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들로 수급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저PBR주 과열 주의보'가 켜졌다. 이에 기업가치가 높음에도 저PBR 테마에서 소외돼 주가가 하락한 종목들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KRX 기계장비 지수는 656.24에 마감했다. 연초 719.47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 8.79%가 하락했다. KRX 전체 지수 가운데 하락률이 가장 높다. 시가총액도 연초 254조7155억원에서 230조7045억원으로 24조원이 증발했다. 같은 기간 KRX 철강, KRX에너지화학 등도 각각 6.37%, 5.20% 하락했다. 반면 대표적인 저PBR주로 꼽히는 보험·금융·은행 업종은 10%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KRX보험은 올 들어 20.6% 급등했고 KRX300금융(16.21%), KRX은행(15.89%) 등도 강세를 보였다. KRX기계장비를 비롯해 철강, 에너지화학 업종 지수가 상대적으로 큰 폭 하락한 데는 저PBR주로 수급이 쏠린 영향이 크다. KRX기계장비 지수 종목 대부분이 저PBR주 대세장에서 소외된 종목으로 구성돼 있어 수급이 급감하면서 주가가 하락한 것이다. KRX기계장비 지수는 이차전지, 조선, 중공업 관련주 등 총 29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시가총액 순으로 보면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머티 등 이차전지 관련주를 포함해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이차전지주는 고PBR군에 속하는 대표적인 성장주로 최근 저PBR주 흐름에서 주가가 힘을 받지 못했다. 에코프로비엠은 PBR이 15.69배, 포스코퓨처엠이 8.53배, LG에너지솔루션이 4.49배 수준이다. 에코프로머티는 38.06배에 달한다. PBR이 1배를 넘는다는 것은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높다는 의미로 고평가돼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차전지 종목들의 수급이 저PBR주로 옮겨가면서 신용잔고도 감소하는 양상이다. 지난 8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시총 상위 종목 중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잔고는 1550억8000만원으로 지난해 말(1794억원)보다 13% 줄었다. 조선·중공업 관련주는 지난해 4분기 호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저PBR 테마에 가려 약세를 보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전년 대비 32.3% 증가한 11조9639억원을 기록했다. HD한국조선해양 역시 글로벌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에 따른 수주량 확대와 건조 물량 증가에 힘입어 2022년보다 23.1% 증가한 21조296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도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KRX 기계장비 지수 내 시가총액 상위 5위에 해당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2.6%, 27.4% 증가했다. 이처럼 호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저PBR주로 수급이 집중되면서 소외된 종목들은 주가가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총 4조4000억원을 순매수했는데 전체 순매수 규모의 절반이 넘는 2조7000억원을 저PBR주인 자동차, 은행, 상사·자본재, 보험, 소재(유통) 업종에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저PBR주가 국내 증시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저PBR주의 자체 동력이 약한 상황에서 저PBR주가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저PBR주의 자체 동력이 약한 상황에서 기대와 현실 간 간극을 확인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에 저PBR주가 급등하면서 기대가 높아졌고 이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내용이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하거나 상회할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채권금리와 달러가 하향할 경우 부진했던 종목이 반등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채권금리와 달러가 하향안정세를 보일 경우 순환매 장세가 재가동되면서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업종·종목들의 가격과 밸류에이션 매력이 부상할 것"이라며 “최근 저PBR주에 밀려 소외됐던 반도체, 조선 업종의 반등시도와 함께 제약·바이오, 이차전지 등으로 수급이 이동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