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리포트]EU 탄소시장 대수술…‘규제’에서 ‘산업투자’로 무게중심 옮긴다

유럽연합(EU)이 세계 최대 탄소시장인 배출권거래제(EU ETS)를 전면 개편한다. EU는 지난 17일(현지 시간) 배출권거래제 개편안을 발표하는 등 탄소 규제 중심의 정책을 산업 경쟁력과 탈탄소 투자 지원을 결합한 새로운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개편은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까지 함께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해운·항공 규제 확대, 대규모 탈탄소 투자 지원이 함께 추진돼 한국 수출기업의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기업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1. EU는 왜 지금 배출권거래제를 다시 손질하려는 것인가. EU ETS는 2005년 도입 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탄소시장으로 평가받아 왔다. 실제로 대상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5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배출권 판매 수익은 청정에너지와 혁신기술 투자에 활용됐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미국과 중국이 대규모 산업 지원 정책을 펼치면서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2040년 온실가스 90% 감축 목표까지 제시되면서 기존 제도를 산업 경쟁력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번 개편은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Q2. 이번 개편의 핵심은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배출권거래제를 단순한 규제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탈탄소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다. EU는 배출권 공급 감소 속도를 일부 조정해 산업계의 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1000억 유로(약 160조 원) 규모의 산업탈탄소화은행(IDB)을 신설하고 청정기술 투자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탄소 제거 기술을 제도 안으로 편입하고, 해운과 항공 등 적용 대상도 확대해 탄소 감축을 위한 투자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배출권 감축 속도 조절의 경우 매년 배출권 공급량을 줄이는 비율(선형감축률, LRF)을 2031~2035년에는 3.7%, 2036~2040년에는 1.7%로 설정했다. 이는 기존의 가파른 감축 경로보다 완화된 것으로, 산업계에 보다 점진적인 적응 기간을 제공한다. CBAM 적용 업종에 대한 무상할당 폐지 시점을 기존 2034년에서 2038년까지로 연장해 기업 부담을 늦춰준다. 대신 무상 배출권을 받으려면 반드시 탈탄소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조건부 무상할당' 원칙을 강화했다. 아울러 항공 및 해운 부문 규제를 강화하고, 생활폐기물 소각 시설까지 ETS 적용 범위를 넓혀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더 촘촘히 묻기로 했다. 이밖에 대기 중의 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기술 등으로 확보한 '탄소 제거 크레딧'을 ETS 체제 안에 편입시켜 기업들에 유연성을 제공하기로 했다. Q3. 탄소 제거 기술을 EU ETS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앞으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제거해 영구적으로 저장한 실적도 일정 범위에서 배출권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이산화탄소 1톤을 배출했다면 배출권 1장을 제출하는 대신, 직접공기포집(DACCS)이나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BioCCS) 등을 통해 대기 중 탄소 1톤을 제거했다는 공식 인증(CRCF)을 받으면 같은 효과를 인정받는 방식이다. 탄소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이미 배출된 탄소를 없애는 활동까지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미다. EU는 이를 위해 '제거 기반 배출권(Removal-backed Allowances)'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도입할 계획이다. 우선 탄소 제거 물량만큼 배출권 총량을 늘린 뒤 이를 경매하고, 경매 수익으로 고품질 탄소 제거 프로젝트를 직접 지원하는 구조다. 현재 탄소 제거 기술은 비용이 배출권 가격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EU가 초기 시장을 만들어 민간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제도는 철강과 시멘트, 화학처럼 공정 특성상 탄소를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산업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배출권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완화하고, 탄소 제거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육성하려는 목적도 담고 있다. 탄소 제거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Q4. 한국 수출기업에는 어떤 영향이 가장 클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CBAM에 따른 탄소 비용 증가다. 현재 EU 배출권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 시멘트, 화학 등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앞으로 탄소배출량을 더욱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 배출량이 많을수록 추가 비용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탄소배출 관리 능력이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Q5. EU 기업은 보호받고 한국 기업은 불리해지는 것 아닌가. EU는 자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무상 배출권 지급을 기존 계획보다 4년 연장했다. 그러나 무조건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반드시 '유럽 내 탈탄소 투자 계획'을 제출하고 실제 투자까지 완료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배출권을 지원받는 대신 그만큼 유럽 안에서 친환경 설비에 투자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이러한 혜택을 받기 어려워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Q6. 유럽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가능성이 충분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 SK 등 유럽 현지 생산기지를 보유한 기업들은 EU 혁신기금이나 산업탈탄소화은행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EU 혁신기금은 기업의 국적과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지만, 프로젝트는 반드시 EU 역내에서 수행돼야 한다. 따라서 유럽 현지 공장의 저탄소 설비 투자나 신기술 도입은 오히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Q7. 해운업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번 개편으로 가장 큰 변화를 맞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해운이다. EU ETS는 유럽경제지역(EEA) 항만을 오가는 선박에 대해 항해 중 발생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하고, 그 배출량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구매·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존에는 5000GT(선박 내부 공간의 크기를 나타내는 총톤수 기준으로 5000톤) 이상 대형 선박이 대상이었지만 앞으로는 400GT 이상의 중소형 선박까지 관리 대상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국내 해운사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모니터링과 보고(MRV), 배출권 구매, 연료 사용 관리 등 새로운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유럽 항만을 자주 이용하는 선사일수록 행정 비용과 운영 비용이 함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Q8. 항공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유럽 노선을 운항하는 국내 항공사들도 탄소 비용 증가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U는 국제선에 대한 ETS 적용을 확대하고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배출권 구매뿐 아니라 SAF 사용 비용까지 함께 부담해야 한다. 결국 연료 효율 개선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이 비용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Q9.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도 영향을 받게 될까. 전문가들은 EU의 이번 개편이 한국 배출권거래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미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을 시작하면서 유상할당 확대와 시장안정화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EU ETS 개편으로 배출권 공급은 줄어들고 국내 배출권 가격이 점진적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높아 기업들의 배출권 구매 부담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Q10. 한국 기업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전문가들은 탄소 규제를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영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정밀하게 관리하고, 재생에너지와 전기화 설비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EU 현지 생산기지 확대 여부와 혁신기금 활용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제품 가격뿐 아니라 탄소 경쟁력이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Q11. 