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충성파’ 마이런, 美연준 이사회 입성…‘빅컷 의견’으로 연준 흔들까 [이슈+]

'트럼프 충성파'인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로 취임하게 됐다. 이로써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해 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미 상원은 본회의에서 마이런 이사의 인준안을 찬성 48표 대 반대 47표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공화당에선 리사 머카우스키(알래스카) 의원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표결에 앞서 “마이런은 독립성이 전혀 없으며, 연준에서 트럼프의 대변자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런 이사는 내년 1월까지 앞서 사임한 아드리아나 쿠글러 전 이사의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런 이사를 연임할 경우, 그의 임기는 내년 2월부터 14년 동안 연장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후보자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마이런 이사는 무기한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 상원이 인준안을 통과함에 따라 마이런 이사는 오는 16~17일 열리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런 이사는 첫 현직 행정부 인사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FOMC에서 제기할지가 주요 관심사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투 레이트'(금리인하 결정이 늦는 사람)는 염두에 둔 것보다 더 크게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압박했다. 그는 전날에도 “빅컷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금은 금리를 인하하기에 완벽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이런 이사의 인준안 통과에 대해 “그는 연준을 개편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의 최전선에 있다"며 월가는 마이런 이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빅컷 압박에 동조할지 주목하고 있다고 짚었다. CNBC도 이번 FOMC에서 “마이런의 투표는 결정적인 표가 되지 않겠지만 0.25%포인트 금리인하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마이런 이사가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보여주는 점도표에서도 어떤 의견을 낼지도 주목을 받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보다 최소 1.5%포인트 낮춰야 한다며 이달엔 빅컷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마크 크랜필드 블룸버그 마켓츠라이브 전략가는 “트레이더들은 마이런이 점도표에서 매우 낮은 전망치를 제시할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며 “이는 시장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이런 이사는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인 지난해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발언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6월 CNBC와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가 적절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당시 금리를 1%포인트 인하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마이런 이사는 “대통령이 통화 정책에 대해 줄곧 옳은 판단을 내려왔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마이런 이사가 FOMC 회의에서 빅컷을 주장할 경우 다른 친(親)트럼프 인사들도 이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7명으로 구성된 연준 이사회 중 미셸 보먼 연준 감독 부의장과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연준의 7월 금리 동결 결정에 반대하며 금리 인하를 선호하고 있다. 한편,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한 리사 쿡 연준 이사가 당분간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항소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에 쿡 이사도 기준금리를 결정할 FOMC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임명된 쿡 이사에게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제기하며 해임을 통보했다. 그러나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 사유로 밝힌 사기 혐의가 쿡 이사가 연준 이사를 맡기 전에 발생한 일이기에 충분한 해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는 즉각 항소했지만, 이날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은 다시 쿡 이사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쿡 이사에게 제기된 혐의에 정식으로 대응할 기회를 주지 않아 정당한 절차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2대 1로 판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상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이억원-이찬진 체제 본격화...조직개편 혼란에 ‘흔들린 출발’ [이슈+]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5일 취임하면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금융당국 수장 체제가 본격화됐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직원들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이행하는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두고 물밑에서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어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가 관심이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경제정책통으로 불리는 이억원 위원장이 추후 감독 기능에 집중된 금융감독위원장을,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이찬진 원장이 금융소비자 관련 부서가 제외된 금융감독원장을 맡는 것이 역설적이라는 이야기가 새어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15일) 취임식에서 금융위 직원들에게 “금융 소비자, 금융 일선의 담당자들로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업무의 중심에 두고, 실제로 시장과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의 전달체계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면서도 “과중한 업무에 다시금 부탁만 드리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여러분들의 힘이 되어드리고 작은 불편까지도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먼저 다가가고, 항상 문을 열어두는 금융위원장이 되겠다"고 부연했다. 