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경제 언박싱 ④ RE100은 불가능한가?

기후와 에너지는 인류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접근보다 이념적 선입견이 앞서거나, 정보는 넘치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기후와 에너지, 그리고 경제에 관한 정확한 사실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RE100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자체는 좋은 구호이긴 하나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5월 23일 대선 후보 TV토론)" 최근 대선 토론 때마다 RE100은 논란이 되었다. 202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RE100이 뭐죠?"라고 물었다가 '기후에너지 문제를 모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5년 대선 토론에서는 RE100을 놓고 후보들은 물론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논평을 내며 논쟁을 벌였다. RE100은 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캠페인이다. 이에 대해 우리 기업들의 수출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실제로는 어떤지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와 10년간 현장에서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판매해온 김승희 KEI컨설팅 매니저의 자문을 받아 살펴본다. RE100은 영국에 기반을 둔 단체 '클라이밋그룹(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가 2014년 시작한 캠페인이다. 구글, 애플, 마이크포소프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협력업체들에게도 RE100을 요구하면서 민간 캠페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상준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RE100은 그 중 일부인 기업이 쓰는 전기만을 떼어내 단순한 목표, 알기 쉬운 이행점검 등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RE100에는 현재 445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표적인 기업 36곳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30년까지 기업이 쓰는 전기의 60%, 2040년에는 90%, 2050년에는 100%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 5월 클라이밋그룹이 발표한 〈2024 RE100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회원사들이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 작년에는 세계 424개 기업이 평균 53%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 그 중에서도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이미 99.8%, 애플은 98%, 인텔 97% 나이키 96%, UBS 82%, 로열필립스 99.2%, 뉴발란스는 90% 등 이미 연도별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2050년 목표인 100%에 거의 도달했다. 반면에 한국 기업들은 삼성전자 31%, 삼성화재 4%, SK하이닉스 30%, SK홀딩스 18%, 현대차 13% 수준에 불과하다. 김승희 매니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은 데이터센터도 포함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전기량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이미 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국은 전기를 많이 쓰는 제조업이 많아서 RE100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얘기다. 김 매니저는 “RE100 연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재생에너지를 가장 구하기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 제조업이 많아서 RE100 달성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부족해서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에도 제조업체들이 많지만 그 지역들은 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쉬워서 RE100을 달성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협력업체들에게도 RE100을 요구하는데, 한국 기업들에게 불이익은 없을까? “RE100은 기업들에게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요소"라는데 두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했다. 글로벌 RE100에 가입한 한국 대기업은 36개지만, 한국 정부가 국내 여건에 맞춰 운영하고 있는 K-RE100에는 현재 1천여 개 기업이 가입돼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부품 공급업체들에 RE100을 요구하면 협력업체들도 이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매니저는 “RE100은 단순히 대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견 중소기업들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유럽 자동차업체 BMW, 볼보, 다임러벤츠의 경우 부품 공급업체들에게 RE100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구매량을 줄이거나, 다음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통보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회사는 탄소 감축을 하지 못해 공급망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다만 RE100이 기업 경쟁력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업체 노스볼트(Northvolt)는 RE100에 모범적인 회사였지만 최근 파산했다. 이상준 교수는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RE100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대부분 RE100은 권고 사항이지 강제 조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RE100을 안한다고 수출기업이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왜 그렇게 RE100에 뒤쳐졌나? 두 사람은 ① RE100용 물량이 적고 ②비싸다고 했다. RE100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지열(地熱), 조력(潮力)의 6가지다. 그러나 한국에는 지열, 조력이 거의 없고 수력발전이나 바이오매스는 RE100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 사실상 한국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전부다. 