이번 개편안은 언제부터 시행되나. 이번 개편안은 곧바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약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앞으로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입법 협상을 거쳐 2027년 1분기 최종 법안 확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회원국들은 2028년까지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일부 조항을 먼저 시행하게 된다. 개정된 EU ETS의 대부분 규정은 2029년부터 본격 적용되며, 해운 부문 적용 확대와 경매수익 사용 강화 등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개편안의 핵심인 '투자 조건부 무상할당제'는 2031년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EU 내 기존 생산시설이 무상 배출권을 계속 받으려면 2029년 9월까지 탈탄소 투자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실제 투자 여부에 따라 무상할당 규모가 결정된다. 같은 해 생활폐기물 소각시설도 EU ETS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한국 기업들도 향후 2~3년을 유럽 시장 대응 전략을 재정비할 마지막 준비 기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Q12. 이번 개편은 기후위기 대응의 후퇴일까, 아니면 진전일까. 평가는 엇갈린다. 환경단체들은 무상할당 연장과 감축 속도 조절이 기후 대응을 늦출 수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EU는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해야 지속적인 탈탄소 투자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개편이 규제를 완화한 것이 아니라 투자 중심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꿨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탄소를 배출하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더 빠르게 저탄소 설비에 투자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번 EU ETS 개편은 탄소 규제가 환경정책을 넘어 산업정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Q13. EU ETS는 얼마나 큰 시장인가. 2005년 출범한 세계 최대 탄소시장으로, EU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0%를 관리하고 있다. 발전소와 철강·시멘트·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 항공, 해운을 포함해 1만 개 이상의 시설과 사업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 기반 온실가스 감축 제도로 평가받는다. 2005년 이후 지금까지 2,700억 유로(약 430조 원)의 수익을 창출했고, EU 통합 레지스트리에 등록된 배출권 자산 가치는 2,000억 유로(약 320조 원)를 넘는다. 최근 배출권 가격은 이산화탄소 1톤당 약 80유로(약 13만 원) 수준이며, 매년 약 80억 개의 배출권이 거래되는 등 연간 거래 규모만 약 2,000억 유로에 달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초고령 사회 덮친 폭염…선풍기와 ‘팔 담그기’가 생명줄

여름마다 극심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노인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폭염이 단순한 기상재해를 넘어 공중보건 문제가 됐다.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땀 분비와 피부 혈류 조절 능력이 떨어져 몸속 열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한다. 갈증 감각 저하와 만성질환까지 겹치면 탈수와 열사병, 심혈관계 부담 위험은 더욱 커진다. 최근 국내외 연구들은 노인이 왜 폭염에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선풍기와 피부에 물 묻히기, 시원한 물에 손과 팔뚝 담그기 같은 간단한 대응법을 제시했다. ◇서울 폭염 일수 10년 새 31일 증가 을지대학교 환경보건안전학과 권석순 연구원과 갈원모 교수는 지난해 6월 '한국재난정보학회 논문집'에 '폭염이 노인 건강과 사망 요인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발표했다. 연구진이 2012~2024년 서울의 여름 기온을 분석한 결과, 평균 최고기온은 2012년 28.6℃에서 2024년 30.7℃로 상승했다. 2014년과 2024년을 비교하면 하루 최고기온 33℃ 이상인 날은 9일에서 40일로 31일 늘었다. 질병관리청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따르면, 신고된 국내 온열질환자는 2023년 2818명에서 2024년 3704명, 2025년 4460명으로 늘었다. 추정 사망자는 2023년 32명에서 2024년 34명, 2025년 29명으로 집계됐다. 2011~2025년 누적 추정 사망자는 267명으로, 이 가운데 95.8% 이상인 256명 이상이 열사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인은 특히 취약하다. 이전 연구에서는 일정한 역치온도 이상에서 기온이 1℃씩 오를 때 온열질환자가 일반 연령층은 56% 증가한 데 비해 노인 남성은 62%, 노인 여성은 74% 증가했다. ◇노인은 왜 더위를 잘 견디지 못하나 사람의 몸은 더워지면 피부 혈관을 확장해 열을 피부로 보내고 땀을 증발시켜 체온을 낮춘다. 하지만 노화가 진행되면 땀 분비와 피부 혈류 증가 반응이 둔해진다. 몸 안에 열이 더 쉽게 쌓이는 것이다. 체온을 낮추기 위해 피부로 혈액을 보내면 심장은 더 빨리 뛰어야 한다. 땀으로 수분까지 잃으면 혈액량이 줄어 심혈관 부담은 더욱 커진다. 심장병이나 뇌혈관질환을 가진 노인에게 폭염이 특히 위험한 이유다. 국내 연구진은 폭염이 심혈관·호흡기·신경계 질환 부담을 높이고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지적했다. 다만 폭염과 알츠하이머병 사망 증가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이번 연구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32℃ 넘으면 선풍기 끄라?"…습도가 변수 캐나다 몬트리올심장연구소와 몬트리올대학교, 호주 시드니대학교 등의 국제 공동연구진은 지난해 7월 'JAMA 네트워크 오픈(Network Open)' 저널에 노인의 선풍기 사용 효과를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평균 68세 노인 58명을 38℃·습도 60%의 고온다습 환경과 45℃·습도 15%의 극고온 건조 환경에 노출해 선풍기와 '피부 적심(skin wetting)' 효과를 비교했다. 38℃·습도 60%에서는 선풍기를 사용했을 때 심부체온이 대조군보다 평균 0.1℃ 낮아지고 열적 쾌적감도 개선됐다. 습한 환경에서 선풍기가 땀의 증발을 촉진했기 때문이다. 반면 45℃·습도 15%에서는 선풍기 사용자의 심부체온이 0.3℃ 더 상승하고 땀 배출량도 시간당 270mL 늘었다. 뜨거운 공기가 피부로 열을 전달하면서 선풍기가 사실상 '열풍기' 역할을 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32℃가 넘으면 선풍기를 끄라"는 획일적인 기준보다 기온과 습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피부에 물을 뿌리거나 묻히는 '피부 적심'도 효과를 보였다. 38℃·습도 60%에서 피부를 적신 참가자는 땀 배출량이 시간당 평균 67mL 감소했다. 45℃·습도 15%에서는 121mL 줄었다. 외부에서 공급한 물이 증발하면서 땀과 같은 냉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체내 수분량이 적고 갈증 감각이 둔한 노인에게 피부 적심은 탈수 부담을 줄이면서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다. ◇20℃ 물에 손과 팔뚝 10분 담갔더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운동학과와 건강노화센터의 레이첼 M. 코틀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실험 생리학(Experimental Physiology)' 저널에 손과 팔뚝 냉각 효과를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평균 74세 노인 12명을 기온 34℃·습도 77% 환경에 2시간 동안 노출했다. 참가자들은 실험 60분과 90분 시점에 각각 10분 동안 양손과 팔뚝을 20℃의 물에 담갔다. 일반적인 시원한 수돗물 온도를 고려한 것이다. 냉각하지 않은 경우 심부체온은 70분 동안 평균 0.27℃ 상승했지만 손과 팔뚝을 물에 담근 경우 상승 폭은 0.09℃에 그쳤다. 심박수도 낮아졌다. 실험 종료 시점에서 냉각한 참가자의 평균 심박수는 대조 조건보다 분당 8회 낮았다. 심근 산소 소비와 심혈관 부담을 나타내는 '이중곱(rate-pressure product·RPP)' 상승도 억제됐다. 연구진은 “손과 팔뚝은 면적에 비해 혈류량이 많고 열 전달에 유리하다"면서 “이 부위를 물에 담그면 혈액이 식어 다시 몸 안으로 순환하면서 체온 상승을 늦춘다"고 설명했다. ◇폭염 대응, '물과 바람'을 다시 봐야 폭염 속 노인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 반드시 거대한 냉방시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대의 선풍기와 물 한 대야가 체온 상승을 늦추고 지친 심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 고온다습한 폭염에서는 선풍기가 노인의 체온 상승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피부에 물을 묻히면 증발 냉각 효과를 얻으면서 땀으로 빠져나가는 수분을 줄일 수 있다. 약 20℃의 시원한 물에 양손과 팔뚝을 10분간 담그는 것도 심부체온과 심장 부담을 낮추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45℃에 이르는 극심한 건조 폭염에서는 선풍기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의식 혼란이나 비정상적인 고체온 등 열사병이 의심되면 즉각 응급조치와 의료기관 이송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폭염 대책도 이제 '물을 마시고 외출을 삼가라'는 일반적인 권고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미세먼지 줄였더니 엄청난 폭염이…2026 유럽 ‘환경신데믹’ 역설