이 위원장의 이러한 발언은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발표한 이후 금융위 분위기가 어수선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정부는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분리해 재정경제부로 넘기고, 남은 조직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개편해 금융 감독 기능을 맡긴다. 금융감독원 내부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신설하고,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 금융위가 재정경제부와 금감위로 분리되면 일부 직원들은 세종으로 이전해야 한다. 다만 금융위 직원들은 공무원 신분이다 보니 정부 개편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자제하고 있다. 직원들 개인별로는 세종행에 대해 부담이 크지만, 공무원으로서 정부의 지침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분위기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윤한홍 정무위원장을 만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 서한에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소비자보호 강화 효과가 불명확하고, 오히려 관치금융 강화라는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금감원 내부에서도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금소원 분리와 함께 금융위가 금감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을 두고도 반감이 크다는 전언이다. 금융위는 현재 금융감독원장 전결인 은행·보험사 CEO 중징계와 함께 금감원 핵심 기능 중 하나인 분쟁조정위원회를 금감위로 이관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CEO 중징계 권한은 금융위와 금감원이 오랜 기간 다퉈온 이슈이기도 하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이상은 3~5년 금융사 취업을 제한하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감원장은 금융지주사 임원, 금융투자업 임원에 대해 주의, 주의적 경고 등 경징계까지 전결로 처리할 수 있다.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는 금융위원회 의결로 결정된다. 이와 달리 은행·보험사 임원에 대해서는 금감원장 전결로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 경고까지 확정할 수 있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금융지주, 금융투자업 임원처럼 은행 임원에 대해서도 중징계 권한을 가져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금감원은 기존에도 금융위에 금융사 제재 권한이 집중돼 있는 점을 들어 금감원장이 금융지주사, 금융투자업 임원에게도 중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안 그래도 정부 조직개편안 자체가 복잡해 조직 안정이 급선무인데, 떡 본 김에 제사지내는 식으로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힘겨루기로 비화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해임 권고와 같은 중징계는 금융사의 지배구조와 직결된 만큼 금융위의 전결로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금감원의 임원 징계에 대한 전결권을 기존보다 축소할 경우 금감원의 검사·감독의 위력도 함께 약화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정부 조직개편안이 본격화될 경우 이억원 위원장과 이찬진 원장의 역할이 대대적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가령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기획재정부 미래전략과장, 물가정책과장, 종합정책과장 등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자 대표적인 거시경제 전문가로 불린다. 그러나 이억원 위원장이 금융감독위원장을 맡게 되면 국내 금융정책이 아닌 감독 기능에만 집중해야 한다. 업권별 릴레이 간담회를 통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 중인 이찬진 원장도 정부 조직개편안이 이행되면 '소비자보호' 기능이 제외된 금융감독원장 업무에 주력해야 한다. 당국 한 관계자는 “현재는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으로 각각 금융정책과 소비자보호를 강조하고 있지만, 조직개편이 완료되면 수장들의 기조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이슈+] 금융 조직개편, 국회에서 더딘걸음…정책 추진도 ‘올스톱’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국회 협의와 법령 개정 등 문턱을 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 안팎의 시선이 조직개편에 쏠리면서 추진에 탄력을 받았던 정책들이 당분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권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기획재정부 조직 개편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고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제출한 개정안에는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고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소비자보호처를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개편해 분리하고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개편도 추진한다. 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기대하는 속도에 따라 원만한 완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안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여야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십개의 법안 교체와 법조문 수정 등 실무적인 작업도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개편이 완수되기 위해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무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먼저 행안위 소관의 정부조직법을 비롯해 정무위에서 관련 법령의 개정이 필요하다. 