현재 한국에는 태양광과 풍력을 합해 30여 기가와트(GW)의 설비용량이 있고, 이들이 연간 45~50 테라와트시(TWh)의 전력량을 생산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등에 쓰는 전기 사용량만 연간 20TWh 정도다. 기업들의 수요에 비해 재생에너지 생산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가격 또한 일반 전기료보다 비싸다. 한전의 산업용 전기는 1kWh에 180원 정도인데,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는 210원/kWh 수준이다. 해상 풍력은 300원/kWh 안팎으로 훨씬 비싸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든 전기가 한화로 70원/kWh 정도인데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한국 기업들이 RE100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재명 대통령은 RE100 산업단지를 전국에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두 사람은 RE100 산업단지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폐지하고 입찰제로 가는 것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PS는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기 위해 2012년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두 전문가의 얘기다. 첫째 RPS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발전 공기업으로만 흘러가고 민간 기업들이 살 수가 없다. 둘째 현재 RPS 제도에서는 재생에너지 가격을 낮춰 경제성을 높일 유인이 적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원전이나 다른 발전원보다 값이 싸져서 경제성이 높은데 반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김승희 매니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뜩이나 없는 자원을 놓고 RPS라는 정부 수요와 민간의 전력구매계약(PPA) 수요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RE100을 지원해주려면 RPS를 폐지해야 한다. 정부가 사주는 물량을 줄이고 민간이 살 수 있는 숨통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준 교수는 “RPS 제도가 10여 년 간 재생에너지 물량 확대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는 물량에만 집중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가 경제적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지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RE100은 실시간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는 게 아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기도 하지만, 보통은 사용한 전력량만큼의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를 구매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 전기에는 꼬리표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보통 직접 연결되기보다 기존 전력망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전선 안에는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전, 석탄, 천연가스(LNG) 등이 만든 전기가 다 섞여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만 분리해낼 수 없다. 두 번째는 재생에너지의 한계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환경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업의 전력사용량과 실시간으로 일치시킬 수가 없다. 태양과 바람이 없을 때는 전기를 생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공장을 멈출 수는 없다. 따라서 물리적 전기는 기존처럼 공급받되, 해당 전기가 재생에너지로 생산됐다는 인증서를 사게 된다. RE100은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디선가 생산된 재생에너지라고 치자'라고 하는 셈이다. 한국은 RE100도 쫓아가기 바쁜 상황이지만, RE100은 한계가 있다. RE100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고 세계적 영향력이 큰 대기업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주의 별처럼 많은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11년이 넘도록 400여개만 회원이 되었다. 새로 들어갈 만한 대기업도 별로 없다. RE100이 더 확대되는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전기는 온실가스 배출의 일부에 불과하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은 전기도 많이 사용하지만 제조공정 자체에서 어마어마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따라서 RE100은 중요한 이니셔티브이지만 기후변화 대응에서는 일부 분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RE100이 실시간 재생에너지가 아니라는 점도 한계다. 그래서 클라이밋그룹은 2021년 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4/7 CFE(Carbon Free Electricity)로, 매일 24시간, 주 7일 실시간으로 무탄소 전기를 달성하자는 더 강력한 프로젝트다. 구글, 아스트라제네카, 슈리시멘트, 보다폰 등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과 탄소 포집 및 저장(CCS) 설비를 갖춘 화력발전도 포함시켰다. 24/7 CFE는 RE100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여서 현실적으로 원전을 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승희 매니저는 “재생에너지 시설이 늘어날수록 LNG발전소, 양수, ESS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전원이 같이 늘어나게 된다. 저는 재생에너지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재생에너지만으로 데이터센터에 물리적 전기를 100% 공급할 수 없다.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요한데 지금은 세계 어디서도 재생에너지만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RE100 자체는 한계가 많지만, '재생에너지를 통해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국제적인 흐름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RE100이 민간 캠페인이라면,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RE100을 달성했다. 따라서 'RE100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틀렸다. RE100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한국도 재생에너지 제도와 시장을 개편해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기후경제 언박싱> ③탄소중립(Net Zero)은 가능할까?