2026년 여름, 유럽은 다시 한번 기후위기의 최전선이 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곳곳에서 40℃를 넘는 폭염이 이어졌다. 산불이 확산했고, 전력 수요도 급증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도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이 단순한 '더운 여름'이 아니라 앞으로 유럽에서 반복될 새로운 기후의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 논문은 이 같은 유럽의 폭염이 '온실가스 증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사람의 건강을 위해 추진한 대기오염 저감 정책, 즉 미세먼지와 황산염 에어로졸을 줄인 정책이 역설적으로 유럽의 여름 폭염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환경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 문제가 증폭되는 '환경신데믹(Eco-syndemic)'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2026년 유럽 폭염의 특징 2026년 유럽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의 기상학적 특성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오메가 블록(omega block) 현상이다. 제트 기류가 그리스 문자 Ω(오메가) 모양으로 크게 굽어지며 대기 흐름이 정체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중앙의 강한 고기압이 양옆의 저기압 사이에 끼어 '대기 정체'를 유발함으로써 뜨거운 공기를 특정 지역에 고착시켰다. 열돔(heat dome) 형성도 특징이다. 고기압 시스템이 마치 항아리 뚜껑처럼 작용하여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유입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뒀다. 가둬진 공기는 고기압 아래에서 압축되며 더욱 뜨거워지는 되먹임 루프를 형성했다. 준정지 로스비 파동(QSW)의 강화도 나타났다. 로스비 파동은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물결처럼 크게 굽이치는 대기 흐름으로, 특정 지역에 폭염이나 한파가 오래 머물도록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준정지 로스비 파동은 이동 속도가 매우 느려 특정 지역에 거의 고정되어 있는 로스비 파동을 말하는데, 이 준정지 로스비 파동이 이 강화되면서 폭염의 지속성과 강도가 극대화됐다. 진공청소기 효과(Vacuum Cleaner Effect)도 있다. 포르투갈 해안의 저기압이 열펌프처럼 작동해 북아프리카의 열기를 유럽 본토로 강력하게 빨아올려 북쪽으로 비산시켰다. 이와 함께 제트 기류가 두 갈래로 나뉘어 정체되는 현상이 잦아지면서 뜨거운 공기가 장기간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무는 현상이 심화됐다. ◇온실가스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유럽의 이상 고온 유럽의 여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더워졌다. 기후모델은 이러한 추세를 예측했지만, 실제 관측된 온난화 강도를 계속 과소평가해 왔다. 왜 실제 유럽은 모델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뜨거워졌을까. 스페인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 지구과학부의 ​페드로 J. 롤단-고메스 박사를 비롯해 카탈루냐 고등연구원(ICREA)​의 마누엘 G. 도나트 교수, 영국 기상청 해들리 기후연구센터​의 더그 M. 스미스 박사 등이 이 의문에 답했다. 이들은 최근 국제 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 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최근 수십 년 동안 유럽 여름이 북반구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더워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황산염 에어로졸(미세먼지) 배출 감소를 제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서부 및 중부 유럽(WCE)의 연간 이산화황(SO2) 배출량은 1980년경 약 4000만톤 수준으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10년경에는 100만톤 이하로 급감했다. 연구진은 9개 기후모델, 392개의 역사적 사례 시뮬레이션과 에어로졸만 반영한 실험, 온실가스만 반영한 실험을 비교 분석해 각각의 영향을 분리했다. ◇깨끗한 공기가 폭염을 키운 이유 황산염 에어로졸은 석탄발전이나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이 대기 중에서 생성되는 미세 입자다. 인체에는 해롭지만 기후에는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빛 일부를 우주로 반사해 지표면을 식히는 '우산(parasol)' 역할을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은 산성비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산염 배출을 대폭 줄였다. 공기는 눈에 띄게 깨끗해졌고 호흡기 질환 위험도 감소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바로 이 시점부터 유럽의 기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에어로졸이 감소하면서 단순히 햇빛이 더 많이 지표면에 도달한 것만이 아니었다.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기온 상승 속도 차이가 커졌고, 이것이 여름 동대서양 모드(Summer East Atlantic mode)​를 강화했다. 이어 준정체 로스비파(Quasi-stationary Rossby Waves, QSW)​가 더욱 자주 형성되면서 유럽 상공의 대기 흐름이 정체되는 '블로킹(blocking)' 현상이 강화됐다. 이 상태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한 지역에 오래 머물러 폭염이 며칠이 아니라 수주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연구진은 관측자료와 모델을 비교한 결과 현재 기후모델은 이러한 대기순환 변화를 충분히 재현하지 못해 유럽 폭염을 실제보다 낮게 예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모델의 '신호 대 잡음(signal-to-noise)' 오류를 보정하면 유럽에서 관측된 추가적인 여름 온난화의 약 69%가 외부 강제력, 특히 에어로졸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환경신데믹'이라는 새로운 경고 이 연구는 결코 “미세먼지를 줄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환경정책이 얼마나 복잡한 상호작용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미세먼지를 줄이면 천식과 심혈관 질환, 조기 사망은 감소한다. 하지만 동시에 태양복사를 차단하던 에어로졸도 사라지면서 지역 기후는 더 빠르게 가열될 수 있다. 폭염은 다시 열사병, 심혈관 질환, 산불, 가뭄, 농업 피해, 전력난, 오존 농도 증가 등 또 다른 환경·보건 위기를 유발한다. 이처럼 하나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위험이 증폭되고, 그 결과가 다시 인간의 건강과 사회경제적 피해를 확대하는 현상을 '환경신데믹(Eco-syndemic)'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논문은 이 개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질 개선 정책과 기후변화가 서로 충돌하는 메커니즘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대기오염 정책과 기후변화 정책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미세먼지 저감, 온실가스 감축, 폭염 대응, 보건정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해법은 더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과 통합 정책 이번 유럽 폭염은 단순히 기후변화가 심해졌다는 사실만을 보여준 사건이 아니다. 인간이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추진한 정책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기후 시스템을 바꾸고, 다시 인간 사회에 새로운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에어로졸 감소가 문제이므로 배출을 다시 늘리자'가 해법은 결코 아니다. 황산염 에어로졸은 여전히 인체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오염물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구는 대기오염을 줄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온난화 효과를 상쇄할 만큼 온실가스 감축을 더욱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동시에 에어로졸 감소가 대기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현재보다 정밀하게 반영하는 차세대 기후모델을 개발하고, 폭염 조기경보와 전력망 강화, 도시 열섬 완화, 취약계층 보호 등 적응정책도 기존보다 높은 수준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환경정책도 이제는 개별 오염물질이 아니라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환경신데믹'의 시각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폭염은 일깨워 주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온 계속 오르면…말라리아 모기 줄고 일본뇌염 모기는 늘어나”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면 말라리아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오히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신 일본뇌염과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등을 매개하는 모기는 빠르게 북상하면서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제기됐다. 류지훈 경북대 생명과학부 BK21 FOUR 창의바이오연구단 연구원(농림축산검역본부 소속)과 최광식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논문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대한민국 18종 모기의 미래 분포'를 국제학술지 '기생충과 매개체 (Parasites & Vector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국내에서 의학적으로 중요한 모기 18종에 대해 모두 1969개의 출현 기록을 수집한 뒤, 종분포모델(MaxEnt)을 이용해 2030년대, 2050년대, 2070년대의 서식지 변화를 예측했다. 특히 기후뿐 아니라 지형, 토지피복까지 함께 고려해 미래의 모기 분포를 분석한 것이 특징이다. ◇기온보다 중요한 것은 '물과 지형'이었다 분석 결과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었다. 모기의 분포를 가장 크게 결정하는 것은 기온이나 강수량보다 지형습윤지수(TWI)였다. TWI는 빗물이 얼마나 잘 모이고 오래 머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여기에 고도와 토지피복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결국 모기가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따뜻한 날씨보다 물이 고이기 쉬운 지형, 논과 습지, 숲과 도시 녹지 같은 실제 서식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결과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의 미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삼일열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주요 모기는 중국얼룩날개모기(Anopheles sinensis), 벨렌라에얼룩날개모기(Anopheles belenrae), 클라이니얼룩날개모기(Anopheles kleini), 레스테리얼룩날개모기(Anopheles lesteri), 풀루스얼룩날개모기(Anopheles pullus) 등 얼룩날개모기류(Anopheles hyrcanus group)이다. ◇국내 말라리아 모기,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 연구진은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이들 얼룩날개모기류 5종을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종으로 평가했다. 