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무브] 퇴직연금 500조 눈앞…‘저축’에서 ‘투자’, 증권사로 몰리는 돈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매년 10%대 성장을 기록하며 5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은행권의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크지만, 증권사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퇴직연금 운용 패러다임이 저축에서 투자로 바뀌면서 증권업계에 돈이 몰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총 적립액은 496조802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약 65조원이 증가한 수치다. 퇴직연금 시장은 매년 10%대 성장세를 보이면서 5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퇴직연금 시장은 은행, 증권, 보험, 세 업권에서 전체 42개 사업자가 경쟁하고 있다. 전통 강자인 은행의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크지만,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증권업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 12곳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60조5580억원으로 1년 전에 견줘 16% 증가했다.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52.4%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증권사 14곳의 적립금은 103조원에서 131조원으로 26.5% 증가했다. 증권업의 시장 점유율은 24.3%에서 26.5%로 2.2%포인트(p)상승했다. 보험업권의 전체 적립금은 103조원에서 104조원으로 약 1% 증가했다. 퇴직연금 시장 전체 성장세를 고려하면 증권업 적립금 규모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퇴직연금 운용 패러다임이 저축에서 투자로 바뀌면서 증권업계에 돈이 몰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퇴직연금은 향후 받을 퇴직금이 정해져 있는 확정급여형(DB)과 근로자가 적립금으로 직접 투자해 퇴직금을 불려 나가는 확정기여형(DC), 근로자가 개인적으로 가입해 운용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로 나뉜다. DC·IRP는 투자 결과에 따라 퇴직금이 달라진다. 퇴직연금 도입 초기에는 DB형에 적립금이 집중됐지만 최근 들어 DC형과 IRP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IRP 적립금은 약 130조9000억원으로 1년 전에 견줘 30% 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DC형도 117조원에서 137조원으로 17% 가량 늘었다. 반면 DB형은 약 6% 늘어나 228조9000억원이다. 연봉제와 임금피크제 확산과 임금 상승률 둔화 등으로 최종임금 기반의 DB형 가입자는 줄어드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퇴직연금 투자수단이 많이 늘어나면서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DC·IRP형으로 옮겨가고 있다. 증권업 내에서는 미래에셋증권이 선두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은 38조985억원으로 가장 큰 적립금을 보유했다. 전년 대비 증가액은 8조9040억원으로, 증권 뿐만 아니라 전체 사업자 중 가장 컸다. 미래에셋증권은 DC형과 IRP 적립금이 16조2903억원, 15조8611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키웠다. 같은 기간 삼성증권 적립금 규모는 15조3857억원에서 21조573억원으로 늘어나 4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대형사 중 증가율(36.86%)이 가장 가파르다. 성장의 중심에는 DC형과 IRP가 있다. 삼성증권의 DC 적립금은 7조7197억원, IRP는 9조1297억원으로, 두 부문이 전체 적립금의 약 80%를 차지한다. DB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신,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연금 상품에 집중하면서 최근 수년간 시장 변화의 수혜를 입은 셈이다. 한국투자증권 적립금은 20조7488억원으로, 전년 대비 4조9340억원 늘었다. 증가율은 31.2%로, 시장 평균을 웃돈다. 한국투자증권의 특징은 DB·DC·IRP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돼 있다는 점이다. DB 적립금은 7조9620억원으로 증권사 중 상위권을 유지하면서도, DC(5조3566억원)와 IRP(7조4302억원)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는 기업 고객 기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개인형 연금 시장 확대에도 대응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정 유형에 대한 쏠림이 크지 않아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방어력이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개인형 연금 비중이 빠르게 커지는 국면에서는 삼성증권보다 성장 탄력이 다소 낮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현대차증권은 총 적립금 19조1904억원으로 1년 전 2위에서 4위로 떨어졌다. DB 적립금이 16조4012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DC와 IRP는 각각 7427억원, 2조465억원에 그쳤다. 증가액도 1조6753억원으로 상위권 증권사 중 가장 적었다. 이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심의 기존 거래 기반이 여전히 핵심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개인형 연금 확대 경쟁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은 더 이상 기업 중심의 DB형 적립 경쟁이 아니라,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DC·IRP 자금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핵심이 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연금 운용 패러다임이 저축에서 투자로 전환되면서 상품 경쟁력과 자산배분 역량을 갖춘 금융회사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머니무브] “자본 많다고 유동성 위기 막을 수는 없다”…강태수 카이스트 교수, 발행어음·IMA 유동성 리스크 경고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는 최근 증권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기조와 맞물리면서 일부 초대형 증권사는 공격적인 확장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발행어음 같은 단기 조달 자금을 장기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는 '만기 불일치'와 '유동성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강태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자본이 많다고 해서 유동성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강 교수를 만나 발행어음·IMA 확대로 인한 리스크 요인과 해법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발행어음·IMA 구조의 본질적 위험은 자본 손실이 아니라 '현금이 마르는 상황'에 있다고 강조했다. 