“넷제로는 어차피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넷제로는 달성해야만 하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과 기후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논쟁이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재앙을 막으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서 지구 온도 상승을 멈춰야 한다. 세계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 2100년까지의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의 1.5℃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를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넷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더했을 때 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인 상태를 의미한다. 그 후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넷제로를 선언했다.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다 빨아들여 넷제로를 만들 수 있을까? 또 법으로 강제하기 어려운 국제사회에서 넷제로 약속이 지켜질까?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넷제로를 선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파리협정에서 탈퇴해 버렸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이산화탄소(CO₂)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한다. 세계 인구는 늘어나고 경제성장도 계속되는데 넷제로가 가능할까? 인류는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기후재난을 피할 수 있을까?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분과위원장), 양수영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전 서울대 객원교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의 자문을 받아 살펴본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고, 그 중 상당량이 공기와 바다 등에 누적돼 있다. 210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려면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이고 2035년에는 60% 줄여야 한다. 그래서 2050년에는 순 배출량 0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목표에 전혀 못 미친다. 온실가스의 70%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은 코로나19 등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된 경우를 빼고는 꾸준히 늘어왔다. 2010년 334억 톤이었던 배출량은 2019년 371억 톤, 2023년 378억 톤으로 늘었다. 양수영 전 석유공사 사장은 “2015년 파리협정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본격화했으니 지금쯤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계속 늘고 있다. 지금 추세를 보면 2030년에 43%를 줄이기는커녕 5~10% 줄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이산화탄소 배출 전망을 보면 넷제로의 목표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프에서 맨 위 빨간 선은 세계가 파리협정을 맺지 않고 CO₂를 배출했을 때를 가정한 전망, 맨 아래 녹색 선은 2050년 넷제로를 이루기 위한 배출 시나리오이다. 그 사이에 파란 선인 이행가능정책은 각 국 정부가 실제로 시행 중인 정책을 반영한 전망이고, 노란 선은 각 국이 발표한 공약을 달성했을 때의 전망이다. 각 국 정부가 공약했거나 실제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이 실현되더라도 2050년 넷제로와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전 사장은 “발표공약달성 시나리오나 이행가능정책 시나리오도 사실은 지킬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것도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 전 사장 말고도 에너지 전문가들 중에는 “넷제로는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면서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보다 경제성장과 에너지안보가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양 전 사장은 또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통해 넷제로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에너지믹스와 전력믹스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비판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전기에너지만 생산할 수 있는데, 인간이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 가운데 전기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이다. 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비행기 선박 트럭 같은 수송, 건물, 난방 등 많은 분야가 전기화되지 못해 넷제로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양 전 사장은 “2023년 1차 에너지 소비를 봐도 태양광과 풍력은 5%, 화석에너지가 76%다. 5%밖에 안 되는 태양광과 풍력으로 76%를 차지하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을까. 게다가 태양광과 풍력은 계속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간헐성의 문제가 있고, 전기는 저장이 어려운데다 전기저장장치(ESS)는 비용이 많이 들어 태양광과 풍력의 대폭 확장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즉 재생에너지로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리협정을 맺은 유엔기구도 넷제로의 어려움을 인정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목표 달성을 위해 5년마다 '전 지구적 이행 점검(Global Stocktake)'을 하기로 하고 2023년 첫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각 국이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더라도 2030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에 비해 2% 밖에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되면 2100년 지구 온도는 2.1~2.8℃ 상승한다. 보고서는 1.5℃ 목표를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에너지효율 2배 개선 등 더 강력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세계 각 국에 촉구했다.