고탄소 배출 시나리오(SSP5-8.5)에서는 2070년대 An. pullus와 An. belenrae의 적합 서식지가 사실상 100%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국내에서 가장 흔한 말라리아 매개종인 An. sinensis 역시 적합 서식지가 약 8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기온이 올라가면 모기가 더 많아질 것 같지만, 이들 모기는 오히려 더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룩날개모기류는 북위 37도 이상을 선호하는 대표적인 '북부 선호형' 모기로, 현재 기후에서도 생리적으로 가장 적합한 온도 범위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간다. 앞으로 기온이 4~5℃ 정도 더 오르면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온도 범위를 벗어나면서 서식지가 급격히 축소될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이는 국내 말라리아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말라리아는 대부분 삼일열 말라리아(원충 학명은 Plasmodium vivax)다. 흔히 아프리카에서 치명적인 사망을 일으키는 열대열 말라리아(원충은 Plasmodium falciparum)와는 전혀 다른 질병이다. 병원체가 다를 뿐 아니라 이를 옮기는 모기 역시 다르다. ◇휴전선 말라리아는 '열대 말라리아'가 아니다 국내 삼일열 말라리아는 얼룩날개모기류가 매개하지만, 열대 말라리아는 주로 아프리카의 감비아얼룩날개모기(Anopheles gambiae)와 같은 다른 얼룩날개모기가 전파한다. 따라서 국내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감소한다고 해서 열대 말라리아 모기가 그 자리를 자동으로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1993년 이후 국내 말라리아 환자가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휴전선(DMZ) 인근에 집중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 얼룩날개모기는 원래 서늘한 북부 지방을 선호하는 생태적 특성을 지녔다. 여기에 군사적 특성 때문에 DMZ 일대는 광범위한 방역이 쉽지 않았고, 북한과 생태계가 사실상 연결돼 있어 모기 개체군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삼일열 말라리아도 휴전선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열대 말라리아가 국내에 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연구진은 국내 토착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했을 뿐, 감비아얼룩날개모기와 같은 열대 말라리아 매개종이 한반도에 정착할 것으로 예측하지 않았다. 새로운 모기가 정착하려면 기온뿐 아니라 월동 능력, 번식 환경, 먹이, 생태계 경쟁, 해외 유입 등 여러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뇌염·뎅기열 모기는 오히려 북상한다 반대로 크게 늘어나는 모기도 있다. 일본뇌염의 주요 매개체인 작은빨간집모기(Culex tritaeniorhynchus)는 현재 한반도 적합 서식지가 국토의 약 15% 수준이지만, 2070년대에는 약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됐다. 증가율로는 236.5%에 달한다. 논을 주요 번식지로 하는 이 모기는 기온 상승과 함께 북쪽 지역까지 서식지를 넓힐 가능성이 크다. 뎅기열과 지카바이러스, 치쿤구니야열 등을 옮기는 흰줄숲모기(Aedes albopictus)도 적합 서식지가 약 183% 확대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북상 현상이 남한에만 그치지 않고 북한 지역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시사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 시대에는 기온만으로 감염병 위험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기후와 함께 지형, 토지 이용, 습지 분포 등을 함께 고려한 적응형 감시체계와 방역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감염병 지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그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풍년인데 영양실조? 기후변화가 빼앗아 간 콩·밀·우유의 영양분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하면 대부분 가뭄과 폭염으로 농작물이 말라 죽거나 수확량이 감소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들은 또 다른 위험을 경고한다. 앞으로 인류가 맞게 될 위기는 식량이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풍성해 보여도 영양은 줄어드는 '속 빈 강정' 같은 식량이 늘어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콩은 여전히 열리고, 밀은 여전히 자라고, 젖소도 우유를 계속 생산한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과 비타민, 미네랄, 유지방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즉 양은 유지되거나 늘어나도 질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식량안보의 개념이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에서 '얼마나 영양가 있는, 건강한 식품을 생산하느냐'로 바뀌어야 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과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숨겨진 굶주림(hidden hunger)'이다. 이는 칼로리는 충분히 섭취하지만 비타민과 미네랄,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현재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이러한 미량 영양소 부족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변화로 식품의 영양 밀도까지 낮아지면 빈혈, 면역력 저하, 성장장애, 인지기능 저하 등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 철분과 아연, 비타민 B군 부족은 임산부와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만과 영양결핍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이중 부담(double burden)' 현상도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밀, 수확은 괜찮아도 비타민은 최대 30% 감소 가장 충격적인 결과 가운데 하나는 밀(유럽 겨울밀)에서 나왔다. 겨울밀은 가을에 파종해서 이듬해 초여름 수확하는 밀을 말한다. 벨기에 겐트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래 기후 조건을 재현한 실험을 실시했다.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밀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양가는 크게 떨어졌다. 비타민 B5(판토텐산)와 비타민 B6(피리독신)는 약 25~30% 감소했고, 필수 미네랄인 몰리브덴은 20% 이상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성장 관련 희석 효과(growth-associated dilution effect)'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와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서는 식물이 더 빨리 자라고 생체량(biomass)도 늘어난다. 그러나 비타민과 미네랄이 축적되는 속도는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알곡이 더 크고 풍성해 보여도 영양소는 오히려 희석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밀이 '속 빈 강정'처럼 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비타민 B6는 식물의 키와 광합성 효율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까지 확인됐다. ◇콩, 생산량은 늘어도 단백질은 줄어든다 콩(대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식량 연구(Food Research International)'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 경우 콩의 영양 성분이 크게 변한다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이산화탄소 증가는 광합성을 촉진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양의 질이다. 연구에서는 콩의 단백질 함량이 약 6% 감소하고 전분은 2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 이유는 '탄소-질소 희석 효과(carbon-nitrogen dilution effect)' 때문이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식물은 당분과 전분 같은 탄소 화합물을 빠르게 만들어낸다. 하지만 단백질의 핵심 원료인 질소를 흡수하고 동화하는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탄수화물은 늘어나지만 단백질 농도는 희석된다. 겉으로는 알찬 콩처럼 보여도 실제 영양은 줄어드는, '속 빈 강정'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유도 예외 아니다…생산량보다 성분이 먼저 변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축산물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환경 연구 회보(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650만 마리 이상의 젖소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기존 상식을 뒤집었다. 폭염이 오면 우유 생산량부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우유 성분이 먼저 나빠진다는 것이다. 젖소가 더위를 느끼기 시작하는 비교적 낮은 온습도지수 55(THI)부터 유지방과 유단백 함량이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생산량 감소는 THI 70 이상에서 나타났지만, 성분 변화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폭염 환경에서는 유지방은 3.2%, 유단백은 5.9% 감소했다. 그 이유는 소의 생리적 적응 과정에 있다. 