자본이 아무리 많아도 위기 순간에 즉시 돈을 지급하지 못하면 시스템은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발행어음·IMA가 사실상 예금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신뢰가 무너질 경우, 은행보다 더 빠른 속도로 '런(run)'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 교수는 최근 논의가 개별 회사의 리스크 관리 역량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는 대부분 “개별 기관 리스크가 금융시스템 전체로 번지면서 발생했다"는 것이 강 교수의 판단이다. 1997년 단자사·종금사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까지, 공통점은 단기 자금으로 장기·비유동성 자산을 운용하는 구조가 충격에 취약했다는 점이다. 그는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정책 방향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공격적인 금융 비즈니스에는 그에 걸맞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에는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NSFR(순안정자금조달비율) 같은 정량적 유동성 규제가 있지만, 증권사에는 이에 준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특히 강 교수는 “대형 증권사일수록 더 안전하다"는 통념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의 핵심은 '규모 자체가 리스크'라는 인식이다. 덩치가 커질수록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은행·보험·연기금·해외 투자은행(IB)과 연결고리도 촘촘해진다. 한 곳의 유동성 위기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강 교수는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발행어음과 IMA는 예금이 아니며, 예금자 보호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판매 현장에서는 '사실상 원금 보장'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는 “설명의무 강화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상품명, 계약서, 광고 등 모든 단계에서 예금이 아니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안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초대형 증권사에는 은행에 준하는 유동성 규제를 적용하고, 고유동성 자산 보유 의무, 만기 불일치 축소, 스트레스 테스트 강화, 추가 자본 적립 등을 통해 시스템 차원의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발행어음·IMA를 운용하는 대형 증권사를 '시스템 중요 금융기관(SIFI)'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간 금융당국과 증권사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증권업의 대형화에 집중했다. 강 교수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은 상업은행과 동일한 감독을 받는다"며 “골드만삭스가 받는 리스크 컨트롤 관행, 감독당국의 규제 등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초대형 투자은행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강태수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발행어음·IMA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는 무엇인가? 핵심은 유동성 리스크다. 지금 구조를 보면, 단기 조달 자금으로 장기·비유동 자산에 투자하는 형태다. 이 경우 금융시장에 충격이 오면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자산을 제값에 빨리 팔 수 없다. 이를 '파이어세일 리스크(fire sale risk)'라고 한다. 둘째, 단기 차입을 연장하지 못하는 '롤오버 리스크(rollover risk)'가 발생할 수 있다. 셋째, 환매 요청이 몰릴 경우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일종의 '발행어음 런'이다. 이 구조는 단순히 손실이 나느냐 문제가 아니다. 현금 흐름이 막히는 순간,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시스템은 멈춘다. 이게 유동성 리스크의 본질이다. —만기불일치 전략은 금융에서 흔히 쓰는 방법 아닌가 금융의 본질이 바로 '만기 변환(maturity transformation)'이다. 단기로 조달해서 장기로 운용하는 구조다. 은행도 그렇게 한다. 다만 은행은 이 구조를 쓸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이 설계돼 있다. 예금자 보호 제도가 있고, 최종적으로는 중앙은행이 있다.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면 누군가 막아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증권사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그럼에도 현재 영업방식을 고수한다면 위험은 은행보다 더 클 수 있다. —지난해 10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투자증권이 막대한 발행어음 규모로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가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디스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개별 기업 평가가 아니라 조달 구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경고로 이해한다. 단기 조달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장기·비유동 자산을 늘리면, 안정적인 자금 조달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바젤Ⅲ에서 도입된 NSFR(Net Stable Funding Ratio)의 핵심은 간단하다. 장기 투자에는 장기 자금이 필요하다는 원칙이다. 쉽게 말해 3년짜리 대출을 해주려면, 조달도 3년짜리로 하라는 것이다. 지금 발행어음은 만기가 1년 이내로 짧다. 그런데 이 돈으로 5년, 10년짜리 자산에 투자한다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증권사 일각에선 '자기자본이 크기 때문에 손실을 감내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자본과 유동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본은 손실이 났을 때 버티는 완충장치다. 반면 유동성은 위기 순간에 당장 지급할 수 있는 현금이 있느냐의 문제다. 뱅크런이나 펀드런은 자본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사람들이 동시에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기자본이 얼마냐'가 아니라, '오늘 당장 지급할 수 있는 현금이 얼마냐'이다. 