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인 오근식 씨(66· 타칭 도보여행가·자칭 걷는이)는 2019년 2월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 정년 퇴직 후 서울을 떠나 충남 천안에 거처를 마련했다. 천안에서 생활할 준비를 마칠 때 아내(김선화·61)에게 건강의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유방암 수술을 받고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유방암 수술 1년 정기 검사를 받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조용히 지내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도로 갔다. 오씨는 거기에서 아내와 함께 잘 알려진 오름부터 시작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오름까지 찾아가 걸었다. 주로 주중에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 천천히 걸으니 나무와 풀과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느리게, 많이 걷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았다. 걷기가 몸에 익숙하지 않은 때여서 하루 외출해 걸은 후에는 그저 집에서 쉬었다. “퇴직하기 5년 전쯤 전부터 막연하게 전국 여행을 꿈꾸었는데, 퇴직 후의 계획을 묻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그냥 놀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노는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어요. 제주도에서부터 시작해 전국 시와 군에서 세 달씩 살며 '걸을 수 없을 만큼 나이들 때까지' 전국을 다 다닐 생각이었습니다." 오씨 부부는 두어 달 그렇게 오름과 숲길을 찾아 걸은 후 제주 올레 걷기를 시작했다. 걸어서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니는 여행이었다. 짧은 코스는 한 번에 걸었지만 조금 긴 코스는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만 걷고 집에 돌아와 하루 쉰 후 다시 가서 이어 걸었다. 하루를 걷고 나면 하루 쉬고, 비가 오면 하루 더 쉬었다. '제주 1년 여행'이니 시간은 많았다. 1년 동안 올레, 오름과 숲길 등 거의 800㎞를 걸었다. 이렇게 시작한 국토걷기 기행은 지난 5년 동안 최소 2800㎞다. 2020년 가을 국민연금공단에서 주선하는 은퇴자공동체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해 고창에서 석 달 지내며 300㎞쯤 걸었고, 2021년 봄 통영에서 석 달 지내며 섬과 숲과 산길을 300㎞쯤 걸었다. 2021년 가을부터 2023년 가을까지 해파랑길 750㎞와 주변의 산과 길을 합해 900㎞ 정도 걸었다. 2023년 봄 울릉도 길 50㎞를 걸었고, 2023년 가을부터 남파랑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450㎞ 정도 걸었다. “대부분 아내와 둘이 걸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주로 해안길을 걸었고, 앞으로 남파랑길 걷기 여행을 마칠 때까지는 당분간 해안길을 계속 걷게 되는데, 어느 곳에 서 있든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늘 내가 살아서 이 길을 다시 걸으며 이 아름다움과 다시 마주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걷습니다. 종아리와 허벅지의 단단한 근육과 건강은 덤입니다. 퇴직 후의 삶이 지난 한 평생 중 가장 행복한 거 같습니다. 아내의 건강도 한 때 위기가 있었지만 걷기를 통해 매우 좋아졌어요." 어느 덧 주변에서 '보도여행가' 대우를 받게 된 오씨는 걷기여행을 할 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조언을 해줄 정도의 베테랑이 됐다. 우선 출발 전 걷는 코스에 관해 가까운 이에게 알려 놓는다. 그날의 날씨는 물론, 실시간 기후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절에 따라 비옷, 보온용 옷 등 여분의 옷을 준비한다. 걸을 때 스틱을 꼭 사용한다. 또한 걷기 전 코스에 대해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는 것이 좋은 데, △먼저 걸은 이들이 평가하는 코스 난이도 △식당, 화장실, 쉼터, 편의점 등의 위치 △위험구간, 우회로 등 파악은 기본이다. 물, 이온음료, 칼로리보충용 간식 등은 남기는 경우가 있더라도 충분히 준비한다. 요즘은 휴대전화 어플(앱)을 통해 코스 안내나 완보 인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충분한 용량의 보조배터리를 휴대할 것, 산길을 홀로 걷게 될 경우 위치 안내 표지를 만날 때마다 사진을 촬영해 가까운 이에게 전송할 것, 한 번에 긴 시간 많이 걸으려 하거나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말 것 등도 당부했다. “제주올레와 해파랑길은 길 안내 표지가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올레는 주관 단체가 잘 관리하고 있고 길도 매우 안전합니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 길에 포함된 시군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 길을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시군별로 비교적 길 안내가 잘되어 있어요. 그런데 부산의 갈맷길이나 강릉의 바우길처럼,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잘 관리하고 있는 구간이 있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그저 길을 이어 놓았을 뿐 관리가 부족한 부분이 꽤 많이 보입니다. 도보여행자들의 안전을 위해 지자체별로 코스 관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오씨에 따르면, 남파랑길은 90코스, 1470㎞인데 각 코스별 거리가 약 20㎞에 달하는 곳이 많다. 걷기 쉽지 않은 등산로, 인도 또는 갓길 없는 왕복2차선 지방도를 걷는 등 위험구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도보여행자들의 안전을 위한 지자체의 적극적 개입과 투자가 필요하다. 코스별로 숙소를 연계해 도보여행자들의 짐 탁송 등이 이루어진다면 편안하게 많은 이들이 도보여행에 참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도보여행 틈틈이 다양한 매체에 여행기를 연재해 '도보여행 칼럼니스트'로도 주목받고 있다. 철도고·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인제대 백병원 비서실장·홍보과장, 건국대병원 홍보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에서 해남 땅끝탑까지 남파랑길 90코스 1470㎞를 여행 중이다. 남파랑길의 거제도 3코스 여행을 남겨두고 있고, 통영과 고성군 코스는 거의 마무리해 총 29코스를 걸었다. 남파랑길은 2025년 상반기 중 걷기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서해랑길 1800㎞와 DMZ 평화의 길까지 걷고자 한다. 서해랑길은 3년 , 평화의 길은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리산둘레길 역시 걷고자 하는 길의 목록에 넣어 두고 있습니다. 박효순 기자 anyto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