열 스트레스를 받은 소는 사료 섭취량이 감소하고 에너지 부족 상태에 빠진다. 그러면 몸은 우유의 지방과 단백질을 만드는 대신 체온 유지와 생존에 에너지를 우선 사용하도록 대사 체계를 바꾼다. 결국 우유의 양보다 영양 성분이 먼저 희생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성분 저하가 여름철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연중 지속될 수 있다. 우유 가격이 지방과 단백질 함량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생산량 감소만 고려하면 실제 경제적 손실을 최소 두 배 이상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우유가 계속 생산되지만, 그 속은 조금씩 비어가는 '속 빈 강정' 현상이 축산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생산량 경쟁'이 아니라 '영양 경쟁' 과거 인류는 녹색혁명을 통해 굶주림을 상당 부분 극복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앞으로의 문제는 곡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곡물 속 영양이 부족해지는 것일 수 있다. 이에 따라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농업 정책도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벨기에 겐트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후변화가 인류의 영양소 공급 자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단순한 증산 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이 제시하는 대안은 '바이오포티피케이션(biofortification·생물강화)'이다. 이는 육종이나 유전자 교정(CRISPR), 대사공학 등을 활용해 작물 자체의 비타민과 미네랄, 단백질 함량을 높이는 기술이다. 이미 철분과 아연이 풍부한 품종, 비타민 A가 강화된 황금쌀(golden rice), 엽산 강화 쌀, 비타민이 강화된 카사바 등이 개발되고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면 기후 적응성과 높은 영양가를 동시에 갖춘 품종 개발이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40도 더위가 일상이라고?”… 유럽 달구는 거대한 뚜껑 ‘열돔’의 공포

현재 유럽을 뒤덮고 있는 폭염은 단순한 여름 더위가 아니다. 기상학자들은 이번 사태를 '열돔(Heat Dome)'이 만들어낸 대규모 대기 재난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일부 지역의 기온이 44℃에 육박하고, 영국에서도 40℃ 안팎의 기온이 예보되면서 학교가 휴교하고 철도 운행이 중단되는 등 사회 시스템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극단적 폭염이 앞으로 더 자주,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유럽을 덮은 거대한 솥뚜껑, 열돔이란 열돔은 말 그대로 뜨거운 공기를 거대한 돔(dome) 형태로 가둬두는 대기 현상이다. 기상학적으로는 상층 대기에서 강한 고기압이 장기간 정체할 때 발생한다. 열돔이 형성되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먼저 상층 대기에 강력한 고기압이 자리 잡으면 공기가 아래로 내려오는 '침강(sinking)' 현상이 발생한다. 내려오는 공기는 압축되면서 온도가 상승하는데, 이를 단열 압축(adiabatic compression)이라고 한다. 공기가 내려올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가열된 공기는 지표면을 달구고, 지표면은 다시 대기를 가열한다. 원래라면 뜨거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열을 분산시켜야 하지만 강한 고기압이 마치 솥뚜껑처럼 상공을 덮고 있어 대류가 억제된다. 또한 하강 기류는 구름 형성까지 억제해 태양 복사에너지가 지표를 직접 가열하도록 만든다. 열돔은 △공기를 압축해 가열하고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구름 형성을 억제해 햇빛이 지표면에 쏟아지도록 하는 등 세 가지 과정을 동시에 작동시킨다. 이로 인해 극심한 폭염이 며칠이 아니라 수주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오메가 블록, 대기의 교통체증 이번 유럽 폭염의 배경에는 '오메가 블록(Omega Block)'이라는 대기 패턴이 있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전략 책임자 사만다 버지스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제트기류가 그리스 문자 Ω(오메가) 형태로 크게 굽어지면서 대기 중에 '교통정체'가 발생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제트기류는 보통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날씨 시스템을 움직인다. 그러나 오메가 블록이 형성되면 제트기류가 고기압을 한 자리에 묶어두게 된다. 결과적으로 열돔이 며칠 만에 사라지지 않고 장기간 정체하면서 지표면의 열이 계속 축적된다. 프랑스 기상청(Météo-France)의 예보관 세바스티앙 레아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현상을 “진공청소기"에 비유했다. 그는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공기를 빨아들여 유럽으로 계속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지금 얼마나 뜨거운가 올해 유럽 폭염은 단순한 기록 경신 수준을 넘어선다. 프랑스에서는 전국 평균 기온 지표가 1947년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이 경신됐고, 보르도는 41.9℃까지 치솟았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기온이 41℃까지 오르며 관광객들이 백화점과 미술관 등 냉방 시설로 피신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일부 시민들은 지하철역 통풍구 위에 모여 냉기를 쐬며 더위를 견뎠다. 폭염은 사회 인프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300개가 넘는 학교가 휴교했고 열차 운행도 중단됐다. 영국은 최고 수준의 적색 폭염 경보를 발령했고, 일부 지역은 38~40℃로 오를 것으로 예보됐다. 병원 응급실은 환자 급증으로 비상 대응에 들어갔다. 스페인 역시 일부 지역에서 44℃ 안팎의 기온이 예상되면서 월드컵 거리 응원전까지 취소됐다. 인명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폭염 기간 물놀이 중 익사 사고가 잇따랐고, 보르도 지역에서는 고령자 사망 사례가 보고됐다. 주차된 차량에서 2세와 4세 어린이가 숨진 채 발견되는 비극도 발생했다. 원전 운영에도 비상이 걸렸다. 강과 하천 수온이 상승하면서 원전 냉각수 사용에 제약이 생겨 일부 발전소의 출력 제한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열돔을 어떻게 강화하는가 열돔 자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자연현상이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가 그 위력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 (Nature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21년 북미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열돔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 때문에 원래보다 34% 더 넓어지고 지속 기간은 약 59% 길어졌던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열돔은 27일 동안 지속됐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리턴 지역은 49.6℃에 달하는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수백 명이 사망했고 도로와 철도 시설이 파손됐으며 대형 산불이 잇따랐다. 또 다른 연구는 최근 70년 동안 대기 정체 현상을 만드는 '행성파 공명(planetary wave resonance)' 발생 빈도가 약 3배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행성파 공명이란 지구 대기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규모의 파동인 행성파(planetary waves, 또는 로스비파 Rossby waves)가 특정 조건에서 증폭되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정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북극의 급격한 온난화가 제트기류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열돔과 같은 정체성 기상현상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중기기후예측센터(ECMWF)의 기후 과학자 레베카 에머턴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열돔현상 빈발 등으로 인해) 1970년대와 비교할 때 극심한 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기상청 수석 과학자인 스티븐 벨처는 최근 폭염과 관련해 “40℃라는 숫자가 이제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엄중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한때 수십 년에 한 번 나타나던 기록적 폭염은 이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열돔은 유럽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2021년 북미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서는 열돔이 형성되면서 캐나다 리턴 외에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도 47℃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4년과 2025년에도 미국 중서부와 동부에서는 대규모 열돔이 형성돼 수천만 명이 폭염 경보 아래 놓였다. 일부 지역은 체감온도가 40℃를 넘었고 수십 년 만의 최고 기온 기록이 깨졌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북부와 몽골, 중앙아시아, 인도 북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최근 수년간 강한 아열대 고기압과 열돔형 정체 고기압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북태평양고기압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될 때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장기 폭염이 발생한다. 열돔은 자연현상이지만, 온난화된 지구는 그 열돔을 더 크고, 더 오래 지속되며, 더 치명적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유럽을 덮고 있는 거대한 '열의 뚜껑'은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인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보이지 않는 온난화 주범 ‘간접 온실가스’…새 기후 대응 과제로 부상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흔히 이산화탄소(CO₂)·메탄(CH₄)·아산화질소(N₂O)를 떠올린다. 