은행이 LCR, NSFR 같은 유동성 규제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증권사에는 이런 정량적 유동성 규제가 없다. —'대형 증권사일수록 안전하다'는 인식이 오히려 위험한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의 핵심 철학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크면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큰 기관이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이다. 사이즈 자체가 리스크라는 인식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손실의 절대 규모도 커지고, 다른 금융기관과 연결성도 강화된다. 대형 증권사는 은행, 보험, 연기금, 해외IB와 레포, 파생상품 등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한 곳의 유동성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규제 체계가 부족하다고 보는 이유는? 은행에는 거시건전성 규제와 미시 감독이 함께 작동한다. 반면 증권사는 개별 회사 건전성만 보는 미시 감독에 의존한다. 자금 조달이 급증할 경우, 시스템 차원의 리스크(거시건전성 리스크)를 제때 포착하기 어렵다. 특히 LCR, NSFR 같은 정량적 유동성 규제가 없다는 점은 구조적 공백이다. —정책 보완 방향은? 초대형 증권사에는 은행에 준하는 유동성 규제가 필요하다. 고유동성 자산 보유 의무, 만기 불일치 축소, 스트레스 테스트 강화, 추가 자본 적립 등이다. 또한 발행어음·IMA를 운용하는 대형 증권사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모험자본 공급은 중요하다. 하지만 금융은 언제나 위기를 전제로 설계돼야 한다. '우리는 안전하다'는 공허한 구호보다는 위기 상황에서도 생존 가능한 구조를 갖췄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한다. 강태수 교수는? 강태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1982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33년간 근무한 국제금융·거시건전성 분야 전문가다. 한국은행 정책기획국, 금융시장국, 금융시장분석국장 등을 거쳤으며, 2012년 이후 거시건전성분석국과 금융결제국을 담당하는 부총재보로 재직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한은 재직 시절 금융안정과 시스템 리스크 분석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을 지냈으며, 이후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와 한국경제인협회 특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거시경제, 국제금융, 금융시스템 안정, 자본시장 구조, 거시건전성 정책을 연구·강의하고 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머니무브] 증권사 새 엔진 발행어음·IMA의 구조적 만기불일치…“시장이 좋을 땐 문제없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는 대형 증권사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은행 예적금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앞세워 자금을 끌어모으는 덕분이다. 증권사 입장에선 안정적인 조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금융당국도 증권사를 통한 모험자본 공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 아래 발행어음·IMA 인가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질수록 구조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단기성 자금을 대규모로 조달해 장기·저유동성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는 만기 불일치와 유동성 리스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도 초대형 증권사의 만기 불일치 리스크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IMA 2호 상품을 출시해 오는 16일부터 자금을 모집한다. 모집 규모는 1조원 수준이다. IMA 1호 상품을 출시해 1조원 넘는 자금을 모집한 지 한 달여 만이다. 2호 상품의 기준 수익률은 연 4%다. 2년 3개월 만기의 폐쇄형 상품이다. 최소 가입액은 100만원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인수합병(M&A)과 인수금융 대출, 중소·중견·대기업 대상 대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하나증권도 9일 '하나 THE 발행어음'을 출시했다. 전체 12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집한다. 하나증권도 이번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모험자본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다. 중소기업 지분 투자, 중견기업 회사채 인수와 신용공여 등 기업금융에 공급할 방침이다. 발행어음과 IMA 도입으로 증권사는 새 수익원을 얻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행어음·IMA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조달 기반을 바탕으로 이자 마진과 운용 수익을 동시에 노릴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들 상품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모험자본 공급으로 연결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가 발행어음·IMA로 조달한 자금의 최대 25%를 벤처·중소기업·혁신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종투사의 모험자본 의무 투자 비율은 올해 10%에서 단계적으로 상향돼 2028년 25%까지 확대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발행어음과 IMA 사업이 인가된 5개 증권사(한투·미래·키움·신한·하나)의 자체 모험자본 공급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이들의 모험자본 공급액은 5조1000억원으로 2028년까지 15조2000억원을 추가 공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조달 구조의 성격이다. 발행어음은 만기가 1년 이내로 짧다. 투자자 환매 가능성이 열려 있는 단기성 자금이다. 반면 모험자본 투자는 회수 기간이 길고 유동성이 낮다. 운용 대상은 벤처·중소기업 지분 투자, 회사채, 부동산 금융, 대체투자 등 장기·저유동성 자산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로 인한 구조적 만기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도 '만기 불일치 심화 가능성'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 평가에서 “발행어음 대부분이 개인고객으로부터 조달인 점, 예금자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점, 수시입출금형 발행어음이 기간물(1년물 등)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위기 발생 시 대규모 환매 요청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한국투자증권의 장기 외화표시 기업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추면서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 심화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시장 유동성이 위축될 경우, 자산을 단기간에 매각하기 어려운 파이어세일(fire sale) 리스크, 단기 차입을 연장하지 못하는 롤오버(rollover) 리스크, 투자자 환매 요청이 몰리는 런(run) 가능성 등이 제기된다. 