정무위에선 금융위 설치법, 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 논의돼야 한다. 금융감독업무 주체 변경을 위해 은행법과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여신전문금융업법과 같은 개별 금융법 개정도 이뤄져야 한다. 국가재정법과 기획재정부 관련 법령도 손질이 필요하다. 금융조직 개편도 큰 틀만 잡혔을 뿐, 재경부와 금융감독위 간 업무 조율 등 세밀한 조정 작업도 남아있다. 기재부 개편과 금감위 신설의 경우 이를 심사하는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기 때문에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특히 국회 정무위원장을 야당인 윤한홍 의원이 맡고 있어 통과에 진통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이 정부조직법과 함께 처리되지 않을 경우 상당한 시장 혼란이 예상된다는 일부 우려의 시각도 따른다. 조직개편안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각종 정책들이 한동안 정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어떤 조직이 주체가 되어 정책을 추진할지 불투명해진데다, 조직 안정성이 흔들려 실무 협의나 법령 손질 등이 일정 지연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직원들의 내부적 반발이 적지 않아 평시와 같은 업무 처리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1일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과 생명보험업계 사장단의 비공개 간담회가 돌연 연기되면서 이런 예상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조직개편안과 관련해 금융위 내부 혼란이 커지자 만남 자체가 기약없이 미뤄지게 됐다. 또한 금감원의 금소처 분리, 공공기관 지정 이슈까지 겹치며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서민대출 금리 인하와 배드뱅크(부실채권 전담은행) 설립, 소비자보호 정책 등 핵심 과제들의 추진 동력이 줄줄이 약화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15%대 최저 신용대출자 금리를 두고 “너무 잔인하다"며 곧바로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권 부위원장이 '특별기금 조성 검토'를 제시했지만 개편으로 책임 주체가 모호해진데다 조직개편에 안팎의 에너지가 쏠리면서 속도감 있는 추진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배드뱅크도 업권간 부담금 배분 문제에서 진행이 막힌 가운데 금융위 존치 논란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불공정 판매 규제 등 금융소비자 보호 관련 정책도 금소처 분리 등 담당 조직이 확실치 않아 예산이나 법적 근거 마련 등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밸류업 제도, 배당소득 분리과세 문제는 국회 입법 관련상 법 개정 절차가 필요한데, 조직개편으로 인해 정책 주체가 바뀔 가능성이 있어 법안 설계에 걸림돌이다. 상반기 중 예비인가 심사 완료를 계획했던 제4인터넷전문은행 인가는 심사가 지연 중이며,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는 조직개편 후 감독 범위와 담당부서가 확정되어야만 실질 논의 가능할 전망이다. 정책금융기관장 인선을 비롯한 금융공기업 정책 결정도 조직개편 논의로 인해 사업·정책 집행이 지연되고 있다. 정무위 위원장인 윤 의원이 심사 일정을 늦출 경우 추석 전 본회의 상정이 어려워지게 된다. 민주당은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할 경우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방식을 통한 강행도 검토 중이다. 다만 본회의 자동 상정 전까지도 수개월이 걸린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2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조직 개편법안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야당이 협조해야 한다"면서도 “필요 시 패스트트랙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야당의 협조를 최대한 끌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슈] 장관과 사장까지 필요성 인정…급물살 타는 발전공기업 통폐합

“발전 5사 통폐합, 필요하다"는 현직 발전공기업 사장의 발언에 발전업계는 충격과 긴장 속 분위기 파악에 분주하다. 한전의 자회사인 발전 5개사 통합은 '기후 정책 추진력 강화'와 '효율성 제고'라는 실용적 명분을 갖고 있지만, 노조 반발·지역사회 불안·공공성 약화 등 상당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단순한 구조조정 차원을 넘은 정책적 철학과 사회적 공감 형성을 바탕으로 추진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한동안 발전업계의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기윤 한국남동발전 사장은 최근 세종시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기자단을 만난 자리에서 발전 5개 공기업 통폐합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현직 공기업 사장이 정부 조직개편의 핵심 사안인 발전사 통합에 공개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강 사장은 “남부·서부·중부·동서·남동 다섯 개 발전 공기업이 지리적 영역 없이 중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관리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는 별도의 전문 공기업을 신설해 맡기고, 원자력은 한수원을 존치시켜 맡기며, 나머지 5개 공기업은 지역 관할권에 따라 중부와 남부로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또 “민간 발전 비중이 이미 40%를 넘어서고 있다. 