그러나 과학계에서는 최근 기후변화 정책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위험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간접 온실가스(indirect greenhouse gases, iGHGs)'다. 특히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수소(H₂)조차 대기 중으로 누출되면 온난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후 정책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간접 온실가스, 기후 정책의 사각지대 간접 온실가스는 CO₂처럼 스스로 강한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물질은 아니다. 대신 대기 중 화학 반응을 통해 메탄·오존·수증기 같은 다른 온실가스의 농도를 증가시키거나 수명을 연장해 결과적으로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든다. 대표적인 간접 온실가스로는 일산화탄소(CO), 비(非)메탄 휘발성 유기화합물(NMVOCs), 질소산화물(NOx), 분자 수소(H₂) 등이 있다. 이러한 물질들은 자동차 배기가스, 산업시설, 화석연료 연소, 화학공정 등 인간 활동에서 대량 배출된다. 스파크 클라이밋 솔루션(Spark Climate Solutions)의 일리사 오코 박사와 쓰리 케언즈 그룹(Three Cairns Group)의 장 프랑수아 라마르크 박사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현재 지구 온난화의 약 0.3℃, 즉 전체 온난화의 약 15%가 기존 기후정책의 관리 범위 밖에 있는 물질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후 정책에서 벗어난 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온난화 가운데 약 80%는 간접 온실가스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간접' 온실효과는 어떻게 일으키나 간접 온실가스는 크게 세 가지 경로로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의 수명을 늘린다. 대기에는 메탄을 분해하는 '청소부' 역할의 수산화라디칼(OH)이 존재한다. 하지만 간접온실가스인 CO나 H₂가 존재하면 먼저 OH와 반응해 이를 소모한다. 그렇게 되면 메탄이 분해되지 못하고 대기 중에 더 오래 남는다. 메탄은 100년 기준으로 CO₂보다 약 28배 강한 온실효과를 갖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온난화가 발생한다. 둘째, 대류권 오존을 만든다. 오존은 성층권에서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보호막이지만, 지표 부근 대류권에서는 강력한 온실가스이자 대기오염물질이다. NOx, CO, NMVOCs는 광화학 반응을 통해 대류권 오존을 생성한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은 현재 대류권 오존 온난화 효과의 약 60%가 CO와 NMVOCs, NOx에 의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셋째, 성층권 수증기를 증가시킨다. 특히 수소는 산화되면서 성층권 수증기를 늘리는데, 성층권 수증기는 강력한 복사강제력을 지녀 추가적인 온난화를 일으킨다. ◇현재 배출 실태는 어떠한가 간접 온실가스는 이미 광범위하게 배출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CO와 NMVOCs가 유발하는 온난화 효과는 약 0.25℃로, 교토의정서에서 정한 관리 대상 온실가스 6종 중 하나인 아산화질소(N₂O)의 온난화 효과(약 0.11℃)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이들 간접 온실가스는 다양한 인간 활동에 의해 배출된다. 대표적인 배출원으로는 자동차와 선박 연소, 발전소와 산업 공정, 석유화학 공장, 유기용제 사용, 바이오매스 연소, 수소 생산·운송·저장 시설 등이다. 특히 수소경제 확대는 새로운 배출원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수소는 연소 과정에서 CO₂를 배출하지 않는다. 그래서 철강·화학·항공·발전 분야의 탈탄소 핵심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수소는 직접 온실가스는 아니지만 강력한 간접 온실가스"라고 경고한다. 노르웨이의 '키케로 국제 기후연구센터 (CICERO - Center for International Climate Research)'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지구 환경 리뷰(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소의 기후영향을 종합 분석했다. 연구진은 수소의 100년 지구온난화지수(GWP100)를 12로 제시했다. 이는 질량 기준으로 수소 1kg이 장기적으로 CO₂ 약 12kg에 해당하는 온난화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 짧은 20년 기준에서는 GWP가 약 30~40까지 상승해, CO₂의 30~40배나 되는 단기 온난화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생산·저장·운송 과정에서 수소 누출 더 큰 문제는 수소가 매우 작은 분자여서 쉽게 새어나간다는 점이다. 수소는 생산·저장·운송·충전·사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누출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액화수소 공급망의 증발 손실은 10% 이상에 이를 수 있고, 충전소 이송 과정에서도 6.3~15% 수준의 배출 가능성이 보고됐다. 또한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수소용으로 전환할 경우 누출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연구자들은 세계 수소 수요가 급증하고 누출률이 약 10%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2100년까지 추가로 0.05~0.1℃의 온난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수소경제가 기후위기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누출 수소경제(low-leakage hydrogen economy)'가 구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수소경제의 성패는 생산량 확대만이 아니라 얼마나 누출을 줄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초정밀 수소 감지 기술 개발 필요 현재 국제 기후체계는 주로 교토의정서의 '온실가스 바스켓'에 포함된 물질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 체계는 약 30년 전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당시에는 간접 온실가스의 기후 영향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21세기 기후위기 대응은 겉으로 보이는 온실가스만 줄이는 시대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화학적 상호작용까지 관리하는 정밀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간접 온실가스 관리가 탄소중립 시대의 새로운 과제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응책으로 △CO, NMVOCs, NOx, 수소를 공식 배출 관리체계에 포함하는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의 확대 △수소 생산·운송·저장 시설에 대한 누출 허용기준과 의무 보고제도의 도입 △기후관리릉 위한 초정밀 수소 감지 기술의 개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기업 기후공시에도 간접 온실가스 포함 등을 제시했다. 과학계는 긴접 온실가스 관리 확대를 통해 기후 정책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간접 온실가스는 수명이 짧아 집중 감축할 경우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열 축적 속도 ‘역대 최고’…2029년 탄소예산 바닥난다[기후리포트]

지구 온난화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가 국제 기후과학계에서 나왔다. 인간 활동에 의한 온난화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37℃에 도달했고,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 전후 1.5℃ 한계선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영국 리즈대학교의 기후과학자 피어스 포스터 교수를 비롯한 국제 연구진은 최근 '2025년 지구 기후변화 지표 연례 업데이트 (Indicators of Global Climate Change 2025 Annual Update)' 보고서를 '지구 시스템 과학 데이터(Earth Syst. Sci. Data)' 저널에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향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7차 평가보고서(AR7)의 핵심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최근 10년(2016~2025년) 인간 활동에 의한 온난화 속도는 10년당 0.27℃로 관측 사상 가장 빠른 수준이다. 실제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39℃ 높아져 인간 활동의 영향이 뚜렷하게 확인됐다. ◇지구는 지금 '열 흑자' 상태 연구진이 특히 주목한 것은 지구 에너지 불균형(Earth Energy Imbalance·EEI)이다. EEI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에너지와 우주로 내보내는 에너지의 차이를 뜻한다. 쉽게 말해 지구의 '열 가계부'다. 수입과 지출이 같으면 문제가 없지만, 수입이 더 많으면 돈이 쌓이듯 지구도 흡수하는 에너지가 방출하는 에너지보다 많으면 열이 축적된다. 열이 축적되면 지구가 더워지는데, 그게 지구 온난화이고 기후변화의 원인이다. 현재 지구는 이런 '열 흑자' 상태에 있고, 심각한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EEI는 1976~1995년 평균 0.40W/㎡에서 2006~2025년 평균 1.04W/㎡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1.12W/㎡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는 지구 전체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저장하고 있고, 열을 저장하는 양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이 EEI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이 지표가 미래 온난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지표면 기온은 엘니뇨와 같은 자연현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오르내릴 수 있지만, EEI는 지구 시스템 전체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열이 쌓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축적되는 열의 약 90%가 바다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열은 해양 폭염과 해수면 상승, 빙하 녹음을 가속하고, 결국 폭염과 집중호우 같은 극한기상 현상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대기오염 줄였더니 온난화 빨라졌다 최근 온난화가 가속된 원인 중 하나로는 에어로졸(미세먼지) 감소가 지목된다. 