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탄핵정국 소용돌이에 빠지면서 에너지 정책 또한 표류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전 확대를 골자로 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이 불투명해진 것은 물론, 아예 원전 확대 정책의 올스톱 전망도 나온다. 에너지관련 주요 법안 처리나 4차 배출권거래제도 운영 계획안 마련 등은 후순위로 밀리게 됐다. 대신 차기 대선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해 온 야당의 우세가 점쳐지면서 화석연료 사용 규제 강화, 정부 부처 내 기후에너지부 신설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일단 에너지 관련 주요 법안과 11차 전기본의 연내 처리는 물건너 갔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 1기를 추가하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2022년 대비 5배가량인 120GW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정부는 이달 11차 전기본의 국회에 보고 후 계획을 확정하고, 이와 동시에 곧바로 원전부지 선정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탄핵정국에 돌입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11차 전기본에 야권의 의중을 크게 반영해 원전 비중을 낮추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인 새로운 안을 국회에 제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전기본을 통해 매년 신설·폐지되는 발전소 계획을 정부가 직접 수립하는 대신, 계획에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고 매년 필요한 용량을 시나리오별로 공고하는 큰 규모의 '전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청정에너지 인증 방식도 현 정부가 강력 추진 중인 CFE(Carbon Free Energy)보다 재생에너지 캠페인인 RE100(Renewable Energy)을 더 중요시 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특별법안(고준위 특별법)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전력망 특별법), 해상풍력발전 보급 촉진 특별법안(해상풍력 특별법) 등 주요 에너지 법안들의 처리는 불투명하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여야 간 이견으로 갈등을 빚다가 끝내 폐기된 전력망 특별법의 경우 전력산업이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전력망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필수적인 상황이라, 이번 국회 통과에 업계의 큰 기대가 모아진 바 있다. 4차 배출권거래제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운영된다. 배출권거래제 개편을 통해 한국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년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에 기여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당장 내년에 기업들에게 유상할당 비율을 정하는 등 4차 기본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정부는 11차 전기본과 마찬가지로 연내 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해 확정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번 대통령 탄핵으로 이 또한 시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또다른 기후환경 정책인 2035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35 NDC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일정 규모 이상 줄이겠다는 목표다. 2030 NDC는 2018년 대비 40%를 줄이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2035 NDC는 2030년보다 감축목표가 더 높다. 국가 전체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만큼 발전(전환) 부분은 물론 산업, 수송, 건물 분야에서도 온실가스를 대폭 줄여야 한다. 2035 NDC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의결한다. 내년도 전액 예산삭감이 확정된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은 난관에 봉착했다. 석유공사는 포항 영일만 앞바다 심해에서 탐사를 통해 탐사자원량 35억~140억배럴의 석유가스 매장지를 확인하고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시추에 들어갈 예정이다. 시추선인 노르웨이 시드릴사의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가 9일 오전 부산외항에 도착, 정박해 현재 작업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 중이며 오는 17∼18일께 출항해 동해 대왕고래 유망구조 내 지정 해역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이다. 웨스트 카펠라호는 현장 해역에서 작업 준비를 마치고 오는 20일 무렵부터 첫 탐사시추를 위한 구멍 뚫기 작업을 수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1차 시추에 사용될 정부 예산 505억원 가운데 497억원(98.4%)을 삭감했다. 14개 신규 댐을 건설하는 기후대응댐 프로젝트도 탄핵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전망이다. 더구나 이 사업은 지역의 일부 주민들이 신규 댐 추진 백지화를 요구하며 찬성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현재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시행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반면, 야당에서 주장해 온 정부 부처 내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공식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돈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에너지 산업은 '정부 규제산업'으로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분야인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변수에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정치와 무관하게 산업, 경제 측면에서의 안정을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차질 없는 법, 제도 수립이 이어져야 할 것"고 말했다. 김연숙 기자 youn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