공기업이 지금처럼 가만히 있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수급을 통제할 수 있는 공공 역량은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발전 시장은 1999년 민간 개방 이후 급속히 변화해왔으며, 최근에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을 중심으로 민간의 비중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강 사장의 발언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과 함께 발전공기업이 통합을 통해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공공의 역할을 하기 위한 조직 구조 재편의 필요성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발전업계는 이를 정부 정책에 선제적 동조를 보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야당 출신 사장이 현 정부의 중대한 조직개편 정책에 앞장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한 내달 1일 출범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장관이 되는 김성환 환경부장관도 통폐합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김 장관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석탄발전을 하고 있는 5개 공기업은 하나당 평균 8개 정도의 석탄발전소를 가지고 있다"며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지하는 대선 공약을 현실로 만들려면 5개 발전공기업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적정 규모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지는 가급적 조기에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사 노조는 강 사장의 발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은 즉각 통합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아직 5개 발전사 개별 노조들은 입장을 취합하지 못한 상태다. 한 발전사 노조 관계자는 10일 에너지경제와의 통화에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명제에 기댄 밀실행정식 조직개편과 일방적 통합 추진은 안 된다. 발전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전환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후에너지환경부로의 이관이나 통합에 대해 정부가 노조와 사전 협의를 한 적 없다"면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뒤에 구조조정을 숨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각 발전사 노조는 오는 19일 노조위원장 회의를 통해 통합에 대한 의견을 모을 예정이지만,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발전사 노조는 2001년 발전사 분할 이후 꾸준히 “다시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온 만큼, 일부는 통합을 조건부 수용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정리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또 다른 발전사 관계자는 “통합이 되더라도 본사 고위직급이나 노조 간부 직급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각 사업소별 현장 인력의 급격한 구조조정은 당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전사 통폐합에 따른 장단점은 명확하다. 통합의 효율성 제고에 대한 기대와 함께 조직 축소 및 기능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강 사장이 말했듯 통합 추진의 가장 큰 명분은 관리 효율성과 중복 해소다. 현재 5개 발전사는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지역적·조직적으로 분산돼 있어 정책 집행과 자원 배분 면에서 비효율이 발생해 왔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에너지 부처가 이관되는 만큼, 기후정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해 발전 자회사 간 역할 조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합이 이뤄질 경우,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재생에너지 전환, 석탄발전 감축 등에 대한 일사불란한 대응체계 구축이 가능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중복된 인력과 부서를 통합해 예산과 인력을 절감하고,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 측에서는 통합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각 발전사의 본사가 위치한 지역사회에서는 통합 시 본사 기능이 축소되거나 통폐합되는 것에 따른 지역경제 위축과 일자리 감소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발전사 노동조합도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 노조 관계자는 “단순한 통합 논의가 아닌, 탈석탄 이후 대체발전원 확보 및 공공성 유지 방향까지 포함된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발전사업의 지역 분산성과 현장 대응력이 장점이었던 만큼, 통합 시 현장 대응의 기민성 저하 및 책임소재 모호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민간발전 비중이 이미 40%를 넘어선 상황에서 공공 발전 자산까지 통합·축소될 경우, 공기업의 시장 내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는 향후 발전 공공성 및 안정적 수급 체계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조는 단순한 통폐합 반대보다는 △탈석탄 정책의 명확한 대안 △지역사회와의 공감대 형성 △재생에너지 확대와 일자리 상생 방안 등도 함께 요구할 방침이다. 한 에너지업계 전문가는 “정부는 통폐합을 통한 중복 기능 제거와 전력계통 효율화,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그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정책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 한 달도 안남은 IRA 보조금…美, ‘전기차 불모지’로 전락하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종료 시점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7월 발효한 대규모 감세법(OBBBA)에 따라 전기차 구매시 제공됐던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이 오는 30일까지 적용되고 10월부터 폐지된다. 예정보다 7년 앞당겨진 것으로, 업계에서는 미국 전기차 시장이 장기적으로 위축되고 주도권이 중국과 유럽에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9일 워싱턴포스트(WP),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두 달간 미국 전기차 판매는 기록적인 수준을 보였다. 지난 7월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13만82대로 전월 대비 26.4%, 전년 동월 대비 19.7% 증가해 월간 기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달에는 전체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이 12%에 이르러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WP는 전했다. 전기차 판매 가격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기차 신차 평균 판매가격은 5만5689달러로 전월 대비 2.2% 하락했다. 