에어로졸은 황산염 등 대기 중 미세 입자로, 건강에는 해롭지만 기후 측면에서는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를 식히는 역할을 해왔다. 일종의 '차양막'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대기오염 규제를 강화하면서 에어로졸 농도가 감소했고, 그 결과 그동안 가려져 있던 온실가스의 온난화 효과가 드러나는 '언마스킹(unmask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연구진은 에어로졸 감소가 최근 지구 에너지 불균형 증가와 온난화 가속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건강을 위해 대기오염을 줄이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을 더 빠르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남은 '탄소예산'은 2026년 초 기준 50% 확률로 약 130GtCO₂(CO₂ 기준으로 1300억 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됐다. 탄소예산은 지구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할 경우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말한다. 현재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약 42GtCO₂(420억톤)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현 추세가 유지될 경우 탄소예산은 2029년경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가 제시했던 수준보다 약 370GtCO₂ 빨리 소진되고 있다는 의미다. 2020년 이후 지속적인 배출과 최근의 온난화 가속, 에어로졸 효과 재평가가 반영된 결과다. ◇메탄 감축이 기후위기 늦출 열쇠 전문가들은 이제 이산화탄소 감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 같은 비(非)이산화탄소 온실가스 감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메탄은 대기 체류 기간은 짧지만 온난화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 이에 따라 메탄 감축은 단기간에 기온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2030년 전후 1.5℃를 일시적으로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온난화 폭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기온을 다시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메탄을 2020년 대비 약 50%, 아산화질소를 약 20% 감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비CO₂ 온실가스 감축 여부에 따라 남은 탄소예산이 약 200GtCO₂ 정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는 메탄의 강력한 단기 온난화 효과 때문에 비CO₂ 감축이 사실상 탄소예산의 크기를 좌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년 시간 단위로 산정할 경우 메탄의 온난화 잠재력(GWP20)은 CO₂의 약 80배에 이르고, 100년 기준(GWP100)으로는 CO₂의 약 27~30배에 이른다. 메탄 감축을 서두른다면, 1.5℃ 상승을 저지하지는 못하더라도 205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과학계는 2030년까지를 '결정적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지구의 온도계뿐 아니라 '열 가계부'인 EEI까지 빠르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의 속도가 앞으로 인류의 기후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중국 ‘일대일로’ 17년간 CO₂ 1억3400만톤 배출 [기후 리포트]

중국의 초대형 국제 인프라 사업인 '일대일로(一带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BRI)' 사업이 건설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CO₂)가 1억3400만 톤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실제 공사가 이뤄진 국가가 아니라 중국과 호주, 일본, 미국 등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국경 밖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대일로 사업은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서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해공에 걸쳐 인프라·무역·금융·문화 교류의 경제벨트로 잇는 사업을 말한다. 그러나 일대일로 사업에 포함된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 시설은 가동 후 약 2년 이내에 건설 단계에서 발생한 탄소를 상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이 같은 내용은 중국 난징대학과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일본 도쿄대학 등의 연구팀이 공동 수행한 연구에서 제시됐다. 이 연구 결과는 환경 분야 국제학술지인 '환경 과학 기술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최근 '706개 이상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초국경 온실가스 배출과 감축 기회'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105개국 706개 프로젝트 전수 분석 연구진은 2008년부터 2024년까지 105개국에서 추진된 일대일로 프로젝트 706개를 대상으로 건설 단계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프로젝트 단위로 분석했다. 도로·철도·발전소·학교·주택·수자원 시설 등 총 28개 유형의 인프라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분석 결과, 전체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는 1억3400만 톤(CO₂ 환산)에 이르렀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0.02% 수준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세계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연구진은 “철강과 시멘트 같은 감축이 어려운 산업에서 발생한 일회성 대규모 배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지적했다. 부문별로는 운송 인프라가 전체 배출량의 54%인 7300만 톤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 건설이 운송 부문 배출량의 74%를 차지했다. 전력 인프라는 전체의 32%인 4200만 톤을 배출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력 인프라 배출량의 83%가 화석연료 발전소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시설 건설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수력발전이 2100만 톤, 태양광 발전이 1100만 톤, 육상풍력이 300만 톤을 각각 차지했다. 건물과 수자원 시설은 총 1900만 톤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다. ◇94%는 공사장 아닌 공급망에서 발생 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온실가스 대부분이 공사 현장이 아니라 건설 자재 공급망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전체 배출량 1억3400만 톤 가운데 94%인 1억2600만 톤은 철광석 채굴, 시멘트 생산, 금속 제련, 자재 운송 등 상류(upstream) 공급망에서 발생했다. 실제 건설 현장의 장비 운전과 연료 사용 등 직접 배출은 6%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일대일로 사업의 탄소 문제는 굴착기나 덤프트럭보다 철강·시멘트 공장 굴뚝과 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배출의 핵심 원인은 철강과 시멘트였다.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배출량은 약 7140만 톤으로 전체의 53.3%를 차지했다. 시멘트는 3780만 톤으로 28.2%를 기록했다. 두 자재를 합치면 전체 배출량의 약 81.5%에 달한다. 이는 철강 생산 시 석탄 기반 제철 공정이 필요하고,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는 석회석을 고온으로 가열하면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저탄소 철강과 저탄소 시멘트를 사용하는 '청정 조달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전체 배출량은 1억3400만 톤에서 4900만 톤으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탄소 집약적인 공급원을 사용할 경우 배출량은 2억1400만 톤까지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호주·일본·미국까지 연결된 '숨은 탄소' 연구진은 공급망을 추적해 배출이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 발생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배출량의 약 절반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국가 밖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전체 내재 배출량의 약 31%를 차지하는 최대 배출 원천국이었다. 중국산 철강이 대규모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식적인 일대일로 참여국이 아닌 호주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구리와 알루미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배출의 약 3분의 1이 호주와 연결된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과 미국 역시 각종 산업 자재 공급을 통해 간접적으로 일대일로의 탄소 발자국 형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인프라가 제공되는 장소와 탄소가 배출되는 장소가 서로 다른 공간적 단절(spatial disconnect)"이라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로 상쇄 가능할까 연구진은 일대일로 사업에 포함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143개를 별도로 분석했다. 태양광·풍력·수력발전 시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경우 연간 7500만~1억480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일대일로 전체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1억3400만 톤의 온실가스와 비교할 때 상당한 규모다.