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분과위원장)는 “넷제로는 개문발차(開門發車)형 목표라고 생각한다. 차 문을 열고 일단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기술을 개발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너무 급하고 심각하니까 일단 목표를 정하고 계속해서 기술개발하고 에너지 수요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제로를 하려면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연료를 전환하고, 남은 탄소를 포집하는 모든 과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안 교수는 “기술개발도 하고 우리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수요도 줄여야하지만 결국 이것은 비용의 문제, 우리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느냐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넷제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정 기술 역시 정책과 인센티브에 따라 더 빨리, 더 많이 개발될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 700여명의 전문가들이 연구와 토론을 통해 발간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 역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저렴한 기술들이 이미 많이 개발돼 있다고 했다. 'CO₂ 배출량 1톤을 줄이는데 추가로 드는 비용이 100달러 이하인 방법으로 2030년까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5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농업, 건물, 수송, 산업 등 많은 분야에서 그렇다. 최근엔 좀 더 희망적인 소식도 나온다. 미국의 경제지 블룸버그는 “전 세계 에너지 관련 CO₂ 배출량이 긴 하강을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는 4월 발표한 '신에너지전망(New Energy Outlook) 2025'에서 “2024년 세계 CO₂ 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2025년은 구조적인 배출량 감소의 첫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세계 CO₂ 배출량이 처음으로 경기침체가 아니라 청정에너지 증가 때문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일부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과 기존 정책을 바탕으로 예측한 시나리오(ETS· Economic Transition Scenario)에서도 2024년을 정점으로 CO₂ 배출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NZS는 넷제로 시나리오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경제적 비용과 효율성만 따졌을 때도 이미 청정에너지가 화석에너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정 전력기술의 보급, 운송을 포함한 최종 사용처의 전기화, 건물과 산업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전 세계 CO₂ 배출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었던 중국의 탄소 배출이 처음 줄었다는 뉴스도 나왔다. 이달 초 AFP 통신은 영국의 싱크탱크 '카본브리프'를 인용해 중국의 올해 1분기(1~3월) 전력 수요가 늘었음에도 탄소 배출은 줄었다고 전했다. 중국의 1분기 전력 수요는 지난해 동기보다 2.5% 증가했는데 태양광·풍력과 원자력 발전 비중이 늘어나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이 5.8%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전체의 탄소 배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줄었다. 이유진 소장은 “독일은 1990년 대비 41%를 줄였고, 영국은 50%, 프랑스는 30%를 줄였다(2023년 자료 기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었던 중국은 지금 에너지 전환 속도가 제일 빠르다.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넷제로는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시스템을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임계점을 넘으면 재난의 규모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을 수 있다. 지금 온실가스 감축에 들이는 비용이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 비용보다 저렴하리라는 것이다. 2019년 유럽연합(EU)이 최초로 '탄소 중립 대륙'을 선언했고, 본격적으로는 2020년부터 전 세계가 탄소 감축을 시작했는데 그래도 5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이 소장은 “영국도 독일(2045년)도 중국(2060년)도 '탄소 제로 사회'로 가고 있다. 넷제로가 어렵더라도 가급적 달성 시기를 당기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넷제로가 가능한지, 언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향후 시나리오도 조사 기관이나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첫째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넷제로가 가능한가? 많은 청정 기술들이 개발돼 있지만 비용이나 무관심 때문에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 또 앞으로 더 많은 기술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둘째 많은 노력과 비용을 요구하는 넷제로 약속이 국제사회에서 지켜질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 점점 더 기후재난이 심각해지리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시민들이 각 국 정부에 약속을 지키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스스로 그러한 소비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제로와 탄소중립: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온실가스의 70%가 CO₂이기 때문에, 보통 전체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값으로 계산할 때가 많다. 따라서 넷제로와 탄소중립은 대개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기후경제 언박싱> ② 왜 1.5도에 주목하나?