이에 내연기관차와 가격 격차는 7611달러로 좁혀져 지난해 12월 이후 최소 수준을 보였다.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폐지를 앞두고 판매 호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콕스 오토모티브의 스테파니 발데즈 스트리트 업계 인사이트 부문 이사는 “판매 모멘텀이 9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문제는 다음달부터 미국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냉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기관들은 이에 발맞춰 미국 전기차 시장에 대한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오토퍼시픽은 2029년 미국 전기차 판매 비중을 12%로 예상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비중을 25%로 전망했으나 이번에 절반 이상 낮춘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언스트앤영(EY)도 8일(현지시간) 보고서를 발표해 전기차가 미국 전체 자동차 판매의 절반을 차지하는 시점을 2039년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기존 전망보다 5년 늦춘 것이다. EY는 또 전기차 판매 비중이 지난해 8.1%에서 2029년 11%까지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보다 여전히 비싸고 충전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보조금 폐지 정책까지 겹치면서 소비자들의 전기차 외면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JD파워의 타이슨 조미니 데이터 분석 부회장은 “이미 극도로 낮은 전기차 판매 마진이 관세 여파로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전기차와 부품은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고 WP에 말했다. 리서치 업체 아이시카즈(iSeeCars)는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이 내년부터 2028년까지 4%로 절반 가까이 축소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업계의 이같은 전망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미국을 전기차 후발주자로 전락시키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부터 '전기차 의무화 폐지'를 공약했으며, 취임 후 자동차 배출가스 및 연비 규제 철회를 지시했다. 또 핵심 국정 과제인 감세법에는 전기차 세액 공제 축소, 기업평균연비제 위반 시 부과되던 벌금 폐지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기조에 발맞췄던 미국의 3대 자동차 업체들도 최근 들어 내연기관차 생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예상되는 전기차 시장 성장 및 수요 둔화에 맞춰 GM은 전략적으로 자동차 생산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전기차에 대한 지출을 상당히 줄이고 내연기관차에 집중하겠다고 언급했다. 스텔란티스는 램(RAM)의 경량 픽업에 탄소 배출이 많은 헤미 V8엔진을 다시 탑재했다. 폴 야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JP모건 콘퍼런스에 참석해 “향후 4~5년 동안 전기차 소매업체나 전기차 판매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놀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후퇴 정책은 기후변화 대응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WP는 “이같은 변화로 도로에 800만대 이상의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 대신 새로 추가될 수 있다"며 “이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수준 대비 61% 이상 감축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더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강력한 환경 규제와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는 중국과 유럽이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EY는 중국의 전기차 시장 점율이 2033년 절반을 넘어서고 2039년에는 전기차 판매 비중이 7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도 2032년 전후로 전기차 판매 비중이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한편, 미국 전기차 시장이 최근 급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부진을 겪고 있다.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점유율이 6월 48.7%에서 7월 42%로 급감했고 지난달엔 38%로 추락했다. 테슬라 점유율이 40%를 밑돌은 적은 2017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반면 현대차, 기아, 도요타자동차, 혼다 등은 7월 전기차 판매가 60~120% 급증해 점유율을 확대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이슈+] “은행, 가뜩이나 현안 많은데”...파업 하겠다는 금융노조

은행권이 정부 조직 개편과 9·7 가계대출 추가 규제 등으로 혼란이 불가피한 가운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가 이달 2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금융노조는 시중은행, 지방은행, 국책은행 등이 소속된 곳으로 주 4.5일제 전면 도입과 임금 5% 인상, 신규 채용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작 은행권 현장에서는 시시각각 바뀌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파업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다는 반응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사측에 임금 5% 인상, 주 4.5일제 전면 도입, 신규 채용 확대, 정년 연장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2.4%의 임금인상을 고수하며 노조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결국 금융노조는 이달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26일 총파업 투쟁을 예고했다.