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에서도 약 2년이면 건설 단계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으며, 최적 조건에서는 1년 만에 건설 과정의 탄소 부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연구진은 이것이 실제 상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력망 상황, 설비 이용률, 프로젝트 완공 여부 등에 따라 실제 감축 효과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잠재적 감축 가능성'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이 건설 현장이 아니라 자재 공급망에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이 제안한 주요 감축 전략은 △저탄소 철강과 저탄소 시멘트 사용 확대 △폐철강과 재생 골재 등 재활용 자재 활용 확대 △구조 설계 최적화를 통한 자재 사용량 절감 △공공조달과 보조금 등을 통한 저탄소 자재 시장 육성 △도시 개발 계획과 연계한 인프라 규모 최적화 등이다. ◇“인프라의 탄소 문제는 국경을 넘는다" 이번 연구는 인프라 사업의 탄소 배출을 단순히 건설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사업의 탄소 발자국은 중국뿐 아니라 호주·일본·미국 등 세계 각국의 광산·제철소·시멘트 공장과 연결돼 있다. 연구진은 향후 국제 인프라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급망 투명성 강화와 저탄소 자재 조달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태양광과 풍력 설비가 장기적으로는 건설 과정의 탄소를 상쇄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철강과 시멘트 생산 자체를 탈탄소화하고 국제 공급망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해외 원전과 철도, 항만, 발전소, 산업단지 등 대규모 인프라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동시에 세계적인 철강·시멘트 생산국이기도 하다. 앞으로 해외 인프라 사업의 경쟁력은 단순한 시공 능력이나 금융 조달 능력을 넘어, 해당 사업에 투입되는 철강과 시멘트가 얼마나 적은 탄소를 배출하며 생산됐는지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국제 금융기관들의 기후 리스크 평가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미래의 인프라 수출 경쟁은 '누가 더 빨리 짓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적은 탄소로 짓느냐'의 경쟁으로 바뀔 수 있다. 이는 한국 철강·시멘트 산업의 탈탄소화가 단순한 환경 규제 대응이 아니라 국가 수출 경쟁력과 직결된 과제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폭염, 태아 건강까지 위협한다…조산 1.41%가 폭염 탓

기후위기로 인한 기록적 폭염이 임산부와 태아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대규모 국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폭염은 단순한 여름철 불쾌감을 넘어 조산(早産, preterm birth)을 유발하는 환경 요인으로 작용하며,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산모일수록 위험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산은 임신 20주를 지나 임신 37주(36주 6일) 이전에 분만하는 것을 말한다. 스페인 발렌시아 대학과 스위스 베른 대학 등 국제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국제 환경(Environment International)'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전 세계 13개국 250개 지역의 출생 자료 약 8600만 건 가운데 따뜻한 계절에 출생 자료 3660만 건을 분석했다. 한국은 연구 대상 13개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국내 연구진이 2019년에 발표한 논문도 비슷한 분석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폭염일수록 조산 위험 높아졌다 연구 대상 국가는 호주·브라질·캐나다·칠레·에콰도르·에스토니아·이스라엘·이탈리아·일본·파라과이·스페인·스위스·미국이었다. 연구진은 폭염 노출 뒤 4일 이내 조산 위험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따뜻한 계절에 발생한 조산의 약 1.41%가 폭염 탓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출생 100만 건당 약 855건의 조산이 폭염 때문에 발생한다는 의미다. 국가별로는 스위스가 100만 명당 628건으로 가장 낮았고, 파라과이는 1347건으로 가장 높았다. 폭염 강도가 높아질수록 조산 위험도 커졌다. 연구진은 평균적으로 따뜻한 계절 기준 75퍼센타일(전체 더위 가운데 상위 25% 안에 드는 더운 날) 수준의 '중간 강도 폭염'에서는 조산 위험이 2.80% 증가했다. 95퍼센타일(전체 더위 가운데 가장 심한 상위 5% 수준의 극심한 폭염) 수준의 '극한 폭염'에서는 위험이 3.80%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폭염 발생 직후 0~1일 사이에 위험 증가가 가장 컸다. ◇“폭염은 진통을 촉발하는 방아쇠" 연구진은 폭염이 단지 극단적인 미숙아 출산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임신 후기 전체에서 진통을 촉발하는 '방아쇠(trigger)'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연구 결과 임신 31~40주 사이가 폭염에 가장 민감한 시기로 나타났다. 후기 조산(late preterm birth) 위험은 중간 강도 폭염에서 2.21%, 극한 폭염에서 3.84% 증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정상 출산 범주에서도 영향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임신 37~38주의 조기 만삭 출산(early at-term birth)과 39주 이상 만삭 출산(full at-term birth)에서도 폭염 노출 시 출산 위험이 증가했다. 이는 폭염이 임신 주수와 관계없이 분만 자체를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폭염이 임산부 몸속에서 다양한 생리학적 스트레스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고온은 체내 염증 반응(inflammation), 산화 스트레스(oxidative stress), 혈관 수축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반응은 태반 기능을 손상시키고 자궁 내 성장 환경을 악화시키며 조기 진통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임신 중에는 태아 성장으로 체내 열 생산은 증가하지만 체중 증가로 열 발산은 어려워진다. 여기에 탈수와 혈액 점도 증가, 자궁 혈류 감소 등이 겹치면 태아와 태반에 부담이 커지면서 조산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열 스트레스가 내분비계와 호르몬 균형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이 자궁 수축을 촉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젊은 산모·저소득층이 더 취약 폭염의 영향은 모든 임산부에게 동일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젊은 산모, 교육 수준이 낮은 산모, 저소득층, 미혼모, 그리고 여아를 임신한 경우 폭염에 더 취약한 경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산모일수록 도시 열섬 현상이 심한 지역에 거주하거나 냉방 접근성이 낮고, 다른 환경 스트레스에 동시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도시 열섬(heat island) 현상은 건물과 아스팔트가 많은 도심에서 낮 동안 열을 흡수했다가 밤에도 열을 내뿜으면서 도시 외곽 지역보다 기온이 더 높아지는 현상이다. 연구진은 대륙성 기후 지역에서 위험이 더 컸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캐나다와 에스토니아에서는 극한 폭염 시 조산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브라질이나 에콰도르 같은 열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연관성이 관찰됐다. 이는 평소 더위에 대한 적응 수준과 냉방 인프라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서울 연구도 “폭염이 조산 증가" 확인 한국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확인됐다. 지난 2019년 고려대 이종태 교수와 미국 예일대 손지영 연구원 등은 국제 저널인 '환경 연구(Environmental Research)'에 관련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논문에서 연구팀은 2004~2012년 서울 단태아 출생 81만382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임신 전 기간, 출산 전 4주, 출산 전 1주 동안에 열지수(heat index)가 상승하면 모두 조산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신 기간 전체에서 열지수가 약 5.5℃ 상승할 경우 조산 위험은 최대 3.3% 증가했다. 열지수는 기온과 습도를 함께 계산해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더위를 나타내는 지표다. 단순 기온이 같은 33℃라도 습도가 높으면 땀이 잘 증발하지 않아 몸이 더 덥게 느껴지는데, 이를 반영한 수치가 열지수다. 따라서 열지수는 단순 기온보다 폭염이 인체에 미치는 부담을 더 잘 보여준다. 서울 연구에서는 젊은 산모와 고령 산모 모두 폭염에 취약했다. 25세 미만 산모는 폭염 노출 시 조산 위험이 1.187배로 가장 높았고, 35세 이상 산모 역시 위험 증가가 확인됐다. 또 저학력 산모가 사회경제 수준이 낮은 지역에 거주할 경우 위험은 더욱 커졌다. ◇“폭염 대응이 곧 태아 건강 정책" 연구진은 특히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해 미래 세대 건강 부담 역시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폭염은 이제 단순한 계절 재난이 아니라, 태아의 생존과 건강까지 위협하는 새로운 공중보건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임산부 보호 대책을 폭염 정책의 핵심 축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폭염특보 발령 시 임산부에게 즉각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냉방시설 접근을 지원하는 공공 보건 체계가 필요하다. 도시 열섬 현상이 심한 저소득 지역에 대한 냉방 지원과 녹지 확대도 중요하다. 의료기관은 임신 후기 산모를 대상으로 폭염 행동수칙을 적극 안내해야 하며, 충분한 수분 섭취와 외부 활동 제한, 적정 실내 온도 유지 등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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