1990년대 이후 기후 연구가 쌓이면서 지구과학자의 절대 다수가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증명된 사실로 생각한다.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1℃ 이상(기준 연도 1850~1900년 평균) 높아졌다. 100여 년간 1℃ 상승은 일찍이 지구가 겪어보지 못한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변화다. 이에 따라 대기와 해양, 육지에 여러 변화가 나타나면서 생태계와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왜 1.5℃를 한계로 잡았는지 짚어본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대기과학), 이우균 고려대 교수(임학), 이충일 국립강릉원주대 교수(수산해양학)에게 자문을 구했다. 지난 3월 경상권에서 발생한 산불은 서울의 80%에 해당하는 면적을 태우고 30명의 사망자를 낸,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었다. 성묘객의 실화(失火)로 발생한 경북 의성 화재가 초대형 산불로 번진 원인의 하나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이우균 교수는 “경북 산불이 처음 발생한 3월 22일 그곳 기온이 25℃였다. 3월말 날씨가 여름 같았던 거다. 과거엔 3월말까지 산에 눈이 녹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2월부터 따뜻한 봄이 온다. 그랬다가 다시 추워지기도 하고…. 기후변화 때문에 겨울이 건조해져 땅과 나무가 바싹 마르는데다 일찍부터 기온이 높아진다. 그래서 산불 위험 기간이 더 길어지고 산불이 대형화할 확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 정수종 교수 연구팀이 100년(1923~2022년)간 강원·경북의 기상 관측 자료를 분석해보니, 연평균 기온은 4℃ 오르고 상대습도는 8% 감소했다. 지난 100년 동안 강원·경북의 기후가 더 건조하고 따뜻해진 것이다. 그만큼 산림은 화재에 더 취약해졌다. 기후변화는 폭염이나 가뭄, 홍수 같은 극한적 기상현상을 더 강하게, 더 자주 발생하게 한다. 2023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지구온난화로 대기, 빙권 및 생물권에서 광범위하고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는 이미 전 지구 모든 지역에서 날씨와 극한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연과 사람에 대한 광범위한 악영향, 이와 관련된 손실과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와 극한적 기상현상 증가는 식물의 생장과 농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우균 교수는 “우리가 지금 키우는 식물은 지구온난화 이전의 기후에 맞춰져 있는 나무와 풀, 식량 작물들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달라지면 기존 식물이나 작물들이 적응을 못해 농업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최근 일본의 쌀값이 폭등하고, 필리핀이 식량안보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된 배경에도 기후변화가 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수만 년 전 인류가 농사를 짓지 못하고 수렵과 채집을 한 이유는 극한적 기상이 지금의 10배나 되었기 때문이다. 1만 년 전부터 안정된 날씨가 이어지고 해수면이 안정돼 인간은 농사를 짓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해 날씨 변동이 심해지면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고 인류는 식량 부족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바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충일 국립강릉원주대 교수는 “1990년대 경북 포항의 겨울 바다 온도가 10℃였다. 지금은 훨씬 북쪽인 강원도 속초 앞바다의 겨울 온도가 10℃다. 여름에는 동해 수온이 30℃나 된다. 그만큼 전체적으로 해수 온도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 결과 동해에서 오징어 대신 방어와 다랑어가 많이 잡힌다. 어종(魚種) 구성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오징어 대신 방어를 잡으면 되지 않나?"라는 질문에 이 교수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오징어 잡는 배를 방어 잡는 배로 바꿔야 하고, 오징어 가공 공장도 전부 다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즉 수산업의 구조와 구성이 다 바뀌어야 하는데 그리 빨리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고 했다. 인간의 산업 구조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바다와 육지의 생태계 변화를 따라잡기 바쁜 상황이 된 것이다. 또 바다 수온이 올라가면 전반적으로 생물 다양성이 줄어든다. 이 교수는 “바다가 따뜻해지면 종(種) 다양성이 떨어지고, 종 다양성이 떨어지면 생태계의 기능과 생존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했다. 생태계의 회복력이 떨어지면 먹이사슬을 통해 최상위 생물인 인간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극단적인 날씨로 인간의 먹을거리와 생계에 충격이 오면 이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2011년부터 6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시리아 내전'도 촉발 원인의 하나가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이다. 기후변화는 우리의 먹을거리에만 영향을 미치는게 아니다. 인간의 생사(生死)와 인류 문명의 존폐를 결정할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전 지구의 평균 해수면은 매년 1.8~2㎜ 씩 높아졌다. 세계의 도시 가운데 40%가 해안 근처에 있을 만큼, 인류는 해안 근처에서 문명을 이뤄왔다.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면 많은 도시가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곳은 남태평양의 섬나라들,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베니스 같은 낮은 지역들이다. 한반도 역시 지난 30년간 해수면이 매년 3.03㎜씩 높아져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지구 해수면은 산업혁명 이후 약 20cm 상승했다. 그동안은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물의 부피가 커진 것이 주요 원인이었는데, 이제는 극지방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극지방 빙하는 기후변화의 키포인트 (key point)다. 지구에서 가장 큰 빙하는 북극 그린란드와 남극에 있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상(대륙 위의 빙하)이 다 녹으면 세계 해수면이 65m나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빙하들은 이미 녹기 시작했고, 이번 세기 안에 산악 빙하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은 확실하다. IPCC의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처럼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4~5℃ 높아지면 해수면은 1m 가량 높아지고 많은 해안 도시들이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 해수면 상승을 멈출 수 있을까? 온실가스는 한번 배출되면 수백~ 수천 년 동안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지금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더라도, 그동안 누적된 온실가스 때문에 세계 해수면은 앞으로 수 백~수 천 년 동안 상승하리라는 것이 IPCC의 예측이다. 