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은 저출생과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이라며 “주 4.5일제는 고액 연봉자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직면한 복합 위기를 풀어낼 구조적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주 4.5일제를 통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과 가정이 양립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면,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은행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9·7 부동산대책이 새롭게 시행되는데다 내년 1월 2일부터 경제부처까지 대대적으로 개편돼 관련 내용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분위기다. 우선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한다. 기재부의 예산 기능은 기획예산처가 맡고, 재경부는 경제성장률·물가·고용 등 거시 지표 관리와 금융정보분석원을 포함한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담당한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위원회로 명칭을 바꿔 감독 기능에만 집중한다. 금감위 산하에 금감원과 기존 금감원에서 분리된 금소원을 두고, 금감원과 금소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 분리로 기존 금융위, 금감원이 담당하던 업무가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 금소원 등 4곳으로 쪼개져 정부 조직이 자리 잡기까지 업무 혼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각종 금융정책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서울과 대전 등을 오가며 부처 4곳과 소통해야 하고, 각 기관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경우 이를 조율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6·27 대출 규제를 내놓은 데 이어 9·7 부동산대책까지 발표한 점도 은행권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정부 정책에 맞춰 전산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날(8일)부터 무주택자의 규제지역(강남3구·용산구)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을 기존 50%에서 40%로 강화하고, 주택매매·임대사업자의 주담대는 전면 금지한다.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는 2억원으로 일괄 축소된다. 이렇듯 금융권에 시급한 현안들이 많다보니 금융노조의 4.5일제 요구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정부 조직 개편으로 실제 은행 실무를 관할하는 부처까지 변경되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4.5일제 도입 논의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이라며 “지금도 정부가 은행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 이번 투쟁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 4.5일제와 같은 거시적인 어젠다까지 관심을 갖기에는 현업이 너무 바쁘다"며 “4.5일제가 시행되면 영업점 채널 개편, 고객 불편 해소, 급여 조정 등도 다뤄야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이슈+] “美 상호관세는 불법” 최종판결 나오면…트럼프發 관세전쟁 끝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존폐 여부가 이제 미 연방 대법원 판단만 남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가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들이 약속한 무역협상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 자신의 편을 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호관세가 위법이라는 최종 판결이 나오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정책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 항소 법원에서도 상호관세는 위법…美정부 “협상 등을 위해 필요"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를 사용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의 무역적자와 펜타닐 문제가 국가 비상 사태에 해당된다는 법률 의견서를 2일이나 3일 대법원 송무차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29일 워싱턴 연방순회항소법원은 IEEPA는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지난 5월 국제무역법원(USCIT)는 관세 부과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IEEPA 기반 관세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는데 항소심에도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적국에 대한 제재나 자산 동결에 주로 활용됐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과 '제조업 경쟁력 쇠퇴', 그리고 '마약 밀반입'을 이유로 IEEPA를 활용해 중국·캐나다·멕시코 등에 대한 추가 관세와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항소 법원은 다만 백악관이 대법원에 항소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오는 10월 14일까지 관세 효력을 유지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법원에 서둘러 항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상고심의 구두 변론은 올해 겨울이나 내년 초봄에 시작될 수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설명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구두 변론 개시 이후 수주, 혹은 몇 달 뒤에 나올 수 있다. 상고심이 끝나기 전까지 상호관세는 유효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 발효가 중단되면 한국과 일본 등 미국과 큰 틀에서 무역 협상을 타결한 국가들이 합의를 지키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는 지난달 29일 항소법원에 진술서를 내고 “수입 규제, 관세 부과 없이는 다른 나라를 협상 테이블로 데려올 만한 어떤 합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의 성공은 관세를 즉각 시행하겠다는 믿을만한 위협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일본, 한국, 영국과 무역 합의를 발표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현재 미국과 이들 교역 상대국은 이런 프레임워크 합의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만들기 위해 신속하고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한미 통상 협의의 '키맨'으로 꼽히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같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법원이 IEEPA에 근거한 관세를 중단하면 외국 교역 상대국들의 보복과 무역 합의 철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 상호관세 운명은 '보수 우위' 대법원 손에 트럼프 대통령은 항소법원 판결이 나오자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매우 정치편향적인 항소 법원의 관세 철폐 주장은 틀렸다"며 “대법원이 도와줄 것"이라며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 배경엔 연방 대법원의 구조에 있다. 