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석유, 가스, 석탄 화력발전 등 기존 화석연료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장은 27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3년 글로벌 에너지 정책동향’ 세미나에서 "예전에는 탄소중립 목표만을 중시해왔다면 이제는 목표 자체가 아니라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단, 방법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우리 정부도 탄소중립 과정에서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인프라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 2∼30년간 구축한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인프라들은 앞으로 탄소중립에서도 일정기간 역할을 할 수 있다. 훌륭한 레거시(유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이 실장은 "최근 기후당사국총회(COP28)에서 탄소중립 궤도 수정, 방향전환이 있었다. 기존에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에 포커스를 뒀다면 이제는 기술적 관점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접근을 시작한 것 같다"며 "각국에서 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원전, 수소, CCUS 등 무탄소 전원 활용을 탄소중립 수단으로 삼는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탄소중립이 에너지안보를 훼손하지 않도록 각국의 여건과 에너지상황을 고려해 추진하는 노력들도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기존의 화석연료들을 무탄소, 저탄소화 하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에너지안보 구축 과정에서 가격 수용성, 기존 에너지시스템을 어떻게 튼튼하게 뒷받침 할 수 있을지 종합적으로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며 "탄소중립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 하는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소중립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산업 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하는, 산업 그 자체로 탄소중립을 봐야 한다.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기조 변화의 배경으로는 최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급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 실장은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오일쇼크에 버금 간다. 여러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 있는 에너지기업들과 동아시아 기업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놓고 경쟁을 하는 시기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전세계적 가스, 전기요금 급등을 경험했다. 그동안 미·중 간의 갈등 속에서도 에너지안보, 핵심자원에 대한 수출 통제도 이슈가 됐지만 2021년 하반기 이후 이런 현상들이 더욱 가속화됐다. 에너지안보라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최근의 위기로 인해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너지안보라는 이슈가 에너지정책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가 됐다. 다음으로 가격, 경제적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하며 그 다음이 탄소중립과 기후변화대응이다. 세 기둥이 함께 가야 굳건한 에너지정책 수립이 가능하다"며 "각국이 에너지자원에 있어 공급망 체계를 개편하려 하고 있다. 유럽도 리파워 유럽연합(RE POWER EU)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안보에 대응해서 자원안보특별법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에는 에너지자원 전략도 새롭게 준비해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실장은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의 에너지정책 추진에 앞서 다른 나라의 사례, 글로벌 에너지 정책 환경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평가하고 조망하면서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보고 새로운 정책들을 만들어 내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세계 에너지 정책환경이 ‘불확실성’과 ‘변동성’ 확대를 특징으로 하며, 에너지 안보 달성과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복합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산업부는 무탄소에너지 확대와 함께, 에너지 공급망 강화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원전, 재생에너지, 수소, 양수 등 다양한 ‘무탄소 전원’ 확대와 전력망의 조속한 확충으로 구체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해외자원개발 활성화 및 국가 차원의 에너지·자원 안보체계 구축에도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러-우 전쟁의 장기화와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인해 세계 에너지 시장의 공급망 교란과 에너지 가격 변동성 증가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는 가운데, 주요국의 에너지정책 동향과 시사점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세미나에서는 주요국의 청정에너지 정책 동향,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 동향 및 주요국 에너지 가격과 소비자 보호정책 동향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다. 조홍종 건국대 교수를 좌장으로 한 토론도 진행됐다. 토론에서 노동석 원자력소통지원센터장은 유엔 COP28에서 이루어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 3배 확대 선언을 일명 ‘쌍 3배 선언’이라고 칭하면서, 양 발전원이 함께 갈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진수 한양대 교수는 "자유무역에 기댄 공급망 안정성 확보 전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서 핵심광물의 협상 수단화 현상을 지적했다. 산업부는 세미나에서 제시된 의견을 향후 정책 추진에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jjs@ekn.krclip20231227103926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장이 27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3년 글로벌 에너지 정책동향’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