게다가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금이 가고 불안정해져 깨질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빙하가 겉부터 조금씩 녹아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깨지거나 무너지면 그 녹는 속도와 파급효과는 정확하게 계산하기가 어렵다. 조천호 전 원장은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서남극 연안에 있는 빙상이 깨질 개연성이 있다. 그것이 무너지면 전 세계 해수면이 3m나 올라온다. 정확히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세기 안에 언제 일어난다 해도 과학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가 이처럼 지구 환경이 갑자기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진입하는 것이다. 티핑 포인트는 작은 변화들이 쌓여 갑자기 큰 변화를 일으키는 특정 지점을 말한다. 남극이나 그린란드의 빙상이 깨져서 붕괴하거나,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아 다량의 온실가스가 방출되면서 미처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가능성 등이다. 조 전 원장은 “기후변화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당뇨병이 인간의 몸에 미치는 영향에 비유할 수 있다. 당뇨병은 우리 몸의 조절 시스템을 고장 나게 한다. 마찬가지로 1도, 2도 올라갈 때마다 지구는 인간이 대응하기 어려울 만큼 변화무쌍하고 극한적인 기후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지구는 수 천~ 수 만 년에 걸쳐 스스로 균형을 잡겠지만 그 사이 인류의 삶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기후변화 때문에 지구가 위기인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인류가 위기다. 2015년 제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에서는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파리협정은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5℃와 2℃ 목표를 모두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1.5℃도 위험하다는 과학자들의 의견과 남태평양 섬나라 등 저지대 국가들의 의견으로 IPCC는 2018년 인천 송도에서 특별 총회를 열었다. 이 특별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C 특별보고서'를 채택했고, 지구온난화를 1.5℃로 제한한다는 목표가 정해졌다. 6차 IPCC 보고서의 '타오르는 불꽃' 그래프를 보면 1.5도일 때와 2도일 때 차이를 알 수 있다. '독특하고 위협받는 체계'는 산호초, 산악 빙하 등 특별히 위험이 큰 부분을 의미하는데 1.5℃일 때는 리스크가 높음이지만 2℃일 때는 매우 높음이다. 산호초는 1.5도에는 70~90%가 사라지고, 2도가 되면 99%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극한 기상현상' 역시 1.5℃일 때는 높음이지만 2℃가 되면 매우 높음으로 접어든다. '영향의 분배'는 같은 조건에서 더 피해를 입는 나라, '전 세계 총 영향'은 세계의 재산 피해나 전 지구적 생태계 피해를, '대규모 단일 사건'은 기후변화로 인해 갑자기 돌이킬 수 없는 큰 변화를 겪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모두 5차 보고서(AR5, 2014년)보다 6차 보고서(AR6, 2022년)에서 리스크가 더 빨리 일어날 것으로 전망되었다. 과학적 증거가 쌓임에 따라 위험이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뉴스에서는 이미 2024년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1.5℃ 상승했다는데 어찌된 일인가? IPCC는 자연 변동성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10년 단위로 온도를 산출한다. 2015~ 2024년에는 지구 기온이 1.25도 높아졌다. 그러니까 아직은 1.5도에 도달하지 않았다. 다만 인류가 온실가스를 더 감축하지 않는다면 2040년경에는 1.5℃에 도달하리라는 것이 IPCC의 예측이다. '타오르는 불꽃' 그래프를 보면 1.5도일 때는 5개 분야 가운데 왼쪽 2개 분야만 위험이 높음 수준인데, 2도가 되면 5개 분야 전부가 높음이나 매우 높음 수준으로 올라간다. 그러니까 지구온난화가 1.5도 이상으로 진행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기후경제 언박싱> ① 기후위기는 가짜인가?

기후와 에너지는 인류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보다 이념적 선입견이 앞서거나, 정보는 넘치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기후와 에너지, 그리고 경제에 관한 정확한 사실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기후에너지 분야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세계 190여 개 국가들이 모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행하겠다는 국제 협약이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는 중국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말은 근거가 없지만,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과학적 증거가 없거나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무엇이고 기후변화의 증거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기후과학을 전공한 국종성 서울대 교수와 김백민 부경대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지구 평균 온도가 몇 도인데? 지구온난화를 많이 얘기하는데, 지구 온도가 몇 도에서 몇 도로 올라갔다는 것인가? 왜 그런가? 기후변화 연구의 기초가 된 연구로는 두 가지를 많이 꼽는다. 일명 하키 스틱 커브와 킬링 커브다. ○지구 온도 상승을 보여주는 하키스틱 커브 미국의 대기과학자 마이클 만(Michael E. Mann)이 1999년 학술지에 발표한 하키 스틱 커브(Hockey Stick Curve)는 기후 변화에 대한 큰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마이클 만은 지난 1000년 동안의 지구 북반구 평균 기온을 연구했는데 그래프의 모양이 하키 스틱을 닮았다고 해서 하키 스틱 커브라고 불린다. 하키스틱 커브를 보면 지난 10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은 큰 변화가 없다가 1900년 이후 최근 100여 년 동안 급격히 치솟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치솟았다고 하지만 숫자로 보면 AD1000년부터 1900년까지는 13.6∼13.8℃ 사이였고 1998년은 14.6℃로 겨우(?) 1℃ 올랐다. 마이클 만은 1900년 이전의 온도는 나무의 나이테와 산호, 빙하코어에 있는 산소동위원소 비율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복원했고, 1900년 이후는 온도계를 통한 측정 자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키스틱 커브는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3차 보고서(2001년)에 대표 논문으로 채택되었다. ○이산화탄소 증가를 보여주는 킬링 커브 하키스틱 곡선과 함께 지구온난화 논의의 기초가 된 연구가 미국 대기과학자 찰스 데이비드 킬링(Charles David Keeling) 박사의 킬링 곡선이다. 