총 9명의 대법권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현재 6대 3으로 보수성향 대법관이 절대적 우세다. 특히 3명은 집권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법원은 연방 공무원 해임과 불법체류자 추방, 연방자금 지원 보류 등의 조치에 대해 진보성향 대법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판단을 내린 전례도 있다. 항소법원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한 일부 판사들도 있다. 항소법원은 7대 4로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근거로 관세를 부과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소수 의견을 낸 판사 중 한명은 오바마 행정부 때 임명된 리처드 타란토 판사다. 그는 “대통령이 IEEPA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관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제한하려 했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는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가 임명한 1명의 민주당원은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투표했다"며 “그의 용기에 감사한다"고 했다. 다만 IEEPA에 근거한 관세가 1·2심에서 분명한 사유로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던 만큼 대법원이 무조건 트럼프 대통령의 들어줄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대법원이 과거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무효화할 때 인용했던 '중대 문제 원칙'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2022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명문화한 이 법리는 의회의 명확한 위임이 없으면 대통령이 중대한 경제·정치적 의미를 지닌 정책을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대법원은 이 법리를 근거로 바이든 행정부 당시 도입된 학생 대출 탕감 조치, 직장 내 방역 조치, 퇴거 유예 조치 등을 모두 무효화했다. 이를 두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학생 대출 탕감 조치보다 훨씬 더 크다며 중국을 중심으로 반미 연대가 결집하는 등 중대한 정치적 의미도 있다고 짚었다. ◇ 美 재무 “플랜B 있다"…관세 부과할 법적 근거 5가지 그러나 대법원이 IEEPA를 근거로 한 관세를 위법으로 최종 판단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법적 수단을 동원해 관세 정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베선트 장관도 로이터 인터뷰에서 “(IEEPA 관세 만큼) 효율적이지도, 강력하지도 않지만 (관세를 부과할) 다른 권한들이 많이 있다"며 예시로 1930년에 제정된 '스무트 홀리 관세법 338조'를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조항은 해당 법안은 미국과 상거래에서 차별하는 국가의 수입품에 대통령이 5개월간 최대 5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다만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어 실제 발동될 경우 새로운 법적 논쟁이 예상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일부 민주당 하원 의원들은 관세법 338조를 폐지하는 결안을 지난 3월 발의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 품목별 관세를 더욱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철강 및 알루미늄,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구리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목재, 반도체, 의약품, 트럭, 핵심 광물, 상업용 항공기 및 제트 엔진, 무인항공시스템, 폴리실리콘, 풍력 터빈에 대해서도 부과할 예정이다. 이 법안을 근거로 한 관세는 이번 무역법원과 항소법원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세율 상한도 없지만 반드시 미 상무부의 조사를 거쳐야 한다. 특정 수입품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하다고 판단될 경우 상무 장관은 270일 내로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밖에도 무역법 201조, 301조, 122조가 관세 부과 수단으로 거론된다. 무역법 201조에 따르면 특정품목의 수입급증으로 미국 해당 산업에 상당한 피해가 우려될 경우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령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집권 당시 무역법 201조를 활용해 수입 세탁기에 20~50%, 태양전지·모듈에 30%의 '세이프가드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CT) 조사와 공청회를 거쳐야 하며 관세 부과 기간은 4년이고 최대 8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 세탁기 세이프가드는 2023년에 만료됐지만 태양광 부품 관세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2026년까지 연장했다. 무역법 301조는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를 허용한다. 외국 정부나 외국 기업이 미국 기업에 차별적인 대우를 할 경우 USTR 조사를 거쳐 대통령이 시행할 수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이를 근거로 중국에 대해 관세를 부과했다. 세율 상한은 없지만 USTR의 추가 요청이 없을 경우 4년 뒤 자동 폐지되며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무역법 122조는 무역적자 보정을 위해 15% 범위 내에서 150일까지 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대통령에게 부여한다. 이렇듯 트럼프 정부는 다양한 조항을 이용해 관세 부과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권한, 속도 등 측면에서 IEEPA 관세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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