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길 잃은 RE100]⑧ RE100 압박, 국내 중소·중견기업 해외로 밀어낸다

국내 산업계가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더 많은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오프쇼어링(기업이 생산설비 등을 해외로 옮기는 것)'에 대한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무역연구원이 수출 제조사 61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거래처로부터 RE100을 요구 받을 경우 30%에 달하는 기업이 사업장 또는 거래처를 옮기거나 거래 자체를 중단하겠다고 응답했다. RE100은 2050년 또는 자체적으로 설정한 이전 시점까지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서 쓰는 전력량 100%를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은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 등 RE100 이행수단을 활용하겠다는 비율이 80.0%로 가장 높았고, 다른 거래처를 찾겠다는 곳은 15.0%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가겠다는 비율은 5.0%였다. 그러나 중견기업의 경우 RE100 이행수단 활용이 74.6%, 다른 거래처 물색과 사업장 이전은 각각 12.1%·5.7%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은 RE100 이행수단 활용이 68.3%로 가장 낮았다. 반면, 다른 거래처 물색은 13.4%, 사업장 이전은 9.5%에 달했다. 재생에너지 요구 기업과의 거래 중단(3.6%)을 유일하게 선택한 곳도 중소기업이었다. 전체 기업 중 7.5%가 사업장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수출 실적이 낮을수록 RE100 이행수단으로 대응하겠다는 비율도 적었고, 사업장 이전 및 거래 중단을 선택하겠다고 답한 비중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출액 500만달러 미만의 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는 국내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이 녹록치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제성이 낮고 공급량도 충분치 않은 탓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23년 하반기 태양광 산업 동향' 보고서를 통해 국내 태양광 발전단가가 MWh당 78~147달러라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31~45달러) △인도(26~47달러) △베트남(48~96달러) △미국(52~79달러) △프랑스(38~59달러) 등을 대폭 상회하는 수치다. 제조 수출기업 중 재생에너지를 사용 중인 곳이 8.7% 불과한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연구원은 '현재는 물론 향후에도 이용할 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52.8%로, '현재 이용하지 않고 있으나, 향후 사용할 계획이 있다(38.5%)' 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주된 이유가 전기요금 등 에너지 비용 절감(42.0%)이지만, 관련 니즈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업장을 옮기겠다는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동남아(52.2%)으로 나타났고, 미국(19.6%)·중국(10.9%)·인도(8.7%)·호주(2.2%)를 비롯한 국가가 뒤를 이었다. 동남아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에 힘입어 RE100 달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지역으로 불리며, 전기요금이 낮은 곳도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SK·LG·롯데 등 국내 기업들도 원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현지 사업장 구축을 가속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비롯한 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가 최대 30%까지 이뤄진다. 호주는 그린수소 산업 육성 등을 위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인도도 현재 20% 수준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30%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발전량 기준 10%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으로, 2030년에도 20%대 초중반도 어렵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RE100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푸념이 나오는 까닭이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리쇼어링(해외 사업장의 귀국)' 및 해외 기업 유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면 국가경제가 약화될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솔루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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