킬링 박사는 1958년 청정지역인 하와이 마우나로아산에 관측소를 만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높아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1950년대 310ppm이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2023년 425ppm을 넘어섰다. 찰스 킬링 박사는 2005년 작고했는데 그의 아들인 랄프 킬링 박사가 계속해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가스에 의한 온실효과를 발견하고, 이산화탄소 급증과 지구 온도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면서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라는 가설은 점점 과학적으로 증명돼왔다. ●지구 온도는 계속 변했는데 왜 지금이 문제? 과학자들에 따르면 45억 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는 처음에 뜨거운 불덩이였다. 인류가 탄생한 후에도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끊임없이 온도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데 왜 지금 1℃의 온도 변화를 놓고 호들갑을 떨까? 지구는 평균 온도가 30℃로 높았던 적도 있고, -15℃로 낮았던 적도 있다. 공룡이 살던 1억~2억 년 전에는 지구 평균 온도가 25℃를 넘었다. 현존하는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60만 년 전에 처음 탄생했는데, 지구 온도가 지금보다 5~6℃ 낮은 빙하기를 여러 번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1만 년 전부터 따뜻하고 안정된 기후가 이어졌고, 이 때부터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지구가 수십억 년, 수십만 년에 걸쳐 큰 온도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의 변화에서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속도다. 인류가 탄생한 후에도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5~6℃ 떨어졌다 올라갔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수십만 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 변화였기 때문에 지구 생태계와 인류가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불과 100여 년 동안 1℃ 이상 상승해 과거보다 200배 이상 빨리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역사상 큰 기후변화는 생물의 대멸종을 불렀다. 4억 5000만 년 전에는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충돌로 많은 우주먼지가 지구로 날아와 10℃가 떨어지면서 해양 생물이 전멸하다시피 했다(오르도비스기 대멸종). 2억 5000만 년 전에는 시베리아지역에서 대형 화산들이 폭발하면서 온도가 상승해 지상 생물 70%, 바다 생물 96%가 멸종됐다(페름기 대멸종). 이처럼 급격한 온도 변화는 대멸종을 불렀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빠른 지금의 기온 상승은 지구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 기후 음모론에 불을 붙인 사건들 지구온난화에 대한 논쟁이 가열될 무렵 몇 개의 사건이 음모론을 키웠다. 기후위기 전도사였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한 공로로 2007년 IPCC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강연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6년)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그 중 일부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위험들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또 2009년 11월에는 영국의 이스트 앵글리아대 기후연구소 필 존스 소장이 IPCC 4차 보고서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컴퓨터 해킹으로 인해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이메일에서 기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 자료를 숨기거나 조작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김백민 교수는 “과거 일부 미심쩍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연구들이 기후변화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체를 의심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지금도 기후변화에 대한 언론 보도나 책, 그리고 강연하는 분들이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란 현실이 아니다. 어떤 조건이 되었을 때라고 가정을 하는 것이고 그 가정에 부합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는 예측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확률 0.1%도 안 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그걸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다가올 미래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2022년 출간된 '최종경고: 6도의 멸종'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최근 화제가 된 이 책은 환경저널리스트 마크 라이너스가 쓴 책으로 '기후변화의 종료, 기후붕괴의 시작'이란 자극적인 부제를 달고 있다. 김 교수는 “지구온도 6도 상승은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금의 5배가 되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현재 추세로 봐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기후위기를 강조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충격적인 내용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근접한 가능성을 갖고 과학적으로 얘기해야 합리적 토론과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확률을 가지고 지구 생태계가 다 무너지고 인류가 멸망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대응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사건이나 비전문가들의 과장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기후위기가 잘못됐거나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구 온도 상승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변화라는 주장이다. 