은행 역시 '단기 조달-장기 운용' 구조로 되어 있지만 예금자 보호 제도와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이라는 안전망이 있다. 반면 증권사의 발행어음·IMA는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며, 중앙은행 유동성 지원 체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구조라도 충격 흡수 능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신용평가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는 위기 상황을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당장 리스크 확대 요인이 드러나진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장은 “운용을 잘못할 경우 손실이 나더라도 투자자한테 원금을 보장해 준다는 건 증권사 입장에선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면서도 “현재로선 주식시장이 굉장히 좋고 최근 몇 년간 증권사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라고 생각했던 부동산PF가 대형사의 경우엔 리스크가 대부분 제거된 상황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금융1실장도 “발행어음에선 만기 불일치 이슈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직 크게 문제 삼을 정도의 환경은 아니다"면서 “향후 이 시장이 커지고 사업자가 늘어나면 증권업 내부 경쟁뿐만 아니라 다른 업권과 경쟁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머니무브] 은행 떠난 자금, 증권사로…발행어음·IMA에 최대 170조

지난해 말부터 대형 증권사들이 출시하는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가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 예적금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얹혀 준 덕분이다. 시중 자금이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겨가는 '머니무브'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증권사들이 새로 조달하는 단기성 조달 자금은 최대 17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판매한 IMA 상품과 키움증권이 판매한 발행어음 상품은 모두 단기간에 완판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18일 가장 먼저 IMA 상품을 출시한 후 나흘 만에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모여 완판됐다. 미래에셋증권의 IMA 상품은 950억원을 모집했는데 청약 금액은 약 5배인 4750억원이 몰렸다. 키움증권도 첫 발행어음 상품을 출시한 지 일주일만에 목표액 3000억원을 다 채웠다. 은행 예적금보다 금리가 높고 원금도 사실상 보장된다고 인식되면서 투자자 관심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발행어음 상품을 출시한 6개 증권사의 1년 약정형 평균 금리는 3.08%다. 금리가 가장 높은 곳은 하나증권(3.2%)이다. 하나증권은 첫 발행어음 상품 출시 이벤트로 연 최대 3.6% 금리의 특판 상품도 내놨다. 은행 예금 금리는 발행어음 금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3일 시중은행 만기 1년 예금상품의 평균 금리는 2.44%다. 우대금리를 포함한 최고금리 기준 SC제일은행 e-그린세이브예금이 3.15%로 가장 높다. IMA와 발행어음은 고객 돈으로 증권사가 투자해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같다. 차이는 만기와 운용에 따른 수익률이다. 발행어음은 만기 1년 이내의 확정금리형 상품이지만, IMA는 기본적으로 1년 이상 폐쇄형으로 설계되고 증권사 운용 역량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질 수 있다. 발행어음과 IMA는 예금자보호법으로 보장받지는 않는다. 다만 증권사들은 '사실상 원금 보장'이라고 말한다. 만기 시점에 증권사가 파산하거나 지급 의무 불이행 사태를 맞지 않는 한 원금을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발행어음·IMA를 통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은행권은 기존 예적금 이탈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은 예금금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저축성 수신금리는 평균 2.816%로 전월 대비 0.248%포인트 상승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신년사에서 “IMA 등 새 상품의 등장은 은행에 우호적이지 않고, 증권사로 자금 이탈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KB금융은 지난 10일 연 경영진 워크숍에서 “머니무브 가속화와 부의 집중 심화로 자산관리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에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부여했다. 국내에서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는 한국투자·미래에셋·NH투자·KB·키움·하나·신한투자증권 등 총 7곳으로 늘었다. 인가 증권사가 늘어나면서 발행어음 시장 확대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주요 증권사 4곳(한국투자·미래에셋·NH투자·KB증권) 발행어음 잔고를 분석한 결과, 47조7865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40조원)에 견줘 약 7조원 늘어난 수치다. IMA와 발행어음으로 조달 가능한 최대 금액도 132조원대로 늘어났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200%, 발행어음과 IMA를 병행할 경우 최대 3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NH투자증권은 IMA 인가를,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은 발행어음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해당 사업자까지 발행어음과 IMA 시장에 진출하면 최대 조달 금액은 170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새로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신속하게 지정하고 있다. 증권사의 부동산 쏠림 투자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물꼬를 틀겠다는 취지다. 이에 금융당국은 종투사에 IMA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의 최대 25%에 해당하는 운용 금액을 모험자본에 투자하도록 했다.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 의무는 올해 10%에서 2028년 25%까지 단계적으로 높아질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발행어음과 IMA 시장이 크게 열려서 수익 확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도 “모험자본 공급 과정에 증권사별 운용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