시아닌이라는 붉은 색소가 생긴다. 노란색이나 오렌지색을 내는 색소는 이전부터 잎에 있다가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기온이 높아 일교차가 작아지면 엽록소 분해와 붉은색 안토시아닌 생성이 원활하지 않아 단풍의 발색이 잘 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안 교수는 “낮 기온이 높고 밤 기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으면 단풍의 색이 선명해지지 않는다"며 “여름철 폭염과 수분 부족이 식물에 열 스트레스를 주어 단풍이 드는 시기도 늦어지고 선명도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나무의 생태적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나무가 제 때 탄소 동화 작용을 하는 것이 자연의 원리인데 지나치게 덥다던지 기간이 길어지면 성장에 방해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윤수현 기자 ysh@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