둘째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가 되더라도 지구 온도는 그리 많이 상승하지 않으리라는 주장이다. ①대기물리학자인 프레드 싱어(Fred Singer) 전 버지니아대 교수는 지구 온난화는 자연적인 기후 주기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 발간된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Unstoppable Global Warming)는 책에서 “지구 기후는 약 1,500년 주기로 따뜻해지고 차가워지는 자연적 사이클을 따른다"면서 이 주기는 태양 활동과 같은 자연적 요인에 의해 주도된다고 했다. ②기상학자인 리처드 린젠(Richard Lindzen) 전 MIT 교수는 기후위기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구 온도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는데 기후위기론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역할을 과대평가했다고 말한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 이전의 2배가 되었을 때 지구 온도는 3℃ 안팎의 상승을 할 것이라고 IPCC가 예측한 반면, 린젠 교수는 구름의 작용 등 지구 자체 시스템으로 인해 지구 온도는 1℃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종성 서울대 교수는 “과학은 진실을 말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증거들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게 과학"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추어보면 “기후변화가 가짜"라는 주장은 주장만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나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후속 연구들에 따르면 프레드 싱어 교수가 주장한 태양 활동은 최근의 급격한 온도 상승에 기여한 바가 없고, 린젠 교수의 주장 역시 후속 연구들을 통해 반박되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가 되지 않은 상황(2024년 기준 50% 증가)에서도 이미 2011~2020년 지구 온도는 1850~1900년에 비해 1.1도 높아졌다. 반면에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입증하는 증거와 연구들은 계속 쌓이고 있다. 마이클 만의 하키스틱 커브 역시 초기에 특정 나무의 나이테를 너무 많이 반영했다며 조작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다른 방법들로 연구한 논문들이 모두 하키스틱 커브와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대기과학과 기후과학을 전공한 두 교수는 “이제는 지구과학자의 99% 이상이 기후변화를 인정한다"고 입을 모았다. 1990년대까지는 기후변화에 회의를 가진 과학자들이 일부 있었지만, 그 후 관련 연구들이 계속 쌓여서 적어도 과학계에서는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남은 문제들 기후변화가 점점 확실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IPCC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6년 2차 보고서에서 “여러 증거들은 기후에 대한 인간의 영향이 분명하다는 것을 시사한다(suggest)"라고 했던 표현은 2014년 5차 보고서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관찰된 온난화의 주요 원인은 인간 활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extremely likely)"고 강화됐다. 2023년 6차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영향으로 대기와 해양, 육지가 따뜻해졌다는 것은 명백하다(unequivocal)"라며 세월이 갈수록 표현이 점점 확실해졌다. 그러나 앞으로 밝혀져야 할 문제들도 많다. 첫째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늘어났지만 여기에 인간 활동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인간이 일으킨 변화, 인간이 일으킨 변화에 의해 연쇄적으로 일어난 자연적인 변화, 순수 자연 현상들이 각각 몇% 정도 관여되었는지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정교화해야 할 과제다. 둘째 미래 예측과 관련해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가 늘어났을 때 기후가 얼마나 변할지는 시나리오상의 범위로만 주어진다. 6차 IPCC 보고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 이전의 280ppm에서 두 배인 560ppm이 되면 지구 평균 기온이 2.5~4℃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1℃ 변하는 것도 큰 문제인데, 예상치의 범위가 1.5℃나 된다는 것은 현재 지구과학의 한계를 보여준다. 김 교수는 “지구는 하나뿐이라서 지구과학은 물리학이나 생물학처럼 실험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컴퓨터로 기후 모델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거기에는 늘 불확실성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 교수도 “기후는 대기, 해양, 지질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명백한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어렵다. 미래 예측을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며 기후과학의 복잡성을 설명했다. 두 과학자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에 대한 여러 가지 회의론은 과학적 근거를 가졌다면 귀담아 듣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배경으로 인해 무조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 무슨 증거를 제시해도 부정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극단적 날씨가 모두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하거나, 곧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기후과학, 지구과학은 완벽하지 않지만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는 거의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 [IPC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약자.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 창설.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영향,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기술적, 사회경제적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 195개국이 참가. [기후변화] 지구의 기후가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현상. 비슷한 말이지만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영향을 좀 더 강조한 단어이고, 기후위기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인다. [날씨와 기후] 기후과학자들은 날씨를 기분, 기후를 성격에 비유한다. 날씨가 사람의 기분처럼 수시로 달라지는 것이라면, 기후는 사람의 성격처럼 비교적 오랜 기간 나타나는 날씨의 평균적인 상태를 말한다. 또 기후변동은 비교적 단기적인 변화를, 기후변화는 장기적인 변화를 뜻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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